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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적 영성 – 인간적, 삼위일체적 영성..

   3.2.3. 다양적 영성   우리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지만 또한 의식과 자유라는 고유한 특성을 지닌 개인이기도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영성은 그 개인이 어떤 비인격적 집단에 흡수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어떠 수도회나 어떤 영성학파 또는 어떤 교회 운동이나 특별한 집단도 영성이나 신성함을 독점할 수 없다. 하느님을 체험하는 데 있어서나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께 대한 체험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유일한 길은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영성을 개발하기 위한 가능성은 매우 다양한 것이다.    따라서 영성의 어떤 특정한 형태도 사목자들을 포함한 신자 어느 누구에게 강요할 수 없다. 각 사람은 언제나 일반적인 교회 및 신자들이 관련된 특별한 신앙 공동체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하느님과 지기 자신의 개인적인 관계를 돈독히 할 자유를 지녀야만 한다. 여기에는 취해야할 균형이 있다. 어떤 영성도 특이하고 인지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개별화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어떤 영성도 모두에게 적용되어야 할만큼 획일적이어선 안 된다. 즉 그 영성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드러나게 혹은 부지불식간에 비난받고 질책받아선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제가 채택하지 않으면 안 될 어떤 하나의 사제적 영성은 없으며 수도자들이나 교리교사들 그리고 신자들을 위한 어떤 하나의 영성도 없다. “필요한 일에 있어서 일치하고 불확실한 일에 있어서 자유를 존중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사랑을 보존해야 할 것이다.”(세계의 사목헌장,92항) 그리스도교 영성은 다원적인 것이지 완전히 획일적인 것이 아니다.    3.2.4. 인간적인 영성   세례성사를 받은 우리 안에 하느님은 현존하시고 활동하신다. 실로 하느님은 인간적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정의 자체와 관련되어 있다. 창조와 구속에 대한 제 교리는 그리스도인이 물질적인 것, 육체적인 것, 자연적인 것 만질 수 있는 것, 볼 수 있는 것, 역사적인 것, 구체적인 것들을 거절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어떤 진정한 그리스도교 영성도 인간적인 것들을 억압하는 것을 정당하게 지지하거나 또는 천한 것으로 여겨지는 인간 존재의 전체적 구성 요소들(예: 정열들이나 보다 낮은 욕구들)에 무관심할 수 없다. 인간적인 것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시하는 것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지탱해 주시는 하느님과 육신을 취하시고 인간을 구속하신 그리스도 그리고 인간을 새롭게 하시고 인간들 상호간에 그리고 하느님께 좀더 가깝게 이끄시는 성령께 무관심하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영성은 인간적인 것이지 반인간적인 것은 아니다.    3.2.5. 삼위일체적 영성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하느님은 삼위일체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영성은 삼위일체적인 것(trinitarian)이지 그것을 부정하는 일신론적인 것(unitarian)이 아니다.   우리는 성부에 의해 창조되고 불림받고 지탱되며, 성자에 의해 구속되고 재창조된다. 그리고 성령에 의해 쇄신되고 충만하게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부여받는다. 그러므로 만일 성부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만을 형성하려 하거나, 성자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만을 이루려하는 영성 또는 성령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만을 주장하는 영성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그리스도교적인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히느님의 첫째 위격만을 주장하는 유니타리안교(Unitarianism) 경우, 그들은 인간을 창조하셨으나 인간의 존재와 업무에서는 본질적으로 동떨어져있는 먼 하느님을 전한다. 그것은 ‘하늘 높은 곳’에 계신 하느님 관념을 갖게 함으로써 인간이 그분께 특별한 경우에 입으로만 경우를 표시하며 그분은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도록 그를 혼자 내버려 두신다.  그들은 또한 어떤 특별한 역사적 사건(육화 사건 등)과는 관계가  없는 성령을 전한다. 역사는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단지 현재의 성령체험만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영성은 삼위일체적인 것이지 일신론적인 것이 아니다.    3.2.6. 복음적 영성   그리스도교 영성은 시종 일관 복음적이다. 어떤 이념이나 파벌적 사고나 삶이 아닌, 하느님 말씀에 근거한 영성이다. 영성의 규범과 교과서는 성삼위의 신비 안에서 성부의 뜻을 찾고 행하시며 가르치신 예수 그리스도께 관해 기록한 책인 복음 성서와 그 밖의 성서 말씀이다.    3.2.7.성사적 영성   믿음의 공동체의 삶의 체험인 전례생활은 영성의 중요 부분이다.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전례헌장 10항)이다. 또한 “전례, 특히 미사성제에서 샘에서와 같이 우리에게 은총이 흐르고 여기서 성교회의 모든 활동의 목적인 성화와 하느님의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가작 효과적으로 실현되는 것”(전례헌장 10항)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이며 또한 효과적으로”(전례헌장 11항) 참여하도록 불린다.    그리스도인에게 공동체와의 연결(일치)은 온갖 부류의 인간 생활을 신앙의 맥락 안에서 포용하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신비에 조명되어 자신들의 세계와 역사를 볼 수 있는 공통 목적, 관심 그리고 목표를 제공한다.   실로 미사 안에서 신자들이 만남, 친교, 나눔의 장이 이루어져야 하며 하느님께 공동으로 기도하고 또한 공동으로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주일 미사를 공동체나 이웃과 단절된 채 하느님과 개인적 관계로 즉 채워져야 할 의무로 여겨선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또한 성세, 견진, 고백, 성체, 혼인 성사 등을 생활 안에 구현하도록 해야한다.   한편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어디서나 현존하시고 활동하시므로 모든 실재, 즉 개인적, 자연적, 역사적, 우주적 실재는 성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느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제 실제 안에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제 실제에 의하여 전달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영성의 지평 또는 범위는 항상 창조된 질서 자체와 마찬가지로 광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냐시오 로욜라가 역설하였듯이) 항상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 하겠다.   진정한 그리스도교 영성은 인간 실재의 중요한 구성 요소들, 즉 전례와 기도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예술, 문화, 과학, 그리고 오락 등으로부터도 단절되어 있지 않다. 모든 것은 하느님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하느님은 모든 것에 현존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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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적, 타자 지향적 영성

 3.2.1. 전인적(全人的) 영성   인간은 순수한 육체적 피조물도, 순수한 영적 피조물도 아니다.  인간은 이 둘 중 어느 하나가 아니고 육체와 정신(또는 영혼)의 존재이다.   바울로 사도의 편지에서 나타나는 영과 육의 대결은 인간의 육체와 영혼의 대결이 아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데로 지향되어 있는 전인적인 인격의 대결이다. 바울로 편지에서의 영과 육의 대결을 잘못 이해할 때엔 육체, 인간의 정서, 정열, 사회적 관계들, 물질적 환경 등을 경시하는 경향으로 기울게 된다. 그러할 경우, 마치 인간은 참으로 영과 육의 존재가 아니라 이 ‘눈물의 골짜기’에서 풀려나기를 늘 기다리며 육체 안에 갇혀있는 영적 존재인 것처럼 행동한다.   육체를 경시하는 영성은 실상 창조주이시고 구속자이시며 성화자로서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역사(役事)를 부인하는 영성이다. 하느님이 인간을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은 육체적 존재이다. 설령 인간이 육체적인 방식으로 죄를 짓는다 할지라도 인간의 육체적 존재는 말씀의 육화로 말미암아 오히려 더 높은 수준으로 들어올려졌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인간은 항상 활기를 얻게 되었고 그 안에 하느님이 끊임없이 현존하심으로써 새로워지게 되었다.   물론 인간은 영적인 피조물만이 아니듯이, 육체적인 피조물만도 아니다. 그러므로 영을 제외하면서 육체를 들어높인 영성은  모순적인 것이며 빗나가 있는 것이다.   사목자는 영적인 곤경에 처해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육체적 곤경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이한 봉사까지 지향해야 한다. 사목자가 육체와 영혼을 지닌 사람인 것처럼 그 사목자가 봉사하는 사람들 또한 육체와 영혼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사목적 영성은 이원론적인 것이 아니라 전인적인 것이어야 한다.    3.2.2. 타자 지향적 영성   인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여성은 하느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과의 관계에 있어서 개인적인 것으로만 제한하고 고립시킬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영성은 우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개방해야하는 것이지 그들로부터 우리를 폐쇄시키는 것이 아니다.   “성인과 함께 살 수 없다” 라든지 “성인과 함께 사는 것은 순교한는 것이다” 라는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가끔 신성함을 괴상함이나 이상함과 동일시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사람이 성인같애서 함께 식탁에 앉으면 좀 야한 농담조차도 결코 해선 안된다든지 너무 조심스러워해야 할까?  아무 때나 그리고 아무 곳에서나 함께 기도하기를 강요한다고 할 때 그의 그러한 열성 때문에 성인이랄 수 있겠는가? 성인과 결혼했다면, 그의 거룩함이란 정열을 가지고 바라보거나 접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거룩함이나 신성함이란 괴상함이나 괴팍함이 아니다. 그것은 건전함이다. 그것은 상식적이고 건강한 것이다. 만일 성인이 우리에게 복음의 가장 높은 규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따라 생활하지 못한 우리 자신의 실패를 상기시켜 주기만 한다면 성인과 함께 살거나 일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성인들은 덕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앙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명함과 정의 그리고 절제와 용맹의 덕을 지닌 분들이다.  그들은 자비와 연민의 정을 지닌 분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우리의 유한한 인간적 여러 요구와, 주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의 위대함 사이에 커다란 차이를 분명히 보기 때문에 섬세한 유우머 감각을 지니고 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영성은 이기적인 거시 아니라  타자 지향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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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특성 및 척도들

3.2. 영성의 특성 및 척도들1)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에 마음을 씁니다”(로마 8,5).   영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삶에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이 있다는 지식을 가지고 그 지식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영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개인의, 사람들 상호간의, 사회의 원리로서 그리고 우주의 변화의 원리로서 은총을 통해 우리에게 현존하신다는 인식을 가지고 그 인식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을 따라 사는 것, 성령께 개방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 그리고 되어야할 존재와 그 존재에 어울리게 우리의 삶을 관리할 소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성이란 말은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 현존하시고 또 초월하시는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에 관하여 우리가 존재하고 생각하며 행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영성은 우리 안에 그리고 성령의 성전인 교회 안에 살아 계신 성령의 현존에서 나오는 생활 양식으로 정의될 수 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헌장(5장 참조)에서 성화성소의 보편성을 선언하였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k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5) 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그분의 모든 제자에게 그들의 지위나 환경과는 관계 없이 적용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종교의 영성, 다양한 그리스도교파의 영성 뿐 아니라 우리 교회 안에서도 수도회들의 영성, 수많은 교회 운동들과 새로운 형태의 영적 주장과 흐름들이 있다. 교회의 사목자들은 어느 것이 진정으로 가톨릭적 그리스도교 영성인지를 식별하고 판단하며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치는 빗나간 영성 운동이나 흐름을 분별해내며 문제점을 분석해 내야 할 것이다. 다음의 것들은 가톨릭적 그리스도교 영성의 주요 특성 및 식별 척도이다. 1. 그리스도 영성은 전인적(全人的)인 것이다. 2.그리스도교 영성은 타자 지향적인 것이다. 3. 그리스도교 영성은 다양성을 지닌다.  4. 그리스도 영성은 인간적인 것이다. 5. 그리스도교 영성은 시종 일관 복음적이다. 6. 그리스도교 영성은 삼위일체적인 것이다. 7. 그리스도 영성은 성사적인 것이다. 8. 그리스도 영성은 하늘 나라 지향적인 것이다. 9. 그리스도 영성은 희생적인 것이다. 10. 그리스도 영성은 교회 지향적인 것이다. 11. 그리스도교 영성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다. 12. 그리스도 영성은 계시진리에 의한 신학적 검증과 뒷받침(지지)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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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몇 가지 고찰

3. 영성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몇 가지 고찰   3.1. 영성에 대당되는 의미들(영성에 관해 잘못 이해된 의미들)     ①영성은 신비적 체험이나 종교적 정서(감동, 감상주의)와 동일시 될 수 없다. 신비적 체험과 동일시할 경우, 영성생활을 하나의 환상으로 전락시키는 결과에 이를 수 있고, 종교적 감동과 동일시할 경우 영성생활에 있어 인격적 하느님을 잃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영성생활에서 넓은 의미의 신비체험(세레, 기도, 감사로움 체험)이 필요하고, 좁은 의미의 신비체험<탈혼, 시현, 말씀(locution), 계시, 성흔, 공중부양 등 – 신흥종교가 이 점을 중시하며 강조함>이 있을 수 있다.   영성생활에서 정적측면이 무시될 수 없고, 오히려 중요요소이지만, 감정에만 호소되거나 예속되어서는 안된다(신흥종교들이 이런 경향이 있음). 지(知), 정(情), 의(義)의 조화가 필요하다(성령쇄신운동, 부흥회 등 이런 경우 주의를 요한다).     ②영성생활을 어떤 영적 이상(理想)과 혼돈해선 안된다. 영성생활은 비현실적 영적관념으로 지배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현실적 영성인이다(루가6,46: 말씀따라 사는 사람 ; 갈라5,25 : 성령의 지도에 따라 사는 사람). 혼돈할 경우 땅에 발을 디디고 뜬 구름잡으려는 격이 된다. 이원론적 영성으로 빗나갈 수 있다(육과 세상 경멸하는 영성).  구원(성화) =  은총 + 인간의 협력 : 기도, 성서읽고 묵상, 사랑실천, 복음선포.     ③영성은 율법주의나 윤리주의적 미덕(美德) 추구에 있지 않다. 윤리주의적 미덕을 추구한다는 구실로 강요되는 의미없는 형식적 법이나 전통은 – 살아계신 하느님을 잃게하며, 소심하고 법칙준수로 자족자만하는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은 – 오늘의 율법주의자나 바리사이파 사람을 형성한다(예수님 시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외적으로는 잘 살았으나 그 근본정신(사랑)을 놓쳤음). 물론 교회법, 영성적 규범이나 지침을 무시할 수 없으나, 그 근본정신을 잃어서는 안된다. 영성생활의 본질은 성령의 이끄심에 따르는 삶이다.   율법주의 자세는 Pelagianism을 추구하게 된다<Pelagius(+418)와 그의 추종자들이 주장한 은총과 구원에 대한 이설임. 원죄의 결과를 부정 내지 경시하면서 의화와 구원에 있어 인간의 주도권을 강조함. 은총을 그것을 쉽게 하는데 필요할 뿐이라고 함).     ④영성은 경건한 자태(Pietismus)나 정적주의(Quietismus)가 아니다. 영성은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힘에 이끌려 밖으로 들어나기 때문이다. 영성은 무조건적 열심과 다르다. 더구나 빗나간 열심과 드르다. 그러므로 영성은 정체적일 수 없다. 영성생활은 보다 강한 생활로 그리스도와 밀접히 일치하기 위하여 성령의 역동적인 힘에 이끌려 언제나 전진하는 것이다. 그러한 그리스도와의 일치의 삶은 자연히 밖으로 표출되기 때문이다<Quietismus(靜寂)- 17C 블란서 신학자들이 주장한 이설임. 그리스도교 완성이란 죄악과 싸우는 인간의 노력적 행위나 도덕성등의 외적인 행위에 의해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김으로써 도달하는 영혼의 정적상태에서 이루어진다. 그 상태에 도달한 이는 절제도, 성사생활도 필요없다>.     ⑤영성은 물질이나 육을 배제하거나 벗어나 독립되는 것이 아니다. 물질을 제일의 가치로, 우선적 가치로 추구하는 것은 영성생활이 아니다. 영과 물질은 서로 배제하거나 반대되기 때문이 아니고, 완전성에서 영이 물질보다 상위이기 때문이다. 영성생활은 하위의 물질(물리적 측면)이 상위의 영(영성적 측면)에 종속될 때에 이루어진다.   인간은 영혼으로 대표되는 영과 육신(육체)으로 대표되는 물리적 측면(물질)로이루어진 단일체이기 때문에, 육체적인 것만을 따라 가거나 그것을 먼저 추구하는 삶은 영성ㅇ적 삶이 아니다. 지나치게 현세적 재물이나 명예에 지착하고 있거나 육체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생활이라면 올바른 영성생활이 아니다.   한편 육체와 물질을 거부하고 순수히 영적인 것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세상의 발전과 사회참여, 이웃사랑을 경시한다면 그것은 그릇된 신심주의이며 빗나간 영성이다.    건전하고 올바른 영성생활은 인간의 영과 육의 단일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성령의 이끄심인 영성이 상위적으로 모든 삶을 주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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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종말적 측면과 육화적 측면

2.4. 영성의 종말적 측면과 육화적 측면   종말적 영성이란 말뜻 그대로 이 세상의 끝, 죽음 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잘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하며 대기하는 삶이다. 이 영성은 세상을 잠시 지나가는 눈물의 골짜기로 보며, 인간의 본성이 원죄의 결과로 인해 하느님의은총과 대립을 이루게 되었다고 여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항상 꺠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본성을 억제하고 그분의 십자가의 고통에 동참하도록 권한다. 여기에는 현세적 삶에서의 초월, 관상적 기도, 완덕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고행, 희생, 극기, 포기 등이 강조되고 따라서 개인적 신앙이 발전된다. 이러한 영성적 경향은 초세기 박해시대에 순교를 염원하고 대기하던 신자들과 그 공동체 안에 짙었으며 박해가 끝난 후에는 새로운 순교형태로서의 복음삼덕을 철저히 실천하던 은수자 및 수도자들에 의해 이어졌다.   육화적 영성은 그리스도의 육화의 신비로 구원되고 성화된 세계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하려는 자세의 삶이다(그리스도를 끊임없이 세계와 인간들 사이에 태어나도록 추구하는 것이다). 이 영성은 현세적 사물과 인간의 삶에 대한 긍정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자연이나 인간의 본성적 능력이 초자연적 질서에 의해 강화되고 거양되어 은총의 힘과 조화있게 합쳐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금지, 극기, 포기, 고행 등 부정적 측면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부인 듯 소개하면 그것은 오히려 그리스도교 가르침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부활을 앞당겨 사는 이로서 그의 삶은 기쁨과 희망, 자발성과 용기, 자유와 사랑 등으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상의 모든 이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 들이면서 성화되도록 하고 인간생활의 모든 환경을 복음화시키며, 모든 사물을 하느님의 뜻안에서 질서있게 정리하는 노력, 즉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끊임없이 건설하고 확장하려는 역동성이 강조된다. 따라서 이 영성은 이웃 사랑의 실천, 복음선포, 봉사활동, 사회참여와 정의 실현의 추구 등 수평적으로 개방적인 삶을 통해 복음을 표현하려 한다.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핵심이며 신앙생활의 본질인 사랑은 두 관계를 이룬다. 하나는 수직적 측면으로서 하느님과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수평적이 것으로 이웃과의 관계이다.    종말적 영성이 수직적 측면에 더 치우친다면 육화적 영성은 수평적 측면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교회는 이 두 측면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긴장하면서 노력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한 측면이 우세를 나타내면서 영성생활에 불균형을 가져오곤 했음을 우리는 영성사에서 살펴볼 수 있다. 종말적 영성, 즉 신앙생활의 수직적 관계가 지나치게 강조될 때, 초자연주의 현상을 나타내면서 수직주의 또는 종말주의로 기울게 된다. 이웃에 대한 봉사나 사랑의실천없이 기도, 재계, 극기 등 개인적 수덕을 통해서 완벽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하느님을 이 세상 현실이나 인간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존재로 보며 신앙생활을 그러한 분과의 수직적 관계로만 축소시키는 경향이다.   한편 영성생활에 있어 수평적 관계가 너무 강조될 때 세속주의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이웃사랑을 통해 하느님께’라는 이웃과의 개방 및 봉사관계를 일방적으로 과장하는 경우이다. 여기에 흔히, 이웃에게 참된 봉사를 하기 위해 필히 이루어져야 하는 하느님과의 지속적이며 긴밀한 관계, 즉 기도와 묵상이 차차 소홀히 되고 사랑과 봉사의 근원이며 원동력인 참된그리스도인 정신이 차차 흐려지게된다. 그리고 흔히 사도적 애덕정신에서 시작된 활동이 박애주의적 및 사회사업적 성격으로 변해진다.   참된 그리스도인 생활은 수직적 혹은 종말적 영성과 수평적 혹은 육화적 영성 중의 택일이 아니며 양 측면의 알맞은 조화와 균형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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