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제 15주일;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1.말씀읽기:루카10,25-37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앙인들은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을 실천합니다. 그러나 어떤 신앙인들은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습니다. 그저 알고 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율법교사에게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방법과 참되게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고,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2.1. 율법교사의 질문과 예수님의 가르침

①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

어떤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10,25) 이 율법교사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줄 모르고 감히 예수님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그는 “무엇을 해야”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냐고 여쭈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예수님께서 무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 율법교사는 그 은총에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서 구원을 주시는 분이신 줄을 모르고 있기에 “무엇을 해야”라고 여쭙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했으니 당연히 구원을 주십시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구원에 감사하며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임을 겸손하게 아뢰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② 율법교사에게 되물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10,25)라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루카10,26)하고 되물으십니다. 이렇게 되물으시는 이유는 그의 말로 그를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당시 율법교사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의 규정들을 잘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율법교사들은 613가지의 율법규정들을 잘 지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율법규정들을 지키면서 내용보다는 형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예를들면 정결례 규정을 지키면서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지,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라고 물으신 다음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라고 다시 물으시는 것입니다.

 

③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율법교사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루카10,27)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아마 이 율법교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율법학자 하나가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그르쳐 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신명기 6장 4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한 분이신 참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장엄하게 고백하였습니다. 이렇게 고백함으로써 유다인들은 언제나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계명(신명기6,5)을 상기하였으며,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겠노라고 다짐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레위기 19장 18절의 말씀처럼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 사랑을 완성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④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했던 율법교사를 예수님께서는 칭찬해 주십니다. “옳게 대답하였다.”(루카10,28ㄱ) 그리고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루카10,28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알고 있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천을 해야 함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임을 명심하며,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율법교사를 대하시는 모습을 통해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인정하는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노력하고 있다면 그 노력하는 모습을 보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 사람의 행동이 옳다면 칭찬을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칭찬하고 격려해 줄 때, 그 사람도 변화됨을 알아야 합니다.

 

⑤ 이어지는 교만: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10,29)

교만한 율법교사는 예수님께로부터 너그러운 칭찬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칭찬을 들은 율법교사는 자신의 교만을 뉘우치고 겸손해졌어야 하는데, 다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10,29)

 

이 율법교사는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10,29)라고 예수님께 질문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기 위해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율법의 규정대로 잘 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하고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유다인들에게 이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이스라엘에 사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레위19,34). 자신들의 신앙을 받아들이고, 할례를 포함하여 율법을 준수하는 완전한 개종자들만을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반대파의 사람들도 이 사랑의 계명의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형식적으로 지키다보니, 자신들의 형식적인 믿음과 사랑을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믿음”이라고 착각하며 살았고, 이방인들에게는 사랑을 베풀지 않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2.2.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이웃사랑을 가르치시는 예수님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만큼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는가는 내가 얼마만큼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가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하느님 사랑의 척도는 이웃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가르쳐주셨고, 그대로 실천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이웃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① 강도를 만난 사람과 지나가는 사제와 레위인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가는 길은 강도들의 습격이 빈번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잘 알고 계시기에 그들의 상황에 맞게 비유를 드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루카10,30)

 

이 사람은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거의 초주검이 되었습니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사제라는 직책으로 보아 이 불쌍한 부상자에게 당연히 동정을 가지고 돌보아 주어야 할 터인데 그는 못 본 체 하고 지나가 버립니다.

레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사제와 함께 신명기에 있는 “너희는 동족의 나귀나 소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모른체 해도 안 된다. 반드시 동족을 도와 거들어 일으켜 주어야 한다.”(신명22,4)고 한 가르침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지나쳐 버립니다.

 

아마 이들은 이 사람이 반쯤 죽은 것이 아니라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사람이 죽었을 경우 부정을 타지 않도록 그 시체를 만지지 않았습니다(레위21,1). 아니면 그들은 그들 자신이 강도들의 습격을 받을까 두려워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단지 시간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서일수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들은 쓰러져 있는 사람보다는 자신들을 더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데 모범이 되어야 할 그들이었지만 그래서 그것이 이웃사랑으로 드러나야 했지만 “신앙 따로, 삶 따로”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② 착한 사마리아 사람

그런데 유다인들 중에서 사랑과 자비를 가장 많이 베풀어야 하는 사제와 레위인은 그냥 지나쳤지만 유다인들이 상종도 하지 않으려는 어떤 사마리아인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그를 보고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루카10,33-24)

 

당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아예 상종하지도 않았고, 서로 증오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인은 그를 가엾게 여깁니다.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비록 유다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살았지만 초주검이 된 유다인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상처를 치료하고,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랑입니다.

 

이튿날,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루카10,35)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③ 내 옆에 있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러해야 합니다. 쓰러져 있는 사람을 그냥 놔두고 지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그를 돌봐 줍니다. 신앙인이라면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를 데리고 병원까지 달려가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순교자의 밤 행사가 있던 날입니다.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전례담당자가 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렇게 연습을 했던 담당자가 오지 않으니 신부님도 당황했고, 다른 사람들도 당황했습니다. 그는 약속을 참 잘 지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여 순교자의 밤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순교자의 밤 행사가 끝나갈 무렵에 그날 전례 담당자가 살며시 들어와서 성호경을 긋고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신부님께 그날 전례담당자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성당에 오는데 앞에 어떤 할머니가 길가에 쓰러져 계시더라구요. 뺑소니를 당한 것 같았습니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여기서 시간을 빼앗기면 안 되는데……,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이분과 함께 하길 바라실 꺼야! 아냐! 이 사람이 나를 가해자로 지목하면 어떻게 하지? 도와주려고 했다가 오히려 피해를 당할 텐데……, 아냐! 예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겠지…….,’

그렇게 그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고, 가족들에게 알리고 오느라고 이렇게 늦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도 다들 전례에 참가하느라 전화를 꺼 놔서 연락이 안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 앞에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서 계시는군요.”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데에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조금만 내어 놓으면 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의 마음입니다.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제와 레위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이웃 사랑을 위한 마음이 있습니까?

 

④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님께서는 이제 율법교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루카10,36)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편협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시려고 하십니다. 이웃은 자신의 동족이나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만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모든 이들이 바로 이웃임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이 율법교사는 자존심이 있어서 그런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루카10,37ㄱ)라고 답을 합니다. 얼마나 마음이 닫혀있는 사람인지, 얼마나 옹졸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대답입니다. 유다인들은 그냥 지나갔지만 자신들이 하찮게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이 멋진 일을 했기에 속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옹졸하다.”고 질책하지 않으십니다. 그에게 인자한 미소를 보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10,37ㄴ)

 

예수님께서는“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5,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은 내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만일 나에게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그와 나와의 관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 사람! 참 안됐어~”하는 생각이 든다면 몸이 당연히 움직여야 함을, 손이 당연히 움직여야 함을 명심합시다. 예수님께서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는 말씀처럼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그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와 닿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내가 만일 강도를 만나 거의 초주검이 된 사람을 만났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했을까요? 아니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지나쳤을까요?

 

③ 예수님께서는 교만하고, 옹졸하고, 그리고 편협한 생각을 가진 율법교사는 질책하지 않으십니다. 너그럽게 대하시면서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처럼 내 옆에 있는 이들을 너그럽게 대해주고, 있는 그대로 대해주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요?

 

4. 공지사항

① 내 옆에 있는 이들이 나의 이웃임을 알고 사랑하기

② 나눌 줄 아는 사람 되기

③ 겸손해지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이 글은 카테고리: 다해(말씀과놀이,2), 말씀과 놀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다해 연중 제 15주일;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1.말씀읽기:루카10,25-37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앙인들은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을 실천합니다. 그러나 어떤 신앙인들은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습니다. 그저 알고 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율법교사에게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방법과 참되게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고,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2.1. 율법교사의 질문과 예수님의 가르침

    ①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

    어떤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10,25) 이 율법교사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줄 모르고 감히 예수님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그는 “무엇을 해야”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냐고 여쭈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예수님께서 무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 율법교사는 그 은총에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서 구원을 주시는 분이신 줄을 모르고 있기에 “무엇을 해야”라고 여쭙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했으니 당연히 구원을 주십시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구원에 감사하며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임을 겸손하게 아뢰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② 율법교사에게 되물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10,25)라는 율법교사의 질문에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루카10,26)하고 되물으십니다. 이렇게 되물으시는 이유는 그의 말로 그를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당시 율법교사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의 규정들을 잘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율법교사들은 613가지의 율법규정들을 잘 지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율법규정들을 지키면서 내용보다는 형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예를들면 정결례 규정을 지키면서 몸을 깨끗하게 하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지,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라고 물으신 다음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라고 다시 물으시는 것입니다.

     

    ③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

    율법교사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루카10,27)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아마 이 율법교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 율법학자 하나가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그르쳐 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신명기 6장 4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은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한 분이신 참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장엄하게 고백하였습니다. 이렇게 고백함으로써 유다인들은 언제나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계명(신명기6,5)을 상기하였으며,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치겠노라고 다짐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레위기 19장 18절의 말씀처럼 이웃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 사랑을 완성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④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했던 율법교사를 예수님께서는 칭찬해 주십니다. “옳게 대답하였다.”(루카10,28ㄱ) 그리고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루카10,28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알고 있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천을 해야 함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임을 명심하며,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율법교사를 대하시는 모습을 통해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인정하는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노력하고 있다면 그 노력하는 모습을 보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그 사람의 행동이 옳다면 칭찬을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칭찬하고 격려해 줄 때, 그 사람도 변화됨을 알아야 합니다.

     

    ⑤ 이어지는 교만: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10,29)

    교만한 율법교사는 예수님께로부터 너그러운 칭찬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칭찬을 들은 율법교사는 자신의 교만을 뉘우치고 겸손해졌어야 하는데, 다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10,29)

     

    이 율법교사는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10,29)라고 예수님께 질문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기 위해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율법의 규정대로 잘 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하고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유다인들에게 이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이스라엘에 사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레위19,34). 자신들의 신앙을 받아들이고, 할례를 포함하여 율법을 준수하는 완전한 개종자들만을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반대파의 사람들도 이 사랑의 계명의 대상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형식적으로 지키다보니, 자신들의 형식적인 믿음과 사랑을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믿음”이라고 착각하며 살았고, 이방인들에게는 사랑을 베풀지 않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2.2.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이웃사랑을 가르치시는 예수님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만큼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는가는 내가 얼마만큼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가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하느님 사랑의 척도는 이웃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가르쳐주셨고, 그대로 실천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이웃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① 강도를 만난 사람과 지나가는 사제와 레위인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가는 길은 강도들의 습격이 빈번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잘 알고 계시기에 그들의 상황에 맞게 비유를 드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루카10,30)

     

    이 사람은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거의 초주검이 되었습니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사제라는 직책으로 보아 이 불쌍한 부상자에게 당연히 동정을 가지고 돌보아 주어야 할 터인데 그는 못 본 체 하고 지나가 버립니다.

    레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사제와 함께 신명기에 있는 “너희는 동족의 나귀나 소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모른체 해도 안 된다. 반드시 동족을 도와 거들어 일으켜 주어야 한다.”(신명22,4)고 한 가르침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지나쳐 버립니다.

     

    아마 이들은 이 사람이 반쯤 죽은 것이 아니라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사람이 죽었을 경우 부정을 타지 않도록 그 시체를 만지지 않았습니다(레위21,1). 아니면 그들은 그들 자신이 강도들의 습격을 받을까 두려워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단지 시간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서일수도 있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들은 쓰러져 있는 사람보다는 자신들을 더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데 모범이 되어야 할 그들이었지만 그래서 그것이 이웃사랑으로 드러나야 했지만 “신앙 따로, 삶 따로”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② 착한 사마리아 사람

    그런데 유다인들 중에서 사랑과 자비를 가장 많이 베풀어야 하는 사제와 레위인은 그냥 지나쳤지만 유다인들이 상종도 하지 않으려는 어떤 사마리아인은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그를 보고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루카10,33-24)

     

    당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아예 상종하지도 않았고, 서로 증오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인은 그를 가엾게 여깁니다.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비록 유다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살았지만 초주검이 된 유다인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상처를 치료하고,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랑입니다.

     

    이튿날,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루카10,35)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③ 내 옆에 있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러해야 합니다. 쓰러져 있는 사람을 그냥 놔두고 지나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그를 돌봐 줍니다. 신앙인이라면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를 데리고 병원까지 달려가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순교자의 밤 행사가 있던 날입니다.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전례담당자가 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렇게 연습을 했던 담당자가 오지 않으니 신부님도 당황했고, 다른 사람들도 당황했습니다. 그는 약속을 참 잘 지키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으로 대체하여 순교자의 밤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순교자의 밤 행사가 끝나갈 무렵에 그날 전례 담당자가 살며시 들어와서 성호경을 긋고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신부님께 그날 전례담당자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성당에 오는데 앞에 어떤 할머니가 길가에 쓰러져 계시더라구요. 뺑소니를 당한 것 같았습니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여기서 시간을 빼앗기면 안 되는데……,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이분과 함께 하길 바라실 꺼야! 아냐! 이 사람이 나를 가해자로 지목하면 어떻게 하지? 도와주려고 했다가 오히려 피해를 당할 텐데……, 아냐! 예수님께서 알아서 해 주시겠지…….,’

    그렇게 그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고, 가족들에게 알리고 오느라고 이렇게 늦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도 다들 전례에 참가하느라 전화를 꺼 놔서 연락이 안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 앞에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서 계시는군요.”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데에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조금만 내어 놓으면 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의 마음입니다.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제와 레위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이웃 사랑을 위한 마음이 있습니까?

     

    ④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님께서는 이제 율법교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루카10,36)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편협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시려고 하십니다. 이웃은 자신의 동족이나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만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모든 이들이 바로 이웃임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이 율법교사는 자존심이 있어서 그런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루카10,37ㄱ)라고 답을 합니다. 얼마나 마음이 닫혀있는 사람인지, 얼마나 옹졸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대답입니다. 유다인들은 그냥 지나갔지만 자신들이 하찮게 여기는 사마리아 사람이 멋진 일을 했기에 속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입에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옹졸하다.”고 질책하지 않으십니다. 그에게 인자한 미소를 보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10,37ㄴ)

     

    예수님께서는“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5,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은 내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만일 나에게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그와 나와의 관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 사람! 참 안됐어~”하는 생각이 든다면 몸이 당연히 움직여야 함을, 손이 당연히 움직여야 함을 명심합시다. 예수님께서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는 말씀처럼 그렇게 행동으로 옮기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그에게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와 닿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내가 만일 강도를 만나 거의 초주검이 된 사람을 만났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했을까요? 아니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지나쳤을까요?

     

    ③ 예수님께서는 교만하고, 옹졸하고, 그리고 편협한 생각을 가진 율법교사는 질책하지 않으십니다. 너그럽게 대하시면서 알고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처럼 내 옆에 있는 이들을 너그럽게 대해주고, 있는 그대로 대해주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요?

     

    4. 공지사항

    ① 내 옆에 있는 이들이 나의 이웃임을 알고 사랑하기

    ② 나눌 줄 아는 사람 되기

    ③ 겸손해지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2. guest 님의 말: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1. 말씀읽기: 루카10,1-9

    1 그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면서 말로만, 입술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선포하고 있는 내용을 내 삶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아하~ 하느님의 나라는 저렇게 멋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나라구나!”라고 말할 것이며, 하느님 나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로지 주님만 믿으면서 주님의 일을 하라고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어떻게 하느님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이 묵상해 봅시다.

    2.1. 일흔두 제자들 파견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루카10,1) 말씀하셨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루카10,2)

     

    ① 파견 받은 일흔 두 제자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 외에 달리 일흔 두 제자를 선발하셔서 당신께서 가시고자 하는 고을로 미리 보내십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오심을 알리는 사람들이고, 주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그 고을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주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마음을 보다 앞서 가서 예수님께서 부여해 주신 사명을 수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열두 사도와는 달리 그들의 이름은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일흔 두 제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일흔 두 제자의 모습이 내 모습이 되어 공동체를 위해서 보이지 않게 봉사를 해 봅시다.

     

    ② 첫 번째 사명: “일꾼들을 보내주십사”하고 청하여라.

    파견 받은 일흔 두 제자는 하느님 나라의 추수꾼입니다. 추수밭의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추수되는 곡식들은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한 톨도 바닥에 떨어져 “버려지는 일이 없이” 정성스럽게 곡식들을 모으는 일꾼들은 하느님 백성들을 돌보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더 많은 일꾼들(주님의 제자들)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세상 모든 이들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내가 충실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일꾼이 더 많아 질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주변의 형제자매들이 나에게 “이것을 함께 해요.”라고 말한다면 기꺼이 “네!”할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해 봅시다.

     

    ③ 걱정 속에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십니다. 그 걱정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루카10,3) “이리”라는 것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을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론가, 열광자, 괴변가들을 가리킬 것입니다.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하느님께서 선포하시는 사랑의 메시지는 받아들이지 않고, 하느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 신앙인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누군가가 자신들의 부족한 모습을 이야기 하거나,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들의 모습이 드러나면 가차 없이 없애버리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이리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낸다는 것은 모욕과 박해, 죽음까지도 감수하라는 것입니다.

     

    공동체에서 봉사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임이 있는 경우 나오기 싫은 이들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공동체에서 결정된 것을 하기 싫은 이들은 이런 저런 불평을 하고, 공동체의 결정을 바꾸어 놓으려고 합니다. 공동체를 재미없게 만들고, 흩어버리려 하며, 사회 모임과 차이가 없게 만드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복음적이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으며, 봉사할 마음도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결코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봉사자들의 힘과 열정을 빼앗아 버립니다. 하지만 봉사자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이리떼 속에 자신이 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을 해야 함을…,

     

    2.2. 파견 받은 이의 자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아무것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로지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① 오로지 주님만을 의지하여라.

    예수님께서는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루카10,4)고 하십니다. 돈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이 필요없이 때문에 여행 보따리도 지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신고 있는 신발 외에 다른 것은 준비하지 말라는 것은 준비된 신발이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주님만을 의지할 때,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말을 선포하지 않고,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②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아라.

    예수님께는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카10,4ㄴ)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파견받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미리 가시려는 고을에 가서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다른 이들을 만나 인사를 하게 되면 어느 순간 자신이 하려고 했던 일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에 눈을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에 간섭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고, 그렇게 방향을 잊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③ 평화를 빌어 주어라.

    예수님께는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루카10,5-6)고 말씀하십니다.

    이 평화는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평화는 구원입니다. 이 평화가 그 집에 머물면 그 집의 모든 이들은 주님을 믿게 되고,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 평화를 거부하는 이들은 주님을 거부하는 이들이며, 이들은 구원을 거부하는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통하여 평화를 전해주십니다. 구원을 전해주십니다. 그리고 나를 통해서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구원을 전해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의 구원의 도구가 되어 형제자매들에게 평화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평화속에 머물며 구원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④ 같은 집에 머물면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예수님께서는 파견 받은 제자들이 같은 집에 머물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루카10,7)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집의 잠자리가 불편하고, 이 집에서 해 주는 음식이 맛이 없고…, 하면서 세상 것들을 생각하는 이들은 이집 저집을 옮겨 다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러 온 것이지, 편안한 잠자리와 좋은 음식을 찾아서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은 오로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데에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⑤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예수님께서는 음식이나 잠자리 때문에 이집 저집 옮겨다니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루카10,8)고 말씀을 하십니다. 주는 음식을 먹으라는 것은 그들의 환대를 거부하지 말라는 것이고, 그들과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요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음식이 정결한 음식인지 부정한 음식인지를 가리지 말고 그들의 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신부님이 나환자촌에 봉사를 가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밥 먹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나병에 걸린 손으로 밥을 퍼서 주는데 그걸 먹기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먹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그들과 더욱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음식은 주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초대받았을 때 음식이 간이 안 맞는다든지, 나는 회를 좋아하는데 왜 고기를 주느냐 느니, 나는 이런 음식은 안 먹는다느니…, 그런 말을 하면 다시는 초대할 생각도 안 들고, 나를 사람 취급도 안할 지도 모른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의 선물을 돈을 받고 팔아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의 생활을 당연히 돌보아야 합니다.

     

    ⑥ 병자를 고쳐주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받아들이는 고을에 머물며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루카10,9)하고 선포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병자의 치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제자들이 선포하는 구원의 때를 준비하게 하는 수단입니다. 병자의 치유는 이 구원의 때가 힘차게 도래하였다는 실제적인 증거가 될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서 사랑을 이야기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눔이 없으면서 희생과 봉사를 이야기해서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것을 내가 받아들이고, 내 삶으로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은 나를 통해서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은 당연히 입으로만 선포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거룩하고 경건하고 사랑이 넘치는 삶은 비신자들에게 기쁨과 확신을 갖게 합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예수님만을 의지하고, 예수님께서 내 가슴에 담아주신 평화를 내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는 내가 되어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그 말씀이 와 닿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내가 속한 공동체를 재미있게 이끌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이 공동체에 하느님의 자녀들이 모여들까요?

     

    ③ 봉사하면서 얻고 있는 기쁨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나의 열정을 식게 만들고, 또 무엇이 나의 열정을 다시금 불타오르게 마들고 있습니까?

     

    4. 공지사항

    ① 내 주변의 형제자매들을 하느님께 이끌기 위해 노력하기

    ② 교회 공동체의 일을 사회의 단체일처럼 하지 않기

    ③ 계산하지 않고, 기쁘게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guest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