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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에 처한 우리들이 취할 자세

   2. 말세에 처한 우리들이 취할 자세  복귀섭리역사의 흐름을 보면, 낡은 것이 끝나려 할 때 새로운 것은 시작된다. 따라서 낡은 것이 끝나는 점이 바로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낡은 역사의 종말기는 바로 새 역사의 시작기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기는, 같은 점에서 출발하여 각각 그 목적을 달리하여 가지고, 세계적인 결실을 하게 된 선과 악의 두 주권이 서로 교차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처한 인간들은, 내적으로는 이념과 사상의 결핍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와 혼돈 속에 빠지게 되며, 외적으로는 무기로 인한 알력과 투쟁 속에서 떨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말세에는 나라가 나라를 치고, 민족과 민족이 상쟁하며, 가족들이 서로 결투를 하리라(마태복음 24장 4 – 9절)는 성서의 기록대로 온갖 비참한 현상이 실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말세에 있어서 이와 같은 참상이 일어나는 것은 악주권을 청산하고 선주권을 세우기 위한 필연적인 현상이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참상 속에서 새 시대를 이룩하기 위한 선주권의 중심을 반드시 세우시는 것이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예수님 같은 분들은 모두 그러한 새 시대의 중심으로 세워졌던 분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적인 전환기에 있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새 역사의 동참자가 되기 위하여는, 하나님이 세우신 새 역사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 시대의 섭리는 낡은 시대를 완전히 청산한 터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시대의 종말기의 환경 속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는 것이므로, 그 시대에 대하여는 상충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섭리는 낡은 시대의 인습에 젖은 사람에게는 좀처럼 납득되어지지 않는다. 새 시대의 섭리를 담당하고 나왔던 성현들이, 모두 그 시대의 희생자가 되어 버렸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 실 예로서 아직도 구약시대의 종말기였을 때에, 신약시대의 새로운 섭리의 중심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구약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단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셨었기 때문에, 종내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살해당하고 마셨다. 예수님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누가복음 5장 38절)고 말씀하셨던 이유도 또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다시 신약시대의 종말기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한 새로운 섭리의 중심으로 오셔서, 새 시대의 건설을 위한(요한계시록 21장 1 – 7절) 새 진리를 주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초림 때에 유대인들로부터 바알세불이 접한 사람으로 몰렸듯이(마태복음 12장 24절), 재림 때도 틀림없이 기독교 신도들에게 몰림을 당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장차 재림하시면 자기가 많은 고난을 받으며, 그 세대에 버린 바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던 것이다(누가복음 17장 25절). 그러므로 역사의 전환기에 있어서, 그대로 낡은 시대의 환경에 집착되어 안도하려는 사람들은, 낡은 시대와 더불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타락된 인간은 신령에 대한 감성이 극히 둔하기 때문에, 대개 진리 면에 치중하여 복귀섭리 노정을 따라 나가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들은 흔히 낡은 시대의 진리 관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복귀섭리가 새로운 섭리의 시대에로 전환하고 있어도, 그들은 이 새 시대의 섭리에 쉽게 감응하여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집착되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따라 신약시대의 섭리에 호응할 수 없었던 역사적인 사실은 이것을 입증하는 좋은 예라 하겠다. 그러나 기도로써 신령한 것을 감득할수 있는 성도들은, 새 시대의 섭리를 심령 적으로 알게 되므로, 낡은 시대의 진리 면에서는 상충적인 입장에 서면서도 신령을 따라 새 시대의 섭리에 호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 중에는, 구약성서에 집착된 인물은 하나도 없었고 오직 마음에 느껴지는 신령을 따라간 사람들 뿐이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나 양심적인 사람들이, 말세에 있어서 극심한 심령 적인 초조감을 면할 수 없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막연하나마 신령을 감득하여서, 마음으로는 새 시대의 섭리를 따르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이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새 진리에 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령 적으로 이러한 상태에 처한 신도들이, 그들을 새 시대의 섭리에로 이끌어주는 새 진리를 듣기만 하면, 신령과 진리가 동시에 그들의 심령과 지능을 깨우쳐서, 새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적인 요구를 완전히 인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그에 호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에 처한 현세인은 무엇보다도 먼저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를 통하여 신령한 것을 감득하도록 힘써야 한다. 다음으로는 인습적인 관념에 집착되지 알고 우리의 몸을 신령에 호응하게 함으로써, 새 시대의 섭리에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새 진리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찾아진 그 진리가 완전히 자기의 몸에서 신령과 하나되어, 진정한 천적인 기쁨이 심령의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게 하여 주는가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끝날 의 성도들은 참된 구원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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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와 새 말씀과 우리의 자세

  제5절 말세와 새 말씀과 우리의 자세      1. 말세와 새 진리  타락인간은 종교에 의하여, 신령과 진리로써(요한복음 4장 23절) 그의 심령과 지능을 깨우쳐서 그의 내적인 무지를 타개하여 나간다. 그런데 진리에 있어서도 내적인 무지를 타개하는 종교에 의한 내적인 진리와 외적인 무지를 타개하는 과학에 의한 외적인 진리의 두 면이 있다. 따라서 지능에도 내적인 진리에 의하여 깨우쳐지는 내적인 지능과 외적인 진리에 의하여 깨우쳐지는 외적인 지능의 두 면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적인 지능은 내적인 진리를 찾아 종교를 세워 나아가고, 외적인 지능은 외적인 진리를 찾아서 과학을 세워 나아가는 것이다.   신령은 무형세계에 관한 사실들이 영적 오관에 의하여 영인체에 영적으로 인식되었다가, 이것이 다시 육적 오관에 공명되어 생리적으로 인식되는 것이며, 진리는 유형세계로부터 직접 인간의 생리적인 감각기관에 의하여 인식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식도 영 육 양면의 과정을 거쳐서 오게 된다.  인간은 영인체와 육신이 합해야만 완전한 인간이 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영적 과정에 의한 신령과 육적 과정에 의한 진리가 완전히 조화되어 심령과 지능이 아울러 깨우쳐짐으로써, 이 두 과정을 통해 온 양면의 인식이 완전히 일치될 때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과 전 피조세계에 관하여 완전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무지에 빠진 인간으로 하여금, 신령과 진리에 의하여 심령과 지능을 아울러 깨우치게 함으로써,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하여 나아가는 섭리를 하신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이러한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아서, 그의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차로 높아지게 되는 것이므로, 그를 깨우치기 위한 신령과 진리도 또한 점차로 그 정도를 높이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리는 유일하고 영원불변하지만, 무지한 상태로부터 점차 복귀되어 나아가는 인간에게, 그것을 가르치시기 위한 범위나 그것을 표현하는 정도나 방법은 시대를 따라 달리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예를 들면, 인간이 아직도 몽매하여 진리를 직접 받을 수 없었던 구약 시대에는, 진리 대신으로 제물을 드리게 하셨고, 인간의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높아짐에 따라 ‘모세’때는 율법을, 예수님 때는 복음을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말씀을 진리라고 하시지 않고, 그 자신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다(요한복음 14장 6절). 왜냐 하면 그의 말씀은 어디까지나 진리 되신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어서 그 말씀을 받는 대상에 따라서 그 범위와 정도와 방법을 달리하시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서의 문자는 진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요 진리 자체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이러한 견지에 입각해 볼 때, 신약성서는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있어, 심령과 지능의 정도가 대단히 저급하였을 때의 인간들로 하여금 진리를 알게 하기 위해 주셨던 하나의 과정 적인 교과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당시의 사람들을 깨우치기에 알맞도록 주셨던, 한정된 범위 내에서의 비유 또는 상징적인 표현방법 그대로를 가지고, 현대 과학문명인들의 진리에 대한 욕구를 완전히 충족시킨다는 것은 결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지성인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는, 보다 고차적인 내용과 과학적인 표현방법에 의한 것이 나오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을 우리는 새 진리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새 진리는 이미 총서에서 말한 바, 인간의 내 외 양면의 무지를 타개하기 위하여, 종교와 과학을 하나의 통일된 과제로 완전히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는 안된다.  새 진리가 나와 야 할 이유를 또 다른 면에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성서는 진리 자체가 아니라 그 진리를 가르쳐주는 하나의 교과서인 것이다. 그런데 이 교과서에는 그 진리의 중요한 부분이 거의 상징과 비유로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에는 사람에 따라 서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차이로 말미암아 많은 교파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파 분열의 제1원인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성서 자체에 있기 때문에, 그 분열과 싸움은 계속 확대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 진리가 나와서 상징과 비유로 되어 있는 성경의 근본내용을 누구나 공인할 수 있도록 해명하지 않는 한, 교파분열과 그 싸움의 길은 막을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기독교의 통일에 의한 복귀섭리의 목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요한복음 16장 25절)는 말씀으로써, 끝날에 이르면 다시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한복음 3장 12절)고하신 말씀대로,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하실 말씀을 못다 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까지도“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한복음 16장 12절)고하심으로써 속에 있는 말씀을 다하시지 못하는 서러운 심정을 토로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못다 하시고 돌아가셨던 그 말씀은 영원히 비밀로 남아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장 13절)고 계속하여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 말씀은 반드시 성령에 의하여 새로운 진리로써 가르쳐 주시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요한계시록 5장 1절)고도 기록되어 있는 바로 그 책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신 그 말씀이 인봉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계속하여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보면,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 능히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여 요한이 애곡할 때에,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요한계시록 5정 3 – 5절)고 말씀하셨다. 여기의 다윗의 뿌리에서 탄생한 사자는 바로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가 인류 앞에 오랫동안 일곱 인으로 봉하여 비밀로 남겨 두셨던 그 말씀의 인봉을 떼시어, 성도들에게 새로운 진리의 말씀으로 주실 때가 와야 할 것이기 때문에,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요한계시록 10장 11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기에 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사도행전 2장 17 – 18절)라고도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여러모로 보아서 말세에는 반드시 새 진리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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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축복 복귀의 현상

    3. 제3축복 복귀의 현상  하나님의 제3축복은 아담과 해와가 완성되어, 피조세계에 대한 주관성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피조세계에 대한 인간의 주관성은 내 외 양면의 주관성이 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이 양면의 주관성을 상실하였던 것인데, 현세에 이르러 이것이 복귀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세는 말세라는 것을 알수 있는 것이다.  내적 주관성이라는 것은 심정적 주관성을 의미한다. 인간이 개성을 완성하면 하나님과 심정적인 일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심정을 그대로 체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완성됨으로써,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과 동일한 심정을 가지고, 피조세계에 대하여 사랑을 주고 그로부터 미를 돌려 받게 될 때, 인간은 피조세계에 대한 심정적인 주관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심정으로써 피조세계를 대할 수 없게 되었었다. 그러나 종교 철할 윤리 등에 의한 하나님의 복귀섭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대한 타락인간의 심령이 점차로 밝아지게 되어, 현세에 이르러는 피조세계에 대한 심정적인 주관자의 자격을 복귀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외적 주관성은 과학에 의한 주관성을 의미한다. 만일 인간이 완성되어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의 심정과 동일한 심정을 가지고 피조세계를 대하여 내적 주관을 할 수 있었다면, 인간의 영감은 고차적으로 발달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과학의 발달도 극히 단시일에 최고도에 달하게 되었을 것이었다.  인간은 그렇게 됨으로써 피조물에 대한 외적인 주관을 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은 일찍이 천체를 비롯한 자연계 전체를 완전히 정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학의 발달에 따르는 경제발전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안락한 생활환경을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심령이 어두워짐으로써, 피조물에 대한 내적인 주관성을 상실하게 되어, 동물과 같이 영감이 둔한 미개인으로 연락되었기 때문에, 피조물에 대한 외적인 주관성도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의하여 심령이 밝아짐에 따라, 피조물에 대한 내적인 주관성도 복귀되어 왔고, 그에 따라 피조물에 대한 외적인 주관성도 점차로 복귀되어 왔기 때문에, 현세에 이르러서는 과학의 발달도 최고도에 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과학의 발달에 따르는 경제발전으로 말미암아, 현대인은 극도로 안락한 생활환경을 이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같이 타락인간이 피조세계에 대한 주관성을 복귀함에 따라, 하나님의 제3축복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을 볼 때, 우리는 현세가 말세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위에서 여러 번 보아 온 바와 같이, 문화권의 발전도 하나의 종교를 중심하고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해 가고있고, 국가형태도 하나의 세계적인 주권기구를 지향하여, 국제연맹에서 국제 연합으로,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는 세계정부를 모색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경제발전을 놓고 보더라도 세계는 하나의 공동시장을 이루어 가는 추세에 있으며, 극도로 발달된 교통기관과 통신기관은 시간과 공간을 단축시켜서 인간으로 하여금 지구를 하나의 정원과 같이 거닐고 또 교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리하여 인류는 사해동포의 형제애를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가정은 부모가 있음으로써만 이루어지며, 또 거기에서만 진정한 형제애는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인류의 부모 되신 예수님만 재림하시면 전 인류는 하나의 정원에서 하나의 대가족을 이루어 가지고 단란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보더라도 현세는 말세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흘러온 역사가 인류에게 주어야 할 최후의 선물이 한 가지 있으니, 그것은 목적 없이한 정원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낯선 이 나그네들을, 한 부모를 중심한 한 식구로 묶어 줄 수 있는 천주 적인 이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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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축복 복귀의 현상

  2. 제2축복 복귀의 현상  하나님의 제2축복은 아담과 해와가 참 부모로 완성되어, 선의 자녀를 번식함으로써 선 주권의 가정과 사회와 세계를 이루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는 타락되어, 악주권에 구속된 세계를 이루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편으로 종교를 세워 역사 하심으로써, 내적인 사탄 분립에 의한 심령복귀의 섭리를 하시고, 또 한편으로는 투쟁과 전쟁으로 외적인 사탄 분립을 하심으로써, 내 외 양면에 걸친 주권 복귀의 섭리를 해 내려 오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류역사는 내 외 양면의 사탄 분립에 의한 복귀섭리로써, 장차 참 부모 되신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자녀를 찾아 하나님의 제2축복을 복귀해 온 것이므로, 종교를 중심한 문화권의 발전 사와 국가흥망사에 의해 나타난 내 외 양면에 걸친 하나님의 주권 복귀의 현상으로 보아, 현세가 바로 말세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우리는 문화권 발전사가 어떻게 흘러 내려와서, 현세를 말세에로 이끌어 가고 있는가를 알아보자.  문화권 발전사에 관한 문제는 이미 여려 차례 논술한 바이지만, 하나님은 타락인간에게 성현들을 보내시어, 선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심을 따라 종교를 세우게 하심으로써, 그 종교를 중심한 문화권을 일으키셨다. 그러므로 역사상에는 많은 문화권이 일어났던 것이었으나,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이것들은 서로 융합 또는 흡수되어, 현세에 이르러는 기독교를 중심한 하나의 세계적인 문화권을 형성해 가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추세는 기독교의 중심인 예수님을 중심하고 모든 민족이 같은 형제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제2축복이 복귀되어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전 인류의 참 부모를 찾아 세워 가지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이 중생하여 선의 자녀가 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대가족의 세계를 복귀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곧 기독교가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할 중심종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세에 이르러는 세계가 기독교를 중심하고 하나의 문화권으로 형성되어, 인류의 참 부모 되신 예수와 성신(전편 제7장 참조)을 중심하고 모든 인간이 선의 자녀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제2축복 복귀의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우리는 현세가 바로 말세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국가흥망사는 어떻게 주권복귀의 목적을 향하여 흘러와서, 현세를 말세로 이끌어 가고 있는가를 알아보자.  투쟁이나 전쟁을 단순히 어떠한 이해관계나 이념의 상충에서 빚어지는 결과라고 보는 것은, 하나님의 근본섭리를 모르는 데서 일어나는 잘못이다.  인류역사는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을 중심한 악주권으로 출발하여 죄악의 역사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남아 있는 한, 그 역사의 목적도 어디까지나 사탄을 분립하여 하나님의 선주권을 복귀하는 데 있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악주권의 세계에 전쟁도 분열도 없다면, 그 세계는 그대로 영속할 것이요, 따라서 선주권은 영원히 복귀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타락인간에게 성현들을 보내시어, 선을 세우고 종교를 일으키심으로써, 보다 선한 주권으로 하여금 보다 악한 주권을 멸하게 하시면서, 점차적으로 하늘편 주권을 복귀하시는 섭리를 해 오신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르기 위하여는 투쟁과 전쟁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하여는 후편에서 더욱 상세히 논하겠거니와 인류역사는 탕감복귀의 섭리노정을 밟아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국한된 시간권내에서만 보면, 악이 왕성한 때도 없지 않았으나, 결국 그것은 패망하여 보다 선한 판도 내에 흡수되곤 하였다. 그러므로 전쟁으로 인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선주권을 복귀하기 위한 섭리노정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가나안 7족을 멸하셨던 것이고, 사울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아멜렉족과  그에 속한 짐승들을 전멸시키지 않았다가 엄벌을 받았던 것이다(사무엘상 15장 18 – 23절1)). 하나님은 이와 같이 직접 이민족들을 멸할 것을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선민이었던 북조 이스라엘도 악으로 돌아갈 때, 아낌없이 그들을 앗시리아에 내주시어 멸망케 하셨던 것이다(열왕기하 17장 23절2)). 하나님이 이와 같이하셨던 것은, 오직 악주권을 멸하시고 선주권을 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같은 하늘편 안에서의 개인적인 투쟁은 선주권 자체를 파괴하는 결과가 되므로 악이 되지만, 선주권이 악주권을 멸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므로 이것은 선이 된다. 이와 같이 사탄 분립을 위한 투쟁의 역사는, 점차적으로 땅과 재물을 세계적으로 빼앗아 하늘편 주권으로 복귀하는 데 이르렀고, 인간에 있어서도 개인으로부터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로 하늘편 기대를 넓혀, 오늘날에는 이것을 세계쩍으로 복귀하는 데 이르렀다. 이렇듯 사탄분립을 위한 섭리가 씨족주의시대에서 출발하여, 봉건주의시대와 군주주의시대를 거치어 민주주의시대로 들어오게 된 오늘날에 와서는, 이 인간세계를 하늘편 주권을 세우는 민주주의세계와, 사탄편 주권을 세우는 공산주의세계의 두 세계로 분립하여 놓았다.  이와 같이 사탄을 중심한 악주권으로써 출발한 인류 역사는, 한편으로 종교와 철학과 윤리에 의하여 선을 지향하는 인간의 창조본성이 환기됨에 따라, 점차 악주권에서 선주권을 위한 세력이 분립되어, 마침내 세계적으로 대립되는 두 주권을 형성하는데 이른 것이다. 그런데 목적이 상반되는 이 두 주권이 결코 공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인류역사의 종말에 이르르면, 이것들은 반드시 한 점에서 교차되어, 이념을 중심하고 내적으로 상충하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군사력을 중심하고 외적으로 전쟁을 하여, 결국 사탄주권은 영원히 파멸되고, 하늘편 주권만이 영원한 하나님의 단일주권으로서 복귀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세는 선주권을 지향하는 하늘편 세계와 사탄을 중심한 악주권의 세계가 대결하여, 서로 교차되고 있는 때이므로 또한 말세인 것이다.  이와 같이 악주권에서 선주권을 분립하여 나온 인류역사는, 마치 흐르는 흙물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흙은 가라앉고 물은 위에 뜨게 되어, 나중에는 흙과 물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과 같이,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악주권은 점차 쇠망의 길로 내려오고, 선주권은 융흥의 길로 올라가게 되어, 역사의 종말에 이르러 이 두 주권은 얼마동안 교차되었다가, 결국 전자는 영원히 멸망하고 후자는 하나님의 주권으로서 영원히 남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 악 두 주권의 역사노정이 교차되는 때가 말세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때는 아담과 해와가 타락된 장성기 완성급의 시기를 탕감복귀하는 때이므로, 마치 에덴동산의 인간시조가 어디에다 중심을 두어야 할지 모르고 혼돈되었던 것과 같이 모든 인간들도 사상의 혼돈을 일으키어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복귀섭리노정에 있어 이와 같이 말세가 되어, 선 악의 두 주권이 교차되었던 때는 여러 차례 있었다. 위에서 이미 논술한 바와 같이, 노아 때나 예수님 때도 말세여서 이 두 주권은 서로 교차되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때마다 인간이 그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여 악주권을 멸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주권분립의 섭리를 다시 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 재림기에 있어 다시 한번 두 주권의 교차가 있게 되는 것이다. 복귀섭리노정은 이렇듯 주기적으로 비슷한 나선상을 반복하면서 원형과정을 거쳐 창조목적을 지향하여 내려왔기 때문에, 역사상에는 필연적으로 동시성의 시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후편 제3장 제1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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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축복 복귀의 현상

   1. 제1축복 복귀의 현상  이미 창조원리에서 논술한 바,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에게 약속하셨던 제1축복은 바로 그들이 개성을 완성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타락인간을 개성을 완성한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복귀해 나오신 하나님의 섭리가 그 최종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아래와 같은 여러 현상으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첫째로 타락인간의 심령이 복귀되어 가는 것으로 보아 그러하다. 인간이 완성되면 하나님과 완전히 심정적인 일체를 이루어, 서로 교통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함은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그러므로 아담과 해와도 불완전한 상태이기는 하였지만, 하나님과 일문일답하던 단계에서 타락되어, 그의 후손은 하나님을 모르는 데까지 떨어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타락된 인간이 복귀섭리의 시대적인 혜택을 받게 됨에 따라 점차 그 심령이 복귀됨으로써, 말세에 이르러서는 사도행전 2장 17절1)에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 이들은 꿈을 꾸리라”고하신 말씀대로,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과 영통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세에 이르러서는 영통하는 성도들이 비 온 뒤의 죽순 같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현세는 말세이기 때문에 인간이 개성을 완성하여,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타락인간이 본심의 자유를 복귀해 가고 있는 역사적인 귀추가 더욱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사탄의 주관 권에 들어, 본심의 자유가 구속을 받게 됨으로써,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현세에 이르러서는 육신의 생명을 버리고라도, 본심의 자유를 찾으려는 심정이 고조되고 있으니, 이것은 말세가 되어 개성을 완성함으로써, 타락인간이 사탄에게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하여, 하나님 앞으로 자유로 나아갈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타락인간의 창조본연의 가치 성이 복귀되어 가는 현상으로 보아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있다. 인간의 창조본연의 가치를 횡적으로 보면 누구나 동등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그다지 귀중한 것 같이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을 중심하고 종적으로 보면, 각 개성은 가장 존귀한 천주 적인 가치를 제각기 띠고 있는 것이다(전편 제7장 제1절).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이러한 가치를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현세에 이르러 민주주의사상이 고조됨에 따라 인간이 노예 해방, 흑인 해방, 약소민족 해방 등을 주장하며, 인권옹호와 남녀평등과 만민평등을 부르짖음으로써, 창조본연의 개성의 가치를 최고도로 추구하는 데 이르렀으니, 이것은 바로 말세가 다 되어 타락 인간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할 수 있는 시대에로 들어가고 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넷째로 타락인간의 본성의 사람이 복귀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완성한 세계는 완성한 사람 하나 모양의 세계로서, 그 세계의 인간은 모두 하나님과 종적으로 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인간 상호간에 있어서도 횡적으로 일체를 이루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계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종횡으로 얽히어 한 몸같이 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종적인 사랑이 끊어졌기 때문에 인간들 사이의 횡적인 사랑도 따라서 끊어지게 되어, 인류역사는 투쟁으로써 엮어져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세에 이르러서는 박애주의 사상이 고조되면서 인간이 점점 그 본성애를 찾아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현세는 하나님의 제1축복을 복귀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하고 개성을 완성할 수 있는 말세에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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