정미반회사건 [한] 丁未泮會事件

정미년(丁未年) 즉 1787년 10월경에 이승훈(李承薰), 정약용(丁若鏞)등이 반촌(泮村)에서 천주교 서적을 읽고 연구하는 걸 목격하고 성토한 사건을 말한다. 이 정미반회사건을 발설한 사람은 이기경(李基慶)으로, 원래 그는 이승훈, 정약용과는 친밀한 사이로, 그들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대하며 보조를 같이했었다. 그러나 정미년부터 그들과 떨어져 오히려 그들을 반대하고 배척하였다.

그리하여 이기경은 정미년 겨울에 이승훈, 정약용 등이 반촌에 있는 김석태(金石太) 집에 모여서 서학서만을 보고 있는 걸 목격했었다고 천주교 배척론자인 홍낙안(洪樂安)에게 폭로하였다. 이 말을 들은 홍낙안은 이를 왕에게 알려 그들을 벌주어야 한다고 극렬하게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서 직접적인 박해가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내려지지는 않았으나, 점차 천주교를 무부무군(無父無君)의 사교(邪敎)라고 하는 상소문이 잇달아 장차 박해를 유발케 한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참고문헌] 李晩采, 闢衛編, 闢衛社, 1931.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정문호 [한] 鄭∼

정문호(1801∼1866).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바르톨로메오. 일명 계식. 충청도 임천(林川)에서 양반으로 태어났다. 임천에서 천주교를 알게 되자 곧 입교한 뒤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는데, 한때 고을의 원을 지내기도 했고 또 품행이 단정하고 성격이 강직하여 교우들뿐 아니라 외교인들에게까지 존경받았다. 그 뒤 박해를 피해 고향을 버리고 여러 지방을 유랑하며 살다가 병인(丙寅)박해 때에는 전주(全州) 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골에 살고 있었다. 1866년 12월초 사람을 시켜 박해에 대한 전주감영의 동태를 살피러 보냈으나 그 소식을 듣기도 전에 12월 5일 대성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한원서 · 손선지 등과 함께 체포되어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순교하기 직전 정문호는 옥중에서 항상 기도로써 순교를 예비했고 형장에 끌려가면서도 “오늘은 우리가 천국으로 과거보러 가는 날이다. 오늘은 정말 기뻐해야 할 날이다” 하고 진심으로 자신의 순교를 기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정두원 [한] 鄭斗源

정두원(1581∼?). 문신. 자는 정숙(丁叔). 호는 호정(壺亭) · 풍악산인(楓嶽山人). 본관은 광주(光州). 홍문관 정자(正字)를 지낸 정명호(鄭明浩)의 아들. 1612년 생원시에 합격한 후 1616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623년 성천부사(成川府使), 1624년 관향사(館餉使), 1627년 전향사(轉餉使) 등을 역임했고, 1630년 진주사(陳奏使)로 명(明)나라에 가서 당시 북경(北京)에서 전교 중이던 예수회 선교사 로드리게스(Rodriguez, 중국명 陸若漢)를 만나 친교를 맺고 이듬해 홍이포(洪夷砲) · 천리경(千里鏡) · 자명종(自鳴鐘) 등의 서양 과학기구와 ≪직방외기≫(職方外記) · ≪서양풍속기≫(西洋風俗記) 등 많은 서학서(西學書)를 가지고 귀국하여 국내에 처음으로 서양과학 기술을 소개하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정덕 [한] 貞德 [라] castitas [영] chastity [관련] 윤리덕 절덕 정결

정결을 실천하는 덕행. 윤리덕의 일종인 절제의 덕에 속한다. 정덕은 정결을 실천하는 능력이요 이를 습관적으로 실천하는 태도이다. (⇒) 정결, 윤리덕, 절덕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정당 [한] 政黨 [영] political party [독] politische Partei [프] parti politique

정당이란 본질적으로는 어느 특정조직에의 참여, 즉 어떤 집단의 부분이 된다는 것과, 특수한 프로그램에 의하여 다른 여러 조직에서의 분리, 즉 전체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을 뜻한다. 달리 설명하면, 공통된 원리 · 정책을 가지고, 일정한 정치 이념의 실현을 위하여 정치 권력에로의 참여를 목적하여 맺어진 정치단체라고 할 수 있다.

정당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살피자면, 우선 정당의 본질, 정당체계, 정당의 여러 가지 유형을 미리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정치현상은 권력론과 정책론의 두 가지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정당에 관하여도 마찬가지여서 권력론의 관점에서는 정당이란 지배와 저항을 위한 정치조직인 것이며, 일반국민에게 정책선택을 하기 위한 선택지(選擇脂, alternative)를 제공해 주는 기능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서로 다른 선택지를 제시하는 복수 조직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복수적인 선택지 제공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비대를 초래했을 경우엔 일당독재(一黨獨裁)가 되고 만다. 정당체계는 1당제, 양당제, 그리고 다당제(多黨制)로 나누어진다. 정당은 그 바탕에서부터 민주적인 풍토를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독재체제에 있어서도 형식적인 외관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당을 만들어 운용해 오고 있다. 정당의 유형으로는, 정당이 갖는 일반적인 성격에 따라서 ① 이익정당 즉 특정한 이익과 결부되어 있는 정당, ② 세계관 정당 즉 사상 · 철학 · 문학의 체계를 간판으로 내거는 정당, ③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파벌을 만들어 권력적 지위에 오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 패트러니지(patronage, 단골거래 후원자)형 정당 등으로 구분되며, 조직의 시각에서 볼 때는, 19세기적 형태인 인적 정당과 20세기적 형태인 대중정당(大衆政黨) 또는 조직정당으로 분류된다.

소련에 있어서의 공산당이라든지 2차 대전 전의 독일 · 이탈리아에 있어서의 나치 · 파시스트 정당 같은 것은 하나의 정당이 정치권력을 독점한 형태인데, 서구에 있어서는 양자를 모두 일괄해서 전체주의 정당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형태적으로는 일당독재체제라 하더라도, 첫째 당이 아래로부터의 에너지를 흡수할 기능을 가지고 있느냐, 둘째로 그 정당이 앞세우는 세계관 또는 정책이 역사적인 발전 법칙에 합치하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구체적인 존재형태와 그 의미가 결정적으로 달라지므로, 양자를 통틀어 전체주의적이라고 지칭하는 데는 문제가 많다.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양당제냐 다당제냐 하는 점에 있다. 양당제의 경우, 두 정당이 그 중간에 놓여 있는 국민을 자기의 진영으로 흡수하려고 하여, 정책의 제시를 보호하게 하는 경향이 있고, 이런 점에서 국민의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의 합리성과, 정당의 측면에서 볼 때의 보다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한 합리성이 서로 모순되는 딜레마 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다당제에 있어서는 각 정당의 수비 범위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정당은 자기의 정책 또는 이데올로기를 명확히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며, 게다가 이 경우에는 선택지가 다수 존재하는 탓으로, 국민의 선택을 위해서는 이 제도가 유리한 것이다. 그렇지만 1당만으로는 정권을 획득하지 못하므로, 복수정당의 연합이 필요하고, 그 때문에 교섭과 타협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리하여 국민과의 관계는 간접적인 관계로 물러나게 되며, 국민의 요구도 자연히 그 교섭관계에서 왜곡되어 버린다는 불이익이 있다. 결국 양당제가 좋으냐, 다당제가 좋으냐 하는 문제는, 그 나라의 국민의식의 분포상황에 대한 고려와, 각기의 제도가 지니고 있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합리적으로 계산한 뒤에 신중히 결정되어야 한다.

어쨌든 정당을 구분하는 요소는, 하나는 정치 결정과정에의 참가 또는 참여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사회의 특수한 여러 이익을 공통적인 전체 속에 알맞게 빚어 넣는 통합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 이 두 가지 점에서 찾아야만 된다.

그리스도 교인의 정당 가입은 가능하지만, 그 가입에 제약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치권력은 사회 공동체의 단합을 보장하기 위한 자연적이며 필연적인 요소인 한, 그 목적은 공동선의 실현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정치를 전부라고 절대시하는 경향은 중대한 위험을 내포한다. 교황 바오로 6세의 서한 <행동에의 부름>(‘레룸 노바룸’ 반포 80주년을 맞이하여, 1971. 5. 14)에 따르면, “정치의 자율성을 인정해야 하겠지만, 정치활동에 간여하는 그리스도 교인은 정치활동을 복음과 부합시키도록 노력해야 하고, 여러 가지 정당한 제도와 여론 가운데서도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사심없이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봉사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실성을 증거해야 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적인 정당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기에 와서부터이며, 벨기에 · 네덜란드 · 독일 등에서 결성되었다. 이는 모두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 서는 것들이었다. 20세기에 접어들어서는,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남아메리카 등 여러 나라에도 그러한 정당이 생기게 되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정의와 진리를 존중하면서 정당을 만드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교회가 정쟁(政爭)에 휘말리거나 교회의 지지에 의해서 특정 정당의 승리를 가져오게 하는 것은 배격한다. 가톨릭 신자가 정당에 가입하는 경우 그 정당의 강령이나 정책이 가톨릭 교리와 위배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신자 각자의 자유이다.

[참고문헌] R. Michels, Zur Soziologie des parteiwesens in der modernen Demokratie,

1911, 2 Aufl., 1925 / M. Duverger, Les partis politiques, 1951 / S. Neumann(ed.), Modern Political Parties, 1956 / 한용희, 가톨릭 정치윤리, 분도출판사, 1980.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