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한] 敎區 [라] dioecesis [영] diocese

가톨릭 교회를 지역적으로 구분하는 하나의 기본단위(單位). 즉 교회의 행정상의 한 구역을 말한다. 이 말은 외국어의 대교구(大敎區, Archdiocese), 교구(敎區, Diocese), 대목구(代牧區, Vicariate Apostolic), 지목구(知牧區, Prefecture Apostolic) 등을 통칭하는 경우와, 또는 그 중의 어느 하나를 말할 때 사용한다. 예를 들면 ‘서울대교구’ 대신에 그냥 ‘서울교구’로 부르는 경우이다. 예수의 제자들, 즉 12사도의 후계자인 주교들에 의해, 일정한 지역에 가톨릭 신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이 공동체가 형성되고 이 공동체는 그 지방을 관할하는 행정구역을 이루게 된다. 이 기본 단위인 교구는 다시 좀더 작은 신자 공동체인 본당(本堂)으로 나뉘어, 주교들의 대리자인 사제(司祭)들이 직접 신자들을 보살피게 된다. 가톨릭 교회는 전체교회와 지역교회로 구분되며, 세계 각처에 산재하는 지역교회는 주교들에 의해 일정한 지역을 관할하게 되는 신자공동체인 교구로서 존재하게된다. 이러한 몇 교구가 모여 관구(管區)를 이루어, 지역교회의 완전한 교계제도(敎階制度)를 설정하게 된다.

1. 교구의 성격 : 교구는 교회의 일정한 지역에, 교회의 수위권자인 교황에 의해 임명된 주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하느님 백성의 교회를 말한다(교회법 제369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구가 주교를 중심으로 한 교회의 일정한 지역을 말할 뿐만 아니라, 좀더 생명력을 지닌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임을 강조한다. 즉 보다 적절한 사목(司牧)을 위해, 조직이나 기능을 위한 교회전체를 나누는 행정구분에 머무르지 않고, 그리스도 교회로서 신자들의 합법적인 지역공동체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교회 자체임을 강조한다. 교구가 교회이며 교회는 교구로서 실제로 존재하게 된다(교회헌장 26항). 교구는 교회의 한 구성원이며, 구체적으로 교회 전체를 실현하고 현실화하는 것이다.

2. 교구의 구분 : 교구는 흔히 대교구와 단순한 교구로 구분된다. 한개 이상의 교구를 갖는 교구를 대교구라 부르며, 그 외의 교구를 단순히 교구라고 부른다. 관구 관하 교구는 교계제도를 이루고 있는 관구대교구에 소속된 교구[屬敎區]를 말하며, 교황청 직할교구[免屬區]와 구분된다. 명의교구(名義敎區, titularis)는 사도들의 후계자인 정식 주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명의주교에 의해 다스려지는 교구로서 그들에게는 마호메트에 의한 이슬람 세계의 확대로, 정치적이고 역사적으로 이미 소멸한 소(小)아시아와 북아프리카의 교구들의 칭호가 주어진다. 로마 교외교구(Suburbicaria)는 로마 근교의 오스티아, 알바노, 프라스카티, 시바나, 벨레트리의 교구들을 말하며, 교황을 보필하는 중요직의 주교 추기경들의 교구를 말한다. 면속구(免屬區) 또는 고위 성직자구는 어느 교구에도 예속되지 않고, 수도원장이나 또는 고위 성직자가 교구 주교에 속하는 관할권을 행사하는 자치구역을 말한다. 그 밖에 전교지방에서 아직 정식 교계제도가 설정되기에 미흡한 지역은 비록 정식 교구는 아닐지라도 교구와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 준교구의 체계를 갖추게 되는데, 한국 교회의 모든 교구는 1962년 3월 10일 전에는 모두 이 제도에 속했었다. 대목구는 아직 정식 교계제도가 설정되지 아니한 전교지방에서 명의주교가 교황을 대리하여 관할하는 교구를 말한다. 지목구는 주교가 아닌 성직자가 관할하는 교구를 말하며, 어느 단계까지 터전을 잡으면 대목구로 승격한다.

3. 교구의 설립 : 교구가 설립되기 위해서는 그 지역에 거처하는 적정수의 신자와 성직자 및 재정적인 기반이 있어야 한다. 또한 적정수의 교회가 있어야 하며, 주교좌(主敎座)를 이룰 대성당(大聖堂)을 갖추어, 사도직을 이행할 방법과 재원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교구를 설립하게 된다. 또한 이미 설립된 교구가 너무 지역이 넓거나 신자수가 과다하면 신자들을 좀더 잘 보살필 수 있도록 교구를 나눌 수 있다. 반대로 같은 원리에 따라 다른 교구가 서로 합쳐질 수도 있으며, 폐기된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교구의 설립, 통합, 폐기는 전세계 교회의 최상권을 가진 교황만이 이를 행사할 수 있다(교회법 제373조 1항).

4. 조선교구의 설립 : 조선왕조(朝鮮王朝) 정조(正祖) 때에 남인(南人) 학자들에 의해 싹트기 시작한 서학(西學) 연구는, 그들 중의 한 사람인 이승훈(李承薰)이 1783년 북경(北京)으로 가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후 신앙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1784년 교회 창설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자생(自生)한 조선 가톨릭 교회는 가성직제도(假聖職制度)를 조직하여 자율적인 성무집행을 계속해 왔는데, 그것을 중단하고 1789년 이의 잘못을 깨닫고 성직자 파견을 북경교구와 로마교황청에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1795년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신부가 입국하여 비로소 교회조직을 갖추기 시작, 교세는 날로 번창해 갔으나, 곧 다시 박해를 받아 주신부와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게 되었다. 1811년 조선 교회의 신자들은 다시 북경주교와 로마 교황청에 서신을 보내어 조선 교회의 사정을 알림과 동시에, 선교사의 파견을 요청하였던 바, 1831년 9월 9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북경교구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조선교구(대목구)를 설정하는 한편 파리외방전교회로 하여금 조선 교회를 돌보게 하였다.

5. 조선교구의 발전 : 조선왕조의 거듭된 박해 속에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면서도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 온 조선교구는, 1880년대에 점차 종교자유가 주어지면서 급속도로 발전되어, 1911년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둘로 나뉘게 되었다. 조선교구는 서울교구(대목교)로 명칭을 바꾸어 북부지방을 맡고, 남부지방인 경상도 · 전라도는 대구교구(대목구)에서 관할하게 되었다. 1909년 한국에 진출한 독일의 상트 오틸리엔 베네딕토회는 1920년에 원산(元山)교구(대목교)를 설립하여 함경도를 전담케 되었으며, 1928년에는 북간도(北間島)에 연길(涓吉)교구(지목구)를 설립하여 만주의 한국인을 돌보게 하였다. 미국의 메리놀 외방선교회는 1923년에 한국에 진출하여 1927년에 평양교구(지목구)를 설립, 평안도 지방을 맡았다. 아일랜드의 골룸바노회는 1937년에 광주교구(지목구)를 설립, 전라남도 지방을 맏았고 1939년에는 춘천(春川)교구(지목구)를 설립하여 강원도 지방도 맡게 되었다. 그런데 그 동안 꾸준히 성장한 방인사제들도 1937년 전주교구(지목구) 설정과 함께 전라북도를 맡음으로써 첫 방인교구의 탄생을 보게 되었다.

6. 한국의 교구현황 : 1945년 당시 한국 교회는 9개 교구에 18만명의 신도, 한국인 주교 2명, 외국인 주교 5명, 한국인 신부 132명, 외국인 신부 102명의 교세를 갖고 있었으나, 남북한으로 분단됨으로써 북한은 공산정권에 의해 교회가 몰수되어 북한교구는 지하교회로 남게 되었다. 따라서 평양교구, 함흥교구, 그리고 덕원면속구와 연길교구는 월남한 성직자들에 의해 명맥만을 유지할 뿐이었다. 반면 남한은 1957년에 부산교구, 1958년에 대전교구와 청주교구, 1962년 인천교구,1963년에 수원교구, 1965년에 원주교구, 1966년에 마산교구, 1969년에는 안동교구, 1971년에 제주교구가 연차적으로 설립되었는데, 그 동안 교황 요한 23세는 이와 같은 한국 교회의 발전과 자립을 인정하여, 1962년 3월 10일에 정식으로 한국에 교계제도를 설립하여 3개 관구를 두어 이들 교구를 관할케 하였다. 이리하여 지하교회로 남아 있는 북한 교회를 제외한 한국 교회는 1984년 현재 14개 교구에 640여 본당, 1,000여명의 한국인 신부, 4,000여명의 남녀 수도자를 포함한 170여만명의 하느님 백성 공동체를 이루면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의 영광을 갖게 되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교계제도 [한] 敎階制度 [라] hierarchia [영] hierarchy

원래 이 말은 하느님의 정하심에 따라 각기 소임을 맡은 9개의 천사군(天使群)을 의미했으나 교부시대(敎父時代)로부터 각 품계(品階)에 임명된 성직자 전체를 가리키게 되었으며 넓게는 성직자 및 평신도를 포함하는 교회조직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가톨릭 교회에서 이 교계제도는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체제의 기본이며 신품권(神品權, ordo)에 의한 것과 재치권(裁治權, jurisdictio)에 의한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신품권에 의한 교계제도는 미사 집전과 관련되는 주교, 사제, 부제의 세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재치권에 의한 것은 교회의 사명을 다하기 위한 입법, 사법, 행정권과 관련되는 것으로 교황과 주교의 권한을 말한다. 이러한 재치권은 사제와 부제들에게도 부분적으로 위임될 수 있고, 그 때문에 교회의 교계제도는 모든 계층의 성직자들을 다 포함한다. 즉 교계제도는 주님의 뜻에 따른 교회조직에 있어서의 제도적인 질서인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에 관하여 “교회란 하느님 나라에 봉사하는 데 있어 교계적 질서 안에 살고 있는 하느님의 새 백성들을 말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교령>에는 교계제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평신도 사도직을 촉진하여 원리와 영적(靈的)도움을 제공하고, 교회의 공동선(共同善)에 유익하도록 사도직의 실천을 질서지어 주며 교의(敎義)와 질서가 보존되도록 배려하는 것은 주교들의 임무이다.” “평신도 사도직의 어떤 형태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주교가 공인해 준다.” “또한 교회의 공동선이 요구할 때에는 교회의 권위자가 직접적으로 영적 목적을 택하여 특별히 추진시키며, 특별한 책임을 지는 수도 있다. 이렇게 주교는 환경에 따라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사도직을 질서지어 주며 어떤 형태의 사도적 활동을 자기 교유의 사도적 임무와 밀접히 결합시킨다. 그러나 쌍방의 고유한 성격과 차이점을 보존해야 하며 따라서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주교의 이같은 행위를 여러 교회 공문서에서 ‘위임’이라고 부른다.” “마침내 주교는 모름지기 사목자들의 임무와 관계가 깊은 특정 임무까지도 평신도들에게 위임한다. 예를들면 그리스도교 교리의 설명, 일정한 전례행위, 사목상의 일 등이다. 이렇게 위임받은 임무 수행에 있어서 평신도는 교회 장상의 지도 밑에 온전히 종속되어 있다”(제5장 24절).

[참고문헌] Wernz-Vidal, De personis, Roma 1923 / K. Eubel, Hierarchia Catholica, v. 3, 1913-1923 / L. Leminens, Hierarchia Latina Orientis, 1924.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교강 [한] 敎綱

옛 교우들이 사용하던 말로 여러가지 교회의 법규들, 즉 당시의 교회법(敎會法)을 의미하였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말이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괴레스 [원] Gorres, Johannes Joseph von

Gorres, Johannes Joseph von(1776~1848). 독일의 가톨릭 저술가. 학생때 합리주의 교육을 받고, 프랑스혁명을 열렬히 지지했으나, 파리 체제 중(1799~1800년) 환멸을 느끼고, 귀국 후 헤르더(J.G. von Herder) 및 셀링(J.W.J. von Schelling)의 영향으로 종교에 관심 가져, 《신앙과 지식》(Glaube und Wissen, 1805)을 저술하였다. 후에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거기서 낭망주의와 접촉하고, 《아시아 신화사(神話史)》(Mythengeschichte der asiatischen Welt, 2권, 1810)를 저작하였다. 나폴레옹 전쟁 뒤, 프로시아의 종교정책에 반발했다가 스트라스부르크로 피신,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1824년). 뮌헨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될링거(J.J.I. von Dollinger), 묄러(J.A. Mohler) 등 가톨릭의 학자들과 교유하며 그 중심이 되었다. 《그리스도교적 신비주의》(Christliche Mystik, 4권, 1836~1842)를 공간(公刊)하였다. 그는 정치나 교회정치에서도 활약하고, 독일 국내에서의 가톨릭 사상 보급에 공헌하였다. 특히 혼종혼(混宗婚) 문제에서 교회입장을 변호했었던 퀼른의 대주교 아우구스트가 프로이센 정부에 의해 체포되던 이른바 ‘퀼른 사건'(1837년) 때 괴레스는 저서 《아타나시오스》(Athanasios, 1837~1838)를 통해 그것을 감동적으로 전세계에 고발한 바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광진학교 [한] 廣進學校

충북 청안국 북면(현 충북 괴산군 청안면)에 있던 초등교육기관. 1909년에 설립되었고, 초대 교장에는 장호원(현 감곡) 본당 주일 신부인 부이용(Bouillon, 任加彌) 신부가 맡았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