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 15주일 셀모임자료: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참된 이웃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1.말씀읽기:루카10,25-37


알고 있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 모두 행동으로 옮기는 신앙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 물음은 신자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물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의 질문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는데 있습니다. 이런 질문 자세는 좋지 않습니다.^*^


 나도 매 순간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정성스럽게 답을 해 줘도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답만을 들으려고 하는 나는 질문할 자세가 안 됐고, 들을 자세가 안 된 사람입니다. 나는…,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밝혀 주고 있는 율법으로 대답을 하십니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이제 그 율법학자가 대답할 차례입니다.  그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대해서 답을 했습니다. 아마 이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율법학자 하나가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그르쳐 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신명기 6장 4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예수님은 참으로 멋진 분이십니다. 그가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서 질문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를 칭찬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실천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행동이 옳다면 칭찬을 해주고, 그를 본받으려 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이제 율법학자는 이웃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이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이스라엘에 사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레위19,34). 유대교에서 이방인에 대한 이 사랑은 한 분이신 하느님께 대한이스라엘의 신앙을 받아들이고 할례를 포함하여 율법을 준수하는 완전한 개종자들에게 한정되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반대파의 사람들도 이 사랑의 계명의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이 이야기는 꾸민 이야기이지만 유다인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가는 길은 강도들의 습격이 빈번했습니다. 그는 그냥 어떤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종교도 모르고, 어디 사람인지도 모르고. 좌우지간 이 사람은 반쯤 죽었습니다.


 내려갔다는 표현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예루살렘은 800미터 높이에 있고  예리코는 해발 150미터의 땅이니 내려간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왜 이 사제가 이 곳을 지나갔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성전 봉사의 기간을 마치고, 사제의 동네인 예리코로 돌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제라는 직책으로 보아 이 불쌍한 부상자에게 당연히 동정을 가지고 돌보아 주어야 할 터인데 그는 냉담하게 못 본 체 하고 지나가 버립니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사제와 함께 신명기에 있는 “너희는 동족의 나귀나 소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모른체해도 안된다. 반드시 동족을 도와 거들어 일으켜 주어야 한다.”(신명22,4)고 한 가르침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지나쳐 버립니다.




아마 이들은 이 사람이 반쯤 죽은 것이 아니라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사람이 죽었을 경우 부정을 타지 않도록 그 시체를 만지지 않았습니다(레위21,1). 아니면 그들은 그들 자신이 강도들의 습격을 받을까 두려워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단지 시간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서일수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들은 쓰러져 있는 사람보다는 자신들을 더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데 모범이 되어야 할 그들이었지만 그래서 그것이 이웃사랑으로 드러나야 했지만 신앙 따로, 삶 따로의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아예 상종하지도 않았고 서로 증오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인은 그를 가엾게 여깁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러합니다. 쓰러져 있는 사람을 그냥 놔두고 지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그를 돌봐 줍니다. 신앙인이라면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를 데리고 병원까지 달려가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그는 강도 맞은 사람에게 다가가 상처를 치료하여 여인숙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강도들은 그를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두들겨 맞아서 거의 죽게 된 상태입니다.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비록 유다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살았지만 초주검이 된 유다인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상처를 치료하고,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랑입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여관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고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액수로는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쓰러진 사람을 구제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데에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조금만 내어 놓으면 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의 마음입니다.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이제 율법학자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세 사람 중 강도 맞은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이 누구냐고. 이웃은 내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만일 나에게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그와 나와의 관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국적이나 종교, 당파, 직업, 지위 등이 아무런 중요성을 갖지 못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 이웃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동정을 호소할 때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그런데 이 율법교사는 자존심이 있어서 그런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답을 합니다. 얼마나 마음이 닫혀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얼굴이 후끈 달아오릅니다. 나에게 자비를 청하는 이들을 애써 외면하고 돌아선 나였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자비를 청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을 때의 기쁨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외면했던 기억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봅시다.




2. 나는 어떤 사람의 도움 요청을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의 도움 요청을 외면합니까?




3. 공지사항


1. 여름 신앙학교에 꼭 참례하기. 2. 무더위를 잘 보내기. 3. 기도하기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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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 15주일 셀모임자료: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참된 이웃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1.말씀읽기:루카10,25-37

    알고 있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 모두 행동으로 옮기는 신앙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 물음은 신자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물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의 질문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는데 있습니다. 이런 질문 자세는 좋지 않습니다.^*^

     나도 매 순간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정성스럽게 답을 해 줘도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답만을 들으려고 하는 나는 질문할 자세가 안 됐고, 들을 자세가 안 된 사람입니다. 나는…,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밝혀 주고 있는 율법으로 대답을 하십니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이제 그 율법학자가 대답할 차례입니다.  그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대해서 답을 했습니다. 아마 이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율법학자 하나가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그르쳐 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신명기 6장 4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예수님은 참으로 멋진 분이십니다. 그가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서 질문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를 칭찬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실천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행동이 옳다면 칭찬을 해주고, 그를 본받으려 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이제 율법학자는 이웃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이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이스라엘에 사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레위19,34). 유대교에서 이방인에 대한 이 사랑은 한 분이신 하느님께 대한이스라엘의 신앙을 받아들이고 할례를 포함하여 율법을 준수하는 완전한 개종자들에게 한정되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반대파의 사람들도 이 사랑의 계명의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이 이야기는 꾸민 이야기이지만 유다인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가는 길은 강도들의 습격이 빈번했습니다. 그는 그냥 어떤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종교도 모르고, 어디 사람인지도 모르고. 좌우지간 이 사람은 반쯤 죽었습니다.

     내려갔다는 표현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예루살렘은 800미터 높이에 있고  예리코는 해발 150미터의 땅이니 내려간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왜 이 사제가 이 곳을 지나갔는지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성전 봉사의 기간을 마치고, 사제의 동네인 예리코로 돌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제라는 직책으로 보아 이 불쌍한 부상자에게 당연히 동정을 가지고 돌보아 주어야 할 터인데 그는 냉담하게 못 본 체 하고 지나가 버립니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사제와 함께 신명기에 있는 “너희는 동족의 나귀나 소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모른체해도 안된다. 반드시 동족을 도와 거들어 일으켜 주어야 한다.”(신명22,4)고 한 가르침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지나쳐 버립니다.


    아마 이들은 이 사람이 반쯤 죽은 것이 아니라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사람이 죽었을 경우 부정을 타지 않도록 그 시체를 만지지 않았습니다(레위21,1). 아니면 그들은 그들 자신이 강도들의 습격을 받을까 두려워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단지 시간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서일수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들은 쓰러져 있는 사람보다는 자신들을 더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데 모범이 되어야 할 그들이었지만 그래서 그것이 이웃사랑으로 드러나야 했지만 신앙 따로, 삶 따로의 생활이었던 것입니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아예 상종하지도 않았고 서로 증오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인은 그를 가엾게 여깁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러합니다. 쓰러져 있는 사람을 그냥 놔두고 지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그를 돌봐 줍니다. 신앙인이라면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를 데리고 병원까지 달려가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그는 강도 맞은 사람에게 다가가 상처를 치료하여 여인숙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강도들은 그를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두들겨 맞아서 거의 죽게 된 상태입니다.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비록 유다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살았지만 초주검이 된 유다인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상처를 치료하고,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랑입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여관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고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주겠다고 했습니다. 액수로는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쓰러진 사람을 구제하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데에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조금만 내어 놓으면 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의 마음입니다.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이제 율법학자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세 사람 중 강도 맞은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이 누구냐고. 이웃은 내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만일 나에게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그와 나와의 관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국적이나 종교, 당파, 직업, 지위 등이 아무런 중요성을 갖지 못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 이웃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동정을 호소할 때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그런데 이 율법교사는 자존심이 있어서 그런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이라고 답을 합니다. 얼마나 마음이 닫혀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얼굴이 후끈 달아오릅니다. 나에게 자비를 청하는 이들을 애써 외면하고 돌아선 나였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자비를 청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을 때의 기쁨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외면했던 기억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봅시다.


    2. 나는 어떤 사람의 도움 요청을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의 도움 요청을 외면합니까?


    3. 공지사항

    1. 여름 신앙학교에 꼭 참례하기. 2. 무더위를 잘 보내기. 3. 기도하기


    4. 말씀으로 기도하기

  2. user#0 님의 말: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1.말씀읽기:루카10,25-37

    2. 말씀연구

    어린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한주간이 벌써 갔어요. 이제 방학이 살금살금 우리 앞으로 걸어오고 있답니다. 좋은 일들, 보람된 일들 많이 계획해서 실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친구들은 ①알고만 있는 사람이 좋아요? ②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좋아요?

    물론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좋겠지요. 그런데 말은 쉬운데 사실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문제 1: 다음 중에서 옳은 행동은 어떤 행동입니까?

    ① 수진이가 복음을 써오고, 활동을 많이 보고하자 건호가 수진이를 칭찬하면서 본받겠다고 다짐했다.

    ② 종숙이는 종선이에게 과자를 나눠 주면서 사이좋게 지내자고 했다.

    ③ 민철이는 처음 성당에 나온 친구와 미사책을 같이 보았고, 다음 주에도 또 나오라고 말하면서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에 전화를 걸어서 성당에서 보자고 약속했다.

    ④ 경민이는 무거운 것을 들고 가는 할머니의 짐을 택시 타는 곳 까지 들어다 드렸다.


    우리 모두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어린이가 되려고 노력합시다.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이 물음은 신자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물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의 질문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는데 있습니다. 이런 질문 자세는 좋지 않습니다.^*^

    우리 친구들도 “내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생각하면서 “예수님 보시기에 멋진 모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문제 2: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에게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하고 물으십니다. 이 율법학자는 어떻게 대답을 했습니까?

    ①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② 예수님! 제가 질문했잖아유. 그러니께 예수님께서 대답하셔야지유.^*^


    아마 이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율법학자 하나가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그르쳐 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신명기 6장 4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예수님은 참으로 멋진 분이십니다. 그가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서 질문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를 칭찬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실천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행동이 옳다면 칭찬을 해주고, 그를 본받으려 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실천입니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문제 3: 율법 교사는 예수님께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하고 묻습니다. 율법교사가 생각하는 이웃은 어떤 사람일까요?

    ① 율법에 따라서 이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이스라엘에 사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레위19,34). ② 유대교에서 이방인에 대한 이 사랑은 율법을 준수하는 완전한 개종자들에게 한정되었습니다.

    ③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④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반대파의 사람들도 이 사랑의 계명의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문제 4:옛날에는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는 길은 강도들의 습격이 빈번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들을 만나서 거의 반쯤 죽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제와 레위인이 그를 보고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① 사랑을 실천할 마음이 없어서

    ② 이 사람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죽은 사람을 만짐을 통해 부정을 타지 않도록.

    ③ 그들도 강도들의 습격을 받을까 두려워서

    ④ 시력이 나빠서 안보였음.^*^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들은 쓰러져 있는 사람보다는 자신들을 더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데 모범이 되어야 할 그들이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문제 5: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를 만나 반쯤 죽은 사람에게 왜 자비를 베풀었을까요?

    ① 알고 있는 사람이라. ②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③ 혹시 누가 “착한 어린이 상”을 줄까봐.


    사마리아 사람들은 늘 유다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민족들과 어울려 살았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순수한 혈통과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으스대면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이 사람 정말 불쌍하다. 내가 도와줘야지!”라고만 생각한 것입니다.

    나도 계산하지 말고, 친구를 도와줄 수 있는 어린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이웃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 나를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 하는 사람만이 이웃이 아닙니다.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바로 나의 이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잘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문제 6: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어주시면서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셨는데 이 율법교사는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① 사제와 레위인은 지나가고 자신들이 무시하고 있는 사마리아 사람이 자비를 베풀었는데,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너무 옹졸한 사람이예요.^*^

    ② 머리가 나빠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말을 까먹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우리도 그렇게 합시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도와 주었을까요? 아니면 외면했을까요?


    2. 나는 어떤 사람의 도움 요청을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의 도움 요청을 외면합니까?


    3. 공지사항

    1. 여름 신앙학교에 꼭 참례하기. 2. 무더위를 잘 보내기. 3. 기도하기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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