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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의 문제점을 설명하시오
뉴에이지 운동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시오. 뉴에이지란 물질주의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기존 사회, 문화, 종교 안에서 더 이상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영적 공허를 느낀 사람들이 이것을 탈피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종교적 인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이것이 ‘뉴에이지’(New Age) 이다. 1. 어원 뉴에이지의 어원은 점성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약 26,000년의 시간이 한 궤도로 구성되는 “황도” 안에 12좌의 별자리가 있다. 이 별자리는 약 2,100년 마다 한 좌에서 다른 좌로 넘어가는데 이 기간을 “에이지”(Age)라 한다. 구약은 “양”자리, 신약은 “물고기”자리 현대는 새로운 새대로서 “물병”자리(Aquarius)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병은 인간의 정신의 갈증을 채워줄 새로은 “개인적 영성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2. 신학 2.1. 신론 뉴에이지의 신론은 한마디로“범신론”이다. 그래서 뉴에이지의 기본 노선은 “모든 것은 하나이다.”(All is one)이라는 일원론(monism )이다. 이러한 사상은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인격적인 분인 아니라 단지 우주의 원리로서 모든 것 안에 침투해 있으며 나 또한 신(神)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신 개념의 또하나의 특징은 “모성적 특성”이다. 이것은 원시 종교에서 종종 나타나는데 기쁨과 즐거움으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기본 욕망을 표현 한 것으로 아무런 힘을 드리지 않고서도 은총상태에 도달하려는 우주적 관용을 말한다. 2.2. 그리스도론 그리스도는 우주의 에너지의 육화로서 붓다나 공자와 같은 여러종교의 위대한 스승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우주의 충만으로서 깨달음을 통해 누구나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 3. 기본 사상 3.1. 전체주의 뉴에이지는 세계를 단편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하나로 본다. 인간은 작은 우주이다. 3.2. 의식변형 인간의 의식은 신성에 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은 깨달음을 통해서 가능한데 그 방법으로써 요가, 선, 환각제, 마약 등을 통해 황홀경으로 들어간다. 3.3. 생태학 뉴에이지는 “자연 중심” 사상이다. 체계나 논리를 거부하고 자연과 우주를 경외한다. 인간도 단지 이러한 우주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3.4. 환생 뉴에이지를 한마디로 종합할 수 있는 중심사상이 바로 “환생”(還生, Reincarnatio)이다. 환생은 부활을 반대한다. 환생은 불교와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이들 종교가 환생을 업에 의한 벌로 보는 반면, 뉴에이지는 완성의 도달하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3.5. 강신술, 영매 강신술과 영매를 통해 물질과 영혼을 매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통교를 믿는다(영화 「사랑과 영혼」은 국가대표선수). 3.6. 조직 뉴에이지의 조직은 기존의 체제나 조직이 없다. 단지 필요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회원제(Membership)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 잡지, 텔레비젼을 통해 이 사상을 전파한다. 4. 뉴에이지의 문제점(평가) 4.1. 자력구원 뉴에이지는 “모든 것이 하나이다”라는 사상을 통해 우주적 인본주의가 되게 한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잠재된 자아를 우주적 실재와 일치시킴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뉴에이지에서는 종교는 필요가 없어진다. 자기 스스로가 개발과 실현, 환생과 해방을 통해 구원을 이루어내게 된다. 4.2. 범신론 … 계속 읽기
나오면서-
나오면서 위와같이 우리는 현대 문명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깊이 침투해 있는 ‘뉴 에이지 운동’에 대하여 알아보고, 또한 긍정적안 요소들과 위험한 요소들에 대한 평가를 내려보고, 더불어 뉴 에이지를 극복할 방법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뉴 에이지는 무엇보다 그리스도교의 근본진리와 위배되기에 결코 합치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 뉴 에이지 현상들을 통해 긍정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들은 그들의 기본관점과 사상때문에 거부하며, 또한 그들의 긍정적인 것들도 이미 교회안에 있는 것들이고 진행중인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뉴 에이지의 운동가의 한 사람인 Marilyn Ferguson은 “많은 사람들이 뉴 에이지에 빠져 들어감으로써 교회가 더 이상 그들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게 되고, 그로써 그리스도교는 몰락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좀 더 의미있고 가치있는 것을 갈망한다” 라고 말하듯, 그리스도 교회는 교회의 신앙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뉴 에이지 운동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적극적인 뉴 에이지의 실재 파악과 홍보로 신자들에게 알리며,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삶의 방향제시를 해주어야 한다. 또한 뉴 에이지를 극복할 대안들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와 대응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겠다. 특히 ‘성서중심’과 ‘신비주의’에 대한 다양하고 올바른 평가로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 그분의 고상한 부르심에 응답하고 삶으로써 열매를 맺어 응답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끝없이 따라가는 추종의 자세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 신앙도 신학도 윤리고 양심도 삶으로서 검증되고 구체화 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도 없고 쓸데없는 공론에 불과하고 말리라. 또한 교회는 뉴 에이지 운동이 생기게 된 원인을 잘 파악하여 과연 이 시대의 사람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고 추구하고 있는 지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와 시도가 필요하다. 제도화된 기존 종교에 대한 반발로 생긴것이 뉴 에이지 운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진정 이 시대가 원하는 참다운 의미에서의 ‘뉴 에이지 운동’, ‘새 시대 운동’을 교회가 이끌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뉴 에이지 운동은 현실적이고 침투력이 강해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 신조와 활동은 일반 문화에 동화되어 현대 문화 조류와 혼합됨으로써 점점 몰락해 가는 인간의 정신을 강하게 끌어 당기면서 성장을 계속할 것”(Christian Author, Robert Burrow)이기 때문이다.
뉴에이지의 극복 – 성서중심과 신비주의
5. 뉴 에이지의 극복 – 성서중심과 신비주의 앞에서 뉴 에이지는 결코 새로운(New) 것이 아니라 옛(Old) 것을 다시 혼합시킨 것 뿐이라는 것을 언급했듯이, 그리스교인들은 이러한 뉴 에이지의 사상을 앎으로써 이것을 식별하고 극복할 수 있어야 하겠다. 새로운 세대, 즉 참된 의미의 뉴 에이지는 점성학에 의해 지금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나라가 벌써 도래했으며 그리고 그리스도로부터 이미 영적인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그리스도교 신앙은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그분이 세상과 우주의 주님이시며 우리 삶의 근원(참조 골로 1, 5-20) 이시며 우리의 영적 갈증을 한없이 해소시켜 주는 생명의 물(요한 4,5-45)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참된 의미의 뉴 에이지, 즉 새로운 시대를 성취하고, 새로운 복음화와 새로운 신앙실천과 나눔으로 나아가기 위해 성서중심으로, 복음속에 숨겨진 에너지에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제양성교령(Opetatem Totius)’ 5장 16항에서는 바로 모든 신학이 “성서의 가르침으로 부터 보다 풍부하게 자양분을 섭취하여, 그리스도로 부터 신자들이 받은 성소의 고상함을 깨달아 응답하게 하고, 현세적 삶 속에 사랑의 열매를 맺도록 신자들의 의무를 밝혀 주어야 한다”고 하여 ’성서중심‘으로 되돌아 가야 함을 강조한다. 교회가 살아있는 주체로서의 바탕인 ’신앙‘’을 가지고‘성서’를 통해 주어지는 계시진리를 파악하여 ‘삶’으로서 나타내고, 삶의 방향을 적극적으로 제시해 줄 때, 뉴 에이지와 같은 그릇된 사상과 생각은 결코 신앙인들을 위협하는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명상을 통해 영성적 감수성이나 친밀한 내적자아를 발견함을 강조하는 뉴 에이지의 사상 역시 그리스도교 신앙과 역사안에 이미 있었던 ‘신비주의’ 표현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이 ‘신비주의’적인 면을 강조하고 활성화 시킴으로써 뉴 에이지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현대가 추구하는 정신적 요구를 채워줄 수 있는 위대한 신비가들과 신비주의의 전통을 – 현대에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 보유하고 있다. 예컨대 성 프란치스코의 영적사상과 감각은 매우 뛰어나고, 십자가의 성요한, 아빌라의 데레사, 토마스 머튼 등이 있고, 아직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으나 매우 뛰어난 녹색의 신비주의가인 빙겐의 힐데가르트 등이 있다. 따라서 올바른 명상과 피정에 주력하여, 영성생활의 체험과 양식을 제공하는 기도 모임과 여러가지 신심운동을 장려해야 하고 명상, 관상, 묵상기도, 성체조배 등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예컨대 그리스도와 신앙안에서 그분과의 기도, 영적인 대화에 활력을 넣어줄 방법으로 선, 요가, 단 등의 수행방법을 받아들여 현대인의 정신적 요구를 충족시켜 줌도 유익하리라고 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삶속에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것으로서 검증되고 드러나지 않을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고, 참다운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리라.
위험적 요소들
나. 뉴 에이지 운동의 위험적 요소들 뉴 에이지 운동은 개인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 자기를 경험하는 인간의식의 확장을 강조하는데, 이 의식의 팽창을 위해 인간의 호기심과 생명력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나 추구한다. 예컨대 몰아경을 경험하기 위해 약물이나 마약을 통해 황홀경의 의식에 도달할 수 잇다고 하는데, 이는 결코 합리화 될 수 없다. 많은 청소년들, 마약 중독자들이 생겨 사회적인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진정한 새세대를 이루겠다는 그들의 사상과는 정반대 현상,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뉴 에이지는 기본 관점(신관, 인간관, 구원과, 그리스도관, 종교관, 역사관, 윤리관 등) 들에서 살펴 보았듯, 결국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들과는 정면적으로 반대된다. 범신론으로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영적 스승정도로 보고, 인간들도 깨달음을 위해 노력하면 예수와 같아진다는 것이다. 종교도 그 종교의 진리성보다는 초월적인 면을 강조하기에, 수많은 종교들을 혼합하여 밀교형식으로 만들어 버리고, 실제 사랑․봉사․희생 등 실천적 측면에서는 거의 소극적이며, 종교적 실천은 실제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뉴 에이지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를 제멋대로 해석한다. 예컨대 루가 22장 10절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예수는 물동이를 메고 가는 사람의 길을 준비하는 예언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미래에는 아콰리우스나 아콰리안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는 것이다. 또한 뉴에이지에서 말하는 우주적 에너지로 남을 치유하여 구원하는 것은 자연적으로 이러한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원시종교나 샤머니즘의 마법이나 마술의 실행과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뉴 에이지의 ‘모성적 하느님’이라는 하느님 개념은 기존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나쁜 행위에 대한 벌을 안받고, 고통과 두려움을 당하지 않으려는 신적의지와의 만남에서 파악된 개념이다. 즉 이는 인간이 삶의 의미와 즐거움으로 되돌아가려는 인간의 기본욕망이 깔려 있다. 그래서 성적인 문란, 온갖 쾌락을 부정하지 않는다. 또 하느님 자리에 다른 영들을 대치하는 강신술, 영매사상에서 육체이탈이라는 개념으로 자기 중심적인 자유로운 결단으로 죄악감을 느끼지 않는 욕망대로의 삶으로 모순에 빠진다. 뉴 에이지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남으로써 계속 자신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윤회사상(輪廻思想) 즉 ‘환생(還生)’을 주장한다. 이는 불교나 힌두교에서 처럼 ‘벌’의 결과가 아니기에, 뉴에이지의 환생은 인간이 행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 개인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게 된다. 그래서 이 환생의 개념은 많은 현대인들에게 목숨을 경시여겨 자살을 시도하게 하고, 그것이 자기실현이라고 믿는 거짓 믿음에서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다. 뉴 에이지 운동의 침투현상에 있어서 의식, 문화, 체계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사상에 빠져들 수 있기에 올바를 이해와 판단이 필요하다. 특히 영화, 출판, 예술, 상품 등과 같은 쉽게 일반인들이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대중매체의 방법으로 어린이에서 노약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젖어들 수 있기에 매우 위험하다.
뉴에이지 운동의 평가 – 긍정적요소와 맹정들
4. 뉴 에이지 운동의 평가 –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우리는 위에서 뉴 에이지 운동이란 무엇인지 그 특성과 성격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 뉴 에이지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통해 뉴 에이지는 결코 그리스도교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햐면 뉴 에이지는 결코 진정한 새로운(New) 것이 아니라 옛(Old)것을 다시 혼합시켜 인간의 내적 능력을 계발시켜 우주의 차원에 도달하려는 것이기 떄문이다. 뉴 에이지에는 분명 긍정적인 요소들도 보이지만,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도 있음이 사실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요소도 보여지는 활동(Act)안에서 보여지는 것일 뿐, 한편으로 그 기본 사상과 관점에서 바라볼 때, 결코 평가에 있어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면 뉴 에이지 운동의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이고 위험적인 요소들을 살펴 보겠다. 가. 뉴 에이지 운동의 긍정적인 요소와 그에 따른 맹점들 뉴 에이지 운동이 지닌 정신적 가치와 신성을 중요시하고 이에 투신하는 것이나 현대의 세속주의와 과학적 합리주의를 극복하고 초월적 세계를 재발견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영성적 감수성을 강조하고 친밀한 내적 자아를 발견함으로써 이성과 직관을 조화시키고 이론보다 실천을 통해 인간의식을 계발하는 노력, 자연과의 조화를 재인식함으로써 환경보호 뿐 아니라 인간 생태계 즉 인간이 더불어 함께 누리는 삶을 강조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긍정적 요소들에 있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러한 뉴 에이지 운동의 활동과 요소들이 그들의 가장 중심관점인 “결국 인간은 신이다”라는 기본원리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절대적 신을 부정하고 인간의 현실을 벗어나 어떤 이상적인 세계를 그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의 지상주의, 합리화를 추구하는 것일 뿐, 그리스도교 신앙의 입장에선 결코 이룰 수용할 수 없는 일이다. 한편 뉴 에이지 운동이 자연보호, 환경보호에 적극 나서며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 우주의 한부분에 불과하다고 하명 결국 종교도 하느님과 인간간의 관계가 아니고 자연과 하느님과의 관계로 바뀌어 우주론으로 변질된다. 바로 범신론적인 뉴 에이지의 사상에서 진정 자연이 인간의 동반자로서 함께 호흡하며 상부상조의 관계에서 살아간다기 보다는 그들안에서 신을 발견할 수 있기에 죽이고 파괴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땅을 파괴하는 것은 신에 대한 최대의 모됵이므로 땅과 자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환경운동은 일반 사회적인 자연보호, 환경운동과는 그 본질에 있어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