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 28주일 셀모임 자료.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

 











탈리다 쿰


    


         “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아홉은 어디 있습니까?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


1. 시작기도: 말씀읽기:루가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의 한가운데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런데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자 나병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오다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예수님, 스승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였다.


14  예수께서 보시고는 그들에게 “가서 제관들에게 당신들의 (몸)을 보이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홉은 어디 있습니까?  18  이 외국인 밖에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되돌아온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19  그러고서는 그에게 “일어나 가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아홉은 어디 있습니까?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




나병 환자 열사람. 그들 중 아홉은 유다인이었고, 하나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성숙한 믿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수종하면서 성장하고 감사드리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그는 치유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의 인생은 예수님 안에서 감사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과 마주치셨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님께 소리쳤습니다.




12  그런데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자 나병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오다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예수님, 스승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였다.


예수님 시대에 보면 나병환자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 되었지만 성벽이 있는 고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고, 사람들 가까이에 가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애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들의 구성을 보면 재미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유다인들 속에 사마리아 사람이 끼어있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 돼지’ 취급했는데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아마도 나병이라는 비참함이 그들 사이에 공동적인 유대를 형성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간의 민족적 적대감 까지 잊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들도 “하느님의 자녀”라는 공동적인 신분이 있기에 형제요 자매라고 부를 수 있고, 더욱 친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다른 이들 보다도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떤 조건 때문에, 자신의 이익 때문에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하느님의 자녀의 특권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갈라져 서로 등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자비를 청했습니다.


여기서 스승님이라는 칭호는 성서에서 사도들이 그분의 능력에 압도당하였을 때, 그분의 영광에 깜짝 놀랐을 때, 또는 곤경 중에서 도움을 필요로 했을 때 사도들이 예수님께 드린 칭호였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이 칭호를 드리면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어떠한 조건도 걸지 않으십니다.


14  예수께서 보시고는 그들에게 “가서 제관들에게 당신들의 (몸)을 보이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나병환자들이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제들에게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사제들이 “이 사람 병이 다 나았습니다”라고 선언해야만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들을 사제들에게 보내신 것은 결국 “너는 다 나았으니 공동체로 돌아가거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나병환자 열 사람은 아무 조건도 없이 예수님께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10명이 구원되었는데 이방인 한 사람만이 돌아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들 드리고 있습니다. 그 사마리아 사람은 이스라엘의 자녀들 가운데 들지 않는 이방인 중의 한 사람이었기에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의 선물에 오직 감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사마리아 사람은 기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뿐 이심을 알고 있었기에 하느님을 찬양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발 앞에 엎드린 다는 것은 깊은 존경의 표시입니다. 지금 큰 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엎드려 존경을 표시하는 방법은 또 하느님께 올리는 존경을 의미했습니다(마태26,39;1고린14,25;묵시록7,11.11,16).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무런 감사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선물을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이 치유 받은 것은 하느님의 대변인으로부터 자신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이 얼마나 있을까요?




어머니께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식사를 감사할 줄도 모르고 투덜거리는 아이들의 모습. 그것이 당연한 불평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나는 그것이 당연한 불평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본다면 어떻겠습니까? 내 아이가 나의 정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부모님께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여 봉급을 타오면 그것을 아무런 고마움 없이 써 버리는 아이들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나는 당연히 부모님께 돈을 달라고 말할 권리가 있습니까?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함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내가 열심히 일한 것을 다른 사람이 마구 써버린다면, 그러면서도 감사하지도 않고,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내 마음은 어떨까요?




하느님께서 당연히 나를 돌보셔야 할까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어여삐 보신다면 나는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17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홉은 어디 있습니까?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랑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잊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그들은 아마도 자신의 성한 몸을 사제에게 보이고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서둘렀을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이 집에 가 있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고쳐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감사를 드려야 했음이 당연한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수능을 하루 앞둔 날 복음말씀이 이 말씀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미사에 참례하고 성사를 보고 강복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수능이 끝나고 그날 성당에 와서 감사미사를 바친 학생은 단 한명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을 한번쯤은 감사하다고 여겨 보십시오. 두 눈이 있음을,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음을, 입이 있어 말을 할 수 있음을, 부모가 있음을, 학교에 다닐 수 있음을, 형이나 동생이 있음을, 친구가 있음을, 그리고 내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18  이 외국인 밖에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되돌아온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19  그러고서는 그에게 “일어나 가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치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이방인은 예수님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가르침의 탁월성을 인정했고,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임을 믿었습니다. 믿는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




여기서 또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믿음으로 구원되지만 그 믿음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어야 합니다.




2.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2. 치유 받은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입니까?






3. 알림 및 공지   


1. 성서를 한 주일에 한번은 펼쳐보기. 2. 시험공부 열심히 하고 미사에는 안 빠지기


2. 셀 모임에 충실히 참여하기. 미사에 친구들이 참례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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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 28주일 셀모임 자료.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탈리다 쿰

        

             “행복한 가족 구성원 되기“

    주요 실천 사항 :

    ①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기  ② 미사, 셀모임 참석하기 

    아홉은 어디 있습니까?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

    1. 시작기도: 말씀읽기:루가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의 한가운데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런데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자 나병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오다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예수님, 스승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였다.

    14  예수께서 보시고는 그들에게 “가서 제관들에게 당신들의 (몸)을 보이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홉은 어디 있습니까?  18  이 외국인 밖에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되돌아온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19  그러고서는 그에게 “일어나 가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아홉은 어디 있습니까?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


    나병 환자 열사람. 그들 중 아홉은 유다인이었고, 하나는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성숙한 믿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에 수종하면서 성장하고 감사드리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그는 치유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의 인생은 예수님 안에서 감사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과 마주치셨습니다. 나병환자들은 멀찍이 서서 예수님께 소리쳤습니다.


    12  그런데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자 나병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오다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예수님, 스승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였다.

    예수님 시대에 보면 나병환자들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 되었지만 성벽이 있는 고을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고, 사람들 가까이에 가는 것도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애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들의 구성을 보면 재미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유다인들 속에 사마리아 사람이 끼어있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 돼지’ 취급했는데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을까요? 아마도 나병이라는 비참함이 그들 사이에 공동적인 유대를 형성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간의 민족적 적대감 까지 잊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들도 “하느님의 자녀”라는 공동적인 신분이 있기에 형제요 자매라고 부를 수 있고, 더욱 친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다른 이들 보다도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떤 조건 때문에, 자신의 이익 때문에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하느님의 자녀의 특권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갈라져 서로 등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자비를 청했습니다.

    여기서 스승님이라는 칭호는 성서에서 사도들이 그분의 능력에 압도당하였을 때, 그분의 영광에 깜짝 놀랐을 때, 또는 곤경 중에서 도움을 필요로 했을 때 사도들이 예수님께 드린 칭호였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께 이 칭호를 드리면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십니다. 어떠한 조건도 걸지 않으십니다.

    14  예수께서 보시고는 그들에게 “가서 제관들에게 당신들의 (몸)을 보이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나병환자들이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제들에게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사제들이 “이 사람 병이 다 나았습니다”라고 선언해야만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들을 사제들에게 보내신 것은 결국 “너는 다 나았으니 공동체로 돌아가거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나병환자 열 사람은 아무 조건도 없이 예수님께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10명이 구원되었는데 이방인 한 사람만이 돌아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들 드리고 있습니다. 그 사마리아 사람은 이스라엘의 자녀들 가운데 들지 않는 이방인 중의 한 사람이었기에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의 선물에 오직 감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사마리아 사람은 기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뿐 이심을 알고 있었기에 하느님을 찬양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발 앞에 엎드린 다는 것은 깊은 존경의 표시입니다. 지금 큰 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엎드려 존경을 표시하는 방법은 또 하느님께 올리는 존경을 의미했습니다(마태26,39;1고린14,25;묵시록7,11.11,16).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무런 감사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선물을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 그들이 치유 받은 것은 하느님의 대변인으로부터 자신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이 얼마나 있을까요?


    어머니께서 정성스럽게 준비한 식사를 감사할 줄도 모르고 투덜거리는 아이들의 모습. 그것이 당연한 불평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나는 그것이 당연한 불평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본다면 어떻겠습니까? 내 아이가 나의 정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부모님께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여 봉급을 타오면 그것을 아무런 고마움 없이 써 버리는 아이들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나는 당연히 부모님께 돈을 달라고 말할 권리가 있습니까?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함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내가 열심히 일한 것을 다른 사람이 마구 써버린다면, 그러면서도 감사하지도 않고,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내 마음은 어떨까요?


    하느님께서 당연히 나를 돌보셔야 할까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어여삐 보신다면 나는 오직 감사할 뿐입니다.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17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홉은 어디 있습니까?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랑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잊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그들은 아마도 자신의 성한 몸을 사제에게 보이고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발걸음을 서둘렀을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이 집에 가 있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고쳐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감사를 드려야 했음이 당연한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수능을 하루 앞둔 날 복음말씀이 이 말씀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미사에 참례하고 성사를 보고 강복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수능이 끝나고 그날 성당에 와서 감사미사를 바친 학생은 단 한명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을 한번쯤은 감사하다고 여겨 보십시오. 두 눈이 있음을, 두 팔과 두 다리가 있음을, 입이 있어 말을 할 수 있음을, 부모가 있음을, 학교에 다닐 수 있음을, 형이나 동생이 있음을, 친구가 있음을, 그리고 내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18  이 외국인 밖에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되돌아온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19  그러고서는 그에게 “일어나 가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치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이방인은 예수님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가르침의 탁월성을 인정했고,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임을 믿었습니다. 믿는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했습니다.”


    여기서 또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믿음으로 구원되지만 그 믿음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어야 합니다.


    2.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2. 치유 받은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입니까?



    3. 알림 및 공지   

    1. 성서를 한 주일에 한번은 펼쳐보기. 2. 시험공부 열심히 하고 미사에는 안 빠지기

    2. 셀 모임에 충실히 참여하기. 미사에 친구들이 참례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4. 말씀으로 기도하기(적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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