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천사
호세아서 [한] ∼書 [라] Prophetia Osee [영] Book of Osee
구약성서 중의 예언서의 하나. 예언자 호세아가 쓴 것이다. ① 인물 : 히브리어인 호세아(hoshea)는 “야훼가 구하셨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호세아는 구약 소예언자 중의 첫 번째 사람으로 베리(Beeri)의 아들이다. 그는 오지아스(기원전 789∼740) · 요아탐(기원전 740∼736) · 아카즈(기원전 736∼728) · 에제키아스의 유다의 여러 왕 및 예로보암 2세(기원전 783∼743)의 이스라엘 왕이 통치했던 시대에 예언하였다. 그의 출생지, 생애 등에 대해서는 호세아서를 통한 것 이외는 알 길이 없다. 디블라임의 딸인 고멜과 결혼하여 3명의 자식을 낳았다(호세아서 1:2-9). 그렇지만 이 결혼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 상징적인 것인지는 현재까지도 논의의 대상이 되어 있다. ② 특징 : 이 책의 주제는 사랑과 망은(忘恩)을 대조시키고 있다. 야훼는 그 백성들이 잘못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한다. 야훼의 노여움은 사랑하는 아버지의 분노이며, 전의 잘못을 뉘우친 자식들이 자기의 팔 안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③ 내용 : 이 책의 내용은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가 있다. 제1부(1-3장)는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충실과, 부정한 부인과의 결혼 그리고 여기서 태어나는 자녀의 이름을 가지고 표시하여, 이스라엘이 하느님한테 버림을 받고 그 백성으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알림과 동시에, 그들이 언젠가는 하느님한테 돌아와 위대한 백성이 된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어 호세아는 간음한 부인을 사가지고 그 여자를 가두어 고독하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것이야 말로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많은 날 동안 왕이 없고 주가 없고 희생 없이 … 지낸다”는 것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자녀들은 그 후에 돌아와서 그 하느님과 주와 그 왕인 다윗을 찾게 된다. 그것은 물론 ‘끝나는 날’ 즉 메시아의 시대에 일어나게 되는 사건이다(이상 3:4 · 5 참조). 제2부(4-14장)에서 호세아는 온갖 죄악 특히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들을 타일렀으며 그 다음으로 지배계급인 왕이나 사제들의 악한 행실을 꾸짖었고, 아시리아나 이집트 등과 동맹을 맺는 것은 율법의 정신을 배반하는 행위라고 비판했으며 야훼를 버린 벌로 아시리아로 옮겨지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 주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기 때문에 연민의 정을 버리지 못한다. “나의 마음은 나의 안 속에서 움직이며 나의 연민의 정은 온통 불타오르고 있다”(11:8)고 말하고, 백성들에게 깊이 뉘우칠 것을 권하며, 메시아 시대가 되면 완전히 국가가 부흥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예언하고 있다. ④ 신학 : 호세아가 유다 왕국에 대해서 종종 언급하고 있으며 또한 구세주의 약속을 하고 있는 일(2:1-3 · 16-25, 3:1-5:15부터 6:6까지, 11:10 · 11, 12:10 · 11 그리고 14:2-9)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서 각각 의견이 다르다. 유다 왕국에 대한 언급은 예를 들면 두 왕국이 유사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점, 이스라엘 왕국이 장차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에서 필요하게 되었다는 등, 몇 가지 부분(1:7, 4:15, 5:56, 6:11, 8:14, 10:11, 12:13)에서는 유태인의 수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구세주의 예언은 침해가 아니라 심판의 경고에 대한 보충이며, 호세아의 하느님께 대한 관념에서 당연히 요구된 것이며, 추방후의 메시아의 대망(待望)에 특유한 여러 특질을 갖지 않고 사상상 문체상의 여러 점에 있어서 진정한 부분과 밀접하게 관련하고 있다. 단지 후대에 다소 수정한 흔적이 있으며 또한 약간의 주석(註釋)이 본문 중에 섞여 들어간 점 등으로 보아 아무래도 장(章)과 구절을 약간 바꾸어 놓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호세아서는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에 영향을 주었으며 신약성서에서 곧잘 인용되고 있다(마태 2:15, 9:13, 12:7 및 루가 23:30, 9:25 · 26, 1고린 15:55, 1베드 2:10, 묵시 6:16).
[참고문헌] Knabenbauer 및 M. Hagen. Comment. in prophetas minores I, Paris 1924 / B. Kutal, Olmutz 1929 / G. Ridderbos, Kampen, 1928 / L.E. Binnus, London 1932 / N. Peters, Osee und die Geschichte, 1924 / F. Praetorius. Die Gedichte des H., 1926 / A. Allwohn, Die E The des Prophelen H. in Psychoanalyt. Beleuchtung, 1926 / J. Lindblom, H. litrar, untersucht(Abo 1928) / J. Rieger, Die Bedeutung der Geschichte fur die Verkundigung des Amos u.H., 1929 / J. Kroeker, Die Propheten 1, 1932.
호산나 [원] Hosanna
‘구원하소서’를 뜻하는 히브리에서 유래한 말이며 기쁨과 승리를 표현하는 환호성.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승리를 주신 하느님께 ‘야훼여, 호산나’(시편 118:25) “야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시편 118:26)라고 부르짖으며 찬양하였다. 이 구절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등의 축일에 봉송하였는데 ‘호산나’를 되풀이 하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백성들은 위의 시편 구절(118:25-26)을 되풀이하면서 나뭇가지를 길에 깔고 예수님을 환영하였다(마르 11:10). 이를 본받아 오늘날 성지주일의 전례 가운데 성지의 분배와 장엄행렬을 할 때 호산나(마르 11:10)를 노래하거나 봉송하며 미사성제에서 또한 봉송되고 있다
호남교회사연구소 [한] 湖南敎會史硏究所 [영] Institute for Research of Honam Church History
1984년 5월 21일 창설. 전주시 진북동 1026의 2에 주소를 두고 있다. 1973년부터 천주가사 수집과 연구활동을 하며 교회사 사료 발굴과 정리에 힘쓰던 김진소(金眞召, 안드레아) 신부에 의해 시작된 연구소이다.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지방 교회사 특히 전라도 지방의 교회사 정리와 연구를 목적으로 토착화 연구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전라도 지방 교회사의 자료 보존과 교구사 간행 및 의식교육 사업에 주력한다. 이 연구소는 한국교회사연구소와 긴밀한 유대를 가지면서 지방 사학가들의 공동연구와 협조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호교학 [영] apologetics [한] 護敎學 [라] apologetica
종교의 가르침을 설명하고, 증명하기 위한 학문. 특히 그리스도교, 그 중에서도 로마 가톨릭교의 수용(受容)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반론과 의문에 대하여, 이성에 입각해서 교리에 그릇됨이 없음을 밝히는 것이다. 호교학은 기초신학으로도 불린다. 그리스도교의 계시가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기적적인 현상이나 편견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에 근거하여 증명한다. 호교학은 신학의 한 분과이지만, 신학이 하느님의 계시를 교리의 내용으로 연구하는 것이라면, 호교학은 그리스도교의 권위를 확인하기 위해 그 증거의 참다운 가치를 외부에서 고찰하는 것이다.
호교학의 목적은 우리를 변신론(辯神論)으로부터 신학으로 이끌어 가는 데 있다. 즉 하느님에 관한 이성의 가르침에서 출발하여 교회에 의해 대변되는 신앙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역사적인 증거는 예수가 기적을 행하고, 그의 말과 행동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준다. 복음서야말로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하느님의 사업이 무엇인가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중세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적수들이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원칙에 통하고 있음을 알고, 서로 명백한 원칙들로부터 출발하여 성실성을 가지고 반대자들에게 답변하였다. 아퀴나스는 다른 종교보다 그리스도교가 왜 우월한가에 대해서 토론하였다. 그것은 그리스도교만이 현세의 즐거움 대신 신자들에게 정신적 은총과 참된 고난을 가져온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는 불가사의한 사실과 완전히 증명되는 기적들을 통해서 그리스도교의 계시가 진실함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현대적인 의미의 호교학은 중세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문예부흥기에 이르러 토론을 즐기는 추세에 따라 호교학의 싹이 터 갔다. 16세기 말엽에 나타난 교회에 관한 논문과 17세기초의 로마 가톨릭 교회는 진정한 교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교회라는 징표로부터 논거(論據)를 발전시키고, 교회는 논쟁에 판정을 내리는 권리와 권위를 확립하였다.
19세기는 초자연적인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서야말로 신빙성을 가진 역사적 문서라는 것이 강조되고, 호교학은 19세기 중엽에 비로소 그 형태를 갖추게 된다. 19세기 후반의 호교학은 복음서 특히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성에 대한 증거, 그리고 역사적인 계시가 강조되었다. 그리스도의 성성은 때로는 구약성서에서 인용되었다.
현대의 호교학은 자연과 초자연의 계시에 관한 원칙의 존재론을 구성하려고 시도한다. 칼 라너(Karl Rahner) 같은 신학자들은 인간의 개방성(開放性)을 발전시키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존재에 대해서 정신적이기 때문이다. 현대 호교학은, 사람이 현실적인 질서 속에 존재하며 호교적 노력은 한 카테고리와 형태가 그 질서로부터 일어나는데 거기에 접근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든 존재에 대해서 개방적이요, 늘 변하기 쉽고 일시적인 현세적 질서 속에 존재하지만, 전능하신 하느님은 끊임없이 그리고 영원한 안정성을 거기에 주기 때문이다.
호교학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쳐야 되는 일반적 과정은 종교문제에 가로놓인 철학적 주요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데 있다. 철학, 즉 이성적 작용으로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지성을 갖춘 자유로운 피조물이므로 여기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의무가 우리의 이성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종교는 자연적 종교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교회는 초자연적 종교를 인간에게 가르쳐야 되는 의무를 하느님으로부터 위임받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초자연적 종교인 그리스도교로 우리를 인도해야 된다. 더구나 우리를 논리적으로 끌어가기 위해서, 교회는 오직 이성만을 활용해야 된다. 그렇지 않고 교회가 권위를 입증하는 데 권위만을 가지고 한다면 순환론법(循環論法)에 빠져들고 만다.
이렇듯 변신론에서 신학으로, 이성에서 신앙으로, 자연종교로부터 계시종교로의 도정(道程)은 세 단계를 거쳐야 된다.
① 하느님의 계시의 증명 : 호교학은 이성에 호소하여 하느님의 적극적인 초자연적 간섭이 없으면 자연적 종교의 의무마저 충실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래서 계시종교의 도덕적 필요성을 깨달아, 하느님이 종교를 인간에게 알게 하는 징표를 주셨으므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그 계시를 살피게 되는 것이다. 이 제1단계는 하느님의 계시의 증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에 대한 긍정과 무신론의 부정은 호교학 연구의 첫 걸음이다. 왜냐하면 일정한 신관(神觀) 없이는 종교에 진지한 관심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② 그리스도교의 증명 : 계시종교의 연구가 시작되면 곧 그리스도교의 연구가 된다. 다른 종교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초월성(超越性)은 동시에 그 연구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고 진리성의 징표로서 호교학의 제2단계로 진입한다. 즉 그리스도교와 그 창시자의 연구는 그리스도교의 현황으로부터 출발하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든, 아니면 시발점에서 출발하여 현대에 이르든, 이 연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이며, 그 종교는 신적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의 전기(傳記)인 복음서를 사서(史書) 중의 양서(良書)라는 관념으로 보아야 된다.
③ 교회론 :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뿐 아니라, 교회에 의해 그의 구원사업을 이어가도록 한 사실을 알려 준다.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성 베드로 이래 교황의 교도권 아래 연면히 그 권위를 계승하여 왔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칼빈주의, 독일에서는 루터계의 프로테스탄티즘이 그리스도교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스스로 그리스도 정교회(正敎會)라고 하는 동방교회도 그리스도교의 정통성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가톨릭의 호교학은 그리스도교의 창립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그리스도가 교황이라는 자리를 만들게 하여 가톨릭 교회로 하여금,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권위가 계승되어 온 사실을 확인한다. 즉 로마 교회의 일관된 사도전래성(使徒傳來性)을 인식케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New Catholic Encyclopedia, Washington 1966 / John A. Hardon, S.J., Modern Catholic Dictionary, New York 1979 / 日本カトリツク大辭典, 19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