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순교자기념관 [한] 韓國殉敎者紀念舘 [관련] 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 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한국순교복자회빨마원 [한] 韓國殉敎福者會∼院 [영] Palma Home for Widows

1962년 10월 한국순교복자수녀회(韓國殉敎福者修女會) 및 성직수도회(聖職修道會)의 창설자인 방유룡(方有龍) 신부가 복자회의 창설 이념에 바탕을 두고 창설된 미망인 수도단체. 회원 각자는 무엇보다도 깊은 영성생활과 공동생활을 통한 형제애를 목적으로 하여 기간 서원만을 발한다. 주로 간접 선교활동으로서 1981년 4월 현재 4개 본당의 사제관 살림에 봉사하는 한편 3개 본당에서 성물(聖物)을 보급하며, 병원 · 회관 등지에서 회원 각자의 소질을 살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입회조건으로는 40세 미만인 미망인으로서 영세한 지 3년이 지난 사람이어야 하는데, 1981년 4월 현재 8명의 서원자와 5명의 청원자가 있으며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수녀들이 교육과 생활지도를 맡고 있다. 현재 부산시 동래구 부곡동산 15의 1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한국순교복자수녀회 [한] 韓國殉敎福者修女會 [영] Sisters of the Blessed Martyrs [관련] 제삼회

1946년 4월 21일 방유룡(方有龍) 신부에 의해 개성(開城)에서 창설된 방인(邦人)수녀회. 최초의 한국인 신부 김대건(金大建) 신부가 순교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에 한국 순교선열들의 순교정신으로 생활하며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헌신하기 위해 창설되었고, 1951년 12월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다. 원래 1930년대부터 한국인에 의한 수녀회를 창설하려 했으나 일제의 탄압정책으로 실패하고, 광복된 이듬해 개성 동흥동본당에서 창설회원 윤병현(尹炳賢), 홍은순(洪恩順) 회원과 함께 발족회를 가지면서 점성정신(點性精神), 침묵대월(沈默對越), 면형무아(麵形無我) 등 한국적인 수덕론(修德論)을 제창하였다. 창설되던 해 10월에는 6명의 회원이 더 입회하였고, 소착복식도 처음 행해졌다. 한편 경제적인 자립을 위해 양재학원을 경영하기 시작하면서 개성에 단독주택을 구입하여 본격적인 수도생활이 시작되었다. 6.25전쟁 직전인 1950년 3월 서울 청파동(靑坡洞)으로 본원을 이전하였으나 곧 피난길에 올랐다가 1952년 12월이 되어서야 다시 서울에 정착하여 첫 착복식을 갖게 되었다. 그 뒤 샤르트르 성 바오로수녀회의 수련지도를 받기도 하면서 1954년 12월 5명이 첫 서원을 하였고, 같은 해 성모성년기념 가톨릭 사료전시회(史料展示會)도 개최하였다. 1957년 9월에는 경상남도 밀양(密陽)에 있는 성모성심병원을 인수하여 운영케 되었고, 그 이듬해 9월 제1회 종신허원식을 가졌다. 1960년에는 충청남도 천안(天安)에 복자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 1961년에는 현 서울 청파동에 있는 수련소를 증축하였다. 1963년에는 밀양 성모성심병원에 이어 부평(富平)의 성모자애병원에 인수하고, 1967년에는 교포들을 위하여 일본 오오사까에 분원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1971년에는 교회사연구소(현 한국가톨릭문화연구소)를 설치하여 가톨릭 사료전시회와 순교사극(殉敎史劇) 등을 주관하였다. 1974년 1월 제1차 정기총회가 개최되어 발전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됨으로써 1976년에는 본원건물을 완전 개축하는 한편 1977년 7월에는 부산 오륜대에 순교자성당을 신축하였다. 1978년 제2차 정기총회를 개최한 뒤 1981년 부평 성모자애병원부설 심신장애자조기교육원(엠마누엘 어린이집)과 1983년 부산 오륜대 순교자성당 내에 순교자기념관을 개관한 현재 11개 교구에서의 본당전교활동뿐만 아니라 특수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한편 1957년 3월에는 수녀회 삼회(三會)를, 1962년 10월 한국순교복자 빨마원을 창설하였다.

제3회 : 1957년 3월 6일 한국순교복자수녀회내에 발족된 재속수도회. 한국 순교복자들의 정신을 따라 한국순교복자회 대가족의 일원으로서 보다 나은 평신도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하여 발족된 이 회는 연령별, 즉 미혼자로 구성된 ‘데레사’반, 기혼자로서 40세까지 ‘아녜스’반, 기혼자 40세 이상의 ‘골룸바’반을 편성하여 1957년 첫 착복식을, 1963년 4월 첫 서원식을 거행하였다. 순교자 현양활동과 봉사활동을 주요 활동으로 하고 있으며 대표자로는 한국순교복자 수녀회 총장인 황우경(黃祐慶) 수녀, 지도신부로는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의 이존복(李存福) 신부로서 서울지구 300여명, 부산지구 12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 제삼회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한] 韓國殉敎福者聖職修道會 [영] Order of the Blessed Korean Martyrs

1953년 10월 30일 방유룡(方有龍) 신부에 의해 청설된 방인(邦人) 남자수도회. 당시 서울 제기동본당 주임신부였던 방 신부는 1946년 개성(開城)에서 한국 순교복자 수녀회를 창설한 이후 곧 남자수도회를 창설하려 했으나 6.25전쟁으로 인하여 서울 제기동본당 부속건물에서 순교자적(殉敎者的) 정신의 실천으로 보다 더 완전한 신앙생활 보다 더 완전한 구원에의 참여, 자아(自我)를 성화(聖化)하여 이웃을 성화시키려는 공동체생활을 5명의 창설회원과 함께 시작하였고, 1956년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다. 창설된 이듬해인 1954년 5월 명동성당의 부속건물을 임시로 빌어 이사한 뒤 1955년 7월 현재 본원이 위치한 서울 성북동(城北洞)에 흙벽돌집을 만들어 입주하기 시작했다. 1957년에는 노기남(盧基南) 주교와 함께 첫 서원미사를 봉헌하고, 순교사적지(殉敎史蹟地)인 새남터를 본수도회에서 관리토록 하였다. 당시 시유지였던 이곳에 주변 빈민아동들을 위한 공민학교(公民學校) 운영을 하기 위해 가건물을 지어 서울시로부터 소유권을 불하받은 때인 1969년까지 학교운영을 해 왔다. 한편 1968년 3월 재단법인 한국순교복자수도회유지재단 인가를 받고 1970년부터 새남터를 본격 개발하기 시작하였으나 재원의 부족으로 인하여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1971년 복자유치원을 개원하여 복자수녀회에 그 운영권을 위임하였다. 이 밖에 지방의 분원설립에 있어서는 1958년 당시 대전교구장 라리보(Larribeau, 元) 주교의 요청으로 처음 충청남도 천안(天安)에 진출하여 실업계 남자중학교를 운영하다가 지역적인 여건에 따라 1960년 복자수녀회로 인계하여 복자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 운영토록 하였다 1959년 8월에는 당시 광주교구장 헨리(Henry, 玄) 주교의 요청으로 제주도 서귀포(西歸浦)에 3명의 회원이 진출하여 밀감농장을 관리운영하며 마을에서의 전교활동도 시작하여 1976년에는 ‘피정의 집’을 마련하여 주민들과 피정과 연수활동 등에 제공하고 있다. 1961년에는 인천 만수동(萬壽洞)에 진출하여 1962년 소규모 수도원 건물을 마련하고, 1967년에는 수련소를 겸한 수도원을 완공하였다. 그리고 1969년에는 경기도 이천(利川)에 분원을 설치하여 농장과 회원들의 공원묘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1965년 첫사제를 배출한 이후 현재 총원장 방유룡 신부 외에 4명의 신부 회원과 18명의 수사회원들이 서울 본원과 새남터 그리고 3개의 지방분원에서 1983년 12월말 현재 활동하고 있으며, 새남터 순교사적지의 개발이 아직 현안문제로 남아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한국순교복자대축일 [한] 韓國殉敎福者大祝日

1926년부터 1983년까지 한국 천주교회에서 지내던 고유축일. 날짜는 9월 26일. 1925년 7월 5일 기해(己亥) 및 병오(丙午)박해 순교자 79위가 시복(諡福)된 후 이들을 기념하기 위해 축일로 지정되었다. 그 후 1968년 10월 6일 병인(丙寅)박해 순교자 24위가 추가로 시복되자 이들도 이 축일에 함께 기념하게 되었으며 1974년부터는 대축일로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1984년 5월 6일 103위 복자(福者)가 시성(諡聖)됨으로써 이 축일은 폐지되었고, 대신에 9월 20일에 시성된 103위 성인(聖人)을 기념하게 되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