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문화 [한] 敎會~文化 [영] Church and Culture [관련] 진보

문화란, 넓은 의미로는 인간이 정신과 육체를 연마하고 발전시키는 데 이용하는 모든 사물을 말한다. 인간은, 지식과 노동으로 전세계를 지배하려고 노력하고, 가정과 시민사회에 있어서 관습과 제도를 발전시킴으로써 사회생활을 보다 인간답게 만들며, 마침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위대한 정신적 경험과 소망을 그 작품 속에 표현하고 전달하며 보존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발전과 더 나아가서 전인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여기서 인간 문화는 필연적으로 역사적 내지 사회적 성격을 보여 주며, 문화라는 말은 사회학적 내지 민족학적(民族學的) 뜻을 내포하게 된다. 사실 사물의 이용, 노동, 자기표현, 종교의 실천과 관습의 성형, 입법과 법 제도의 설립, 학문과 예술의 발전, 미(美)의 발굴 등의 방법이 서로 다른 데에서 서로 다른 생활조건과 서로 다른 조직방법이 생기는 것이다. 이같이 물려받은 제도에서 각 인간 공동체에 고유한 전통이 형성된다.

현대인의 생활조건은 사회적 문화적으로 깊이 변동되었다. 인간, 자연, 사회적 문화적으로 깊이 변동되었다. 인간, 자연, 사회에 관한 학문의 진보, 기술의 발달, 인간 교류 수단의 발달과 조직화가 이런 새 길들을 마련하였다. 오늘날 어느 집단에서나 어느 국가에서나 그 공동체의 문화를 창조하고 꾸미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자각을 가진 사람이 날로 증가되고 있다. 자율정신과 책임감이 전세계에서 점점 자라고 있다. 그것은 인류의 정신적 내지 윤리적 성숙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진리와 정의로써 보다 나은 세계를 건설한다는 우리의 사명을 눈앞에 놓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더욱 뚜렷해진다. 이렇게 우리는 무엇보다도 형제와 역사에 대한 책임수행에 입각해서 인간을 규정지을 새로운 휴머니즘의 증인들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문화 발전에 대한 자기의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보다 높은 희망에 불타면서도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여러 가지 모순이 개재하고 있는 데 대하여 불안해하고 있다. 전통문화와 현대문화의 조화, 고전과 진보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학문의 특수 분야가 급격히 전문화 되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이것들을 종합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하면 인간 예지를 발전시킬 능력을 인간들 사이에 보존할 수 있을까. 이 같은 이율배반 속에서도 인류문화는 인간의 온전한 인격을 올바로 조화시켜 향상시키고, 사람들에게 맡겨진 임무 수행에 도움이 되도록 발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유일한 인류 가족 안에서 형제같이 결합되어 자기 임무를 다하도록 모든 사람이, 특히 그리스도 신자들이 불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천국을 향한 길손들이므로 천상 것을 찾아 맛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보다 인간다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과 협력해야 할 의무의 중요성이 감소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신비는 이 의무를 더욱 열심히 이행하게 하며 이 노력의 완전한 의의를 발견하도록 그들에게 큰 자극과 도움을 제공한다. 이 노력을 통해서 인간문화는 인간 사명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인간의 손이나 기술의 힘으로 땅을 개척하여 결실을 맺고 땅을 인류 가족 전체의 적합한 거처로 만들며 사회 공동체 생활에 의식적으로 참여할 때에, 이로써 인간은 태초에 알려진 땅의 지배와 창조의 완성이란 하느님의 계획을 실천하게 되며 그와 동시에 인간 자신을 향상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헌신적으로 형제들에게 봉사하라는 그리스도의 큰 계명도 지키게 된다. 이리하여 인간정신은 물질의 노예 상태에서 보다 자유롭게 해방되어 보다 쉽게 하느님을 섬기고 관상할 수 있도록 준비된다.

과학과 기술은 그 고유의 방법으로써 사물의 본질을 깊이 파고 들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당하게도 이런 학문의 연구방법을 진리 발전의 최고 법칙이라고 여길 때, 현대의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현상론(現象論)과 불가지론(不可知論)울 조장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문화는 어떤 의미로 보면 복음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기 위한 길을 마련해 줄 수 있으며, 이 길은 세상을 구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신적(神的) 사랑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구원의 메시지와 인간 문화 사이에는 여러 가지 관계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혈육을 취하신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당신 백성에게 당신을 제시할 때 각 시대에 고유한 문화에 적응시켜 말씀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시대의 변천을 따라 여러 환경 속에서 살아오면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모든 백성들에게 널리 선교하며 설명하고, 그것을 더 깊이 연구하여 깨닫고, 여러 계층의 신자공동체 생활 가운데서 더 잘 표현하기 위하여 문화의 소산(所産)을 이용하여 왔다. 교회는 모든 시대의 모든 백성들에게 파견되었으므로 어떠한 민족이나 국가에도 또 어떠한 특수 관습이나 어떠한 습성에도 배타적 관계로 얽매이지 않는다. 교회는 고유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스스로의 보편적 사명을 의식하고 있으므로 여러 가지 문화가 함께 풍요해진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죄에 떨어진 인간의 생활과 문화를 끊임없이 쇄신하고 언제나 죄의 유혹에서 생겨나는 오류와 악을 극복하며 제거한다. 또 민족들의 도덕을 계속 정화시키고 향상시킨다. 또한 각 민족과 각 시대의 정신적 자질과 미를 내적으로 풍요케 하고 강하게 하고 완성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쇄신한다. 교회는 고유의 임무를 수행하는 그것만으로써 인간의 문화를 촉진하고 격려하며 전례행위를 포함한 교회활동으로써 사람의 내적 자유를 길러 준다.

문화는 인간의 이성적 내지 사회적 성격에서 직접 기인되는 것이므로 자체의 발전을 위한 정당한 자유와 함께, 고유의 원리를 따라 자율적으로 활동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문화는 존경을 받아야 마땅하며, 공동선의 한계 내에서 개인의 권리와 개별단체나 일반사회의 권리를 보장하는 불가침의 권리를 향유하게 된다. 교회는 신앙과 이성의 두 가지 구별된 인식계열이 있다는 것과, 교회는 예술과 학문이 제 분야에 있어서 고유한 원리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절대로 금하지 않는다. 따라서 교회는 이런 자유의 정당성을 인정하며 인간 문화와 특히 학문의 자율성을 주장한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이 윤리질서와 공익을 보장하는 한, 자유로이 진리를 탐구하고 자기 의견을 주장하며 발표하고, 어떠한 예술이든지 자유로이 선택하여 마침내 공적 사건들에 대하여 사실대로의 보도를 받을 수 있기를 요구한다. 공권(公權)의 임무는, 문화형태의 성격을 요구 하는 것이 아니고, 모름지기 모든 시민들 가운데, 문화생활을 촉진할 수 있는 수단과 조건을 강구하는 그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문화가 제 목적을 이탈하여 정치권력이나 경제세력에 강제로 예속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현대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무지의 불행에서 해방시킬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인종, 성별, 국적, 종교, 사회적 조건 등의 차별 없이, 인격 존엄성에 부합하는 문화에 대한 만인의 권리가 경제면에서나 정치면에서,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세계 어디서나 인정되고 실현되게 하는 기본적 판단을 내리도록 항구히 노력하는 것은 현대에 특히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가장 부합되는 의무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문화의 혜택이 충분히 제공되어야 한다. 교회는 모든 사람이 문화에 대한 진리를 자각하고 스스로의 문화적 향상을 도모하여 이웃을 도와주어야 할 의무를 자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때로는 사람들의 문화적 향상 의욕을 파괴하는 생활조건과 노동조건도 상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농민과 공장 노동자의 처지가 그러하다. 이들에게 문화적 향상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촉진하는 노동조건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성들은 그 본성에 상응하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도록 되어야 하고, 여성 고유의 필요한 문화생활 참여를 인정하고 장려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이다.

여러 분야의 학문과 예술을 종합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많아지고 복잡해짐과 동시에 그것을 파악하고 조직적으로 통합하는 개인의 능력은 감소되고 있으므로 보편적 인간성은 점차로 소멸되어 간다. 그렇지만 지성, 의지, 양심, 형제애 등의 고상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전체적 인간상을 유지할 임무는 각 사람에게 남아 있다. 이런 가치들은 창조주이신 하느님한테서 오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고 높여진 것이다. 교회는 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나 문화와 그리스도의 조화는 우연한 사정으로, 언제나 아무런 곤란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어려움들은 반드시 신앙생활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신앙을 보다 정확히, 보다 깊이 이해하도록 만드는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과학, 역사학, 철학 등의 새로운 연구와 발전은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그뿐 아니라, 신학자들은 신학의 고유한 방법과 요구를 따르면서도, 언제나 그 시대 사람들에게 교리를 전하기 위하여 보다 적합한 방법을 모색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왜냐하면 신앙의 유산인 진리와 진리전달의 방법은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사목활동에 있어서는 신학원리뿐 아니라 세속학문, 특히 심리학과 사회학의 발견들을 충분히 인정하고 이용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신자들도 보다 순수하고 보다 원숙한 신앙생활로 인도될 것이다.

문학과 예술도 교회 생활을 위해 중요하다. 문학과 예술은 인간 본연의 자질과, 지신과 세계를 이해하고 완성시키는 데에 요구되는 인간의 과제와 체험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며, 역사와 세계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발견하고 노력하며, 역사와 세계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발견하고, 인간의 불행과 기쁨, 필요와 능력을 밝혀 주며, 인간의 보다 나은 운명을 개척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예인(文藝人)들은 스스로의 노력이 교회로부터 인정받고 있음을 느끼고 정당한 자유를 누리며 보다 쉽게 신자단체와 교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교회는 또한 여러 민족과 지방의 특성을 따라 현대 감각에 적응된 새로운 예술형태를 인정해야 하며, 또 그 표현방법이 인간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드높여 주는 것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로써 하느님이 더 잘 드러나고 복음선교도 인간 지성에 더욱 명백해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 시대 사람들과의 밀접한 유대 속에서 살며 그들의 능력 계발로 표현되는 그들의 사고방식과 감각을 완전히 파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대학문과 신발명의 지식을 그리스도교 도덕과 교리에 결부시켜, 종교심과 도덕감이 과학 지식과 함께 보조를 맞추어 진보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신자들이 모든 것을 진정한 그리스도교적 감각으로 평가하고 해석하게 될 것이다.

신학 연구는 계시진리의 깊은 지식을 추구하면서 그 시대와의 교류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여러 학덕이 높은 사람들을 도와 신앙에 관한 이해를 깊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협력은 또한 성직자 양성에도 큰 도움이 된다. 성직자들은 하느님과 인간과 세계에 관한 교회의 교리를 현대인들이 보다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보다 적절히 그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직자나 평신도가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연구와 사색의 정당한 자유와 각기 전문분야에 대한 자기 의견을 겸허하고 용감하게 발표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려야 한다. (⇒) 진보 (韓傭熙)

[참고문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 제2장 / J. 회프너, 그리스도교사회론, 분도출판사, 1979 / 稻垣良典, 현대가톨릭사상, 분도출판사, 1980.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교회와 국가 [한] 敎會~國家 [영] State and Church

교회와 국가는 그 기원과 목적과 구성이 다른 이질적인 단체이다. 그러나 다같이 인간의 현세생활을 작용의 대상으로 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제각기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활동의 장(場)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불가피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래서 일면에서는 그 이질성 내지 독자성을 이유로 교회와 국가, 또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순수한 이론적인 문제가 나오고ㅡ 또 다른 일면에서는 서로 만나게 되는 공동의 장을 이유로 그 불가분적 관련이라는 실제적인 문제가 생긴다. 또한 교회와 국가는 다같이 인간완성을 위해 필요한 단체이며 그 중 어느 하나가 타를 대행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 관련 속에서 권한의 충돌이 생기면 어느 쪽이 우선되어야 하느냐는 권한의 우열이 문제된다.

교회는 원죄 중에 있는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그 한 위격(位格)인 성자(聖子)[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세우신, 즉 하느님이 친히 창립한 단체인데 반하여, 국가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인간이 필요에 따라 만든 단체이다. 또 교회는 인간의 초자연적 구원을 그 목적으로 하는 단체인데 반하여, 국가는 국민의 자연적 구원, 즉 현세적 복리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이다. 따라서 교회의 궁극적 목적지는 내세이고, 국가의 목적지는 현세이다. 또 교회는 하느님을 믿고 그 구원을 바라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이루어진 초국가적 단체인데 반하여, 국가는 국적을 같이하는 국민으로 구성된 현세적 공익단체이며 다른 국가들과 대립하는 관계에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교회와 국가는 이론적으로 그 성질이 다른 독자성을 가진 단체이기 때문에(Leo XIII, Immortale Dei)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문제가 생겼고, 역사적으로는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교회 내지 고위성직자의 중세적인 속권개입(俗權介入)을 못하게 하는 의미에서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이라는 말을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이 말은 처음 교회 안에서 교회의 정통(正統)을 지키기 위해 주장되었으나 뒤에 교회와 국가의 상호 불간섭을 내용으로 하는 근세정치의 한 원칙으로서 국가들이 원용(援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교회와 국가는 현세생활에 있어서 다같이 필요한 단체라고 보는 데는 변함이 없었다.

역사상 교회와 국가는 항상 어떤 모양으로든지 깊은 관련을 맺고 지내 왔다. 때로는 국가가 교회를 박해하고, 때로는 교회가 국가를 제어(制御)하고, 또 때로는 국가가 교회를 정치에 이용하는 등 서로 배격하거나, 영합하거나, 이용하는 관계 속에서 살아왔다. 교회는 창립 당시부터 국가의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고 네로 황제(재위 : 54~68) 때에는 그의 고시법(告示法, jnstitutum neronianum)에 의하여 그리스도교도에 대한 박해가 극심하였다. 그 뒤 3세기 후반에 약 40년 동안 묵인된 시기가 있기는 하였으나(l’ Edit de tolerance de Gallien) 313년의 해금령(解禁伶, l’Edit de Milan)이 내리기까지 교회에 대한 박해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4세기 중엽 콘스탄스 2세(Constance II, Constantinus 대제의 아들)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는 동시에 그 주재자(主宰者)로 자처하였고(Cesaro-Papisme), 중세 프랑크제국의 찰스 대제(Charles I, Charles le Grand, 재위 : 800~814)는 그리스도교회(가톨릭교회)를 국민교회로 삼고 정치적 목적에서 모든 국민과 피정복민의 개종을 강제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교황의 현세적 지위가 강화되어 국가를 제어하는 시대도 있었고(특히 Gregorius 7세 ~ Bonifatius 8세, 1073~1303년), 또 왕권에 밀려 교황이 아비뇽으로 이천(移遷)한 이른바 아비뇽시대(1309~1377년)도 있었다. 또 오늘에 있어서는 특히 공산주의국가 안에서 교회는 모진 박해를 받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국가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당하는 것과 교회가 함부로 세속적인 일에 간섭하는 것을 경계하여 왔으며(Pius XI, Quadragesimo anno 41) 교회의 목적이 인류의 초자연적 구원에 있고 교황은 모든 인류의 정신세계의 지도자임을 강조하여 종교와 정치의 혼동을 막고, 교회와 국가의 구분을 문제삼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현대세계의 사목헌장 제2부 4장 76). 즉 교회는 초자연세계를 지배하고, 국가는 자연세계를 지배하는 단체이며 상호간에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론적 구분은 각자가 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아니하면 충돌을 피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 주장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와 같이 실제에 있어서 교회와 국가는 항상 서로 불가분적으로 관련되었고 그런 관련 속에서 필연적으로 두 권한 사이의 우열을 문제삼게 되었다.

교회와 국가가 제각기 독자성을 가지면서도 불가분적으로 관련되는 이유는, 첫째로 그 구원원대상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즉 교회는 내세적 구원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그 구원사업은 현세에서 이루어져야하므로 현세에 살고 있는 인간을 그 구원대상으로 삼고, 국가는 직접 현세적 구원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현세에 살고 있는 국민을 그 대상으로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구성원인 신자는 하느님의 백성인 동시에 또한 국민이고, 모든 국민은 동시에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그런 관련 속에서 교회의 가르침과 국가의 명령이 상반되는 경우에는 어느 것이 우선하기로 되어 있지 않는 한 충돌을 면치 못한다. 둘째로 교회는 하느님의 계시(啓示)에 따라 선을 행하고 악을 피라하고 가르치고 성사(聖事)를 집행하며 구원의 길을 포교하는데, 국가는 주권자의 의사에 따라 그 국가적 복리를 추구하므로 이론적으로는 각기의 관할사항이 구분되면서도 그 주재자가 다르기 때문에 실제에 있어서 그 관할에 관한 충돌이 생기게 마련이다. 셋째로 윤리 · 도덕과 혼인 등에 관계되는 문제는 교회의 관할에 속하는 동시에 또한 국가의 관할에도 속하게 되어 그 판단과 견해를 달리할 때에는 충돌이 생긴다. 넷째로 각자의 관할에 속하는 목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서로 만나게 되고 또 그 관할자체가 명확하지 아니한 경우도 있다. 다섯째로 교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협조가 필요하고,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도 교회의 협조가 필요하다. 초자연적 복리와 자연적 복리는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야 하며 현세적인 국가질서는 적어도 자연법질서에 위배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관련이 있다. 여섯째로 교회의 목적인 인류구원은 그를 위한 현세의 복음화를 문제 삼기 때문에 교회는 구원과 관계되는 모든 현세적인 문제와 필연적 관련을 맺게 된다.

교회와 국가가 불가분적 관련을 맺고 있다면 그 권한상의 충돌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 경우에 어느 권한이 우선하느냐의 문제가 생긴다. 이에 관하여 교회를 국가의 한 기관으로 보는 국가우위의 견해(Cesaro-Papisme)도 있었고, 교회의 고유한 목적을 인정하면서도 어떤 모양으로 국가가 교회의 영역에 간섭하는 견해(Gallicanisme, Febronianisme, Josephisme 등)도 있었고, 교회와 국가는 각기 독립된 목적과 권한을 가진 단체이므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느 쪽이 타에 종속되거나 지배를 받아서는 아니 된다는 순수 이론적인 견해(독일, 프랑스의 일부학설)도 있었고, 모든 권한은 오로지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국가의 통치권도 그 나라의 주권자에게 위임된 것에 불과하므로 교회는 국가를 감독하고 간섭할 권리가 있다는 견해(Theorie de pouvoir direct)도 있었으나 국가권력의 근원이 자연법에서 나온다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6~1274)의 학설을 토대로 하여 교회와 국가의 권한이 상충되는 예외적 경우에는 그 권한의 성질상 보다 우위에 있으므로 교회는 국가의 잘못(반자연법적인 것)을 지적하고 시정케 할 후견자(後見者)로서의 의무와 권한이 있다는 견해(Theorie de pouvoir indirect)가 교회의 통설적 견해로 되어 왔다. 이 마지막 견해는 토마스 아퀴나스에서 시작하여 15세기에 이르러 교회의 통설로 확립되었으며, 그 뒤 토르케다마(Torquedama, 1420~1498), 벨라르미노(Bellarminus, 1542~1621), 수아레즈(Suarez, 1548~1617) 등 저명한 신학자들에 의하여 지지, 보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회는 진리를 가르칠 의무가 있고, 악을 묵과할 수 없으므로 만약 국가가 악을 행할 때에는 비록 그것이 국가의 권한에 속하는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사랑과 정의로운 방법으로 그 악행을 깨우쳐 주고, 제지 · 시정케 할 의무를 진다. 그 의무를 수행하는 구체적 방법에 있어서 교회적 내지 공동체적인 신앙고백에 따르는 방법과 개인적인 신앙고백에 따르는 방법이 다를 수는 있어도 사랑과 정의를 따라야 한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존재론철학의 견지에서 보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초자연적 의미를 가진 존재이므로 현세적 복리를 추구하는 생활(finis operis)만으로는 만족될 수 없고 초자연적 욕구를 추구하는 생활(finis operantis)에 연결되어야 만족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자연선(自然善, destinee timporelle)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초자연선(destinee spirituelle)에 도달하지 못 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종교와 정치, 또는 교회와 국가는 불가분적 관련하에서 인간의 존재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협동하여야 한다고 본다.

사회학적 견지에서 보더라도 교회의 구성원은 동시에 국가의 구성원이므로 교회와 국가는 서로 분립될 수 없으며 교회가 가르치는 선(善)과 국가가 추구하는 현세적 복리도 서로 충돌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할 것이다. 또 교회와 국가는 다같이 인간완성을 위해 필요한 단체이므로 서로 협동하여야 하는 관계라고 본다.

종교의 자유라는 말은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근대국가는 하나 같이 헌법에 종교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어느 의미에서든지 국가가 종교 내지 신앙을 국법상의 규제사항으로 삼은 것이다. 원래 종교는 교회의 권한에 속하는 것인데도 국법이 이를 규정한 것은 일면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뜻이 있고, 또 다른 일면에서는 어느 특정종교만이 아닌 여러 가지 종교를 다같이 인정 · 보호한다는 뜻이 있다.

신학적으로는 진실한 종교만이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므로 국가는 하느님이 친히 창립한 교회[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종교의 자유만이 선언되어야 하고 그 외의 것은 금지하여야 마땅하다(These). 그래서 비오 9세 교황은 모든 종교를 동일시하는 종교자유의 선언(indifferentisme)은 불가하다고 하였다(Pius IX, Quanta cura, syllabus, 1864). 그러나 모든 국민이 가톨릭 신자가 아닌 경우에 국가가 가톨릭교회만을 보호하고 그 신앙과 포교의 자유를 인정하면 신자 아닌 국민과 이교도들의 반감을 사게 되어 오히려 가톨릭교회의 구원사업이 저해될 사정이 있을 때에는 국가가 모든 종교의 자유를 선언할 수 있다(Hypothese)는 것이 통설로 되어 왔다. 즉 국가가 규정하는 종교의 자유는 모든 종교를 동일시하는 무차별주의의 선언이 아니어야 하고, 또 현세적인 공익만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국가가 선언하는 종교의 자유는 위에서 말한 구체적 사정을 고려한 것(Hypothese)이거나, 신앙의 본질에 입각하여 강제되어서는 아니 되는 신앙심과 신앙행위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라야 한다. 즉 양심의 자유가 자기의 양심을 거슬러 행동하도록 강제되어서는 아니 되는 자유인 것과 같이 종교의 자유는 누구도 신앙을 강제하거나 금지하건, 자기의 신앙에 거슬러 행동하도록 강제되어서는 아니 되는 자유이어야 한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종교자유에 관한 선언> 1, 2). (李太載)

[참고문헌] 한용희, 가톨릭적정치윤리, 분도출판사, 1980 / J. 회프너, 그리스도교사회론, 분도출판사, 1979 / J. 마거탱, 인간과 국가, 가톨릭출판사, 1953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헌장>, <종교자유에 관한 선언>,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 / 사회정의, 가톨릭출판사, 1976.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교회사 [한] 敎會史 [라] historia Ecclesiae [영] history of Church

가톨릭 교회의 역사는 30년경 유태교의 축제일인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베드로를 중심으로 군중 앞에 나아가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면서 구약의 메시아(구세주)에 대한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러한 복음 선포를 경청하여 받아들인 이들이 사도들을 중심으로 사랑과 일치의 공동체를 형성하셨다. 초창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할손례, 정화례, 안식일 등의 유태인의 종교적 의무를 성실하게 준수하는 유태교 종파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특수한 공동체를 이루고 고유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베드로를 대표로 하는 사도단과 그 밑에 야고보를 중심으로 하는 장로단과 스테파노를 지도자로 하는 부제단이 구성 되었다. 사도들의 열성적 선교활동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 밖으로 전파되었다. 이 때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두 그룹이 공존하였는데, 하나는 아직도 엄격한 유대 사상을 보존하면서 실천하던 유대지방의 예루살렘 교회, 갈릴래아 교회, 사마리아 교회, 요르단강 서안 지역의 교회 등 유대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이며, 다른 하나는 시리아의 다마스커스 교회와 안티오키아 교회, 로마 교회 등 이방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로서 이는 개종한 그리스인, 헬레니스트, 기타 비유태인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과격한 유대 민족주의의 등장과 바울로 사도의 선교 활동으로 이방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성장하였고, 70년 예루살렘의 멸망 후에 유대계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쇠미하였다.

2세기에 이르러 12사도들이 모두 사망함으로써 계시의 사도시대가 끝나고 사도들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후시대에 전달하는 사도후시대(100~300)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다시 사도교부시대(100~150), 호교교부시대(150~200), 초대교부시대(200~300)로 구분되고 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교회 관습은 아직도 유태교적 또는 유대계 그리스도교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둘째로 교계제도가 최종적으로 확립되어 주교, 장로(신부), 부제 등의 세 성직계급이 등장하였다. 넷째로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로마제국의 영토 확장에 따라서 널리 전파되어 교세가 급속적으로 성장하였다. 다섯째로 이러한 교세 확장으로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황제들에게 정치적 불안감을 안겨 주어 200년간의 박해를 받았다.

4세기 초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등장으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는 종식되었고, 313년에 밀라노칙령을 통해서 그리스도교는 신앙의 자유를 얻었으며 국가의 보호를 받았다. 이후로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황제들의 호의적 도움을 받으며 세계적 종교로 성장하였다. 마침내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392년에 포고령을 통해서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하였다. 이러한 국교 시대를 맞이하여 그리스도교는 여러 분야에서 발전하였다. 첫째로 수도원이 창설되어 발전하면서 수도생활은 일반 신자들의 영성강화에 도움을 주었다. 둘째로 공의회가 그리스도교의 주요한 조직으로 등장하여 교회의 모든 현안문제를 해결하거나 결정하였다. 셋째로 신앙생활의 활성화와 함께 전례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 밖에 국교 시대에 그리스도교는 정통과 이단 사이의 격렬한 교리 논쟁으로 분열되었다. 당시의 신학적 쟁점은 천주성삼(삼위일체), 그리스도, 인간의 구원에 대한 문제였다. 그러나 교리 논쟁은 일련의 공의회를 통해서 해결되어 최종적으로 정통 가톨릭 교리가 정립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5세기 중반기에 국경지대의 게르만민족이 이동하면서 로마제국을 멸망시키자 그리스도교 자체도 붕괴될 위험에 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본래의 사명인 선교의 열의를 잃지 않고 유럽 세계의 새 주인으로 등장하는 게르만민족을 개종시켰다. 특히 서부 게르만 계통의 프랑크족의 개종은 유럽사에 있어서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 문화권과 게르만민족이 융합하여 새로운 중세 문화를 탄생시켰고,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고유한 민족적 특성을 지니면서 같은 신앙 위에서 일치된 중세기 그리스도교회의 기원이 되었다.

게르만민족의 이동과 프랑크왕국과 교황청의 융합이라는 과도기(450~750)를 거쳐서 시작되는 중세기(750~1300)는 시대적으로 양분될 수 있다.

중세 전기(750~1054)에는 프랑크왕국을 중심으로 서구 그리스도교 제국이 창설되었고 종교적 입장에서는 그리스도교 교세의 확장과 교황령의 탄생 등의 외적 발전이 이룩되었다. 그러나 교회가 국가로부터 물질적 혜택을 받은 반면에 황제의 내정 간섭을 받아 교회의 세속화와 교권의 약화를 초래하였다. 교회와 국가가 밀착된 관계로 프랑크제국의 정치적 붕괴는 교회의 권위와 교황의 권한이 쇠퇴하는 교회의 암흑기(880~1046)를 탄생시켰다. 암흑기 동안에 그리스토교는 처음에(800~962) 로마 귀족의 지배를 받았고, 후에는(962~1046) 독일 신성 로마제국 황제의 교회 내정 간섭으로 자율권을 상실하였다. 아울러 교리 논쟁 이후로 서방 라틴 교회와 동방 비잔틴교회가 각기 다른 노선으로 발전하였다. 8세기에 동방 교회는 성화상 파괴 논쟁을 통해서 서방 교회와 신학적 충돌을 하였고 1054년에 두 교회는 완전히 결별하였다.

중세 후기(1054~1300)에는 클뤼니 수도단체의 개혁과 교황 그레고리오 7세(재위 : 1073~1085)의 교회쇄신으로 교회는 세속권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권을 회복할 뿐 아니라 세속권을 지배하는 시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두 가지 개혁운동은 성직자와 수도자를 각성시켰고 평신도의 영성 강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는 11세기에 시작된 십자군 운동과 청빈운동에서 나타났다. 십자군운동은 기사 수도회의 탄생과 서구의 비잔틴문화와 이슬람문화의 접촉을 가능케 함으로써 학문, 특히 스콜라철학과 신학과 예술의 발달에 이바지하였다. 청빈운동은 교회의 생활 혁신을 불러 일으켰으나 지나친 주장은 이단으로 변질되었으며 이러한 이단운동을 저지하기 위해서 부정적 방법으로 종교재판이 생겨났고 긍정적 입장에서 탁발수도회가 창설되었다. 탁발수도회는 이단자의 개종과 선교활동 이외에 13세기에 설립되기 시작한 대학에서 학술활동을 통해서 문화 발달에 공헌하였다.

14~15세기(1300~1500)에 있어서 유럽의 그리스도교 세계는 중앙집권의 정치체제 또는 지방 분권화의 정치적 상황으로 단일성을 상실하였다. 또한 교회는 일련의 불행한 대사건, 즉 교황청의 아비뇽 천도와 대분규(서구의 대이교)로 인한 교황권의 약화로 말미암아 공의회 우위사상의 흐름 속에서 이단운동이 발생하여 혼란 속에 빠졌다. 더욱이 신학적 자유주의는 신학의 불확실성시대를 초래하였고, 이는 신학자들의 대립과 이에 따른 신학의 쇠퇴를 가져왔다. 교회생활에 있어서도 일부 르네상스 교황들은 문화적 업적을 쌓았지만 그들의 시대적 사명, 즉 교회 쇄신작업에 소홀하였으며 귀족 출신인 고위 성직자들도 그들의 영신적 사명을 망각하였다. 한편 일반 대중의 신심생활은 매우 활발하였으며, 이는 수많은 성당의 건립, 자선활동, 신심서의 보급 확대, 모국어성서의 번역, 새로운 신심의 번창(로사리오 기도, 십자가의 길, 삼종 기도, 성지 순례 및 성인과 성해공경)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이 시대의 신심은 개인주의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고 현세적 두려움을 피하고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는데 치중하여 미신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교회 안에서 비난과 함께 개혁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기에 이르렀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성 아우구스티노 은수사회의 수사 신부이며, 성서학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는 대사 남용에 대해 항의하면서 대사 교리의 재정립을 제의하기 위해 그의 교구장과 동료 교수 · 신부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는 유명한 ‘95개조항의 신학 명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전통신앙의 기저를 뒤흔들어 놓았으며 그리스도교계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분열시키는 종교 개혁시대(1500~1650)를 열었다. 프로테스탄트에서는 독일의 루터 종교 개혁을 위시하여 스위스에서는 츠빙글리의 종교개혁과 칼빈의 종교개혁, 그리고 재세례파의 급진적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영국에서는 국교회가 탄생하였다.

한편 가톨릭도 15세기초부터 교회 쇄신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그 실현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던 중에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자극을 받아 교회 개혁에 박차를 가하였다. 콘스탄스 공의회(1414~1417년)와 바젤 공의회(1413~1491년)에서 교회 쇄신에 대한 문제가 논의되었고, 르네상스 교황들도 산발적으로 교회 개혁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모두 좌절되거나 시행되지 못하였다. 그것은 교황들과 교황청에 이를 시행할 만한 내적 및 종교적 역량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교회 쇄신을 위한 공의회의 개최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졌으나 교황 클레멘스 7세(재위 : 1523~1534)는 공의회 소집을 주저하였다. 그 이유는 교황이 공의회주의, 즉 공의회우위 사상의 재등장을 우려하였고 교황령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527년 5월에 발생한 ‘로마의 함락’ 사건은 교황 바오로 3세(재위 : 1534~1549)에게 교회의 반성과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몇 차례의 연기를 거쳐 1545년 12월에 가톨릭의 교회 쇄신 공의회는 트리엔트에서 개최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는 퇴락된 교회에 대해 반성하면서 신앙과 교리를 재정리하고 교회 규율을 혁신하였다. 공의회 이후에 가톨릭 교회는 교황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성립되면서 교황청을 중심으로 지방 교회와 수도원에서 교회 쇄신에 착수하였다. 트리엔트 개혁 정신은 선교활동에서도 나타났다. 종교개혁 이전까지 ‘유럽의 종교’로 머물러 있었던 가톨릭 교회는 교회 쇄신의 일환으로 이베리아반도의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신대륙 탐험을 통해서 세계 선교에 나섰다.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 등의 수도회와 예수회는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사아에서 선교활동에 종사하였다. 이제 가톨릭 교회는 동서양에 걸쳐 엄연히 존재하는 세계적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17세기 후반기에 이르러 유럽에서 가톨릭교회는 여러 측면에서 도전을 받았다. 첫째로 정치적인 면에서 국가지상주의와 이에 따른 국교회 사상은 특히 프랑스(갈리아주의), 독일(페브로니오사상), 오스트리아(요셉주의)에서 가톨릭 교회를 괴롭혔다. 둘째로 종교적 측면에서 외적으로 경건주의와 엄격주의를 내세우면서 내면으로는 가톨릭 정통 신학을 반대하던 이단운동인 얀세니즘은 교회를 혼란 속에 빠뜨렸다. 셋째로 사상적 측면에서 근세의 새로운 사상으로 등장한 계몽주의는 신학적 합리주의를 탄생시켜 자연종교, 이신론, 종교적 보편주의는 가톨릭신학에 전면 도전하였다.

마침내 19세기에 이르러 계몽주의는 외적으로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켜 가톨릭 교회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일부 유럽지역에서 그 권위를 상실하였고 세속화되었다. 그러나 교회의 세속화는 교회가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교황청과 지방 교회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교황청의 승리를 안겨 주었다. 교회는 반가톨릭적 국가에서 단결되었고 국가지상주의와 국교회 사상에 강력하게 도전하는 운동(교황지상주의)을 일으켰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기에 일어난 가톨릭 자유주의는 교회를 내적 혼란 속에 휩싸이게 하였으나 신앙 오류표(Syllabus)의 반포로 인해 외적으로 평온에 들어갔다. 또한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권에 대한 신조결정으로 분열되어 독일에서는 ‘구가톨릭 교회’가 떨어져 나갔으며 이른바 ‘문화 투쟁’으로 교회는 일시적으로 난관에 봉착하였으나 가톨릭인의 단합으로 결국은 승리하였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상처받은 교황의 권위를 회복하였으며 가난해진 교회는 근로대중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교황 레오 13세(재위 : 1878~1903)는 1891년에 ‘가톨릭 사회주의의 대헌장’ 또는 ‘노동헌장’이라 불리는 칙서 <새로운 사태>를 반포하여 근로 대중을 위한 사회의 개선을 요구하였다. 이 칙서는 널리 유포되기 시작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운동을 어느 정도 저지하고 그리스도교 노동조합을 창설, 발전시키며 가톨릭 정신이 구현되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그리스도교적 정당을 탄생시켰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가톨릭 교회는 새로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우선 성직자 중심의 교회 체제에서 벗어나 평신도의 지위와 사명이 부각되었으며 ‘평신도 신학’이 정립되어 성직자와 평신도가 교회에 대해 함께 책임을 지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20세기 가톨릭 교회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교황 요한 23세(재위 : 1958~1963)가 소집하여 교황 바오로 6세(재위 : 1963~1978)가 마무리 지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이다. 1959년에 교황 요한 23세는 교회를 내적으로 쇄신하고 외적으로는 문호를 개방하여 그리스도교 세계의 일치를 촉진하기 위해 공의회를 소집하고 교회법을 개정할 것을 선포하였다. 이 계획은 3년 동안의 공의회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었으며, 1983년에 새로운 교회법이 선포되어 1984년에 발효하게 되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급변하는 현대 세계에 적응하는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는 동시에 다른 그리스도교와의 일치를 위해서 계속 노력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그리스도교 종교들과도 폭넓은 대화의 길을 모색, 진행하고 있다.

폴란드 출신의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재위 : 1978~ )의 등장은 가톨릭 교회의 획기적 사건이었다. 455년 동안의 전통을 깨뜨리고 이탈리아인이 아닌 교황이 선출되었다는 사실은 현대 가톨릭 교회의 세계화와 더불어 미래 세계를 향한 교회의 획기적 방향을 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金聖泰)

[참고문헌] Louis J. Rogier, Roger Aubert, M. David Knowles(edd.), Christian Centuries: A New History of the Catholic Church, v.5, London, New York 1964 / Thomas Bokenkotter, A Concise History of the Catholic Church(rev.), New York 1979 / Williston Walker, A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revised by Robert T. Handy(3rd ed.), Edinburgh 1976 / Kenneth Scott Latourette, A History of Christianity, 2vols. (rev.), New York, Evanston, San Francisco, London 1975 / Owen Chadwick(ed.), The Pelican History of the Church, 6vols, Harmondsworth 1967-1971 / J.B. Duroselle, E. Jarry(edd.), Histoire de l’Eglise depuis les origines jusqu’a nos jours, 26vols. Paris 1938-1963 / Charles Poulet, Histoire de l’Eglise, 3vols. (rev.), Paris 1959-1962 / H. Daniel-Rops, Histoire de l’Eglise de Christ, 10vols. Paris 1948-1968 / K. Bihlmeyer, H. Tuchle, Kirchengeschichte, 3vols.(18th ed.), Paderborn 1962-1966 / Hubert Jedin(ed.), Handbuch der Kirchengeschichte, 6vols., Freiburg i. Br., Basel, Wine 1962-1971 / Joseph Lortz, Geschichte der Kirche in ideengeschichtlicher Betratung, 2vols.(21th rev.), Munster 1962-1964 / August Franzen, Kleine Kirchengeschichte(3rd ed.), Freiburg i. Br., Bacel, Wien 1970 / 최석우 역, 敎會史, 분도출판사, 1982.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교회분열 [한] 敎會分裂 [관련] 이교1

⇒ 이교1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교회법전 [한] 敎會法典 [라] Codex Juris Canonici [영] Code of Canon Law [관련] 교회법

공번된 가톨릭 교회로서 모든 교회들이 준수해야 할 교회법규들을 담은 책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법전은 1582년 파리에서 발간된 교회법령집 ≪Corpus Juris Canonici≫에서 기원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 교령집 혹은 법규집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140년 그라시아노는 이때까지의 전통적 법령집들을 집대성하여 ≪그라시아노 법령집≫이라 불리는 ≪Concordia discordantium canonum≫을 완성하여 교회법의 근거, 성직 임명, 성직자 추천선거, 소송절차법, 교회재산, 이단, 전례, 성사, 준성사 등의 법령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이 법령집에 몇몇 교령집을 첨부하여 재편찬한 것이 바로 ≪Corpus Juris Canonici≫로서 구로마교회법전이라고도 한다. 그 뒤 트리엔트 공의회(1545~1963년) 중 오늘날과 비슷한 형태의 교황청 행정기구가 구성되어 통일된 교회법 체제를 갖고 각 분야별로 법전이 발전되어 갈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 외에는 주목할 만한 것이 없었다.

1917년에 와서야 구로마교회법전 외의 여러 분야의 교회법 자료들을 수합하여 ≪Codex Juris Canonici≫가 공포되었다. 신로마교회법전이라고 하는 이 법전은 1904년 성 비오 10세가 총칙(universal norms), 교직제에 관한 법(personal law), 교회사물에 관한 법(law of things), 형벌법(penal law), 교회재판소송법(procedural law) 의 내용으로 입안하였던 것으로 총 2,414개 조항이 들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와 그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에 따라 법전의 적지 않은 부분이 개편되었고, 공의회정신에 따른 새로운 법전이 1983년 1월 25일에 공포되어 같은 해 11월 27일부터 발효되었다. (⇒) 교회법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