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예수님의 부활 대축일


부활하신 예수님

1. 말씀읽기: 요한 20,1-9

부활하시다 (마태 28,1-8 ; 마르 16,1-8 ; 루카 24,1-12)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알렐루야!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함께 기뻐하며, 부활의 증인으로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마리아 막달레나! 그녀는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기에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갔을까요? 사랑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사랑했기에 부활의 첫 증인으로서 기쁜 소식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부부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내 사랑하는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보고 싶습니다. 뒷산에 묻혔다면 캄캄한 새벽에 무덤에 갈 수 있을까요? 응답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편들에게는 먼저 말씀을 드렸습니다. “무조건 손들라고.” 그리고 물었습니다. 만일 아내가 그렇게 먼저 가서 묻혀 있다면 새벽에라도 가서 보겠냐고! 그랬더니 모두 손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다가설 때, 나 또한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2.1. 빈 무덤을 발견한 마리아 막달레나

유다인들은 안식일을 엄격히 지켜야 했기에 안식일에는 향료를 살 수도 없었고, 예수님의 무덤까지 걸어올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여인들은 향료를 살 수 있었습니다. 안식일은 해가 지면 끝납니다. 하지만 그때 무덤으로 달려가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마리아 막달레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길을 서두르게 됩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서둘러서 치렀기에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습니다(요한20,1).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무덤을 막았던 돌을 치워졌고, 무덤은 비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한 마리아 막달레나였습니다.

 

2.2. 빈 무덤 사건(부활)을 전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에 도착해서 깜짝 놀라게 됩니다. 무덤을 막았던 돌은 치워져 있었고, 그 안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즉시 제자들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20,2)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은 부활하셨기 때문이지만, 마리아의 마음에는 “시신을 누군가가 훔쳐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제자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가 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셨기에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마리아는 아직 믿지 않았지만 이제 믿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의 믿음을 한 차원 올려 주실 것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예수님께로 향할 때, 예수님께서는 부족한 나의 신앙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2.3.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

베드로와 요한(다른 제자)은 즉시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들도 무척 궁금했을 것입니다. 무덤으로 달려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고 하셨는데 정말로 부활하셨을까? 그런데 우리 눈앞에서 그렇게 처절하게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부활하실 수가 있단 말인가? 베드로와 요한은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무덤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① 무덤에 먼저 다다른 요한

두 사도가 곧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베드로보다 젊었던 요한이 먼저 무덤에 이르렀습니다(요한20,4). 요한 사도는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이 사실임을 알아차렸습니다. 무덤은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요한 사도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요한20,5).

 

요한이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베드로 사도를 향한 겸손의 표현(장유유서)인 듯 합니다. 이렇게 베드로 사도의 권위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수위권을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권위를 요한 사도는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있는 것입니다.

 

② 시몬 베드로가 무덤으로 들어가 무덤을 확인하다.

시몬 베드로는 숨을 헐떡이며 무덤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감쌌던 아마포만 남은 것을(요한20,6)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아마포만 남은 것입니다. 이제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옮겨질 차례입니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이 한 순간에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서서히 생겨나고, 그리고 그 믿음으로 변화되어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습니다(요한20,7). 그러나 수의가 그곳에 놓여 있다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말한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꺼내갔다.”는 말과는 모순됩니다. 만일 예수님의 시신을 누군가가 훔쳐갔다면 수의와 수건도 다 가져 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고 전해줍니다.

 

③ 보고 믿었다(요한20,8).

베드로 사도가 무덤에 먼저 들어가고 난 뒤에야 요한 사도도 무덤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보고 믿었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예고를 회상하고 부활을 믿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으뜸으로 세우시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믿지 못했었습니다. 이제 그 증거를 보고 베드로 사도는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아마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부활을 믿고 있었다면 예수님의 무덤 앞을 지키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도 함께 못했고, 또 믿지 못했기에 예수님의 부활도 지켜보지 못했기에 예수님께 죄송한 마음만 들었을 것입니다.

 

④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제자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세 차례나 예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는 수난예고만 들렸을 뿐 부활예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을 들으려 합니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도 제각각 다르게 듣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을 들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 예고를 흘려버렸던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야 비로소 “아하! 그랬었구나!”라고 무릎을 치게 될 것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누가 말해 준다 해도 못 알아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일이 이렇게 하면 생기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도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하는 생각이 결국 그런 실수를 하게 만듭니다.

 

또한 성경 말씀을 깨달아야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듣고 싶은 말씀에만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결국 내 삶이 변화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비록 부활을 믿지는 않고 있었으나 예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첫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나 또한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4. 부활의 증인으로서 삶

① 기쁨에 넘치는 삶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영혼과 육신의 부활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굳은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때 주님께서는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나 또한 부활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알고 있기에 하루 하루의 삶이 기뻐지는 것입니다. 기쁨에 넘치는 삶은 내 일상을 바꾸고, 내 주변 사람들을 바꾸고, 마침내 온 세상을 바꾸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 안에는 주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②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하는 삶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마침내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 놓습니다. 자신들의 목숨까지 내어 놓으며, 예수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확실한 믿음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어떤 자매는 비신자인 남편과 함께 살면서 눈치를 보며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남편이 성당가지 말라할까봐 주일이나 축일이 되면 남편 눈치를 보며 남편의 기분까지 맞추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게 된 남편은 주일이나 대축일이 되면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매는 남편에게 신앙을 권면할 생각도 못하고, 그저 남편이 신앙생활 하는 것 방해 안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부활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내가 남편에게 어떤 존재인가? 나는 신앙생활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종인가? 내 신앙생활이 가정생활을 망치고 있는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축일을 지낸 자매는 남편을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당신 내일부터 성당에 다닙시다.”이렇게 당당하게 나오자 남편은 당황을 했습니다. 자매는 또 말을 했습니다. “내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정을 깨뜨렸습니까? 내가 당신에게 소홀히 했습니까? 그런데 왜 나는 지금까지 당신의 눈치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해야만 합니까? 아니면 내가 당신의 종이나 이집 소나 말입니까?”

“……,”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된 남편은 “그래! 나도 성당에 다닐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어떤 외짝교우에게 이야기하자 “에이~ 그걸 어떻게 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안된다고 생각하니까 안되는 것입니다. 된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먼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배우자가 안 움직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목숨까지도 내어 놓으면서 예수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하고자하면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③ 복음을 전하는 삶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부활의 증인으로서 살아갔습니다. 그렇게 선포된 복음을 내가 받아들여 나 또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만이 그도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내 옆에 있는 이들에게, 가까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 그 삶이 바로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와 닿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만일 내가 베드로 사도와 함께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가서 빈 무덤을 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을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고 생각을 했을까요?

 

③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내가 부활의 증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4. 실천사항

① 부활의 기쁜 소식을 먼저 가족들에게 알리기

②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성당으로 인도하기

③ 굳은 믿음을 가지고 기쁨에 넘치는 삶을 살아가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글은 카테고리: 다해(말씀과놀이,2), 말씀과 놀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다해 예수님의 부활 대축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부활하신 예수님

    1. 말씀읽기: 요한 20,1-9

    부활하시다 (마태 28,1-8 ; 마르 16,1-8 ; 루카 24,1-12)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알렐루야!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함께 기뻐하며, 부활의 증인으로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마리아 막달레나! 그녀는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했기에 이른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갔을까요? 사랑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사랑했기에 부활의 첫 증인으로서 기쁜 소식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부부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내 사랑하는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보고 싶습니다. 뒷산에 묻혔다면 캄캄한 새벽에 무덤에 갈 수 있을까요? 응답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편들에게는 먼저 말씀을 드렸습니다. “무조건 손들라고.” 그리고 물었습니다. 만일 아내가 그렇게 먼저 가서 묻혀 있다면 새벽에라도 가서 보겠냐고! 그랬더니 모두 손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으로 다가설 때, 나 또한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2.1. 빈 무덤을 발견한 마리아 막달레나

    유다인들은 안식일을 엄격히 지켜야 했기에 안식일에는 향료를 살 수도 없었고, 예수님의 무덤까지 걸어올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여인들은 향료를 살 수 있었습니다. 안식일은 해가 지면 끝납니다. 하지만 그때 무덤으로 달려가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마리아 막달레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길을 서두르게 됩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서둘러서 치렀기에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발라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습니다(요한20,1).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무덤을 막았던 돌을 치워졌고, 무덤은 비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한 마리아 막달레나였습니다.

     

    2.2. 빈 무덤 사건(부활)을 전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에 도착해서 깜짝 놀라게 됩니다. 무덤을 막았던 돌은 치워져 있었고, 그 안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즉시 제자들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20,2)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은 부활하셨기 때문이지만, 마리아의 마음에는 “시신을 누군가가 훔쳐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제자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가 보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셨기에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마리아는 아직 믿지 않았지만 이제 믿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의 믿음을 한 차원 올려 주실 것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예수님께로 향할 때, 예수님께서는 부족한 나의 신앙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2.3.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

    베드로와 요한(다른 제자)은 즉시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들도 무척 궁금했을 것입니다. 무덤으로 달려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고 하셨는데 정말로 부활하셨을까? 그런데 우리 눈앞에서 그렇게 처절하게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부활하실 수가 있단 말인가? 베드로와 요한은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무덤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① 무덤에 먼저 다다른 요한

    두 사도가 곧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베드로보다 젊었던 요한이 먼저 무덤에 이르렀습니다(요한20,4). 요한 사도는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이 사실임을 알아차렸습니다. 무덤은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요한 사도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요한20,5).

     

    요한이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베드로 사도를 향한 겸손의 표현(장유유서)인 듯 합니다. 이렇게 베드로 사도의 권위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수위권을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권위를 요한 사도는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있는 것입니다.

     

    ② 시몬 베드로가 무덤으로 들어가 무덤을 확인하다.

    시몬 베드로는 숨을 헐떡이며 무덤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감쌌던 아마포만 남은 것을(요한20,6)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아마포만 남은 것입니다. 이제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옮겨질 차례입니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이 한 순간에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서서히 생겨나고, 그리고 그 믿음으로 변화되어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습니다(요한20,7). 그러나 수의가 그곳에 놓여 있다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말한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꺼내갔다.”는 말과는 모순됩니다. 만일 예수님의 시신을 누군가가 훔쳐갔다면 수의와 수건도 다 가져 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고 전해줍니다.

     

    ③ 보고 믿었다(요한20,8).

    베드로 사도가 무덤에 먼저 들어가고 난 뒤에야 요한 사도도 무덤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보고 믿었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예고를 회상하고 부활을 믿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으뜸으로 세우시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믿지 못했었습니다. 이제 그 증거를 보고 베드로 사도는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아마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부활을 믿고 있었다면 예수님의 무덤 앞을 지키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도 함께 못했고, 또 믿지 못했기에 예수님의 부활도 지켜보지 못했기에 예수님께 죄송한 마음만 들었을 것입니다.

     

    ④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제자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세 차례나 예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는 수난예고만 들렸을 뿐 부활예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을 들으려 합니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도 제각각 다르게 듣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을 들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 예고를 흘려버렸던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야 비로소 “아하! 그랬었구나!”라고 무릎을 치게 될 것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누가 말해 준다 해도 못 알아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일이 이렇게 하면 생기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도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하는 생각이 결국 그런 실수를 하게 만듭니다.

     

    또한 성경 말씀을 깨달아야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듣고 싶은 말씀에만 관심을 기울이다보니 결국 내 삶이 변화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비록 부활을 믿지는 않고 있었으나 예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첫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나 또한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4. 부활의 증인으로서 삶

    ① 기쁨에 넘치는 삶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영혼과 육신의 부활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굳은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때 주님께서는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나 또한 부활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을 알고 있기에 하루 하루의 삶이 기뻐지는 것입니다. 기쁨에 넘치는 삶은 내 일상을 바꾸고, 내 주변 사람들을 바꾸고, 마침내 온 세상을 바꾸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 안에는 주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② 어려움을 이겨내려고 하는 삶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마침내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 놓습니다. 자신들의 목숨까지 내어 놓으며, 예수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확실한 믿음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어떤 자매는 비신자인 남편과 함께 살면서 눈치를 보며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남편이 성당가지 말라할까봐 주일이나 축일이 되면 남편 눈치를 보며 남편의 기분까지 맞추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게 된 남편은 주일이나 대축일이 되면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매는 남편에게 신앙을 권면할 생각도 못하고, 그저 남편이 신앙생활 하는 것 방해 안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부활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내가 남편에게 어떤 존재인가? 나는 신앙생활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종인가? 내 신앙생활이 가정생활을 망치고 있는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축일을 지낸 자매는 남편을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당신 내일부터 성당에 다닙시다.”이렇게 당당하게 나오자 남편은 당황을 했습니다. 자매는 또 말을 했습니다. “내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정을 깨뜨렸습니까? 내가 당신에게 소홀히 했습니까? 그런데 왜 나는 지금까지 당신의 눈치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해야만 합니까? 아니면 내가 당신의 종이나 이집 소나 말입니까?”

    “……,”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된 남편은 “그래! 나도 성당에 다닐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어떤 외짝교우에게 이야기하자 “에이~ 그걸 어떻게 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안된다고 생각하니까 안되는 것입니다. 된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먼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배우자가 안 움직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목숨까지도 내어 놓으면서 예수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하고자하면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③ 복음을 전하는 삶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부활의 증인으로서 살아갔습니다. 그렇게 선포된 복음을 내가 받아들여 나 또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만이 그도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내 옆에 있는 이들에게, 가까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 그 삶이 바로 부활의 증인으로서의 삶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와 닿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만일 내가 베드로 사도와 함께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가서 빈 무덤을 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을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고 생각을 했을까요?

     

    ③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내가 부활의 증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4. 실천사항

    ① 부활의 기쁜 소식을 먼저 가족들에게 알리기

    ②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성당으로 인도하기

    ③ 굳은 믿음을 가지고 기쁨에 넘치는 삶을 살아가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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