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대림 제 4주일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매일 매일 수많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말과 내가 모르는 말, 남에게서 들은 말과 그냥 생각나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한사람만 건너도 말이 바뀝니다. 그리고 자신이 왜 그 말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목요일 레지오 단원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그리고 함께 둘러앉아서 말 전하기를 했습니다. 제가 먼저 옆 사람에게 “신앙인은 남의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73명을 돌아서 저에게 다시 돌아온 말은 “하느님께 거룩하게 지내자.”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서로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전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내가 나도 모르는 말을 함부로 하고 있구나. 앞으로는 말을 조심해야지.”그런데 또 다른 이는 불평을 합니다. “네가 잘 못 전해 줬기 때문에 내가 잘못 말 한 것 아니냐?” 그런데 그도 옆 사람에게는 다른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합니다. 상대방이 말을 할 때,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듣고, 그리고 상대방이 한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그러니 말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입니다. 나는 하루에서도 수없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이 생각이 나지 않고, 내가 했다고 생각할 수 없는 말들도 어떤 때는 내가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지 않은 말 때문에 억울할 때도 있고, 내가 한 말 때문에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워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고 있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생각하며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했던 말이 무슨 말인지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통 외향적인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즉석에서 참 많은 말들을 쏟아 냅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오랜 동안 생각했던 말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이 안에서 정리가 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하기 전에 “이 말을 해야 될까? 안 해도 되는 말은 아닌가?”를 먼저 생각하기도 합니다.



즉 어떤 이들은 쉽게 말하지만 그 말의 깊이와 진정성이 없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어렵게 말하지만 그 말의 깊이와 진정성이 가득합니다.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요? 성모님께서는 천사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천사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1,28)라고 인사하자, 이 말에 성모님은 몹시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모님의 말 하는 스타일입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 한 번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그 말에 대해서 그가 설명을 할 수 있도록 끝까지 기회를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성모님의 대화 법”입니다.



내가 귀를 열어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들을 때, 나는 상대방의 말을 그가 의도하는 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Understand). 하지만 그의 말을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들을 때는 그가 의도하는 대로 들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를 성모님처럼 곰곰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과정이 없다면 결국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내가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게 될 뿐입니다.



또한 내 혀를 길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됩니다. 내 안에 있는 교만과 허영, 아집과 독선은 내가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내가 아닌 나의 말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기쁨과 위로보다는 부정과 상처를 춥니다. 그래서 내 속에 있는 나를 길들일 때, 나의 혀는 내가 해야 되는 말을 하고, 내가 하지 말아야 되는 말은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나는 수많은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들은 나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나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내게서 나오는 말들이 상대방에게 편안함과 위로를 주고, 내게서 나오는 말들이 공동체를 일치시키며, 내게서 나오는 말들이 상대방에게 기쁨을 준다면, 나의 입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입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하느님께 모욕을 드리는 입이 될 것입니다.



동네의 모든 소문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동네의 모든 말은 그 사람에서 시작되어 그 사람에게로 흘러갑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와서 참 많은 만들을 쏟아놓고 갔고, 그는 충실히 그 말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이렇게 살다가 하느님 앞에 가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말을 자신에게 쏟아 놓고, 자신이 그들을 대신해서 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지만 “진실로 자신을 믿어주고, 가슴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들으면 그것을 동네방네 소문내고 있던 자신, 주워들은 말에, 말을 붙여서 동네방네 떠들고 있던 자신. 뒤에서는 “믿지 못할 사람, 입이 싼 사람”이라는 욕을 먹고 있던 자신.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본 순간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해성사를 보고, 다시는 남의 말을 안 하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자신이 쏟아 놓은 말들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한숨을 쉬며 후회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벌이구나! 이것이 벌이야!”



말을 안 하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지 말아야 될 말을 안 할 수는 있습니다. 해야 될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될 말을 하게 될 때, 나는 상대방과의 대화에서 그의 말을 오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말이 기쁨으로 다가온다면 다른 이들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전할 것이고, 그의 말이 부정적이거나 분열을 가져온다면, 마치 듣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귀에는 들렸지만 가슴에까지는 자리하지 않고, 입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하는 말과 하지 말아야 하는 말, 내가 들어야 하는 말과 듣지 말아야 하는 말을 분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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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대림 제 4주일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성모님처럼

    성탄은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겸손이 온 세상에 선포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참된 평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인간의 응답이 포함되는데, 그 응답의 주인공은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은 언제나 기도하는 분이셨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과 함께 한다는 것이며,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이들은 은총 안에 머물고 있는 이들이며, 은총이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천사는 예수님의 탄생을 마리아에게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임과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십니다. 이 응답을 통해서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7,14)

    임마누엘 예수님을 낳으신 분이 바로 언제나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살아오신 성모마리아 이십니다. 언제나 기도하며 하느님 안에서 살아왔기에 주님께서 늘 마리아와 함께 하셨고, 구약의 예언의 말씀을 이루는 구원의 도구, 은총의 도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 24편에서는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누구신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피조물은 창조주이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고, 주님의 말씀을 살아가야 함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주님의 자녀들에게는 한없는 영광임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기에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는 천사의 인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은 한 생을 주님만을 바라보고 사셨던 마리아의 삶을 미리 이렇게 노래합니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이렇게 사셨기에 주님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느님께로부터 의로움을 얻게 된 것입니다.

    성탄을 맞이하며 성모님처럼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시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겸손하게 고백하신 마리아를 본받아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며, 성탄을 기쁘게 맞이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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