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부활 제 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토마스 사도의 고백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1.말씀읽기: 요한20,19-31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다 (마태 28,16-20 ; 마르 16,14-18 ; 루카 24,36-49)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예수님과 토마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복음서를 쓴 목적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말씀연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십니다. 제자들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들이 체험한 부활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인사말씀을 통해, 제자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겪은 모든 고통과 부활을 믿지 못했기에 “부활을 믿지도 못했고, 무덤을 지키지도 못했던 죄스러운 마음들”이 한 순간에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토마스 사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동료들이 전해준 예수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믿지 못했기에 겪어야만 했던 마음의 고통,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기쁨.  토마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보지 않고도 믿고 있는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기억해 보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늘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는 제자들. 스승이신 예수님을 따르며 자랑스럽고 당당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 유다인들을 두려워하며 숨죽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긴 문을 통과하여 제자들 앞에 예수님께서 서 계십니다. 그리고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하신 말씀은 “평화”였습니다. 평화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께서 고통을 통해 성취한 평화이며, 고통과 죽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성취해낸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예수님의 희생으로부터 온 평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평화를 주시기 위해 몸소 수난과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화를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평화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진(죄)으로 집이 무너져 아이들이 지하에 깔리고 말았습니다. 그곳에서 공기가 없어서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고 있었는데(죄의 결과), 그래서 아버지가 무너진 폐허를 걷어내고, 온 몸에 상처가 나는 것을 감수하며 파 내려가 마침내 아이들이 있는 곳 까지 피땀을 흘리며(수난과 죽음) 굴을 팠습니다. 신선한 공기가 아이들에게 전해지면서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괜찮니?”하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얻은 평화입니다. 그 평화를 제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닫힌 문을 통과하여 자신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구멍 난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 부활하신 예수님과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님.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렇게 돌아가셨던 분이 다시 살아나셔서 자신들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합니다.



예수님은 결코 당신의 능력으로 죽은 체, 아픈 체 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고통 없는 기쁨과 희망은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으로 함께 죽었었지만(꿈, 희망, 삶의 의미)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제자들도 부활을 맞게 됩니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화를 주시고,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파견하시는 목적은 예수님의 일을 대신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평화를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파견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로부터 파견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예수님의 평화를 받아 간직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 섬기러 오신 예수님, 폭력을 폭력으로 저항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감싸 안아 주신 예수님, 세상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주신 예수님, 수난과 죽음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예수님.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방식으로 예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일을 하면서 불평과 불만 속에 있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일을 하면서 기쁨이 솟아나야 하고, 예수님의 일을 하면서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말씀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라는 말씀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평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온통 근심 걱정과 불만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① 섬겨야 합니다. ②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③ 용서해야 합니다. ④ 슬기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예수님을 대리할 수 있고, 그렇게 살아갈 때 예수님의 구원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면서 힘을 주십니다. 그 힘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성령을 받아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숨을 불어넣으시는 모습은 에덴동산에서 하느님께서 아담을 지어 내시고 숨을 불어 넣으시어 생명을 주시는 것을 기억하게 만듭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어 아담은 살아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제자들이 이제는 예수님의 사도로서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바로 성령을 통해서 말입니다. 제자들이 유다인들이 두려워서 골방에 숨어있을 때, 성령께서는 제자들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문을 박차고 나가서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그분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전했습니다. 신앙인이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예수님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갈 때, 나는 주님의 일을 당당하게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삶은 기도를 통해서 가능해 지게 됩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는 나를 이끄실 수 있습니다. 아니 온전히 성령께 맡겨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용서받았다는 것은 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받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도 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짓고 용서를 청하며 하느님께 고개를 숙일 때, 교회는 그 죄를 풀어 줍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죄를 용서해 주는 권한은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것입니다. 이 죄의 용서는 바로 부활을 통해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죄의 용서권한을 주신 이유는 당신을 믿는 모든 이들을 고통 속에서 벗어나 기쁨과 희망 속에서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을 것이다.”는 말씀을 통해서 그대로 두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기쁘고,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죄에서 벗어나 구원 안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다음에 용서를 말씀하십니다. 사실 성령을 통하여 새로 나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영원한 생명에 도움이 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결코 온전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용서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만이 완전한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용서를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용서를 받으려면 그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온전한 신앙인이어야만이 나를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런데 열두 제자 가운데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었습니다. 토마스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라고 전해주었지만 토마스는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하고 말하였습니다.

토마스는 처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신 분이 부활하신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토마스는 제자들이 보고 싶어 했던 것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제자들이 헛것을 보았다 할지라도 그것이라도 보길 원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우리 예수님 만났어!”

토마스: “정신들 차려! 너무 충격이 커서 그럴 거야.”

제자들: “진짜라니까?”

토마스: “3일전에 돌아가실 때 그 모습 생각 안나? 어떻게 그렇게 돌아가신 분이 살아나셔. 너무 보고 싶으니까 환영을 본거야!”

제자들: “진짜라니까?”

토마스: “난 내  손가락으로 그분의 손에 난 상처에 넣어보고, 옆구리 상처에 손을 넣어 보지 않기 전에는 결코 믿지 못하겠어.”

이럴 때 내가 제자들 중의 하나라면 어떻게 말할까요?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 안에서 공동체의 모습을 발견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10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다고 토마스에게 말 하였습니다. 그런데 토마스는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너무도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기에 믿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부활을 전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동료들입니다. 동료가 말하면 믿어야 합니다. 함께 일하는 봉사자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봉사자에게 믿지 못할 말을 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어찌 보면 열두 제자들은 아직 한 팀이 되지 못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사실 높고 낮은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주님 안에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참조 2,19-22)에서 하느님의 한 가족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그래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아니라 무척 중요한 사람입니다. 내가 바닥이라면 그는 천장이고, 기둥이요, 벽인 것입니다. 바닥만 있는 집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천장만 있는 집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멋진 집이라 할지라도 문이 없다면 어떻게 들어갈 수 있으며, 어떻게 도둑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들이 처음에 잊은 것이 바로 “하나”라는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섬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그를 받아들이고, 섬겼다면 나는 그의 말을 듣습니다. 백인대장이 예수님께 “한 말씀만 하시면 제 종이 낫겠습니다.”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옆에 있는 이가 말하니 나는 그의 말을 믿어야 합니다. 나에게 이익이 될 것 같은 말 뿐만 아니라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신자들이 신자를 권면하면 잘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타종교의 신자나, 신흥종교의 신자가 유혹을 하면 그곳으로는 넘어갑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가톨릭 신자들도 성당에 봉헌이나 교무금을 내는데 있어서 인색한 사람들이 좀 있습니다. 그런데 타 종교나 신흥종교로 간 사람들은 많은 것을 기부합니다. 뭔가 방법이 잘못 된지도 모르겠지만 좌우지간 진실한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이상한 쪽으로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내 마음이 닫혀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열려 있어야 보이고, 들리는데 닫혀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고, 형제요 자매라고 지내왔지만, 동료로서 함께 지내왔지만 그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도 문제요,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기쁨에 넘치는 제자들과 의심과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토마스 사도. 토마스 사도에게는 괴로움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여드레가 흐른 날,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서시며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그리고 토마스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토마스가 원하는 방식으로 토마스를 믿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토마스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얼마나 죄송했을까요? 토마스는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드립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제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굳게 믿게 된 것입니다.



토마스 사도가 예수님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한 것이 교회 전례 안으로 들어왔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공의회 이전에는 신자들이 거양성체 때 “내 주시요, 내 천주시로다.”라고 고백을 했는데, 지금 어르신들은 속으로 나지막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매번 영성체 하면서 나 또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할 때, 내 삶 또한 바뀌게 될 것입니다. 토마스처럼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내가 믿어야 만이 주님께서 부활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기에 내가 믿는 것이고, 부활의 신비 앞에서 내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결코 내 틀에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삶으로 고백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고백하면 내 삶도 바뀌게 됩니다.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토마스를 향하여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보지 않았음에도 믿고 있는 나를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더욱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 부활의 목격 증인은 아닙니다.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사라질 때 행복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더욱 진실히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욱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30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제자들이 복음서를 기록한 이유는 목격 증인들이 사라져 가면서 말씀의 왜곡이나 변형 등을 우려했고, 예수님께서 금방 오실 줄 알았지만 더디 오시니까 신자들의 믿음을 위해서, 그리고 복음 전파를 위해서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바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증거 하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사가들은 자기들이 필요한 것들을 모아서 기록했습니다. 즉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한 것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많은 표징들을 모두 기록했다면 엄청난 양의 말씀들이 생겨났을 것입니다.



31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기록된 이유는 신자와 비신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 기쁨을 이야기 해 봅시다. 그리고 동료들의 말을 믿지 못하는 토마스 사도에게 내가 부활의 소식을 전해야 한다면 어떻게 전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③ 예수님께로부터 파견 받은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리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용서의 삶인데, 어떻게 하면 참된 용서를 할 수 있을까요?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르는 사람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4. 나눔 및 묵상

① 부활의 기쁨을 삶으로 표현하기

② 사순시기 절약한 것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기

③ 주님께로부터 파견 받은 신분임을 명심하며 파견 받은 사람답게 살아가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글은 카테고리: 가해(말씀과놀이,2), 말씀과 놀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가해 부활 제 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토마스 사도의 고백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부활하신 예수님

    1. 말씀읽기: 요한 20,1-9

    부활하시다 (마태 28,1-8 ; 마르 16,1-8 ; 루카 24,1-12)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알렐루야!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함께 기뻐하며, 부활의 증인으로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부활의 첫 증인이 된 마리아 막달레나! 그녀는 예수님을 너무도 사랑했기에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사랑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사랑했기에 부활의 첫 증인으로서 기쁜 소식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부부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내 사랑하는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보고 싶습니다. 뒷산에 묻혔다면 캄캄한 새벽에 무덤에 갈 수 있을까요?” 응답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편들에게는 먼저 말씀을 드렸습니다. “무조건 손들라고.” 그리고 물었습니다. 만일 아내가 그렇게 먼저 가서 묻혀 있다면 새벽에라도 가서 보겠냐고! 그랬더니 모두 손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다가설 때, 나 또한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안식일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여인들은 향료를 살 수 있었습니다. 안식일은 해가 지면 끝납니다. 하지만 그때 무덤으로 달려가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마리아 막달레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길을 서두르게 됩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서둘러서 치렀기에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습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에 도착해서 깜짝 놀라게 됩니다. 무덤을 막았던 돌은 치워져 있었고, 그 안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즉시 제자들에게로 달려가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다고,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다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은 부활하셨기 때문이지만, 마리아의 마음에는 “시신을 누군가가 훔쳐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제자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가 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셨기에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마리아는 아직 믿지 않았지만 이제 믿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의 믿음을 한 차원 올려 주실 것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예수님께로 향할 때, 예수님께서는 부족한 나의 신앙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는데, 병아리가 부화하려면 “엄마! 저 여기 있어요!” 하고 안에서 껍질을 쪼아대면, 어미닭이 밖에서 “아! 우리 아기가 나올 때가 되었구나!”하고 달걀을 쪼아서 병아리가 쉽게 나올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들도 부활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부활에 대해 열망하면, 하느님께서 그 삶과 정성을 보시고 이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를 이끌어 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베드로와 요한은 즉시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들도 무척 궁금했을 것입니다. 무덤으로 달려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고 하셨는데 정말로 부활하셨을까? 그런데 우리 눈앞에서 그렇게 처절하게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부활하실 수가 있단 말인가? 베드로와 요한은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무덤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두 사도가 곧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베드로보다 젊었던 요한이 먼저 무덤에 이르렀습니다. 요한 사도는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이 사실임을 알아차렸습니다. 무덤은 열려 있었습니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요한사도는 예수님을 감쌌던 아마포만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베드로 사도를 향한 겸손의 표현(장유유서) 때문인 듯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의 권위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수위권을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권위를 요한 사도는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있는 것입니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시몬 베드로는 숨을 헐떡이며 무덤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감쌌던 아마포만 남은 것을. 그는 보았습니다. 이제 믿음으로 옮겨질 차례입니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이 한 순간에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서서히 생겨나고, 그리고 그 믿음으로 변화되어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수의가 그곳에 놓여 있다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말한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꺼내갔다.”는 말과는 모순 됩니다. 만일 예수님의 시신을 누군가가 훔쳐갔다면 수의와 수건도 다 가져 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고 전해줍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그제야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예고를 회상하고 부활을 믿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으뜸으로 세우시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믿지 못했었습니다. 이제 그 증거를 보고 베드로 사도는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아마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부활을 믿고 있었다면 예수님의 무덤 앞을 지키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도 함께 못했고, 또 믿지 못했기에 예수님의 부활도 지켜보지 못했기에 예수님께 죄송한 마음만 들었을 것입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야 비로소 “아하! 그랬었구나!”라고 무릎을 치게 될 것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누가 말해 준다 해도 못 알아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일이 이렇게 하면 생기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도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하는 생각이 결국 그런 실수를 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마음을 활짝 열어 봅시다. 마음이 열려 있으면 많은 것이 들려오고, 마음이 열려 있으면 많은 것들이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부활의 증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 말씀을 깨달아야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받아들일 수가 있겠지요. 부지런히 성경말씀을 공부하고,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고, 그 말씀으로 기도하는 내가 되어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만일 내가 베드로 사도와 함께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가서 빈 무덤을 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을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훔쳐 갔다고 생각을 했을까요?


    ③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증거 할 수 있습니까? 내가 부활의 증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4. 공지사항

    ① 부활을 기뻐하며,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서 살아가기

    ② 부활의 기쁨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기

    ③ 부활달걀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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