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안티파테르가 헤롯에게 갈릴리를, 파사엘에게는 예루살렘을 맡긴 것과 유대인들이 안티파테르를 시기하여헤롯을 힐카누스 앞에 고소한 것에 대하여
1. 안티파테르가 유대의 질서를 회복하다.
[㈜ 여기서는 고대.와 전쟁. 사이에 있는 병행본문을 요약한 것이다. (156-170)은 전쟁. 1권.(201-211)과 병행구이다. 참). Laqueur, pp.171-184에서는 다른 곳에서처럼 이 단락에서 후기 요세푸스의 반 헤롯적인 편견의 증거를 발견한다.]
한편 가이사는 수리아의 문제들을 해결한 후에 배를 타고 수리아를 떠났다. 또한 안티파테르는 수리아 밖까지 가이사를 호위한 후에 유대로 돌아와 즉시 폼페이가[㈜ 참). 고대. (144).] 허물어 버렸던 성벽을 다시 쌓아 올리기 시작하였다. 전국을 돌아 다니면서 백성들에게 강경책과 온건책을 번갈아 사용함으로써 무질서를 평정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유대인들을 설득하였다. \’만일 여러분들이 힐카누스를 지지하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아무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고 여러분의 재산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며 평화롭게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들이 혁명을 일으켜혹시나 큰 재산을 손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가지고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면 여러분은 보호자 대신에 감시자를, 한 왕인[㈜ 유대인들에 의해 그는 \’왕\’이라 불리웠고, 로마인들에 의해서는 \’지배자\’라고 불리워졌다. 참). 주 224.] 힐카누스 대신에 독재자 힐카누스를, 통치자 대신에[㈜ 전쟁.1권. (202에는 \’지도자들과 친구들의 위치에 있는 적들\’] 원수인 가이사와 로마군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로마인들이 세운 통치자를 여러분의 힘으로 몰아낼 수 있습니까\’\’안티파테르는 이 같은 방식으로 유대인을 무마하면서 유대를 다스려 나갔다.
2. 안티파테르의 아들인 헤롯이 유대의 총독이 되었으며 도적들을 진압하다
그러나 그는 힐카누스가 우둔하고 태만한[㈜ 전쟁. 1권. (203)은 \’게으르고 왕에게 필요한 힘 없이 \’] 성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의 장남인 파사엘(Phasael)을 예루살렘과 그 인근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하게 되었다. 또한 그의 둘째아들인 헤롯에게는 갈릴리 지역을 맡기게 되었다. 이 때의 헤롯의 나이는 불과 15세에 불과하였다.[㈜ 오토(Otto)가 지적하는 것처럼 (\’Herodes\’, p.18) 요세푸스가 헤롯의 유년에 대한 강조는 \’15살\’은 \’25살\’에 대한 필사자의 실수가 아니라고 지적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모순된다. 고대. 17권.(148)에서 그는 헤롯이 그가 죽었을 때(주전 4년가 70살 가량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주전 47년에 25살 가량이었음이 틀림이 없다.] 헤롯은 나이가 연소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소함이 그에게 있어서 결코 장애가 되지 않았다. 남달리 야망이 큰 헤롯은 자기의 용기를 과시할 기회를 찾았다. 그는 인근 수리아 지역을 휩쓸고 다니는 큰 도적떼의 두목이 에제키야스(Ezekias)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수많은 도적 무리와 함께 그를 잡아들여 결국 그를 처형하였다. 이로 인하여 헤롯은 수리아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수리아인들은 이도적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헤롯이 그 일을 해냈기 때문이었다. 이에 수리 아인들은 마을에서나 도시 에서나 재산을 지켜 주고 평화를 되찾게 해 준 헤롯의 업적을 크게 칭송했다. 이로 인하여 헤롯은 가이사 대제의 친척이요 그 당시 수리아의 지배자였던[㈜ 섹스투스 가이사(Sextus Caesar)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섹스투스 가이사(Sextus Caesar)는 주전 47년 여름에 수리아를 통치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참). Scurer i. 309. 그는 폼페이 (Pompey)의 일당인 케실리우스 밧수스(Caecilius Bassus)에게 살해를 당했다. 참). 고대. 14권.(268), ] 한편 헤롯의 형이었던 파사엘(Phasael)은 동생의 이러한 업적에 강한 시기심을 느끼고 또한 헤롯의 높아진 명성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의 동생인 헤롯에게 뒤질 수 없다고굳게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파사엘은 예루살렘 주민들의 환심을 사는 방법을 강구해 냈다. 그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동안 부당하게 일을 처리하거나[㈜ (161)에 나오는 toi\’\” pravgmasi prosferovmeno\”라는 어구는 투키디데스 식의(Thucydidean : Thuc. vi. 44. 4) 표현이다. (162)에 있는 oi|a kai; filei\’도 같다(Thuc. iii. 81. 5, iv. 28.3).] 권력을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을 극히 자제해 왔었다. 이렇게 하여 안티파테르는 유대에서 왕의 대접을 받게 되었으며 유대국의 절대 군주로서의 영광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힐카누스에 대한 우정과 충성에 있어서는 조금도 소흘하지 않았다.
3. 지도급 유대인들이 안터파테르와 그의 아들들을 힐카누스 앞에서 고소하다.[㈜ (163-167)은 전쟁. 1권.
유대인 중에서 지도급 인사들은 안티파테르와 그의 아들들이백성들의 신임과 유대백성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과 힐카누스의 재산을 배경으로 하여 점차 그 세력을 키워가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안티파테르에게 대하여 적대감정을 품게 되기에 이르렀다. 다우기 그는 로마의 장군들과 두터운 친분 관계가 있었는데 그들 장군들에게 금전을 하사해 줄것을 힐카누스에게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힐카누스가 막상 금전을 하사하면 마치 이것이 자기가 보낸 선물인 양 위장하여 이를 로마 황제에게 보내곤 하였다. 힐카누스는 이에 관한 소문을 다들었으면서도 이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는 사실상 기뻐하는 것이었다.[㈜ 전쟁은 안티파테르와 로마장군들과의 우정 또는 힐카누스 선물에 대한 그의 횡령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더구나 전쟁. 에 의하면 힐카누스는 안티파테르의 행동에 대해 분개하고 질투했다고 한다. ] 그러나 헤롯이 사실상 얼마나 무자비하고난폭한 독재자인가를 알고 있었던[㈜ 전쟁. 에서 안티파테르의 비난자들은 \’안티파테르나 또는 그의 아들의 거만한 행동에 대하여 불만을 나타내었던 악의에 찬 사람들\’이라 했다.] 유대인들로서는 커다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힐카누스에게 가서 안티파테르를 정면으로 비난하면서 다음과 같이 따졌다 :\’언제까지 이러한 수모를 당하고 있겠습니까\’ 당신에게는 왕이란 명칭만 있을 뿐이지[㈜ 힐카누스는 공식적으로 왕이 아니라 지배자(ethnarch)였다. 참). 주 224.] 안티파테르와 그의 아들들이 실권을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이런 일을 숨긴다고 해결되리라 보십니까\’ 결코 당신 자신과 나라 일에 무관심한방법으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안티파테르와 그의 아들들은 이제는 더이상 당신의 청지기가 아닙니다. 그들은 절대 군주임이 명확해졌습니다. 안티파테르의 아들 헤롯이 에제키아스와 그의 부하들을[㈜ 다른 본문에는 \’그리고 그의 사람들\’] 자기 멋대로 살해한것을 볼 때 이것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산헤드린[㈜ 산헤드린(Synhedrion)은 전쟁. 에는 헤롯의 비난자들에 의해 언급되지 않는다.] 공의회의 선고가 있기 전까지는 사람을 살해하는 것이 명백한 율법의 위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헤롯은 당신의 허락을 얻지도 않고 이러한 행위들을 감히 자행하고 있습니다.
4.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는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서 그의 방자한 행위에 대한 재판을 받기 위하여 서다.
이러한 논쟁을 듣고 있던 힐카누스는 이들의 권유에 그만 설 복되어 버리고 말았다. 또한 헤롯에게 살해당했던 사람들의 어머니들 때문에 그의 분노는 더욱 치솟아 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매일 같이 그들의 성전으로 몰려와 그에게 산헤드린 공의회에서헤롯이 범죄한 사실들을 심판해 줄 것을 끊임없이 탄원하였기때문이었다.[㈜ 강도들의 모친들의 탄원은 전쟁. 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탄원에 감동된 힐카누스는 헤롯을 소환하여[㈜ 이런 경우에 산헤드린과 왕의 자격에 대해서는 Finkelstein ii. 685이하를 보라.] 그가 고소된 죄에 대한 심판을 받도록 하였다.그런데 헤룻은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는데 전념해 온 지도자였기때문에[㈜ 다른 본문에는 \’이 면에서 그들에게 안정을 주는 그의 최선의 관심으로 그것을 생각했던 것처럼.\’] 안티파테르는 헤롯에게 심판을 받으러 갈 때에 단지개인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할 것이 아나라 경호 병사들을대동하고 갈 것을 충고해 주었다. 이에 헤롯은 여행 중의 신변안전을 위하여 일단의 호위 병사들을 거느리고 떠나게 되었다.너무 많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가면 힐카누스에게 위협감을 줄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필요한 병력만을 거느리고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수리아의 총독이었던 섹스투스 가이사는 힐카누스에게 서신을 보내어 헤롯을 심문하지 말고 그대로 석방할것을 요구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 섹스투스 가이사(Sextus Caesar)에 의해 행사된 강요는 Schalit, p. 60에 인용된다. 이는 이때에 유대가 아직 공물을 바치는 국가(civitas stipendiaria)의 위치에 있다는 증거이다. 유대는 폼페이(Pompey)와 가비니우스(Gabinius)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러나 율리우스 가이사(Julius Caesar)는 유대의 정치적인 상황을 이미 개선하였거나 막 개선하였기 때문에 섹스투스 가이사는 그의 권위를 능가하였던 것같다. 부록에 있는 저서목록을 보라.] 발생할 수도 있는 일에 관하여 위협하면서 협박을 해왔다. 이 편지를 구실 삼아 힐카누스는 헤롯을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고통을 주지 않고 석방시키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힐카누스는 헤롯을 마치 자기의 아들처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쟁.과 고대.에 있는 헤롯의 재판에 대한 요세푸스의 이야기는 다소 혼동스럽다. 전쟁. 1권.(211)에서 그는 힐카누스가 섹스투스 가이사로부터 헤롯을 석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212)이하에서 헤롯이 코엘레 -수리 아(Coele -Syria)의 총독으로 임명 받은 이후 그는 군대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리고 만약 제2차 공판이 소집되었다면 힐카누스를 면직할 준비틀 한 것이다. 그러나 계2차 공판이 개정되었는지, 왜 그것이 헤롯 석방 이후에 개정되었는지는(참). 미쉬나, Sanhedrin, iv, 1) 분명치 않다. (170)에서 힐카누스가 헤롯을 가게(ajpolu\’sai) 하였다는 요세푸스의 진술은 분명히 석방을 의미한 것이다. (171-176)에 나오는 진술은(전쟁. 에 병행구 없음) 논리적으로 헤롯 석방에 대한 진술을 앞선다. 이는 후에 삽입된 것으로 보이며 유대전승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랍비 병행에 대해 Derenbourg의 pp. 146-148을 보라). 그러나 또다른 어려움은 고대사에 남아있다. 고대. 14권. 9 : 5(177)에서 요세푸스는 우리에게 힐카누스가 헤롯의 재판을 연기했다고 말해주고 있다. (182)에서 그는 헤롯 친구들이 석방된(ajfesew\”) 그를 기억한다고 진술한다. 이렇게 두개의 병행된 이야기 중 어느하나도 헤롯이 재판을 받고 석방된 것인지 실제적인 재판없이 석방된 것인지 분명치가 않다. 우연히 미쉬나, Sanhedrin ii. 2.에 의하면 왕은 재판을 받을 적임자가 아니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헤롯이 경호 병사들을 대동하고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 산헤드린(synhedrion, 히브리어는 Sanhedrin)은 유대인들의 최고 헌법, 사법 기관이다.] 나타났을 때의 좌중을 압도할 듯한 매우 고압적인 자세였다. 그러자 헤롯을 고소하던 자들은 감히 더이상 그를 비난하는 발언을 할 수 없었고 장내에는 무거운 침묵과 앞으로 진전될 일들에 관하여 궁금한 모습들만 보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있을 때 곧은 성격의 담대한 한사람이 용감하게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다. 그의 이름은 사마이아스(Samaias)라고 하는[㈜ 다른 본문은 \’사메아스\'(Sameas), \’시마이우스\'(Samaeus ; Samaios). 그는 고대. 15권. (3), (370)에 언급되어 있다. 그는 바리새인(Pharisee) 폴리온(Pollion)의 제자이다. 랍바의 지도자와 세마야(Shemaiah)와 삼마이(Shammai)와 사마이아스(Samaias)의 관계에 대해서는 부록에 있는 목록을 보라.] 사람이었다.\’동료 공의회원 여러분, 그리고 우리의 왕이시여! 왕께[㈜ 다른 본문에는 \’우리들.\’] 심문을 받으러 나온 자들 가운데 이처럼 도도하게 나왔던 사람을 저는 아직까지 단 한번도 본적 없을 뿐만 아니라 들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 산헤드린 공의회에 심문을 받으러 나온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항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며, 폐하께[㈜ 추정된 다른 본문에는 \’우리들.\’] 자비를 구하기 위하여[㈜ ejleou qhrwvmenon(-ai)이라는 어구는 유리피데스(euripides), \’Orestes\’, 568에 있다.] 머리를 길게 풀고 검정 복장을 입고 왔었습니다. 그러나 살인죄란 중죄로 고소를 당하여 심문을 받으러 나온 이 헤롯을 보십시오. 자주색 옷을 입고 머리는 단정하게 빗은 채 나오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우리가 율법에 따라 그를 정죄하게 될 경우에는 마치 우리 모두를 죽여 없애 버리고 정의야 어떻든지 간에 자신을 구해 내려는 속셈으로 병사들까지 끌고 온 것을 보십시오. 그러나 제가 여기서 지금 비난하고 또한 월권 행위를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대상은 헤롯이 아니라 헤롯에게 그러한 권한을 부여해 준 바로 당신네 의원들과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기억해 두셔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는 위대하시다는 사실 한가지와 지금 여러분들이 힐카누스 때문에 석방시켜 주려고 하는 이 헤롯이라는 작자가 머지 않아서 언젠가 당신네들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 사마이아스의 이런 연설은 한 군데도 틀린 부분이 없었다. 훗날 헤롯은 왕위에 오른 후에 사마이아스를 제외한 전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과 힐카누스를 살해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헤롯이 사마이아스에게 영예를 베풀어 주었던 것은 두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첫째는 사마이아소의 성격이 정직했으므로 그를 존경했기 때문이었으며,둘째는 예루살렘 성이 훗날 헤롯과 소시우스(Sossius)에 의해 점령당했을 때 사마이아스가 헤롯을 맞아들일 것을 백성들에게 권고하면서 그의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헤롯을 피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백성들을 설득시켜서 백성들로 하여금 그를 성안으로 맞아들이도록 만들었던 인물이 바로 이 사마이아스였기 때문이었다.이러한 일들에 관하여는 차후에 적절한 기회를 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다.[㈜ 고대. 15권. (3).]
5. 힐카누스가 헤롯이 도망하도록 묵인해 주다.[㈜ (178-184)와 전쟁. 1권. (212-215)사이의 병행구는 Laqu
한편 힐카누스는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들의 여론이 헤롯을 처 형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음을 알고 재판을 다른 날로 연기하고는 헤롯에게 은밀하게 사람을 보내어 성읍에서 도망쳐 나갈 것을 충고하였다. 왜냐하면 도망치는 길만이 당시로서는 그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기 때문이라고 타일렀던것이다. 그리하여 헤롯은 마치 그가 힐카누스왕으로부터 피신한것처럼 꾸며 다메섹으로 피신하였으며 섹스투스 가이사와 함께거하면서 그의 신변을 경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리고 이제는만일 그가 다시 산헤드린 공의회로 재판 때문에 소환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안 산헤드린 의원들은 격노하면서 이 모든 일들이 힐카누스 왕에게는 불리한 상황으로 되어가고 있다고 왕을 설득하였다.[㈜ 전쟁. 1권.(212)에서 법정에서 헤롯에게 적대감을 갖도록 힐카누스를 부추긴 것은 산헤드린이 아니라 악한들(ai ponhroiv)이었다.] 그러나 왕은 이러한 상황을 알면서도 워낙 소심하고우둔한 때문이었는지[㈜ 전쟁사는 힐카누스의 \’소심과 우둔함\’을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가 그의 적대자가 큰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기\'(w\” ewvra meivxona to;n diavforon)때문에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또한 섹스투스가 헤롯을 코엘레 수리아(Coele-Syria)지역을[㈜ 전쟁. 1권.(213)에 의하면 사마리아.] 다스리는 군사령관으로 임명하게 되자(물론 이것은헤롯으로부터 돈을 받은 댓가로 허락한 칭호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헤롯이 관직을 산것은 전쟁. 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다른 한편 전쟁. 은 힐카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는 첨부된 이유로 유대인에게 있는 헤롯의 인기를 말하고 있다.] 힐카누스는 혹시나 헤롯이 자기를 죽이러 공격해 오지나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그의 두려움은 곧이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그것은 헤롯이 이전에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심문을 받은 사실에 앙심을 품고 힐카누스를 향해 쳐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헤롯은 그의 아버지인안티파테르와 그의 형제들의 설득으로 예루살렘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전쟁 1권.(214)에 의하면 힐카누스를 면직시키기 위해.] 또한 그들은 헤롯을 만나 그의 마음을 진정시키면서그가 난폭한 행동을 삼가해 줄 것을 촉구하였다. 또한 위협만 주는데에 머물러야지 오늘날의 그가 있기까지 은혜를 준 사람에게 그 이상의 해를 입혀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롯이 분노를 참지 못하자 그들은 그에게 간청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기분 나쁜 면만을 생각하여 배은망덕한 행동을 할 것이 아니라[㈜ 참). 전쟁. 1천.(214)의 to; skuvqrwpon에 대한 Dr. Thackeray의 주.] 네가 살아날 수 있도록 은밀히 석방시켜 준 왕의 은혜를 생각하여 참아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더우기 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너의 군대가 아무리 막강하다고 할지라도[㈜ 다른 본문에는 \’그의 군대 보다\’.] 불의한[㈜ 다른 본문에는 \’불확실성. \’] 행동을 하게 되면 하느님께서 이를 가만 두시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네가 너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었던 왕과그의 측근들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면 너의 군대가 승리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너의 불만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힐카누스가 조금이라도 너를 불신하거나 서운하게 행동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주위의 간신배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기때문이었을 뿐 그가 내심 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에순복하고 단지 그의 막강한 군대를 동원하여 무력 시위를 하는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상이 당시의 유대의 상황에 관한 기록이다.[㈜ 전쟁 .과 병행구절은 여기서 그치며, (268)에서 다시 계속됨.]

제 9 장
안티파테르가 헤롯에게 갈릴리를, 파사엘에게는 예루살렘을 맡긴 것과 유대인들이 안티파테르를 시기하여헤롯을 힐카누스 앞에 고소한 것에 대하여
1. 안티파테르가 유대의 질서를 회복하다.
[㈜ 여기서는 고대.와 전쟁. 사이에 있는 병행본문을 요약한 것이다. (156-170)은 전쟁. 1권.(201-211)과 병행구이다. 참). Laqueur, pp.171-184에서는 다른 곳에서처럼 이 단락에서 후기 요세푸스의 반 헤롯적인 편견의 증거를 발견한다.]
한편 가이사는 수리아의 문제들을 해결한 후에 배를 타고 수리아를 떠났다. 또한 안티파테르는 수리아 밖까지 가이사를 호위한 후에 유대로 돌아와 즉시 폼페이가[㈜ 참). 고대. (144).] 허물어 버렸던 성벽을 다시 쌓아 올리기 시작하였다. 전국을 돌아 다니면서 백성들에게 강경책과 온건책을 번갈아 사용함으로써 무질서를 평정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유대인들을 설득하였다. ‘만일 여러분들이 힐카누스를 지지하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아무에게도 방해를 받지 않고 여러분의 재산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며 평화롭게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들이 혁명을 일으켜혹시나 큰 재산을 손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가지고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면 여러분은 보호자 대신에 감시자를, 한 왕인[㈜ 유대인들에 의해 그는 ‘왕’이라 불리웠고, 로마인들에 의해서는 ‘지배자’라고 불리워졌다. 참). 주 224.] 힐카누스 대신에 독재자 힐카누스를, 통치자 대신에[㈜ 전쟁.1권. (202에는 ‘지도자들과 친구들의 위치에 있는 적들’] 원수인 가이사와 로마군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로마인들이 세운 통치자를 여러분의 힘으로 몰아낼 수 있습니까”안티파테르는 이 같은 방식으로 유대인을 무마하면서 유대를 다스려 나갔다.
2. 안티파테르의 아들인 헤롯이 유대의 총독이 되었으며 도적들을 진압하다
그러나 그는 힐카누스가 우둔하고 태만한[㈜ 전쟁. 1권. (203)은 ‘게으르고 왕에게 필요한 힘 없이 ‘] 성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의 장남인 파사엘(Phasael)을 예루살렘과 그 인근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하게 되었다. 또한 그의 둘째아들인 헤롯에게는 갈릴리 지역을 맡기게 되었다. 이 때의 헤롯의 나이는 불과 15세에 불과하였다.[㈜ 오토(Otto)가 지적하는 것처럼 (‘Herodes’, p.18) 요세푸스가 헤롯의 유년에 대한 강조는 ’15살’은 ’25살’에 대한 필사자의 실수가 아니라고 지적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모순된다. 고대. 17권.(148)에서 그는 헤롯이 그가 죽었을 때(주전 4년가 70살 가량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주전 47년에 25살 가량이었음이 틀림이 없다.] 헤롯은 나이가 연소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소함이 그에게 있어서 결코 장애가 되지 않았다. 남달리 야망이 큰 헤롯은 자기의 용기를 과시할 기회를 찾았다. 그는 인근 수리아 지역을 휩쓸고 다니는 큰 도적떼의 두목이 에제키야스(Ezekias)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수많은 도적 무리와 함께 그를 잡아들여 결국 그를 처형하였다. 이로 인하여 헤롯은 수리아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수리아인들은 이도적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헤롯이 그 일을 해냈기 때문이었다. 이에 수리 아인들은 마을에서나 도시 에서나 재산을 지켜 주고 평화를 되찾게 해 준 헤롯의 업적을 크게 칭송했다. 이로 인하여 헤롯은 가이사 대제의 친척이요 그 당시 수리아의 지배자였던[㈜ 섹스투스 가이사(Sextus Caesar)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섹스투스 가이사(Sextus Caesar)는 주전 47년 여름에 수리아를 통치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참). Scurer i. 309. 그는 폼페이 (Pompey)의 일당인 케실리우스 밧수스(Caecilius Bassus)에게 살해를 당했다. 참). 고대. 14권.(268), ] 한편 헤롯의 형이었던 파사엘(Phasael)은 동생의 이러한 업적에 강한 시기심을 느끼고 또한 헤롯의 높아진 명성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의 동생인 헤롯에게 뒤질 수 없다고굳게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파사엘은 예루살렘 주민들의 환심을 사는 방법을 강구해 냈다. 그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동안 부당하게 일을 처리하거나[㈜ (161)에 나오는 toi'” pravgmasi prosferovmeno”라는 어구는 투키디데스 식의(Thucydidean : Thuc. vi. 44. 4) 표현이다. (162)에 있는 oi|a kai; filei’도 같다(Thuc. iii. 81. 5, iv. 28.3).] 권력을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을 극히 자제해 왔었다. 이렇게 하여 안티파테르는 유대에서 왕의 대접을 받게 되었으며 유대국의 절대 군주로서의 영광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힐카누스에 대한 우정과 충성에 있어서는 조금도 소흘하지 않았다.
3. 지도급 유대인들이 안터파테르와 그의 아들들을 힐카누스 앞에서 고소하다.[㈜ (163-167)은 전쟁. 1권.
유대인 중에서 지도급 인사들은 안티파테르와 그의 아들들이백성들의 신임과 유대백성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과 힐카누스의 재산을 배경으로 하여 점차 그 세력을 키워가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안티파테르에게 대하여 적대감정을 품게 되기에 이르렀다. 다우기 그는 로마의 장군들과 두터운 친분 관계가 있었는데 그들 장군들에게 금전을 하사해 줄것을 힐카누스에게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힐카누스가 막상 금전을 하사하면 마치 이것이 자기가 보낸 선물인 양 위장하여 이를 로마 황제에게 보내곤 하였다. 힐카누스는 이에 관한 소문을 다들었으면서도 이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는 사실상 기뻐하는 것이었다.[㈜ 전쟁은 안티파테르와 로마장군들과의 우정 또는 힐카누스 선물에 대한 그의 횡령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더구나 전쟁. 에 의하면 힐카누스는 안티파테르의 행동에 대해 분개하고 질투했다고 한다. ] 그러나 헤롯이 사실상 얼마나 무자비하고난폭한 독재자인가를 알고 있었던[㈜ 전쟁. 에서 안티파테르의 비난자들은 ‘안티파테르나 또는 그의 아들의 거만한 행동에 대하여 불만을 나타내었던 악의에 찬 사람들’이라 했다.] 유대인들로서는 커다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힐카누스에게 가서 안티파테르를 정면으로 비난하면서 다음과 같이 따졌다 :’언제까지 이러한 수모를 당하고 있겠습니까’ 당신에게는 왕이란 명칭만 있을 뿐이지[㈜ 힐카누스는 공식적으로 왕이 아니라 지배자(ethnarch)였다. 참). 주 224.] 안티파테르와 그의 아들들이 실권을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이런 일을 숨긴다고 해결되리라 보십니까’ 결코 당신 자신과 나라 일에 무관심한방법으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안티파테르와 그의 아들들은 이제는 더이상 당신의 청지기가 아닙니다. 그들은 절대 군주임이 명확해졌습니다. 안티파테르의 아들 헤롯이 에제키아스와 그의 부하들을[㈜ 다른 본문에는 ‘그리고 그의 사람들’] 자기 멋대로 살해한것을 볼 때 이것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산헤드린[㈜ 산헤드린(Synhedrion)은 전쟁. 에는 헤롯의 비난자들에 의해 언급되지 않는다.] 공의회의 선고가 있기 전까지는 사람을 살해하는 것이 명백한 율법의 위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헤롯은 당신의 허락을 얻지도 않고 이러한 행위들을 감히 자행하고 있습니다.
4.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는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서 그의 방자한 행위에 대한 재판을 받기 위하여 서다.
이러한 논쟁을 듣고 있던 힐카누스는 이들의 권유에 그만 설 복되어 버리고 말았다. 또한 헤롯에게 살해당했던 사람들의 어머니들 때문에 그의 분노는 더욱 치솟아 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매일 같이 그들의 성전으로 몰려와 그에게 산헤드린 공의회에서헤롯이 범죄한 사실들을 심판해 줄 것을 끊임없이 탄원하였기때문이었다.[㈜ 강도들의 모친들의 탄원은 전쟁. 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이러한 탄원에 감동된 힐카누스는 헤롯을 소환하여[㈜ 이런 경우에 산헤드린과 왕의 자격에 대해서는 Finkelstein ii. 685이하를 보라.] 그가 고소된 죄에 대한 심판을 받도록 하였다.그런데 헤룻은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는데 전념해 온 지도자였기때문에[㈜ 다른 본문에는 ‘이 면에서 그들에게 안정을 주는 그의 최선의 관심으로 그것을 생각했던 것처럼.’] 안티파테르는 헤롯에게 심판을 받으러 갈 때에 단지개인의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할 것이 아나라 경호 병사들을대동하고 갈 것을 충고해 주었다. 이에 헤롯은 여행 중의 신변안전을 위하여 일단의 호위 병사들을 거느리고 떠나게 되었다.너무 많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가면 힐카누스에게 위협감을 줄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필요한 병력만을 거느리고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수리아의 총독이었던 섹스투스 가이사는 힐카누스에게 서신을 보내어 헤롯을 심문하지 말고 그대로 석방할것을 요구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 섹스투스 가이사(Sextus Caesar)에 의해 행사된 강요는 Schalit, p. 60에 인용된다. 이는 이때에 유대가 아직 공물을 바치는 국가(civitas stipendiaria)의 위치에 있다는 증거이다. 유대는 폼페이(Pompey)와 가비니우스(Gabinius)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러나 율리우스 가이사(Julius Caesar)는 유대의 정치적인 상황을 이미 개선하였거나 막 개선하였기 때문에 섹스투스 가이사는 그의 권위를 능가하였던 것같다. 부록에 있는 저서목록을 보라.] 발생할 수도 있는 일에 관하여 위협하면서 협박을 해왔다. 이 편지를 구실 삼아 힐카누스는 헤롯을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고통을 주지 않고 석방시키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힐카누스는 헤롯을 마치 자기의 아들처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쟁.과 고대.에 있는 헤롯의 재판에 대한 요세푸스의 이야기는 다소 혼동스럽다. 전쟁. 1권.(211)에서 그는 힐카누스가 섹스투스 가이사로부터 헤롯을 석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212)이하에서 헤롯이 코엘레 -수리 아(Coele -Syria)의 총독으로 임명 받은 이후 그는 군대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왔다. 그리고 만약 제2차 공판이 소집되었다면 힐카누스를 면직할 준비틀 한 것이다. 그러나 계2차 공판이 개정되었는지, 왜 그것이 헤롯 석방 이후에 개정되었는지는(참). 미쉬나, Sanhedrin, iv, 1) 분명치 않다. (170)에서 힐카누스가 헤롯을 가게(ajpolu’sai) 하였다는 요세푸스의 진술은 분명히 석방을 의미한 것이다. (171-176)에 나오는 진술은(전쟁. 에 병행구 없음) 논리적으로 헤롯 석방에 대한 진술을 앞선다. 이는 후에 삽입된 것으로 보이며 유대전승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랍비 병행에 대해 Derenbourg의 pp. 146-148을 보라). 그러나 또다른 어려움은 고대사에 남아있다. 고대. 14권. 9 : 5(177)에서 요세푸스는 우리에게 힐카누스가 헤롯의 재판을 연기했다고 말해주고 있다. (182)에서 그는 헤롯 친구들이 석방된(ajfesew”) 그를 기억한다고 진술한다. 이렇게 두개의 병행된 이야기 중 어느하나도 헤롯이 재판을 받고 석방된 것인지 실제적인 재판없이 석방된 것인지 분명치가 않다. 우연히 미쉬나, Sanhedrin ii. 2.에 의하면 왕은 재판을 받을 적임자가 아니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헤롯이 경호 병사들을 대동하고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 산헤드린(synhedrion, 히브리어는 Sanhedrin)은 유대인들의 최고 헌법, 사법 기관이다.] 나타났을 때의 좌중을 압도할 듯한 매우 고압적인 자세였다. 그러자 헤롯을 고소하던 자들은 감히 더이상 그를 비난하는 발언을 할 수 없었고 장내에는 무거운 침묵과 앞으로 진전될 일들에 관하여 궁금한 모습들만 보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 있을 때 곧은 성격의 담대한 한사람이 용감하게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다. 그의 이름은 사마이아스(Samaias)라고 하는[㈜ 다른 본문은 ‘사메아스'(Sameas), ‘시마이우스'(Samaeus ; Samaios). 그는 고대. 15권. (3), (370)에 언급되어 있다. 그는 바리새인(Pharisee) 폴리온(Pollion)의 제자이다. 랍바의 지도자와 세마야(Shemaiah)와 삼마이(Shammai)와 사마이아스(Samaias)의 관계에 대해서는 부록에 있는 목록을 보라.] 사람이었다.’동료 공의회원 여러분, 그리고 우리의 왕이시여! 왕께[㈜ 다른 본문에는 ‘우리들.’] 심문을 받으러 나온 자들 가운데 이처럼 도도하게 나왔던 사람을 저는 아직까지 단 한번도 본적 없을 뿐만 아니라 들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 산헤드린 공의회에 심문을 받으러 나온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항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며, 폐하께[㈜ 추정된 다른 본문에는 ‘우리들.’] 자비를 구하기 위하여[㈜ ejleou qhrwvmenon(-ai)이라는 어구는 유리피데스(euripides), ‘Orestes’, 568에 있다.] 머리를 길게 풀고 검정 복장을 입고 왔었습니다. 그러나 살인죄란 중죄로 고소를 당하여 심문을 받으러 나온 이 헤롯을 보십시오. 자주색 옷을 입고 머리는 단정하게 빗은 채 나오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우리가 율법에 따라 그를 정죄하게 될 경우에는 마치 우리 모두를 죽여 없애 버리고 정의야 어떻든지 간에 자신을 구해 내려는 속셈으로 병사들까지 끌고 온 것을 보십시오. 그러나 제가 여기서 지금 비난하고 또한 월권 행위를하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대상은 헤롯이 아니라 헤롯에게 그러한 권한을 부여해 준 바로 당신네 의원들과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기억해 두셔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는 위대하시다는 사실 한가지와 지금 여러분들이 힐카누스 때문에 석방시켜 주려고 하는 이 헤롯이라는 작자가 머지 않아서 언젠가 당신네들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 사마이아스의 이런 연설은 한 군데도 틀린 부분이 없었다. 훗날 헤롯은 왕위에 오른 후에 사마이아스를 제외한 전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과 힐카누스를 살해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헤롯이 사마이아스에게 영예를 베풀어 주었던 것은 두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첫째는 사마이아소의 성격이 정직했으므로 그를 존경했기 때문이었으며,둘째는 예루살렘 성이 훗날 헤롯과 소시우스(Sossius)에 의해 점령당했을 때 사마이아스가 헤롯을 맞아들일 것을 백성들에게 권고하면서 그의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헤롯을 피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백성들을 설득시켜서 백성들로 하여금 그를 성안으로 맞아들이도록 만들었던 인물이 바로 이 사마이아스였기 때문이었다.이러한 일들에 관하여는 차후에 적절한 기회를 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하겠다.[㈜ 고대. 15권. (3).]
5. 힐카누스가 헤롯이 도망하도록 묵인해 주다.[㈜ (178-184)와 전쟁. 1권. (212-215)사이의 병행구는 Laqu
한편 힐카누스는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들의 여론이 헤롯을 처 형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음을 알고 재판을 다른 날로 연기하고는 헤롯에게 은밀하게 사람을 보내어 성읍에서 도망쳐 나갈 것을 충고하였다. 왜냐하면 도망치는 길만이 당시로서는 그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기 때문이라고 타일렀던것이다. 그리하여 헤롯은 마치 그가 힐카누스왕으로부터 피신한것처럼 꾸며 다메섹으로 피신하였으며 섹스투스 가이사와 함께거하면서 그의 신변을 경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리고 이제는만일 그가 다시 산헤드린 공의회로 재판 때문에 소환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이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을 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안 산헤드린 의원들은 격노하면서 이 모든 일들이 힐카누스 왕에게는 불리한 상황으로 되어가고 있다고 왕을 설득하였다.[㈜ 전쟁. 1권.(212)에서 법정에서 헤롯에게 적대감을 갖도록 힐카누스를 부추긴 것은 산헤드린이 아니라 악한들(ai ponhroiv)이었다.] 그러나 왕은 이러한 상황을 알면서도 워낙 소심하고우둔한 때문이었는지[㈜ 전쟁사는 힐카누스의 ‘소심과 우둔함’을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가 그의 적대자가 큰 힘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기'(w” ewvra meivxona to;n diavforon)때문에 행동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또한 섹스투스가 헤롯을 코엘레 수리아(Coele-Syria)지역을[㈜ 전쟁. 1권.(213)에 의하면 사마리아.] 다스리는 군사령관으로 임명하게 되자(물론 이것은헤롯으로부터 돈을 받은 댓가로 허락한 칭호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헤롯이 관직을 산것은 전쟁. 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다른 한편 전쟁. 은 힐카누스가 그를 두려워한다는 첨부된 이유로 유대인에게 있는 헤롯의 인기를 말하고 있다.] 힐카누스는 혹시나 헤롯이 자기를 죽이러 공격해 오지나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그의 두려움은 곧이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그것은 헤롯이 이전에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심문을 받은 사실에 앙심을 품고 힐카누스를 향해 쳐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헤롯은 그의 아버지인안티파테르와 그의 형제들의 설득으로 예루살렘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전쟁 1권.(214)에 의하면 힐카누스를 면직시키기 위해.] 또한 그들은 헤롯을 만나 그의 마음을 진정시키면서그가 난폭한 행동을 삼가해 줄 것을 촉구하였다. 또한 위협만 주는데에 머물러야지 오늘날의 그가 있기까지 은혜를 준 사람에게 그 이상의 해를 입혀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주지시켜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롯이 분노를 참지 못하자 그들은 그에게 간청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기분 나쁜 면만을 생각하여 배은망덕한 행동을 할 것이 아니라[㈜ 참). 전쟁. 1천.(214)의 to; skuvqrwpon에 대한 Dr. Thackeray의 주.] 네가 살아날 수 있도록 은밀히 석방시켜 준 왕의 은혜를 생각하여 참아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더우기 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너의 군대가 아무리 막강하다고 할지라도[㈜ 다른 본문에는 ‘그의 군대 보다’.] 불의한[㈜ 다른 본문에는 ‘불확실성. ‘] 행동을 하게 되면 하느님께서 이를 가만 두시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네가 너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었던 왕과그의 측근들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면 너의 군대가 승리할 수 만은 없을 것이다. 너의 불만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힐카누스가 조금이라도 너를 불신하거나 서운하게 행동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주위의 간신배들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기때문이었을 뿐 그가 내심 하고 싶어서 그렇게 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에순복하고 단지 그의 막강한 군대를 동원하여 무력 시위를 하는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상이 당시의 유대의 상황에 관한 기록이다.[㈜ 전쟁 .과 병행구절은 여기서 그치며, (268)에서 다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