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이 미사경문의 특정부분을 집전사제와 함께 교송하면서 드리는 미사. (⇒) 대화미사
합마당본당 [한] 蛤蟆塘本堂
1930년 만주 간도성 연길현 북합마당 대방자(滿洲 間島省 延吉縣 北蛤蟆塘 大房子)에 창설되어 1946년 폐쇄된 연길교수 소속 본당. 주보는 성모영보(聖母領報). 합마당의 대방자는 1900년대 초 조선 이주민들이 개척한 마을로 1927년 공소가 개설되었고 1930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쾨스틀러(B. Kostler, 高)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 1931년 벽돌의 양옥 성당을 신축하고 해성(海星)학교를 개설시키는 한편 1934년 관할 공소 중 왕청(汪淸)공소를 준본당으로 승격시켰다. 산림지역에 위치한 본당이라 비약적인 발전은 없었으나 꾸준히 발전하여 창설 당시 수십명의 교우수에 불과하던 교세가 1936년에는 공소 5개소에 교우수 590명의 교세로 발전했고 해성학교도 교원 3명에 104명의 학생을 수용하는 학교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1946년 만주를 점령한 소련군에게 성당을 비롯한 모든 교회재산을 몰수당함으로써 본당은 폐쇄되어 지금까지 침묵의 본당으로 남아 있다.
합동미사 [한] 合同∼ [관련] 공동집전
① 생미사나 연미사를 드릴 때 두 사람 이상을 위해 미사를 바칠 경우 이를 합동미사라 하고 보통 추석이나 구정에 바치는 합동위령미사가 여기에 속한다. ② 우리나라에서는 두 사람 이상의 사제가 집전하는 미사를 합동미사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는 공동집전이라 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 공동집전
합덕본당 [한] 合德本堂
충남 당진군 합덕읍에 위치한 대전교구 소속본당. 주보는 성가정(聖家庭). 이 본당의 전신은 양촌성당(충남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인데, 1890년에 설립, 초대 퀴를리에(Curlier, 南一良) 신부가 부임, 1899년 현 위치로 이전하면서 합덕본당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7대 페랭(Perrin, 白文弼) 신부가 6.25전쟁 때 납치당하는 비극이 있었다. 페랭 신부 재임시인 1926년 예산본당, 1935년 서산본당, 1938년 당진본당이 신축 준공되었다. 8대 박노열(朴魯烈, 바오로) 신부 재임시(1950∼1961년)에 신합덕본당이 분리 신설됨에 따라 이 본당의 명칭은 합덕본당에서 구합덕본당으로 변경되었다. 1980년 파리 외방전교회의 블랑(Jean Blanc, 白) 신부가 16대 주임신부로 부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자수 2,300명(1984년 현재), 공소수는 12개소이다.
합덕지방은 일찍부터 천주교의 사적지로서 빛났었으며, 1866년의 병인박해 때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를 비롯한 여러 신부들이 체포되기 전에 피신한 곳이 현 구합덕본당의 신리공소(新里公所)로서 당시의 유물(遺物)이 보존되어 오고 있다.
함흥본당 [한] 咸興本堂
1928년 함경남도 함흥시(咸鏡南道 咸興市)에 창설되어 1949년 폐쇄된 함흥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 보니파시오. 노이기르크(P. Neugirg, 兪)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 성당을 건축하고 교세 신장에 중점을 두어 사목하였다. 1931년 영흥(永興)본당을 분할 독립시켰고, 2대 주임 코흘러(E. Kohler, 景) 신부 재임 때인 1940년 포교 성 베네딕토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어 동(同)회의 수녀들이 성심(聖心)의원을 개원하였다. 그러나 8.15 광복 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수립되어 교회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1949년 5월 9일 교구장 사우어(B. Sauer, 辛) 주교, 덕원 베네딕토수도원 원장 로트(L. Roth, 洪) 신부, 부원장 실라이허(A. Schleiher, 安) 신부, 덕원신학교 교수 클링사이즈(R. Klingseis, 吉) 신부 등이 체포됨으로써 본당은 폐쇄되고 결국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폐쇄되기 직전까지 함흥본당 관내에는 5개의 공소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