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낮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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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sponse to 성탄 낮미사

  1. user#0 님의 말: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메리크리스마스~”“성탄 축하합니다.~”“평화를 빕니다. 평화 가득하세요~” 성탄을 맞이하여 다양한 인사들을 형제자매들에게 건냅니다. 또한 수많은 인사들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인사말에는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하고,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아 내어서는 안 되고, 위하는 척 하면서 상대방의 마음에 분열을 일으켜서도 안 됩니다. 내가 하고 있는 말들을 내가 알고 있어야 하고, 내가 하고 있는 말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때는 내 마음이 그에게 가 있어야 합니다. 그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내 가슴에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말은 힘을 갖추고, 둘 사이에 사랑의 형상을 만들어 냅니다.

    수많은 말들을 하며 살아가고, 수많은 말들을 들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내가 쏟아내고 있는 말들 중에는 “내가 알고 있는 말과 내가 모르는 말, 남에게서 들은 말과 그냥 생각나는 말들”이 온통 섞여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한사람만 건너도 말이 바뀌는 것입니다. 자신이 왜 그 말을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고, 그 말을 왜 해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난 레지오 단원들 성지순례를 갔을 때, 함께 둘러앉아서 말 전하기를 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제가 먼저 옆 사람에게 “신앙인은 남의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73명을 돌아서 저에게 다시 돌아온 말은 “하느님께 거룩하게 지내자.”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서로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전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른 팀들도 말전하기를 하면 모두가 이상한 말이 전해집니다. “신앙인은 남의 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돌아온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100%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듣는 말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들은 말은 상대방이 하고 싶은 말을 들은 것이지 진실을 들은 것이 아닙니다. 사실을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남의 말을 듣고 다른 이에게 전해준다면 사

     

     

    실 나는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거짓을 진실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전하고 기뻐하는 것이고, 거짓말에 거짓말을 더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 “말 전하기”에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내가 나도 모르는 말을 함부로 하고 있구나. 앞으로는 말을 조심해야지.”그런데 또 다른 이는 불평을 합니다. “네가 잘 못 전해 줬기 때문에 내가 잘못 말 한 것 아니냐?” 그런데 그도 옆 사람에게는 다른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합니다. 상대방이 말을 할 때,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고, 그리고 상대방이 한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그러니 말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입니다. 나는 하루에서도 수없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이 생각이 나지도 않고, 내가 했다고 생각할 수 없는 말들도 어떤 때는 내가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지 않은 말 때문에 억울할 때도 있고, 내가 한 말 때문에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워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고 있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생각하며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통 외향적인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즉석에서 참 많은 말들을 쏟아 냅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오랜 동안 생각했던 말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이 안에서 정리가 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 전에 “이 말을 해야 될까? 안 해도 되는 말은 아닌가?”를 먼저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속으로만 맴돌다가 마음 편한 사람 만나면 이런 저런 생각들과 불평들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즉 어떤 이들은 쉽게 말하지만 그 말의 깊이와 진정성이 없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어렵게 말하지만 그 말의 깊이와 진정성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말하기 어려워하기에 편한 사람에게 온갖 부정적인 말을 가득 쏟아내기도 합니다.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요? 성모님께서는 천사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천사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1,28)라고 인사하자, 이 말에 성모님은 몹시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의 말 하는 스타일입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 한 번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그 말에 대해서 그가 설명을 할 수 있도록 끝까지 기회를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성모님의 대화 법”입니다.

    내가 귀를 열어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을 때, 나는 상대방의 말을 그가 의도하는 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Understand). 하지만 그의 말을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들을 때는 그가 의도하는 대로 들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를 성모님처럼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이 없다면 결국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내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게 될 뿐입니다.

    또한 내 혀를 길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됩니다. 내 안에 있는 교만과 허영, 아집과 독선은 내가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내가 아닌 나의 말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기쁨과 위로보다는 부정과 상처를 춥니다. 그래서 내 속에 있는 나를 길들일 때, 나의 혀는 내가 해야 되는 말을 하고, 내가 하지 말아야 되는 말은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나는 수많은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들은 나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나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내게서 나오는 말들이 상대방에게 편안함과 위로를 주고, 내게서 나오는 말들이 공동체를 일치시키며, 내게서 나오는 말들이 상대방에게 기쁨을 준다면, 나의 입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입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이 성탄 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무시무시한 괴물이 등장하였습니다. 그 괴물은 요한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워주고, 아무 소리도 못하도록 입에는 자물쇠를 달아 버렸습니다. 또한 날카로운 송곳으로 온 몸을 사정없이 찌르고, 심장에는 커다란 못을 박았습니다. 요한은 발버둥 치며 “당신은 누구인데 나한테 이런 고통을 주는 것입니까?”하며 절규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괴물은 “나는 네가 만들어낸 존재다. 네가 쏟아낸 불평들과 불만들이 엉겨 붙어 나를 이렇게 흉악하게 만들었고, 네가 지금 지고 있는 짐들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비방한 죄의 무게이며, 네 입에 달린 자물쇠는 다른 사람들이 참고 있던 고통의 아주 일부란다. 그리고 송곳으로 온 몸을 찌른 것은 네가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대방의 봉사를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든 죄의 결과이며, 네 심장에 박혀 있는 커다란 못은 네 양심의 무감각함에서 발생한 죄의 못이란다.”

     

    요한은 그 괴물에게 절규하며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그러자 괴물은 “왜 그것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니? 넌 사실 다른 이들의 고통을 즐기고 있잖아? 단지 그것을 네가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지. 너를 통해서 네 옆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큰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데…, 네가 고통을 만들어 놓고, 너만 이 고통에서 벗어난다면 불공평하지 않을까?”

    요한은 그 괴물에게 말했습니다.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러자 그 괴물은 “그렇다면 네가 나를 바꾸면 된다.”그러자 요한은 “제가 어떻게 흉찍한 당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단 말입니까? 당신을 보기만 해도 끔찍해서 당신에게서 도망쳐 버리고 싶은데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괴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만들어낸 존재란다. 네가 쏟아낸 불평들과 불만들이 엉겨 붙어 나를 이렇게 흉악하게 만들었지. 네가 나의 모습을 보고 끔찍하다고 하면서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나는 더 흉찍해지고, 힘이 강해지지. 물론 외면하면 잠시동안은 너에게는 나타나지 않지. 그러나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쏟아 부은 말들로 나는 더욱 강한 힘을 얻게 되고, 마침내는 너를 파멸시키게 되지.”

    요한은 그 괴물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괴물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가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칭찬과 배려를 한다면 내 모습은 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네 옆에 있는 이들을 향한 비난과 비방을 멈추면 네 입에 채워져 있는 자물통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네 몸에 난 송곳은 상처는 겸손과 절제의 약을 바르지 않으면 결코 낫지 않을 것이요, 네 심장을 찌르고 있는 큰 못은 네가 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절대로 뽑을 수 없는 못 이란다.”

     

    요한은 괴물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오늘부터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 앞에 나타나지 말고 사라지세요.”

     

    그러자 괴물은 요한에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네가 쏟아내는 불평과 불만, 비난과 비방을 멈출 수 있을까?” 요한에게 괴물에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괴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하고자만 한다면 할 수 있겠지. 하지만 넌 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을지 모르지만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의지는 없을걸? 그래서 나 같은 존재가 너 같은 사람을 통해서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이지.”

     

    무서운 꿈에서 깨어난 요한은 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불평불만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괴물의 말이 계속에서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넌 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을지 모르지만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의지는 없을걸?”

     

    말은 한번 내 입에서 나가면 다시 잡아올 수 없습니다. 없던 것으로 할 수도 없습니다. 내 생각이 형상화되어서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내가 전해 듣고 전하는 말은 대부분 거짓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거짓을 말하는 사람일까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일까요?

     

    성탄을 맞이하여 기쁜소식을 전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내 눈에 상대방이 안 좋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의 잘못이 있는 그대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저 사람의 잘못을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 하는가? 차라리 고개를 돌릴까? ”하는 유혹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라보는 나는 어떨까요? 그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저 사람(나)만 없으면 좋겠는데…”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7,12)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탄을 맞이하여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불평을 하고 싶어도 한 번 더 참아보고, 비난을 하고 싶어도 한 번 더 참아봅시다. 그것을 아기 예수님께서 원하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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