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z, Junior Emmanuel(1574~1659).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중국명 양마락(陽瑪諾). 1610년(明 萬曆 38년) 중국에 입국. 남경(南京)에서 전교하던 중 1611년 동림당(東林黨)의 정쟁(政爭)이 발발하자 마카오로 피신하였고 1621년부터는 북경(北京)에서 중국 주재 예수회 부책임자로 3년을 일하였다. 그 후 남경 · 송강(松江) · 상해(上海) · 항주(杭州) 등지에서 전교했으며 영파(寧波)를 개교(開敎)시켰다. 1634년 남창(南昌), 1638년 복주(福州)에서 전교하였고 그 후 다시 박해를 피해 마카오로 피신하였다가 1648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연평(延平)에서 전교와 저술활동에 전념하였다. 1659년 3월 1일 항주에서 사망, 항주성 밖의 대방정(大方井)에 안장되었다. 저서로는 ≪千問略≫(1614), ≪聖經直解≫(北京1636), ≪天主聖敎十誡直詮≫(北京1642), ≪代論≫(北京1622), ≪聖若瑟行實≫(1674), ≪經世金書≫(2권, 北京 1640), ≪天學擧要≫, ≪袖珍日課≫ 등이 있다.
디모테오 [라] Timotheus
Timotheus(?~97?). 성인. 축일 1월 26일. 순교자. 로마의 속주(屬州)인 리카오니아(Lycaonia)의 리스트라(Lystra)에서 그리스인 부친과 유태인 모친 사이에 태어났다. 성 바울로의 제1차 로마 식민지 전도여행 때 디모테오와 모친, 조모가 그리스도교에 귀의(歸依)한 것으로 보인다(사도 14:7-9, 2디모 1:5). 기원후 50년 성 바울로의 제2차 여행 때 디모테오는 바울로의 전도여행을 충실하고도 열심히 도운 수반자로 시종하였다. 디모테오는 데살로니카서(書), 고린도후서, 필레몬서의 공동 집필자이다. 히브리서 13장 23절에는 그가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성 바울로는 그를 에페소에 있는 어느 그리스도교 학습소 선생으로 파견(1디모 1:3), 그러나 후에 성 바울로가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디모테오를 급히 로마로 소환하였다.
성 요한 다마셰노(Johannes Damadcenus, 645?~750?)에 의하면, 에페소 주교 디모테오는 성모 마리아의 임종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로마황제 네르바 치세 때인 기원후 97년에 순교했다고 한다. 356년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가 그의 유골을 콘스탄티노플로 이장하였다. 디모테오는 비교적 소심하면서도(1고린 16:11, 2디모 1:7-8), 심성이 자애로웠다(2디모 1:4). 그는 병약하고(1디모 5:23), 성 바울로의 마지막 피체(被逮) 때(63년경) 아직 젊었었다(2디모 2:22). 성 바울로는 그에게 보내는 2통의 사목서간(디모테오서)에서 그를 사랑하는 아들이라 부르며 그를 염려하였고(1고린 4:17), 충실한 모방자(필립 2:19-20), 협력자(로마 16:21), 절친한 친구(2디모 1:4)라고 칭찬하고 있다.
디디모 [라] Didymus
Didymus(313?~398?). 신학자. 4세 때 실명(失明), 각고노력 끝에 성서 · 신학 대가가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오(Athanasius)에 의해 그곳의 교리문답학교 교장에 취임, 수십년간 재직하였다. 삼위일체론에 대해서는 엄정한 정통파였으나, 영혼의 선재(先在)와 만물의 부흥에 관해 오리제네스(Origenes)설을 채택했기 때문에,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오리제네스주의자로 비난당하였으며, 따라서 다수의 저서가 소실되었다. 잔존저서 중 가장 유명한 책은 ≪삼위일체론≫(De Trinitate), ≪성령론≫(De spiritu Sancto), ≪마니교도 반박론≫(Contra Manichaeos) 등이다. 그의 인격과 박학에는 교부(敎父) 예로니모 (Hieronymus)도 경복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