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부활제 4주일 성소주일 셀모임자료: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1.말씀읽기: 요한 10,27-30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신 대로 아버지로부터 왔으며 아버지를 대신하여 말씀하신다는 것을 되풀이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의 맞지 않는 대답을 하는 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피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유다인들을 실망시키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전도사업에 방해될지 모르는 어떤 소문도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유다인들이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메시아 상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메시아상은 외국인 억압자들을 전복시킬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구세주의 상이였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하는 메시아상은 유다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윤곽이 잡힙니다. 다윗 왕정시대 초기에는 기름 부음 받은 왕들은 하느님이 백성에게 보내 주신 구세주였습니다. 후에 가서 신통치 않은 왕들이 그들을 다스리게 되자 다윗 왕 같은 왕이 오실 것을 열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배 이후에 다윗 가문이 더 이상 권좌에 머물러 있지 않게 되자, 유다인들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하기 위해 보내신 가장 위대한 왕을 고대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메시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 승리를 거두어 주셨던 것 같이 유다인 역사 안에서도 개입하여 주실 것이라는 것을 고대하였습니다. 세속적이고 정치적이며 민주적인 색채를 띄우게 된 이러한 메시아의 개념은 항상 그들을 붙어 다녔으며, 이것이 유다인 사고방식 속에 발전되어 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 개념이 예수님께서 생존하시던 시대에만 변질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개념의 참된 의미를 찾아 주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대를 새롭고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려서, 마침내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맛보지 못하였던 새 세상을 소개하려고 몸부림치셨던 것입니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릅니다. 목자는 양들을 하나하나 다 식별하며, 양들도 목자의 음성과 모습을 알아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관계, 이것이 착한 목자와 양들의 관계인 것입니다.




비 가 와서 여러 목자가 한 동굴에 자기 양들을 데리고 들어가도 나올 때 한 목자가 먼저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 그 목자의 양들만 따라 나옵니다. 어느  신부님이 그들과 함께 목자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동지방의 “와디”는 평상시에는 메말라 있다가 비가 오면 커다란 강을 이룹니다. 그래서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동굴 속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런데 동굴 속으로 피신을 하면 여러 목자의 양들이 섞이게 되는데 그 신부님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당신들의 양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목자들은 웃었습니다.


“비가 그치면 보십시오.”


비가 그치자 목자들이 하나 둘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목자가 노래를 부르며 나가자 그 목자의 양들만 따라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부님이 하도 신기해서 그 노래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그가 노래를 부르고 나갔는데 돌아보니 한 마리도 안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있습니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또한 양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양들을 위해서 몸을 바쳐 희생하는 목자야말로 참 목자인 것입니다. 이 목자는 또 모든 양들이 안심하고 드나들 수 있는 문이며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하는 자입니다. 반면 도둑은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며,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는 사람입니다.




그 당시 백성의 지도자들 즉, 대사제, 바리사이파, 율법학자 등이 목자로 불렸지만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목자 없는 양 떼로 바라보십니다. 목자들이 있기는 하였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참된 목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약성서의 율법은 600여개나 되고, 조상 전래의 규정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대중은 그것을 다 알지도 못하고, 더구나 모조리 지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인 지도자들의 눈에는 일반 대중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부터 목자들과 대중 사이에 장벽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모두 다 도둑이며 강도이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참된 목자가 있습니다. 자기 양들을 위해서, 아니 나를 위해서 수난과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신 참된 목자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된 우리 모두는 그분이 보여주신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길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양 우리에서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양들은 아들 안에 있는 동시에 아버지의 전능하신 손 안에도 있는 것입니다. 양들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 아버지는 아들과 협력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아십니다.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목자가 자기 양을 아는 것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어느 날, 번개와 벼락이 쳐 깻묵을 보관하고 있던 헛간에 불이 붙었다. 양떼들이 깻묵 타는 고소한 냄새를 맡고 달려와 빨갛게 불타고 있는 깻묵더미 앞으로 자꾸만 가려고 하였다. 이를 본 목자는 급히 달려가 양떼들을 불구덩이에서 떼어놓기 위하여 작대기를 휘둘러 댔다. 한 무리를 떼어 놓으면 다른 무리가 불을 향해서 달려들고, 이러는 가운데 다행히 불길이 잡혀 양떼들은 살긴 살았지만 뜨거운 불기운 때문에 얼마나 기진했던지 몇 주일을 빌빌대었다.




한 사람이 물었다


“양들이 불구덩이 속으로 달려갈 때 화나지 않으셨습니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목자는 대답을 했다.


“양들의 성격이 원래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양들이 깻묵냄새에 취해서 불속으로 뛰어들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막는 것뿐이지요. 깻묵창고에 또 불이나면 양들은 또 불속으로 뛰어들려 할 것입니다.”


깻묵냄새에 취해서 죽는 줄도 모르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양들과 같이 나 또한 마찬가지로 별것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뛰어듭니다. 나 죽는 줄도 모르고 뛰어듭니다. 하지만 목자가 양들을 돌보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나를 돌봐 주십니다. 비록 내가 지금 죄를 짓고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나를 아시고 나를 뽑으시고, 나를 사랑으로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목자이신 예수님의 우리 안에 있다면 그분께서는 언제나 나를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목숨까지 내 놓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유다인들에게 아버지와의 일치의 관계를 강조하시며 결론을 지으십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시작하신 생명을 주는 일을 계속하기 위하여 아버지께로부터 파견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아버지가 파견하신 분이십니다.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으시고, 심판하고, 생명을 주고, 가르치시는 모든 권한을 아버지로부터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려 이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의 일을 수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일을 보고 그대로 하실 뿐입니다. 두 분의 활동은 서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아버지 하느님은 하나이십니다. 그렇다면 나와 예수님과는 어떻습니까? 서로 하나씩 아닙니까? 그리고 주님 안에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서로가 하나씩은 아닙니까? 함께 예수님의 일을 하고, 함께 예수님처럼 생각한다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이 말씀을 또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돌을 집어 들어서 치려고 합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서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2. 믿지 않는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 “당신은 누구십니까?”하면서 아직도 질문을 던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4. 공지사항


1. 친구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 가져 주기 2. 학교 생활 잘하기


3. 공부 열심히 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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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부활제 4주일 성소주일 셀모임자료: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1.말씀읽기: 요한 10,27-30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신 대로 아버지로부터 왔으며 아버지를 대신하여 말씀하신다는 것을 되풀이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로서의 맞지 않는 대답을 하는 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피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유다인들을 실망시키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전도사업에 방해될지 모르는 어떤 소문도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유다인들이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메시아 상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메시아상은 외국인 억압자들을 전복시킬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구세주의 상이였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하는 메시아상은 유다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윤곽이 잡힙니다. 다윗 왕정시대 초기에는 기름 부음 받은 왕들은 하느님이 백성에게 보내 주신 구세주였습니다. 후에 가서 신통치 않은 왕들이 그들을 다스리게 되자 다윗 왕 같은 왕이 오실 것을 열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배 이후에 다윗 가문이 더 이상 권좌에 머물러 있지 않게 되자, 유다인들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하기 위해 보내신 가장 위대한 왕을 고대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메시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워 승리를 거두어 주셨던 것 같이 유다인 역사 안에서도 개입하여 주실 것이라는 것을 고대하였습니다. 세속적이고 정치적이며 민주적인 색채를 띄우게 된 이러한 메시아의 개념은 항상 그들을 붙어 다녔으며, 이것이 유다인 사고방식 속에 발전되어 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 개념이 예수님께서 생존하시던 시대에만 변질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개념의 참된 의미를 찾아 주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대를 새롭고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려서, 마침내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맛보지 못하였던 새 세상을 소개하려고 몸부림치셨던 것입니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릅니다. 목자는 양들을 하나하나 다 식별하며, 양들도 목자의 음성과 모습을 알아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관계, 이것이 착한 목자와 양들의 관계인 것입니다.


    비 가 와서 여러 목자가 한 동굴에 자기 양들을 데리고 들어가도 나올 때 한 목자가 먼저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 그 목자의 양들만 따라 나옵니다. 어느  신부님이 그들과 함께 목자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동지방의 “와디”는 평상시에는 메말라 있다가 비가 오면 커다란 강을 이룹니다. 그래서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동굴 속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런데 동굴 속으로 피신을 하면 여러 목자의 양들이 섞이게 되는데 그 신부님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당신들의 양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목자들은 웃었습니다.

    “비가 그치면 보십시오.”

    비가 그치자 목자들이 하나 둘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목자가 노래를 부르며 나가자 그 목자의 양들만 따라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부님이 하도 신기해서 그 노래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그가 노래를 부르고 나갔는데 돌아보니 한 마리도 안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있습니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또한 양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양들을 위해서 몸을 바쳐 희생하는 목자야말로 참 목자인 것입니다. 이 목자는 또 모든 양들이 안심하고 드나들 수 있는 문이며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하는 자입니다. 반면 도둑은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며,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는 사람입니다.


    그 당시 백성의 지도자들 즉, 대사제, 바리사이파, 율법학자 등이 목자로 불렸지만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목자 없는 양 떼로 바라보십니다. 목자들이 있기는 하였지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참된 목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약성서의 율법은 600여개나 되고, 조상 전래의 규정은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대중은 그것을 다 알지도 못하고, 더구나 모조리 지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인 지도자들의 눈에는 일반 대중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부터 목자들과 대중 사이에 장벽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모두 다 도둑이며 강도이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참된 목자가 있습니다. 자기 양들을 위해서, 아니 나를 위해서 수난과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신 참된 목자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된 우리 모두는 그분이 보여주신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길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양 우리에서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양들은 아들 안에 있는 동시에 아버지의 전능하신 손 안에도 있는 것입니다. 양들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 아버지는 아들과 협력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아십니다.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목자가 자기 양을 아는 것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어느 날, 번개와 벼락이 쳐 깻묵을 보관하고 있던 헛간에 불이 붙었다. 양떼들이 깻묵 타는 고소한 냄새를 맡고 달려와 빨갛게 불타고 있는 깻묵더미 앞으로 자꾸만 가려고 하였다. 이를 본 목자는 급히 달려가 양떼들을 불구덩이에서 떼어놓기 위하여 작대기를 휘둘러 댔다. 한 무리를 떼어 놓으면 다른 무리가 불을 향해서 달려들고, 이러는 가운데 다행히 불길이 잡혀 양떼들은 살긴 살았지만 뜨거운 불기운 때문에 얼마나 기진했던지 몇 주일을 빌빌대었다.


    한 사람이 물었다

    “양들이 불구덩이 속으로 달려갈 때 화나지 않으셨습니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목자는 대답을 했다.

    “양들의 성격이 원래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양들이 깻묵냄새에 취해서 불속으로 뛰어들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막는 것뿐이지요. 깻묵창고에 또 불이나면 양들은 또 불속으로 뛰어들려 할 것입니다.”

    깻묵냄새에 취해서 죽는 줄도 모르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양들과 같이 나 또한 마찬가지로 별것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뛰어듭니다. 나 죽는 줄도 모르고 뛰어듭니다. 하지만 목자가 양들을 돌보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나를 돌봐 주십니다. 비록 내가 지금 죄를 짓고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나를 아시고 나를 뽑으시고, 나를 사랑으로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목자이신 예수님의 우리 안에 있다면 그분께서는 언제나 나를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목숨까지 내 놓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유다인들에게 아버지와의 일치의 관계를 강조하시며 결론을 지으십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시작하신 생명을 주는 일을 계속하기 위하여 아버지께로부터 파견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아버지가 파견하신 분이십니다.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으시고, 심판하고, 생명을 주고, 가르치시는 모든 권한을 아버지로부터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려 이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의 일을 수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일을 보고 그대로 하실 뿐입니다. 두 분의 활동은 서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아버지 하느님은 하나이십니다. 그렇다면 나와 예수님과는 어떻습니까? 서로 하나씩 아닙니까? 그리고 주님 안에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서로가 하나씩은 아닙니까? 함께 예수님의 일을 하고, 함께 예수님처럼 생각한다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이 말씀을 또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돌을 집어 들어서 치려고 합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서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2. 믿지 않는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 “당신은 누구십니까?”하면서 아직도 질문을 던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4. 공지사항

    1. 친구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 가져 주기 2. 학교 생활 잘하기

    3. 공부 열심히 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2. user#0 님의 말: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성소주일입니다. 신학교에서는 청소주일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학교를 방문해서 수많은 학생들이 여기저기에 휴지나 쓰레기를 버리고 가니 “학사님”들이 저녁에 그것을 치우려면 많은 고생을 한답니다. 그래서 성소주일을 청소주일이라고 한답니다. 신학교에 방문하시는 학생들은 꼭 휴지를 아무데나 버리지 말고 쓰레기통이나 혹은 자신의 가방에 넣어서 오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성소주일이고 착한 목자 주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목자이시지요. 성소라는 것은 거룩한 부르심이라는 뜻입니다. 왜 거룩한 부르심이냐면 하느님께서 부르시기에 거룩한 부르심이고, 또한 이 세상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도록 부르시기에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부르심 받은 사람처럼 살아가야 하기에 또한 거룩한 소명이기도 합니다.

     우리 친구들 중에 이 다음에 커서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되시고 싶으신 분들 계세요?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되시고 싶은 친구들은 이렇게 기도하세요. “예수님! 제가 신부님이 되고 싶어요. 부족하지만 저를 이끌어 주시어 사제가 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게 해 주세요. 그래서 지금부터 열심히 기도하고, 착한 일 많이 하겠습니다. 예수님! 도와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시면 예수님께서는 우리 친구들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신부님이 되면 멋지답니다.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랑 함께 어울려서 미사도 할 수 있고, 교리도 할 수 있고, 놀이도 할 수 있답니다. 우리 친구들도 멋진 신부님 되시기 위해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양과 알아듣지 못하는 무리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십니다. 양은 우리들이고, 목자는 예수님이시랍니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따릅니다. 목자는 양들을 하나하나 다 식별하며, 양들도 목자의 음성과 모습을 알아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관계, 이것이 착한 목자와 양들의 관계인 것입니다.


    문제 1: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이유는?

    ① 목자가 양들을 사랑하고, 보살펴 주었기 때문에

    ② 목자가 양들을 푸른 풀밭으로 인도해 주기 때문에

    ③ 알아두면 도움 될까봐^^


    비가 와서 여러 목자가 한 동굴에 자기 양들을 데리고 들어가도 나올 때 한 목자가 먼저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 그 목자의 양들만 따라 나옵니다. 어느  신부님이 그들과 함께 목자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동지방의 “와디”는 평상시에는 메말라 있다가 비가 오면 커다란 강을 이룹니다. 그래서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동굴 속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런데 동굴 속으로 피신을 하면 여러 목자의 양들이 섞이게 되는데 그 신부님이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당신들의 양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목자들은 웃었습니다.

    “비가 그치면 보십시오.”

    비가 그치자 목자들이 하나 둘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목자가 노래를 부르며 나가자 그 목자의 양들만 따라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부님이 하도 신기해서 그 노래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그가 노래를 부르고 나갔는데 돌아보니 한 마리도 안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있습니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또한 양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양들을 위해서 몸을 바쳐 희생하는 목자야말로 참 목자인 것입니다. 이 목자는 또 모든 양들이 안심하고 드나들 수 있는 문이며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하는 자입니다. 반면 도둑은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며,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는 사람입니다.


    문제 3: 그 당시 이스라엘의 목자들(지도자)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을 “목자없는 양” 같이 측은하게 여기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참된 목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즉 백성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② 율법은 600여개의  법조항이 있었는데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백성들은 율법학자들이나 백성의 지도자들은 죄인 취급 했으며,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③ 백성의 지도자들은 자신들만을 생각했기에

    ④ 백성들을 너무도 친절하고 사랑으로 대해줘서(설마~).


    그러니 백성의 지도자들과 백성들 사이에 장벽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모두 다 도둑이며 강도이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참된 목자가 있습니다. 자기 양들을 위해서, 아니 나를 위해서 수난과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신 참된 목자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된 우리 모두는 그분이 보여주신 사랑과 희생과 봉사의 길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양 우리에서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29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양들은 아들 안에 있는 동시에 아버지의 전능하신 손 안에도 있는 것입니다. 양들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 아버지는 아들과 협력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아십니다.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목자가 자기 양을 아는 것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어느 날, 번개와 벼락이 쳐 깻묵을 보관하고 있던 헛간에 불이 붙었다. 양떼들이 깻묵 타는 고소한 냄새를 맡고 달려와 빨갛게 불타고 있는 깻묵더미 앞으로 자꾸만 가려고 하였다. 이를 본 목자는 급히 달려가 양떼들을 불구덩이에서 떼어놓기 위하여 작대기를 휘둘러 댔다. 한 무리를 떼어 놓으면 다른 무리가 불을 향해서 달려들고, 이러는 가운데 다행히 불길이 잡혀 양떼들은 살긴 살았지만 뜨거운 불기운 때문에 얼마나 기진했던지 몇 주일을 빌빌대었다.


    한 사람이 물었다.

    “양들이 불구덩이 속으로 달려갈 때 화나지 않으셨습니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목자는 대답을 했다.


    “양들의 성격이 원래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양들이 깻묵냄새에 취해서 불속으로 뛰어들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막는 것뿐이지요. 깻묵창고에 또 불이나면 양들은 또 불속으로 뛰어들려 할 것입니다.”


    깻묵냄새에 취해서 죽는 줄도 모르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양들과 같이 나 또한 마찬가지로 별것도 아닌 것에 목숨을 걸고 뛰어듭니다. 나 죽는 줄도 모르고 뛰어듭니다. 하지만 목자가 양들을 돌보듯이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나를 돌봐 주십니다. 비록 내가 지금 죄를 짓고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결코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나를 아시고 나를 뽑으시고, 나를 사랑으로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목자이신 예수님의 우리 안에 있다면 그분께서는 언제나 나를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목숨까지 내 놓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아버지 하느님의 뜻 = 예수님의 삶

    아버지 하느님

    아들 예수님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아들 예수님을 파견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인간으로 오심

    아들 예수님께 모든 권한을 주심

    모든 권한을 아버지 하느님께 받으심

    (심판하시고, 생명을주시고, 가르치시는모든 권한)


    문제 4: 예수님과 아버지 하느님은 하나이십니다. 그렇다면 나와 예수님과는 어떻습니까? 내가 예수님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②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어야 한다.

    ③ 성경을 읽고, 미사에 자주 참례해야 한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서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2.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4. 공지사항

    1. 친구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 가져 주기 2. 학교 생활 잘하기

    3. 공부 열심히 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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