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 연중 제 33주일; 탈렌트의 비유

탈렌트의 비유

1. 말씀읽기:마태25,14-30 탈렌트의 비유 (루카 19,11-27)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맞는 탈렌트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탈렌트를 잘 활용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길 원하십니다. 그 탈렌트를 우리는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는 탈렌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 탈렌트를 잘 활용1)하고, 어떤 이는 그 탈렌트를 전혀 활용하지 않고, 원망과 좌절의 삶을 살기도 합니다.



오늘 탈렌트의 비유를 묵상하면서 내가 받은 탈렌트는 무엇이고, 그 탈렌트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그 탈렌트를 통하여 어떻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봅시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종들에게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하느님이시고, 종들은 바로 우리들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재산을 맡기셨습니다. 다른 이들과 똑같을 수도 있고, 다른 이들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이 있고, 어느 날엔가는 그것을 셈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 재산은 바로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재능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알맞은 재능을 주셨습니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주인은 장사 때문인지 관광 때문인지 뚜렷하게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겼습니다. 아시리아와 이집트의 옛 문헌을 보면 자유민이 종이나 해방 노예에게 재산을 맡기는 예가 많았는데, 그것은 주인의 재산을 활용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맡은 사람은 주인에게 맡은 액수와 일정한 이자를 돌려주게 되어 있었습니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주인은 각자에게 능력에 따라 돈을 맡겼습니다. 주인은 각자의 능력을 알고 있기에 그에게 알맞은 탈렌트를 맡겼습니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맡기는 것입니다. 은총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주시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은총은 베풀지 않으십니다. 다다익선이 아니라 과한 것은 나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받은 사람들의 태도는 각각 다릅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두 탈렌트를 받은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이들은 부지런히 노력하여 두 배로 늘린 것입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그는 게으른 종인 것 같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돈을 감출 때, 흔히 땅에 묻었다고 합니다. 은행이라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신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마당을 파 보면 묻혀 있는 돈이나 금덩이가 나오지 않을까요? (마당을 한번 파봐야지^**^)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도 한 탈렌트를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 맡기신 한 탈렌트는 생각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고, 오로지 다른 사람에게 주신 탈렌트들만을 바라봅니다.2) 그리고 끊임없이 불평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교합니다. 질투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고, 자존감의 결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만족하면서 살아갈 때, 더 나아가서 감사하면서 살아갈 때 나는 질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어느 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주인은 종들과 셈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사람은 한 탈렌트를 받아서 땅에 묻어둔 사람입니다. 주인은 그를 어떻게 대할까요? 만일 내가 주인이었다면 그 종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셈을 하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십니다. 그날에 나는 예수님과 셈을 해야만 합니다. 그날을 기억하면서 살아갑시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다섯 탈렌트를 받아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는 종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얼마나 기뻤을까요? 주인은 자신을 믿었고, 자신은 주인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이제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차례만 남은 것입니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주인은 성실한 종을 칭찬하였습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이것보다 더 큰 칭찬이 어디 있으며,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작은 일에 충실하면 나 또한 하느님께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옆에 있는 한 탈렌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사람은 어떨까요? 분명 시기질투를 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시기질투를 오래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주어질 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번에는 두 탈렌트를 받은 종이 행복한 고백을 합니다.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종입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하게 하는 사람. 그가 바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온갖 모함과 질투와 시기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기보다는 참된 주인이신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시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주인은 성실하게 탈렌트를 관리한 종에게 칭찬을 합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신앙인은 의로운 사람이고, 의로운 이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 그가 바로 신앙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일에 관여만 하는 사람은 결코 칭찬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라는 말씀을 결코 들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주인을 두려워하였고, 게을렀으며, 늘 핑계와 불평만 했던 사람인 듯 합니다. 그는 먼저 주인께 대한 두려움을 고백합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이 종은 주인을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결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 종이 타인에게 모진 사람이었기에 주인도 그렇다고 생각하였을 것이고,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려 하고, 뿌리지도 않은 데에서 모으려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주인을 바라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주인을 무자비한 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당에서 일을 하다보면 하기 싫어하고, 또 아무 계획도 없었던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남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누가 잘하는데 내가 할 필요가 있는가?” “뭐 알아서 다 하실 것인데 내가 뭐 하러 하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이런 변명이 통할지 모르나 하느님께는 결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자기 자신에게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과 그리고 하느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종은 또 말합니다.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아무것도 안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못된 종입니다. 그리고 주인께 모욕을 줍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주인은 종을 통하여 당연히 이익을 볼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의 권리이고, 종에게는 의무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사목위원 중의 하나가 말없이 성당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통하여 이유를 듣게 되었는데 “본당신부님께서 자신의 의견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그가 제시한 의견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 분과의 일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그가 한 적이 없었습니다. 본당신부님께는 사목위원들을 통하여 본당 일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사목위원들은 당연히 그것을 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 남의 탓만을 한다면 공동체에 힘든 일들이 발생합니다. 또 그가 맡은 분과는 침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환난이 그지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마련해 줍니다.”(2코린4,17) 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살아갑시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이제 주인은 그 종의 입에서 나온 말로 그 종을 단죄합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얼마나 두려운 말입니다. 이 말씀을 하느님께로부터 듣게 된다면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망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그렇다면 종은 주인으로부터 한 탈렌트를 받았으니까 주인은 종에게 심고 뿌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거두고 모을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종이 그렇게 알고 있었다면 받았으니까 행동으로 옮겨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종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그런 사람이 꼭 있습니다. 말이 앞서고, 공동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신자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그가 상처받고 냉담을 할 것이기에 참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주인은 종에게 최소한의 행동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내 돈을 대금업자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이 종의 잘못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자신이 안 하려고 한다면 다른 사람은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도 안하고 남도 못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인은 이렇게 판결합니다.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결국 그는 가진 것 마저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주인은 또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여기서 가진 자는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탈렌트를 성실하게 관리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맡겨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이는 더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열정을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입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형식적으로 하는 사람과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 그 열매는 분명 다릅니다. 형식적으로 하는 사람은 기회가 주어지면 쉽게 신앙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시련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그 시련을 기회삼아 더욱 큰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누구든지”마찬가지입니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이제 주인은 종을 심판합니다. 쓸모없는 종은 버려질 뿐입니다. 주인의 마음을 모르고, 주인에게 모욕을 주는 종이 주인께 칭찬 받을 리는 없습니다. “바깥 어둠 속에서 울며 이를 갈며” 그는 후회할 것입니다. 다른 종들이 탈렌트를 불리느라고 고생할 때, 그가 했던 말들, 그가 했던 행동들을…, “이 어리석은 친구들아! 왜들 그렇게 사냐? 쉬엄쉬엄 해. 내가 주인님이 돌아오시면 다 해결해 줄께. 그렇게 열심히 살면 누가 알아 주냐? 또 급한 것이 뭐가 있냐? 내일 해도 돼. 오늘은 좀 즐기자!” 그런 생각과 행동이 결국 그를 멸망으로 이끈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하루를 정리하면서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를 자세히 살피고 그 가운데 버릇이 된 죄”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입니다.



또한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의 모습을 통해 내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한 탈렌트를 받았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저 사람은 나보다 나은 면도 없는데 어째서 다섯 탈렌트나 받았을까? 주인은 분명 저 사람을 편애함에 틀림이 없어. 그리고 저 사람은 별 볼일 없는데 두 탈렌트나 받았어. 주인은 나보다는 저 사람을 좋아함에 틀림없어. 저 사람들은 나보다 다 더 받았어. 분명 나보다 나은 면도 없는데. 주인은 나의 진면목을 모르시고 계셔. 저들이 주인한테 너무 잘하고, 그러니 주인은 저들을 너무 편애해. 이건 너무 불공평해…



그리고 주인이 떠났을 때 끊임없이 다른 이들을 방해했을 것입니다. 그를 모함하는 말들을 만들어 내고, 그들을 유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섯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고, 두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만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말씀드릴 수 있었고, 행복한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후회했을 것입니다. 가슴을 치며 후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돌릴 수 없었으니 더욱 불행합니다.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의 모습을 통하여 내가 그런 상황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탈렌트를 잘 관리하는 성실한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탈렌트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내가 받은 탈렌트를 다른 사람의 탈렌트와 비교하면서 실망에 빠진 적은 없었습니까?



③ 만일 내일 예수님께서 나와 셈을 하신다면 나는 어떤 말씀을 드릴까요? 기쁨에 가득 차서 말씀드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변명을 하고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변명을 하지 않고 기쁨에 가득 찬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요?



4. 실천사항

①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 말고, 내가 가진 재능을 개발하기

② 성실하게 일상생활을 하기

③ 하느님 앞에서 셈을 하게 됨을 명심하고, 하느님께 보여드릴 것을 미리 준비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글은 카테고리: 가해(말씀과놀이,2), 말씀과 놀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가해 연중 제 33주일; 탈렌트의 비유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탈렌트의 비유

    1. 말씀읽기:마태25,14-30 탈렌트의 비유 (루카 19,11-27)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맞는 탈렌트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탈렌트를 잘 활용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길 원하십니다. 그 탈렌트를 우리는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는 탈렌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 탈렌트를 잘 활용1)하고, 어떤 이는 그 탈렌트를 전혀 활용하지 않고, 원망과 좌절의 삶을 살기도 합니다.


    오늘 탈렌트의 비유를 묵상하면서 내가 받은 탈렌트는 무엇이고, 그 탈렌트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그 탈렌트를 통하여 어떻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봅시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종들에게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하느님이시고, 종들은 바로 우리들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재산을 맡기셨습니다. 다른 이들과 똑같을 수도 있고, 다른 이들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이 있고, 어느 날엔가는 그것을 셈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 재산은 바로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재능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알맞은 재능을 주셨습니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주인은 장사 때문인지 관광 때문인지 뚜렷하게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겼습니다. 아시리아와 이집트의 옛 문헌을 보면 자유민이 종이나 해방 노예에게 재산을 맡기는 예가 많았는데, 그것은 주인의 재산을 활용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맡은 사람은 주인에게 맡은 액수와 일정한 이자를 돌려주게 되어 있었습니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주인은 각자에게 능력에 따라 돈을 맡겼습니다. 주인은 각자의 능력을 알고 있기에 그에게 알맞은 탈렌트를 맡겼습니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맡기는 것입니다. 은총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주시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은총은 베풀지 않으십니다. 다다익선이 아니라 과한 것은 나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받은 사람들의 태도는 각각 다릅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두 탈렌트를 받은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이들은 부지런히 노력하여 두 배로 늘린 것입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그는 게으른 종인 것 같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돈을 감출 때, 흔히 땅에 묻었다고 합니다. 은행이라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신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마당을 파 보면 묻혀 있는 돈이나 금덩이가 나오지 않을까요? (마당을 한번 파봐야지^**^)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도 한 탈렌트를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 맡기신 한 탈렌트는 생각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고, 오로지 다른 사람에게 주신 탈렌트들만을 바라봅니다.2) 그리고 끊임없이 불평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교합니다. 질투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고, 자존감의 결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만족하면서 살아갈 때, 더 나아가서 감사하면서 살아갈 때 나는 질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어느 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주인은 종들과 셈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사람은 한 탈렌트를 받아서 땅에 묻어둔 사람입니다. 주인은 그를 어떻게 대할까요? 만일 내가 주인이었다면 그 종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셈을 하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십니다. 그날에 나는 예수님과 셈을 해야만 합니다. 그날을 기억하면서 살아갑시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다섯 탈렌트를 받아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는 종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얼마나 기뻤을까요? 주인은 자신을 믿었고, 자신은 주인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이제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차례만 남은 것입니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주인은 성실한 종을 칭찬하였습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이것보다 더 큰 칭찬이 어디 있으며,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작은 일에 충실하면 나 또한 하느님께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옆에 있는 한 탈렌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사람은 어떨까요? 분명 시기질투를 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시기질투를 오래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주어질 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번에는 두 탈렌트를 받은 종이 행복한 고백을 합니다.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종입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충실하게 하는 사람. 그가 바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온갖 모함과 질투와 시기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살아가기보다는 참된 주인이신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시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주인은 성실하게 탈렌트를 관리한 종에게 칭찬을 합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신앙인은 의로운 사람이고, 의로운 이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 그가 바로 신앙인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일에 관여만 하는 사람은 결코 칭찬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라는 말씀을 결코 들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주인을 두려워하였고, 게을렀으며, 늘 핑계와 불평만 했던 사람인 듯 합니다. 그는 먼저 주인께 대한 두려움을 고백합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이 종은 주인을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결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 종이 타인에게 모진 사람이었기에 주인도 그렇다고 생각하였을 것이고,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려 하고, 뿌리지도 않은 데에서 모으려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주인을 바라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주인을 무자비한 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당에서 일을 하다보면 하기 싫어하고, 또 아무 계획도 없었던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남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누가 잘하는데 내가 할 필요가 있는가?” “뭐 알아서 다 하실 것인데 내가 뭐 하러 하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이런 변명이 통할지 모르나 하느님께는 결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자기 자신에게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과 그리고 하느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종은 또 말합니다.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아무것도 안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못된 종입니다. 그리고 주인께 모욕을 줍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주인은 종을 통하여 당연히 이익을 볼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의 권리이고, 종에게는 의무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사목위원 중의 하나가 말없이 성당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통하여 이유를 듣게 되었는데 “본당신부님께서 자신의 의견을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는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그가 제시한 의견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 분과의 일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그가 한 적이 없었습니다. 본당신부님께는 사목위원들을 통하여 본당 일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사목위원들은 당연히 그것을 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움직이지 않고, 남의 탓만을 한다면 공동체에 힘든 일들이 발생합니다. 또 그가 맡은 분과는 침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에 등장하는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환난이 그지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마련해 줍니다.”(2코린4,17) 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살아갑시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이제 주인은 그 종의 입에서 나온 말로 그 종을 단죄합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얼마나 두려운 말입니다. 이 말씀을 하느님께로부터 듣게 된다면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망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그렇다면 종은 주인으로부터 한 탈렌트를 받았으니까 주인은 종에게 심고 뿌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거두고 모을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종이 그렇게 알고 있었다면 받았으니까 행동으로 옮겨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종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그런 사람이 꼭 있습니다. 말이 앞서고, 공동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신자야!”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그가 상처받고 냉담을 할 것이기에 참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주인은 종에게 최소한의 행동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내 돈을 대금업자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이 종의 잘못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자신이 안 하려고 한다면 다른 사람은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자신도 안하고 남도 못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입니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인은 이렇게 판결합니다.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결국 그는 가진 것 마저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주인은 또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여기서 가진 자는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탈렌트를 성실하게 관리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맡겨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이는 더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열정을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입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형식적으로 하는 사람과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 그 열매는 분명 다릅니다. 형식적으로 하는 사람은 기회가 주어지면 쉽게 신앙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시련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그 시련을 기회삼아 더욱 큰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누구든지”마찬가지입니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이제 주인은 종을 심판합니다. 쓸모없는 종은 버려질 뿐입니다. 주인의 마음을 모르고, 주인에게 모욕을 주는 종이 주인께 칭찬 받을 리는 없습니다. “바깥 어둠 속에서 울며 이를 갈며” 그는 후회할 것입니다. 다른 종들이 탈렌트를 불리느라고 고생할 때, 그가 했던 말들, 그가 했던 행동들을…, “이 어리석은 친구들아! 왜들 그렇게 사냐? 쉬엄쉬엄 해. 내가 주인님이 돌아오시면 다 해결해 줄께. 그렇게 열심히 살면 누가 알아 주냐? 또 급한 것이 뭐가 있냐? 내일 해도 돼. 오늘은 좀 즐기자!” 그런 생각과 행동이 결국 그를 멸망으로 이끈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하루를 정리하면서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를 자세히 살피고 그 가운데 버릇이 된 죄”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입니다.


    또한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의 모습을 통해 내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한 탈렌트를 받았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저 사람은 나보다 나은 면도 없는데 어째서 다섯 탈렌트나 받았을까? 주인은 분명 저 사람을 편애함에 틀림이 없어. 그리고 저 사람은 별 볼일 없는데 두 탈렌트나 받았어. 주인은 나보다는 저 사람을 좋아함에 틀림없어. 저 사람들은 나보다 다 더 받았어. 분명 나보다 나은 면도 없는데. 주인은 나의 진면목을 모르시고 계셔. 저들이 주인한테 너무 잘하고, 그러니 주인은 저들을 너무 편애해. 이건 너무 불공평해…


    그리고 주인이 떠났을 때 끊임없이 다른 이들을 방해했을 것입니다. 그를 모함하는 말들을 만들어 내고, 그들을 유혹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섯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고, 두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만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행복하게 말씀드릴 수 있었고, 행복한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후회했을 것입니다. 가슴을 치며 후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돌릴 수 없었으니 더욱 불행합니다.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의 모습을 통하여 내가 그런 상황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탈렌트를 잘 관리하는 성실한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탈렌트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내가 받은 탈렌트를 다른 사람의 탈렌트와 비교하면서 실망에 빠진 적은 없었습니까?


    ③ 만일 내일 예수님께서 나와 셈을 하신다면 나는 어떤 말씀을 드릴까요? 기쁨에 가득 차서 말씀드리고 있을까요? 아니면 변명을 하고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변명을 하지 않고 기쁨에 가득 찬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요?


    4. 실천사항

    ①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 말고, 내가 가진 재능을 개발하기

    ② 성실하게 일상생활을 하기

    ③ 하느님 앞에서 셈을 하게 됨을 명심하고, 하느님께 보여드릴 것을 미리 준비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2. guest 님의 말:

    평신도 주일 강론


    찬미예수님!

    오늘은 제 회 평신도 주일입니다.

    평신도 주일은 우리 평신도들이 자신의 사명을 더욱 잘 깨닫고 더욱 잘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특별히 제정된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부족한 제가 이렇게 강론대에 올라 형제 자매님들께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평신도 주일을 맞이하여 두 가지를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신앙인은 누구인가?

    둘째로 신앙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며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신앙인은 누구인가? 신앙인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그 신앙인이 바로 “나”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 아드님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예수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을 믿고 있기에 오늘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내가 바로 신앙인 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

    예수님의 사랑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

    우리가 바로 신앙인입니다.

    내 옆에 있는 형제 자매가 바로 신앙인이며

    내 옆에서 함께 기도하고 있는 형제자매가 바로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기도하고 있는 내가 바로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당연한 것이지만 바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저도 못 살고 있지만 감히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① 신앙인은 하느님께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 열정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만들고, 나를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내 개인적인 일도 중요하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먼저 행동하게 됩니다.


    우리 한국의 교회는 다른 어느 나라와는 다르게 평신도들에 의해 교회가 성장했습니다. 신앙을 위해서는 목숨을 내 놓는 것 까지 두려워하지 않았고,

    지독한 박해 속에서도 하느님을 찬양하였으며,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깊은 산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 나누고, 격려하면서 성사생활에 열중했습니다.


    그 열정을 이어받은 신앙인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피로써 증거한 신앙을 이어받은 신앙인들이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나 또한 신앙의 선조들처럼 열정이 있는 신앙인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열정으로 아침 저녁 기도를 바치고

    그 열정으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며

    그 열정으로 주일미사에는 꼭 참례합시다.

    농사일이나 직장생활로 바쁘시겠지만, 그 열정으로 평일미사에 한번이라도 참례해 봅시다.




    ② 신앙인은 사랑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또 받고 있고, 그리고 받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마태오 복음 18장 21절부터 19장 1절까지의

    무자비한 종의 비유의 말씀을 자주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형제가 잘못하면 몇 번을 용서해 주어야 하느냐는 사도들의 질문에

    끊임없이 용서해 주어야 함을 말씀하시면서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드십니다.

    이 종은 주인으로부터 많은 빚을 탕감 받았지만,

    자신에게 작은 빚을 진 형제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주인으로부터 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저 또한 하느님께 많은 죄를 짓고,

    또 많은 죄를 용서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기억하면서

    좀더 사랑하면서 살아가고자 다짐합니다.

    물론 잘 안될 때가 더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모두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고

    인사하고

    기도해 주고,

    먼저 말을 걸고,

    아끼고 존경해 주는 사람 아니겠습니까?


    나를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무슨 칭찬을 받겠습니까? 그런 것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어울리려 한다면 하느님께로부터 무슨 상을 받겠습니까?

    더 나아가서 내가 이렇게 저렇게 편을 가르거나,

    다른 이들을 소외시키거나

    상대방을 어렵게 한다면

    하느님께로부터 상을 받겠습니까? 아니면 꾸지람을 받겠습니까?

    그러므로 서로 위해주고, 아껴주며,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이들은 칭찬해 주고, 본받으려 노력합시다.

    또한 미사가 끝나면 “냅다 튀지 말고”형제 자매들에게 관심을 갖고 인사하는 우리가 됩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평신도 주일을 맞이하여 오늘 두 가지를 감히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신앙인은 누구인가?

    둘째로 신앙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실천이 남아있습니다.

    서로 도와주며 멋진 신앙인으로 살아 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

    평신도 주일을 맞이하여 부족한 제가 형제자매들과 함께 작은 것들을 결심하였습니다. 늘 세상의 유혹에 빠져서 당신을 외면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당신의 사랑을 깨닫고, 당신께 감사드리며, 당신의 참된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희에게 큰 은총 내려주시어 저희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당신을 찬양하고, 당신 보시기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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