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직접 대상으로 하는 덕행, 즉 신덕(信德, 믿음의 덕), 망덕(望德, 희망의 덕), 애덕(愛德, 사랑의 덕)을 말한다. (⇒) 향주덕, 신덕, 망덕, 애덕
향주덕 [한] 向主德 [관련] 대신덕
인간과의 관계에서 평가되는 윤리덕(倫理德)과 구별되는 것으로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얻는 덕, 곧 신덕(信德), 망덕(望德), 애덕(愛德)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 대신덕
향 [한] 香 [라] incensum [영] incense, frankincense
향을 태우는 관습은 근동을 포함한 동양의 관습으로 이스라엘 역사의 초기에는 없었다. 후기에 와서 가나안 지방의 관습을 도입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최초의 기록은 출애굽기(30:9)에 나오며, 이것이 이스라엘의 종교의식(宗敎儀式)에 도입된 것은, 기도와 희생을 가장 자연적이고 아름답게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위기(16:20)에 따르면, 향은 유향(乳香, frankincense)을 비롯한 각종 향료에다 방부제용 소금을 섞어 잘 빻은 가루로 만들어서 사용하였다. 의식에 사용한 향은 번제물(燔祭物), 희생제물의 지방(脂肪), 곡식, 상징적 제물 등과 함께 태워지거나 향 하나만을 태우기도 하였다. 향만을 피우는 경우에는 특별히 만들어진 분향단(焚香壇)(출애 30:1-10), 황금제단(민수 4:11), 향로 속에서 태워진다. 신약에서는 루가복음(1:8-12)에서만 분향에 대한 언급이 보인다. 그 뒤엔 그리스도 교회에서 향이 별로 쓰인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이교도들이 많이 사용하였다. 황제들은 자신에게 분향된 사실로 인하여 신성(神性)을 얻었다고 생각했고, 박해시대에는 많은 신자들이 황제의 동상 앞에 분향하여 충성심을 보이도록 강요당하였다. 당시의 교우들은 이러한 분향을 배교행위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4세기 이후 교회의 전례에서 서서히 향이 사용되기 시작하여 먼저 장례의식에 향이 사용되다가 8세기경에는 제단, 성직자, 신앙심의 축성과 축복의 상징으로, 13세기에 교황 인노첸시오 3세는 구마식(驅魔式)에서 향을 사용하였다. 17, 18세기에 오자 향은 자연향에서 화학적으로 제조한 것으로 바뀌었다.
행주본당 [한] 幸州本堂
1910년 경기도 고양군 지도면 행주외리(京畿道 高陽郡 知道面 幸州外里)에 창설되어 1957년 폐쇄된 서울교구 소속본당. 주보는 성모 몽소승천. 중림동본당 공소로 출발, 1905년 성당이 건축되고 김원영(金元永,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함으로써 본당으로 창설되었다. 1922년 성당이 증축되면서 사제관이 신축되었고, 경기도의 고양, 파주(坡州), 양주(楊洲), 김포(金浦), 강화(江華) 등 5개 군(郡)을 관할하였다. 일제 말기 교회에 대한 탄압으로 인해 신부수가 부족해지자 한 때 공소로 격하되기도 했으나 1947년 김성환(金成煥, 빅토리노) 신부가 부임, 다시 본당으로 재출발하였다. 그 후 도시화 현상에 따라 행주본당 신자가 점차 감소하자 1957년 당시 주임이던 임충신(林忠信, 마티아) 신부가 본당을 수색(水色)으로 이전, 행주본당은 폐쇄되었다. 역대 주임신부 명단은 다음과 같다. 1대(1905∼1917년) 김원영, 2대(1917∼1918년) 김휘중(金輝重, 요셉), 3대(1918∼1925년) 이순성(李順成, 안드레아), 4대(1925∼1927년) 황정수(黃貞秀, 요셉), 5대(1927∼1930년) 박우철(朴遇哲, 바오로), 6대(1930∼1938년) 윤의병(尹義炳, 바오로), 7대(1938∼1945년) 김성환, 9대(1953∼1957년) 임충신.
[참고 : 행주본당은 2004년 6월 2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새로 신설된 의정부교구 소속 본당으로 변경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