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아공의회 [한] ~公議會 [관련] 니체아공의회

⇒ 니체아공의회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니카라과 [원] Nicaragua

파나마 운하로부터 약 600㎞ 떨어져 있는 중앙 아메리카의 공화국인데 북으로 온두라스, 남쪽으로 코스타리카, 동쪽으로 대서양 서쪽으로 태평양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 13만㎢에 인구 292만명(1982년 추계)이며, 가톨릭 신자는 약 257만명(1982년 현재)에 달한다. 니카라과는 콜룸부스가 1502년에 발견하였다. 가톨릭교도 잇달아 들어왔으며, 1524년 최초의 프란치스코회 소속의 교회가 설립되었다. 이후 수세기 동안 니카라과의 포교에 참가한 외국 선교회는, 위에 든 프란치스코회 외에도 도미니코회, 예수회, 카푸친회, 살레시오회, 베네딕토회 등이었다. 니카라과 교구에 주교가 처음 임명된 것은 1527년이었으나, 주교로 임명받은 페드로 추니가(Fray Pedro de Zuniga)는 임지로 출발 직전에 사망하고 오소리오(Diego Alvarez de Osorio)가 계승하였다. 니카라과는 국가와 교회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양자 사이의 관계도 원만하다. 또한 이 나라에는 교황청 대사가 상주하고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니체아신경 [한] ~信經 [라] Symbolum Nicaenum [영] Nicene creed

① 니체아 공의회(325년)에서 아리우스주의(Arianism)를 배격하고 정통 신앙을 수호하기 위하여 채택한 신앙 고백문. 이는 체사레아 또는 예루살렘의 세례 신경을 모체로 하고 아리우스주의를 반대하는 문구들을 가미하여 만든 것이다. 이 신경은 성삼위에 대한 믿음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성자의 동일실체(同一實體), 그의 강생, 죽으심, 부활을 강조하고 있다.

②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서 채택한 신앙고백문. 이 신경은 칼체돈 공의회(481년)에서 콘스탄티노플 신경이라고 하여 낭독되었으므로 ‘콘스탄티노플 신경’이라 불려지며, 니체아 신경을 발전시킨 것이라 하여 ‘니체아 · 콘스탄티노플 신경’ 또는 간단히 ‘니체아 신경’이라고도 불려진다. 이러한 명칭에도 불구하고 이 신경의 기원에 관해서는 견해가 갈리고 있다. 유력한 견해에 의하면, 이 신경은 니체아 신경과는 본질과 정신에 있어서 동일할 뿐이며, 이 신경을 그의 책(Ancor. 118. 9-113)에서 인용한 에피파니오가 이 신경을 만들고(374년)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채택하였다. 이 신경은 앞의 ①항의 신경이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동질’(同質, homoousios)이라 표현한 데 대하여 ‘성부와 일체’라고 묘사하며, 성령의 위치와 존재를 확대 설명하고 교회와 성사, 육신의 부활, 영생 등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5세기 시리아에서 성찬의 전례에 도입된 이 신경은 스페인을 비롯하여 서방교회에 전해졌으며 마침내 1014년 헨리 2세의 요청에 응하여 로마에 보급되었다. 오늘날 라틴전례의 미사 통상문에는 이 신경이 포함되어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니체아공의회 [라] Concilium Nicaenum [영] Councils of Nicaea [한] ~公議會 [관련] 공의회

①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년, 제1차 공의회).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대제에 의해 소집되어 니체아에서 열렸다. ‘318명 사제들의 교회회의’라고 불려졌으나 50~220명의 사제들이 참석한 것으로 보이며 서방에서는 회의를 주재한 호시오(Hosius)를 비롯하여 2명의 교황사절과 5명의 주교만이 참석하였다. 주로 아리우스 이단문제를 다루었다. 황제는 이단을 몰아내고 정통 교리를 세우는 것보다는 교회 내의 일치를 확보하는 데 급급하였으므로 아리우스 이단의 문제는 공의회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공의회에서는 두 편의 신경(信經)이 제출되었는데, 아리우스파(派)인 니코메디아의 에우세비오(Eusebius of Nicomedia)가 제출한 것은 폐기되었으며, 팔레스티나 공동체의 세례 신경을 기초로 하여 ‘동질’(同質, homoousios)이라는 용어를 보완한 체사리아의 에우세비오(Eusebius of Caesarea)의 신경이 채택되어 이를 기준으로 니체아신경이 공포되었으며, 그 결과 4명의 아리우스파가 파문되었다. 부제 아타나시오(Athanasius)도 참석하여 정통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 공의회

② 제 2차 니체아 공의회(787년, 제7차 공의회). 성화상(聖畵像)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여황제 이레네(Irene)가 소집하였다. 교황 하드리아노(Hadrianus) 1세는 여왕의 공의회 초대에 대하여 성화상 파괴에 대한 히에리아 교회회의(753년)의 결정을 파기하는 조건으로 두명의 사절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성화상 파괴주의자인 군인들의 폭력(786년)으로 공의회는 예정대로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리지 못하고,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타라시오(Tarasius)의 주제 하에 니체아에서 열렸다. 공의회는 교황의 서한대로 성화상 숭배에 대한 교리를 채택하여 성화상에 바쳐지는 공경은 그 본체로 돌아가므로 절대적인 흠숭은 신에게만 바쳐지는 반면, 성화상은 상대적인 사랑에 의해 공경되어진다고 부연하였다. 이 교리를 공포하는 교령에는 참석한 전원의 서명이 첨가되었으며, 성상파괴주의자들은 파문되었다. 이 밖에도 22개의 교회법이 교칙에 관계되어 제정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세속권위에 의한 성직자의 선출은 무효이며 성직 매매는 단죄받아야 한다. 또한 주교의 허락 없이 사제가 자신의 교구를 떠나는 것, 주교 거주지 또는 남자 수도회에 여자가 머무르는 것 등이 금지되었다. (⇒) 공의회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니체아 콘스탄티노플신경 [한] ~信經 [라] Symbolum Nicaeno-Constantinopolitanum [관련] 니체아신경

⇒ 니체아신경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