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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2
인생의 실제에 있어서 인간이 밟아 온 과정을 두 가지로 크게 갈라 본다면, 첫째는 물질로 된 이 결과의 세계에서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길이다. 이러한 길을 최고의 것으로 생각하고 걸어온 사람들은, 극도로 발달된 과학 앞에 굴복하여 과학의 만능과 물질적인 행복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과연 이러한 육신을 중심한 외적인 조건만으로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 과학의 발달이 아무리 안락한 사회환경을 이루고 그 속에서 아무리 부귀와 영화를 누린다 한들 그것으로써 어찌 속 사람의 정신적인 욕구까지 근본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 육신의 낙을 즐기는 속인의 기쁨은 청빈을 즐기는 도인의 기쁨에 미칠 수 없으리라. 왕궁의 영화를 버리고 마음의 보금자리를 찾아 정처 없는 구도의 행각을 즐긴 것은 비단 석가뿐이 아닐 것이다. 사람에 있어서 마음이 있음으로써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이, 기쁨에 있어서도 마음의 기쁨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몸의 기쁨도 온전한 것이 되는 것이다. 육신의 낙을 찾아 과학의 돛을 달고 물질세계를 항해하는 사공이 있는가 ? 그가 이상 하는 그 언덕에 닿아 보라. 그 곳이 바로 육신을 묻어야 할 뫼인 것을 알게 되리라. 그러면 이제 과학의 갈 곳은 어디일 것인가 ? 지금까지의 과학의 연구 대상은 내적인 원인의 세계가 아니고 외적인 결과의 세계였으며, 본질의 세계가 아니고 현상의 세계였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그의 대상은 외적이며 또한 결과적인 현상의 세계에서, 내적이며 또한 원인 적인 본질의 세계에로 그 차원을 높이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들어오고 있다. 그리하여 그 원인 적인 심령세계에 대한 논리 즉 내적 진리가 없이는, 결과적인 실체세계에 대한 과학 즉 외적 진리도 그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고 하는 결론을 얻기에 이르렀다. 이제 과학의 돛을 달고 외적인 진리의 항해를 마친 사공이, 또 하나의 종교의 돛을 달고 내적인 진리의 항로에로 들어오게 될 때, 비로소 그는 본심이 지향하는 이상향에로 노 저어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이 밟아 온 과정의 그 둘째는 결과적인 현상세계를 초월하여 원인 적인 본질세계에서 인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길을 밟아 온 이제까지의 철학이나 종교가 많은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반면에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정신적인 짐을 지워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역사상에 왔다 간 모든 철인들과 성현들은 인생의 갈 길을 열어 주려고 각각 그 시대에 있어서 선구적인 개척의 길로 나섰던 것이었으나, 그들이 해 놓은 일들은 모두 오늘의 우리에게 더 무거운 짐이 되고 말았다. 이제 다시 냉철히 생각해 보자. 어느 철인이 우리의 고민을 풀어 주었으며, 어느 성현이 인생과 우주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여 우리의 갈 길을 뚜렷이 보여 주었던가 ? 그들이 제시한 주의와 사상이란 것은 도리어 우리들이 해결하고 가야 할 잡다한 회의와 수많은 과제들을 제기해 놓은 데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종교가 어둠 속에서 헤매던 그 시대의 많은 심령들에게 비쳐 주던 소생의 빛은,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어느덧 꺼져버리고, 이제는 타다 남은 희미한 불똥만이 그들이 잔해를 드러내고 있다. 온 인류의 구원을 표방하고 2천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판도를 가지게 된 기독교의 역사를 들추어 보라. [로마]제국의 그 잔학무도한 박해 속에서도 오히려 힘찬 생명의 불길을 던져, [로마]인들로 하여금 돌아가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였던 기독정신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가 ? 이윽고 중세 봉건사회는 기독교를 산 채로 매장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 무덤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절규하는 종교 개혁의 봉화는 들렸었으나, 이 불길도 격동하는 어둠의 물결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에큘레시아]의 사랑이 꺼지고 자본주의의 재욕의 바람이 [유럽]의 기독사회를 휩쓸어, 기아에 허덕이는 수많은 서민들이 빈민굴에서 아우성을 칠 때, 그들에 대한 구원의 함성은 하늘이 아닌 땅으로부터 들려왔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다. 하나님의 사랑을 부르짖고 나선, 기독교가 그 구호만을 남긴 [에큘레시아]의 잔해로 돌아갔을 때, 거기서 그렇게 무자비한 하나님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반기가 들렸던 사실은 있을 만하기도 하다. 이렇게 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유물사상이다. 그리하여 기독교 사회는 유물사상의 온상이 되었다. 공산주의는 이 온상에서 좋은 거름을 흡수하면서 무럭무럭 자랐다. 저들의 실천을 능가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고 저들의 이론을 극복할 수 있는 진리를 제시하지 못한 기독교는 저들이 바로 자기의 품 속에서 싹트고 자라서, 그 판도를 세계적으로 넓혀 가는 것을 보면서도 속수무책이니, 이 어찌 한심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 그뿐 아니라 온 인류가 한 부모의 후예임을 교리로써 가르치고 또 그와 같이 믿고 있는 기독교 국가의 바로 그 국민들이, 다만 피부의 빛깔이 다름을 인하여 그 형제들과 자리를 같이할 수 없게 된 현실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실천력을 잃어버리고 회칠한 무덤 같이 형식화해 버린 오늘의 기독교의 실상을 드러내고 있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이와 같은 사회적인 비극은 인간의 노력에 따라서는 끝날 날이 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으로는 도적이 수습할 수 없는 사회악이 또 있다. 음란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교리는 이것을 죄 중의 가장 큰 죄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오늘의 기독교사회가 현세인 들이 몰려가는 이 연락의 길을 막을 수 없게 되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눈물겨운 실정인가 ? 이와 같이 오늘의 기독교가 이러한 세대의 흐름 가운데서 혼돈 되고 분열되어, 패륜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는 생명들에 대하여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는 현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 이것은 바로 종래의 기독교가 현대인류에 대한 구원섭리에 있어서 얼마나 무능한 자리에 있는가 하는 사실을 뚜렷이 증명하는 것이리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내적인 진리를 찾아 나오던 종교인들이, 오늘에 이르러 그 본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 본질세계에 현상세계와의 관계는 비유건대 마음과 몸과의 관계와 같아서, 원인 적인 것과 결과적인 것,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그리고 주체적인 것과 대상 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총서
총 서 인간은 누구나 불행을 물리치고 행복을 찾아 이루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개인의 조그만 일로부터 역사를 좌우하는 큰일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은 결국 하나같이 보다 행복해지려는 삶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면 행복은 어떻게 해서 오는 것인가 ?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욕망이 이루어질 때 행복을 느끼게 된다. 욕망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그 본래의 의미를 흐려서 생각하기 쉽다. 그것은 그 욕망이 선보다도 악으로 나아가기 쉬운 생활환경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의를 맺는 욕망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본심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심은 이러한 욕망이 자신을 불행으로 이끌어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악을 지향하는 욕망을 물리치고 선을 추구하는 욕망을 따라,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찾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망의 어두움을 헤치고 생명의 빛을 찾아 고달픈 길을 더듬고 있는 인생이다. 옳지 못한 욕망을 따라가서 본심이 기뻐하는 행복을 누려본 사람이 어디에 있었던가 ? 인간은 누구나 그러한 욕망을 채울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 고민하게 된다. 자식에게 악을 가르치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제자에게 옳지 못한 것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 어디 있을 것인가 ? 악을 미워하고 선을 세우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본심에서 오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본심이 지향하는 욕망을 따라 선을 이루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 바로 도인들의 생활 있지만,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 본심대로만 살다 간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서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로마서 3장 10 – 11절1))라고 하였으며, 또 인간의 이러한 비참한 형편에 직면하였던 바울은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 고한 사람이로다(로마서 7장 22 – 24절2))라고 개탄하였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선한 욕망을 성취하려는 본심의 지향성과 이것과는 반대로 악의 욕망을 달성하려는 악한 마음의 지향성이, 동일한 개체 속에서 각기 서로 다른 목적을 앞세우고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인간의 모순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자체 안에 모순성을 갖게 돌 파멸된다. 따라서 이와 같이 모순성을 가지게 된 인간 자체는 바로 파멸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모순성은 당초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왜냐 하면 어떠한 존재도 모순성을 지니고서 생겨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생겨나기 전부터 이러한 모순성을 지닌 운명적인 존재였다면, 애당초 생겨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모순성은 후천적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파멸상태를 일컬어 기독교에서는 타락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인간이 타락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며, 누구도 이것을 반박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이와 같이 타락되어 자기 파멸에 이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악한 마음으로부터 오는 악의 욕망을 물리치고 본심으로부터 일어나는 선의 욕망을 물리치고 본심으로부터 일어나는 선의 욕망을 따라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는 것으로써 그 자체의 모순성을 제거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궁극에 있어서 선과 악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유신론과 무신론을 두고 볼 때 그 중의 어느 하나가 선이라고 하면 다른 하나는 악이 도리 것인데, 우리는 아직까지 이에 대한 절대적인 정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더구나 인간들은 선의 욕망을 일으키는 본심이 무엇이고 이 본심을 거슬러 악의 욕망을 일으키는 악한 마음은 어디로부터 온 것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이러한 모순성을 갖게 하여 파멸을 초래한 한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 등의 문제에 대하여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 악의 욕망을 물리치고 선의 욕망을 따라 본심이 지향하는 선의 생활을 하기 위하려는 이 무지를 완전히 극복함으로써 선과 악을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타락을 지적인 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이 무지에 떨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인간은 마음과 몸의 내외 양면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지적인 면에 있어서도 내 외 양면의 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무지에도 내적인 무지와 외적인 무지의 두 가지가 있게 된다. 내적인 무지란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영적인 무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삶의 목적은 무엇이며,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 그리고 내세와 하나님에 대한 존재 여부, 또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선과 악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 등에 대한 무지인 것이다. 그리고 외적인 무지나 인간의 육신을 비롯한 자연계에 대한 무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모든 물질 세계의 근본은 무엇이며 그 모든 현상은 각각 어떠한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가 하는 것 등에 대한 무지인 것이다. 인간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쉽지 않고 무지에서 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진리를 찾아 나왔다. 그리하여 내적인 무지에서 내적인 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내적인 진리를 찾아 나온 것이 종교요, 외적인 무지에서 외적인 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외적인 진리를 찾아 나온 것이 과학이다. 이와 같이 알고 보면 종교와 과학은 인생의 양면의 무지로부터 양면의 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양면의 진리를 찾아 나온 방편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무지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가지고 본심의 욕망이 지향하는 선한 방향으로만 나아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 위하려는, 종교와 과학이 통일된 하나의 과제로서 해결되어 내 외 양면의 진리가 상통하게 되지 않으면 안된다.
창조목적
제3절 창 조 목 적 Ⅰ.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목적 피조물의 창조가 끝날 때마다,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창세기의 말씀을 보면(창세기 1장 4절 – 31절), 하나님은 스스로 창조하신 피조물이 선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피조물이 선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면 피조물이 어떻게 되어야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수 있을 것인가 ? 하나님은 만물세계를 창조하신 후, 끝으로 자기의 성상과 형상대로 희로애락의 감성을 가진 인간을 창조하시어 그를 보시고 즐기려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시고 나서, 생육하고 번식하여 만물세계를 주관하라(창세기 1장 28절)고 하신 3대축복의 말씀에 따라 인간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을 이루고 기뻐할 때에, 하나님도 그것을 보시고 가장 기뻐하실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하나님의 3대 축복은 어떻게 하여야 이루어지는 것인가 ? 그것은 창조의 근본기대인 4위기대가 이루어진 터전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을 중심한 4위기 대를 완성하고, 3대 축복의 말씀을 이루어 천국을 이룩함으로써, 선의 목적을 완성한 것을 보시고 기쁨을 누리시려는데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중심한 피조세계가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에게 기쁨을 돌려 드리는 데 있다. 그리고 모든 존재는 이중목적을 지닌 연체인 것이다. 위에서 논술한 바와 같이 모든 존재의 중심에는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의 두 가지가 있기 때문에, 그 중심이 지향하는 목적에도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의 두 가지가 있어서, 그것들의 관계는 성상과 형상과의 관계와 같다. 그리고 성상적인 목적은 전체를 위한 것이고, 형상적인 목적은 그 자체를 위한 것이어서, 전자와 후자는 원인 적인 것과 결과적인 것,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주체적인 것과 대상적인 것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목적을 떠나서 개체적인 목적이 있을 수 없고, 개체적인 목적을 떠나서 개체적인 목적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삼라만상의 피조물은 이러한 이중 목적에 의하여 얽혀 있는 하나의 큰 유기체적인 것이다. Ⅱ.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선의 대상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관한 문제를 더 상세히 알기 위하여는, 우리가 어떠한 상태에 있을 때에 기쁨이 생기느냐 하는 문제를 먼저 알아야 한다. 기쁨은 독자적으로는 생기지 않는다. 무형이거나 실체거나, 자기의 성상과 형상대로 전개된 대상이 있어서, 그것으로부터 오는 자극으로 말미암아 자체의 성상과 형상을 상대적으로 느낄 때 비로소 기쁨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면, 작가의 기쁨은 그가 가지고 있는 구상 자체가 대상이 되던가 혹은 그 구상이 그림이나 조각 등의 작품으로 실체화하여 대상이 되었을 때, 그 대상으로부터 오는 자극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성상과 형상을 상대적으로 느낌으로써 비로소 생기게 된다. 이에 구상 자체가 대상으로 서게 될 때에는 그로부터 오는 자극이 실체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로 인한 기쁨도 실체적인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성품은 모두 하나님을 닮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그의 실체대상으로부터 오는 자극으로 말미암아 자체의 본성상과 본 형상을 상대적으로 느낄 때 비로소 기쁨을 누리시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위기대의 터전 위에서 3대 축복에 의한 천국이 이루어지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쁨을 느끼실 수 있는 선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앞서 설명하였다.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되어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선의 대상이 되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제1축복은 개성을 완성하는데 있다. 인간이 개성을 완성하려면,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대상으로 분립된 마음과 몸이 수수작용을 하여 합성일체화함으로써, 그 자체에서 하나님을 중심한 개체적인 4위기대를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마음과 몸이 창조본연의 4위기대를 이룬 인간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고린 도전서 3장 16절) 그와 일체를 이루기 때문에(요한복음 14장 20절), 신성을 가지게 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함으로써 그의 뜻을 알고 그대로 생활하게 된다. 이와 같이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한 그 마음의 실체대상이되고, 따라서 하나님의 실체대상이 된다. 이에 그 마음이나 하나님은 이러한 실체대상으로부터 오는 자극으로 말미암아 그 자체의 성상과 형상을 상대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제1축복을 이루면 그것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개성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의 희로애락을 곧 그 자체의 것으로서 느끼게 되어, 하나님이 서러워하시는 범죄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절대로 타락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제2축복을 이루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이 각각 개성을 완성한 실체대상으로 분립된 아담과 해와가 부부가 되어 합성일체화함으로써 자녀를 번식하여, 하나님을 중심한 가정적인 4위기대를 이루어야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4위기대를 이룬 가정이나 사회는 개성을 완성한 사람 하나의 모양을 닮게 되므로, 이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인간의 실체대상이요, 따라서 하나님의 실체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이나 하나님은 이러한 가정이나 사회로부터 그 자체의 성상과 형상을 상대적으로 느끼게 되어 기쁨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제2축복을 이루면, 그것도 또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제3축복을 이루게 되면, 그것이 어찌하여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선의 대상이 되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하여는 먼저 성상과 형상으로 본 인간과 만물세계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기 전에 앞으로 창조하시게 될 인간의 성상과 형상을 형상적으로 전개하여 만물세계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만물세계를 총합한 실체상이 되는 것이다. 인간을 소우주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하등동물에서부터 점차적으로 기능이 복잡한 고등동물들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최고급의 기능을 가진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어떠한 동물의 구조와 요소와 소성도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인간이 어떠한 동물의 소리도 다 낼 수 있다는 것은 곧 어떠한 동물의 발성기의 성능도 다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어떠한 피조물의 형과 선의 아름다움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화가는 인간의 나체를 모델로 하여 화법을 연마하는 것이다. 인간과 식물을 놓고 보더라도 그 구조와 기능에는 차이가 있으나 모두 세포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식물의 구조와 요소와 그의 소성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즉 식물의 잎은 그 모양이나 기능으로 보아 인간의 폐에 해당된다. 잎이 대기 중에서 탄산가스를 흡수하는 것 같이, 폐는 산소를 흡수한다. 식물의 줄기와 가지는 인간의 심장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영양소를 전체에 공급한다. 그리고 식물의 뿌리는 인간의 위장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영양소를 섭취한다. 더 나아가 식물의 사관과 도관의 형태와 기능은, 인간의 동맥과 정맥에 해당되는 것이다. 한편 인간은 물과 흙과 공기로 창조되었기 대문에, 광물질의 요소도 가지고 잇다. 지구도 인체를 바탕으로 해서 전개되어 있는 것이다. 지구에는 식물로 덮인 지각이 있고, 지층 속에는 지하천이 있으며, 그 밑에 암흑으로 둘러싸인 용암층이 있는데, 이것은 마치 솜털로 덮인 피부가 있고, 근육 속에는 혈관이 있으며 그 밑에 골격과 골격으로 둘러싸인 골수가 잇는 인체의 구성과 흡사하다.
하느님의 편재성..
Ⅳ. 하나님의 편재성 위에서 우리는 정분합작용에 의하여 3대상목적을 완성한 4위기대는 하나님을 중심한 구형운동을 일으키어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게 되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있는 모든 존재의, 그리고 그 존재를 위한 모든 힘의 근본적인 기대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창조목적을 완성한 세계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 형상의 실체로 되어 있는 피조물의 모든 개성 체가, 다 이와 같이 구형운동을 일으키어 하나님이 운행하실 수 잇는 근본적인 기대를 조성하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이되어 하나님은 일체의 피조물 가운데 편재하시게 되는 것이다. Ⅴ. 생리체의 번식 생리체가 존속하기 위하여는 번식해야 하며, 그 번식은 수수작용에 의한 정분합작용으로 인하여 되어진다. 이에 대한 예를 들면, 식물은 꽃씨로부터 꽃의 수술과 암술이 생기고, 그 수술과 암술의 수수작용으로 인하여 다시 많은 씨를 맺어서 번식한다. 동물에 있어서는 그 수컷과 암컷이 성장하여 서로 수수작용을 하면 새끼를 낳아 번식하게 된다. 그리고 동식물의 모든 세포분열도 수수작용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목적을 세워 놓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실천하여 몸과 마음이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동지가 생기고, 동지들이 서로 잘 주고 잘 받으면 더 많은 동지를 번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피조세계는 무형의 하나님의 본성상과 본 형상이 그 창조목적을 중심하고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그것이 실체적으로 전개되어 번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Ⅵ. 모든 존재가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는 이유 무엇이든지 존재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어떠한 힘을 소요하게 되는데, 그 힘은 수수작용에 의하여서만 생긴다. 그런데 무엇이나 단독적으로는 주고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가 존재하기 위한 힘을 일으키기 위하여는 반드시 수수작용을 할 수 있는 주체와 대상이 이성성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그리고 직선상의 운동에는 어느 때고 끝이 올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직선운동을 하고 있는 존재는 영원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영원성을 가지기 위하여는 돌지 않으면 안 되고, 돌기 위하여는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영원성을 가지기 위하여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원한 대상인 피조물도 영원성을 가지기 위하여는, 하나님을 닮아서 이성성상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간도 주기적인 윤회에 의하여 영원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사위기대의 존재양상
4) 사위기대의 존재양상 정분합작용에 의하여 3대상목적을 이루어 4위기대를 완성한 존재는 무엇이든지 원형 또는 구형운동을 하여 입체로 존재한다. 이제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아보기로 하자. 정분합작용에 의하여 하나님의 이성성상이 각각 그의 실체대상으로 분립된 주체와 대상에 있어서, 그 대상이 주체에 대응하여 상대기준을 조성하면, 그 대상은 주체를 중심으로 하고 서로 주는 힘(원심력)과 받는 힘(구심력)으로써 수수작용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그 대상은 주체를 중심하고 돌아서 원형운동을 하게 됨으로써 합성일체화한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원리에 의하여, 그 주체는 하나님의 대상이 되어 하나님을 중심하고 돌아서 그와 합성일체화하고, 또 그 대상이 그러한 주체와 합성일체화하게 될 때, 비로소 그 합성체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 실체대상이 된다. 이와 같이 그 대상은 그의 주체와 합성일체화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실체대상에 있어서의 주체와 대상도 역시 각각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도 똑같은 수수작용의 원리에 의하여 제 각기 원형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실체대상은 이와 같이 제 각기 끊임없는 운동을 하고 있는 주체와 대상의 수수작용에 의하여 원형운동을 하기 때문에 그 원형운동은, 이 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그 주체와 대상 자체들의 특수한 운동양상에 따라서는 동일한 평면상의 궤도에서만 일어날 수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그 주체를 중심하고 끊임없이 그 원형운동궤도의 각도를 달리하면서 돌아가기 때문에, 이 원형운동은 드디어 구형운동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4위기대를 완성한 존재는 모두 원형 또는 구형운동을 하게 되어 그 존재하는 모양은 입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로서 태양계를 들어보기로 하자. 태양을 주체로 한 모든 유성들은 태양의 대상이 되어 그와 상대기준을 조성함으로써, 태양을 중심하고 그에 대응하여, 원심력과 구심력에 의한 수수작용을 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두 공전의 원형운동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되어 원형운동을 하는 태양과 유성들은 합성일체화하여 태양계를 이룬다. 그런데 이성성상의 복합체인 지구가 자전하고 있을 뿐 아니라, 태양이나 태양을 중심한 다른 유성들도 또한 이성성상의 복합체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전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이 자전하고 있는 태양과 유성들의 수수작용에 의한 태양계의 원형운동은, 항상 똑같은 평면상의 궤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중심하고 끊임없이 그 궤도의 각도를 달리하면서 돌아가기 때문에, 태양계는 구형운동을 하게 되어 입체로서 존재하게 된다. 이와 같이되어 모든 천체는 원형 또는 구형운동에 의하여 입체로서 존재하며, 이와 같은 무수한 천체들이 서로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합성일체화하여 이루어지는 우주도 역시 똑같은 원리에 의하여 구형운동을 하게 됨으로써 입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원자를 이루고 있는 전자가 양자와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양자를 중심하고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그것들은 원형운동을 함으로써 합성일체화하여 원자를 이루게 된다. 그런데 양자와 전자도 각각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어서, 제각기 끊임없는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양자와 전자의 수수작용에 의한 원형운동도 역시 똑같은 평면상의 궤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중심하고 끊임없이 그 각도를 달리하면서 돌아가기 때문에 이 운동은 드디어 구형운동으로 화하게 된다. 원자 역시 이렇듯 구형운동을 함으로써 입체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전기에 의하여 양과 음 두 극에 나타나는 자력선도 똑같은 원리에 의하여 구형운동을 하게 된다. 다시 이러한 예를 인간을 두고 생각해 보기로 하자. 몸은 마음의 대상으로서, 마음과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수수작용을 하게 되면, 몸은 마음을 중심하고 원형운동을 함으로써 합성일체화한다. 그런데 마음이 하나님의 대상이 되어 하나님을 중심하고 돌아서 그와 합성일체화 하고, 몸이 이러한 마음과 합성일체화하게 되면, 그 개체는 비로소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은 실체대상이 되어,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몸과 마음도 각각 이성성상으로 되어 있어서, 그 자체들도 제각기 끊임없는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몸과 마음의 수수작용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원형운동은, 하나님을 중심하고 끊임없이 그 각도를 달리하면서 돌아가게 되어, 구형운동으로 화하게 된다. 그러므로 창조목적을 완성한 인간은, 하나님을 중심하고 언제나 구형운동의 생활을 하는 입체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결국 무형세계까지도 주관하게 되는 것이다(본장 제6절 참조). 이와 같이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는 평면적인 회로에 의한 원형운동이, 다시 입체적인 회로에 의한 구형운동으로 화하는 데서 창조의 조화는 벌어지는 것이다. 즉 그 회로의 거리와 모양과 상태와 방향과 각도와 그리고 그들이 각각 주고받는 힘의 속도 등의 차이에 의하여, 천태만상의 조화의 미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성상과 형상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의 구형운동에도 성상적인 것과 형상적인 것의 두 가지가 있다. 따라서 그 운동의 중심에도 성상적인 중심과 형상적인 중심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자와 후자는 성상과 형상의 관계와 동일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이 구형운동의 궁극적인 중심은 무엇일 것인가 ?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상징적 실체대상으로 창조된 피조물의 중심은 인간이고, 그의 형상적 실체대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중심은 하나님이시므로, 피조세계의 구형운동의 궁극적인 중심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이제 이에 관한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모든 실체대상에 갖추어진 주체와 대상에 있어서 그 대상의 중심이 그의 주체에 있으므로, 주체와 대상의 합성 체의 중심도 역시 그 주체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주체의 궁극적인 중심이 하나님이시므로, 그 합성 체의 궁극적인 중심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3대상이 상대기준을 조성하여, 그것들의 3중심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하나되어 수수작용을 함으로써, 3대상목적을 완성할 때 비로소 4위기대가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4위기대의 궁극적인 중심은 하나님이시다. 이와 같이 4위기대를 완성한 각개 피조물을 개성진리체라고 한다. 그런데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개성진리체는 형상적 개성진리체(인간)와 상징적 개성진리체(인간 이외의 피조물)로 크게 나누인다. 그리고 피조세계는 무수한 개성진리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저급한 것으로부터 고급한 것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질서정연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중 인간은 그 최고급의 개성진리체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개성진리체는 모두 구형운동을 하고 있는데, 저급한 개성진리체는 보다 고급한 개성진리체의 대상이 되므로, 이 대상의 구형운동의 중심은 보다 높은 자리에서 그의 주체가 되어 있는 개성진리체인 것이다. 이와 같이 수많은 상징적 개성진리체의 중심들은, 저급한 것으로부터 보다 고급한 것에로 연결되어 올라가, 그 최종적인 중심은 형상적 개성진리체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오늘의 과학은 물질의 최소단위를 소립자로 보고 있는데, 소립자는 에너지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물질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각 단계의 개성진리체들의 존재목적을 차원적으로 살펴보면, 에너지는 소립자의 형성을 위하여, 소립자는 원자의 구성을 위하여, 원자는 분자의 구성을 위하여, 분자는 물질의 형성을 위하여, 모든 물질은 우주 삼라만상의 개체들을 구성하기 위하여 각각 존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의 운동의 목적은 소립자에, 소립자의 목적은 원자에, 원자의 목적은 분자에, 분자의 목적은 물질에, 모든 물질의 목적은 우주 형성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주는 무엇을 위하여 있으며 그의 중심은 무엇일 것인가 ? 그것은 바로 인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나서 인간에게 피조세계를 주관하라고 말씀하셨다(창세기 1장 28절). 만일 피조세계에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피조세계는 마치 보아 줄 사람이 없는 박물관에 비할 수 있는 것이다. 박물관의 모든 진열품들은 그것들을 감상하고 사랑하며 기뻐해 줄 수 있는 인간이 있음으로써, 비로소 역사적인 유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인연적인 관계가 그것들 사이에 성립되어, 각각 그 존재의 가치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만일 거기에 그 중심 되는 인간이 없다면, 그것들이 무슨 존재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 인간을 위주로 한 피조세계의 경우도 이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즉 인간이 있어 가지고, 피조물을 형성하고 있는 모든 물질의 근본과 그 성격을 밝히고 분류함으로써, 비로소 그것들이 상호간에 합목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나아가서는 인간이 있어야만 동식물이나 수륙만상이나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성좌들의 정체가 구분되어, 그것들이 인간을 중심하고 합목적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물질은 인간의 육체에 흡수되어, 그의 생리적인 기능을 유지하게 하는 요소가 되며, 삼라만상은 인간의 안락한 생활환경을 만들어 주는 자료가 되는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피조세계에 대한 형상적인 중심으로서의 관계이지만, 이밖에 또 성상적인 중심으로서의 관계가 있다. 앞의 것을 육적인 관계라고 하면, 뒤의 것은 정신적인 또는 영적인 관계인 것이다. 물질로 형성된 인간의 생리적 기능이, 마음의 정 지 의에 완전히 공명되는 것은, 물질도 역시 정 지 의에 공명될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물질의 성상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삼라만상은 각각 그 정도의 차는 있으나, 모두 정 지 의의 감응체인 것이다. 우리가 자연계의 아름다움에 도취하여 그와 혼연일체의 신비경을 체험하게 되는 것은, 인간은 피조물의 이러한 성상의 중심도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와 같이 피조세계의 중심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이 합성일체화한 자리가 바로 천주의 중심이 되는 자리인 것이다. 우리는 또 다른 면에서 인간이 천주의 중심이 되는 것을 논하여 보자. 상세한 것은 제6절에서 논하겠지만 무형 유형 두 세계를 총칭하여 천주라고 하는데, 인간은 이 천주를 총합한 실체상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위에서 논한 바에 의하여, 천주를 이루고 있는 모든 피조물은 주체와 대상의 두 가지로 구별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시조로 창조되었던 아담이 완성되었다면, 그는 피조물의 모든 존재가 갖추고 있는 주체들을 총합한 실체상이 되고, 해와가 완성되었다면, 그는 또 피조물의 모든 존재가 갖추고 있는 대상들을 총합한 실체상이 되었으리라는 결론을 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피조세계를 주관하도록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아담과 해와가 다함께 성장하여서, 아담은 피조물의 모든 주체의 주관 주로서 완성되어, 또 해와는 모든 대상의 주관 주로서 완성되어, 그들이 부부를 이루어 일체가 되었다면, 그것이 바로 주체와 대상으로 구성되어 잇는 온 피조세계를 주관하는 중심체였을 것이다. 또 인간은 천주의 화동의 중심으로 창조되었기 대문에, 모든 피조물의 이성성상의 실체적인 중심체인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 부부를 이루어 가지고, 그들이 서로 화동하여 일체를 이룰 때, 비로소 이성성상으로 창조된 온 천주도 화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담과 해와가 완성된 부부로서 일체를 이룬 그 자리가, 바로 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과 미의 대상인 인간이 일체화하여 창조목적을 완성한 선의 중심이 되는 자리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부모 되신 하나님은 자녀로 완성된 인간에게 임재하시어 영원히 안식하시게 된다. 이 때의 이 중심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이므로,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영원히 자극적인 기쁨을 느끼시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실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기가 바로 진리의 중심이 되어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창조목적을 지향하도록 이끌어 주는 본심의 중심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조세계는, 이와 같이 인간이 완성되어 하나님을 중심하고 부부를 이룸으로써 이루어진 4위기대를 중심하고 합목적적인 구형운동을 하게 된다.그런데 피조세계는 인간이 타락됨으로 말미암아 이 중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만물도 탄식하면서 하늘의 뭇 아들들 즉 창조본성을 복귀한 인간들이 나타나서 그의 중심이 되어줄 날을 고대한다고 하였다(로마서 8장 19 – 22절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