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문 Ⅵ 예루살렘 감독 재직시 행한 요세푸스의 설교

 


   논  문  Ⅵ



  예루살렘 감독 재직시 행한 요세푸스의 설교



하데스에 판한 설교의 발췌된 그단편(Fragment)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작품으로서, 그가 트라얀 황제말기에 예루살렘의 감독으로 있을 때 설교 또는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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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티우스(Photius)의 전집 사본. 48권에 보면 두개의 소논문이 수록된 작은 헬라어 책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 두 논문의 제목은  사본에 따라 \’우주에 관하여\’, \’우주의 동인(動因)에관하여\’ \’우주의 본질에 관하여\’ 등으로 나타난다. 이와 비슷한제목이 히폴리투스의 유명한 기념비에 쓰여진 대로 히폴리투스(Hippolytus)의 논문에도 붙여져 있다. \’미로(Labyrnth)\’ 라는책을 썼던 가이오(Caius)라 하는 장로의 논문에도 그와 비슷한제목이 붙여져 있는데 바로 그 책에서 그는 자신이 그러한 논문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그 제목에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부제가 붙어 있다. 포티우스는 \’플라톤에 의하면\'(katal Plavtwna) 또는 \’플라톤에 반대하여\’ (katal Plavtno\”)라는 이 논문을 읽어 보았으며 저자에 대해서 사람들에 따라 요세푸스, 져스틴 마터, 이레니우스 등으로 엇갈리게 말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또 포티우스 자신은 가이오가 썼을 것이라고 한다.또한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사본들은 \’마귀의 거처 혹은 나라에 대하여\’, \’하데스에 관하여\’ 라는 제목의 두 설교 중 후자(하데스에 관하여)의 단편 사본들은 몇 개이다. 마귀에 대한 부분을 전해지지 않고, 다만 하데스에 관한 것만 전해지고 있다.가장 초기의 유물 중 이것이 가장 귀중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 단편은 호에셀리우스(Hoeschelius)가 포티우스에 관한 그의 논문 p.9-12에 막스 마르군티우스(Max. Marguntius)에게서 얻은 필사본을 헬라어로 처음으로 출판하였으나 라틴어로 번역하진 않았다. 르 므완(Le Moyne)은 호에셀리우스가 출판한 것과거의 홉사한 사본을 가지고 그 헬라어와 라틴어로 출판했는데,그 저자를 히폴리투스(Hippolytus)라고 했다. 내가 알기로 히폴리투스라는 이름은 그 어떤 사본에도 없고, 다만 요세푸스의이름만이 나타난다. 르 므완은 황당무계한 가설을 세워 그렇게주장한다. 즉 히폴리투스의 기념비에 \’우주에 관하여\’ 라는 말이쓰여 있기 때문에 이 단편이 그 논문과 같은 것이라는 근거없는주장을 하게 편다. 파브리시우스(Fabricius)도 카르디 날 코이슬린(Cardinal Coislin) 도서관에 있는 한 사본을 언급한다. 험프리스(Humphreys) 박사도 힉스(Hicks) 박사의 허락을 얻어 그의 영문판 아데나고라스(Athenagoras)의 끝부분에, 그랩 (Gra-be)박사의 논문에 나오는 바로키안(Baroccian)사본을 인용해출판했다. 이 사본은 분량이 다른 것보다 1/4가량이나 많은데모두 진품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가장 값진 사본이라 할 만하다. 이 사본은 나중에 요세푸스의 것으로 인정해서 그의 전집 속에 포함되어 출판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진품이라고 믿는학자는 거의 없었다. 하버캠프(Havercamp)판 \’Tom. ll.Add-end.\’의 p.145-147을 보라. 그 제목이 \’헬라인에 대한 요세푸스의 권면 발췌문\’으로 되어 있고, 그 앞에 혹은 뒤에 \’플라톤에 의하면\’ 또는 \’플라톤에 반대해서\’ 라는 근거없는 부제가 붙어 있다. 잘못된 부제 때문에 현대 비평가들은 우리가 가진 그 단편이포티우스가 언급한 것과 같은 책의 것이라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르 므완판과 하버캠프 p.74, 알레니우스(Arlenius)의 서문J. 하기우스(Higius)의 서론(Prolegom)과 같은 책 p.95, 파브리시우스(Fabricius)의 \’요세푸스에 대하여\’ 와 같은 책. p.64를 보라. 얼마나 엉뚱한 생각인가! 거의 일치하고 있는 제목 부분을 제외하고는 그 글들의 형태와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 포티우스의 소논문은 우주의 동인, 또는 본질 그리고 하데스에 관한 것이었다. 그중 우리가 가진 것은 하데스에 관한 단편이다.포티우스의 논문(포티우스가 지은 것이 아니라 그의 전집에 언급된 소논문)은 플라톤의 주장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우리가 가진 단편은 플라톤에 대해서 단 한번 언급하고 있는데그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포티우스의 논문은 플라톤의 영혼과물질과 부활에 관한 교훈에서 자기 모순에 봉착했다고 말하고있다. 우리 가 가진 단편은 그러한 것에 대한 플라톤의 사상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다. 포터우스의 논문은 알키누스(Alcinous)라는 철학자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 그에 대한 것도 우리가 가진 단편에는 없다. 더구나 알키누스는 요세푸스가 죽은 지이미 오래인 3세기 전에 살았는지 아니면 4세기에 살았는지도분명치 않다.아마 져스틴 마터, 이레니우스, 히폴리투스, 가이오, 그 외 그 논문의 저자도 지목되는 많은 사람들보다는 오랜 후에 살았을 것이다. 파브리시우스 전집 헬라판. 4권 2부 2절을 보라. 포티우스의 논문은 유대 민족에 관하여 전혀 언급이 없다. 포티우스의 논문은 인류가 처음부터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는 사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포티우스 자신의 말로는 이런 사상이 유대인들 특히 요세푸스에게는 별 가치없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우리가 가진 단편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몸의 부활을이야기 함으로써 오히려 그러한 생각에 반대하고 있다. 포티우스의 논문은 그리스도의 신비한 출생과 신성 (神性)에 대해서 포티우스적 혹은 아타나시우스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우리가 가진 단편은 그런 식의 말은 전혀 없고 단지 \’하느님의말씀이신 그리스도(Christ God the Word)에게 성부는 세상을심판할 권세를 주셨다\’ 고 하는 사도시대의 문체와 똑같은 양식으로 쓴 것이 있을 뿐이다. 포티우스의 생각과 같이 그의 논문은 요세푸스의 다른 저작물과 그 문체가 거의 동일하다(비록 포티우스가 요세푸스 자신의 말을 직접 인용한 것이 조금도 나타나지는 않지만)모든 학자들이 알다시피 요세푸스는 아덴의 방언을 사용했고 우리가 가진 단편도 거의 전적으로 헬라 스타일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여러 비평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큰실수를 하게 되었는지 그저 놀랄 뿐이다. 포티우스가 말한 소 논문들은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고대나 현대의그 어떤 사람도 그것을 인용한 적이 없다. 단지 필로포누스(Philoponus)가 주후 600년 경 L.111. C. 16에서 인용했을 뿐이다. 필로포누스의 책에도 포티우스가 우리가 가진 단편을 보았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소 논문들은 포티우스와 필로포누스가 인용한 정도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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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하데스에 관하여\’ 라는 우리의 단편으로 돌아가 보자. 이 단편은 그 내용이 아주 탁월하며 그 영향력이 지대하여 가히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문건이라 할만하다. 그 연대와 저자에 대한 내적 특성과 외증을 살펴보자. 우선은 내부적인 증거를 살펴보자.



  (1) 우리의 단편에 나오는 음부에 있는 영혼의 중간기 상태즉, 죽음과 부활 때까지의 영혼에 대한 교리는 복음이 처음 전해지던 시대의 일반적인 사상과 동일하다. 여러 세대가 지나면서그러한 주장은 빛을 잃게 된다.



  (2) 1절에서 아직은 그래도 희망이 있는 죄인들이 하데스에서천사들에 의해, 자신들의 죄를 씻고 완전히 회복되도록 \’일시적인 형벌\’ 을 받는다는 주장은 사도 시대의 저술가 헤르마스(Her-mas)의 주장과 비교할 때, 이생에서의 형벌에 대해서는 하데스에서의 형벌에 대해서까지 거의 동일하다. (즉ⅲ. 2, 7절 ; 유사한 기록은 vii. 23절 : viii, 3,8절 : ix. 6,9,13,16절)이 주장 역시 오래 전에 부분적으로 사라져 갔다.



  (3) 그랩 박사가 그의 선집(選集)에서 1절. p.353에서 에녹(Eno-ch)과 여러 사도들, 그리고 사도시대의 교회들의 주장이라고 말한 가장 초기의 주장이 이 단편 2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보면, 마귀이든지 사람이든지 그 어떤 악한 존재도 바로 그 당시는 물론이고 심판 날까지는 \’게헨나\’ 즉, 지옥불에 던져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 8 : 29, 유 1 : 9, Enoch 6절, \’진정한 기록들\'(Authentic Records)의 1부 p.265 등과 또한 1세기 이전 모든문서의 주장들과 같다. 4절에서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실제로지옥의 고통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겪어야 할 비참함과 최후의 날에 직면할 그들의 운명에 대한 공포에서 온다는것이다. 이 주장도 상당 부분이 곧 기독교인 사이에서 사라지게 된다.



  (4) 1절과 3절에서 선한 사람들은 죽어서 \’우편\’ 또는 \’빛\’으로, 악인은 \’좌편\’ 또는 \’어둠\’으로 어떤 문을 통해 들어가게 된다고 쓰여 있다. 이것은 에스드라 4서 7 : 13~14, 8 : 12 ;마2313, 25 : 30 그 외 1세기 당시 또는 그 이전의 모든 문서들의주장과 유사하다.



  (5) 3절에서 선한 사람이 죽으면 바로 천사들의 인도에 의해\’아브라함의 품\’이라 칭하는 곳으로 간다고 한다. 이것은 1세기에 쓰여진 눅 16 : 22, 23과 사도헌장(Constitutions)8:41과같다.



  (6) 이 단편 4절에 보면 의인과 하데스의 악인 사이를 갈라놓은 \’혼돈\’과 \’큰 구렁\’ 에 대한 언급이 있다. 악인은 거기서 행복에 젖은 선인을 보고 자신이 거기서 제외되었음으로 인해 더 큰비천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1세기의 작품인 눅 16 :23 이하와 13 : 28의 것과 일치한다.



  (7) 이 단편 5절에서 또한, 무덤에 있는 육체들을 다시 열매를 맺게 될 \’뿌려진 씨\’ 와 \’곡식 낟알\’ 에 비유하고 있다. 부활에 대한 입장도 1세기의 것들인 사도 바울의 고전 15 : 37,38과 사도적 헌장(Apostolical constitution)과 거의 유사하다.



  (8) 이 단편 5절에서 사용한 에펜뒤사메노스(ejpendusaveno\”)라는 표현은 부활시에 영화로운 몸으로 \’덧입는다.\’라는 1세기 사도 바울의 고후 5 : 2과 동일하다.



  (9)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에 대해 이 단편 6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말씀이신 하느님(God theWord)으로서 성부 하느님\’과 구별된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위임받는 세상의 심판자\’ 이다. 이것은 후 세대의 모든 철학적인 개념이나 용어들과는 무관한, 가장 초기의 사도적 인 표현방식인요 1 : 1과 행 16 : 31의 것과 일치한다.



  (10) 하데스와 구별되는 게헨나 즉,  지옥에서 당하게 되는 \’꺼지지 않는 불\’의 형벌과 \’벌레도 죽지 않는\’식 의 단편 2,6절 표현은 1세기의 작품인 막 9: 44, 46,\’48의 주님의 말씀과 동일하다.



  (11) 조금 변형된 1세기의 사도 바울의 구약 인용이 고전 2 : 9에 나타나는데 이 단편 7절에서도 축어적으로 기록되었다. 즉,천국에서의 행복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하느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 과 같을 것이다.



  (12) 8절에는 우리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주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어떤 상태에 있든지 나는 너를 발견할 것이고 만물의 마지막이 우리에게 도래할 때 나는 너를 심판할 것이다\”(!Ef! oi|\” a[n eJu;rw ujmo\’\”, epi; tovutoi\” krinw\’ parj e[kasta. boa\’ to; telo\” tw\’n ajpavntwn).이것의 유래가 오래된 것이라는 두 가지 증거가 있다. 그 하나는 져스틴 마터의 글에 이 문구가 그대로 인용되고있다. 그곳에서 주님 자신의 말씀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이 인용문은 요세푸스가 가장 잘 인용하였을 것인데, 히브리인이나, 나사렛인에 의해 기록된 복음서에서 인용했을 것이다. 그랩의 선집(選集) 2절. p.14, 327을 보라. \’만물의 마지막\’이라고우리 주님이 하신 그 말은 요한계시록 1 : 8, 21 : 6, 22 : 13에서\’시작과 끝\’ 이라고 세 번이나 사용한 호칭의 뒷 부분을 그대로모방한 것이다. 이것은 이 단편(혹은 설교)의 저자가 사도 요한의 계시록을 보았거나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암시한다. 트라얀이 통치하기까지 생존해 있었던 요세푸스가 처해 있던 상황과 계시록이 기록된 후 몇년 후의 상황은 거의 일치한다.이것이 필자가 이 설교의 계시록 연대로 가장 많이 연구해온 것중에서 가장 최후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13) \’영광과 권세가 영원토록 하느님께 있을지어다 아멘\’과같은 식의 맨끝에 있는 송영은 할례받은 유대인 사도인 베드로의 벧전 4 : 11-5 : 11과 사랑받은 제자 사도 요한의 계 1 . 6의 바로 그 송영이다. 베드로, 요한 모두 1세기의 유대인이다.



  (14) 이 단편 혹은 설교의 특성은 사도 바울의 사도적 서신들의 특성과 같다. 사도 바울은 그의 전제가 무엇이든지 서신서의결론에 항상 실천을 위한 기독교인의 도덕과 권면을 덧붙였다.그와 같이 우리의 저자도 이 단편 혹은 설교 7~8절에서 그의 청중들인 헬라인 혹은 이방인들에게 의미 깊고 실제적인 권고를 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그 단편이 기독교 초창기, 가장 중요했던 기독교시대의 것이라는 특징이 될 것이라고 본다.



  (15) \’내적 특성\’에 대한 결론 ;이 단편(혹은 설교)의 유형을살펴보면 거의 헬레니즘적인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글은 사도시대의 기독교 내에 널리 퍼져 있다가 폴리캅의 순교 이전, 적어도 2세기 중반 전에 사라졌다. 필자의 생각에 이 단편이 1세기이후 혹은 2세기 초 이후의 것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 전체 내용상 그 이후 다른 시대의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3



 이제 이 단편(혹은 설교)이 예루살렘의 유대인 교회, 나아가그곳의 감독으로 있던 요세푸스의 것이라는 증거의 두 번째면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그의 생애에 관계된 것과, 말기에처해 있던 상황을 살피보아야겠다. 요세푸스에 대한 필자의 논문의 첫 부분에서 말한 대로, 그는 베스파시안(Vespassian) 시대에 헬라어로 \’유대 전쟁사\’를 기록했다. 그리고 도미티안 재위13년인 주후 93년에 \’유대고대사\’를 출판하였고, 트라얀 3년인주후 100년에 \’유대고대사\’의 부록으로 \’자서전\’을 썼다. 앞에서본 논문Ⅳ 32절에서 밝힌 대로 요세푸스는 주후 93년 조금 전 \’유대고대사\’로 따지면 다니엘서를 다룰 때까지도 자신이 나사렛파 혹은 에비온파 기독교인이라는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다가,그 이후로 그러한 모습을 많이 나타낸다. 하지만 주후 93년 이후그가 어디 살았으며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케이브 박사는 그의 \’문학사\'(Historia Lit-eraria)에서 요세푸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그는 93년(어쩌면 이것이 주후 100년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까지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그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라고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보면, 그 자신의 글이나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서 그에 관계된 분명한 언급들을 찾아낼 수 있다. 그는 그의 \’자서전\’ 끝 부분에 기록하기를 베스파시안과 그의 두 아들 티투스와 도미티안이 그에게 로마 시민권을주고 연금을 하사했으며, 자신에게 고향인 예루살렘 근처의 땅을 주고, 이름을 따로 밝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겐 유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땅을 주었으며, 특히 도미티안은 토지세를 면제해 주기도 하는 둥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으며 그들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그는 네르바(Nerva)나 트라얀 그 누구도 그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가 거의내내 로마에 살았다는 것도 알려졌다. 하지만 이미 말한 대로그의 유일한 후원자였던 도미티안이 죽은 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선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아피온반박문\’ 1권에서자신이 유대민족과 함께 유대에 거하고 있다고 세 번씩이나 말하고 있다. 1,31,35절 \’우리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나라\’ (cwvran nu\’n e[comen+)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나라\'(cwvran thvn nu\’n oijkoumevnhn uJg! hJmw\’n+) \’우리가 지금 정착한 나라\'(cwvra\” h|\” nu\’n katoiko u\’men+)로 되어 있다. 그는 또한 유대백성이 과거에도 그랬듯이미래의 어느 때가 되면 자기 나라가 그 역사로 되찾게 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보여 준다.(6절) 그때는 그들이 이방 세계로흩어지지 않고 유대에 다시 정착할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요세푸스는 그의 \’유대고대사\’의 끝 부분에 \’유대전쟁사\’와 도미티안 재위 13년까지의 유대의 역사를 계속 기록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 말은 그가 그 전에 예루살렘멸망까지의 유대 역사를 자세히 기록해 놓았듯이, 그 당시 그가 살고 있는 때의 기록까지 계속하려고 마음먹었다는 의미로보인다. 그가 당시 유대에 자기 민족과 함께 있지 않았다면 앞서 기록한 역사같이 정확하게 기록한다는 보장은 없었을 것이다.

   트라얀시대에 유대인들이 유대에 거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가짜 메시야인 바르코카브(Barchocab)의 지휘 아래 엄청난폭동을 일으킨 사실에 의해 잘 알려져 있다. 그 폭동은 580,000명이 도륙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그가 계속해서 1인칭 복수형인 \’우리가\’ \’우리를\’ 따위의 표현을 쓰고 있음을 봐서 요세푸스 자신은 로마에 있으면서 글 속에서 단지 자신을 백성의 일부로 포함시킨 것이 아니라,그가 실제로 유대에 자기 민족들과 함께 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후원자 도미티안 사후 그의 상황을 봐서도 그러한 추측이 가능하다. 그는 더 이상 네르바나트라dis의 호의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특히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해서 엄청난 반란을 모의하던 트라얀 말기에는 더욱 그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전과 연명을 위해 요세푸스가 갈 곳이라곤 고향 예루살렘밖에 더 있었는가? 이전 황제가 그에게 준 땅이 또 그 근처에 있었다. 이러한 여러가지 증거가 말하듯이 트라얀 재위 기간에 요세푸스는 분명히 유대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거의 예루살렘에 있었을 가능성이크다. 이미 그 오래전에 그가 나사렛파 또는 에비온파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을 감안하면, (논문1. 전체를 보라)그가 예루살렘에 있는 나사렛파 또는 에비온파 기독교인과 더불어지냈다는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은 거의 없다. 거기서 아마 그는감독직을 맡게 되었을 것이다. 유세비우스가 티투스의 예루살렘파괴와 아드리안의 제2차 파괴 기간에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할수 있었다는 기록이 극히 소수가 전해진다(\’교회사\’.4과\’Praep. Evang.\’111.5). 그 교회는 꽤 큰 교회였다. 그리스도의 계명과 함께 모세의 율법을 지켰고, 적어도 할례받은 15명의 감독이 있었다. 주님의 동생인 야고보도 거기 포함된다. 각 감독의재임 시기나 기간은 전혀 알 수 없다. (Pearson,\’De Success,Rom. Episc.\’p.78) 아드리안에 의한 그 엄청난 파괴는 사람은물론이고 그 시대 국가의 모든 기록까지 초토화한 것 같다. 헤게시푸스(Hegesippus)의 말대로, 유세비우스가 주님의 동생인야고보의 죽음이나, 유명한 요세푸스의 죽음을 알면서도 기록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유세비우스 \’교회사\’ Bll.20). 어쨌든 그가15인의 감독의 목록을 밝혀 내었고 그 14번째가 요세푸스였음은분명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가 교회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모세의 을법을 지켰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나사렛파 또는에비온파 기독교인 아니면 카톨릭 기독교인이었을 것이다. 이미잘 알려진 대로 사도들과 그들과 함께 한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모세의 의식법을 준수했다. 특히 그들이 유대지역에 거주할 때는 더욱 그러했다. 한편으론 그러한 준수의 절대적 필요성을 부인하는 전제하에 함께한 유대인들이 다른 형식을취하는 것을 허용했다 \’칭의\’와 \’구원\’은 그 율법에 의한 것이아니라, 그리스도의 속죄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그러한 것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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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의 내용에 이어서 나머지 논거들을 살펴보자 이 중몇 가지의 \’외부적인 증거들\’ 이다. 그에 비추어 볼때\’ 요세푸스와 같은 할례받은 유대인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이 단편(혹은 설교)을 썼다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1)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한 이 연설에서 저자는 계속해서 그믿지 않는 자들을 \’E$llhne\”    \’, 즉 헬라인 또는 이방인이라 칭하고있다. 이것이 바로 그 저자가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 신자임을 암시한다고 본다. 이 유대인과 헬라인 또는 이방인은 종교적 기준에 의해 인류를 나누는 근본이 되는 구분으로 신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이 설교가 전적으로 헬라인 또는 이방인을 향한 것이었고, 저자가 거기에 속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를 유대인이나 요세푸스로 봐야 한다.



  (2) 이 설교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작문 형태가 내가 보기엔 신약성경의 글이나 성 바나바의 서신서들과 거의 흡사하다. 그들모두는 유대인이었다. 사도헌장과 클레멘트, 이그나티우스, 또는 폴리갑의 서신서, 그외 여러 이방인 출신으로 사도격인 사람이 쓴 글의 분위기와 작문 형태와는 다르다. 이러한 필자의 판단은 모든 유능한 비평가들이 그 진위를 가려줄 것이다. 내 판단이 옳다고 비평가들도 인정한다면 이 글은 유대인 요세푸스에게정확히 부합된다.



  (3) 전체적인 설교 내용은 물론이고, 시작과 중간의 두 번에걸친 인사말,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송영에 있어서까지 이 단편은 내가 늘 말하던 \’기독교적 설교(Christian homily)\’의 특질을나타내고 있다. 초기에 쓰여 후세에 전해진 이러한 논문들이나설교들은 거의 대부분이 당시 가장 지혜롭고, 학식이 뛰어났으며 교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인 감독들에 의한것이었다. 유세비우스가 작성한 1세기의 3개의 논문과 설교의목록을 보면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인 감독 요세푸스가 그 저자라는 견해에 잘 부합된다.



  (4) 이 단편 3,4절에 언급된 \’조상들(fathers)의 미소\’, 그리고 의인들이 있는 곳과는 분리된 하데스에서 바라본 장소, 혹은조상들(fathers)의 찬양대\’ 등은 이 설교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조상들이 눅 13 : 28, 16 : 24,25,27 등에서와 같이 저자의아버지(조상)도 됨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저자는요세푸스처럼 유대인이어야 한다. 필자는 이 단편의 저자가 유대인이 유대인에게 말할 때 보통 사용하는 \’우리 아버지\’ 라는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유대인이 이방인에게 말할 때 \’그 아버지\’라고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5) 이 단편 6절에서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Qeo\” Logo\” , 즉 \’말씀이신 하느님\’ 이라는 표현은 기독교 1세대들에게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다만 사도헌장 5: 16, 19, 20, 6: 11, 7: 26, 8: 1,12등과 유대와 그 인근의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많은사람들의 글에서 나타난다.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의Magnes.6절, Philadelph. 4, 6절, Smym. 1절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Exhort. p.74, 75.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오리겐-그는 얼마동안 유대에 머물기도 했다-의 요한복음 주석 p.49. 안디옥 회의의 \’Prim. Christ.\’개정판 3권 p.430. 그리고 팔레스틴 가이사랴 감독을 두번이나 맡았던 유세비우스의 \’복음에의 준비\’ p.443과 예루살렘 회의에 제출된 아리우스와 유조이우스 (Euzoius)의 신조 같은 책 p.487 등을 보라.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의 경우 후기의 자신의 글들에서는 물론이고 니케아 회의 이전에도 16회 이상 그러한 표현을 사용했다.\’고대 비문 총록\'(Collection of Ancient Moment) p.73을 보라.이러한 특징은 유대에 사는 유대인 개종자이며, 아마 예루살렘의 유대인 교회의 감독이었을 요세푸스에게 가장 잘 부합된다.사도헌장 6 : 6에 나오는 예수가 단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초기 에비온파의 주장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한 사실은 유세비우스가 15인의 유대인 감독들에 의해 지도된예루살렘 교회에 대해서 묘사한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들은 참으로 그리스도를 옳게 알았다. \’ 말하자면 유세비우스가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믿었다는 것이다. 수스피키우스 세베루스(Suspicius Severus)의 설명과 같이 이 말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스피키우스세베루스는 \”이 교회는 거의 보편적으로,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면서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인정한다\”(\’Llb.\’2권 45절)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정확히 요세푸스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그는늘 열성적인 모세 율법의 옹호자였다. 그리고 그의 유명한 그리스도에 관한 글 \’유대고대사\’ 18권 3장3절에서 나타나듯이 그는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한 근거는 그가한 말 \”만일 그가 사람이었다면 아주 지혜로운 사람….\”에 있다.(\’유대 고대사.\’1권 12장 2절의 각주(휘스톤판)를 보라) 요세푸스가 한때 오랫동안 에비온파에 속했음이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우리는 오리겐을 통해서 그들 에비온파의 일파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했음을 알고 있다(켈수스 논?박, 5권 p.272, 274). 물론이 단편(혹은 설교)의 저자가 신약성경 특히, 나사렛파나 에비온파가 가장 싫어했던 바울의 서신서 부분을 많이 인용하고 있으며, 모세의 율법을 좇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로 미루어 보아 그가 모세 율법을 받아들이면서 더불어 카톨릭 기독교를받아들인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러한 사실이 예루살렘교회의 감독인 요세푸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유대의 모든 기독교회에 해당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료의 부족으로 더이상 알 수는 없다. 당시 교회의 기록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이라곤 야고보의 서신서와 이 단편이 전부이다.



   (6) 요세푸스가 저자라는 또 다른 내부적인 증거는 \’유대전쟁사\’ 3권 7장 28절에서, 일반적으로 자주 사용되지 않은 헬라어 brasmo;\”ejkxravsswn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세푸스는다른 곳에서도 이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하고 있는데, 필자가 알기로는 다른 헬레니스트(헬라어를 사용한 유대인)들은 이단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



  (7) 이 단편(흑은 설교)의 내용에서 히브리어 사본의 구약을 사용했던 유대인 교회에 속한 누군가가, 특히 요세푸스가 그 저자라는 결정적인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이제 살펴보면, 헬라인 또는 이방인들을 향한 연설부분에 헬라어 신약성경의 인용이나 언급이 거의 40회 가량 나온다. 구약은 히브리어든지 헬라어든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하데스에 관한 부분에서는신약보다 구약에서 5배 이상 더 자주 인용되고 있다. 대상에 따른 이러한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헬라인이나 이방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인 히브리어 성경만을 사용한 예루살렘 교회의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곳에서(\’구약 개요\’p.184-195와 Suppl.\’p.45-48) 필자가 그의 글들을 통해 증명했듯이 특히 요세푸스는 늘 히브리어 성경만을 사용했고 히브리어책들만을 접했다. 이방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므로 이 단편(또는설교)의 저자는 히브리어 구약을 덮어 두고 헬라어로 쓰여진 신약성경에만 집착하게 되었을 것이다 (마태복음 등 많은 인용과언급이 헬라어 신약에 의존한다는 것이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필자가 다른 곳에서 증명했다. \’구약 개요\’ p.182,183). 사실 엄밀히 말하면 구약에 속하는 예언서 에스드라 4서로부터 인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두 번 나타난다. 첫째는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없는 운명이 된 원인은 우리의 처음 조상의 불순종에 대한 부분이고 (에스드라4서 3:7), 둘째는 심판의 날에 악인들에 대해선 화목을 위한 중보가 소용 없음을 말하는 부분이다(에스드라4서) 7:35~47. 비록 그것이 실지로 에스드라서에서 인용한 것이라 할지라도 여기서 제시된 우리의 주장을 반박할 만한 것은 못된다. 이것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요세푸스 당시의 문서 중 유일한 것임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우리의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헬라인들에 대한 이 연설에서 신약뿐 아니라 그러한 부분을 인용했다는 것이 하등의 이유가 없다.



 5



지금부터는 외부적인 증거, 다시 말하면 고대의 여러 자료들과 증언들을 살펴 보겠다. 번호는 앞에 것을 계속이어서 쓰겠다.



  (8) 포르피리(Porphyry)는 그의 네번째 책(peri; uJpoch\’\”)에서 요세푸스의 책 세권으로부터 인용해서 에세네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유대전쟁사\’제2권, 유대고대사\’의 제18권, 그리고 Pro;\” tou;\” E$llhna\” \’헬라인에게\’라는 제목의 연설을 담은 두책중 제2권이다. 마지막 것은 필자가 보기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두 설교의 두번째에 해당하는 것이다. 거기 보면 그의 주장은 거의 에센파와 일치한다. 별다른반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 강연 내용이 밝혀지면 더 분명히 드러낼 것이다. 포르피리가 \’아피온반박문\’ 제2권을 말했을것이라고 하는 지금까지의 여러 비평가들의 주장은 이 단편에서\’아피온반박문\’을 암시하는 제목이 붙은 적도 없고 아피온반박문 제2권에 에세네파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비추어근거 없다고 볼 수 있다.



  (9) Lequien이 편집한 18세기 존 다마신(John Damascen)의\’Parallels\’ p.789에 보면 별 반론없이 이 단편(혹은 설교)이 요세푸스의 작품이라고 인용하고 있다. 그 중 몇 구절에 대해선 파브리시우스가 더 분명하게 요세푸스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하버캠프판 p.64.



  (10) 조나라스(Zonaras)도 별 이의없이 요세푸스의 것이라고인용하고 있다. \’Annal.\’1권 p.267. 그는 11세기 사람으로 요세푸스에 대해 아주 정통한 사람이었다.



  (11) 필자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가진 네 사본 모두 요세푸스외에 그 누구도 저자로서 지목하고 있지 않다.



  (12)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 2권 9장 1절의 한 사본에 보면이것이 포함되어 있는데,그 상당부분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조나라스가 인용한 것이다. 조나라스의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 관한 유명한 증언의 바로 다음에 위치해 있다. 이 뛰어난 두 글이 같은 사본에 그것도 다른 한 책에서와 같은 순서로 배치되었다는 그것이 바로 그 책에서 따온 것이라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따라서 여기선 조나라스의 글에서 따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조나라스의 것과 분리해서 생각한다면 별 중요성이 없을 것이다.



  (13) 여하튼, 이 단편(흑은 설교)은 \’진리를 찾는 자들을 위해 여기 기록된 것보다 더 자세한,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을 발표한 적이 있는 사람이 쓴 것임에 틀림없다. Peri; oueJteroi\” leptom erevsteron dielhluvqamen, pfo;\” tou;\” ejpixhtou\’nta\” th;n ajlhvqeian,  , 6절. 이것은 요세푸스와 그의 유명한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에 잘 부합된다. 조나라스의 글과 그 많은 사본들, 그리고 앞서 말한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 사본에도 이 둘이 그대로 포함되어 있음을 기억해 보자. 내가 보기에 이러한 사실들은 그 기록이 믿을만하다는 것과 그래서 그 저자가 요세푸스라는데 대한 좋은 증거가 된다.(결론) 일반적인 형식대로 쓰여졌고 기독교적인 송영의 글로마치고 있는 이 단편은, 트라얀 말기 예루살렘에서 노년에 감독직을 맡고 있던 요세푸스의 글에서 발췌한 것이거나 그의 설교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 설교의 대상은 헬라인 또는 이방인이고 \’마귀에 관하여\’ 라는 글이 이미 사라진 것 같다고 앞에서말했지만, 필자의 생각에 너무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에, 발췌한것이나 그 설교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이라도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어쩌fi!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은것조차 복이 아닌가! 요세푸스가 \’자서전\’ 75,76절에서 그가 세부인을 두었다고 말한 것에서 당시의 법에 따라 감독직에 오를수 없었고 그래서 그는 감독이었을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선 \’유대고대사\’ 18권 6장 6절을 보라.

  답은 분명하다. 17번째 \’사도신경\'(Apostolical Canon)의 내용은 \’세례 후에 두 번 결혼한 자는 감독이 될 수 없다\’ 는 것이다. 세례 이전에 이루어진 결혼은 감독직에 영향을 끼칠 수가 없다. 요세푸스가 카톨릭 신자가 되어 세례를 받은 후 두번 결혼했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따라서 그러한 주장도 근거를 잃게 된다. \’진정한 기록\’ 2부 p.960을 보라.

  이 설교의 문체(Style)에 대해서는 요세푸스의 초기 작품과비교할 때 상당히 헬레니즘적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가 초기에는 로마에서 많은 헬라 작가들의 글을 읽다가, 그곳을 떠나 헬라어로 쓰여진 신약 성경과 여러 신학서적과 유대지역에 계속전해지던 기독교 저술가들의 많은 책들을 접하게 된 결과일 것이다. 다른 마땅한 설명은 없다. 다소 젊었을 때 아덴의 헬라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이 그의 문체에 영향을 주었듯이, 나이 들어 헬레니즘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도 그의 문체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후기(後記)





하데스에 관한 요세푸스의 설교에 대한 주제로 앞서 기록한논문Ⅳ을 끝낸 후 Le Quien판 죤 다마신의 \’병행\'(Parallels)에있는 그 설교의 인용 부분에 대한 아주 완벽하고 정확한 설명을접하게 되었다. 독자들이 앞서 5절에서, 파브리시우스의 글에서부터 짧게 언급한 부분에서 알아차렸겠지만 사실 이 논문을 쓰기 전에는 다마신의 \’병행\'(Parallels)을 접해 보지 못했었다. 내가 들은 설명은 탁월한 학자이면서 또 나의 친구가 되는 Mr. 리차드 알린(Richard aliin)에 의한 것인데 매우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전체로 여기에 담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다. 결론만 짧게말하자면 죤 다마신의 \’병행\’은 여러 다른 사본들을 통해 밝혀진대로, 8세기인 주후 730년 경 다마신 자신이 모은 것과, 7세기인주후 615년경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사람이 수집한 여러 고대 저술가들의 글의 부분 부분을 함께 엮어 놓은 것이다. 이 속에 우리가 살펴온 설교에서 따온 꽤 많은 분량의 글 두 부분이포함되어 있다. 그 중 조금 더 긴 것은 요세푸스의 이름으로 되어 있고, 짧은 것은 4세기 중반 주후 360년 경 안디옥의 감독으로 있던 멜레티우스(Meletius)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멜레티우스의 더 이전의 글 모음집에서 인용한 것이거나 아니면 요세푸스의 설교에서 직접 인용해서 쓴 것으로 보인다. 다마신의 글의 경우처럼 12세기 주후 1,120년 경의 조나라스가 이를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1) 이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현재 가장 오래된 포르피리의 말을 들어보면 \”에세네파의 강령들은 요세푸스가 그의 여러 글 속에 쓴 것과 같다. 전체 7권으로 된 유대전쟁사의제2권, 전체 20권으로 된 \’유대고대사\’의 제18권, 그리고, pro\” tou\’\” E$llhna\”, \’헬라인에 대한 강의\’ 두 권 중 제2권을 참조하라\”라고 되어 있다.



  (2) 포르피리의 글에 이 부분 바로 다음에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 제2권 8장 2~13절에서 상당 부분이 인용 기록되어 있다.거기 보면 에세네파의 하느님에 대한 것, 또 하데스, 육체의 부활, 그리고 선한 자는 행복하게, 악한 자는 비참한 상태로 된다는 장래에 대한 것 등 종교적인 주장을 잘 설명해 두었는데, 우리가 가진 이 설교와 완전히 일치한다. 포르피리는 다시 그 설명의 일부를 앞서 말했던 말 바로 뒤에 첨부해 두었다. lI~13절.



  (3)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보면 이 설교가우리가 앞서 인용한 두 부분과는 달리 에세네파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설교 전체가 발견된다면그러한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 단편이거나 겨우 발췌한 것에 불과하다. 나머지것들보다 약 1/4가량이나 분량이 많은 사본이 발견된 것으로미루어 그 원본이 상당히 많은 양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수 있다.



  (4) 포르피리는 여기서 요세푸스가 헬라인에게 강연한 내용의 책 그 전체를 지칭하고 있지만 실은 우리가 가진 것은 일부일뿐이다. 처음에 말한 대로 1권은 마귀에 대한 것이고, 2권은 하데스, 부활, 그리고 종말에 대한 것일 것이다.



  (5) 안디옥의 감독 밀레티우스의 글에서 인용한 것으로 되어있는 다마신의 \’병행\'(Parallels)의 한 부분에 보면 아주 특기할만한 표현이 나타난다. 바로 \’우리 주 그리스도는 Qeo;\” ejnanqrwphvsa\” ,인간 속에 계신 하느님이시다\’라는 표현으로 다른 그 어떤 사본에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 이런 식의 말은 멜레티우스가 살았던 4세기 이전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아마 오래된 요세푸스 시대의 언어를 당시 그가 살던 시대의 언어 감각에 맞게 의역하면서 덧붙인 것일 것이다. 요세푸스 당시의 기독교인들은 Qeo\’\” ejnsarkwqei;\”, 성육신하신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6) 이티기우스(Ittigius)라는 학자는, 비록 그 단편이 진품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그것이 요세푸스의 것이라는 근거는 충분히있다고 말한다. 하데스에서 영혼의 나누임과 다른 형편에 처하게 된다는 식의 설명이 요세푸스의 다른 여러 곳에서의 주장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하버캠프의 \’서문\'(Prolegom.) p.95.



  (7) 이 설교의 내용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기록 당시 저자가 카톨릭 신자였다는 것이다. 전체 문장 구조에서도 알 수 있고, 신약을 넌지시 인용하고 있는 부분이 자주 나타난다는 것과결정적으로는 주님에 대해 \’말씀이신 하느님. 하느님께서 그에게 모든 심판할 권세를 주셨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신 후 심판자로 오실 것이다. 우리는 그를 그리스도라 칭한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로 영화롭게 하셨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8) 이것이 단지 기록만 되고 직접 설교한 것이 아니라면, 또는 요세푸스가 감독이 아니라 단지 장로였을 때 기록한 것이라면, 그 결과는 이미 내부, 외부적인 여러 증거들을 통해 논박한것들과 같은 식의 것이 될 것이다. 이 글이 요세푸스의 것이라고믿는다면, 별 어려움 없이 그것이 그가 설교한 것이라는 것과,14대 예루살렘 감독으로 있을 때 설교한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결론적으로 많은 내부적인 증거와 외부적인 증언들을 볼 때 이 단편이 요세푸스의 작품임을 우리에게 설득하고 있다. 오히려 그보다 그러한 결론으로 강제로 몰아가고 있다는 표현이 타당할 것이다. 또한 그가 카틀릭 신자로서 예루살렘의 감독으로있을 때 헬라인들이 늘 듣던 설교의 하나로 그가 공적으로 설교한 것임에 틀림없다. 3세기의 포르피리가 분명히 요세푸스의 이름으로 인용하고 있고, 4세기의 안디옥의 감독 멜레티우스가 또상당 부분을 인용하고 있으며, 7세기에 또 요세푸스 이름으로된 더 많은 부분의 인용이 나타난다. 8세기에 죤 다마신이 두 개의 인용한 글을 그의 \’병행\'(Parallels)에 포함시키고 있고 또 요세푸스의 여러 작품들의 사본에 그의 이름으로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다. 12세기 조나라스가 다마신이 인용한 부분이 그의 것이라고 확인한 바 있다. 우리가 가진 시기와 장소가 다른 넷 이상의 사본 전부가 요세푸스를 저자로서 지목하고 있다. 더우기 이것을 반박할 그 어떤 내부적인 증거나 외부적인 증언이 없다. 최고의 확실성을 가지고 분명한 요세푸스의 작품, 진품으로 그가 예루살렘의 감독직에 있을 때 한 설교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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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문 Ⅵ 예루살렘 감독 재직시 행한 요세푸스의 설교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논  문  Ⅵ


      예루살렘 감독 재직시 행한 요세푸스의 설교


    하데스에 판한 설교의 발췌된 그단편(Fragment)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작품으로서, 그가 트라얀 황제말기에 예루살렘의 감독으로 있을 때 설교 또는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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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티우스(Photius)의 전집 사본. 48권에 보면 두개의 소논문이 수록된 작은 헬라어 책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 두 논문의 제목은  사본에 따라 ‘우주에 관하여’, ‘우주의 동인(動因)에관하여’ ‘우주의 본질에 관하여’ 등으로 나타난다. 이와 비슷한제목이 히폴리투스의 유명한 기념비에 쓰여진 대로 히폴리투스(Hippolytus)의 논문에도 붙여져 있다. ‘미로(Labyrnth)’ 라는책을 썼던 가이오(Caius)라 하는 장로의 논문에도 그와 비슷한제목이 붙여져 있는데 바로 그 책에서 그는 자신이 그러한 논문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그 제목에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부제가 붙어 있다. 포티우스는 ‘플라톤에 의하면'(katal Plavtwna) 또는 ‘플라톤에 반대하여’ (katal Plavtno”)라는 이 논문을 읽어 보았으며 저자에 대해서 사람들에 따라 요세푸스, 져스틴 마터, 이레니우스 등으로 엇갈리게 말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또 포티우스 자신은 가이오가 썼을 것이라고 한다.또한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사본들은 ‘마귀의 거처 혹은 나라에 대하여’, ‘하데스에 관하여’ 라는 제목의 두 설교 중 후자(하데스에 관하여)의 단편 사본들은 몇 개이다. 마귀에 대한 부분을 전해지지 않고, 다만 하데스에 관한 것만 전해지고 있다.가장 초기의 유물 중 이것이 가장 귀중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 단편은 호에셀리우스(Hoeschelius)가 포티우스에 관한 그의 논문 p.9-12에 막스 마르군티우스(Max. Marguntius)에게서 얻은 필사본을 헬라어로 처음으로 출판하였으나 라틴어로 번역하진 않았다. 르 므완(Le Moyne)은 호에셀리우스가 출판한 것과거의 홉사한 사본을 가지고 그 헬라어와 라틴어로 출판했는데,그 저자를 히폴리투스(Hippolytus)라고 했다. 내가 알기로 히폴리투스라는 이름은 그 어떤 사본에도 없고, 다만 요세푸스의이름만이 나타난다. 르 므완은 황당무계한 가설을 세워 그렇게주장한다. 즉 히폴리투스의 기념비에 ‘우주에 관하여’ 라는 말이쓰여 있기 때문에 이 단편이 그 논문과 같은 것이라는 근거없는주장을 하게 편다. 파브리시우스(Fabricius)도 카르디 날 코이슬린(Cardinal Coislin) 도서관에 있는 한 사본을 언급한다. 험프리스(Humphreys) 박사도 힉스(Hicks) 박사의 허락을 얻어 그의 영문판 아데나고라스(Athenagoras)의 끝부분에, 그랩 (Gra-be)박사의 논문에 나오는 바로키안(Baroccian)사본을 인용해출판했다. 이 사본은 분량이 다른 것보다 1/4가량이나 많은데모두 진품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가장 값진 사본이라 할 만하다. 이 사본은 나중에 요세푸스의 것으로 인정해서 그의 전집 속에 포함되어 출판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진품이라고 믿는학자는 거의 없었다. 하버캠프(Havercamp)판 ‘Tom. ll.Add-end.’의 p.145-147을 보라. 그 제목이 ‘헬라인에 대한 요세푸스의 권면 발췌문’으로 되어 있고, 그 앞에 혹은 뒤에 ‘플라톤에 의하면’ 또는 ‘플라톤에 반대해서’ 라는 근거없는 부제가 붙어 있다. 잘못된 부제 때문에 현대 비평가들은 우리가 가진 그 단편이포티우스가 언급한 것과 같은 책의 것이라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르 므완판과 하버캠프 p.74, 알레니우스(Arlenius)의 서문J. 하기우스(Higius)의 서론(Prolegom)과 같은 책 p.95, 파브리시우스(Fabricius)의 ‘요세푸스에 대하여’ 와 같은 책. p.64를 보라. 얼마나 엉뚱한 생각인가! 거의 일치하고 있는 제목 부분을 제외하고는 그 글들의 형태와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 포티우스의 소논문은 우주의 동인, 또는 본질 그리고 하데스에 관한 것이었다. 그중 우리가 가진 것은 하데스에 관한 단편이다.포티우스의 논문(포티우스가 지은 것이 아니라 그의 전집에 언급된 소논문)은 플라톤의 주장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우리가 가진 단편은 플라톤에 대해서 단 한번 언급하고 있는데그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포티우스의 논문은 플라톤의 영혼과물질과 부활에 관한 교훈에서 자기 모순에 봉착했다고 말하고있다. 우리 가 가진 단편은 그러한 것에 대한 플라톤의 사상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다. 포터우스의 논문은 알키누스(Alcinous)라는 철학자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 그에 대한 것도 우리가 가진 단편에는 없다. 더구나 알키누스는 요세푸스가 죽은 지이미 오래인 3세기 전에 살았는지 아니면 4세기에 살았는지도분명치 않다.아마 져스틴 마터, 이레니우스, 히폴리투스, 가이오, 그 외 그 논문의 저자도 지목되는 많은 사람들보다는 오랜 후에 살았을 것이다. 파브리시우스 전집 헬라판. 4권 2부 2절을 보라. 포티우스의 논문은 유대 민족에 관하여 전혀 언급이 없다. 포티우스의 논문은 인류가 처음부터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는 사상을 나타내고 있는데, 포티우스 자신의 말로는 이런 사상이 유대인들 특히 요세푸스에게는 별 가치없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우리가 가진 단편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몸의 부활을이야기 함으로써 오히려 그러한 생각에 반대하고 있다. 포티우스의 논문은 그리스도의 신비한 출생과 신성 (神性)에 대해서 포티우스적 혹은 아타나시우스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우리가 가진 단편은 그런 식의 말은 전혀 없고 단지 ‘하느님의말씀이신 그리스도(Christ God the Word)에게 성부는 세상을심판할 권세를 주셨다’ 고 하는 사도시대의 문체와 똑같은 양식으로 쓴 것이 있을 뿐이다. 포티우스의 생각과 같이 그의 논문은 요세푸스의 다른 저작물과 그 문체가 거의 동일하다(비록 포티우스가 요세푸스 자신의 말을 직접 인용한 것이 조금도 나타나지는 않지만)모든 학자들이 알다시피 요세푸스는 아덴의 방언을 사용했고 우리가 가진 단편도 거의 전적으로 헬라 스타일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여러 비평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큰실수를 하게 되었는지 그저 놀랄 뿐이다. 포티우스가 말한 소 논문들은 지금까지 전해지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고대나 현대의그 어떤 사람도 그것을 인용한 적이 없다. 단지 필로포누스(Philoponus)가 주후 600년 경 L.111. C. 16에서 인용했을 뿐이다. 필로포누스의 책에도 포티우스가 우리가 가진 단편을 보았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소 논문들은 포티우스와 필로포누스가 인용한 정도만 남아 있다.


     2


    이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하데스에 관하여’ 라는 우리의 단편으로 돌아가 보자. 이 단편은 그 내용이 아주 탁월하며 그 영향력이 지대하여 가히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문건이라 할만하다. 그 연대와 저자에 대한 내적 특성과 외증을 살펴보자. 우선은 내부적인 증거를 살펴보자.


      (1) 우리의 단편에 나오는 음부에 있는 영혼의 중간기 상태즉, 죽음과 부활 때까지의 영혼에 대한 교리는 복음이 처음 전해지던 시대의 일반적인 사상과 동일하다. 여러 세대가 지나면서그러한 주장은 빛을 잃게 된다.


      (2) 1절에서 아직은 그래도 희망이 있는 죄인들이 하데스에서천사들에 의해, 자신들의 죄를 씻고 완전히 회복되도록 ‘일시적인 형벌’ 을 받는다는 주장은 사도 시대의 저술가 헤르마스(Her-mas)의 주장과 비교할 때, 이생에서의 형벌에 대해서는 하데스에서의 형벌에 대해서까지 거의 동일하다. (즉ⅲ. 2, 7절 ; 유사한 기록은 vii. 23절 : viii, 3,8절 : ix. 6,9,13,16절)이 주장 역시 오래 전에 부분적으로 사라져 갔다.


      (3) 그랩 박사가 그의 선집(選集)에서 1절. p.353에서 에녹(Eno-ch)과 여러 사도들, 그리고 사도시대의 교회들의 주장이라고 말한 가장 초기의 주장이 이 단편 2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보면, 마귀이든지 사람이든지 그 어떤 악한 존재도 바로 그 당시는 물론이고 심판 날까지는 ‘게헨나’ 즉, 지옥불에 던져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 8 : 29, 유 1 : 9, Enoch 6절, ‘진정한 기록들'(Authentic Records)의 1부 p.265 등과 또한 1세기 이전 모든문서의 주장들과 같다. 4절에서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실제로지옥의 고통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겪어야 할 비참함과 최후의 날에 직면할 그들의 운명에 대한 공포에서 온다는것이다. 이 주장도 상당 부분이 곧 기독교인 사이에서 사라지게 된다.


      (4) 1절과 3절에서 선한 사람들은 죽어서 ‘우편’ 또는 ‘빛’으로, 악인은 ‘좌편’ 또는 ‘어둠’으로 어떤 문을 통해 들어가게 된다고 쓰여 있다. 이것은 에스드라 4서 7 : 13~14, 8 : 12 ;마2313, 25 : 30 그 외 1세기 당시 또는 그 이전의 모든 문서들의주장과 유사하다.


      (5) 3절에서 선한 사람이 죽으면 바로 천사들의 인도에 의해’아브라함의 품’이라 칭하는 곳으로 간다고 한다. 이것은 1세기에 쓰여진 눅 16 : 22, 23과 사도헌장(Constitutions)8:41과같다.


      (6) 이 단편 4절에 보면 의인과 하데스의 악인 사이를 갈라놓은 ‘혼돈’과 ‘큰 구렁’ 에 대한 언급이 있다. 악인은 거기서 행복에 젖은 선인을 보고 자신이 거기서 제외되었음으로 인해 더 큰비천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1세기의 작품인 눅 16 :23 이하와 13 : 28의 것과 일치한다.


      (7) 이 단편 5절에서 또한, 무덤에 있는 육체들을 다시 열매를 맺게 될 ‘뿌려진 씨’ 와 ‘곡식 낟알’ 에 비유하고 있다. 부활에 대한 입장도 1세기의 것들인 사도 바울의 고전 15 : 37,38과 사도적 헌장(Apostolical constitution)과 거의 유사하다.


      (8) 이 단편 5절에서 사용한 에펜뒤사메노스(ejpendusaveno”)라는 표현은 부활시에 영화로운 몸으로 ‘덧입는다.’라는 1세기 사도 바울의 고후 5 : 2과 동일하다.


      (9)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에 대해 이 단편 6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말씀이신 하느님(God theWord)으로서 성부 하느님’과 구별된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위임받는 세상의 심판자’ 이다. 이것은 후 세대의 모든 철학적인 개념이나 용어들과는 무관한, 가장 초기의 사도적 인 표현방식인요 1 : 1과 행 16 : 31의 것과 일치한다.


      (10) 하데스와 구별되는 게헨나 즉,  지옥에서 당하게 되는 ‘꺼지지 않는 불’의 형벌과 ‘벌레도 죽지 않는’식 의 단편 2,6절 표현은 1세기의 작품인 막 9: 44, 46,’48의 주님의 말씀과 동일하다.


      (11) 조금 변형된 1세기의 사도 바울의 구약 인용이 고전 2 : 9에 나타나는데 이 단편 7절에서도 축어적으로 기록되었다. 즉,천국에서의 행복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하느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 과 같을 것이다.


      (12) 8절에는 우리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주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어떤 상태에 있든지 나는 너를 발견할 것이고 만물의 마지막이 우리에게 도래할 때 나는 너를 심판할 것이다”(!Ef! oi|” a[n eJu;rw ujmo'”, epi; tovutoi” krinw’ parj e[kasta. boa’ to; telo” tw’n ajpavntwn).이것의 유래가 오래된 것이라는 두 가지 증거가 있다. 그 하나는 져스틴 마터의 글에 이 문구가 그대로 인용되고있다. 그곳에서 주님 자신의 말씀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이 인용문은 요세푸스가 가장 잘 인용하였을 것인데, 히브리인이나, 나사렛인에 의해 기록된 복음서에서 인용했을 것이다. 그랩의 선집(選集) 2절. p.14, 327을 보라. ‘만물의 마지막’이라고우리 주님이 하신 그 말은 요한계시록 1 : 8, 21 : 6, 22 : 13에서’시작과 끝’ 이라고 세 번이나 사용한 호칭의 뒷 부분을 그대로모방한 것이다. 이것은 이 단편(혹은 설교)의 저자가 사도 요한의 계시록을 보았거나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암시한다. 트라얀이 통치하기까지 생존해 있었던 요세푸스가 처해 있던 상황과 계시록이 기록된 후 몇년 후의 상황은 거의 일치한다.이것이 필자가 이 설교의 계시록 연대로 가장 많이 연구해온 것중에서 가장 최후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13) ‘영광과 권세가 영원토록 하느님께 있을지어다 아멘’과같은 식의 맨끝에 있는 송영은 할례받은 유대인 사도인 베드로의 벧전 4 : 11-5 : 11과 사랑받은 제자 사도 요한의 계 1 . 6의 바로 그 송영이다. 베드로, 요한 모두 1세기의 유대인이다.


      (14) 이 단편 혹은 설교의 특성은 사도 바울의 사도적 서신들의 특성과 같다. 사도 바울은 그의 전제가 무엇이든지 서신서의결론에 항상 실천을 위한 기독교인의 도덕과 권면을 덧붙였다.그와 같이 우리의 저자도 이 단편 혹은 설교 7~8절에서 그의 청중들인 헬라인 혹은 이방인들에게 의미 깊고 실제적인 권고를 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그 단편이 기독교 초창기, 가장 중요했던 기독교시대의 것이라는 특징이 될 것이라고 본다.


      (15) ‘내적 특성’에 대한 결론 ;이 단편(혹은 설교)의 유형을살펴보면 거의 헬레니즘적인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글은 사도시대의 기독교 내에 널리 퍼져 있다가 폴리캅의 순교 이전, 적어도 2세기 중반 전에 사라졌다. 필자의 생각에 이 단편이 1세기이후 혹은 2세기 초 이후의 것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 전체 내용상 그 이후 다른 시대의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3


     이제 이 단편(혹은 설교)이 예루살렘의 유대인 교회, 나아가그곳의 감독으로 있던 요세푸스의 것이라는 증거의 두 번째면들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그의 생애에 관계된 것과, 말기에처해 있던 상황을 살피보아야겠다. 요세푸스에 대한 필자의 논문의 첫 부분에서 말한 대로, 그는 베스파시안(Vespassian) 시대에 헬라어로 ‘유대 전쟁사’를 기록했다. 그리고 도미티안 재위13년인 주후 93년에 ‘유대고대사’를 출판하였고, 트라얀 3년인주후 100년에 ‘유대고대사’의 부록으로 ‘자서전’을 썼다. 앞에서본 논문Ⅳ 32절에서 밝힌 대로 요세푸스는 주후 93년 조금 전 ‘유대고대사’로 따지면 다니엘서를 다룰 때까지도 자신이 나사렛파 혹은 에비온파 기독교인이라는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다가,그 이후로 그러한 모습을 많이 나타낸다. 하지만 주후 93년 이후그가 어디 살았으며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케이브 박사는 그의 ‘문학사'(Historia Lit-eraria)에서 요세푸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에 “그는 93년(어쩌면 이것이 주후 100년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까지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그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라고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보면, 그 자신의 글이나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서 그에 관계된 분명한 언급들을 찾아낼 수 있다. 그는 그의 ‘자서전’ 끝 부분에 기록하기를 베스파시안과 그의 두 아들 티투스와 도미티안이 그에게 로마 시민권을주고 연금을 하사했으며, 자신에게 고향인 예루살렘 근처의 땅을 주고, 이름을 따로 밝히지 않은 다른 사람들에겐 유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땅을 주었으며, 특히 도미티안은 토지세를 면제해 주기도 하는 둥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으며 그들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그는 네르바(Nerva)나 트라얀 그 누구도 그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가 거의내내 로마에 살았다는 것도 알려졌다. 하지만 이미 말한 대로그의 유일한 후원자였던 도미티안이 죽은 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선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아피온반박문’ 1권에서자신이 유대민족과 함께 유대에 거하고 있다고 세 번씩이나 말하고 있다. 1,31,35절 ‘우리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나라’ (cwvran nu’n e[comen+)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나라'(cwvran thvn nu’n oijkoumevnhn uJg! hJmw’n+) ‘우리가 지금 정착한 나라'(cwvra” h|” nu’n katoiko u’men+)로 되어 있다. 그는 또한 유대백성이 과거에도 그랬듯이미래의 어느 때가 되면 자기 나라가 그 역사로 되찾게 될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보여 준다.(6절) 그때는 그들이 이방 세계로흩어지지 않고 유대에 다시 정착할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요세푸스는 그의 ‘유대고대사’의 끝 부분에 ‘유대전쟁사’와 도미티안 재위 13년까지의 유대의 역사를 계속 기록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 말은 그가 그 전에 예루살렘멸망까지의 유대 역사를 자세히 기록해 놓았듯이, 그 당시 그가 살고 있는 때의 기록까지 계속하려고 마음먹었다는 의미로보인다. 그가 당시 유대에 자기 민족과 함께 있지 않았다면 앞서 기록한 역사같이 정확하게 기록한다는 보장은 없었을 것이다.

       트라얀시대에 유대인들이 유대에 거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가짜 메시야인 바르코카브(Barchocab)의 지휘 아래 엄청난폭동을 일으킨 사실에 의해 잘 알려져 있다. 그 폭동은 580,000명이 도륙되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그가 계속해서 1인칭 복수형인 ‘우리가’ ‘우리를’ 따위의 표현을 쓰고 있음을 봐서 요세푸스 자신은 로마에 있으면서 글 속에서 단지 자신을 백성의 일부로 포함시킨 것이 아니라,그가 실제로 유대에 자기 민족들과 함께 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후원자 도미티안 사후 그의 상황을 봐서도 그러한 추측이 가능하다. 그는 더 이상 네르바나트라dis의 호의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특히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해서 엄청난 반란을 모의하던 트라얀 말기에는 더욱 그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전과 연명을 위해 요세푸스가 갈 곳이라곤 고향 예루살렘밖에 더 있었는가? 이전 황제가 그에게 준 땅이 또 그 근처에 있었다. 이러한 여러가지 증거가 말하듯이 트라얀 재위 기간에 요세푸스는 분명히 유대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거의 예루살렘에 있었을 가능성이크다. 이미 그 오래전에 그가 나사렛파 또는 에비온파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을 감안하면, (논문1. 전체를 보라)그가 예루살렘에 있는 나사렛파 또는 에비온파 기독교인과 더불어지냈다는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은 거의 없다. 거기서 아마 그는감독직을 맡게 되었을 것이다. 유세비우스가 티투스의 예루살렘파괴와 아드리안의 제2차 파괴 기간에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할수 있었다는 기록이 극히 소수가 전해진다(‘교회사’.4과’Praep. Evang.’111.5). 그 교회는 꽤 큰 교회였다. 그리스도의 계명과 함께 모세의 율법을 지켰고, 적어도 할례받은 15명의 감독이 있었다. 주님의 동생인 야고보도 거기 포함된다. 각 감독의재임 시기나 기간은 전혀 알 수 없다. (Pearson,’De Success,Rom. Episc.’p.78) 아드리안에 의한 그 엄청난 파괴는 사람은물론이고 그 시대 국가의 모든 기록까지 초토화한 것 같다. 헤게시푸스(Hegesippus)의 말대로, 유세비우스가 주님의 동생인야고보의 죽음이나, 유명한 요세푸스의 죽음을 알면서도 기록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유세비우스 ‘교회사’ Bll.20). 어쨌든 그가15인의 감독의 목록을 밝혀 내었고 그 14번째가 요세푸스였음은분명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가 교회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모세의 을법을 지켰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나사렛파 또는에비온파 기독교인 아니면 카톨릭 기독교인이었을 것이다. 이미잘 알려진 대로 사도들과 그들과 함께 한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모세의 의식법을 준수했다. 특히 그들이 유대지역에 거주할 때는 더욱 그러했다. 한편으론 그러한 준수의 절대적 필요성을 부인하는 전제하에 함께한 유대인들이 다른 형식을취하는 것을 허용했다 ‘칭의’와 ‘구원’은 그 율법에 의한 것이아니라, 그리스도의 속죄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그러한 것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았다.


     4


     지금까지의 내용에 이어서 나머지 논거들을 살펴보자 이 중몇 가지의 ‘외부적인 증거들’ 이다. 그에 비추어 볼때’ 요세푸스와 같은 할례받은 유대인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이 단편(혹은 설교)을 썼다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1)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한 이 연설에서 저자는 계속해서 그믿지 않는 자들을 ‘E$llhne”    ‘, 즉 헬라인 또는 이방인이라 칭하고있다. 이것이 바로 그 저자가 이방인이 아니라 유대인 신자임을 암시한다고 본다. 이 유대인과 헬라인 또는 이방인은 종교적 기준에 의해 인류를 나누는 근본이 되는 구분으로 신약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이 설교가 전적으로 헬라인 또는 이방인을 향한 것이었고, 저자가 거기에 속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를 유대인이나 요세푸스로 봐야 한다.


      (2) 이 설교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작문 형태가 내가 보기엔 신약성경의 글이나 성 바나바의 서신서들과 거의 흡사하다. 그들모두는 유대인이었다. 사도헌장과 클레멘트, 이그나티우스, 또는 폴리갑의 서신서, 그외 여러 이방인 출신으로 사도격인 사람이 쓴 글의 분위기와 작문 형태와는 다르다. 이러한 필자의 판단은 모든 유능한 비평가들이 그 진위를 가려줄 것이다. 내 판단이 옳다고 비평가들도 인정한다면 이 글은 유대인 요세푸스에게정확히 부합된다.


      (3) 전체적인 설교 내용은 물론이고, 시작과 중간의 두 번에걸친 인사말,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송영에 있어서까지 이 단편은 내가 늘 말하던 ‘기독교적 설교(Christian homily)’의 특질을나타내고 있다. 초기에 쓰여 후세에 전해진 이러한 논문들이나설교들은 거의 대부분이 당시 가장 지혜롭고, 학식이 뛰어났으며 교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사람인 감독들에 의한것이었다. 유세비우스가 작성한 1세기의 3개의 논문과 설교의목록을 보면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기독교인 감독 요세푸스가 그 저자라는 견해에 잘 부합된다.


      (4) 이 단편 3,4절에 언급된 ‘조상들(fathers)의 미소’, 그리고 의인들이 있는 곳과는 분리된 하데스에서 바라본 장소, 혹은조상들(fathers)의 찬양대’ 등은 이 설교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조상들이 눅 13 : 28, 16 : 24,25,27 등에서와 같이 저자의아버지(조상)도 됨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저자는요세푸스처럼 유대인이어야 한다. 필자는 이 단편의 저자가 유대인이 유대인에게 말할 때 보통 사용하는 ‘우리 아버지’ 라는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유대인이 이방인에게 말할 때 ‘그 아버지’라고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5) 이 단편 6절에서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Qeo” Logo” , 즉 ‘말씀이신 하느님’ 이라는 표현은 기독교 1세대들에게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다만 사도헌장 5: 16, 19, 20, 6: 11, 7: 26, 8: 1,12등과 유대와 그 인근의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많은사람들의 글에서 나타난다. 안디옥의 감독 이그나티우스의Magnes.6절, Philadelph. 4, 6절, Smym. 1절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Exhort. p.74, 75.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오리겐-그는 얼마동안 유대에 머물기도 했다-의 요한복음 주석 p.49. 안디옥 회의의 ‘Prim. Christ.’개정판 3권 p.430. 그리고 팔레스틴 가이사랴 감독을 두번이나 맡았던 유세비우스의 ‘복음에의 준비’ p.443과 예루살렘 회의에 제출된 아리우스와 유조이우스 (Euzoius)의 신조 같은 책 p.487 등을 보라.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의 경우 후기의 자신의 글들에서는 물론이고 니케아 회의 이전에도 16회 이상 그러한 표현을 사용했다.’고대 비문 총록'(Collection of Ancient Moment) p.73을 보라.이러한 특징은 유대에 사는 유대인 개종자이며, 아마 예루살렘의 유대인 교회의 감독이었을 요세푸스에게 가장 잘 부합된다.사도헌장 6 : 6에 나오는 예수가 단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초기 에비온파의 주장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한 사실은 유세비우스가 15인의 유대인 감독들에 의해 지도된예루살렘 교회에 대해서 묘사한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들은 참으로 그리스도를 옳게 알았다. ‘ 말하자면 유세비우스가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믿었다는 것이다. 수스피키우스 세베루스(Suspicius Severus)의 설명과 같이 이 말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스피키우스세베루스는 “이 교회는 거의 보편적으로,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면서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인정한다”(‘Llb.’2권 45절)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정확히 요세푸스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그는늘 열성적인 모세 율법의 옹호자였다. 그리고 그의 유명한 그리스도에 관한 글 ‘유대고대사’ 18권 3장3절에서 나타나듯이 그는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한 근거는 그가한 말 “만일 그가 사람이었다면 아주 지혜로운 사람….”에 있다.(‘유대 고대사.’1권 12장 2절의 각주(휘스톤판)를 보라) 요세푸스가 한때 오랫동안 에비온파에 속했음이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우리는 오리겐을 통해서 그들 에비온파의 일파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했음을 알고 있다(켈수스 논?박, 5권 p.272, 274). 물론이 단편(혹은 설교)의 저자가 신약성경 특히, 나사렛파나 에비온파가 가장 싫어했던 바울의 서신서 부분을 많이 인용하고 있으며, 모세의 율법을 좇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로 미루어 보아 그가 모세 율법을 받아들이면서 더불어 카톨릭 기독교를받아들인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러한 사실이 예루살렘교회의 감독인 요세푸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유대의 모든 기독교회에 해당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료의 부족으로 더이상 알 수는 없다. 당시 교회의 기록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이라곤 야고보의 서신서와 이 단편이 전부이다.


       (6) 요세푸스가 저자라는 또 다른 내부적인 증거는 ‘유대전쟁사’ 3권 7장 28절에서, 일반적으로 자주 사용되지 않은 헬라어 brasmo;”ejkxravsswn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세푸스는다른 곳에서도 이 단어를 두 번이나 사용하고 있는데, 필자가 알기로는 다른 헬레니스트(헬라어를 사용한 유대인)들은 이단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


      (7) 이 단편(흑은 설교)의 내용에서 히브리어 사본의 구약을 사용했던 유대인 교회에 속한 누군가가, 특히 요세푸스가 그 저자라는 결정적인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이제 살펴보면, 헬라인 또는 이방인들을 향한 연설부분에 헬라어 신약성경의 인용이나 언급이 거의 40회 가량 나온다. 구약은 히브리어든지 헬라어든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하데스에 관한 부분에서는신약보다 구약에서 5배 이상 더 자주 인용되고 있다. 대상에 따른 이러한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은 헬라인이나 이방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인 히브리어 성경만을 사용한 예루살렘 교회의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다른 곳에서(‘구약 개요’p.184-195와 Suppl.’p.45-48) 필자가 그의 글들을 통해 증명했듯이 특히 요세푸스는 늘 히브리어 성경만을 사용했고 히브리어책들만을 접했다. 이방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므로 이 단편(또는설교)의 저자는 히브리어 구약을 덮어 두고 헬라어로 쓰여진 신약성경에만 집착하게 되었을 것이다 (마태복음 등 많은 인용과언급이 헬라어 신약에 의존한다는 것이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필자가 다른 곳에서 증명했다. ‘구약 개요’ p.182,183). 사실 엄밀히 말하면 구약에 속하는 예언서 에스드라 4서로부터 인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두 번 나타난다. 첫째는 인간이 영원히 살 수 없는 운명이 된 원인은 우리의 처음 조상의 불순종에 대한 부분이고 (에스드라4서 3:7), 둘째는 심판의 날에 악인들에 대해선 화목을 위한 중보가 소용 없음을 말하는 부분이다(에스드라4서) 7:35~47. 비록 그것이 실지로 에스드라서에서 인용한 것이라 할지라도 여기서 제시된 우리의 주장을 반박할 만한 것은 못된다. 이것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요세푸스 당시의 문서 중 유일한 것임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우리의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헬라인들에 대한 이 연설에서 신약뿐 아니라 그러한 부분을 인용했다는 것이 하등의 이유가 없다.


     5


    지금부터는 외부적인 증거, 다시 말하면 고대의 여러 자료들과 증언들을 살펴 보겠다. 번호는 앞에 것을 계속이어서 쓰겠다.


      (8) 포르피리(Porphyry)는 그의 네번째 책(peri; uJpoch'”)에서 요세푸스의 책 세권으로부터 인용해서 에세네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유대전쟁사’제2권, 유대고대사’의 제18권, 그리고 Pro;” tou;” E$llhna” ‘헬라인에게’라는 제목의 연설을 담은 두책중 제2권이다. 마지막 것은 필자가 보기엔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두 설교의 두번째에 해당하는 것이다. 거기 보면 그의 주장은 거의 에센파와 일치한다. 별다른반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 강연 내용이 밝혀지면 더 분명히 드러낼 것이다. 포르피리가 ‘아피온반박문’ 제2권을 말했을것이라고 하는 지금까지의 여러 비평가들의 주장은 이 단편에서’아피온반박문’을 암시하는 제목이 붙은 적도 없고 아피온반박문 제2권에 에세네파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비추어근거 없다고 볼 수 있다.


      (9) Lequien이 편집한 18세기 존 다마신(John Damascen)의’Parallels’ p.789에 보면 별 반론없이 이 단편(혹은 설교)이 요세푸스의 작품이라고 인용하고 있다. 그 중 몇 구절에 대해선 파브리시우스가 더 분명하게 요세푸스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하버캠프판 p.64.


      (10) 조나라스(Zonaras)도 별 이의없이 요세푸스의 것이라고인용하고 있다. ‘Annal.’1권 p.267. 그는 11세기 사람으로 요세푸스에 대해 아주 정통한 사람이었다.


      (11) 필자가 생각하기에 우리가 가진 네 사본 모두 요세푸스외에 그 누구도 저자로서 지목하고 있지 않다.


      (12)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 2권 9장 1절의 한 사본에 보면이것이 포함되어 있는데,그 상당부분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조나라스가 인용한 것이다. 조나라스의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 관한 유명한 증언의 바로 다음에 위치해 있다. 이 뛰어난 두 글이 같은 사본에 그것도 다른 한 책에서와 같은 순서로 배치되었다는 그것이 바로 그 책에서 따온 것이라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따라서 여기선 조나라스의 글에서 따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조나라스의 것과 분리해서 생각한다면 별 중요성이 없을 것이다.


      (13) 여하튼, 이 단편(흑은 설교)은 ‘진리를 찾는 자들을 위해 여기 기록된 것보다 더 자세한, 그리스도에 대한 해석을 발표한 적이 있는 사람이 쓴 것임에 틀림없다. Peri; oueJteroi” leptom erevsteron dielhluvqamen, pfo;” tou;” ejpixhtou’nta” th;n ajlhvqeian,  , 6절. 이것은 요세푸스와 그의 유명한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에 잘 부합된다. 조나라스의 글과 그 많은 사본들, 그리고 앞서 말한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 사본에도 이 둘이 그대로 포함되어 있음을 기억해 보자. 내가 보기에 이러한 사실들은 그 기록이 믿을만하다는 것과 그래서 그 저자가 요세푸스라는데 대한 좋은 증거가 된다.(결론) 일반적인 형식대로 쓰여졌고 기독교적인 송영의 글로마치고 있는 이 단편은, 트라얀 말기 예루살렘에서 노년에 감독직을 맡고 있던 요세푸스의 글에서 발췌한 것이거나 그의 설교를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 설교의 대상은 헬라인 또는 이방인이고 ‘마귀에 관하여’ 라는 글이 이미 사라진 것 같다고 앞에서말했지만, 필자의 생각에 너무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에, 발췌한것이나 그 설교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이라도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어쩌fi!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은것조차 복이 아닌가! 요세푸스가 ‘자서전’ 75,76절에서 그가 세부인을 두었다고 말한 것에서 당시의 법에 따라 감독직에 오를수 없었고 그래서 그는 감독이었을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선 ‘유대고대사’ 18권 6장 6절을 보라.

      답은 분명하다. 17번째 ‘사도신경'(Apostolical Canon)의 내용은 ‘세례 후에 두 번 결혼한 자는 감독이 될 수 없다’ 는 것이다. 세례 이전에 이루어진 결혼은 감독직에 영향을 끼칠 수가 없다. 요세푸스가 카톨릭 신자가 되어 세례를 받은 후 두번 결혼했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따라서 그러한 주장도 근거를 잃게 된다. ‘진정한 기록’ 2부 p.960을 보라.

      이 설교의 문체(Style)에 대해서는 요세푸스의 초기 작품과비교할 때 상당히 헬레니즘적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가 초기에는 로마에서 많은 헬라 작가들의 글을 읽다가, 그곳을 떠나 헬라어로 쓰여진 신약 성경과 여러 신학서적과 유대지역에 계속전해지던 기독교 저술가들의 많은 책들을 접하게 된 결과일 것이다. 다른 마땅한 설명은 없다. 다소 젊었을 때 아덴의 헬라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이 그의 문체에 영향을 주었듯이, 나이 들어 헬레니즘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도 그의 문체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후기(後記)



    하데스에 관한 요세푸스의 설교에 대한 주제로 앞서 기록한논문Ⅳ을 끝낸 후 Le Quien판 죤 다마신의 ‘병행'(Parallels)에있는 그 설교의 인용 부분에 대한 아주 완벽하고 정확한 설명을접하게 되었다. 독자들이 앞서 5절에서, 파브리시우스의 글에서부터 짧게 언급한 부분에서 알아차렸겠지만 사실 이 논문을 쓰기 전에는 다마신의 ‘병행'(Parallels)을 접해 보지 못했었다. 내가 들은 설명은 탁월한 학자이면서 또 나의 친구가 되는 Mr. 리차드 알린(Richard aliin)에 의한 것인데 매우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전체로 여기에 담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다. 결론만 짧게말하자면 죤 다마신의 ‘병행’은 여러 다른 사본들을 통해 밝혀진대로, 8세기인 주후 730년 경 다마신 자신이 모은 것과, 7세기인주후 615년경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사람이 수집한 여러 고대 저술가들의 글의 부분 부분을 함께 엮어 놓은 것이다. 이 속에 우리가 살펴온 설교에서 따온 꽤 많은 분량의 글 두 부분이포함되어 있다. 그 중 조금 더 긴 것은 요세푸스의 이름으로 되어 있고, 짧은 것은 4세기 중반 주후 360년 경 안디옥의 감독으로 있던 멜레티우스(Meletius)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멜레티우스의 더 이전의 글 모음집에서 인용한 것이거나 아니면 요세푸스의 설교에서 직접 인용해서 쓴 것으로 보인다. 다마신의 글의 경우처럼 12세기 주후 1,120년 경의 조나라스가 이를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1) 이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현재 가장 오래된 포르피리의 말을 들어보면 “에세네파의 강령들은 요세푸스가 그의 여러 글 속에 쓴 것과 같다. 전체 7권으로 된 유대전쟁사의제2권, 전체 20권으로 된 ‘유대고대사’의 제18권, 그리고, pro” tou'” E$llhna”, ‘헬라인에 대한 강의’ 두 권 중 제2권을 참조하라”라고 되어 있다.


      (2) 포르피리의 글에 이 부분 바로 다음에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 제2권 8장 2~13절에서 상당 부분이 인용 기록되어 있다.거기 보면 에세네파의 하느님에 대한 것, 또 하데스, 육체의 부활, 그리고 선한 자는 행복하게, 악한 자는 비참한 상태로 된다는 장래에 대한 것 등 종교적인 주장을 잘 설명해 두었는데, 우리가 가진 이 설교와 완전히 일치한다. 포르피리는 다시 그 설명의 일부를 앞서 말했던 말 바로 뒤에 첨부해 두었다. lI~13절.


      (3)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보면 이 설교가우리가 앞서 인용한 두 부분과는 달리 에세네파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설교 전체가 발견된다면그러한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 단편이거나 겨우 발췌한 것에 불과하다. 나머지것들보다 약 1/4가량이나 분량이 많은 사본이 발견된 것으로미루어 그 원본이 상당히 많은 양이었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수 있다.


      (4) 포르피리는 여기서 요세푸스가 헬라인에게 강연한 내용의 책 그 전체를 지칭하고 있지만 실은 우리가 가진 것은 일부일뿐이다. 처음에 말한 대로 1권은 마귀에 대한 것이고, 2권은 하데스, 부활, 그리고 종말에 대한 것일 것이다.


      (5) 안디옥의 감독 밀레티우스의 글에서 인용한 것으로 되어있는 다마신의 ‘병행'(Parallels)의 한 부분에 보면 아주 특기할만한 표현이 나타난다. 바로 ‘우리 주 그리스도는 Qeo;” ejnanqrwphvsa” ,인간 속에 계신 하느님이시다’라는 표현으로 다른 그 어떤 사본에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 이런 식의 말은 멜레티우스가 살았던 4세기 이전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아마 오래된 요세푸스 시대의 언어를 당시 그가 살던 시대의 언어 감각에 맞게 의역하면서 덧붙인 것일 것이다. 요세푸스 당시의 기독교인들은 Qeo'” ejnsarkwqei;”, 성육신하신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6) 이티기우스(Ittigius)라는 학자는, 비록 그 단편이 진품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그것이 요세푸스의 것이라는 근거는 충분히있다고 말한다. 하데스에서 영혼의 나누임과 다른 형편에 처하게 된다는 식의 설명이 요세푸스의 다른 여러 곳에서의 주장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하버캠프의 ‘서문'(Prolegom.) p.95.


      (7) 이 설교의 내용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기록 당시 저자가 카톨릭 신자였다는 것이다. 전체 문장 구조에서도 알 수 있고, 신약을 넌지시 인용하고 있는 부분이 자주 나타난다는 것과결정적으로는 주님에 대해 ‘말씀이신 하느님. 하느님께서 그에게 모든 심판할 권세를 주셨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신 후 심판자로 오실 것이다. 우리는 그를 그리스도라 칭한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로 영화롭게 하셨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8) 이것이 단지 기록만 되고 직접 설교한 것이 아니라면, 또는 요세푸스가 감독이 아니라 단지 장로였을 때 기록한 것이라면, 그 결과는 이미 내부, 외부적인 여러 증거들을 통해 논박한것들과 같은 식의 것이 될 것이다. 이 글이 요세푸스의 것이라고믿는다면, 별 어려움 없이 그것이 그가 설교한 것이라는 것과,14대 예루살렘 감독으로 있을 때 설교한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결론적으로 많은 내부적인 증거와 외부적인 증언들을 볼 때 이 단편이 요세푸스의 작품임을 우리에게 설득하고 있다. 오히려 그보다 그러한 결론으로 강제로 몰아가고 있다는 표현이 타당할 것이다. 또한 그가 카틀릭 신자로서 예루살렘의 감독으로있을 때 헬라인들이 늘 듣던 설교의 하나로 그가 공적으로 설교한 것임에 틀림없다. 3세기의 포르피리가 분명히 요세푸스의 이름으로 인용하고 있고, 4세기의 안디옥의 감독 멜레티우스가 또상당 부분을 인용하고 있으며, 7세기에 또 요세푸스 이름으로된 더 많은 부분의 인용이 나타난다. 8세기에 죤 다마신이 두 개의 인용한 글을 그의 ‘병행'(Parallels)에 포함시키고 있고 또 요세푸스의 여러 작품들의 사본에 그의 이름으로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다. 12세기 조나라스가 다마신이 인용한 부분이 그의 것이라고 확인한 바 있다. 우리가 가진 시기와 장소가 다른 넷 이상의 사본 전부가 요세푸스를 저자로서 지목하고 있다. 더우기 이것을 반박할 그 어떤 내부적인 증거나 외부적인 증언이 없다. 최고의 확실성을 가지고 분명한 요세푸스의 작품, 진품으로 그가 예루살렘의 감독직에 있을 때 한 설교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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