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론 [한] ~論 [라] Christologia [영] Christology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과 특히 위격적 결합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그리스도론은 교부시대 이래 연구되어 왔으나 이에 필적할만한 그리스도론이 서방세계에 등장한 것은 주로 종교개혁 이후이다 루터교의 그리스도론은 다양성을 용인하는 가운데 아폴리나리아니즘에로 기우는 경향을 보이면서 주로 강조하는 내용은 그리스도가 지닌 위격의 단일성 및 그리스도가 좀체로 신성(神性)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가 인성(人性)을 취했다는 주장이다. 칼빈주의자나 종교개혁자의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가 지니는 신성과 인성의 상위점을 강조함으로써 네스토리아니즘에 접근하는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전통에서 한걸음 나아가 개신교 그리스도론 중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다시 정의하여 예수는 단지 ‘나자렛 출신의 인간’일 뿐이라는 주장도 나오게 되었다. 가톨릭의 그리스도론은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에 따라 니체아, 콘스타니노플, 에페소, 칼체돈 등의 공의회에서 확인된 교리를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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ㅏ그리스도단의론 [한] ~單意論 [라] monotheletismus [영] monotheletism [관련] 그리스도논쟁

그리스도 단성론(單性論) 논쟁을 해소하기 위해 발전된 이단설. 단성론과는 달리 그리스도에게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두 가지 본성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이 두 성이 위격적 결합(位格的 結合)에 의해 결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는 하나의 의지(意志)만이 있어서 그 움직임도 하나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순수한 인간적인 의지는 신적인 의지 속에서 해소되어 흡수된다고 주장한다. 이 설의 대표적 인물은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세르지오(Sergius, 재위 : 610~638)로, 그는 그리스도 단성론자와 교회를 화해시키기 위해 이 설을 창시했고, 황제 헤라클리우스의 지지를 받았다. 여기에 반대한 자는 예루살렘의 소프로니우스였다. 그러나 교황 호노리오(Honorius) 1세는 사적 서신을 통해 단의론을 인정했기 때문에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80~681년)까지는 정설로 받아들여졌었다. 공의회는 이들의 설을 이단으로 배척했고, 교황 호노리오 1세도 단죄되었다. (⇒) 그리스도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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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단성론 [한] ~單性論 [라] monophysitismus [영] monophysitism [관련] 그리스도론 그리스도논쟁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오직 하나의 성(性), 즉 인간이 된 신성(神性)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이단설. 이 설에 따르면 예수의 인성(人性)은 ‘바다로 떨어지는 꿀방울이 바다에서 녹아 버리듯’ 신성에 의해 완전히 흡수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인성은 폐기되고, 인성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인간적 실재는 허상(虛像)으로 되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강생(降生)은 우리의 인간성과는 다른 모습을 취하는 것으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신비, 그리스도의 중재적 활동과 구속(救贖)은 허공에 뜬 논의로 되고 만다. 이 설의 주창자는 콘스탄티노플 근교의 한 수도원의 원장인 에우티케스(Eutyches)이며 알렉산드리아가 총대주교인 디오스쿠루스(Dioscurus)가 지지하였다. 단성론은 칼체돈 공의회(451년)에서 이단으로 배척되었다. 그 후에도 단성설은 동방 교회에서 계속 큰 영향력을 미쳤으며 ‘삼장 논쟁’, ‘성화상파괴 논쟁’ 등의 혼란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 그리스도론, 그리스도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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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논쟁 [한] ~論爭

동방 교회에서 아리우스가 일으킨 삼위일체 논쟁(三位一體論爭)이 니체아 공의회로 종식되었으나 4세기말경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논쟁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 교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정확한 관계를 정립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성서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명백하게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는 안티오키아 학파 사이에 격렬한 신학 논쟁이 일어나면서 정통 교리와 이단 교리가 규명되었다. 4세기말경에 아폴리나리우스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예수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갖고 여기에 신의 정신이 첨부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견해는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서 이단(異端)으로 단죄(斷罪)되었다. 그러나 이는 동방 교회에서 계속 영향력을 미쳐 몹수에스타의 테오도로는 아폴리나리우스의 교리를 반박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은 정신적으로 일치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도 후에 에페소 공의회(431년)와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553년)에서 단죄를 받았다. 5세기에 이르러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인 네스토리우스는 안티오키아 학파에 속하여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면서 마리아는 천주의 모친이 아니라 인간 예수를 낳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알렉산드리아 신학파에 속하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인 치릴로가 반대하고 나서서 12개항의 파문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 역시 반증을 제기하므로 이 사건은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논의되어 네스토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이단자로 정리되었고, 치릴로의 실체적 일치가 정통 교리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단일성을 이루고 있다는 실체적 일치를 강조하고 네스토리우스에 대한 지나친 반증은 그리스도의 단성론(單性論)을 출현시켰다. 이 견해는 수도원장인 에우티케스가 내세운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일치가 합치된 후에 인성은 신성에 흡수되어 없어져 버린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거부는 성서에서 말하는 예수의 구원행위를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플라비우스가 종교회의를 소집하여 단성론을 단죄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인 디오스쿠루스는 단성론을 지지하여 449년에 에페소에서 종교회의를 소집하여 에우티케스의 주장을 옹호한 데 대해 교황 레오 1세는 이 집회를 강도 회의라고 규정하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실체적 일치를 주장하였다. 결국 그리스도 문제는 칼체돈 공의회(451년)에서 최종 결정을 보아 극단적인 치릴로의 주장과 네스토리우스의 주장을 반대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은 혼합과 구분이 없이 한 위격 안에서 일치된다는 위격적 일치가 정통 교리로 선포되었다. 칼체돈 공의회 이후로 서방 교회에서는 그리스도논쟁이 일단락되었지만 동방 교회에서는 단성론의 영향이 더욱 확대되었다. 특히 칼체돈 공의회의 결정을 반대하는 단성론이 이집트의 디모테오와 베드로, 그리고 시리아의 베드로와 필록세누스에 의해 전파됨으로써 동로마제국의 혼란이 야기되었다. 여기서 황제(레오, 제논, 아나스타시우스)는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고 제국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교회의 교리논쟁에 개입하여 단성론 경향의 칙서를 반포하였다. 그러나 단성론의 세력이 확대되기 시작하는 동로마 제구에서 쉬티아 수도자들은 칼체돈 공의회의 결정을 다시 강조하여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칼체돈파와 단성론파의 화해를 주선하는 집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황제는 단성론적 입장을 갖고 있어서 결국 ‘삼장 논쟁’(三章論爭)이 발생하였다. 여기서 황제는 교황 비질리오의 동의가 없이 제 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개회하여 ‘삼장 논쟁’을 끝맺었다.

그러나 이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이후에도 그리스도교의 논쟁은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하였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인 세르지오는 단성론파나 정통 교회를 화해시키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명백하게 정의 내리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로 단의론(單意論)을 주창하였다. 그러나 단의론 역시 제 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되면서 칼체돈 공의회의 결정이 다시 한 번 확인을 받았다. (金聖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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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철학연구소 [한] ~敎哲學硏究所

한국철학회 회원 중 정의채 신부, 김규영, 강성위, 진교훈, 황경식 등 신자회원이 중심이 되어 철학연구를 통해 선교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1976년 9월 30일 발족된 연구기관. 가톨릭 신자들이 중심이 되긴 하였으나 개신교 신자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이 연구소의 연구주제는 철학분야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신학, 종교학, 사회학 등 다방면에 걸친 제반문제를 다루고 있다. 연구소의 연구성과는 봄 · 가을에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연구발표회나 강연회를 통해 발표되고, 토론을 거친 후 책으로 발간된다. 서울시 마포구 신수동 1의 1번지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병설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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