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타종교자료실
인간 타락의 결과
제4절 인간 타락의 결과 아담과 해와가 영 육 아울러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천사를 비롯한 피조세계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는가 ? 우리는 여기에서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어 보기로 하자. Ⅰ. 사탄과 타락인간 타락한 천사장 누시엘을 사탄이라고 한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 있다. 누시엘과 인간조상이 혈연관계를 맺어 일체를 이루었기 때문에, 사탄을 중심한 4위기대가 이루어지면서 인간은 사탄의 자녀가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8장 44절1)을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하셨고, 또 마태복음 12장 34절2)과 동 23장 33절3)에서는 그들을 뱀 또는 독사(사탄)의 자식이라고 하셨다(마태복음 3장 7절4)). 한편 또 로마서 8장 23절5)에는 처음 익은 열매된 우리들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되기를 고대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간조상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혈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4위기대를 이루었더면, 그 때 하나님을 중심하고 4위기대를 이루었더면, 그 때 하나님 주권의 세계가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미완성기에 타락되어 사탄을 중심하고 4위기대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 세계는 사탄주권의 세계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2장 31절6)에는 사탄을 세상의 임금이라고 하였고, 또 고린도후서 4장 4절7)에서는 사탄을 세상의 신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어 사탄은 피조세계의 주관주로 창조된 인간을 주관하게 되었으므로, 그는 피조세계까지도 주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19절8)에는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만물이 완성된 인간의 주관을 받지 못하고 사탄의 주관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사탄을 물리치고 자기들을 주관해 줄 수 있는 창조본연의 인간들이 나타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Ⅱ. 인간세계에 대한 사탄의 활동 사탄은 욥을 하나님 앞에 참소하듯이(욥기 1장 9절9)), 항상 모든 인간을 하나님 앞에 참소하여 지옥으로 끌어가려 하고 있다. 그리고 사탄도 그의 대상을 취하여서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지 않고는 사탄적인 활동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탄의 대상은 영계에 있는 악영인들이다. 그리고 이 악영인들의 대상은 지상에 있는 악인들의 영인체이며, 지상에 있는 악인들의 영인체의 활동대상은 바로 그들의 육신의 활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22장 3절10)에는 사탄이 가룟유다에게 들어갔다고 하였고, 또 마태복음 16장 23절11)을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를 가리켜 사탄이라고 하셨다. 한편 이러한 악영인체를 마귀의 사자라고 한 기록도 있는 것이다(마태복음 25장 41절12)). 지상천국을 복귀한다는 것은(전편 제3장 제2절) 전 인류가 사탄과의 상대기준을 완전히 끊고, 하늘과의 상대기준을 복귀하여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사탄이 전혀 활동할 수 없게 된 세계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말세에 이르러서 사탄을 무저갱에 가둔다고 하신 말씀은, 바로 사탄의 상대자가 없어지므로 사탄이 활동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이 사탄과의 상대기준을 끊고, 더욱 나아가서 고린도전서 6장 3절13)의 말씀대로 그들을 심판하기 위하여서는, 사탄이 사탄된 죄상과 그 정체를 알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사탄을 참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천사와 인간을 창조하심에 있어서, 그들에게 자유를 부여하셨기 때문에, 이를 복귀하시는 데 있어서도 강제로 하실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자유의지에 의한 책임분담으로써 말씀을 찾아 세워 가지고, 사탄을 자연굴복시켜야만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원칙에 의하여 섭리하시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는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연장을 거듭해 내려오게 된 것이다. Ⅲ. 목적성으로 본 선과 악 선과 악에 대한 정의는 이미 ‘창조원리’ 중 ‘창조본연의 가치’에서 논한 바 있다. 이제 우리는 그 목적성으로 본 선악의 내용을 알아보기로 하자. 아담과 해와가 그들에게 부여된 사랑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하고 4위기대를 조성하였더면, 그들은 선의세계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와 목적을 반대로 한 사랑으로서 사탄을 중심하고 4위기대를 조성하였기 때문에, 악의 세계를 이루고 말았다. 그러므로 선과 악은 동일한 내용의 것이, 상반된 목적을 지향하여 나타난 결과를 두고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악이라고 생각해 온 인간의 성품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목적 삼고 나타나면 선이 되는 예를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이제 그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흔히 죄라고 생각하는 욕망은, 원래 하나님을부터 부여된 창조본성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목적은 기쁨에 있고, 기쁨은 욕망을 채울 때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인간에게 욕망이 없다면, 동시에 기쁨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욕망이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도, 살고자 하는 욕망도, 선을 행하고자 하는 욕망도, 발전하고자 하는 욕망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목적도 복귀섭리도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인간사회의 유지와 그 발전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래의 욕망은 창조본성이기 때문에, 이 성품이 하나님의 뜻을 목적 삼고 그 결과를 맺으면 선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사탄의 뜻을 목적 삼고 그 결과를 맺으면 악을 자아내게 되는 것이다. 이 악한 세상도 예수님을 중심하고 그 목적의 방향만을 돌려놓으면, 이 악한 세상도 예수 님을 중심하고 그 목적의 방향만을 돌려놓으면, 선한 것으로 복귀되어 지상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은(전편 제3장 제2절 Ⅱ), 이러한 원리로 보아 자명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는 사탄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는 이 타락세계를,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룬 지상천국에로 그 방향성을 바꾸어 나아가는 섭리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의 힘과 원리의 힘 및 믿음을 위한 계명
제3절 사랑의 힘과 원리의 힘 및 믿음을 위한 계명 Ⅰ. 사랑의 힘과 원리의 힘으로 본 타락 인간은 원리로써 창조되어 원리궤도에 의하여 생존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의 힘 그 자체가 인간을 원리궤도에서 탈선케 하여 타락시킬 수는 없다. 이것은 마치 레일이나 기관에 고장이 없는 한, 기차가 스스로 궤도를 탈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기차도 그가 달리는 힘보다도 더욱 강한 다른 힘이 그와 방향을 달리하여 부딪쳐 올 때는 탈선될 수밖에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그 자신을 성장케 하는 원리의 힘보다도 더욱 강한 그 어떠한 힘이, 그와 목적을 달리하여 부딪쳐 올 때는 타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원리의 힘보다도 더욱 강한 힘이 곧 사랑의 힘이다. 그러므로 미완성기에 있어서의 인간은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으로 인하여 타락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왜 원리의 힘보다도 사랑의 힘이 더 강하여서, 미완성기에 있어서의 인간이 목적을 달리한 그러한 사랑의 힘에 부딪칠 때, 그로 인하여서 타락될 수도 있게 되었던가 ? 창조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3대상 사랑에 의하여 3대상목적을 완성한 4위기대의 주체적인 사랑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이 없이는 인간 창조의 목적인 4위기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므로, 사랑은 인간의 행복과 생명의 근원이 된다. 하나님은 원리로써 창조된 인간을 사랑으로 주관하셔야 하므로, 그 사랑이 사랑답기 위하여는, 사랑의 힘은 원리의 힘보다도 더 강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사랑의 힘이 원리의 힘보다 약하다면, 하나님은 원리로써 창조된 인간을 사랑으로 주관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보다도 원리를 더 추구하게 될 것이다. 예수 님이 제자들을 진리로써 세워 가지고, 사랑으로써 구원하고자 하셨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Ⅱ. 믿음을 위한 계명을 주신 목적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에게 따먹지 말라는 믿음을 위한 계명을 주신 목적은 어디에 있었을 것인가 ? 그것은 사랑의 힘이 원리의 힘보다 강하므로, 아직 미완성기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사랑의 주관을 받을 수 없는 아담과 해와가, 만일 천사장의 상대적인 입장에 서게 되면, 목적을 달리하는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에 의하여 타락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사장의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천사를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과만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였더면, 그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작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타락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 계명을 지키지 않고 천사장과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그와 수수작용을 하였기 때문에, 그 불륜한 사랑의 힘은 그들을 탈선케 하였던 것이다.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에게 이러한 계명을 주셨던 것은, 단순히 그들로 하여금 타락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밖에 또 인간이 그 자신의 책임분담으로서, 그 말씀을 믿고 스스로 완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성을 닮게 하여 만물에 대한 주관성을 가지게 하시기 위함이기도 하였다(전편 제1장 제5절 Ⅱ.2). 그리고 이 계명을 천사장에게 주시지 않고 인간에게 주셨던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에서 천사까지도 주관해야 할 인간의 창조 원리적인 자격과 위신을 세워 주시기 위함이었다. Ⅲ. 믿음을 위한 계명이 필요한 기간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조상에게 “따먹지 말라”고 하셨던 믿음을 위한 계명은 언제까지라도 필요한 것이었던가 ? 사랑을 중심하고 볼 때 하나님의 제2축복 완성은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부부를 이루어, 그 자녀가 번성함으로써(창세기 1장 28절), 하나님의 사랑에 의한 직접적인 주관을 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완성되면 따먹는 것은 원리적인 것으로서 허용되도록 창조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랑의 힘은 원리의 힘보다 강하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 하나님을 중심하고 부부를 이룸으로써, 그 절대적인 사랑의 힘에 의하여 하나님의 직접적인 주관을 받게 되면, 이 절대적인 부부의 사랑의 힘을 끊을 자나 그것을 끊을 힘은 없으므로 그들은 절대로 타락될 수 없다. 더구나 인간보다도 저급한 천사장의 사랑의 힘으로써는 도저히 하나님을 중심한 그들 부부간의 사랑을 끊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따먹지 말라”하신 하나님의 계명은 아담과 해와가 미완성기에 있을 때에 한해서만 필요했던 것이다.
영적타락, 육체타락
1. 영적 타락 하나님은 천사세계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장 26절), 누시엘(계명성이란 뜻, 사도행전 14장 12절)을 천사장의 위에 세우셨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아브라함이 이스라엘의 복의 기관이 되었던 것같이 누시엘은 천사세계의 사랑의 기관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하는 것과 같은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자녀로서 인간을 창조하신 우에는 종으로 창조된 누시엘보다도 그들을 훨씬 더 사랑하시었다. 사실상 누시엘은 인간이 창조되기 전이나 후나 조금도 다름없는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자기보다도 아담과 해와를 더 사랑하시는 것을 볼 때에 그는 사랑에 대한 일종의 감소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아침부터 노동을 한 일꾼이 자기대로의 상당한 노임을 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늦게 와서 적게 일한 일꾼도 자기와 똑같은 노임을 받는 것을 볼 때에 자기가 받는 노임에 대한 감소 감을 느꼈다고 하는 성서의 예화(마태복음 20장 1 – 15절)와 같은 입장인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사랑의 감소 감을 느끼게 된 누시엘은, 자기가 천사세계에서 가졌던 사랑의 위치와 동일한 것을 인간세계에 대하여서도 그대로 가져 보고자 해와를 유인하게 되었던 것이니, 이것이 곧 영적 타락의 동기였다. 피조세계는 하나님의 사랑의 주관을 받도록 창조되었다. 따라서 사랑은 피조물의 생명의 근본이요, 행복과 이상의 요소가 된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많이 받는 존재일수록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으로 창조된 천사가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된 해와를 대할 때, 그가 아름답게 보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더구나 해와가 누시엘의 유혹에 끌려오는 빛을 보였을 때, 그는 해와로부터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자극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누시엘은 죽음을 무릅쓰고 더욱 해와를 유인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사랑에 대한 과분한 욕망으로 인하여 자기의 위치를 떠난 누시엘과, 하나님과 같이 눈이 밝아지려고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바란 해와가(창세기 3장 5 – 6절) 서로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게 되었으므로, 그로 인한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그들로 하여금 불륜한 영적인 정조관계를 맺게 하였던 것이다. 사랑으로 일체를 이루면 서로 그 대상으로부터 그의 요소를 받도록 창조된 원리에 의하여(창세기 3장 7절4)), 해와는 누시엘과 사랑으로써 일체를 이루었을 때 누시엘의 요소를 받았던 것이다. 즉 첫째로 그는 누시엘로부터 창조목적에 대한 배치로 말미암아 양심은 가책에서 오는 공포심을 받았고, 둘째로는 자기가 본래 대해야 할 창조본연의 부부로서의 상대자는 천사가 아니고 아담이었다는 사실을 감득할 수 있는 새로운 지혜를 그에게서 받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해와는 아직도 미완성기에 있었다. 따라서 그 자체로서는 이미 완성기에 처해 있었던 천사 장에 비하여 지혜가 성숙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는 천사 장으로부터 그 지혜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2. 육적 타락 아담과 해와는 완성하여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영원한 부부를 이루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해와가 미완성기에서 천사 장과 불륜한 혈연관계를 맺은 후, 다시 뒤미처 아담과 부부의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아담도 역시 미완성기에서 타락되었다. 이렇게 때 아닌 때에 사탄을 중심 삼고 아담과 해와 사이에 이루어진 부부관계는 그대로 육적 타락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해와는 천사 장과의 영적인 타락에서,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온 공포심과 자기의 원리적인 상대가 천사 장이 아니고 아담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새로운 지혜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해와는 그제서나마 자기의 원리적 상대인 아담과 일체를 이룸으로써 하나님 앞에 다시 서고, 또 타락으로 인하여 오게 된 공포심을 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담을 유인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육적 타락의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때에 불륜한 정조관계에 의하여 천사 장과 일체를 이루었던 해와는 아담에 대하여 천사장의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담은 해와의 눈에 매우 아름답게 보여졌다. 그리하여 해와에게 있어 아담은, 그로 말미암아서만 하나님 앞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해와는 자기를 유혹하였던 천사 장과 똑같은 입장에서 아담을 유혹하였다. 아담이 누시엘과 같은 입장에 서 있었던 해와와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일어났던 비원리적인 사랑의 힘은, 아담으로 하여금 창조본연의 위치를 떠나게 하여, 마침내 그들은 육적인 불륜한 정조관계를 맺게 되었던 것이다. 아담은 해와와 일체를 이룸으로써 해와가 누시엘로부터 받았던 모든 요소를 그대로 이어받게 된다. 그리고 이 요소는 다시 그 후손에게로 연면히 유전되어 내려온 것이다. 해와는 타락되었다 할지라도 만일 아담이 타락된 해와를 상대하지 않고 완성되었더라면, 완성한 주체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 대상인 해와 하나에 대한 복귀섭리는 대단히 용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마저 타락하였기 때문에 사탄의 혈통을 계승한 인류가 오늘날까지 번식하여 내려온 것이다.
타락의 동기와 경로
제2절 타락의 동기와 경로 우리는 이미 제1절에서 뱀은 곧 해와를 타락시킨 천사를 비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처럼 인간의 타락된 동기가 천사에게 있었으므로, 그 타락의 동기와 경로를 알려면 먼저 천사에 관한 것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Ⅰ. 천사의 창조와 그의 사명 및 그와 인간과의 관계 모든 존재는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따라서 천사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천사세계를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도 먼저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26절에 씌어 있는 천지창조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 고라고 스스로를 복수로 부르셨는데, 이것은 지금까지의 많은 신학자들의 해석대로 삼위신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인간보다도 먼저 창조되어 있었던 천사들을 놓고 그들을 포함시킨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피조세계의 창조와 그의 경륜을 위하여 먼저 천사를 사환으로 창조하셨다(히브리서 1장 14절).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중대한 축복의 말씀을 전하였고(창세기 18장 10절), 그리스도의 잉태에 관한 소식을 전하였으며(마태복음 1장 20절, 누가복음 1장 31절), 옥중에서 쇠사슬에 묶여 있는 베드로를 풀어 성 밖으로 인도하였던 것이다(사도행전 12장 7 – 10절). 이밖에도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천사가 활동한 예는 성서에서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2장 9절에는 천사가 자기 자신을 ‘종’이라고 하였고, 또 히브리서 1장 14절에는 천사를 ‘부리는 영’이라고 기록하여 놓았다. 그리고 천사는 하나님에게 송영을 드리는 존재로서 창조되었다는 증거를 성서 가운데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요한계시록 5장 11절, 요한계시록 7장 11절). 다음에는 천사와 인간과의 창조 원리적인 관계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인간을 자녀로 창조하시고 피조세계에 대한 주관 권을 부여하셨기 때문에(창세기 1장 28절), 인간은 천사도 주관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6장 3절을 보면, 인간에게는 천사를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영계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은 수많은 천사들이 낙원에 있는 성도들을 옹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도 역시 천사의 인간에 대한 시종적인 관계를 말해 주는 하나의 좋은 예라 하겠다. Ⅱ. 영적 타락과 육적 타락 하나님은 영적인 부분과 육적인 부분으로써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타락에 있어서도 영육 양면의 타락이 성립된 것이다. 천사와 해와와의 혈연관계에 의한 타락이 영적 타락이고, 해와와 아담과의 혈연관계에 의한 타락이 육적 타락인 것이다. 그러면 천사와 인간과의 사이에 어떻게 성적인 관계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인가 ? 인간과 영물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모든 감성은 어떠한 점에서나 실체적인 존재 사이에서 느끼는 그 감성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과 천사와의 성적 타락은 사실상 가능한 것이다. 한편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하여서도 위에서 말한 내용을 더욱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인간사회에 있어서 지상인간들이 영인들 과 결혼생활을 하는 예가 왕왕 있다는 것, 그리고 천사가 야곱과 씨름을 하여서 그의 완도 뼈를 부러뜨렸다는 예와 함께(창세기 32장 25절), 천사가 아브라함의 가정에 나타나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창세기 18장 7절)과, 또 롯의 집에 찾아온 두 천사가 롯이 대접한 무교병을 먹었을 뿐 아니라, 그 성 백성들이 그 천사를 보고 색정을 일으키어 롯의 집을 둘러싸고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대하리라”(창세기 19장 5절)고 외친 사실 등은 모두 이에 속한 예들인 것이다.
타락론 4
2. 인간의 범죄 창세기 2장 25절5)을 보면, 범죄하기 전 아담 해와는 몸을 가리지 않은 채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한 후에는 벗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무화과나무 잎으로 하체를 가리었다(창세기 3장 7절6)). 만일 선악과라고 하는 어떠한 과실이 있어서 그들이 그것을 따먹고 범죄를 하였다면, 그들은 필시 손이나 입을 가리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허물을 가리는 것이 그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손이나 입을 가리지 않고 하체를 가리었었다. 따라서 이 사실은, 그들의 하체가 허물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그들이 하체로 범죄 하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욥기 31장 33절7)에는 “내가 언제 아담처럼 내 죄악을 품에 숨겨 허물을 가리었었던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아담은 타락한 후 그의 하체를 가리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곧 아담이 가리었던 그의 하체가 허물이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아담의 하체가 어찌하여 허물이 되었을 것인가 ?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아담이 하체로써 범죄 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이 타락되기 전의 세계에 있어, 뻔히 죽을 줄 알면서 저지를 수도 있었던 행동은 무엇이었을 것인가 ? 그것은 사랑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생육하고 번식하라(창세기 1장 28절8))하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사랑으로 인하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두고 볼 때 사랑은 가장 귀하고 가장 거룩한 것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역사적으로 사랑의 행동을 천시하여 온 것은 그것이 바로 타락의 원인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도 또한 음란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3. 천사와 인간과의 행음 우리는 위에서 밝힌 바, 인간이 천사의 꼬임에 빠져 타락되었다는 사실과, 인간이나 천사는 모두 행음으로 말미암아 타락되었다는 사실과 그 위에는 피조세계에 있어서 영적인 존재로서 서로 어떠한 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는 인간과 천사 외에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 등을 결부하여 볼 때, 인간과 천사와의 사이에 행음관계가 성립되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긍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8장 44절9)에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서는 ‘마귀’는 곧 사탄이요 사탄은 곧 인간을 꼬인 옛 뱀이라고 명시하였다. 이러한 성구들로 미루어 보면, 인간은 ‘마귀’의 후손이요 따라서 사탄의 후손이기 때문에 결국 뱀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어떤 경위로 타락한 천사 즉 사탄의 후손이 되었는가 ? 이것은 인간의 조상이 천사와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사탄의 혈통에서 태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혈통이 아니고 사탄의 혈통으로써 태어났기 때문에, 로마서 8장 23절10)에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친자식이 못되고)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 마태복음 3장 7절11)에는 세례요한이 유대인들을 보고, 독사의 자식 즉 사탄의 자식이라고 질책하였고, 마태복음 23장 33절12)에는 예수님이 유대인들이라고 보시고,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고 책망하신 기록이 있다. 이러한 성서의 기록을 중심 삼고 볼 때, 우리는 천사와 인간 사이에 행음관계가 있어서, 그것이 타락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Ⅳ. 선악과 우리는 위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해와를 비유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그러면 또 선악과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 그것은 해와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목이 과실에 의하여 번식되는 것과 같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그의 사랑으로써 선의 자녀를 번식해야 할 것이었는데, 사탄을 중심한 그의 사랑으로써 악의 자녀를 번식하였다. 해와는 이와 같이 그의 사랑으로써 선의 열매도 맺을 수 있고, 또한 악의 열매도 맺을 수 있었던 성장기간을 통하여서 완성되도록 창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랑을 선악과라고 하였던 것이며, 그 사람을 말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 우리가 그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그것을 가지고 자기의 피와 살이 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선의 사랑으로 선과를 따먹고, 선의 피와 살을 받아 선의 혈통을 번식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사탄을 중심한 악의 사랑으로 악과를 따먹고, 악의 피와 살을 받아 악의 혈통을 번식하여 죄악의 사회를 이루었던 것이다. 따라서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사탄(천사)을 중심한 사랑에 의하여 서로 혈연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4절13)을 보면,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를 저주하시어 배로 다니고 또 종신토록 흙을 먹으리라고 하셨다. 다리로 다니지 못하고 배로 다닌다는 것은, 천사가 창조본연의 활동을 하지 못하하고 비참해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흙을 먹는다는 것은 것은 하늘로부터 쫓겨남으로 말미암아(이사야 14장 12절14), 요한계시록 12장 9절15)), 하나님으로부터의 생명의 요소를 받지 못하고, 죄악의 세계에서 악의 요소를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Ⅴ. 죄의 뿌리 우리는 성서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여, 죄의 뿌리는 인간시조가 과실을 따먹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뱀으로 표시된 천사와 불륜한 혈연관계를 맺은 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선의 혈통을 번식하지 못하고 사탄의 악의 혈통을 번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미루어서 인간의 죄의 뿌리가 음란에 있었다는 것을 더욱 명백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죄의 뿌리가 혈연적인 관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원죄는 자자손손에게 유전되어 왔다. 그리고 죄를 벗으려고 하는 종교마다 간음을 가장 큰 죄로 규정하여 왔으며, 이것을 막기 위하여 금욕생활을 강조하여 온 것이니, 이것도 죄의 뿌리가 음란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민족이 하나님의 선민이 되기 위한 속죄의 조건으로서 할례를 행하였던 것은, 죄의 뿌리가 음란에 의하여 악의 피를 받아들인 데 있었기 때문에, 타락인간의 몸으로부터 그 악의 피를 뽑는다는 조건을 세워서 성별하기 위함이었다. 수많은 영웅 열사와 국가들이 멸망하게 된 주요한 원인이 음란에 있었던 것은, 음란이란 죄의 뿌리가 항상 인간의 마음 가운데서 자기도 모르게 발동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종교로써 인륜도덕을 세우고, 제반 교육을 철저히 하며, 범죄를 빚어내는 경제사회제도를 개선함으로써 다른 모든 죄악들은 이 사회로부터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되면서 날로 안일한 생활을 하게 됨에 따라 증대되어가고 있는 음란이란 범죄만은, 그 누구도 막을 길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사회에서 이 범죄의 뿌리를 뽑아버릴 수 없는 한, 결코 이상세계는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재림하시는 메시아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죄의 뿌리가 어디까지나 음란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