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이성 [한] 信仰~理性 [라] fides et ratio [영] faith and reason [관련] 신앙

신앙이란 하느님의 부르심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인격적인 응답이요 신학 또는 교의(敎義)에 관한 지식이며 인간 상호간 및 인간에 관한 지식이며 인간과 하느님간에 성립하는 초자연적 측면이다. 한편 이성은 인간이 지식을 분석하고 전개시키는데 사용되는 지적(知的) 능력이며 피조물간에 상호간 및 피조물과 조물주간에 존재하는 자연적 측면이다. 이런 두 개념을 연관 시켜 신앙과 이성이라 할 때 이는 인식론적 조화의 문제 뿐 아니라 넓게는 자연과 초자연, 좁게는 학문과 계시의 관련성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양자의 관계에 관하여 이를 구별하지 않는 견해와 구별하는 견해가 대립되어 있다. 전자에 속하는 견해로는 ① 신앙의 이성의 필요를 배제한다는 신앙주의나 전통주의, ② 이성이 신앙 문제를 망라하고 있다는 합리주의, 과학주의, 현대주의, ③ 신앙과 이성의 구별은 사고상의 한계에 기인할 뿐 실제적인 상태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는 자연주의 또는 초자연주의의 입장 등이 있다. 이와 반대로 후자의 견해는 ① 신앙과 이성은 두 가지 인식 양태로서 서로 대립되며 인간의 모든 사고와 행위 영역에서 독립된 역할을 수행하고, ② 신앙(또는 이성)은 인간에게 확실하고 적절한 지식을 제공하나 이성(또는 신앙)은 모호한 지식밖에 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역사를 통해 볼 때, 초대 교회에서는 신앙과 이성의 문제가 그리스도교 계시와 그리스 · 로마적 지식과의 관계가 나타났다. 계시 진리를 받아들이는 근거는 계시하신 하느님의 권위이었으나 세속적 지식의 그것은 그 지식에 대한 합리적 증명이었다. 그러면서도 초대교회 호교론자들은 그리스도교를 유일하고 참된 철학으로 제시하고 신앙을 모든 이의 생활양식에 관련지으려 하였다. 아우구스티노에게 있어서 신앙과 이성은 구별되지 않는다. 그는 신앙에 접근함에 있어서 믿음에로 이끌어 주는 이성을 추구하며, 신앙으로 무장하여 이해에 도달하고자 한다.

6~7세기에도 교부들 특히 아우구스티노의 영향이 지속되었고 계시를 이해하기 위하여 인간적 지식이 총동원되기 시작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서방에 도입되었다. 신학은 11세기까지 문법체계를 갖추었고 12세기에 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적 방법을 적용하였다. 13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전 저작이 소개되자 신학자들은 자연, 인간, 윤리, 존재 등에 관한 총체적 개념을 갖게 되었고,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 결과 대 알베르토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서에서 볼 수 있듯이 새롭게 균형잡힌 자유주의가 탄생하였고 마침내 신학은 신앙과 이성을 새롭게 종합함으로써 가히 학문이라는 칭호를 획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종합도 오래가지 못하였다. 둔스 스코투스와 윌리암 오캄의 저서에서 지지받은 14세기의 비평신학은 신학의 학문 칭호를 부정하였고 신앙과 이성을 분리시켰던 것이다.

양자의 괴리는 15세기 이후 특히 종교개혁과 가톨릭 개혁(Counter-Reformation) 이래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신자들은 변천하는 세태로 인하여 신앙을 정치적, 사회적 발전에 더욱 관련시키고자 애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상과 현실간에 간격을 메우기 위한 시도가 에크하르트, 토마스 아 켐피스 등의 반(反)지성적 신비주의 경향(Devotio, Moderna), 쿠사의 니콜라오 (Nicholas of Cusa)의 ‘박학한 무지'(docta ignorantia), 에라스무스의 인문주의 등으로 표현되었다. 스콜라 철학은 신학교의 교과목으로 위축되고 가에타노(Cajetanus)와 성 토마스의 요한(John of St. Thomas)등이 펴낸 아퀴나스의 주석서들은 이성과 신앙을 더욱 분리시켰으며 신학이 교의신학과 윤리신학으로 분화되었다.

19세기의 신학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대결로 일관하였는데 그 결과 이성의 옹호자와 신망의 옹호자 양측은 극단적인 입장의 한계를 깨닫게 되어 그 후로는 대화를 모색하는 경향이다.

그렇다면 신앙과 이성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 물음은 양자 간에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음을 전제한다. 공통점은 지식을 습득하는 수단이다. 다만 이성은 지적을 습득하는 수단임에 반하여 신앙은 초자연적인 수단인 것이다. 유태 그리스도교 전승에 의하면 신앙인은 이성의 자연적 수용력을 초월하는 진리를 확신하는 자이다. 그 확신은 이성을 납득시키는 증명에 근거 하지 않고 속지도 속이시지도 않으시는 하느님의 권위에 근거하며 이 권위가 의지를 움직여 동의하게 만든다. 이 점에서 신앙이 이성은 일단 구별된다. 그러나 신앙이 지식을 수반하는 한 신앙인은 하느님의 권위를 인식하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의 중개를 받는 등 인간적인 방법을 거친다. 한편 인간이 인식하는 진리는 그것이 아무리 이성적인 것이더라도 궁극적으로 진리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창조적 현존에 바탕을 두고 있다. 더구나 그러한 지식은 감각의 사실성, 논리의 일관성, 원리들의 진실성 등에 대한 신뢰 또는 믿음을 전제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현대의 일부 경향은 신앙과 이성을 명확히 구별하지 않고 정도의 차이로 이해한다.

아퀴나스에 의하면 신앙은 교리에 대한 지식임과 동시에 교리를 진정한 것으로 받아들임 의미한다. 이 받아들임은 의지의 작용이다. 그러나 의지적 요소 역시 신앙과 이성을 구별하는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때 특정한 입장을 취하는 경우처럼 모든 지식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의지행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신앙과 이성과의 관련문제는 인간적인 면과 신적(神的)인 면, 인식적 측면과 의지적 측면에서 해명되어야 할 것이 많다고 하겠다. (⇒) 신앙

[참고문헌] E.F. Byrne, E.A. Masziarz, Faith and reason, New Catholic Encyclopedia, Vol. 5, McGraw-Hill,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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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교리성성 [한] 信仰敎理聖省 [라] Sacra Congregatio pro Doctrina Fidei [관련] 성성2

교황청 기구의 하나로 신앙의 순수성과 정통성의 유지 발전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 성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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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교리위원회 [한] 信仰敎理委員會 [영] Doctrine of the Faith Committee [관련] 교리주교위원회

한국 천주교회의 산하 교리주교위원회에 소속된 전국 위원회 중 하나로 신앙과 도덕, 교리 등 문제에 대하여 유권적 해석을 내림으로써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함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교창회칙과 교황청의 지침을 전달하고, 신학 학설을 해석하는 업무는 신앙교리위원의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다. (⇒) 교리주교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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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애긍 [한] 神哀矜

19세기 이래 한국 천주교회에서 신자들의 일상생활상 실천해야 할 덕목으로 권장한 내용 중의 하나로, 이웃에 베푸는 정신적인 자선을 가리킨다. 즉 우몽한 이를 가르치고, 잘못한 이를 훈계하고, 환난당한 이를 위로하고, 근심하는 이를 돌보고, 나의 악한 행실을 너그러이 하고, 능모(陵侮)하는 이를 관사(寬赦)하고, 산 이와 죽은 이와 아울러 모든 원수를 위하여 정성으로 기도하는 것 등 일곱 가지 선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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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 [한] 新約聖書 [라] Novum Testamentum [영] New Testament

27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신약성서는 구약성서를 보완하는 한 단위의 문학 장르로서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계시의 기록을 완성하고 있다. 오늘날 신약성서 작품의 분류는 연대순으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구약성서가 역사적 · 교훈적 · 예언적 작품별로 분류된 것에 영향을 받아서 신약성서도 초기의 그리스도교 계에서 유사한 방법으로 분류하였고, 이것이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정착되었다. 이리하여 역사적인 분류 기준에 드는 것으로 4복음서, 사도행전 있고, 교훈적인 각종 분류에 드는 것으로 바울로의 14개 서간들, 베드로의 첫째 · 둘째 편지, 요한의 세 편지, 야고보의 편지, 유다의 편지가 있고, 예언서 분류에 드는 것으로 요한의 묵시록이 있다.

1. 신약성서의 문학 장르 : 신약성서는 다양한 문학 장르에 속한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작품은 스타일이나 문장기술(文章記述)의 기교면에서 특정한 문학 유형이나 시대를 의식적 따르지는 않았다는 의미에서 문학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신약성서는 처음에는 그리스어로 씌어졌고, 따라서 그리스도교 발생 제1세기의 그레코-로마 문화와 관련지어 있다. 신약성서는 코이네(koine), 즉 그 당시에 널리 쓰인 그리스어로써 기술되었다. 어느 특정한 문체를 도용(盜用)해 쓰지도 않았고 세속 작가들로부터 인용한 구절도 많지 않다. 신약성서는 오히려 구약성서를 특히 칠십인역(Septuaginta)에서 300회 이상 인용한 것으로 보아 구약성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본다.

요한의 복음서의 머리글(요한 1:1-13)과 바울로의 자랑 예찬론(1고린 13:1-13)에서처럼 시적(詩的) 표현 형태를 취하는 경우에는 구약성서의 예언서와 시편(psalmists)이나 찬미가(hymns)들에서 원용(援用)하고 있으나, 동시대에 어떤 문학작품의 스타일을 모방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스도의 설교나 가르침은 복음서에서에 예언서의 정신과 문체로 그 당시에 통용되던 랍비문학 형태로 기술되었다. 또한 설교, 비유, 대화 등의 표현방법은 복음서작가(Evangelists)들에 의하여 널리 애용되었다. 특히 바울로의 서한에서 나타나는 서간체는 동시대의 서간체의 문형을 본뜨고 있기는 하지만 플라톤(Plato), 치체로(Cicero)나 에피쿠로스(Epikuros) 등을 맹목적으로 모방하였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위에 든 세 사람은 그들의 사상이나 가르침을 표현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이러한 표현방법을 채택했었다.

사실상의 설교인 디아트리베(diatribe, 비판적 강론)는 가르침을 위해서 만이 아니라 청중이나 독자들로 하여금 신앙에 귀의케 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었는데, 철학적 작품에 가장 흔하게 쓰인 형태이다. 디아트리베는 디아스포라(diaspora, 초기 유태인 그리스도교인)의 유적인 설교자들에 의해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그 뒤 그리스도 후계자들도 사용하였다. 예언서나 박해(迫害)시대에 랍비들에게 가장 흔하게 쓰였던 묵시문학 형태는 파루시아(parousia)와 묵시록(apocalypse)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개별적 문학작품이나 그 구성부분을 어떤 스타일의 범주에 넣을 것인가에 대하여 오늘날의 학자들은 그 범위를 점점 더 넓혀가는 추세에 있다. 궁극적인 분석이 어떻게 되든 간에 성서의 책들은 동시대의 세속작가나 종교작가들의 작품을 모방하거나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라 글로써 표현해야 하겠다는 정신적 절실감이 있었고,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이어 나가야 하겠다는 일념에서였다. 교회가 우선하여야 할 일은 예수 안에서 사람들이 깊은 신앙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길을 살도록 입교자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사람들이 기억을 하기 알맞도록 베풀어졌었다. 사도행전 2, 3장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베드로의 설교형태인 구두(口頭) 교리교육(oral catechesis)은 신앙을 전파하는 가장 기초수단이었다. 전례(典禮)가 발전함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차츰 미사로 통합되었고 이것이 성서작가들의 제재(題材)가 되었다.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서 초기의 구두 설교자는 문자로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2. 발전 : 대부분의 신약성서가 처음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는 어둠에 가려져 있지만, 4복음서와 논란이 많은 히브리인들에 보낸 편지를 제외한 바울로의 편지들이 어떻게 씌어졌는지는 추적해 볼 수 있다. 기원 50년경 팔레스티나의 유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하여 씌여졌다고 추정되는 아랍어로 쓰인 마태오의 복음서는 복음서 중에서 최초의 것으로 초기 전승(傳承)에 언급되어 있지만, 이보다 훨씬 뒤에 세상에 나온(기원후 70년) 그리스어 번역본은 아랍어 마태오의 복음서를 참고로 했을 뿐만 아니라, 마르코의 복음서와 Q문서도 참조했었다. 베드로의 통역자였던 마르코는 베드로가 죽은 뒤 (기원 후 64 혹은 67년), 혹자에 의하면 50년대 후반에 이교도 그리스도인(Gentile Christians)을 위하여 기억을 더듬어 썼으며, 바울로의 동반자였던 루가는 아케아(Achaea)의 이교도들을 위하여 마르코의 복음서가 씌어진 얼마 후에 복음서를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태오와 마르코는 냉정한 어조(impersonal intone)를 견지하고 있으며 아마도 미사를 목적으로 쓴 것 같다. 루가의 복음은 더욱 문학적이며 역사적 서술에 비중을 두고 있다. 마태오와 마르코, 루가의 복음서는 상호의 의존적이며 이를 특히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라고 한다.

복음서에 필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고 다만 ‘예수가 사랑한 제자’라고만 언급되어 있는 요한의 복음서는 고대 전승에 의하면 팔자가 그리스도교 발생 1세기 말경에 소아시아의 에페소(Ephesus)에 있을 때 쓴 것 같다. 이 복음서는 그리스도교 입교자의 믿음을 확고히 하고 더욱 심화하기 위하여 씌어졌다. 요한의 복음서는 유태교(Judaism)를 힐난하는 어조로 씌어 있으며 필자를 성 요한이라고 믿는 것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사도행전은 사실은 제5의 복음서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대부분 베드로와 바울로의 행적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는데, 성 바울로의 말년에 제3의 복음서(루가의 복음서)를 쓴 동일한 작가가 복음서를 쓴 후 얼마 지나서 쓴 것으로 보여진다. 사도행전의 텍스트는 두 가지-짧으나 세련된 표현을 하고 있는 알렉산드리아 텍스트와 150년경에 개작한 것으로 보이는 문장이 방만한 이서(以西)의 텍스트-로 전하여 지고 있으므로 어느 것이 원형인가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심이 있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말씀과 행적은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10, 20년에 문자로써 기록되기 시작한 반면, 1세기말이 다 지나도록 구약성서나 바울로의 서간 중의 몇 작품에 허용되었던 성서로서의 온전한 권위가 주어지지 않았었다는 것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구성의 연구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바울로의 서간집은 특정 공동체나 공동체의 집단에 대하여 쓴 것인데 가르침과 교회와 오해를 불식하는데 원래의 사명이 있었다. 그 서간들 중에서 세 가지 서간은 사목서간(Pastoral epistles)이라고도 하는 것으로 주로 공직자들을 위해 쓴 것이다.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는 기원 52년초에 고린토인을 위해 쓰여졌으며 따라서 바울로의 서간 중에서 제일 먼저 쓰여졌고 신약성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나머지의 서간들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쓰여진 것으로 본다. 즉 데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첫째, 둘째 편지(52년 후반),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54년),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57년 봄),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57년 가을),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57~58년), 골로사이인들에게 보낸 편지,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61~63년) 등과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 디도에게 보낸 편지,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는 이들 세 서간이 바울로가 쓴 것이 분명하다면 63, 67년 사이에 쓰여졌으리라고 본다.

이렇게 요약하고 보면 대부분의 바울로의 서간들이 복음서들 이전에 쓰여졌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우리가 마르코나 루가를 기원 62년 이전으로 잡지 않는다면 바울로의 몇 작품은 베드로에게 보낸 둘째 편지 3장 15절에서 보이는 것처럼 구약성서와 똑같은 성서로서의 대접을 받게 된다. 바울로의 서간 모두가 그의 저작으로서 현대 성서학자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사목서간이나 에페소인들에게 보인 편지의 저자가 바울로가 아닐지 모른다는 의문이 제기될 정도이니 그 중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히브리인들에게 보인 편지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가톨릭 서간(야고보의 편지, 베드로의 첫째, 둘째 편지, 요한의 첫째, 둘째, 셋째 편지, 유다의 편지)은 개인이나 공동체보다는 일반 교회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인데 그 작품의 성격으로 보아서 서간이라기보다는 교훈서라고 함이 더욱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또한, 각 서책에 붙은 이름이 그 성책의 진정한 필자를 의미하는지, 단지 가명에 지나지 않는지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이다. 그 중에서 야고보의 편지, 유다의 편지, 베드로의 둘째 편지, 요한의 둘째, 셋째 편지의 경전성(Canonicity)에 대하여서도 한때 논란이 되었었다. 이들 서간들은 기원 1세기에 걸쳐 다양하게 연대 표시가 되어 있어서, 그 서간의 필자로 인정할 수도 부인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묵시록이 필자에 대해서는 가장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편지라고 하기보다는 논설문이라고 하는 쪽이 더 알맞다. 바울로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하는 학자가 많으며, 설사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간접적인 것이리라고 믿고 있다. 바울로가 쓴 것이 틀림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가 63, 67년 사이에 쓰여졌다고 주장한다. 다른 학자들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70, 90년 사이에 쓰여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서방교회는 4세기 중엽에 이르도록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바울로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나 동방교회에서는 3세기에 벌써 그것을 바울로의 저술이라고 믿어왔다.

묵시록 역시 필자의 동일성이나, 문학 장르의 이해에 곤란을 겪고 있고, 묵시록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와는 달리 묵시록은 동방교회에서는 6세기가 지나도록 많은 반대에 부딪힌 반면 서방교회에서는 변함없이 성서로 인정해 왔었다. 초기의 전승은 사도 요한을 그 편지로 인정하여 왔으나, 오늘날 가톨릭 학자들은 이에 대하여 견해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

성서 작품의 필자의 진위(眞僞), 작품의 진실성, 경전으로서의 가치, 집필 시기나 문학 장르의 형태에 대하여 여전히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신약성서들은 하느님에 의하여 영감받은 경전으로서 인간에 대한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 교회에 의하여 여전히 존경과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J.N. Sanders, The Literature and Canon of the N.T, New York 1962 / R.A. MacKenzie,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Collegeville, Minn,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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