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이 [한] 李瓊伊

이경이(1813~1840).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동정녀(童貞女). 세례명 아가다. 시골의 교우가정에서 태어났다. 혼기에 이르러 어떤 내시에게 속아 결혼했으나 곧 집으로 돌아왔고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에게 청하여 그 결혼이 무효임을 인정받았다. 그 뒤 부친을 여의고 생계가 막연해지자 모친을 외삼촌에게 맡기고 상경, 한영이(韓榮伊) · 권진이(權珍伊) 모녀의 집에 기거하며 두 모녀와 함께 열심히 수계했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7월 17일 한 배교자의 밀고로 한영이 · 권진이 모녀와 함께 체포되었다. 평소 이경이의 아름다움을 탐내던 밀고자 김순성(金順性, 일명 여상)의 간교로 한영이만 포청으로 끌려가고 이경이는 권진이와 사관청을 탈출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숨어 있던 교우의 집에서 다시 체포되어 1840년 1월 31일 당고개[堂峴]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마침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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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언 [한] 李景彦

이경언(1790∼1827). 순교자. 세례명 바오로.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종교교육을 받아 참된 신앙으로 일생을 살았다. 일찍이 아버지[李潤夏]를 여읜 데다가, 형 이경도(李景陶)와 누이 이순이(李順伊)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였으므로, 늙은 어머니와 홀로 된 형수와 함께 가난하게 살아갔으나 생계를 지탱할 수 없어 1815년에 어머니와 형수는 연풍(延豊)으로 낙향하고, 그는 성서를 필사하고 성화를 그려서 교우들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해 나갔다. 이런 가난 속에서도 북경으로 가는 밀사(密使)들을 위해 여비를 마련하는 일에 가장 많은 힘을 썼다. 그리고 교우들을 가르치고 외교인들을 귀화시키는 일에도 정성을 다해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1827년 전라도에 박해가 일어나자 그가 필사한 교리책과 상본이 고발되어 전라감영(全羅監營)에서 파견한 포졸들에 의해 1827년 4월 21일 서울에서 체포되었다. 4월 28일 전라감영으로 압송된 그는 무수한 고문을 당한 끝에 평소에 그토록 원했던 참수치명을 못한 한을 남기고 6월 27일(음 윤 5월 4일) 그곳에서 옥사하였다. 그가 옥중생활에서 틈틈이 쓴 옥중수기(獄中手記)가 1965년에 발견되어 교회사(敎會史)에 귀중한 자료가 되었으며, 명도회(明道會)의 회원이었던 그는 명도회 회장과 회원들에게 보내는 옥중 편지도 남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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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도 [한] 李景陶

이경도(1780∼1801). 순교자. 세례명 가롤로. 이수광(李晬光)의 후예. 권철신(權哲身)의 생질이 되며, 이순이(李順伊, 루갈다)의 오빠가 된다. 1791년 집안이 함께 입교하였다. 경녕군(敬寧君)이라는 칭호를 지닌 반열(班列)에 속한 집안이면서도 신앙이 매우 두터워, 1793년 그의 아버지 이윤하(李潤夏)의 상을 당하였을 때, 당시 상가(喪家)에서 관행(慣行)되는 일체의 미신행위를 금하였으므로 많은 비난과 공격을 받았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소신껏 신앙을 지켰다. 그 뒤 그는 세속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 곱추 행세를 하여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1801년 9월 11일(음)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나 어린 나이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켜 그해 12월 26일(음) 22세의 젊은 나이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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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한] 李甲秀

이갑수(1924∼2004). 주교. 제2대 부산(釜山) 교구장. 세례명 가브리엘. 본관은 영천(永川). 경북 대구에서 출생. 1938년 경북 영천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동성상업학교 을조(東星商業學校乙組)[소신학교]에 입학, 동성상업학교 을조를 졸업하고 1944년 천주공교신학교(天主公敎神學校)[성신대학의 前身, 현 가톨릭대학]에 입학했고, 1950년 졸업과 함께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후 부산 범일동본당 보좌 신부로 2년 동안 사목하다가 1952년 미국으로 유학하여 1954년 마케트(Marquette)대학을 졸업하고 포담(Fordham) 대학원에 진학, 1961년 동(同)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귀국하여 대구교구장 비서 겸 학생지도 신부로 활동하는 한편 대구 효성여대 · 경북대 등에서 사회학을 강의하였다. 1966년 대구 선목중 · 고등학교장을 거쳐 1971년 부산교구 보좌신부로 임명되어 이해 8월 24일 주교로 성성(成聖)되었고, 1973년 마산 교구장 최재선(崔再善) 주교가 교구장직을 사임하자 마산교구 관리주교가 되었다가 이어 1975년 교구장직을 계승하였다.

현재 부산교구장으로서 부산교구의 사목과 행정을 총괄하고 있으며 그 밖에 주교회의 사회주교 위원회의 위원과 평신도 사도직 전국단체인 가톨릭 중 · 고등학교장회의 담당주교로 활동하고 있다.

[참고 : 이갑수 주교는 2004년 12월 21일 80세를 일기로 노환으로 선종하였다. 현재 부산교구 제3대 교구장은 1999년 착좌한 정명조 아우구스티노 주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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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난 [한] 李干蘭

이간난(1814∼1846).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아가다. 서울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8세에 결혼하여 3년만에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왔고 이 때 외할머니의 가르침과 권면으로 입교,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성세성사를 받았다. 1846년 5월 김대건(金大建) 신부가 체포되자 포졸들의 수색을 피해 현석문(玄錫文) 회장이 마련한 집에 피신해 있던 중 7월 11일 현석문, 정철염(鄭鐵艶), 김임이(金任伊), 우술임(禹述任) 등과 함께 체포되었고, 9월 20일 포청에서 매를 맞아 거의 반죽음이 된 몸으로 6명의 교우들과 함께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시복(諡福)되었고, 이어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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