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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

    Ⅳ.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  우리는 이미 후편 서론에서 믿음을 세우는 중심인물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려면, 그를 위한 수리적인 탕감기간을 복귀해야 된다는 것을 논술한 바 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수리적으로도 존재하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을 중심한 피조세계는, 무형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의 이성성상의 수리적인 전개에 의한 실체대상인 것이다. 그리고 피조물의 평면적인 원리를 찾아 나아가는 과학의 발달이 수리적인 연구에 의하여서만 가능한 것도 여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창조된 인간시조는 수리적인 성장기간을 거친 후에야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수리적인 완성실체가 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피조세계가 사탄의 주관권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복귀하기 위하여는 그것을 상징하는 어떠한 조건물을 세워놓고, 사탄의 침범을 당한 수를 복귀하는 수리적인 탕감기간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그러면 원래 타락 전 인간시조는 어떠한 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서 어떠한 수리적인 완성실체가 되었어야 했던가 ? 창조원리에 의하면, 무릇 모든 존재물 가운데 4위기대를 조성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미완성기에 있었던 아담과 해와도 4위기대 조성에 의하여 존재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4위기대는 그 각위가 각각 성장기간의 3단계를 거치어 도합 12수의 수리적인 성장기간을 완성함으로써, 12대상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담이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기간이었던 성장기간은 바로 12수 완성기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로,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시조는 12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12대상 목적을 완성함으로써 12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것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12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12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를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예를 들면 노아가 방주를 짓는 기간 120, 모세를 중심한 가나안복귀섭리기간 120년,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불림 받은 다음부터 야곱이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울 때까지의 120년, 또 이 기간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구약시대에 있어서의 통일왕국시대 120년과, 신약시대에 있어서의 기독왕국시대 120년 등은, 모두 이 12수를 복귀하기 위한 탕감기간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타락전 미완성기의 아담과 해와는 성장기간의 3단계를 거쳐 제4위기대를 완성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믿음의 기대>를 세워 나아가던 성장기간은 4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둘째로 미오나성기에 있었던 인간시조는 4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가지고 4위기대를 완성함으로써 4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것 또한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 역사노정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4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4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를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이미 후편 제1장 제2절 Ⅰ의 2에서 상세히 논술한 바, 노아의 방주를 중심한 심판 40일을 비롯한 모세의 금식 40일, 가나안 정탐기간 40일을 비롯한 모세의 금식 40일등은 모두 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4수 복귀의 탕감기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성장기간은 21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세째로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시조는, 21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가지고 창조목적을 완성함으로써, 21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것 또한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21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21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를 조성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 어찌하여 성장기간이 21수 완성기간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21수의 뜻을 알려면 먼저 3수와 4수와 7수에 대한 원리적인 뜻을 알아야 한다. 이성성상의 중화적 주체이신 하나님은 3수적인 존재이시다. 그리고 피조물의 완성은 곧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어 4위기대를 조성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개체가 완성되려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마음과 몸이 3위일체를 이루어 4위기대를 조성해야 하고, 부부로서 완성되려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남성과 여성이 3위일체를 이루어 4위기대를 조성해야 하며, 또 피조세계가 완성되려면 하나님을 중심하고 인간과 만물세계가 3위일체를 이루어 4위기대를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피조물이 이와같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일체를 이루어 4위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는, 성장기의 3기간을 거쳐서 3대상 목적을 완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써 3수를 하늘수 또는 완성수라고 부른다.  이렇듯 어떠한 주체와 대상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합성일체화하여 3위일체를 이룰 때에, 그 개성체는 4위기대를 조성하여 동서남북의 4방성을 갖춘 피조물로서의 위치를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4수를 땅수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와같이 피조물이 3단계의 성장과정을 거쳐서 4위기대를 조성하여 시간성과 공간성을 가진 존재로서 완성되면, 하늘수와 땅수를 합한 7수 완성의 실체가 된다. 천지창조의 전 기간이 7일이 된 원인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창조의 전 기간을 한 기간으로 볼 때에는 7수 완성기간이 되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완성되는 한 기간을 7수 완성기간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장기간을 형성하는 3기간을 각각 소생단계가 완성되는 한 기간, 장성단계가 완성되는 한 기간, 완성단계가 완성되는 한 기간으로 본다면, 그 기간들도 역시 각각 7수 완성기간이 되므로 전 성장기간은 21수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믿음의 기대>를 위한 중심인물들이 세웠던 21수 탕감기간의 예를 들면, 노아홍수의 기간에 하나님이 3단계의 섭리를 미리 보여주시기 위하여 노아로 하여금 3차에 걸쳐 비둘기를 내보내게 하셨는데, 그 간격을 각각 7일간으로 하심으로써, 뜻으로 본 그 전 기간은 21일간이 되었던 것이다(창세기 7장 4절1), 창세기 8장 10절2), 창세기 8장 12절3)). 그리고 야곱이 가정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세우기 위하여 하란으로 갔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섭리의 기간을 세울 때에도, 역시 7년씩 3차에 걸친 21년을 요하였던 것이다. 나아가 야곱의 이러한 21년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으로서,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바벨론 포로 및 귀환기간 210년이 있었고, 신약시대에는 교황 포로 및 귀환기간 210년이 있었던 것이다.  성장기간은 또한 40수 완성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네째로 타락전 미완성기에 있었던 인간시조는 40수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 가지고, 창조목적을 완성함으로써 40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것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에 있어서 이것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은 40수를 복귀하는 탕감기간을 세움으로써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40수 완성실체의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를 조성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 어찌하여 성장기간이 40수 완성기간이 되는가를 알아보자. 이것을 알기 위하여는 먼저 10수에 대한 의의를 알아야 한다. 성장기간 3단계의 각 기간이 다시 각각 3단계로 구분되면 모두 9단계가 된다. 9수의 원리적 근거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무형의 이성성상의 수리적 전개에 의하여 그 실체대상으로 분립된 피조물은, 성장기간의 9단계를 지나서 제 10단계인 하나님의 직접주관권으로 돌아가 그와 일체를 이룰 때 비로소 창조목적을 완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10수를 귀일 수라고 한다. 하나님이 아담 이후 10대만에 노아를 찾아 세우셨던 것은, 아담을 중심하고 이루시려다가 못 이루신 뜻을 노아를 중심하고 복귀하여, 하나님에게로 재귀일하게 하시기 위한 10수 복귀의 탕감기간을 세우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담과 해와를 중심한 4위기대는, 그 각위는 각각 성장기간의 10단계를 거치어 도합 40수의 수리적인 성장기간을 완성함으로써 40수 완성실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장기간은 40수 완성기간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복귀섭리의 역사노정에서 이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세워졌던 40수 탕감기간의 예를 들어보면, 노아 때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후, 비둘기를 내보낼 때까지의 40일기간, 모세의 바로궁중 40년, 미디안광야 40년, 민족적 가나안 복귀의 광야 40년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탕감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의 40수는 두 가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는 타락인간이 4수를 탕감복귀할 때, 귀일수인 10수가 곱해져서 된 40수이고, 또 하나는 바로 위에서 논술한 바 타락전 아담이 세워야 했던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40수이다. 그런데 민족적 가나안 복귀의 광야 40년은, 모세의 바로궁중 40년과 미디안광야 40년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인 동시에, 정탐 40일, 따라서 모세의 금식 40일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40년 기간은 위에서 논한 바, 서로 성격을 달리한 두 40수를 동시에 탕감복귀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복귀섭리역사노정에 있어서의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 중심인물이,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동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는 데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이 40수를 탕감복귀하는 섭리가 연장될 때에는, 그것이 10단계 원칙에 의한 탕감기간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40수는 1-배수 배가원칙에 따라 400수 또는, 4000수로 연장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를 들면 노아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400년, 애굽고역 400년, 아담으로부터 예수님까지의 4000년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제 위에서 논술한 바에 의하여, 복귀섭리의 중심인물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는, 어떠한 수리적인 탕감기간들을 세워야 하는가를 종합해 보기로 하자.  원래 인간시조가 타락하지 않고 12수, 4수, 21수, 40수 등에 의한 <믿음의 기대>를 세워서 창조목적을 완성함으로써, 이러한 수들의 완성실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됨으로 인하여 이 모든 것들이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기 때문에, 복귀섭리역사노정에 있어서 이것들을 탕감복귀하는 중심인물들은 12수, 4수, 21수, 40수 등을 복귀하는 수리적인 탕감기간을 세우지 않으면,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여 이러한 수들의 완성실체 복귀를 위한 <실체기대>를 세울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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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복귀

 Ⅲ. 종으로 된 횡적인 탕감복귀  다음으로는 종으로된 횡적인 탕감복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이미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자세히 말한 바이지만, 아브라함 때는 <메시아를 위한 가정적인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섭리에 있어서 제3차에 해당하는 때였다. 따라서 그 때에는 기필코 그 뜻을 이루어야 할 원리적인 조건 밑에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아담가정과 노아가정의 실수로 말미암아 거듭되어 왔던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상징헌제’에서 실수하였기 때문에, 그 사명을 다음으로 연장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었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이미 실패한 아브라함을 실패하지 않은 것과 같은 입장에 세우시고, 또 그로부터 종적으로 연장되는 복귀섭리도 연장되지 않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것과 같은 자리에 세우셔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섭리를 하시기 위하여 이미 아브라함을 중심한 복귀섭리에서 자세히 논한 바와 같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각각 그 개체는 서로 다르지만, 뜻을 중심하고 보면 완전한 일체로서 탕감조건을 세우도록 섭리하였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뜻으로보면 완전히 일체가 되었었기 때문에, 야곱의 성공은 곧 이삭의 성공이었고, 또 그것은 곧 아브라함의 성공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보면 그것은 연장되지 않고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것과 같이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삭․야곱은 뜻을 중심한 면에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과 같이 보아야 하며, 따라서 그 뜻은 아브라함 1대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은 입장이었던 것이다. 출애굽기 3장 6절1)에 하나님을 일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은, 이러한 견지에서 그들 3대는 일체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이 그의 ‘상징헌제’ 실패로 말미암아 그 자신을 중심하고 횡적인 탕감조건을 세우지 못하게 되었을 때, 종적으로 이삭과 야곱의 3대로 연장해 가면서 세운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결국 아브라함을 중심하고 1대에서 횡적으로 탕감복귀한 것과 같은 입장에 세우셨기 때문에, 이것을 종으로 된 횡적 탕감복귀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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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적인 탕감조건과 횡적인 탕감복귀

  Ⅱ.종적인 탕감조건과 횡적인 탕감복귀  복귀섭리의 뜻을 담당한 중심인물은 자기가 세워질 때까지의 섭리노정에 있어서, 자기와 동일한 사명을 담당했던 인물들이 세우려 했던 모든 탕감조건들을, 자기를 중심하고 일시에 탕감복귀하지 않으면 그들의 사명을 계승 완수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인물이 또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할 때에는 , 그가 세우려 했던 탕감조건들은 모두 그 다음에 그의 대신사명자로 오는 인물이 세워야 할 탕감조건으로 넘겨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복귀섭리노정에서, 그 섭리를 담당했던 인물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으로 가중되어 내려온 조건들을 종적인 탕감조건이라 하고, 이러한 모든 조건들을 어떤 특정한 사명자를 중심하고 일시에 탕감복귀하는 것을 횡적인 탕감복귀라고 한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는, 아담가정과 노아가정이 세우려 했던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3제물은 일찌기 아담과 노아가 세우려다 하였던 모든 조건들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야곱은 노아로부터 그 자신에 이르는 12대의 종적인 탕감조건을, 일시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워야 했기 때문에, 열 두 자식을 세워 열 두 지파에로 번식시켜 나아갔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역시 4,000년 섭리역사노정에서 복귀섭리를 담당했던 수많은 선지자들이 남겨 놓은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그 자신을 중심하고 한꺼번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셔야 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12제자와 70문도를 세우신 것은, 12자식과 70가족을 중심하고 섭리하셨던 야곱의 노정과, 12지파와 70장로를 중심하고 섭리하셨던 모세노정 등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예수님을 중심하고 한꺼번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또 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를 하신 것은, 복귀섭리노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믿음의 기대를 세우는데 필요했던 ‘40일 사탄 분립’의 모든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예수님을 중심하고 한꺼번에 횡적으로 탕감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복귀섭리를 담당한 인물은 단순히 그 한 개체로서만이 아니고, 그에 앞서 같은 사명을 가지고 왔다 간 모든 선지선열들의 재현체이며, 또한 그들의 역사적인 결실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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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기대섭리시대의 대수와 그 년수의 형성

제2절 복귀기대섭리시대의 대수와 그 년수의 형성      Ⅰ.복귀섭리는 왜 연장되며 또 어떻게 연장되는가  우리는 위에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이루어 가지고 메시아를 맞음으로써, 복귀섭리의 목적을 완성하려는 섭리가 아담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으로 연장되어 예수님 때까지 이르렀고, 또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도 이 목적을 완전히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복귀섭리는 다시 그의 재림기까지 연장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논술하였다.  그러면 복귀섭리는 왜 연장되는가? 이것은 예정론에 의하여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예정론에 의하면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인 것으로 예정하시고 이루시는 것이므로, 한 번 세우신 뜻은 반드시 이루셔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인물을 중심한 그 뜻 성사의 여부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어서,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에 그 인물의 책임분담이 합해져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뜻 성사의 사명을 띤 인물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시대를 달리하여 다른 사람을 그 대신으로 세워서라도, 반드시 그 뜻을 이루시는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되어 복귀섭리는 연장되어 나아간다.  다음으로 우리는 복귀섭리는 어떻게 연장되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조원리에 의하면 하나님은 3수적인 존재이시기 때문에, 그를 닮은 모든 피조물은 그 존재하는 모양이나 그 운동이나 또는 그 성장과정 등 모두가 3수  과정을 통하여 나타난다. 그러므로 4위기대를 조성하여 원형운동을 함으로써 창조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도, 정분합의 3단계의 작용에 의하여 3대상목적을 이룸으로써 3점을 통과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창조목적을 복귀해 나아가는 섭리는 말씀에 의한 재창조의 섭리이기 때문에, 이 복귀섭리가 연장됨에 있어서도 창조원리에 의하여 3단계까지 연장될 수 있는 것이다.   아담가정에서 가인 아벨의 실체헌제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 뜻은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에까지 3차로 연장되었었고,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서 실수하자 그 뜻은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에까지 3차로 연장되었었고, 아브라함이 ‘상징헌제’에서 실수하자 그 뜻은 이삭을 거쳐 야곱에까지 연장되었으며, 도 모세나 예수님을 중심한 가나안 복귀노정도 각각 3차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성전 건축의 이상은 사울왕의 잘못으로 인하여 다윗왕 솔로몬 왕에까지 연장되었고, 또 첫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쳐 그의 재림기까지 3차로 연장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의 격언에 “첫번에 안되면 세 번까지 간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바로 이러한 원리를 현실생활 속에서 찾아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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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역사의 각 시대와 그 년수의 형성

         제3장 섭리역사의 각 시대와 그 년수의 형성          제1절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  동시성의 시대란 무엇인가 ? 인류역사의 과정을 살펴보면 비록 그 정도와 위의 차이는 있지만, 지나간 어느 시대에 있었던 것과 비슷한 모양의 역사적 과정이 뒷시대에 반복되고 있는 사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사가들은 이러한 역사적 현상을 보고, 역사조정은 어떠한 동형의 나선상을 돌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시대가 그 전시대의 역사노정과 비슷한 모습으로 되풀이되는 경우, 그러한 시대들을 말하여 ‘섭리적 동시성이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동시성의 시대를 일러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더욱 자세히 설명하겠거니와, 이 현상이 본래 하나님의 탕감복귀섭리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는 어찌하여 생기게 되는가 ? 우리는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어 나오는 과정에서 되어진 모든 사실들이 역사를 형성해 나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는 섭리노정을 걸어가던 어떠한 중심인물이 자기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할 때는, 그 인물을 중심한 섭리의 한 시대는 끝나고 만다. 그러나 그 ‘뜻’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적이기 때문에(전편 제6장), 하나님은 다른 인물을 그의 대신으로 세워,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하는 새 시대를 다시 세워 나아가시는 것이다. 따라서 이 새 시대는 그 앞시대의 역사노정을 탕감복귀하는 시대가 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똑같은 노정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되어 섭리적인 동시성의 시대는 형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복귀섭리를 담당한 인물들은 그 앞 시대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횡적으로 일시에 탕감복귀해야 되므로, 복귀섭리가 연장되어 종적인 탕감조건이 보태어져 갈수록 횡적으로 세워야 할 탕감조건도 점차 더 늘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동시성의 시대도 점차로 그 내용과 범위를 달리하게 된다. 동시성의 시대의 형태가 완전히 같은 모양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편 성장기간의 3단계를 그 형으로써 분류해 본다면, 소생은 상징형, 장성은 형상형, 그리고 완성은 실체형으로 나누어지게 되므로, 복귀섭리노정에서 이러한 형들을 동시성으로 되풀이해 온 시대들도 역시 그러한 형의 역사를 재현시켜 나왔던 것이다. 즉 복귀섭리역사의 전기간을 형으로 본 동시성의 관점에서 갈라 본다면, 복귀기대섭리시대는 상징적 동시성의 시대요, 복귀섭리시대는 형상적 동시성의 시대이며, 복귀섭리연장시대는 실체적 동시성의 시대인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동시성의 시대를 형성하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겠다. 이처럼 동시성의 시대가 반복되는 이유는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탕감복귀하려는 섭리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시성의 시대를 형성하는 요인으로, 첫째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세가지의 조건을 들 수 잇는 것이니, 그것은 이 기대를 위한 중심인물과, 조건물과, 수리적인 기간 등이다. 그리고 그 둘째는 <실체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다.  이러한 요인들로 이루어지는 섭리적 동시성의시대에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성격의 것이 있다. 그 첫째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수리적 탕감기간인 대수나 혹은 햇수를 요인으로 하여 섭리적 동시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복귀섭리역사는 그 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들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그 뜻이 연장됨에 따라 상실되었던 <믿음의 기대>를 끝내 되풀이하여 탕감복귀해 나오신 섭리역사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수리적인 ‘믿음의 기간’을 탕감복귀하는 섭리도 되풀이하게 돔으로써, 결국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는 어떠한 햇수나 혹은 대수의 되풀이에 의하여 같은 모양을 거듭 형성해 나온 것이었다. 본장의 목적은 바로 이에 관한 문제를 다루려는데 있다,.  둘째로는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중심인물과 그 조건물, 그리고 <실체기대>를 복귀하기 위한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 등의 섭리적인 사실을 요인으로 하여 동시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복귀섭리의 목적은 결국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려는 데 있으므로, 그 섭리가 연장됨에 따라 이 기대를 복귀하려는 섭리도 되풀이된다. 그런데 <메시아를 위한 기대>는 먼저 ‘상징헌제’로써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고 다음에 ‘실체헌제’로써 <실체기대>를 복귀해야만 비로소 그것이 세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복귀섭리의 역사는 ‘상징헌제’와 ‘실체헌제’를 복귀하려는 섭리를 되풀이하여 왔기 때문에, 섭리적 동시성의 시대는 결국 이 두 헌제를 복귀하려 했던 섭리역사의 냉용을 중심하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에 관한 문제는 다음 장에서 상세히 논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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