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교 [한] 裂敎 [라] haeresis [영] heresy

이단을 일컫는 말. 19세기 이래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특히 개신교(改新敎)의 여러 종파를 가리켜 열교라 하였다. 열교는 전적으로 자신을 하느님께 맡기고 그분의 가르침에 순명해야 할 믿음의 기본자세를 떠나, 자신의 이해관계나 지식의 합리성을 기준으로 계시 진리에 대한 비판과 취사선택을 하는 것으로, 절대주이신 인류의 구세주께 대한 불충실함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열교인의 면책(免責) 가능성에 대하여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회의적으로 대답하며 은총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자를 저버리지 않는다고 하였다(Denz. 3013). 한 학자는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기고 생활하는 가톨릭 교인으로서 결코 신앙을 바꿔야 하겠다는 양심의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B. Haring, Das Gesetz Christi II, 84)고 하였다.

따라서 열교의 가능성은 인간의 오만과 아집, 그리고 감정이 작용하여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한 지방이나 부족 전체가 공동체에서 이탈하게 되는 수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개인의 양심에 관한 문제보다는 공동의식, 관습, 일체감 등이 작용하여 분열의 고통을 보게 된다. 과거 16세기의 소위 종교개혁이 그 예이며 현대에 와서는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희생으로 교회가 분립의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런 경우에는 그 탓을 누구에게 돌리기보다는 인간의 허약성과 교회 공동체의 일체감 부족에서 생겨나게 된 공동죄악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와 같은 정신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표시되었으며 서로 용서를 청하는 아름다움과 교회 재일치를 다짐하는 노력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런 경우 지체(肢體)의 고통을 전체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1고린 12:26) 서로 판단하기보다는 공통점을 찾으며 역사와 시대적 상혼을 인내로써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일치교령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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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교원위문답 [한] 裂敎原委問答

천주교가 정교(正敎)이고, 개신교가 열교(裂敎)임을 문답식(問答式)으로 설명한 책. 인쇄된 한문본(漢文本)과 필사(筆寫)된 한글본을 볼 수 있는데, 한문본은 1899년 홍콩(香港) 나자렛(Nazareth) 출판사에서 간행된 것이지만 이 책이 초판(初版)인지는 알 수 없고, 저자도 알 수 없다. 또한 필사된 한글본의 필자와 필사 연대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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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교조당 [한] 裂敎阻擋 [관련] 혼인장애

금지장애 중의 하나. 가톨릭 신자가 비가톨릭 그리스도교 신자와 혼인하는 것을 금하는 교회법적인 조건. 부득이한 경우에는 반드시 관면을 얻어야 한다. (⇒) 혼인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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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신사 [한] 熱心神士

1883년 북경의 구세당(救世堂)에서 간행된 수도자들의 수신서(修身書)로 저자는 당시의 북경교구장 들라플라스(Delaplace, 중국명 田類斯)). 상 · 하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고, 상권 38장(章), 하권 26장, 총 64장에 걸쳐 수도자들에게 필요한 수신방법이 서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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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 [한] 列王記 [라] Liber Regum [영] Book of Kings

구약성서 중의 역사서의 하나. 상 · 하로 나누어 다윗왕 19년부터 유다왕국의 멸망까지의 역사를 기술한 것. 히브리 원전(原典)에서는 제2부의 ‘예언자’ 중의 ‘전(前)예언자’에 속하며, ‘제왕’(諸王)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다윗왕 19년과 솔로몬왕의 즉위 및 치세(治世)(1열왕 1~11), 왕국의 분열로부터 북왕국의 멸망까지의 남북 양 왕조의 역사(1열왕 12~2열왕 17), 북왕국 멸망 후의 유다왕조의 역사(2열왕 18~25)가 그 내용으로 되어 있다.

① 사료 : 이 책의 편집자가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사료는, ㉮ 다윗왕 만년부터 솔로몬왕 즉위까지의 왕위계승의 전말을 기록한 것, ㉯ ‘솔로몬의 사적(事蹟)에 관한 책’(1열왕 11:41) ㉰ 남북 양 왕국의 여러 왕에 관한 두 가지 사료, 즉 ‘이스라엘의 왕들의 역대지’(歷代誌)(1열왕 14:19 기타)와 ‘유다의 왕들의 역대지’(2열왕 14:29 기타) ㉱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 ㉲ 이사야 이야기 등일 것이다. 이밖에 연대 및 연수(年數)에 관한 기사, 왕들의 모친의 이름, 왕들에 관한 단평(短評) 및 사료가 되는 기사, 왕들의 죽음 및 매장(埋葬)에 관한 기사, 왕자들의 즉위 기사 등은 편집자외 종교적 입장 · 정신 · 이상 및 편집방식 등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편집자 자신이 쓴 것으로 보인다.

② 편집자 · 편집연대 : 이 책은 상술한 바와 같이 각종 사료를 가지고 편집된 것이지만 그 구조(構造) 및 전반적인 흐름, 특히 편집자의 종교적 입장과 정신뿐 아니라 그 용어는 틀림없이 ‘신명기적’(申命記的, D전승)이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책의 편집자는 일반적으로 신명기적 사가(史家)들이라고 보고 있지만 현재의 열왕기를 상세히 검토해 보면 전후 모순된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이것을 단일 편집자의 소산으로 돌리는 것은 곤란하다. 근대의 많은 성서학자들은 이 책이 전후 2회에 걸쳐 편집되었고, 적어도 두 사람의 서로 다른 편집자에 의한 것으로 보고, 제1차 편집을 기원전 600년경, 제2차 편집을 기원전 550년경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다시 엄밀히 검토한 결과 제1차 편집을 바빌로니아 유배 이전, 특히 요수 아왕의 전사(기원전 609년) 이전, 즉 기원전 610년경으로 보고, 제2차 편집을 바빌로니아 유배 이후, 기원전 562년의 여호야킴의 석방과 기원전 538년의 크로스의 유배 석방포고와의 사이, 즉 기원전 550년경 바빌로니아에서 했던 것으로 보게 되었다.

③ 편집목적 : 이 책의 편집자들은 단지 역사가로서 유다와 이스라엘의 역사를 편집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종교적 교훈을 목적으로 편집한 것이다. 즉 신명기적 사가의 입장에서 남북 양 왕국 흥망의 역사를 종교적으로 보면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의 계약된 백성으로서 어떤 길을 걸었으며, 그 왕국의 멸망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밝혀내려고 한 것이다. 이 편집자에 따르면, 남북 양 왕국 멸망의 최대원인은, 왕을 비롯해서 그 국민이 야훼의 계약을 위반하고 다른 신들을 섬기고,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야훼의 노여움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또한 편집자는 신명기적 입장에서, 예루살렘 신전(神殿) 이외의 성소(聖所)에서 거행된 예배를 비난하면서, 북왕국을 멸망케 한 최대원인은 북왕국의 여로보암(Jeroboam) 1세가 예루살렘 이외의 곳에 성소를 설치하고 그곳에 황금 송아지를 모셔서 예배케 했을 뿐 아니라 레위족(族)이 아닌 자를 사제로 삼아 제의(祭儀)를 거행한 죄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특히 바알(baal) 예배에 극력 반대한 예언자 엘리야(Elijah) 및 엘리사(Elisae)의 사적(事蹟)을 상술하고, 예우(Jehu)의 혁명을 변호하고, 또한 종교개혁을 단행한 요시야왕을 극구 칭찬한 것도 이 책 편찬의 의도 · 목적을 암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참고문헌] J.A. Montgomery, The Books of Kings, New York 1951 / J. Mauchline, in Peake’s Commentary on the Bible, ed. M. Black and H.H. Rowley, London 1962 / S.R. Driver, An Introduction to the Literature of the Old Testament, New York 1905 / G. von Rad, Old Testament Thelolgy, tr. D.M.G. Stalker, New York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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