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 제 19주일;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신앙인의 공명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1. 말씀읽기:마태14,22-33 물 위를 걸으시다 (마르 6,45-52 ; 요한 6,16-21)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군중들의 헛된 생각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해 서둘러 제자들을 먼저 보냅니다. 그리고 풍랑에 시달리는 제자들을 보시고도 그냥 두셨다가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가십니다.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으십니다.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러 복음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여 건너편으로 보내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시니 무척 놀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분이야말로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으로 모시려고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알아차리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군중들의 생각에 동요되지 않기 위해 먼저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건너편으로 보내셨을 것입니다. 즉 군중들과 떼어 놓기 위해 출발을 재촉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잘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군중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찾고, 바로 앞의 것만을 생각합니다. 이들도 부활을 체험하게 되면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아이신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기도란 무엇인가? 언제 해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기도가 무엇인지, 언제 해야 하는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일을 마치신 다음에는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늘 아버지와 함께 하셨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과 군중을 먹이신 일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기도는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룬 다음에 그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처럼 일을 하기 전에, 일을 마친 다음에 기도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배가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다고 했는데 멀리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1스타디온은 185미터이니 제자들은 역풍을 만나서 고생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이야기 하면서 배에 올랐지만 좀 있다가 역풍을 만났을 때는 모든 것을 잊어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예수님께서 이것을 염두에 두신 것이 아닐까요? 분명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상황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산 위에서 기도하셨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상황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서 곧장 달려가지 않으십니다. 아마도 빵의 기적으로 인해 들떴던 그 마음들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그러셨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물위를 걸으시고, 바다마저 복종할 수밖에 없는 분이라는 것을…,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새벽 네 시 쯤에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새벽 네 시에 호수를 건널 배가 있을 리가 없고, 또 역풍이 부니 배를 운행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그리고 주머니엔 돈도 없었을 것이니 걸어가야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사공! 건너갑시다!”

“예수님! 심야할증에 역풍까지 부니 따따불입니다요!”

“나 돈 없는디!”

“저도 흙 퍼서 장사하는 것은 아닌디유! 무지 어려운 것 아시쥬?”

“어쩔 수 없군….그냥 걸어 가야쥐…”^*^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아버지 하느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 어떤 것도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성당에서 계획을 잡으면 비가 오다가도 그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소가 여의치 않으면 다른 장소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비가 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못할 정도로 비가 오지는 않습니다. 그저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밀고 나가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 주십니다.



또 폭우가 내리던 새벽, 새벽미사에 변함없이 참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비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오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오시는 분들…, 예수님께 물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 것처럼, 신앙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것도 예수님께로 향하는 내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마귀의 유혹입니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놀랄 만도 합니다. 호수 한 가운데서 사람을 만났으니. 그것도 배를 타고 온 사람이 아니라 물 위를 걸어오는 사람을 만났으니. 제자들이 겁쟁이라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니 놀라서 소리를 질러 대는 것입니다. 만일 나였다면 까무러졌을 것입니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렇게 놀란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안심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어두운 밤길에 두려움에 떨면서 걸어갈 때, 저 앞에서 사람이 나타나면 무척 당황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나타난 사람이 귀신이 아니라,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요한아! 나다!”라고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였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제자들은 그렇게 기뻤을 것입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이 말씀은 기도 중에 자주 듣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꼭 어려움이 밀려옵니다.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의욕을 꺾어 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확신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두려움 없이 밀고 나가면 됩니다. 나머지는 주님께서 알아서 해 주십니다.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베드로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주님이십니까? 그러시다면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비록 물이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를 가로 막았지만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로 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한 물 위를 걸어오신 전능을 보여주신 예수님께서는 자신 또한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표현된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명령하십시오.”라는 베드로 사도의 고백 안에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가 드러납니다. 말씀 한 마디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명령하십시오.”라는 베드로 사도의 말 안에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청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걸어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믿고서 물 위로 걸어갑니다. 예수님께 가는데 장애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분이 부르시면 나는 달려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 무엇이 앞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께로 가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예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입니다.



내가 만일 베드로 사도였다면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주님께로 갈 생각보다는 “예수님! 이 바람 좀 멈춰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을 것 같습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주님께로 가까이 가려고 하는 마음가짐을 주님께서는 반드시 이끌어 주심을 명심하고, 주님께 청합시다. “주님!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이 때 주님께서는 반드시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 오너라.”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베드로사도가 갑자기 두려움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믿음이 사라지자 그는 물 속으로 빠져 들고 맙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물 위를 걸으실 수 있으셨을까요? 몸을 가볍게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걸어가시고자 하셨고, 물이 알아서 예수님을 받쳐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가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함께 그 힘이 공명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결되니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은 예수님과 연결된 공명을 깨뜨리게 되고, 물 속으로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공명할 때,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처럼 할 수 있게 됩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도 공명합니다. 하지만 다른 마음을 품을 때 공명을 깨지고,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인들과 공명하려고 노력할 때, 나 또한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한 순간도 의심 없이 오롯이 주님께 믿음을 둔 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평상시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게 물 위를 걷는 중에 별의 별 생각 다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있어야 한 다는 것을 알았으니 내 안에 조금이라도 불신이 남아있지 않도록 몰아내고 믿음으로 채워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손을 붙잡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누가 있어 바다 한 가운데서 오롯한 믿음으로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의심을 안 품으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의심이 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맡겨 드립시다. 다른 생각을 하지 맙시다. 나머지는 주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입니다. 의심이 일어날 때 “주님! 제가 제 의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의심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의심을 몰아내주소서.”라고 기도합시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예수님께서 인성뿐만 아니라 신성까지도 가지고 계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제자들의 기쁨과 두려움은 얼마나 컸을까요? 이렇듯 크신 하느님의 아드님과 함께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헛된 것에 마음을 두지 맙시다. 그 헛된 것에 마음을 둘 때, 주님을 잊어먹게 됩니다. 또한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맙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주님께 온전히 맡겨 드립시다. 그렇게 해서 “네 믿음이 참으로 장하다.”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와 닿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 말씀이 왜 기쁨으로 와 닿고 있습니까?



② 예수님께서 나에게 물 위를 걸어오라고 하신다면 나는 예수님께로 갈 수 있을까요?



③ 내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의심이 들 때는 언제이고, 확고한 믿음이 생겨날 때는 언제입니까?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4. 공지사항

① 주님께 대한 올바른 믿음 가지기.

② 어려움에 처할 때도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고백하기

③ 주님과 공명하며, 형제자매들과 신앙안에서 공명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글은 카테고리: 가해(말씀과놀이,2), 말씀과 놀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가해 연중 제 19주일;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신앙인의 공명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1. 말씀읽기:마태14,22-33 물 위를 걸으시다 (마르 6,45-52 ; 요한 6,16-21)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군중들의 헛된 생각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해 서둘러 제자들을 먼저 보냅니다. 그리고 풍랑에 시달리는 제자들을 보시고도 그냥 두셨다가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다가가십니다.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으십니다.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러 복음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여 건너편으로 보내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시니 무척 놀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분이야말로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으로 모시려고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알아차리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군중들의 생각에 동요되지 않기 위해 먼저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건너편으로 보내셨을 것입니다. 즉 군중들과 떼어 놓기 위해 출발을 재촉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잘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군중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찾고, 바로 앞의 것만을 생각합니다. 이들도 부활을 체험하게 되면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아이신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기도란 무엇인가? 언제 해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기도가 무엇인지, 언제 해야 하는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일을 마치신 다음에는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늘 아버지와 함께 하셨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과 군중을 먹이신 일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기도는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룬 다음에 그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처럼 일을 하기 전에, 일을 마친 다음에 기도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배가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다고 했는데 멀리가지 못한 것 같습니다. 1스타디온은 185미터이니 제자들은 역풍을 만나서 고생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이야기 하면서 배에 올랐지만 좀 있다가 역풍을 만났을 때는 모든 것을 잊어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예수님께서 이것을 염두에 두신 것이 아닐까요? 분명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상황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산 위에서 기도하셨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상황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서 곧장 달려가지 않으십니다. 아마도 빵의 기적으로 인해 들떴던 그 마음들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그러셨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물위를 걸으시고, 바다마저 복종할 수밖에 없는 분이라는 것을…,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새벽 네 시 쯤에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새벽 네 시에 호수를 건널 배가 있을 리가 없고, 또 역풍이 부니 배를 운행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그리고 주머니엔 돈도 없었을 것이니 걸어가야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사공! 건너갑시다!”

    “예수님! 심야할증에 역풍까지 부니 따따불입니다요!”

    “나 돈 없는디!”

    “저도 흙 퍼서 장사하는 것은 아닌디유! 무지 어려운 것 아시쥬?”

    “어쩔 수 없군….그냥 걸어 가야쥐…”^*^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아버지 하느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 어떤 것도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성당에서 계획을 잡으면 비가 오다가도 그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소가 여의치 않으면 다른 장소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비가 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못할 정도로 비가 오지는 않습니다. 그저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밀고 나가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 주십니다.


    또 폭우가 내리던 새벽, 새벽미사에 변함없이 참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비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오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오시는 분들…, 예수님께 물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 것처럼, 신앙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것도 예수님께로 향하는 내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마귀의 유혹입니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놀랄 만도 합니다. 호수 한 가운데서 사람을 만났으니. 그것도 배를 타고 온 사람이 아니라 물 위를 걸어오는 사람을 만났으니. 제자들이 겁쟁이라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니 놀라서 소리를 질러 대는 것입니다. 만일 나였다면 까무러졌을 것입니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렇게 놀란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안심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어두운 밤길에 두려움에 떨면서 걸어갈 때, 저 앞에서 사람이 나타나면 무척 당황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나타난 사람이 귀신이 아니라,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요한아! 나다!”라고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였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제자들은 그렇게 기뻤을 것입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이 말씀은 기도 중에 자주 듣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꼭 어려움이 밀려옵니다.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의욕을 꺾어 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확신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두려움 없이 밀고 나가면 됩니다. 나머지는 주님께서 알아서 해 주십니다.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베드로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주님이십니까? 그러시다면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비록 물이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를 가로 막았지만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로 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한 물 위를 걸어오신 전능을 보여주신 예수님께서는 자신 또한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표현된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명령하십시오.”라는 베드로 사도의 고백 안에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가 드러납니다. 말씀 한 마디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명령하십시오.”라는 베드로 사도의 말 안에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청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걸어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믿고서 물 위로 걸어갑니다. 예수님께 가는데 장애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분이 부르시면 나는 달려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 무엇이 앞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께로 가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예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입니다.


    내가 만일 베드로 사도였다면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주님께로 갈 생각보다는 “예수님! 이 바람 좀 멈춰 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을 것 같습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주님께로 가까이 가려고 하는 마음가짐을 주님께서는 반드시 이끌어 주심을 명심하고, 주님께 청합시다. “주님!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이 때 주님께서는 반드시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 오너라.”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베드로사도가 갑자기 두려움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믿음이 사라지자 그는 물 속으로 빠져 들고 맙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물 위를 걸으실 수 있으셨을까요? 몸을 가볍게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걸어가시고자 하셨고, 물이 알아서 예수님을 받쳐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가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함께 그 힘이 공명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결되니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은 예수님과 연결된 공명을 깨뜨리게 되고, 물 속으로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공명할 때,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처럼 할 수 있게 됩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도 공명합니다. 하지만 다른 마음을 품을 때 공명을 깨지고,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숙한 신앙인들과 공명하려고 노력할 때, 나 또한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한 순간도 의심 없이 오롯이 주님께 믿음을 둔 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평상시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게 물 위를 걷는 중에 별의 별 생각 다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있어야 한 다는 것을 알았으니 내 안에 조금이라도 불신이 남아있지 않도록 몰아내고 믿음으로 채워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손을 붙잡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누가 있어 바다 한 가운데서 오롯한 믿음으로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의심을 안 품으려고 해도 자연스럽게 의심이 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맡겨 드립시다. 다른 생각을 하지 맙시다. 나머지는 주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입니다. 의심이 일어날 때 “주님! 제가 제 의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의심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의심을 몰아내주소서.”라고 기도합시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예수님께서 인성뿐만 아니라 신성까지도 가지고 계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제자들의 기쁨과 두려움은 얼마나 컸을까요? 이렇듯 크신 하느님의 아드님과 함께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헛된 것에 마음을 두지 맙시다. 그 헛된 것에 마음을 둘 때, 주님을 잊어먹게 됩니다. 또한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맙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주님께 온전히 맡겨 드립시다. 그렇게 해서 “네 믿음이 참으로 장하다.”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와 닿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 말씀이 왜 기쁨으로 와 닿고 있습니까?


    ② 예수님께서 나에게 물 위를 걸어오라고 하신다면 나는 예수님께로 갈 수 있을까요?


    ③ 내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의심이 들 때는 언제이고, 확고한 믿음이 생겨날 때는 언제입니까?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4. 공지사항

    ① 주님께 대한 올바른 믿음 가지기.

    ② 어려움에 처할 때도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고백하기

    ③ 주님과 공명하며, 형제자매들과 신앙안에서 공명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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