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란 생계를 세우기 위하여 일정한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의 종류를 말한다. 이것은 직업통계라는 방편상에서 쓰이는 의미로서의 직업의 개념이지만, 사회학적인 근거에 따르면, 직업이란 인간사회, 다시 말해 국가적 결합을 갖는 민족내부에 존재하는 분업(分業)인 것이며, 인간의 종교적 도덕적인 사회성의 요구로서, 마지막으로는 창조자인 하느님의 의지의 요구로서 나타난다.
종교적으로는, 일반적인 직업에 대한 견해가 여러 갈래 있어서, 전혀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입장까지 들 수 있다. 신약성서에는 명확한 직업론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바울로는 전교하면서도 천막 만들기로 생계를 세워 갔는데, 그 일을 사도직의 자유를 확보하는 방도로 생각하였다(1고린 9:1-). 그러나 신앙인이 일상적인 노동을 경시하는 태도를 엄히 경계하여,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 말라(2데살 3:6-12)는 권고가 나와 있다. 여기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각자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십시오”(1고린 7:20) 하는 구절인데, 이것은 신분을 가리키느냐, 직업을 가리키느냐, 또 이 권고가 어느 정도로 적극적인 내용의 것이냐 하는 점이 많이 논의되고 있다. 직업이라는 외국어가 소명(召命, [영] calling, [독] Beruf)과 같은 말로써 나타내지게 된 기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교회사(敎會史) 초기단계에선, 성직자도 감독 이외 자는 직업을 갖고 있었던 자취가 보이는데, 오히려 문제는 황제예배(皇帝禮拜) 문제에 관하여 로마황제에 시중드는 군사인 것이 정당하냐의 여부를 줄곧 논의하였는가 하면, 또한 윤리적인 관심에서 배우, 검사(劍士) 등 직업에 종사하는 일이 금지되었다. 중세교회에서는 성직제도, 수도원 제도가 발달함에 따라 직업에도 성속(聖俗)의 구별이 생기게 되었다. 다만, 교회는 성직만을 ‘소명’(vocatio)이라는 말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것이 일반적인 직업을 무시 또는 경시하고 있는가의 여부가 문제로 부각되었다. 어쨌든 간에 스콜라철학(Scholasticism)은 성직자를 상층으로, 일반적인 작업을 하층으로 보는, 직업의 히에라르키(hierarchy, 聖職位階)를 생각하고 있었다. 중세 후기 특히 독일 신비주의에서 이미 싹튼 사상을 이어 받은 루터(Martin Luther)는, 다시 한 번 ‘소명’이라는 용어를 모든 직업에 적용하고, 성속의 구별을 폐기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직업에 전념함으로써 하느님의 계명을 다할 것을 역설하였다. 칼빈(Jean Calvin)은 ‘예정’(豫定, predestination)의 교리에 입각하여 루터의 직업관을 더욱 철저하게 했으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속적인 직업도 또한 헌신 봉사의 장소라고 이해하였다. 이리하여 프로테스탄트의 직업관의 기초가 뒷받침되었다. 그러나 종교와 현세와를 구별하는 루터파도, 천주님의 예정 의지에 대한 엄격한 복종을 일방적으로 강조하여 내적 외적으로 기쁨을 수반하지 않는 칼빈주의적인 직업관도 다같이 가톨릭적인 직업사상에는 미치지 못한다. 가톨릭적인 직업이념은 엄숙과 기쁨, 저승적 목적과 이승적 긍정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있어서의 개인 개인의 직업적 노동은, 인류 공동사회의 문화창조를 위한 영역에의 참가이며, 따라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被造物)의 모든 힘의 발전을 위한 영역에의 참가로서, 문화창조와 동일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직업적 노동이란, 그 대상으로부터 직업의 기쁨을 받아들이게 되며, 하느님의 은총에 의하여 개인에게 주어진 생활목적 달성의 한 부분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오늘날과 같이, 합리화와 기계화의 시대에 살기 위하여는, 조직적 또는 기술적인 능력은 단순히 물질적 생산력을 위해서 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인간다운 노동생활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하여도 필요한 것이다. 현대의 경제 또는 사회발전에 적극 참여하며 정의와 사랑을 위해, 인류의 행복과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음을 확신하도록 요청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현대세계의 사목헌장>은 “절대로 필요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얻어, 그리스도와 그 복음에 충실하며 현세활동에 있어서 바른 질서를 보존하고 개인적 내지 사회적 생활 전체가 진복팔단(眞福八端)의 정신, 특히 청빈(淸貧)의 정신으로 충만해야 하겠다”고 새로운 직업관 확립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직업과 관련하여 실학파(實學派)를 중심으로 한 지식층이 ‘사 · 농 · 공 · 상’의 봉건사회 계층질서의 원리를 비판하고 ‘사민일체’(士民一體)라는 새로운 질서원리를 주창하였음을 지적할 수 있는데, 이에 따라면 “사(士)는 이미 지배자가 아니고 민(民)도 역시 피지배자가 아니어서, 사가 관료로서 국정에 참여하지 않게 되며, 농업 · 공업 · 상업의 그 어느 직업이든 그의 적성에 따라 종사하고, 농 · 공 · 상민이 그들의 직업에서 뛰어난 성과를 발휘하게 되면 그들 중에서도 국정에 참여하는 관료가 발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직업적인 사회 분화론의 경제관은 가톨릭의 평등 · 박애 · 보편 · 과학사상 등에 그 사상적인 기초를 두고 있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 당시의 가톨릭 신자들의 직종 분석에서도 나타나듯이, 많은 신자들이 상업이나 수공업 등과 같은 자연경제체제의 해체에 중심적 역할을 하였던 직종에 종사하는 것으로 밝혀지며, 특히 의료 · 학장(學長) · 풍수(風水) 등 당시의 유랑지식인의 존재가 주목할 만큼 나타나고 있다.
[참고문헌] M. Schwarz, Berufsproblem, 1923 / H. Pesch, Lehrbuch der Nationalouomie, I, Aufl. 5, 1925 / A. Pieper, Bersufsgedanke und Ber fsstand im Wirtschaftsleben, Aufl. 2, 1926 / E. Brunner, Das Gebot und die Ordnugen, 1932 / 趙珖, 辛酉迫害의 分析的考察, 敎會史硏究, 第1輯, 韓國敎會史硏究所, 1977 / 韓弘渟, 韓國社會와 가톨릭經濟倫理, 가톨릭社會科學硏究, 第1輯, 韓國가톨릭社會科學硏究會, 1983. 3 / 사목헌장, 제2부 3장 / 요한 23세, 어머니와 교사,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