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 제 28주일 셀모임 자료

 

연중 제 28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혼인잔치에 초대한 임금의 비유


1.말씀읽기:마태22,1-14


예수께서 또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어느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것에 비길 수 있다.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잔치에 초청 받은 사람들을 불렀으나 오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종들을 보내면서 ‘초청을 받은 사람들에게 가서 이제 잔치상도 차려 놓고 소와 살진 짐승도 잡아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으니 어서 잔치에 오라고 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러나 초청받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밭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때려 주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다.그래서 임금은 몹시 노하여 군대를 풀어서 그 살인자들을 잡아 죽이고 그들의 동네를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나서 종들에게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지만 전에 초청받은 자들은 그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다.그러니 너희는 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너라’ 하고 말하였다. 10  그래서 종들은 거리에 나가 나쁜 사람 좋은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다 데려 왔다. 그리하여 잔치집은 손님으로 가득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갔더니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를 보고 12  ‘예복도 입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 왔소?’ 하고 물었다. 그는 할 말이 없었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어 쫓아라.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14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여 설명하십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의미는 그리 어렵지 않으나 내용은 무척 어렵습니다. 잘못 생각하면 하느님을 무자비하신 분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처음에 선택받은 이들은 자격을 스스로 상실했습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을 외면하였습니다. 이제 구원은 모든 이들을 향하여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복(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입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예복을 입고 있는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봅시다.




1  예수께서 또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어느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것에 비길 수 있다.  3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잔치에 초청 받은 사람들을 불렀으나 오려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른 종들을 보내면서 ‘초청을 받은 사람들에게 가서 이제 잔치상도 차려 놓고 소와 살진 짐승도 잡아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으니 어서 잔치에 오라고 하여라’ 하고 일렀다.


왕은 종들을 보내어 손님들을 불러 옵니다. 그런데 이 명예로운 초대를 거부합니다. 이유조차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임금은 모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종들을 보내어 준비가 다 되었으니 와 달라고 초대를 합니다.


그런데 이 임금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떻게 임금이 초대했는데 신료들이 안 올 수 있을까요? 그 임금이 권위가 있는 임금이었다면 초대 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그 잔치에 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신료들의 태도를 보아 임금은 권위가 없는 사람임에 틀림 없습니다. 신료들이 자기 일 다하고 응해도 받아주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5  그러나 초청받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밭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가고  6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때려 주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어떻게 임금의 초대를 거절할 수가 있으며 더 나아가 임금의 종들을 때려 주거나, 죽이기까지 한단 말입니까? 아무래도 임금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심부름하는 자에게 모욕을 준다는 것은 심부름을 시킨 사람, 즉 왕에게 모욕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초청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재력이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이 초대를 할 때와 재력도 없고 지위도 없는 사람이 초대를 할 때, 나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전자의 초청은 거절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참석한다면 깔끔하게 차려입고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는 거절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이런 저런 작은 이유만 닿아도 충분히 거절하지 않을까요?


초청은 한 사람이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너무도 사랑하시는 그 사람이 하느님과 함께 나를 부르는 것입니다. 내가 그의 초대에 어떻게 응하느냐가 내가 하느님께 어떻게 응답하느냐로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기분 나쁜 때도 있습니다. 초대를 해 놓고 성의가 전혀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초대에 응했지만 마음이 전혀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초대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초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너무도 사랑하셔서 당신 나라를 주시려는 그분. 그런데 초대에 응하는 나는 그 나라에는 아직 관심도 없습니다. 지금 주어진 상황들이 너무도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르시는 그분. 관심이 없는 나. 마음 아파하시는 그분. 아무 생각이 없는 나.




7  그래서 임금은 몹시 노하여 군대를 풀어서 그 살인자들을 잡아 죽이고 그들의 동네를 불살라 버렸다.


그런데 임금이 좀 이상합니다. 그렇게 너그러우시던 임금이 이제는 못 참고, 잔치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동네를 불살라 버렸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복음사가는 분명히 예루살렘의 멸망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마태오 복음사가가 복음서를 쓸 당시에는 이미 예루살렘이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만이 엄청난 규모의 출정과 완전한 파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상 예루살렘은 70년에 완전히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시대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신약시대에는 당신 아들을 통하여 구원의 복음을 알렸으나, 백성들은 예언자들과 예수님마저 배척하고 죽였습니다. 처음에 초대받았던 사람들이 한 것처럼 했기에 그들은 구원받을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고, 복음사가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바로 그 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8  그리고 나서 종들에게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지만 전에 초청받은 자들은 그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다.  9  그러니 너희는 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너라’ 하고 말하였다. 10  그래서 종들은 거리에 나가 나쁜 사람 좋은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다 데려 왔다. 그리하여 잔치집은 손님으로 가득찼다.


임금은 초대를 거절한 이들 대신에 천한 계층의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명령을 받은 종들은 만나는 대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부자나 가난한 사람. 그런 사람들로 잔치집은 가득 찼습니다.


즉 이제 새로운 하느님의 구원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교 전도사들로 하여금 유다인이건, 이방인이건, 악한 사람이건, 선한 사람이건 모두 교회로 모아들이도록 명하십니다. 교회는 유다인과 이방인이 공존하는 혼성 공동체요 종말에 이르기까지 악인과 선인이 공생하는 혼합 공동체인 것입니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 갔더니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를 보고 12  ‘예복도 입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 왔소?’ 하고 물었다. 그는 할 말이 없었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어 쫓아라.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임금으로부터 초청을 받은 사람들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황스러운 것은 그를 임금이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곳에 쫓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비유에서 보면 나중에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거리에서 데려 온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옷은 대개 노동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고 온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예복을 입고 왔다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쫓겨난 사람은 한 마디 변명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 비유의 의미를 알아봅시다. 임금은 하느님이시고, 혼인 잔치는 즐거움과 행복의 메시아 왕국입니다. 예복은 손님이 지녀야 할 제 나름의 자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예복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행함(7,24-27), 아버지의 뜻을 행함(7,21), 의로움을 행함(3,15;5,20), 사랑의 이중계명을 행함(22,34-40), 자비를 행함(25,31-46)등 입니다. 혼인잔치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고, 악행을 일삼아 왔던 악인들을 말합니다. 가슴을 치며 통곡할 곳은 지옥이며, 잔치의 소식을 전한 이들은 예언자들입니다. 그리고 듣지 않고 죽이기까지 한 처음의 초대받은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는 유다인들을 말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 입니다. 즉 예복을 입은 사람들 입니다. 그리고 그 예복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 입니다.




14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행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마음은 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결국 마음도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구원의 보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세례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답게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예복을 갖추는 삶이요,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삶의 자세입니다. 나는 부르심을 받고 뽑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함께 노력합시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이 비유 말씀을 들으면서 느낀 것은 어떤 것입니까?






2. 내가 초대를 했을 때, 초대받은 사람들이 어떤 모양으로, 어떤 자세로 참석했으면 좋겠습니까?






4.공지사항


1. 학교 생활과 성당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2. 적어도 하루에 성호경은 세 번 이상 그읍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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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 28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혼인잔치에 초대한 임금의 비유

    1.말씀읽기:마태22,1-14

    예수께서 또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어느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것에 비길 수 있다.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잔치에 초청 받은 사람들을 불렀으나 오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종들을 보내면서 ‘초청을 받은 사람들에게 가서 이제 잔치상도 차려 놓고 소와 살진 짐승도 잡아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으니 어서 잔치에 오라고 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러나 초청받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밭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때려 주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다.그래서 임금은 몹시 노하여 군대를 풀어서 그 살인자들을 잡아 죽이고 그들의 동네를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나서 종들에게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지만 전에 초청받은 자들은 그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다.그러니 너희는 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너라’ 하고 말하였다. 10  그래서 종들은 거리에 나가 나쁜 사람 좋은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다 데려 왔다. 그리하여 잔치집은 손님으로 가득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갔더니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를 보고 12  ‘예복도 입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 왔소?’ 하고 물었다. 그는 할 말이 없었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어 쫓아라.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14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여 설명하십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의미는 그리 어렵지 않으나 내용은 무척 어렵습니다. 잘못 생각하면 하느님을 무자비하신 분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처음에 선택받은 이들은 자격을 스스로 상실했습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을 외면하였습니다. 이제 구원은 모든 이들을 향하여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복(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입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예복을 입고 있는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봅시다.


    1  예수께서 또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어느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것에 비길 수 있다.  3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잔치에 초청 받은 사람들을 불렀으나 오려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른 종들을 보내면서 ‘초청을 받은 사람들에게 가서 이제 잔치상도 차려 놓고 소와 살진 짐승도 잡아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으니 어서 잔치에 오라고 하여라’ 하고 일렀다.

    왕은 종들을 보내어 손님들을 불러 옵니다. 그런데 이 명예로운 초대를 거부합니다. 이유조차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임금은 모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종들을 보내어 준비가 다 되었으니 와 달라고 초대를 합니다.

    그런데 이 임금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떻게 임금이 초대했는데 신료들이 안 올 수 있을까요? 그 임금이 권위가 있는 임금이었다면 초대 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그 잔치에 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신료들의 태도를 보아 임금은 권위가 없는 사람임에 틀림 없습니다. 신료들이 자기 일 다하고 응해도 받아주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5  그러나 초청받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밭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가고  6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때려 주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어떻게 임금의 초대를 거절할 수가 있으며 더 나아가 임금의 종들을 때려 주거나, 죽이기까지 한단 말입니까? 아무래도 임금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심부름하는 자에게 모욕을 준다는 것은 심부름을 시킨 사람, 즉 왕에게 모욕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초청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재력이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이 초대를 할 때와 재력도 없고 지위도 없는 사람이 초대를 할 때, 나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전자의 초청은 거절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참석한다면 깔끔하게 차려입고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는 거절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이런 저런 작은 이유만 닿아도 충분히 거절하지 않을까요?

    초청은 한 사람이 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너무도 사랑하시는 그 사람이 하느님과 함께 나를 부르는 것입니다. 내가 그의 초대에 어떻게 응하느냐가 내가 하느님께 어떻게 응답하느냐로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기분 나쁜 때도 있습니다. 초대를 해 놓고 성의가 전혀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초대에 응했지만 마음이 전혀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초대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초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너무도 사랑하셔서 당신 나라를 주시려는 그분. 그런데 초대에 응하는 나는 그 나라에는 아직 관심도 없습니다. 지금 주어진 상황들이 너무도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르시는 그분. 관심이 없는 나. 마음 아파하시는 그분. 아무 생각이 없는 나.


    7  그래서 임금은 몹시 노하여 군대를 풀어서 그 살인자들을 잡아 죽이고 그들의 동네를 불살라 버렸다.

    그런데 임금이 좀 이상합니다. 그렇게 너그러우시던 임금이 이제는 못 참고, 잔치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동네를 불살라 버렸으니 말입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복음사가는 분명히 예루살렘의 멸망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마태오 복음사가가 복음서를 쓸 당시에는 이미 예루살렘이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만이 엄청난 규모의 출정과 완전한 파괴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상 예루살렘은 70년에 완전히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시대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신약시대에는 당신 아들을 통하여 구원의 복음을 알렸으나, 백성들은 예언자들과 예수님마저 배척하고 죽였습니다. 처음에 초대받았던 사람들이 한 것처럼 했기에 그들은 구원받을 자격을 상실하게 되었고, 복음사가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바로 그 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8  그리고 나서 종들에게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지만 전에 초청받은 자들은 그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다.  9  그러니 너희는 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너라’ 하고 말하였다. 10  그래서 종들은 거리에 나가 나쁜 사람 좋은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다 데려 왔다. 그리하여 잔치집은 손님으로 가득찼다.

    임금은 초대를 거절한 이들 대신에 천한 계층의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명령을 받은 종들은 만나는 대로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 부자나 가난한 사람. 그런 사람들로 잔치집은 가득 찼습니다.

    즉 이제 새로운 하느님의 구원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교 전도사들로 하여금 유다인이건, 이방인이건, 악한 사람이건, 선한 사람이건 모두 교회로 모아들이도록 명하십니다. 교회는 유다인과 이방인이 공존하는 혼성 공동체요 종말에 이르기까지 악인과 선인이 공생하는 혼합 공동체인 것입니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 갔더니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를 보고 12  ‘예복도 입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 왔소?’ 하고 물었다. 그는 할 말이 없었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어 쫓아라.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임금으로부터 초청을 받은 사람들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황스러운 것은 그를 임금이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곳에 쫓아 버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 비유에서 보면 나중에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거리에서 데려 온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옷은 대개 노동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고 온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예복을 입고 왔다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쫓겨난 사람은 한 마디 변명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지금부터 이 비유의 의미를 알아봅시다. 임금은 하느님이시고, 혼인 잔치는 즐거움과 행복의 메시아 왕국입니다. 예복은 손님이 지녀야 할 제 나름의 자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예복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행함(7,24-27), 아버지의 뜻을 행함(7,21), 의로움을 행함(3,15;5,20), 사랑의 이중계명을 행함(22,34-40), 자비를 행함(25,31-46)등 입니다. 혼인잔치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고, 악행을 일삼아 왔던 악인들을 말합니다. 가슴을 치며 통곡할 곳은 지옥이며, 잔치의 소식을 전한 이들은 예언자들입니다. 그리고 듣지 않고 죽이기까지 한 처음의 초대받은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는 유다인들을 말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느님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 입니다. 즉 예복을 입은 사람들 입니다. 그리고 그 예복을 갖추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 입니다.


    14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행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마음은 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결국 마음도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곧 구원의 보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세례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답게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참된 예복을 갖추는 삶이요,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삶의 자세입니다. 나는 부르심을 받고 뽑힌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함께 노력합시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오늘 이 비유 말씀을 들으면서 느낀 것은 어떤 것입니까?



    2. 내가 초대를 했을 때, 초대받은 사람들이 어떤 모양으로, 어떤 자세로 참석했으면 좋겠습니까?



    4.공지사항

    1. 학교 생활과 성당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2. 적어도 하루에 성호경은 세 번 이상 그읍시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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