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櫃)란 단어는 히브리어 aron을 번역한 말로 구약 성서에 200여회나 나온다. 궤라는 단어 단독으로 쓰일 때도 있지만 주로 증거의 궤(출애 26:33), 계약의 궤(신명 10:1-5), 하느님의 궤(2사무 6:2), 야훼의 궤(여호 7:6) 등과 같이 관형어를 동반하고 쓰이는 경우가 많다. 궤라는 단어 앞에 붙는 관형어는 위의 것들을 포함해서 약 20여개가 있다. 이렇게 관형어가 많은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결약의 궤가 가지는 의의가 다양하기 때문이지, 여러 종류의 궤가 있었기 때문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약의 궤를 ① 야훼께서 구체적으로 현존하시는 보좌(寶座)(민수 10:35-36, 1사무 6:3·5·8·20), ② 왕조시대 이전 이스라엘 부족동맹의 전쟁 수호신(1사무 4), ③ 시나이산에서 받은 십계명의 돌판[石版]을 담은 그릇(출애 25:16, 신명 10:1-95) 등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신명기(10:1-5)는 모세가 어떻게 결약의 궤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민수기의 ‘결약의 궤의 노래’(10:35-36)는 결약의 궤가 이스라엘 군대의 지도자 또는 직접적으로 야훼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결약의 궤가 이상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볼 때 그것이 제사의식의 대상이 되었으리라는 추측은 쉽게 할 수 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부족 12지파 동맹시대에 결약의 궤가 지녔던 의의는 왕조시대에 들어서면서 차차 빛을 잃어 갔다는 사실이다. 사울이 결약의 궤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음을 성서는 기록하고 있다(1사무 21:2). 결약의 궤는 시나이산에서 제작된 후 길갈에 안치되었고(여호 7:6), 베텔(판관 20:27), 실로(1사무 3:3)를 거쳐 아벡의 전쟁터에서 잠시 블레셋인들에게 빼앗겼다가(1사무 4:11), 다윗시대에 이르러 예루살렘에 안치되었고,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후에는 성전 지성소 안에 안치됐다(1열왕 6:19).
결배조당 [한] 結配阻擋 [관련] 혼인장애
무효장애 중의 하나. 합당한 혼인을 한 사람이 정당한 이유 없이 다시 혼인을 하려고 할 경우 이를 금하는 교회법적인 조건. 정당한 이유란 배우자가 죽었을 경우, 행방불명되었다가 죽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을 때, 교회재판에서 행방불명된 자가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보아 죽었다고 판결할 때 또는 그 밖의 판결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행방불명자의 생사(生死)가 확인되지 않은채 혼인한 것도 결배조당에 해당된다. (⇒) 혼인장애
견진성사 [한] 堅振聖事 [라] Sacramentum Confirmationis [영] the Sacrament of Confirmation
성세성사를 받은 신자에게 성령과 그의 선물을 주어 신앙을 성숙시키고 증거케 하는 성사. 칠성사의 하나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성사를 통하여 성장하며 그리스도의 구원행위에 참여하고 하느님을 만나며 구원의 은총을 얻는다. 성세성사가 우리로 하여금 처음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죄의 용서를 받으며 하느님의 새로운 자녀로 탄생시켜 주는 것이라면, 견진성사는 성숙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교회의 완전한 구성월이 되게 하는 것이다. 성서에서 견진성사를 집행한 사례로는,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서(사도 8:14-17), 바울로가 일찍이 직접 세례를 준 적이 없는(1고린 1:17) 에페소에서(사도 19:1-6) 각각 이미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은 신자에게 안수를 하여 성령을 충만히 받게 함으로써 견진성사를 집전한 사실을 들 수 있다. 한편 성세와 견진을 연결하여 하나의 전례로 집전한 경우도 있다(사도 10:44-48). 이와 같은 사도의 전승이 교부시대에 계승되었는데 테르툴리아노(Tertullianus)와 치프리아노(Cyprianus)를 비롯한 교부들의 서한에서 그 사실이 나타난다. 견진성사의 성사성 또한 예루살렘의 치릴로(Cyrillus of Jerusalem)와 바실리오(Basilius) 등 교부들이 남긴 저서에 잘 표현되어 있다. 다만 5세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성세와 견진이 하나의 예절로 집전되었다. 그 이후 양자가 분리된 것은 시골 성당에서나, 질병 등으로 죽음에 임박한 상황에서 성세만을 받은 신자에게 주교가 안수를 하여 성세를 완성시키는 관행이 계기가 되었다. 12세기에 신학자들이 성사의 종류를 설명할 때 견진을 성세 다음 순서에 두었고 리용 공의회가 이를 확인한 바 있다.
견진성사를 독립된 성사로 보게 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은 사실과 성령강림에 있다. 견진의 자세한 예절은 사도들에게 위임된 셈이다. 로마 전례상 견진예절은 신자의 머리 위에 주례자가 안수를 하고 그 이마에 성유로 십자를 그으며 성령의 임하심을 기도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안수와 기름바름 가운데 전자는 사도전승(사도 8:14-20, 히브 6:2)을 이어받은 것이고, 후자는 동방교회의 전통을 살린 것이다. 물론 양자의 보다 오랜 기원은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 전승에 있다. 견진성사에서 안수가 상징하는 것은 성령이 신자를 거느리고 신앙의 역군으로서 그 사명을 다하도록 축성하시는 사실이다. 도유는 성령이 신자를 왕이요 세제이며 예언요 증거자로 축성함을 나타낸다.
견진성사의 효과는 성세를 완성시키고 (신앙선포의 성령칠은을 받게 하며) 인호를 남긴다는 점이다. 견진이 성세를 완성시킨다는 말은 성세가 불완전한 성사임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그리스도가 죽음과 부활로 이룩한 구원을 성령이 강림함으로써 구원의 결실을 내고 거룩하게 하는 관계와 같다. 성세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일치시키고 견진은 성령강림의 은혜를 주는 것이다. 견진성사로 우리에게 오시는 성령이 성세성사 때에도 오심은 물론이다. 다만 성령의 역사하심이 다를 뿐이다. 성령은 그리스도가 동정녀에게 잉태되었을 때는 하느님의 아들이 되게 하였으나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는 그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공적으로 드러내 보임과 아울러 고난받는 종의 사명을 받아들이게 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은 사람이 세례를 받을 때에는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시고, 견진을 받을 때에는 영적으로 성장시켜 하느님의 자녀된 신분을 공적으로 드러내어 신앙을 고백하고 증거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견진의 효과인 용기의 선물 또한 신앙을 용감하게 증거하며 필요하면순교까지도 불사하는 용맹을 주는 은혜이다(사도 1:8,5:32, 요한 15:26-27 참조). 견진의 인호를 받아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며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고 방어한다. 견진성사의 고유한 집전자는 주교이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 사제도 집전할 수 있다(교회법 882-888조 참조). 견진성사의 대상은 성세받은 신자로서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연령에 도달한 자이다. 다만 그 연령에 관햐여 지역 주교회의가 달리 정할 수 있는 등 예외를 두었다(교회법 891조). 견진을 받은 신자에게 대부모를 두어 견진받은 산자를 그리스도의 진정한 증거자로 생활할 수 있게 보살펴 주도독 하였다(교회법 893조).
겟세마니 [영] Gethsemane [그] Gethsemanei
예루살렘의 동쪽, 기드온 계곡 건너 올리브산 서쪽 기슭에 있으며, 에리코 가도(街道)에 면한 동산(요한 18:1).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자주 이곳에 왔었다. 특히 체포당할 때 여기서 최후의 기도를 올렜다(루가 22:44). 겟세마니는 히브리어로 ‘기름 짜기’의 뜻. 가톨릭 교회의 동산은 돌답으로 둘러싸이고, 넓이는 1,400㎡이며, 그 회당 옆에 수백 년 묵은 올리브나무 몇 그루가 있다. 그 위쪽에 그리스 정교회의 동산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