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 추석의 의미


“기쁜 추석 되세요”

우리 민족의 큰 명절 중의 하나인 추석은 중추절(中秋節), 가배(嘉俳),가위, 한가위라고도 합니다. 한해 농사를 끝내고 오곡을 수확하는 시기이므로 명절 중에서 가장 풍성한 때입니다. 추석의 유래는 고대사회의 풍농제에서 기원했으며 일종의 추수감사절에 해당합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유리왕(儒理王) 때 6부(六部)의 여자들을 둘로 편을 나누어 두 왕녀가 여자들을 거느리고 7월 기망부터 매일 뜰에 모여 밤늦도록 베를 짜게 했습니다. 8월 보름이 되면 그동안의 성적을 가려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대접했습니다. 이때 “회소곡(會蘇曲)”이라는 노래와 춤을 추며 놀았는데 이를 \’가 \’라고 불렀습니다. 고려시대에도 추석명절을 지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적으로 선대 왕에게 추석제(秋夕祭)를 지낸 기록이 있습니다. 1518년(중종 13)에는 설·단오와 함께 3대 명절로 정해지기도 했습니다.

 

1. 함께 모인 가족

추석에는 가족들이 모두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함께 정을 나누고, 조상을 기억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을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바쁘게 살다보니 자기 방식대로 정을 나누려고 하고, 자기 방식대로 기쁨을 나누려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부모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기쁨이 넘치는 명절이 되겠지만, 각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불협화음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래서 명절에 함께 모이는 것이 기쁨이 되기도 하고, 불편함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화목한 집안은 명절에 가족이 다 모여 기쁨을 나누고, 부모님을 중심으로 서로가 서로를 배려합니다. 그러나 화목하지 못한 집안은 명절에 가족이 하나씩 됩니다. 모이고 싶어도 모이지 못하게 되고 함께 있어도 불편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족이 함께 모여 부모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먼저 가신 조상들을 기억하며 연도를 바치고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며, 가족이 함께 미사에 참례하는 가정. 그 가정이 바로 우리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명절 직후 이혼상담 건수가 평소보다 크게 늘어난다고 보도가 됩니다. 즐거워야 할 명절이 부부간 이혼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명절에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한다면 갈등의 도화선이 아니라 행복의 도화선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절에 형제자매들이 함께 우애를 나누고, 효로 부모를 공경할 때, 명절은 기쁨으로 다가오는 가족 일치의 축제가 되는 것입니다.

 

2. 명절을 기쁘게 보내는 방법

명절을 기쁘게 지내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들의 성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족이 함께 모여 있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함께 있음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스트레스로 생각하게 됩니다.

 

① 수고스럽더라도 부모님들은 며느리들을 위해 조금 일찍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준비한다면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들을 위해서 선물을 준비하십시오. 쌀이나 콩, 고춧가루 등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에 그렇게 큰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며느리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해 놓고 기다린다면 며느리들은 시댁에 오는 것을 “일이 아니라 기쁨”으로 여길 것입니다.

② 며느리들은 힘들더라도 웃는 얼굴로 가족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며느리들 중에 추석을 기다리는 며느리들이 얼마나 될까요? 기쁨도 있지만 힘든 일들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기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명절은 큰 기쁨이라고 생각하고, 내 집에서 내 어머니를 모시고 기쁘게 명절을 보내고 있는 올케들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음을 기억해 본다면, 시부모님께는 더 많은 것들을 해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③ 남자들은 자신들의 놀이에만 집중하지 말고 부엌에 들어가 음심을 같이 준비하고, 방청소나 설거지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여자들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아내를 배려하고, 아내를 자랑스러워하며, 아내의 권위를 가족들 앞에서 존중해 준다면 비록 몸은 힘들더라도 마음만은 기쁨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바라보시는 주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④ 아이들은 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지 말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어르신들의 심부름을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아이들이 간절히 바라는 용돈을 듬뿍 줄 수 있어야 하고, 용돈을 듬뿍 줄 수 있도록 자녀들은 부모님의 주머니를 채워 드려야 합니다.

⑤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잊지 않고 해야 합니다. “맛있다는 말은 기본”이고, “수고하셨습니다.”는 말은 당연히 해야 하며, “이것은 제가 할게요.”라고 말하면서 먼저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⑥ 남편들은 반드시 처갓집에 가서 장인 장모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처갓집에 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입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은 며느리가 처갓집에 갈 때, 있는 것 없는 것 한 가득 챙겨서 보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귀한 딸을 주었으니 감사해야 하고, 내 아들과 손자 손녀를 사랑해 주니 감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⑦ 그리고 모든 것을 잊어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가족이 모두 조상들을 위한 미사에 참례하는 것입니다. 지금 자녀들과 함께 미사에 참례하지 않으면, 자녀들은 다음에 돌아가신 부모를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⑧ 그리고 내가 베푼 것만큼 돌아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식들은 내가 부모에게 드리는 공경을 보고 그대로 배울 것이고, 드리는 용돈과 선물을 보고 그대로 배울 것입니다. “말로만 하면, 나 또한 말로만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농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3. 조상을 기억하고, 하느님께 감사하기

우리 민족은 추석날 아침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갑니다. 조상들의 무덤 앞에서 조상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조상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조상을 기억한다면 살아있는 부모는 당연히 공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데리고 꼭 성묘를 다녀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들로부터 더욱 공경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내 자식들은 나를 공경하지 않게 됩니다. 성묘가 끝나면 가족 모두가 성당으로 가서 함께 모일 수 있음에 감사하고, 한해의 수확에 감사하며, 조상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합니다. 함께 모일 수 있음은 그간 아무 일이 없었다는 것이니 감사할 일이고, 오늘까지 나를 있게 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릴 일입니다. 그리고 햇곡식을 거두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하느님께서 대자연을 통해서 나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니 감사할 일입니다.

 

또한 감사드리는 모습을 통해 가족이 변화되고, 자녀들이 변화됩니다. 부모가 감사하는 모습을 바라본 자녀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감사하게 됩니다.”그렇게 삶의 모습으로 자녀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추석명절인 것입니다.

부모가 감사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자녀들은 결코 감사를 모르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더 나아가 굴러온 복을 걷어차는 일도 서슴없이 하게 됩니다.

 

4. 자녀들 신앙교육의 기회

명절에는 외지에서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한 자녀들에게는 고백성사를 통해서 다시금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자식들 길 막힐 텐디, 빨리 보내야지유. 그래서 미사에는 못 데리고 가고, 또 나도 뒷정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성당에 못 가유! 조상들을 위해서 미사 예물은 봉헌했지유!

하지만, 이렇게 교육을 하면, 이다음에 자녀들은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더 나아가 신앙생활도 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죽은 다음에 자녀들이 나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해 줄까요?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또 “우리 애들 신앙생활 안해서 큰일이예요.”라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거짓말이고, 자녀들의 불신앙은 모두 부모책임인 것입니다.

명절을 기쁘게 보내며, 신앙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기쁜 명절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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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명절, 추석의 의미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식탁에서의 예절

  2. 관리자 님의 말:

    추석

    추석은 한민족에게는 설명절과 더불어 가장 큰 명절이며 축제입니다. 추석에는 가족들이 모두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함께 정을 나누고, 조상을 기억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을 주려고 합니다.
    추석은 풍요로운 축제이기에 고향을 찾는 모든 이들이 풍요로워져야 합니다. 부모님도 풍요로워져야 하지만 자녀들도 풍요로워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풍요로움을 나누어야 합니다. 불편한 이야기들은 덮어 두고, 행복한 이야기, 기쁜 이야기들이 오고가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어른과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해 합니다. 어른들은 배려하고 걱정하고 위하는 마음에서이것저것을 물어봅니다. 그러나 그런 질문을 받을 때, 젊은이들은 싫어합니다. 그런 질문을 좋아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풍요로운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가르침과 충고는 추석명절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명절은 많은 고민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 추석이 지금 나와 어떤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추석을 왜 지내야 하는지를 명확히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추석에 부모를 찾아야 하는지, 왜 추석에 성묘를 해야 하는지, 왜 추석에 먼저가신 조상들을 기억하고 기도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농경사회가 아니고, 언제나 온갖 것들이 풍요로우니 추석의 의미는 점점 희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화상통화를 하는 젊은이들에게 명절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은 무척 힘든 일 중의 하나입니다. 추석의 의미를 알려 주지 않으면, 그저 한민족의 전통중의 하나라는 것 뿐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통을 안 지키면 큰 문제가 될까요? 물론 큰 문제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전통 안에 담겨진 문화나 정서, , 사랑, 관계, 친교 등이 점점 약해지고, 개인주의화 되어 갈 것입니다. 가족의 유대가 약해지고, 세대 간의 단절은 더 심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것들이 지금 이 순간젊은이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우리 민족의 좋은 전통을 가르쳐 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다른 나라의 문화도 배우는데, 하물며 우리 민족의 문화를 배우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공동체가 민족의 정서를 후손들에게 전해주지 않으면 결국 그 정서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전통을 우리는 명절을 통해서 후손들에게 잘 알려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명절을 더욱 뜻 깊게 보내봅시다.

     

  3. 관리자 님의 말:

    성묘(省墓)

    성묘는 조상의 산소를 찾아 인사하고, 산소를 돌보는 것을 말합니다. 한민족은 보통 한식과 추석과 설에는 조상의 묘를 찾아 돌보고, 조상을 기억하며 인사합니다.

    묘지에서 제사를 지내는 축문을 보면 봄에는 계절의 기운이 차례로 흘러 바뀌고 비와 이슬이 봉분을 적시기 때문에, 이것들을 쓸어내려 봉분을 깨끗이 하고자 합니다.” 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고, 가을에는 초목의 잎이 뿌리로 돌아가는 때를 맞아 근본을 갚을 일을 생각하게 되어 감히 봉분을 깨끗이 하고자 합니다.”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상의 묘지를 관리하고 돌보며, 조상을 기억하고,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는 것이 성묘의 본질인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명절을 맞이하면 먼저 부모의 묘를 찾아 잡풀을 제거하고 봉분을 다듬어 깨끗하게 합니다. 이것을 벌초라고 합니다. 그리고 명절날 아침 미사에 참례하고, 가족이 모두 조상의 묘를 찾아 절하고 짧은 연도를 바칩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이것을 가르치고, 자녀들은 또 어른이 되어 자신의 자녀들에게 가르칩니다. 그렇게 우리 민족은 조상을 공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민족입니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가야 하고, 이어갈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4. 관리자 님의 말:

    한가위 차례 기도문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 주님의 은총과 보살핌으로 한가위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저희 모두는 저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주님 앞으로 나아간 조상들과 부모 형제 친지들을 기억하고자 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모였습니다. 저희 모두는 저희 조상들과 친지들과 부모형제자매들이 영원한 천상복락을 누릴 수 있도록 주님께 자비를 청하나이다.

    주님! 저희의 정성을 자비로이 받아 주시어, 저희가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은총과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저희의 조상들과 형제자매와 친지들의 부족함을 바라보지 마시고 저희가 드리는 찬미와 감사와 영광만을 바라보시어, 저희가 기억하는 모든 연령들에 풍성한 은총을 내려 주소서. 또한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연령들에게도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행복에 이르게 하소서.

    저희가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 아버지! 저희가 조상들과 친지들을 기억하는 이 예식을 통하여 저희의 자녀들은 부모공경을 배우게 하시고, 저희 온 가족은 서로 일치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불신과 반목을 없애고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한 형제자매임을 깨닫고, 다음 명절에는 더 기쁘게 만나 주님을 찬양하며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5. 관리자 님의 말:

    어머니

    훌륭한 자녀들 뒤에는 언제나 훌륭한 어머니가 계십니다. 어머니의 힘은 강하였고, 역사의 주역들을 키우고 그들을 있게 한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희생자인 동시에 창조자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오랜 역사 안에서 어머니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엄하면서도 끝없이 자애롭습니다. 그러나 여인일지라도 자녀를 낳지 않았거나 슬하에 자녀가 없는 경우에는 어머니라고 불리지 않습니다.

    한민족의 전통 안에서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자녀들을 훌륭히 기르고 가르치는 책임 외에도, 한 가정의 주부로서 살림을 책임지고, 남편을 받들고 가족관계를 원만히 이끄는 역할까지 도맡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머니들은 무엇보다 자녀를 기르고 가르치는 의무를 소중히 생각하였으며, 자신의 희생을 오히려 보람으로 여겨왔습니다.

    조선시대의 유교가 자리를 굳히면서 여성의 지위는 삼종지의(三從之義)에 묶이게 되었습니다. 출가 전에는 아버지를, 출가 후에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좇아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종속적 관계에 묶여 살면서 막중한 자신들의 의무만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을 천직처럼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에도 어머니로서의 위치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가정과 자녀를 위해서는 즐겁게 자기희생을 하셨고, 자녀를 훌륭히 키우고자 불사른 정렬은 그 무엇에 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훌륭하신 어머니들의 삶을 돌아보면, 받는 것보다는 베푸는 것을 천명처럼 생각하며 사셨습니다.

    끝없는 자기희생 속에서 가정과 자녀를 위해 묵묵히 몸 바치는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성인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누구나의 가슴속에 담긴 어머니의 모습은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니는 것입니다.

    누구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감미롭고 포근하며, 따뜻하고 든든합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가장 힘들고 어렵고 절망적일 때 어머니를 부르며 어머니의 가슴에 안기기를 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큰 환희와 보람의 절정에 섰을 때에도 어머니를 부르며 뜨거운 감동을 어머니와 함께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잠언에는 자녀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잘 드러납니다. 내 아들아, 너의 마음이 지혜로우면 내 마음도 기뻐하고 너의 입술이 올바른 것을 말하면 내 속도 즐거워한다. 너의 마음은 죄인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날마다 주님을 열심히 경외하여라. 그래야 미래가 있고 너의 희망이 끊기지 않는다. 내 아들아, 너는 잘 듣고 지혜로워져 너의 마음을 바른길로 이끌어라.” (잠언23,15-19)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나의 어머니를 기억하고, 어머니께 더 큰 사랑과 존경과 감사를 드립시다. 내가 있는 이유는 어머니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 나를 이렇게 잘 키워 주셨기에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나의 자녀들도 주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형제간에 우애가 있게 지낼 수 있도록 더욱 격려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르치며, 자녀들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맙시다.

     

     

  6. 관리자 님의 말:

    아버지

    한민족의 전통적인 가족제도에서 한 가족의 가장 중심 되는 인물은 바로 아버지입니다. 남성 우위의 부계친족제사회에서 가정의 우두머리인 가장(家長)은 부인에게는 남편이요, 자녀들에게는 바로 아버지입니다.

     

    가계(家系)의 존속을 강조하는 한민족의 가족제도에서 가족의 우두머리인 가장은 시조에서부터 수많은 세대의 조상들을 거쳐서 대대로 이어져온 가계를 물려받은 사람이고, 또한 이 가계를 단절 없이 후세에게 이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어느 가족에게서나 아버지는 먼 과거에서 시작되어 미래로 연결되는 가계의 연결고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계계승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자녀를 가계의 대를 물려줄 만한 인물로 키우는 것이 바로 아버지에게 달렸다고 할 정도로 아버지의 임무는 막중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가족의 중심적인 인물이기에 전통사회에서는 친족호칭에 있어서도 아버지를 지칭하는 용어가 극히 다양하여, 이 많은 용어들 중 맥락에 따라서 얼마나 적절히 잘 구사할 수 있느냐는 것이 개인의 학식과 품위를 가늠하는 한 중요한 지표로 간주되기도 하였습니다.

    아버지를 면전에서 직접적으로 부를 때에 사용하는 직접호칭은 아빠’·‘아버지그리고 아버님등 세 가지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간접적으로 지칭하는 관계지시호칭은 다양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말할 때는 애비 왔느냐와 같이 말할 수 있지만 자녀가 부모에게 말씀드릴 때는 아버님 오셨습니까와 같이 존칭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아버지를 이야기 할 때는 생존하실 때는 가친으로, 돌아가셨을 때는 선친으로 호칭합니다. 그리고 타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여서 생존할 때에는 춘부장으로 지칭되지만, 사거한 사람이라면 선고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아버지는 섬김의 대상입니다. 자녀의 입장에서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모님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은혜를 입은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민족의 전통사회에서 부모를 섬긴다는 것은 단지 부모를 모시고 산다거나,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거나 편안하게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모든 행위 일체가 이 효도와 관련하여 설명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녀의 어떤 행동이 효도하는 행동일까요?

    첫째, 부모를 존경하고

    둘째, 부모를 잘 봉양하고

    셋째,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는 일이며

    넷째, 부모의 뜻을 받드는 일입니다.

     

    이런 것은 모두 부모에 대한 자식 된 도리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를 다하기 위해서는 자식은 일상생활에서 항상 부모를 섬기는 일과 관련지어서 행동하고 생각할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부모가 죽은 뒤까지도 연장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자녀들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위치를 규정짓고, 아버지의 권위를 뒷받침 해 주는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도 이어질 가계존속을 위하여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아버지의 권위는 가정생활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기여하였고, 화합과 통합의 구심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러한 가계를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을 맡았기에 자녀들에게는 엄격한 훈육 담당자로서의 역할을 하였기에 한민족의 전통적인 가족의식에서 엄한 아버지의 이미지는 우리의 가족제도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 속담에 그 아버지를 알고 싶거든 먼저 그 아들을 보라.”든가, “그 아버지가 그 아들을 길러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는 변함이 없지만 그 아버지의 권위가 지금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오늘의 나의 모습은 어제 내가 선택한 행위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 안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어떠한지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깊이 있게 고민해 봅시다.

     

  7. 관리자 님의 말:

    탐욕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루카12,13)라고 청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물질에 대한 집착과 탐욕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재물에 대한 도가 지나친 집착은 재물만을 바라보게 만들고, 형제자매도 외면하게 만듭니다. 또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게 만들고, 그것으로 안전생명을 유지하는 도구로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12,15)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루카12,15)라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셨으니 하느님께 감사하며,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생명은 탐욕으로는 연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들려 주십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관심 없고, 오로지 풍요로운 현세의 삶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부유한 사람은 자신의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소출을 거두게 되니 욕심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것에 만족하고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유혹은 그렇게 다가와 한 사람을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루카12,17). 이렇게 많은 재물 때문에 고민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사람이 하는 고민과 행동은 지극히 당연해 보입니다. 분명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인이 살아가면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내 것을 움켜쥐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것을 활용하느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내 구원을 위해서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자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루카12,18)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곳간들을 헐어 낼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보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생각입니다. 그 많은 소출을 보관을 해야 만이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곳에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밤 그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그 많은 곡식과 재물들을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려고 합니다. 다른 이들과 나눌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 보관 방법만을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의 손도 그의 곡식 창고가 될 수 있었으나 그의 머리에는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가 오늘 밤 죽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모두 나누어 주었을 것입니다.

     

    나도 참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도 앞으로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나눌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오늘 밤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분명 나는 내 재산을 어떻게 나눠 줄 것인지를 고민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내일도 살아 있을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눔에 대해서는 아직도 시간이 많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나눔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일은 늦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너무도 힘들고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지금은 움켜잡을 때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베풀지 않으면 다음에는 베풀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어리석은 부자의 모습을 통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루카12,19).

    이제부터 놀면서 마시고 먹고 즐기는 것이 그의 생활의 전부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영혼은 내가 쌓아둔 재물을 먹고 마시지 않습니다. 영혼의 음식은 기도입니다. 영혼의 음식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기도와 사랑이 없으면 영혼은 메말라 가고,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재산과 재물을 가지고도 어리석은 삶을 살아간 부자에게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12,20)

    하느님께서는 이 부자에게 지금껏 살아온 삶의 방식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죽으면 그 많은 재산들은 누구의 차지가 될까요? 그것을 저승에 가지고 갈 수 없으니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이제 내 문제가 됩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죽어서 가지고 가지도 못하는 재산에 집착할 것인가? 아니면 가지고 갈 수 있는 재산에 집착할 것인가? 쓰고, 나누고, 베풀면서 살아갈 것인가? 움켜잡고만 살아갈 것인가?” 이제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까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내어 놓고 빈털터리가 되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유해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비유를 드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의탁하는 이가 참된 부자입니다. 탐욕을 경계하며, 재물의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임을 깨달은 사람이 부유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부유함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8. 관리자 님의 말: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

    탐욕을 조심하는 사람들은 물질에 집착하지 않으며, 나눔의 삶을 살아가고,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럴수록 재물은 더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루카12,21)은 이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재물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세속적인 재물과 세상 걱정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재물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재물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재물 때문에 멸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움켜잡은 물질들이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베푼 것들, 내어 놓은 것들이 나를 의로운 삶으로 인도함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가진 재산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내가 내 옆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 내어 줄 수 있는 것들이 참 많고, 그 내어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도 참 많습니다. 마음이 열리면 아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기쁘게 나눌 수 있습니다. 내어줌을 통해 가족들이 얼마나 기뻐합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해 합니까?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의 나눔을 통해 얼마나 행복해 집니까?

    그런데 나눔의 기쁨을 맛보지 못한 이들은 결코 나누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 것만을 챙기려 합니다. 분명히 충분히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을 결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삶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하느님께 인색하고, 형제자매들에게도 인색한 사람이 있습니다. 착한 행실로 하느님 앞에 덕을 쌓으려 애쓰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재물의 노예가 되어 영원한 삶에서 멀어져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에게 있는 재물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실천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재물만 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움켜잡게 만듭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게 되어 있습니다. 오래 지속될 것만 같은 푸르름이 시들고, 아름다움이 지게 될 때, 그때는 후회하게 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이사야서 40,8) 그러므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재산관리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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