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품(七品) 중 사품(四品) 이하, 즉 수문(守門)품, 강경(講經)품, 구마(驅魔)품, 시종(侍從)품을 말한다. (⇒) 칠품
-
최신 글
-
-
-
카테고리
-
-




2026 3월 월 화 수 목 금 토 일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칠품(七品) 중 사품(四品) 이하, 즉 수문(守門)품, 강경(講經)품, 구마(驅魔)품, 시종(侍從)품을 말한다. (⇒) 칠품
昭顯世子(1612~1645). 이름은 조(-). 소현(昭顯)은 시호. 인조(仁祖)와 인열왕후 한씨(仁烈王后韓氏) 사이에서 출생. 1625년(인조 3년) 세자로 책봉되었고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전주(全州)로 내려가 남쪽지방의 민심을 수습하고 이해 동부승지(同副承旨) 강석기(姜碩期)의 딸을 세자비로 맞아들였다.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고 이듬해 인조가 청태종(淸太宗)에게 항복하자 동생 봉림대군(鳳林大君)과 함께 심양(瀋陽)으로 끌려갔고 1640년 잠시 귀국하였다가 돌아가 그 뒤 청이 중국본토를 지배하게 되면서 수도를 북경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이 때에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Adam Shall, 湯若望)을 만나 서구 과학문명에 관한 지식을 배우고 1644년 말, 많은 과학서적, 천주교서적, 여지구(與地球), 천주상(天主像) 등을 갖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 2개월 만에 원인 모를 병으로 급사하였다. 그와 아담 샬 신부와의 교제 및 서양문물의 도입은 봉건 조선왕국에 변화를 가져다 줄 기회가 될 수 있었으나 그가 정쟁(政爭)에 희생됨으로써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관구에 속해 있는 관구산하 교구를 말한다. 예컨대 인천 교구는 서울대교구의 속교구이다. (⇒) 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