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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섭리로 본 역사발전
제7절 복귀섭리로 본 역사발전 창조원리에서 이미 논한 바와같이, 지상천국은 완성한 사람 하나의 모양과 같은 세계인 것이다. 따라서 타락된 세계는 타락한 사람 하나의 모양을 닮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락한 사람 하나의 생활을 살펴봄으로써 인류죄악사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엿볼 수 있을 ㄱ서이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선을 지향하는 본심과 이 본심의 명령을 배반하고 악을 지향하는 사심이 있어서, 이 두 마음이 항상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본심의 명령을 따르는 선행과 사심의 명령을 따르는 악행이, 우리들의 한 몸 가운데서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와같이 그 자체 안에서 투쟁을 일으키고 있는 개체들이 횡적으로 얽혀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사회이기 때문에 거기에도 역시 투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와같이 투쟁으로 얽히어진 사회생활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종적으로 변전하여 내려온 것이 바로 인류역시이므로, 이것은 필연적으로 투쟁과 전쟁의 역사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본심과 사심의 끈덕진 싸움 가운데서, 악을 물리치고 선을 따르려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행동도 점차 악행을 버리고 선을 행해 나아가는 방향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타락된 인간에게도 이와같이 선을 지향하는 본심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맞추어 선의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들에 의하여 엮어져 내려온 역사는, 선악이 뒤섞이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악을 물리치고 선을 지향해 내려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역사가 지향하는 종국적인 세계는 바로 선의 목적이 이루어진 천국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쟁이나 전쟁은 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선과 악을 분립해 나온 하나의 과정적인 현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싸움의 결과가 일시 악의 승리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악의 결과로 인하여, 역사는 보다 더 큰 선의 목적을 이루어 나아가는 섭리노정으로 바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인류역사가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의하여 부단히 선과 악의 분립역사를 되풀이하면서, 선을 지향하고 발전하여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인간이 <사탄>과 혈연관계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사탄>은 타락된 인간을 중심하고, 장차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것과 같은 형의 세계를 앞장서 이루어 나왔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류역사는 원리형의 비원리세계를 이루어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인류역사의 종말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지상천국을 복귀하시기 전에, <사탄>을 중심으로 한 그와 같은 형의 비원리세계가 먼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세계인 것이다. <사탄>은 이처럼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뜻을 항상 앞질러 비원리적으로 이루어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복귀섭리노정에서는 참 것이 나타나기 전에 거짓 것이 먼저 참 것과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앞서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신 성서의 말씀은 이러한 원리로써만 해명될 수 있는 것이다. Ⅰ. 복귀섭리시대에 있어서의 역사 발전 타락된 인간들에 의하여 처음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원시공동사회였다. 이 사회는 <사탄>을 중심하고 서로가 형편껏 도우며 살던 사회로서, 원래 하나님이 완성한 인간을 중심하고 이루려 하셨던 공생공영공의주의사회를 <사탄>이 앞질러 비원리적으로 이루어 놓은 것이었다. 만약 이 사회에 토쟁도 분열도 없었다면 이 사회는 그대로 영원히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복귀섭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타락한 인간은 그 개체에 있어 두 마음이 서로 싸우고, 또 이 마음의 싸움이 행동으로 나타나서 개체와 개체가 서로 싸우게 되므로, 원시공동사회가 그대로 평화로이 유지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 사회가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서로 달리하는 사회에로 발전함에 따라서, 그 사움이 더욱 크게 전개되어 온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맞추려는 인간의 본심의 작용에 의하여, <사탄>을 중심하고 이루어졌던 원시공동사회에는 일찍부터 싸움에 의한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사탄>을 중심한 인류죄악사의 발전과정을 보면, 원시공동사회에서 분열된 인간을 중심하고 씨족사회가 형성되었고, 그것이 더 성장항여 봉건사회를 이루었으며, 그 판도와 주권을 더욱 확장하여 군주사회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것은 장차 하나님이 이 죄악세계에서 선한 개체를 부르시어, 그들을 중심하고 선의 씨족사회를 세우고, 나아가 선의 봉건사회를 이루어가지고 선의 왕국을 건설함으로써, <메시아>를 맞기 위한 선의 판도와 주권을 수립하려 하셨기 때문에, <사탄>이 또한 이것을 먼저 알아가지고 그러한 형의 노정을 앞질러 걸어나온 것이었다. 실상 하나님은 이러한 죄악사회에서 선의 중심으로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자녀를 번식케 함으로써, <이스라엘> 씨족사회를 세우셨던 것이다. 그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애급에 들어가서 씨족으로부터 부족으로 발전되었으며, 그들이 <가나안>으로 돌아온 뒤에는 사사시대를 이루었던 것인데, 이 사사를 중심한 사회가 바로 <이스라엘> 봉건사회였다. 그러면 이 사회를 어찌하여 봉건사회라고 하는가 ? 봉건사회의 특성은 봉사와 복종을 전제로 하는 주종관계에 의한 정치제도와 봉건영토를 중심한 봉쇄적인 자급자족의 경제체제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사시대는 바로 이러한 성격의 사회였던 것이다. 즉 <가나안>땅으로 돌아온 <이스라엘>민족의 각 지파에게는 땅이 분배되었고, 그 지파들은 대영주와 같은 위치에 있었던 사사를 중심하고 봉건사회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를 <이스라엘> 봉건사회라고 한다. 봉건사회의 백성들은 그 사회의 성격상 그 영주의 사상과 영도에 절대 순종굴복하였다. 따라서 그 영주가 하나님의뜻 가운데 서 있는 한, 그 백성들은 자연히 그를 따라서 하늘편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또 그들은 이와 같이 주종관계에 의한 봉쇄적인 정치와 경제의 사회제도 밑에 있었기 때문에, <사탄>의 외침을 당하지 않는 환경 가운데서 생활할 수 있었던것이었다. 따라서 씨족사회가 봉건사회로 발전하게 된 것은 <사탄>의 소유를 하늘편으로 빼앗아 넘김으로써, 하늘편 주권에 속하는 보다 큰 판도를 이루어 가지고 <사탄>의 침범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기 때문에, 또 그것을 안 <사탄>은 여기에 대비하여 한 걸음 앞질러서 먼저 <사탄>은 여기에 대비하여 한 걸음 앞질러서 먼저 <사탄>편 봉건사회를 이룸으로써, <사탄>주권을 유지하려 하였던 것이다. 또 한편 봉건사회는, 보다 더 큰 주권과 판도의 군주사회를 이루기 위한 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 오게 되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 봉건사회로써, <사탄>편의 침범을 막을 수 있는 작은 단위의 하늘편 주권과 백성과 경제적인 판도를 만든 후에, 다시 이것들을 통합하여 보다 더 큰 주권과 백성과 경제적인 판도로 확장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이스라엘>군주사회가 오게 되었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울>왕으로 시작된 통일왕국시대였다.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만왕의 왕으로 오신 분이었다(요한계시록 11장 15절),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군주사회를 이룩하신 것은,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만왕의 왕으로 군림하실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이러한 섭리 밑에서 <이스라엘> 군주사회를 세우려 하셨기 때문에, <사탄>편에서는 또다시 이것을 앞질러 먼저 <사탄>을 중심한 군주사회를 이룩함으로써, 하늘의 섭리를 막아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왕국시대가 오기 전에, 이미 <사탄>세계에서는, <에집트>왕국이 기원전 수십세기에 제1왕조를 세워 그 뒤 30왕조나 계승되었었고, 옛 <바빌로니아>왕국은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왕 때 벌써 전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였던 것이며, <힛타이트>왕국은 기원전 14세기에 <시리아>를 중심으로 동방의 최강국이 되었었다. 그리하여 <사탄>편 세계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대응하는 인간본심의 작용에 의하여, 보다 선한 왕국과 보다 악한 왕국이 서로 싸우면서 왕국을 단위로 한 분립역사를 일으켜 나왔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솔로몬>왕이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었더면, 그는 <에집트> <메소포타미아> <크레타>(혹은 미노아)등 3대문명을 흡수한 문화적인 사회환경에서, 그의 뚜어난 정치능력을 발휘하여 동방제국을 통일하였을 것이었고, 나아가서는 <메시아>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세계적인 판도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솔로몬>왕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이 군주사회를 무너뜨리는 섭리를 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통일왕국시대의 왕들이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 하나님의 주권을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늘 뜻을 배반하였던 북조는 이방인 <앗시리아> (에집트, 바빌로니아, 힛타이트 등의 왕국이 약해짐에 따라, 이 앗시리아 왕궁이 강대해져서 기원전 8세기에 에집트를 포함한 오리엔트의 중심부를 정복하여 최초의 세계제국을 건설하였었다)에 붙여 멸망하게 하셨고, 하늘 뜻을 받들던 남조 <유대>도 얼마 안 가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게 되자, 신<바빌로니아> (앗시리아 제국이 멸망한 뒤 갈대아인에 의하여 바빌론을 수도로 하여, 신 바빌로니아왕국 혹은 갈대아왕국이 창건되었었다)에 붙여서 멸망하게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왕궁을 멸하신 후, <메시아>가 강림하실 때까지 <유대>민족을 여러 이방들에게 속하게 하심으로써, 이 민족의 왕위를 비워 두셨다. 특히 <유대>민족을 민주주의의 기틀이 될 <헬라>문명권내에 속방이 되게 하심으로써, 장차 <메시아>가 강림하실 때 <유대>민족이 그를 환영하기만 하면, 백성의 뜻에 의하여서 언제든지 <메시아>가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민주주의형의 사회를 이루어 놓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민의는 예수님을 왕위에 올려 세우지 못하도록 그를 십자가에 살해하고 말았으므로, 이것으로써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후손을 중심하고 이루려 하셨던 2000년의 복귀섭리의 목적은 영적으로만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메시아강림준비시대
제6장 메시아강림준비시대와 메시아재강림준비시대 <이스라엘> 민족은 <바빌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메시아> 강림준비시대 400년을 지나서야 예수님을 맞았다. 그러므로 이것을 탕감보귀하기 위하여는, 기독교 신도들도 교황이 <아비뇽>의 포로생활에서 <로마>로 돌아온 뒤, <메사아> 재강림준비시대 400년을 지나서야 재림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40일 <사탄>분립기간으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섭리가, 계속되는 <사탄>의 침범으로 인하여 연장을 거듭하여 내려왔던 <아듬> 이후 4,000년 복귀섭리역사의 종적인 탕감조건을, 이 역사의 최종적인 한 시대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메시아> 강림준비시대가 있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는, <아담>으로부터 6,000년 복귀섭리역사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이 역사의 최종적인 한 시대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한 <메시아> 재강림준비시대가 없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민족은 <느부갓네살>왕에 의하여 파괴되었던 성전을 신축하고, 또 <말라기>선지의 영도에 의하여 사신을 숭배하던 과거의 죄를 회개하면서, 율법을 공부하고 신앙의 쇄신운동을 일으킴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 나왔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황이 <로마>로 귀환한 후의 중세 기독교인들은, <루터>등을 중심하고 종교의 개혁운동을 일으키어, 중세 암흑시대의 어둠을 뚫고 새로운 복음의 빛을 따라 신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함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해 나왔던 것이다.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귀환하여 애급으로 들어갈 때까지의 약 40년 준비기간을 형상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메시아>강림준비시대였다. 그리고 이 시대를 다시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메시아>재강림준비시대인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모든 기곡교 신도들은, 마치 애급에서 <요셉>을 만날 때까지의 <야곱>가정이나, 또 예수님을 맞을 때까지의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갖은 파란과 고난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아니 된다. 복귀섭리시대는 율법과 제사 등의 외적인 조건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세워 내려오던 시대였으므로, <메시아>강림준비시대에 있어서의 제1 이스라엘은, <페르샤> <그리이스> <에집트> <시리아> <로마> 등의 이방에 지배되어 외적인 고난의 길을 밟았던 것이다. 그러나 복귀섭리연장시대는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한 기도와 신앙의 내적인 조건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세워 나온 시대이므로, <메시아>재강림준비시대에 있어서의 제2 <이스라엘>은 내적인 순나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아니 된다. 곧 이 시대에는 문예부흥의 주도이념인 인문주의와 그에 따라 일어난 계몽사조, 그리고 종교개혁에 따라 부르짖게 된 신앙의 자유 등에 의한 영향으로 말미암아, 종교와 사상에 일대 혼란을 일으키게 되어 기독교 신도들은 말할 수 없는 내적인 시련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강림을 위한 400년 준비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그의 재림을 위한 400년 준비기간이 있게 된 것인데, 우리는 여기에서 <메시아>를 맞기 위한 준비기간인 이 두 시대에 대해서, 각각 그 시대적인 배경과 환경이 어떻게 조성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초림 때에는 하나님이 그의 선민을 위하여, <메시아>가 강림하시기 430년 전에 선지자 <말라기>를 보내시어, <메시아>가 강림하실 것을 예언케 하시고, 한편으로는 <유대>교를 쇄신하여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선민으로서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셨다. 한편 이방인들 간에 있어서는, 이와 거의 동시대에 인도의 석가모니(B.C.565~485)로 하여금 힌두교를 발전시켜 불교의 새로운 터전을 개척케 하셨고, <그리이스>에서는 <소크라테스>(B.C.470~399)로 하여금 <헬라>문화시대를 개척케 하셨으며, 또 동양에서는 공자(B.C.552~479)로 하여금 유교로써 인륜도덕을 세우게 하시는 등, 각각 그 지방과 그 민족에 적응되는 문화와 종교를 세우시어, 장차 오실 <메시아>를 맞이하는데 필요한 심령적인 준비를 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와같이 준비된 터 위에 오셔서, 기독교를 중심하고 <유대>교(Hebraism)를 수습하고 <헬라>문화(Hellenism) 및 불교(Buddhism) 유교(Confucism)등의 종교를 포섭함으로써, 그 종교와 문화의 전역을 하나의 기독교문화권 안에 통합하려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초림을 앞도구 <메시아>강림에 대한 준비를 위하여 섭리하셨던 그 환경 조성의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오게 된 시대가 문예부흥시대였다. 그러므로 문예부흥시대는 <메시아>재강림을 위한 그 시대적인 배경과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시대였었던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바와 같은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모든 면에 걸친 비약적인 발전은, 모두 이 문예부흥시대로부터 급격히 시작되어, 재림 예수님을 맞을 수 있는 오늘날의 시대적인 배경과 환경을 성숙시켜나온 것이다. 즉 예수님 때에는 <로마>제국의 발흥으로 인하여 지중해를 중심하고 형성되었던 광대한 정치적 판도와, 사면팔방으로 트인 교통과, <헬라>어를 중심하고 형성되었던 광범한 문화적 판도 등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중심한 <이스라엘>, <이스라엘>을 중심한 <로마>, <로마>를 중심한 세계에로, <메시아>의 사상이 급속히 퍼져나갈 수 있는 평면적인 기대가 이미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재림 때인 오늘날에 있어서도, 열강들의 융흥으로 말미암아 자유를 기반으로한 민주주의의 정치적인 판도는 전 세계에 펼쳐졌고, 교통 및 통신의비약적인 발달로 인하여 동서의 거리는 극도로 단축되었으며, 언어와 문화는 세걔쩍으로 교류되어, <메시아> 재강림을 위한 사조가 자유롭고도 신속하게 전 인류의 가슴 속에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이미 그 평면적인 판도가 완전히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메시아>가 재림하시면, 그의 진리와 사상을 급속도로 전파하여 단시일내에 세계화시키는데, 이것이 그대로 적절한 평면적 기대가 되어지리라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유대민족 포로 귀환시대와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
제5절 유대민족 포로 귀환시대와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서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성전이상을 복귀할 수없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시 이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마치 <아브라함>의 헌제 실수를 탕감복귀케 하시려고 <이스라엘>민족으로 하여금 <사탄>세계인 애급으로 들어가서 고역을 당하게 하셨던 것처럼, <유대>민족도 <사탄>세계인 <바빌론>으로 포로되어 가서 고역을 당하게 하셨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미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기독왕국시대를 세우신 것은 교황과 국왕을 중심하고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여, 그 기대 위에 <메시아>로 재림하시는 ‘만왕의 왕’에게 그 나라와 왕위를 인계해 드림으로써, <메시아>왕국을 건설하기 위함이었다(이사야 9장 6절1), 누가복음 1장 33절2)). 그러나 국왕과 그를 <실체기대>의 중심인물로 세우기 위한 영적인 기대를 조성해야 할 교황들이 부패한 가운데서 끝내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하지 못하였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새로운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 교황으로 하여금 포로가 되어 고역을 당하게 하셨던 것이다. 전에 <여호야김>왕을 비롯하여 <다니엘>과 기타 왕족들, 그리고 정부 대신들과 관리와 기술자 등 많은 <유대>인들이 <비빌로니아>의 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로 잡혀 갔던 70년 기간이 있었고(예레미아 39전 1~10절3), 역대기하 24장, 역대기하 25절), <페르샤>가 <바빌로니아>를 멸하고, <고레스>왕이 조서를 내려 그들을 해방시킨 후, 3차에 걸쳐 고향으로 귀환하여 선지자 <말라기>를 중심하고 <메시아>를 위한 준비를 하는 민족으로 세워질 때까지의 140년기간이 있었다.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교황 포로 및 귀환시대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노정을 걸어야 했었다. 교황과 승려들은 그들의 부도덕으로 말미암아 점차로 국민들의 신망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 위에 십자군전쟁에 패함으로 인하여 교황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 되었었다. 한편 십자군전쟁 이후 봉건제도가 몰락되고 근대국가가 성립되자 점차로 왕권이 커지면서 교황과 국왕과의 충돌은 격화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 <프랑스>왕 <필립> 4세와 충돌되어, 일시 그에게 금고를 당하는 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후 1대를 지나서 1305년에 교황으로 피선된 <클레멘스> 5세는, 1309년에 교황청을 <로마>로부터 남부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기었고, 거기에서 70년간 역대의 교황들은 <프랑스>왕의 구속을 받으면서 포로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되었었다. 그 뒤 교황 <그레고리우스> 11세는 1377년 <로마>로 귀환하였었다. 그가 서거한 뒤에 추기경들은 <이탈리아>의 <바리>의 감독 <울바누스> 7세를 교황으로 선출하여 남부 <프랑스>의 <아비뇽>에 또 하나의 교황청을 세우게 되었었다. 이 분리는 다음 세기에 이르러 개혁회의에서 해결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즉 1409년에 추기경들은 <이탈리아>의 <피사>에서 회의를 열어 분리되어온 두 교황을 모두 폐위시키고 <알렉산더> 5세를 정당한 교황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폐위된 두 교황이 이에 불복함으로써 한때 세사람의 교황이 정립하게 되었었다. 그 뒤 다시 감동과 대감독 외에, 신학자 왕후 사절 등 많은 참석자로써 <콘스탄트>대회를 개최하여, 세사람의 교황을 일제히 폐위시키고 다시 <마루티누스> 5세를 교황으로 선출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교황선출의 권한을 추기경들로부터 빼앗아, <로마>교회의 지상권을 주장하던 이 회의에로 옮겼다(1418년). 이 회는 그 뒤 <스위스>의 <바젤>에서 <로마>교회 기구를 입헌 군주제로 할 목적으로 열렸었다. 그러나 교황은 회중들의 이러한 주관성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유회시키려고까지 하였다. 그래도 교황당 이외의 의원들은 개회를 강행하였으나, 1449년에 저절로 해산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1309년 이래 잃어버렸던 교황권의 기능을 회복하였다. 14세기의 모든 회의의 지도자들은 평신도들을 대표로 세우고, 이 회의에 최고의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부패한 교황과 승려들을 제거하려 하였었다. 그러나 교황권은 그들이 포로되기 전과 같은 입장으로 돌아갔을 뿐 아니라, <위클리프>나 <후스> 같은 개혁정신을 가진 지도자들을 극형에 처하게 되었으므로, 이때부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운동은 싹트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교황이 1309년으로부터 70년간 남부 <프랑스>의 <아비뇽>에 같혔다가, 세 교황으로 분립되었던 노정을 거쳐 다시 <로마>교회를 중심한 교황전제정치로 복귀된 후, 1517년에 <루터>를 중심하고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까지의 약 210년간은, <유대>민족이 <바빌론>에 70년간 포로되었다가 3차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말라기>를 중심하고 정치와 신앙의 쇄신을 일으킬 때까지의 210년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기간이었던 것이다.
남북왕조분립시대와 동서왕조분립시대
제4절 남북왕조분립시대와 동서왕조분립시대 사울왕에 의하여 시작되었던 통일왕국시대는,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왕에 이르러 그가 왕비들이 섬기는 이방인의 신을 섬겼으므로(열왕기상 10장 5~9절1)), 3대만에 가인의 입장인 10지파를 중심한 북조 이스라엘과, 아벨의 입장인 2지파를 중심한 남조 유대로 분립되었었다. 그리하여 남북왕조 분립시대는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카알대제에 의하여 시작되었던 기독왕국도, 그 3대에 이르러 손자들 3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 왕국은 동 서 프랑크와 이탈리아로 3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동프랑크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실제에 있어서는 동 서 <프랑크>왕국으로 양분된 셈이다. 한편 동<프랑크>는 <오토<1새로 말미암아 크게 융흥되어 신성<로마>제국이라 불게 되었고, <로마>황재의 이름으로 서구를 통치하여 정치와 신앙 2권을 확보하려 하였었다. 이렇게 하여 동<프랑크>는 서<프랑크>에 대하영 <아벨>의 입장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솔로몬>왕조의 망명객이었던 <어로보안>을 중심한 북조<이스라엘>은 260년간에 19왕이 바뀌었고, 그들은 서로 죽임으로써 왕실이 아홉차례나 변혁되었으며, 여러 왕들 중에 선한 왕이 하나도 없었다. 띠라서 남조<유대>로부터 보내온 선지자 <엘리야>를 통하여 <가멜>산의 제단에 불을 내리심으로써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을 멸하셨으며(열왕기상 18장 19~40절2)), 그 외에도 <엘리사> <요나> <호세아> <아모스>같은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목숨을 걸고 전도하게 하셨다. 그러나 북조 이스라엘 왕국은 여전히 사신을 숭배하며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앗수르>에 붙여 멸망케 하심으로써 영원히 선민의 자격을 잃게 하셨던 것이다(열왕기하 17장 17~23절3)). 한편 <소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을 중심한 남조 <유대>는 <다윗>으로부터 <시드기아>에 이르기까지 정통일계였으며, 394년간에 걸친 20인의 왕 중엣 선한 왕이 많이 있었으나, <요시아>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어, 이들도 역시 <바빌로니아>에게 포록 되고 말았었다. 이와같이 남북왕조 분립시대에 있어서 <이스라엘>민족이 성전 이상에배치되는 입장에 서게 될 때마다, 하나님은 계속 4대 선지와 12 소선지를 보내시어 그들을 권고하여 내적 쇄신운동을 일으키셨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들의권고에도 회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애급 <갈대아> <시리아>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등 이방인들에게 붙여 외적 확청의 섭리를 하셨던 것이다.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동서왕조 분립시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교황청이 부패하매 <토마스 아퀴나스> 성<프란체스코> 등 수도원의 인물들이 그들을 권고하여 내적인 쇄신운동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그들도 회개하지 않고 더욱 타락과 부패에 흘렀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이방인들에게 붙여 외적인 확청의 섭리를 하셨던 것이니, 이것이 곧 십자군 전쟁이었다. <예루살렘>의 성지가 <카리프>제국에 속해 있었을 때에는 기독교의 순례자들이 후대를 받았었으나, <카리프>제국이 망하고 <셀죽 터어키>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그들은 순례자들을 학대하였으므로, 이에 분개한 역대 교황들은 이 성지를 회복하려고 십자군전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1096년에 일어난 십자군은 그 뒤 약 200년간에 걸쳐 7회의 원정을 하였으나 그들은 끝내 패전을 거듭하였다. 남북왕조 분립시대에 있어서, 북조 <이스라엘>왕국과 남조 <유대>왕국의 백성들이 모두 이방인에게 포로가 되어 감으로써, <이스라엘>의 군주사회는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서왕조 분립시대에 있어서도, 십자군이 이교도에게 패하여 교황권이 그 권위와 신망을 완전히 잃게 되자, 국민정신은 그 중심을 잃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봉건사회를 유지하던 영주들과 기사들이 많이 전사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정치적인 기반을 잃고 말았으며, 그들은 여지없이 경제적인 곤궁에 빠지고 말았다. 여기에서 기독교군주사회는 드디어 무너지기 시작하였던
통일왕국시대와 기독왕시대
제3절 통일왕국시대와 기독왕국시대 통일왕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사사가 제1 이스라엘을 영도하던 시대는 지나가고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는 예언자와, 성막이나 성전을 받드는 제사장과, 백성을 통치하는 국왕이 정립하여, 복귀섭리의 목적을 중심하고 각자의 지도적인 사명을 수행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하는 기독왕국시대에 있어서도, 교구장이 제2 이스라엘을 영도해 나아가던 시대는 지나고, 예언자에 해당되는 수도원과 제사장에 해당되는 교황과 백성을 통치하는 국왕이, 복귀섭리의 목적을 중심하고 제2 이스라엘을 지도해 나아가야만 했던 것이다. 당시의 기독교는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로마 등의 5대 교구로 분립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우위에 있었던 로마 교구장은 다른 교구를 통할하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특히 그를 교황이라고 부르게 되었었다. 이스라엘민족이 애급에서 해방되어 나오던 때의 모세의 성막이상은, 통일왕국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국왕을 중심한 성전이상으로 나타나 왕국을 이루었었는데,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실체성전으로 오셔서 만왕의 왕이 되어 왕국을 건설하실 것의 형상노정이었던 것이다(이사야 9장 6절). 그와 마찬가지로 기독왕국시대에 있어서도, 기독교 신도들이 로마제국에서 해방되었던 때, 성 어거스틴에 의하여 그의 기독이상으로서 저술되었던 ‘신국론’이 이 때에 와서 카알대제에 의하여 기독왕국(카알대제 때부터의 프랑크왕국)으로 나타났던 것인데,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 재림하시어 왕국을 건설하실것의 형상노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는 국왕과 교황이 하나님의 뜻을 중심하고 완전히 하나가 되어 기독이상을 실현함으로써, 예수님이후 <메시아를 위한 영적 기대> 위에서 교황을 중심하고 이루어 나왔던 국토 없는 영적 왕국과, 국왕을 중심한 실체적인 왕국이 기독이상을 중심하고 하나되어야 했던 것이다. 만일 그 때 그렇게 되었더면, 종교와 정치와 경제는 일치되어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게 되었을 것이었다. 통일왕국시대에 있어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은, 예언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해야 할 국왕이 었다. 예언자나 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여 나서기 때문에, 그 시대에 있어서 아벨의 입장에 서게 된다. 그러나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그는 어디까지나 영계를 대신하여 천사장의 입장에 실체세계를 복귀해야 되었기 때문에, 국왕이 설 수 있는 영적인 터전을 마련하고 왕을 축복하여 세운 뒤에는, 그 앞에 가인의 처지에 서지 않으면 아니 된다. 따라서 국왕은 예언자의 말슴에 의하여 국가를 통치해야 되고, 예언자는 하나의 국민의 입장에서 국와에게 순종해야 된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은 국와이었던 것이다. 사실상 아브라함으로부터 800년 되던 때에, 예언자 사무엘은 하나님의 명을 받으렁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축복함으로써, 그를 제1 이스라엘선민의 첫 왕으로 세웠던 것이다(사물엘상 8절 19~22절), 10장 1~24절). 사울왕이 사사 400년 기대 위에서 그의 재위 40년을 탕감복귀한 입장에 설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40일 사탄분립기대> 위에서 <믿음의 기대>를 세울 수 있었를 것이었다. 따라서 사울왕이 이 기대 위에서 메시아의 형상체인 성전을 건축하고 그것을 받들었더면, 그는 모세가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에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그것을 받든 것과 같은 입장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선민들이 사울왕을 중심한 그 <믿음의 기대> 위에서, 성전을 받들고 나아가는 이 국왕을 절대로 믿고 순종하였더면, 그들은 <실체기대>를 조성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사울왕은 선지자 사무엘을 통하여 내리셨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기 때문에(사무엘상 15장 1~23절),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사울왕은, 바로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에 실패한 모세와 같은 자리에 놓여졌었다. 그리하여 사울왕을 중심한 복귀섭리도 모세때와 같이, 다윗왕 40년을 거쳐 솔로몬왕 40년에 이르러서야, 그 <믿음의 기대>는 이루어져서 성전을 건축할 수 있게 되었었다. 마치 아브라함의 뜻이 이삭을 거쳐 야곱 때에 이루어진 것과 같이, 아브라함의 입장이기도 하였던 사울왕의 성전 건축의 뜻은, 다윗왕을 거쳐 솔로몬왕 때에 이르러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왕이 음란으로 흘러서 ‘실체헌제’를 위한 아벨의 위치를 떠났기 때문에 <실체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따라서 통일왕국시대에 이루어져야 했던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기독왕국시대에 있어서는 통일왕국시대의 모든 것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해야 되었기 때문에, 이 시대의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수도원이나 교황의 기독이상을 실현시켜야 할 국왕이었다. 따라서 교황은 통일왕국시대에 있어서의 예언자의 뜻을 받드는 제사장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국왕이 기독이상을 실현해 나아갈 수 있는 영적인 터전을 마련하고, 그를 죽복하여 왕으로 세운 뒤에는 하나의 국민의 입장에서 그에게 순종해야 되고, 한편 국왕은 교황의 이상을 받들어 국민을 통치해야 될 것이었다. 사실상 이러한 섭리의 목적을 위하여 교황 레오 3세는 기원 800년에 카알대제를 축복하여 금관을 씌움으로써, 그를 제2 이스라엘 선민의 첫 왕으로 세웠던 것이다. 카알대제는 사사시대 400년을 실체적인 동시성으로 탕감복귀한 교구장제 기독교회시대 400년 기대 위에 섰었기 때문에, 사울왕과 같이 <40일 사탄분립기대> 위에 서게 되었었다. 따라서 카알대제가 이 기대 위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을어 기독이상을 실천해 나아가면, 이 시대의 <믿음의 기대>는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사실상 카알대제는 교황에게 축복을 받고 왕위에 오름으로써, 이 기대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제2 이스라엘이 이러한 입장에 있는 국왕을 절대로 믿고 순종하였더면 그 때에 <실체기대>는 세워졌을 것이요, 따라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도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이와같이 되었어야만 <메시아를 위한 영적 기대> 위에서 교황을 중심하고 세워진 영적인 왕국과 국왕을 중심한 실체적인 왕국이 하나 되어, 그 터전 위에 예쑤님이 다시 오셔서 메시아왕국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국왕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못함으로써 ‘실체헌제’를 하기 위한 아벨의 위치를 떠났었기 때문에, <실체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재림하실 메시아를 위한 기대>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