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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결론  19세기 조선왕조는 정치․경제․ 사회․사상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이런 혼란의 시기에서 최제우는 민중을 구제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濟宣이라는 이름을 어리석은 백성을 구제한다는 의미의 濟愚로 바꿨다. 그는 이런 생각 속에서 20대에 팔도를 돌아다니며 그 방법을 생각해 보고, 민중의 생활을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소득 없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860년 4월 5일 신비한 체험을 하고, ‘한울님’께 도를 얻어 ‘東學’을 창도했다.  수운의 신 즉 ‘한울님’은 인간의 화복과 자연계를 다스리는 全知全能하신 초월적 존재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따로 떨어져 있는 분이 아니라 인간이 나면서부터 모시고 있는 내재적인 존재다.  이런 ‘한울님’을 잘 모시기 위해 기본이 되는 마음 자세는 誠․敬․信의 마음이며, 그 방법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三七字呪文이다.  인간은 주문을 통해 ‘한울님’을 섬길 수 있고 ‘한울님’을 알아모실 수 있다. 이러한 전제 조건으로 誠敬의 마음이 전제된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呪文을 외우고 하느님을 섬길 때 인간은 天命과 天理를 알아들어 道成德立하여 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 그 방법 또한 유가처럼 오랜 시간의 학습을 통해 가능하고 일부 계층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誠․敬․信의 마음으로 道를 깨닫고, ‘한울님’을 섬길 때 聖人․君子가 되는 것이다. 이런 東學의 理想的 人間觀은 유교처럼 폐쇄적인 人間觀이 아니라, 개방적이며 보편적인 人間觀이다.  최제우의 人間觀을 최시형은 실생활에 구체화했다. 그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胞胎說을 주장하면서 인간뿐만 아니라 만물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고 주장해서 汎神論으로 빠졌다. 손병희는 人乃天의 원리로 인간 본성을 규명하고 인본주의의 사회적 실천에 힘썼다. 그는 性心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질을 정의하면서 인간의 무궁함을 설명했고, ‘侍’를 覺天으로 풀이하여 ‘한울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한울님’이 어떤 분인지 먼저 깨닫고 자신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인간 본질을 깨닫게 했다.  東學의 人間觀은 근대 이후 인간을 존중하고, 나가 만물을 중요시한다는 면에서 사상적 발전을 가져왔으나, 인간을 너무 중요시하여 신적 위치로 격상시키면서, 정작 신의 위치는 격하시켰다. 人乃天思想은 無神論的 성격과 汎神論的 성격을 지녔다.  그러나 이런 東學의 사상은 근대적 人間觀을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수운의 侍天主思想은 ‘한울님’을 섬긴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東學의 입장은 유교나, 그리스도교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 하라’는 事人如天思想은 평등사상에서 한 걸음 나아가 사람을 恭敬하라는 주장이다.  이런 東學의 교리는 그리스도교의 愛主愛人思想과 비슷하다.  그러나 손병희가 侍天主思想을 발전시킨 人乃天思想은 근대적 人間觀형성에 도움은 되었으나 無神論과 汎神論的 문제를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이 곧 하늘이라면 인간과 하늘은 동등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하늘을 섬길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인간은 타인에게 봉사와 공경을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내가 하늘인데 굳이 하늘을 섬길 필요가 없고, 내가 중요한데 타인에게 봉사와 공경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잘못 해석하면 극도의 이기주의를 낳을 수 있다.  결국 손병희는 최제우와 최시형의 사상을 잇는 것 같으면서도, 모순된 교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Imago Dei’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Imago Dei란 하느님께서 인간은 자기의 형상대로 人格的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상대자로서 창조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피조물로서 하느님을 닮은 것이지 똑같은 존재는 아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머물러 있기 위해서는 언제나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하느님과의 거리감을 인식하며, 모상의 원천인 하느님과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느님의 모상인 구체적인 인간은 하느님을 대표하는 존재다.  이렇게 인간이 하느님을 대표하기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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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 – 무신화

Ⅲ. 무가 – 무신화 1. 무가의 종류 무가는 굿거리나 제의에서 무당이 가무로 굿을 할 때 신을 향해 구송(또는 창)하는 신가이다. 이 무가는 무의 신관을 비롯한 우주관, 영혼관, 내세관 그리고 존재 근원에 대한 일체의 사고가 종합적으로 체계화하여 직접 언어로 표현된 것으로 巫俗의 구비경전으로 볼 수 있다. 1979년까지 전국적으로 조사 보고된 무가 자료는 약 627편에 이른다. 이것을 성격상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부정계통 무가 : 제의 공간의 정화 2. 청신계통 무가 : 모든 신을 청해 오는 과정 3. 조상계통 무가 : 조상 4. 기자계통 무가 : 아이 5. 수명계통 무가 : 장수와 수명의 연장 6. 초복계통 무가 : 복을 빎 7. 제액수호계통 무가 : 액운을 물리침 8. 치병계통 무가 : 병 치료 9. 명부계통 무가 : 내세의 영생 10. 송신계통 무가 : 신을 보냄 여기에서 1, 2, 10은 굿의 앞과 뒤에 붙는 의례적인 무가이며 3에서 9까지는 무가의 중요한 핵심으로 모두 인간 존재의 획득과 그 인간 존재의 영구 지속 그리고 그 지속에 필요한 재물 획득으로 인간 존재의 영구한 지속 요구로 일관되어 있다.  2. 무가의 유형 巫俗의 무가는 서사, 서정, 전술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1979년까지 보고된 627편의 무가 중에서 약 100편의 무가가 서사적 양식의 무가이고, 나머지 대부분이 전술적 양식의 무가로 전승되고 서정적 양식으로 독립된 무가는 극히 적다.  서사적 유형의 무가는 개성을 가진 주인공인 신을 중심으로 일정한 사건이 객관적으로 서술되는 일정한 이야기이다. 즉 이 유형은 신에 의한 우주개벽1), 인간창조2)를 비롯한 지상만물의 창조로 존재의 근원을 밝히는 것으로 집약된다. 전술적 유형의 무가는 일관된 흐름이 없이 과거나 현재의 사실 그리고 미래의 원하는 사실을 단편적인 객관화된 사건으로 서술하여 신에게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유형의 형식은 우선 신에 의해 이루어진 과거의 우주개벽으로부터 인간이 체험한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신의 찬양이 서술된다. 그리고 현재 인간이 처해 있는 현실 속의 고통을 호소하며 신의 능력에 의해 성취되기 바라는 미래의 소원으로 되어 있다. 그다음은 신이 인간에게 알리는 인간이 저지른 과거나 현재의 과오, 미래사에 대한 예언 등의 ‘공수’가 포함된다. 그래서 전술적 유형의 무가는  오늘날 무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서정적 유형의 무가는 신이 아니라 무당이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형식으로 ‘대감타령’, ‘창부타령’, ‘가망노래가락’, ‘상산노래가락’ 등이 있다.  3. 무가의 원형 무가는 언어를 통해 巫俗사고가 종합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구비물로 서사, 서정, 전술의 유형으로 전승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무가의 내용을 분석하여 본다면 “근원으로의 회귀”에 대한 원형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정리한다면, 우주만물에 대한 존재의 근원은 ‘카오스’이다. 카오스는 어둠, 혼돈 그리고 무형으로 시작도 끝이 없는 영원이어서 영원 그 자체이다. 이 카오스가 열려 질서화된 현상으로 ‘코스모스’가 비롯된다. 코스모스, 즉 우주는 공간의 지속 현상으로 우주 속에 있는 모든 존재자 역시 공간의 지속 현상이다. 그러나 이 지속은 시작과 끝이라는 시간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우주인 코스모스는 공간적 지속성과 일정기간만 존재하는 “순간 존재”이다. 그러나 순간 존재의 존재 자체는 영원한 것이어서 그 가시성이 단절되면 카오스로 되돌아가 영원존재로 존재한다. 이와 같은 근원회귀 사고는 계속해서 다루웠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살아 있는 인간은 영혼과 육신으로 되어 있지만 죽는다면 영혼이 육신에서 분리되어 영원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런 존재 근원에 대한 원형 사고가 언어로 표현되어 일정한 유형, 즉 서사, 서정, 전술로 전승되고 있는 것이 바로 무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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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관의 종교학적 원형

3. 내세관의 종교학적 원형 巫俗의 이런 내세관은 영혼이 불멸하여 영생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영혼불멸성은 고대의 원시인으로부터 현대의 문명인에 이르기까지 널리 나타나고 있는 종교적인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종교학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이원론적인 입장에서 보는 것으로 육체와 영혼을 분리시켜 영혼이 생명의 주축이 되고 육체는 영혼이 수용되는 물체와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영혼불멸관은 인간 생명의 한정성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인간 생명의 관념적 연장 형태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영혼관을 토대로 巫俗의 내세관은 생명체, 즉 인간의 영혼이 공간성을 초월한 형태의 것으로 생명의 시간적 무한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내세관의 핵심은 생명의 무한성에 있는 것으로 인간의 생명을 무한대로 연장 발전시켜 가는 신화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영생의 신화적 사고는 인간이 죽은 후에도 영혼이 내세로 가서 영생하기를 믿는 것으로 존재의 영속적 갈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책의 제3장 巫俗의 원형 부분에서 다룬 것으로 가시적이고 순간적인 존재로서 cosmos에 있는 인간이 영혼의 상태로 공간과 시간이 없어지는 존재근원인 영원의 chaos로 회귀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巫俗의 내세관 역시 존재의 근원과 존재의 영원성을 갈구하는 원형사고가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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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관의 형성과정

2) 내세에 따르는 무의식 형태 巫俗에서 내세에 대한 제의식이나 굿은 극적으로 진행되면서 죽은 이의 영혼을 지금까지 살펴본 다음의 세상인 저승이나 극락으로 안주시키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이런 무의식은 종교심리학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의 원하는 바를 극적으로 연출하는 극적 반응의 상징적 효과로서 그 연기와 유사 혹은 동일한 효과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태도는 상징적 모방에 기초를 둔 무의 종교심리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자연 그대로의 모방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3) 내세관의 형태. 지금까지 巫俗의 내세와 그 무의식 형태를 통하여 巫俗의 내세관을 정리한다면, 巫俗의 내세관 속에는 미래에 대한 종교적 구원 관념이 희박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 그리스도교가 신앙과 삶을 통한 종교적 구원을 갖는다는 것에 비해 巫俗에서는 현세에서 일정한 신앙을 통하지 않고도 내세를 갖게 된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巫俗의 내세관은 종교적이라기 보다 자연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巫俗 자체가 자연적 원시 종교로서 내세관 역시 자연 그대로의 형태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즉 인간의 선과 악을 통해 천국과 지옥으로 구분되는 고등종교의 내세관에 비해 巫俗의 내세관은 인위적인 수식이나 일방적인 견해가 비교적 스며들지 않는 내세의 원형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巫俗의 내세관은 원래 그 속에 저승과 같은 내세의 원형태가 불교의 영향으로 점차 변형되어 앞서 언급한 극락과 지옥의 형태로 발전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2. 내세관의 형성과정 巫俗에서 내세관이 오늘날의 형태, 즉 불교적 사고와 유합하여 극락과 지옥이라는 형태로 있기까지는 종교심리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삼단계의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1단계 : 영혼관의 발생(죽음에 대한 의혹)         2단계 : 영혼이 정착하는 내세의 설정(저승)         3단계 : 내세의 이원적 분화(극락과 지옥)  1단계는 생명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로 죽음에 대한 의혹에서 삶에 대한 관념적 연장 형태로 설명할 수 있다. 이렇게 형성된 영혼은 죽음이라는 장벽으로 인해 현세적 의미를 가질 수 없기에 부득이 내세가 설정되어야 하는 2단계로 발전한다. 2단계의 내세 형태는 인간이 처해있는 지역적 자연 환경에 따라 각기 형태를 달리하고 있다. 이것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내세 형태로서 1단계에서 2단계까지의 진행을 가져온 내세관의 순수한 원형태로 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내세관의 원모습도 바로 이런 형태이며 아직도 타종교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민간인들에게 이 단계의 형태에 가까운 내세관을 가지고 있다. 이런 순수한 내세의 형태는 막연하게 죽어서 가는 그러한 곳이다. 죽음으로 인해 현세와는 그 구조가 다르지만 지옥과 같은 처벌 장소에 대한 관념은 매우 희박하고 그렇다고 극락도 아닌 막연하게 내세를 저승이라는 한마디로 단정하고 있다1). 여기에 타종교인 불교나 도덕적 윤리 기준에 따라 내세가 이원적 분화를 가져오는 3단계로 진행된다. 그리하여 巫俗에서도 극락을 서방정토로 지옥을 불교의 지옥으로 설정하게 되었다.  이상으로 보아 현재 巫俗의 내세관은 종교심리적 삼단계 과정 중에서 일, 이단계 과정에서 저승과 같은 내세의 원형이 생기게 되었고 이 형태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삼단계의 진행으로 巫俗의 내세 구조가 이원화되어 극락과 지옥이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내세관을 불교의 내세관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巫俗의 내세관에 따르는 굿이나 의식은 불교적 내세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불교적 내세 형태의 외적 모방에서 그치는 것이지 그 내적인 본질성에 있어서 巫俗 본연의 원형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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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의 내세관

  제4절 내세관 1. 서론 김태곤씨의 「韓國巫俗硏究」는 巫俗을 하나의 종교로 인정하면서 종교철학이 아닌 종교학1)적인 방법론으로 우리의 巫俗을 다루고 있다. 종교학적인 방법론에 의한 巫俗의 연구는 巫俗이라는 종교를 통해 종교적 존재로서 우리 한국인의 심성을 이해하려는 학문적 노력이다. 다시 말해서 「韓國巫俗硏究」는 한국의 巫俗에 있어서 무엇이 巫俗이고 巫俗의 무엇이 우리 한국인의 가슴 속에 이토록 깊게 뿌리를 내렸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인간의 사고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의 巫俗을 한국인의 미분화된 원형사고(arche-pattern)로 규정하며 한국인의 종교심성이라 한다. 나아가 저자인 김태곤씨는 이 원형사고 속에서 한국인의 종교, 민속, 문학, 역사, 예술 등이 이루어졌고 심지어 한국인의 생존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구심적 역할이라 주장한다2). 따라서 가톨릭 사제를 지망하는 우리들의 염원이 민족의 복음화라고 한다면 저자의 주장인 한국인의 원형사고가 비교적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부각된다. 왜냐하면 복음의 토착화는 그리스도교의 이질적인 문화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종교적 사고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복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김태곤씨의 한국인의 종교심성이 원형사고라는 주장이 담긴 「韓國巫俗硏究」 중에서 제5장 巫俗의 원형적 사고 체계의 “내세관”과 “무가” 부분을 소개하면서 이런 원형사고를 간직한 무속과 그리스도교의 토착화 가능성에 대해서 나름대로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좀 더 부연한다면, 巫俗이 우리 한국인의 종교적 기반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말을 좀 더 엄밀하게 한다면 한국인의 종교적 기반은 원형사고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巫俗의 내세관은 한국인이 죽음을 어떻게 보고, 죽은 후에 내세를 어떻게 보는가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진다. 즉 내세관은 죽음 자체를 어떻게 보고, 그 후에 어떻게 되는가의 문제로서 비단 巫俗人에 한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정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사명으로서 복음을 전파하고 선포하기에 앞서, 巫俗의 내세관을 살펴보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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