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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가나안 복귀노정 – 믿음의 기대
2.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ㄱ. 믿음의 기대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모세가 그의 믿음의 기대를 위하여 세웠던 바로궁중 40년기간은, 사탄의 침범을 당한 결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모세가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하여는, 사탄 침범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바로 궁중생활 40년기간을 탕감복귀하는 기간을 다시 찾아 세워,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모세가 바로를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들어가 다시 40년기간을 보내게 되었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 40년기간에는 이스라엘 민족도 모세를 불신한 죄로 더욱 더 비참한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 40년으로 <40일 사탄분립기대>를 새로이 세웠기 때문에,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를 위한 <믿음의 기대>를 복귀할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애급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ㅇㄹ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급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급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애굽기 3장 7~10절1))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모세를 중심한 가나안 복귀노정
Ⅱ.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 모세가 사탄세계인 애급에서 이스라엘선민을 이적과 기사로써 인도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돌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노정은, 장차 예수님이 이 죄악 세계에서 제2 이스라엘인 기독교 신도들을 이적과 기사로 인도하여, 이 죄악세계의 고해를 건너고 생명의 물이 마른 사막을 돌아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창조본연의 에덴으로 복귀케 될 그 노정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모세를 중심한 민족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이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3차로 연장된 것과 같이, 예수님을 중심한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도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3차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하여 여기에서는 모세노정과 예수노정과의 세밀한 대조설명은 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것은 본절과 다음 절을 대조함으로써 소상히 밝혀질 것이다. 1.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 ㄱ. 믿음의 기대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간을 애급에서 고역함으로써, 아브라함의 상징헌제 실수로 초래된 민족적인 탕감기간은 끝나게 되었었다. 여기에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영도하여 믿음의 기대를 복귀하는 인물이 되기 위하여, 민족적 탕감기간인 400년을 다시 개인적으로 탕감함으로써, 40일 사탄분립의 기대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모세는 이 목적과 함께, 타락전 아담이 믿음의 기대를 위하여 세워야 했던 40수를 탕감복귀하기 위하여(후편 제3장 제2절 Ⅳ) 사탄세계의 중심인 바로궁중에 들어가 40년을 지나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남 모르게 그의 유모로 세워진 어머니로부터 선민의식에 불타는 교육을 받으면서, 바로 궁중생활 40년을 마친 후, 선민의 혈통에 대한 지조와 충절을 변치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더불어 고난을 받기를, 잠시 바로궁중에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기뻐하여, 그 가운데서부터 뚜쳐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히브리서 11장 24~25절). 이와같이 모세는 바로궁중생활 40년으로써 40일 사탄분립기대를 세워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였던 것이다. ㄴ. 실체기대 모세는 믿음의 기대를 세움으로써, 동시에 위에서 이미 논한 바와같이 ‘타락성을 벗기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도 확립하게 되었었다. 이제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민족이, 그들의 부모의 입장인 동시에 자녀로서의 아벨의 입장에 있었던 모세에게, 믿음으로 순종굴복하여 그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이어받음으로써 선을 번식하게 되었더면, 그 때에 ‘타락성을 벗기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가지고, 민족적인 실체기대를 탕감복귀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와같이 모세를 따라 애급을 출발하여 가나안 복지로 돌아가는 기간은, 바로 그들이 이 실체기대를 세우기 위한 기간이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모세가 애급인을 쳐 죽이는 것으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모세는 자기의 동포가 애급인에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 불타는 동포애를 이기지 못하여 그 애급인을 쳐 죽였던 것이나(출애굽기 2장 12절), 실상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처참한 광경을 보시고(출애굽기 3장 7절) 울분함을 느끼신 그 심정의 표시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모세를 중심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가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그들이 모세를 따라서 사막을 횡단하는 가나안 복귀노정을 성공적으로 출발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사실을 결정짓는 것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모세가 이와같이 애급인을 쳐 죽인 것은 첫째로 천사장이 인간시조를 타락시켰고 또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사탄이 장자의 입장에서 인류죄악사를 이루어 나오고 있으므로, 하늘편에서 장자의 입장에 있는 사탄편을 쳐서 탕감복귀하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모세로 하여금 바로 궁중에 대한 미련을 끊고, 다시는 그 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입장에 서게 하시기 위함이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이것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의 애국심을 보여줌으로써 그를 믿게 하시기 위함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서 하나님이 애급인의 장자와 그 가축의 맏것을 전부 쳐버렸던 이유도 이러한 데 있었다. 모세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있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같은 심정으로 모세의 애국심에 감동되어, 그를 더 존경하고 더 믿고 모시며 따랐더면, 그들은 모세를 중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홍해를 건너거나 시내광야를 도는 일이 없이, 바로 블레셋으로 가는 곧은 길을 통하여 가나안복지로 들어가 실체기대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 노정은 야곱의 하란 21년노정을 탕감하는 21일 노정이 되었을 것이었다. 출애굽기 13장 17절에는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급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을 보아서 하나님은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블레셋땅의 곧은 길로 통하게 하려 하셨던 것인데, 이스라엘이 모세를 불신함으로 말미암아 이 노정은 출발조차도 해보지 못하고 말았고,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때는, 제1차 때와 같이 그들이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 가나안 복귀의 도중에서 애급으로 되돌아갈까 염려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돌아서 가도록 인도하셨던 것임을 알 수 있다. ㄷ.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가인의 입장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벨의 입장에 있는 모세에게 순종굴복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더면, 그들은 ‘타락성을 벗기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워 실체기대를 이루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가 애급인을 쳐 죽이는 것을 보고 도리어 그를 오해하고 나쁘게 소문내었으므로, 바로는 이 소문을 듣고 모세를 죽이려 하였던 것이다(출애굽기 2장 15절)이에 모세는 할 수 없이 바로의 눈을 피하여 이스라엘민족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게 되었으므로 그 실체기대는 이루지 못하고 말았으며, 따라서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복귀노정은 2차 내지 3차까지 연장되게 되었던 것이다.
야곱 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걸은 모세노정과 예수노정
Ⅱ. 야곱 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걸은 모세노정과 예수노정 야곱노정은 바로 사탄을 굴복시켜 나아간 노정이다. 그리고 사탄을 굴복시키는 노정은 사탄이 침범했던 그 경로를 되돌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야곱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걸은 모세노정과 예수노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① 인간은 원래 따먹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할 것이었는데, 천사장으로부터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함으로써 타락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야곱이 하란에서 처자와 제물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복귀하여 가정적으로 가나안 복귀 완성자가 되기 위하여는, 사탄과 생명을 걸고 싸우는 시련에서 승리해야 했던 것이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생명을 걸고 싸워 승리함으로써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은 것은(창세기 32장 25~28절) 바로 이러한 시련을 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천사를 사탄의 입장에 세워서 야곱을 시험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야곱을 불행하게 하시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천사에 대한 주관성을 복귀하는 시련을 넘게 함으로써, 아벨의 입장을 확립케 하여 가정복귀 완성자로 세우시기 위함이었다. 천사가 이러한 시련의 주체적인 역활을 함으로써, 천사세계도 하늘편으로 복귀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모세도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민족적 가나안 복귀 완성자가 되기 위하여는, 하나님이 그를 죽이려 하는 시련에서 생명을 걸고 이겨내야 되었다(출애굽기 4장 24절). 만일 인간이 이러한 시험을 하나님에게로부터 당하지 않고 사탄에게 당하다가 그 시험에 패하게 되면, 사탄에게 끌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편에서 시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예수님도 인류를 지상천국을 인도함으로써 세계적 가나안복귀 완성자가 되기 위하여는, 광야 40일 시험에서 생명을 걸고 사탄과 싸워 승리하셔야만 했던 것이다(마태복음 4장 1~11절). ② 인간의 육신과 영인체에 사탄이 침범하여 타락성이 생겼으므로, 야곱은 이것을 벗기 위한 조건을 세워야 하였다. 그러므로 야곱은 육신과 영인체를 상징하는 떡과 팥죽을 주고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는 것으로써,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서의 아벨의 입장을 복귀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창세기 25장 34절). 이 노정을 위하여 모세노정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육신과 영인체를 상징하는 만나와 메추리를 내려 먹여,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선민 의식을 강하게 함으로써, 모세에게 순종하게 하여 ‘타락성을 벗기 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우게 하려 하셨던 것이다(출애굽기 16장 13절). 예수님은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한복음 6장 48~53절)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도 이 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걸으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타락인간들이 세례요한의 입장에 있는(본장 제3절 Ⅱ.1)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 영 육 아울러 그와 일체가 되어 ‘타락성을 벗기 위한 세계적인 탕감조건’을 세워가지고 그를 메시아로 모시는 데까지 나아가는 않으면 창조본성을 복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③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의 시체까지 사탄의 침범을 당하였다. 그런데 야곱은 축복을 받아 성별된 몸이었기 때문에, 그의 시체도 사탄과 싸워 분립했다는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그 시체에 40일간 방부제를 발랐던 것이다(창세기 50장 3절). 따라서 이 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걸은 모세에 있어서도 그의 시체를 놓고 사탄과 싸웠으며(유다서 1장 9절), 또 예수님에 있어서도 그의 시체를 둘러싸고 문제가 일어났었던 것이다(마태복음 28장 12~13절). ④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의 성장기간에 사탄이 침범하였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그 ‘기간’을 표시하는 수를 찾아 세우는 섭리를 하시는 것이다(후편 제3장 제2절 Ⅳ). 즉 야곱이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복귀할 때에, 사탄분립의 3일기간이 있었고(창세기 31장 22절), 모세가 민족을 이끌고 애급으로부터 가나안으로 복귀할 때에도, 이러한 3일기간이 있었으며(출애굽기 5장 3절), 또 여호수아도 이 3일기간을 지난 후에야 비로소 요단강을 건넜었다(여호수아 3장 2절). 그리고 예수님의 영적인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도 사탄 분립의 무덤 3일기간이 있었던 것이다(누가복음 18장 33절). 사탄에게 내주었던, 노아로부터 야곱에 이르는 12대의 종적인 탕감조건들을, 야곱 1대에서 횡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야곱에게 12자식이 있었던 것이다(창세기 35장 22절). 그렇기 때문에 모세 때에도 12지파가 있었고(출애굽기 24장 4절), 예수노정에도 12제자가 있었던 것이다(마태복음 10장 1절). 7일 창조기간에 침범한 사탄을 분립하는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야곱 때에는 70가족이(창세기 46장 27절), 모세 때에는 70장로가(출애굽기 24장 1절), 예수때에는 70문도가 각각 그 노정의 중심역활을 하였었다(누가복음 10장 1절). ⑤ 지팡이는 불의를 치고 앞길을 인도하며 강한 의지하는 뜻의 표징물로서, 장차 오실 메시아를 상징하였던 것이다(본장 제2절 Ⅱ.2.ㄴ). 따라서 야곱이 이러한 뜻을 가지고 있는 지팡이를 짚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땅으로 들어갔다는 것은(창세기 32장 10절), 장차 타락인간이 메시아를 받들어 불의를 치고 또 그의 인도를 받으며 그를 의지함으로써, 죄악세계를 넘어 창조이상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모세도 지팡이를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홍해를 건넜으며(출애굽기 14장 16절), 예수님도 자신을 표징하는 철장을 가지고, 이 고해의 세계를 건너 하나님의 창조이상세계에로 전 인류를 인도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이다(요한계시록 12장 5절, 요한계시록 2장 27절). ⑥ 해와의 범죄가 죄의 뿌리를 이루었고, 그의 자식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그 열매를 맺었다. 이와같이 모자로 말미암아 사탄이 침범하여 죄의 열매를 맺었으므로, 탕감복귀의 원칙에 의하여 모자로써 사탄을 분립해야만 된다. 따라서 야곱이 축복을 받고 사탄을 분립하였던 것도, 그 모친의 적극적인 협조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창세기 27장 43절). 모세도 또한 그 모친의 협조가 없었으면, 그가 죽을 자리에서 헤어나와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자리에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출애굽기 2장 2절). 그리고 예수님 때에도 역시 그를 죽이려던 헤롯왕을 피하여 그를 데리고 애급으로 피난한 그 모친의 협조가 있었던 것이다(마태복음 2장 13절). ⑦ 복귀섭리의 뜻을 이루는 중심인물은 사탄세계에서 하늘세계에로 복귀하는 노정을 걷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므로 야곱은 사탄세계인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복귀하는 노정을 걸었고(창세기 31장 33절), 모세는 사탄세계인 애급에서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복귀하는 노정을 걸었으며(출애굽기 3장 8절), 예수님도 이 노정을 걸으시기 위하여 출생하자마자 애급으로 피난갔다 돌아오셔야 했던 것이다(마태복음 2장 13절). ⑧ 복귀섭리으 최종적인 목적은 사탄을 괴멸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야곱은 우상을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고(창세기 35장 4절), 모세는 금송아지로 된 우상을 부수어 그 가루를 물에 뿌려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마시게 하였으며(출애굽기 32장 26절31)), 예수님은 그의 말씀과 권능으로 사탄을 굴복시킴으로써, 이 죄악세계를 진멸하셔야 했던 것이다(전편 제3장 제3절 Ⅱ.2참조)
모세와 예수를 중심한 복귀섭리
제2장 모세와 예수를 중심한 복귀섭리 아모스 3장 7절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대로, 성서는 하나님의 구원섭리에 관한 수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원리를 몰랐기 때문에, 성서를 보아도 그 숨은 뜻을 알 길이 없었다. 성서에서는 하나의 선지자의 생애에 대한 기록도 그것의 실상은 단순히 그의 역사에만 멎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선지자의 생애를 통하여 타락인간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신 것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하나님이 야곱과 모세를 세워 복귀섭리노정을 걷게 하시어, 그것으로써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걸으실 섭리노정을 어떻게 미리 보여주셨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겠다. 제1절 사탄 굴복의 본보기 노정 이삭가정을 중심한 복귀섭리에 있어서, 실체기대를 세우는 중심인물이었던 야곱이 아벨의 입장을 확립하여 가지고,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사탄을 굴복시켜 나아가던 전 노정은, 야곱에 의한 그 상징노정을 형상적으로 걸어야 할 모세노정이나, 또 그것을 실체적으로 걸어야 할 예수님의 노정에 대한 본보기 노정이었다. 그리고 이 노정은 이스라엘 민족과 전 인류가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탄을 굴복시키면서 걸어가야 할 본보기 노정이기도 하다. Ⅰ. 예수의 전형노정으로 야곱노정과 모세노정을 세우신 이유 복귀섭리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인간 자신이 그의 책임분담으로써, 사탄을 자연굴복시키고 주관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이 인간조상으로서 메시아의 사명을 맡고 오신 것도, 사탄굴복의 최종적인 노정을 개척하여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그 노정을 따라가게 함으로써, 사탄을 자연굴복케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도 순종굴복하지 않았던 사탄이, 인간조상으로 오시는 예수님과 성도들에게 순종굴복할 리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원리적인 책임을 지시고 야곱을 세우심으로써, 그를 통하여 사탄을 굴복시키는 상징노정을 본보기로 보여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같이 야곱을 세우시어, 사탄을 굴복시키는 본보기노정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모세는 이 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그 형상노정을 걸음으로써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은 야곱노정을 밟아온 모세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그 실체노정을 걸음으로써,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었으며, 한편 또 성도들도 그 노정을 따라 걸음으로써, 사탄을 굴복시키고 주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세가 자기와 같은 선지자 한 사람을 하나님이 세우실 것이라고 한 것은(사도행전 3장 22절), 모세와 같은 입장에서 모세노정을 본보기로 하여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섭리노정을 걸으셔야 할 예수님을 표시한 말이었다. 그리고 요한복음 5장 19절에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미 모세를 세워서 보여주신 본보기노정을 그대로 걷고 계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다음에 오실 예수님의 모의자가 되는 것이다(사도행전 3장 22절).
복귀섭리로 본 제3차 세계대전의 원인
3. 복귀섭리로 본 제3차 세계대전의 원인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제3차 대전이 무력에 의하여 끝날것인가, 혹은 이념의 싸움으로 끝날 것인가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섭리를 받드는 인간 자신의 책임분담 수행 여하에 따라서 결정될 문제이지만, 여하간 어떠한 길로든지 세계적인 싸움이 한번 더 있어야 할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러면 복귀섭리로 보아 제3차 세계대전이 오게 되는 내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 그 첫째는 하나님의 3대축복을 복귀하는 완성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세우려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중심한 복귀섭리는 결국 영적으로만 이루어졌으므로, 예수님은 다시 지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3대축복을 완성한 세계를 영 육 아울러 복귀하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사탄은 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루시려는 세계의 비슷한 형의 비원리세계를 앞질러 이루어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역사의 종말에는 반드시 사탄편 재림주형의 인물을 중심하고, 3대축복을 복귀한 형의 비원리세계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편에서 사탄을 중심한 이 세계를 쳐서 하나님을 중심하고 3대축복을 완성한 세계를 복귀하는 완성적인 탕감조건을 세계적으로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사탄편 재림주형의 인물이 바로 스탈린이었다. 따라서 스탈린은 사탄편 개성완성형의 인물로서, 민주세계에 대항하여 농어민 노동자의 대동단결을 주창함으로써 자녀 번식의 형을 이루었고, 세계 적화의 정책을 수립함으로써 만물 주관의 형을 이루어, 3대축복을 완성한 형의 공산세계를 이룬 것이다. 그러므로 공산주의세계는 장차 올 하나님 중심의 공생공영공의주의 세계를 사탄이 앞질러 이루어 놓은 비원리세계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예수님에 대한 사탄의 세째 시험을, 하늘편 지상인으로 하여금 세계적으로 넘게 하기 위하여 제3차 대전이 오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당하셨던 시험을 중심하고 보면, 하늘편에서는 제3차 대전에 승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제3축복을 세계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탕감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광야에서 세째 시험에 승리함으로써, 만물에 대한 주관성 복귀의 기대를 조성한 것과 같이, 하늘편이 제3차 대전에 승리함으로써, 피조세계 전체에 대한 인간의 주관성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세째로는 주권복귀의 완성적인 기대를 조성하기 위하여 제3차 대전이 있어야 한다. 하늘편에 서 제3차 대전에 승리함으로써, 공산주의세계를 괴멸하고 모든 주권을 하나님에게 돌아오게 하여 천주주의의 이상세계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4. 복귀섭리로 본 제3차 세계대전의 결과 하나님은 일찌기 아담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을 세워 복귀섭리를 완성하려 하셨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인하여 인류죄악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시려는 선 악의 분립역사는 개인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가정 종족 사회 민족 국가적인 것을 거쳐서 세계적인 것으로 그 범위를 넓혀 내려오셨다. 하나님은 복귀섭리의 최종적 역사인 3차의 대전에 승리함으로써, 3단계까지 연장을 거듭하여 온 섭리노정의 전체를 탕감복귀하시려는 것이다. 태초에 인간조상은 사탄의 유혹의 말에 끌려 넘어감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심정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로 인한 내적인 영적 타락과 외적인 육적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혈통을 이어받았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복귀섭리는 타락인간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의하여 하나님에 대한 심정을 복귀하고, 영 육 아울러 구원함을 받아 하나님의 혈통을 다시 이어받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후편 제2장 제3절 Ⅲ.2 참조). 이제 3차에 걸친 세계대전에서의 하늘편 승리는, 이러한 복귀섭리의 모든 기대를 완전히 탕감복귀함으로써, 인간이 타락된 이후 유구한 역사의 기간을 두고 하나님이 이루려 하셨던 창조본연의 이상세계를 이룩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