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리다 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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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 |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 |
중풍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
1. 말씀읽기: 마르코 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인지, 가족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병자를 데리고 예수님 앞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예수님 앞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계신 곳의 지붕을 벗겨 내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침상에 뉘어서 내려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어떻게 하실까요?
또한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바로 예수님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즉 예수님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도 그렇게 빨리 세상에 퍼졌습니다. 많은 이들은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그분의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 그분이 무슨 말을 하는지 꼬집으려고 벼르려고 온 사람들…,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기에 더 이상 사람들이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문 앞까지 빈 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고, 하느님 나라를 알리시니,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나 또한 주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말씀에 갈증을 느껴 주님께로 모여왔으면 좋겠습니다. 성당에 들어갈 자리조차 없을 정도로 그렇게 주님께로 향했으면 좋겠습니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중풍 걸린 사람의 가족인지 아니면 친구들인지 모르겠지만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예수님께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만져주시거나, 한 말씀만 하시면 병이 낫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지붕을 벗긴다는 것은 우리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나 당시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를 감안하면 납득이 갑니다. 흔히 방 한 칸에 흙벽을 쳤는데 방바닥은 널찍하지만 흙벽은 올라갈수록 좁아져서 지붕 면적이래야 두 평방미터 남짓 했습니다. 밑은 넓고 위는 보은 나지막한 굴뚝같은 집입니다. 지붕에는 흔히 나무막대기를 걸쳐놓고 나뭇가지나 갈대 같은 것을 깔았습니다. 그러니 쉽게 벗길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옥외에는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중풍병자를 내려 보내는 사람들의 믿음도 대단합니다. 내 믿음 또한 그런 믿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서 믿음을 보이고, 다른 이의 구원을 위해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삶. 그 삶이 내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병자의 치유와 죄의 용서는 서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유대의 사고방식에는 인과적 연관성이 있는데, 그들은 위중한 병을 “죄의 결과”로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의 말씀을 하실 때,맨 먼저 악의 보다 깊은 뿌리가 제거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중풍병자를 고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다면 죄의 용서는 말할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얘야!”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아들이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 안에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말씀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서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즉 죄의 용서에 대한 부분인데, 죄의 용서는 7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니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릅니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잘못된 생각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그들이 학수고대한 메시아나 인자조차 사죄를 선언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기껏해야 죄인들을 멸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는 범죄 하지 않도록 선도할 임무를 띠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잘못된 생각은 편견을 만들고, 편협하게 생각하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말에서 결국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주시겠는가?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둘 다 쉽지 않습니다. 죄의 용서는 하느님의 자비에서 오는 것이니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고, 기적적 치유는 하느님의 전능에서 오는 것이니 그것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결과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면에서 보면, 중풍 병자에게 걸으라고 하기보다는 “네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 왜냐하면 돌아가서 그 말씀대로 죄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명령을 했다면, 그 명령자는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를 보여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즉 당신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즉 당신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는 것을 보고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알아 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말씀하시면서 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죄를 용서받았다”는 말과 “일어나 걸어 가거라”하는 이 두 가지 말을 같은 사람, 즉 예수님께서 하셨기에 체험할 수 있는 중풍의 치유가 이루어졌다면 체험할 수 없는 죄의 용서도 증명되는 것입니다.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그러자 병자는 일어나 곧 침상을 들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모든 이들이 넋을 잃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눈 생기고 처음 보는 일, 귀 생기고 처음 듣는 말씀. 그런데 사실 그런 일들은 지금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일, 지위와 지적수준과 나이를 초월하여 만나는 신자들의 모습, 아주 먼 지역에서 성당까지 걸어오는 사람들. 이런 일들이 바로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놀라운 일들입니다. 그리고 그 일들은 오늘도 내일도 일어날 것입니다. 내가 볼 눈만 있다면…,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행동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남을 치유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남의 아픔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2. 말씀 한마디로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는 일어나 요를 걷어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중요합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예수님 앞에 까지 데려다 준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예수님께로 데려다 주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사람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습니까?
4.공지사항
1. 학교 생활 잘하기 2. 한 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묵주기도 하기 3. 셀 대회 준비 잘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연중 제 7주일
탈리다 쿰
“더 멋진 학생회를 위하여“
주요 실천 사항 :
① 하루에 3번 성호경 긋기 ② 미사, 셀에 참석하기
중풍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
1. 말씀읽기: 마르코 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인지, 가족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병자를 데리고 예수님 앞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예수님 앞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계신 곳의 지붕을 벗겨 내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침상에 뉘어서 내려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어떻게 하실까요?
또한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바로 예수님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즉 예수님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도 그렇게 빨리 세상에 퍼졌습니다. 많은 이들은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그분의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 그분이 무슨 말을 하는지 꼬집으려고 벼르려고 온 사람들…,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기에 더 이상 사람들이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문 앞까지 빈 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시고, 하느님 나라를 알리시니,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나 또한 주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말씀에 갈증을 느껴 주님께로 모여왔으면 좋겠습니다. 성당에 들어갈 자리조차 없을 정도로 그렇게 주님께로 향했으면 좋겠습니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중풍 걸린 사람의 가족인지 아니면 친구들인지 모르겠지만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예수님께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만져주시거나, 한 말씀만 하시면 병이 낫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지붕을 벗긴다는 것은 우리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나 당시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를 감안하면 납득이 갑니다. 흔히 방 한 칸에 흙벽을 쳤는데 방바닥은 널찍하지만 흙벽은 올라갈수록 좁아져서 지붕 면적이래야 두 평방미터 남짓 했습니다. 밑은 넓고 위는 보은 나지막한 굴뚝같은 집입니다. 지붕에는 흔히 나무막대기를 걸쳐놓고 나뭇가지나 갈대 같은 것을 깔았습니다. 그러니 쉽게 벗길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옥외에는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중풍병자를 내려 보내는 사람들의 믿음도 대단합니다. 내 믿음 또한 그런 믿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서 믿음을 보이고, 다른 이의 구원을 위해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삶. 그 삶이 내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병자의 치유와 죄의 용서는 서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유대의 사고방식에는 인과적 연관성이 있는데, 그들은 위중한 병을 “죄의 결과”로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의 말씀을 하실 때,맨 먼저 악의 보다 깊은 뿌리가 제거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중풍병자를 고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다면 죄의 용서는 말할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얘야!”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아들이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 안에서 예수님께서 얼마나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말씀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서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즉 죄의 용서에 대한 부분인데, 죄의 용서는 7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니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릅니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잘못된 생각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그들이 학수고대한 메시아나 인자조차 사죄를 선언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기껏해야 죄인들을 멸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는 범죄 하지 않도록 선도할 임무를 띠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잘못된 생각은 편견을 만들고, 편협하게 생각하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말에서 결국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주시겠는가?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둘 다 쉽지 않습니다. 죄의 용서는 하느님의 자비에서 오는 것이니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고, 기적적 치유는 하느님의 전능에서 오는 것이니 그것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결과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면에서 보면, 중풍 병자에게 걸으라고 하기보다는 “네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 왜냐하면 돌아가서 그 말씀대로 죄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명령을 했다면, 그 명령자는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를 보여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즉 당신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즉 당신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는 것을 보고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알아 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말씀하시면서 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죄를 용서받았다”는 말과 “일어나 걸어 가거라”하는 이 두 가지 말을 같은 사람, 즉 예수님께서 하셨기에 체험할 수 있는 중풍의 치유가 이루어졌다면 체험할 수 없는 죄의 용서도 증명되는 것입니다.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그러자 병자는 일어나 곧 침상을 들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모든 이들이 넋을 잃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눈 생기고 처음 보는 일, 귀 생기고 처음 듣는 말씀. 그런데 사실 그런 일들은 지금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일, 지위와 지적수준과 나이를 초월하여 만나는 신자들의 모습, 아주 먼 지역에서 성당까지 걸어오는 사람들. 이런 일들이 바로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놀라운 일들입니다. 그리고 그 일들은 오늘도 내일도 일어날 것입니다. 내가 볼 눈만 있다면…,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행동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남을 치유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남의 아픔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2. 말씀 한마디로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는 일어나 요를 걷어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중요합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예수님 앞에 까지 데려다 준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예수님께로 데려다 주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사람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습니까?
4.공지사항
1. 학교 생활 잘하기 2. 한 주일에 적어도 두 번은 묵주기도 하기 3. 셀 대회 준비 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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