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믿으며

 

ꡔ성령을 믿으며” 보충              


질문; 1. 성령운동은 개신교 신앙의 아류가 아닐까?


      2. 오늘날 성령쇄신에 나타나고 있는 예외적 은사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 성령쇄신 운동의 정의


교회안에는 지난 수세기 동안에 걸쳐 많은 신심운동들이 일어나서 교회의 생명을 크게 쇄신시켜 왔다. 4-5세기 경의 금욕주의 운동, 성 베네딕또에 의한 수도생활의 보급, 프란치스코 수도회 운동, 중세기의 다양한 평신도 운동, 종교개혁 이후의 예수회의 업적, 금세기에 들어서의 전례운동 등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 운동들의 특징은 모두 복음의 기본 메세지로 돌아가자고 하는 전통에로의 복귀를 전제로 했었다. 따라서 이런 운동들은 어려운 시기에 교회의 생명을 쇄신시키는 일에 중요한 수행을 해왔다.1) 이런 의미에서 미국 감리교파와 성결교파에서 시작되어 가톨릭 안에 들어온 성령운동은 가톨릭 전통 안에서의 교회의 쇄신 운동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운동은 교회 쇄신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가톨릭에서의 성령운동은 ‘성령쇄신’이라고2) 부르는데 성령안에서의 쇄신(刷新)이란 말은 성령께서 쇄신을 역사(役事)하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성령의 능력으로 쇄신이 일어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3)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서 은사는 교회의 발전과 쇄신을 위해 유용한 은총으로 암시된 바 있다. 그후에 성령께 초대교회처럼 은사를 청하면서 개방했을 때 사람들은 은사를 체험하면서 기도가 쇄신함을 보게 되었고 초대교회에만 있었다고 생각되었던 예언, 이상한 언어, 치유의 은사들까지 경험하면서 은사 현상이 쇄신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성령쇄신은 ‘은사쇄신’(Carismatic Renewal)이라고도 한다.4)    성령쇄신 또는 은사쇄신은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체적으로 초대교회 때의 오순절 성신강림을 체험하는 것에 그 본질적 요소가 있다.5) 즉 각 신자가 입문성사(세례, 견진 성사) 때 받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성령의 능력을 각자가 ‘의식적으로 체험한다’는 것을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는 것이다.6) 또 성령쇄신은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교회의 쇄신이라는 목적을 지향하고 있으며 미시적으로는 신자들에게 단 한번의 체험에 그치지 않고,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각자의 생활을 전진시켜 계속적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있다.7) 이런 의미에서 성령쇄신은 ‘입문성사의 쇄신’이다.




2. 성령쇄신(운동)의 기원과 약사(略史)


은사운동 또는 성령운동의 발단은 1901년 1월 1일 이상한 언어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 미국 캔자스주 토페카에 있는 벧엘성서대학의 학장 찰스 폭스 퍼햄(Chales Fox Parham)에서부터 시작되었다.8) 그는 1900년에 약 30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오로지 성서만을 교재로 공부하였다. 그는 1900년 말에 학생들에게 ‘참다운 성령세례의 성서적 징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였고 성령강림의 기록으로부터 이상한 언어의 은사로 이야기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징표라고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 뒤로 성령 충만을 위한 지속적인 기도가 며칠이고 그 학교를 휩쓸었다. 그러다가 1901년 1월1일 아녜스 오즈만(Agnes Ozman)이라는 학생이 퍼햄에게 그의 손을 머리 위에 안수하고 기도를 해달라고부탁했을 때, 그녀가 ‘성령세례’를 체험하면서 이상한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모든 학생과 퍼햄이 비슷한 체험을 하였다.9) 여기서부터 오순절 교회가 시작된다.10) 토스카에서 시작한 이 운동은 텍사스로 전파되었다. 당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1906년 퍼햄의 제자인 흑인 성결교회 목사 윌리암 세이머(Wiliam J. Seymour)가 이끈  로스앤젤레스 Azusa Street 부흥회였다.11) 그후 오순절주의는 1906년 초기에 유럽으로 보급되어 최초로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과 그리고 영국및 유럽대륙으로 확장되었고 그 후 전세계의 모든 지역으로 퍼졌다. 특히 성령강림의 복음주의파는 라틴 아메리카에 있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자연적인 성공을 거두었다.12)


가톨릭 성령쇄신의 시작은 1967년 미국의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듀케인(Duquesne) 대학에서 몇몇 젊은이들로 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캠퍼스에서나 전 교회에서 종교적 신심이 차차 식어져감을 당황한 나머지 교회의 참다운 쇄신은 새로운 성령강림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13) 이들은 바오로의 여러서간들과 사도행전을 읽으며 그중 몇몇은 매일 ‘성령송가’를 바쳤다. 이들은 요한 23세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전야에 기대했던 새로운 성령강림에 대한 동경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14) 성령은 예수의 제자들이 다락방에서 체험했던 것과 같은 그런 체험을 주었다. 이들은 다른 대학의 친구들과 이 체험들을 나누게 되었고 얼마 않되어 본당, 수도원에서도 기도 그룹이 생겼다. 이 여파는 5대륙에까지 번져 수많은 나라에서 성령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967년 미국에서 첫 전국대회가 열린이래 1974년에는 세계대회가 열려 많은 사제들과 주교들까지도 참석하게 되었다.15) 


한국 성령쇄신 운동은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백 제랄드 신부, 서 요셉 신부, 조영호 수사 그리고 에르나 슈믿 수녀등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16) 이들은 각 개인 생활에 무엇인가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성령께서 한국 교회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이들에게는 놀라운 영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들은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픈 열정과일찌기 체험해 보지 못한 하느님의 사랑과 능력을 깨닫고 어떤 새로운 힘이 자신이 가득 채운것 같은 느낌을 체험하였다. 그후 수차에 걸쳐 성령 세미나를 개최한 후 1973년 12월 5일에 ‘가톨릭 성령운동협의회’가 창설 되었다.17) 1975년 성령운동 협의회의 명칭은 ‘전국 성령쇄신 봉사회’로 바뀌었고 1979년에는 다시이 회는 ‘한국 가톨릭 성령쇄신 봉사자 위원회’로 개칭되었다. 이 성령쇄신 봉사회는 각 교구의 교구장이 임명한 지도신부와 평신도 대표 1명, 그리고 약간의 위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위원회는 성령 세미나 실시를 위한 교구간의 긴밀한 협조 체제를 이루고 기도회 성장과, 성령쇄신의 발전을 위한 특별 세미나 및 전국대회를 개최하고 성직자 수도자 성령쇄신 묵상회를 주관하고 있다.




3. 성령쇄신에 있어서 은사가 현현하게 된 배경


20세기에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은사에 대한 가르침을 선포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00년 이탈리아의 성령 봉헌 수녀회의 설립자인 엘레나 게라(Elena Guerra)수녀는 10월 15일자 편지에서 교황 레오 13세에게 신세기의 첫 해를 온교회의 이름으로 ‘오소서 성령이여’를 노래하면서 시작할 것을 교황에게 제안하였고 교황은 그렇게 한 바 있다. 레오 13세 교황이 성령께 대한 회칙을 통해서 성령께 간구하라고 했던 호소는 1959년 4월, 엘레나 수녀를 시복을 계기로 요한 23세 교황에게 채택되었고 교황은 순례자들에게 새로운 성령감림의 필요를 역설하게 되었다.18)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되기 전날 요한 23세는 참석자들에게 사도행전을 한번 더 읽을 것을 권유하였고 초대교회와 같은 새로운 성령강림을 기대하면서 마리아와 함께 기도할 것을 촉구하였다.19) 그후 그는 공의회의 축원이 있을 때마다 누누히 위의 기도문을 상기하였다. 요한 23세의 뒤를 이은 바오로 6세 교황도 이 기도문을 인용하였다.20) 


제 2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은사 문제가 다시 대두되어 은사에 대한 바오로의 가르침을 성서적으로 새롭게 재조명하게 된다.21) 그리고 공의회는 성령의 물결을 예견한 듯 성령에 대해서 무려 252군데나 언급하게 되었고 공의회가 끝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1967년 피츠버그 듀케인 대학에서 일어났던 성령체험은 가톨릭 성령쇄신 운동을 전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22) 이런 점은 참으로 성령께서 교회를 이끄시고 계심을 보여주는 섭리이다. 이런 사실들은 또한 성령의 현현인 은사들이 초기교회의 이후에 중단되었거나 또는 중단되었다가 재현되었음을 보여주는 표지가 아니라 성령께서 교회를 이끄시고 계시기에 은사들은 드러나지 않게 교회안에 존속하고 있었고 성령께 개방하기만 하면 픙성하게 주어지도록 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표지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점들은 가톨릭 교회의 은사쇄신은 개신교와는 상관없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23)




4. 예외적 은사들에 대한 이해


예외적 은사들은 초대교회에 있어서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은사들은 2세기 이후 몬타니즘의 열광주의적 영향과 영지주의, 아리우스 이단이 남겨놓은 이원론의 영향, 그리고 교회의 역사적 분위기 때문에 교회는 은사에 대해 경계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교회의 제도와 성사와 직무를 통한 성령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은사가 교회에서 거부된 것이 아니었다.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보듯이 신학자들은 은사를 무시한 적도 없었다.24) 교회안에서 은사는 꾸준히 체험되어 왔다. 많은 성인들과 교부들의 증언과 더불어 성인전, 신비가들의 생애에서 이것이 증명된다. 반면 수세기 동안 은사들의 현현은 성인들이나 신비가들과 같은 소수에게서만 체험되었기에 은사들은 마치 성덕이 출중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고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20세기 성령쇄신 운동이 예외적 은사들(카리스마타)에 대한 체험과 더불어 시작되면서 성령쇄신 안에서는 성령의 은사들의 현현과 표출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성령의 은사들은 성인이나 신비가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성령께서 원하시는 누구에게든지 체험될 수 있는 일상적인 실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성령쇄신 운동은 마치 교회쇄신을 위해 초대교회와 같은 새로운 성령을 갈망했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 은사들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와 개방성을 견지했던 공의회의 가르침과 맏물려서 비슷한 시기에 전세계적인 운동으로 퍼져나가가게 되었다.


  성령쇄신 운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예외적 은사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것인가에 대한 에 대한 해결로써 세 가지 입장을 말할 수 있다.


첫째, 예외적 은사들은 초대교회 이후 중단되었거나 또는 이전에는 없다가 새롭게 교회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계속 체험되어 왔다는 것이다. 즉, 가톨릭 성령쇄신 안에서의 은사들에 대한 체험은 초대교회 이후에 계속되어 왔던 은사 체험들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 예외적 은사들은 공동체와 타인의 성화를 위해서 성령께서 임의로 주시는 무상의 선물이기에 이에 대해서 수용할수 있는 개방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은사들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많은 요인들이 있지만 이것들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상적인 문제들인 한 이것들은 개선의 문제이다. 따라서 주어진 선물들에 대한 거부는 본질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샛째,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시각은 이미 교회의 전통안에서 조명되어 왔다는 것이다. 즉 교회의 전통적인 시각은 예외적인 은사들을 비상은총으로 분류하며 이에 동반되는 현상들은 정상적인 영성생활 현상에서 속한 것이 아니라 副현상으로 보고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쇄신 안에서의 은사들의 쇄신 방향은 예외적 은사에 대한 개방적 자세를 견지하되 입문성사 때 받게 되는 성화은총의 정상적인 성장과 함께 같은 성령의 또 다른 차원의 활동인 성령칠은에 대한 균형적인 가르침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자칫 예외적 은사들의 체험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그 자체가 커다란 오류를 범하게 되는 유혹이므로 이런 점들을 지양하기 위해서는 사랑안에서의 성장과 성덕을 위한 봉사를 더욱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쇄신에서 일어나는 부수적인 문제들도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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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믿으며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ꡔ성령을 믿으며” 보충              

    질문; 1. 성령운동은 개신교 신앙의 아류가 아닐까?

          2. 오늘날 성령쇄신에 나타나고 있는 예외적 은사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1. 성령쇄신 운동의 정의

    교회안에는 지난 수세기 동안에 걸쳐 많은 신심운동들이 일어나서 교회의 생명을 크게 쇄신시켜 왔다. 4-5세기 경의 금욕주의 운동, 성 베네딕또에 의한 수도생활의 보급, 프란치스코 수도회 운동, 중세기의 다양한 평신도 운동, 종교개혁 이후의 예수회의 업적, 금세기에 들어서의 전례운동 등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 운동들의 특징은 모두 복음의 기본 메세지로 돌아가자고 하는 전통에로의 복귀를 전제로 했었다. 따라서 이런 운동들은 어려운 시기에 교회의 생명을 쇄신시키는 일에 중요한 수행을 해왔다.1) 이런 의미에서 미국 감리교파와 성결교파에서 시작되어 가톨릭 안에 들어온 성령운동은 가톨릭 전통 안에서의 교회의 쇄신 운동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운동은 교회 쇄신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가톨릭에서의 성령운동은 ‘성령쇄신’이라고2) 부르는데 성령안에서의 쇄신(刷新)이란 말은 성령께서 쇄신을 역사(役事)하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성령의 능력으로 쇄신이 일어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3)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서 은사는 교회의 발전과 쇄신을 위해 유용한 은총으로 암시된 바 있다. 그후에 성령께 초대교회처럼 은사를 청하면서 개방했을 때 사람들은 은사를 체험하면서 기도가 쇄신함을 보게 되었고 초대교회에만 있었다고 생각되었던 예언, 이상한 언어, 치유의 은사들까지 경험하면서 은사 현상이 쇄신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성령쇄신은 ‘은사쇄신’(Carismatic Renewal)이라고도 한다.4)    성령쇄신 또는 은사쇄신은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체적으로 초대교회 때의 오순절 성신강림을 체험하는 것에 그 본질적 요소가 있다.5) 즉 각 신자가 입문성사(세례, 견진 성사) 때 받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성령의 능력을 각자가 ‘의식적으로 체험한다’는 것을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는 것이다.6) 또 성령쇄신은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교회의 쇄신이라는 목적을 지향하고 있으며 미시적으로는 신자들에게 단 한번의 체험에 그치지 않고,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각자의 생활을 전진시켜 계속적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있다.7) 이런 의미에서 성령쇄신은 ‘입문성사의 쇄신’이다.


    2. 성령쇄신(운동)의 기원과 약사(略史)

    은사운동 또는 성령운동의 발단은 1901년 1월 1일 이상한 언어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 미국 캔자스주 토페카에 있는 벧엘성서대학의 학장 찰스 폭스 퍼햄(Chales Fox Parham)에서부터 시작되었다.8) 그는 1900년에 약 30명의 학생들을 데리고 오로지 성서만을 교재로 공부하였다. 그는 1900년 말에 학생들에게 ‘참다운 성령세례의 성서적 징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였고 성령강림의 기록으로부터 이상한 언어의 은사로 이야기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징표라고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 뒤로 성령 충만을 위한 지속적인 기도가 며칠이고 그 학교를 휩쓸었다. 그러다가 1901년 1월1일 아녜스 오즈만(Agnes Ozman)이라는 학생이 퍼햄에게 그의 손을 머리 위에 안수하고 기도를 해달라고부탁했을 때, 그녀가 ‘성령세례’를 체험하면서 이상한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모든 학생과 퍼햄이 비슷한 체험을 하였다.9) 여기서부터 오순절 교회가 시작된다.10) 토스카에서 시작한 이 운동은 텍사스로 전파되었다. 당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1906년 퍼햄의 제자인 흑인 성결교회 목사 윌리암 세이머(Wiliam J. Seymour)가 이끈  로스앤젤레스 Azusa Street 부흥회였다.11) 그후 오순절주의는 1906년 초기에 유럽으로 보급되어 최초로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과 그리고 영국및 유럽대륙으로 확장되었고 그 후 전세계의 모든 지역으로 퍼졌다. 특히 성령강림의 복음주의파는 라틴 아메리카에 있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자연적인 성공을 거두었다.12)

    가톨릭 성령쇄신의 시작은 1967년 미국의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듀케인(Duquesne) 대학에서 몇몇 젊은이들로 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은 캠퍼스에서나 전 교회에서 종교적 신심이 차차 식어져감을 당황한 나머지 교회의 참다운 쇄신은 새로운 성령강림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13) 이들은 바오로의 여러서간들과 사도행전을 읽으며 그중 몇몇은 매일 ‘성령송가’를 바쳤다. 이들은 요한 23세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전야에 기대했던 새로운 성령강림에 대한 동경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14) 성령은 예수의 제자들이 다락방에서 체험했던 것과 같은 그런 체험을 주었다. 이들은 다른 대학의 친구들과 이 체험들을 나누게 되었고 얼마 않되어 본당, 수도원에서도 기도 그룹이 생겼다. 이 여파는 5대륙에까지 번져 수많은 나라에서 성령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967년 미국에서 첫 전국대회가 열린이래 1974년에는 세계대회가 열려 많은 사제들과 주교들까지도 참석하게 되었다.15) 

    한국 성령쇄신 운동은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백 제랄드 신부, 서 요셉 신부, 조영호 수사 그리고 에르나 슈믿 수녀등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16) 이들은 각 개인 생활에 무엇인가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성령께서 한국 교회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이들에게는 놀라운 영적 변화가 일어났다. 이들은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픈 열정과일찌기 체험해 보지 못한 하느님의 사랑과 능력을 깨닫고 어떤 새로운 힘이 자신이 가득 채운것 같은 느낌을 체험하였다. 그후 수차에 걸쳐 성령 세미나를 개최한 후 1973년 12월 5일에 ‘가톨릭 성령운동협의회’가 창설 되었다.17) 1975년 성령운동 협의회의 명칭은 ‘전국 성령쇄신 봉사회’로 바뀌었고 1979년에는 다시이 회는 ‘한국 가톨릭 성령쇄신 봉사자 위원회’로 개칭되었다. 이 성령쇄신 봉사회는 각 교구의 교구장이 임명한 지도신부와 평신도 대표 1명, 그리고 약간의 위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위원회는 성령 세미나 실시를 위한 교구간의 긴밀한 협조 체제를 이루고 기도회 성장과, 성령쇄신의 발전을 위한 특별 세미나 및 전국대회를 개최하고 성직자 수도자 성령쇄신 묵상회를 주관하고 있다.


    3. 성령쇄신에 있어서 은사가 현현하게 된 배경

    20세기에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은사에 대한 가르침을 선포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00년 이탈리아의 성령 봉헌 수녀회의 설립자인 엘레나 게라(Elena Guerra)수녀는 10월 15일자 편지에서 교황 레오 13세에게 신세기의 첫 해를 온교회의 이름으로 ‘오소서 성령이여’를 노래하면서 시작할 것을 교황에게 제안하였고 교황은 그렇게 한 바 있다. 레오 13세 교황이 성령께 대한 회칙을 통해서 성령께 간구하라고 했던 호소는 1959년 4월, 엘레나 수녀를 시복을 계기로 요한 23세 교황에게 채택되었고 교황은 순례자들에게 새로운 성령감림의 필요를 역설하게 되었다.18)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최되기 전날 요한 23세는 참석자들에게 사도행전을 한번 더 읽을 것을 권유하였고 초대교회와 같은 새로운 성령강림을 기대하면서 마리아와 함께 기도할 것을 촉구하였다.19) 그후 그는 공의회의 축원이 있을 때마다 누누히 위의 기도문을 상기하였다. 요한 23세의 뒤를 이은 바오로 6세 교황도 이 기도문을 인용하였다.20) 

    제 2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은사 문제가 다시 대두되어 은사에 대한 바오로의 가르침을 성서적으로 새롭게 재조명하게 된다.21) 그리고 공의회는 성령의 물결을 예견한 듯 성령에 대해서 무려 252군데나 언급하게 되었고 공의회가 끝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1967년 피츠버그 듀케인 대학에서 일어났던 성령체험은 가톨릭 성령쇄신 운동을 전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22) 이런 점은 참으로 성령께서 교회를 이끄시고 계심을 보여주는 섭리이다. 이런 사실들은 또한 성령의 현현인 은사들이 초기교회의 이후에 중단되었거나 또는 중단되었다가 재현되었음을 보여주는 표지가 아니라 성령께서 교회를 이끄시고 계시기에 은사들은 드러나지 않게 교회안에 존속하고 있었고 성령께 개방하기만 하면 픙성하게 주어지도록 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표지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점들은 가톨릭 교회의 은사쇄신은 개신교와는 상관없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23)


    4. 예외적 은사들에 대한 이해

    예외적 은사들은 초대교회에 있어서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은사들은 2세기 이후 몬타니즘의 열광주의적 영향과 영지주의, 아리우스 이단이 남겨놓은 이원론의 영향, 그리고 교회의 역사적 분위기 때문에 교회는 은사에 대해 경계하게 되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교회의 제도와 성사와 직무를 통한 성령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은사가 교회에서 거부된 것이 아니었다.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보듯이 신학자들은 은사를 무시한 적도 없었다.24) 교회안에서 은사는 꾸준히 체험되어 왔다. 많은 성인들과 교부들의 증언과 더불어 성인전, 신비가들의 생애에서 이것이 증명된다. 반면 수세기 동안 은사들의 현현은 성인들이나 신비가들과 같은 소수에게서만 체험되었기에 은사들은 마치 성덕이 출중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고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20세기 성령쇄신 운동이 예외적 은사들(카리스마타)에 대한 체험과 더불어 시작되면서 성령쇄신 안에서는 성령의 은사들의 현현과 표출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성령의 은사들은 성인이나 신비가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성령께서 원하시는 누구에게든지 체험될 수 있는 일상적인 실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성령쇄신 운동은 마치 교회쇄신을 위해 초대교회와 같은 새로운 성령을 갈망했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과 은사들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와 개방성을 견지했던 공의회의 가르침과 맏물려서 비슷한 시기에 전세계적인 운동으로 퍼져나가가게 되었다.

      성령쇄신 운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예외적 은사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것인가에 대한 에 대한 해결로써 세 가지 입장을 말할 수 있다.

    첫째, 예외적 은사들은 초대교회 이후 중단되었거나 또는 이전에는 없다가 새롭게 교회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계속 체험되어 왔다는 것이다. 즉, 가톨릭 성령쇄신 안에서의 은사들에 대한 체험은 초대교회 이후에 계속되어 왔던 은사 체험들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 예외적 은사들은 공동체와 타인의 성화를 위해서 성령께서 임의로 주시는 무상의 선물이기에 이에 대해서 수용할수 있는 개방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은사들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많은 요인들이 있지만 이것들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상적인 문제들인 한 이것들은 개선의 문제이다. 따라서 주어진 선물들에 대한 거부는 본질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샛째,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시각은 이미 교회의 전통안에서 조명되어 왔다는 것이다. 즉 교회의 전통적인 시각은 예외적인 은사들을 비상은총으로 분류하며 이에 동반되는 현상들은 정상적인 영성생활 현상에서 속한 것이 아니라 副현상으로 보고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쇄신 안에서의 은사들의 쇄신 방향은 예외적 은사에 대한 개방적 자세를 견지하되 입문성사 때 받게 되는 성화은총의 정상적인 성장과 함께 같은 성령의 또 다른 차원의 활동인 성령칠은에 대한 균형적인 가르침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자칫 예외적 은사들의 체험자체가 목적이 된다면 그 자체가 커다란 오류를 범하게 되는 유혹이므로 이런 점들을 지양하기 위해서는 사랑안에서의 성장과 성덕을 위한 봉사를 더욱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쇄신에서 일어나는 부수적인 문제들도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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