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의 자비주일
2000년 대희년 4월 3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온 교회는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부를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날은 ‘자비의 사도’로 널리 알려진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가 시성된 날이었습니다. 같은 해 5월 5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2001년부터 부활 제2주일을 자비주일로 지내도록 하는 교령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교회는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의 자비를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하며, 각 기도문도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는 고유기도로 바꿔 바치게 되었습니다.
성녀의 일기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자비 상본을 만들고, 자비 축일을 지내며 자비 시간을 가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 상본은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하나이다.\’라는 글이 새겨진 부활하신 그리스도 모습입니다. 손과 발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흔적과 심장에서는 두 줄기 빛이 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1931년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나타나 당신 모습을 그려 전하라고 하신 데서 유래합니다.
1. 흰빛줄기는 영혼을 의롭게 하는 물을 뜻하고 붉은 빛줄기는 영혼의 생명인 피를 뜻합니다. 이 물과 피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의노의 오른손이 그를 붙잡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이 성화를 통해서 나는 영혼들에게 많은 은총을 줄 것 이다. 그러니 모든 영혼이 이 성화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나는 이 상본을 공경하는 영혼은 영원히 멸망치 않게 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 자비의 축일로 지내도록 요청하면서, 축일을 지내기 위해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하고 하느님 자비를 간청하는 성체조배 시간을 갖도록 당부하셨습니다. 또 성 금요일부터 9일기도를 바치며 축일을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오후 3시에는 하느님 자비를 찬미하고 영광 드리며 죄인들을 위해 하느님 자비를 청하는 기도를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요한20,28)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토마스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요한20,25)하고 부활의 기쁜소식을 전하였습니다. 하지만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토마스는 처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신 분이 부활하신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토마스는 제자들이 보고 싶어 했던 것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제자들이 헛것을 보았다 할지라도 그것이라도 보길 원했을 것입니다. 그는 보고 믿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20,25)
옆에 있는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내 마음이 닫혀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열려 있어야 보이고, 들리는데 닫혀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고, 형제요 자매라고 지내왔지만, 동료로서 함께 지내왔지만 그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도 문제요,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토마스도 같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잠겨 있는 문을 통과하셔서 그들 가운데 서시며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20,26) 그리고 토마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20,27)
한주일 동안 토마스는 아마도 홀로 의심 속에서 움츠리고 있었으며 다른 제자들과 함께 부활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토마스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토마스가 원하는 방식으로 토마스를 믿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보통의 경우 고집 부리다가도, 일 한번 당해야 그제야 정신을 차립니다. 토마스 사도가 믿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사랑으로 토마스에게 다가가 주십니다. 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 일입니까? 그러자 토마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요한20,28)
그렇습니다. 그분의 부활을 내가 믿어야 만이 그분께서 부활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께서 부활하셨기에 내가 믿어야 하는 것이고, 내가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결코 내 틀에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토마스는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넣어 보아야만이 믿겠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예수님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 보았을 것입니다. 토마스 사도는 다른 사도들이 본 것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어찌 보면 그 모든 것이 사랑에서 나오지 않았을까요? 너무도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자신도 예수님을 보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20,29)
동료들이 말해 주었으면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면 믿으면 됩니다. 그러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보지 않았음에도 나는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파우스티나 성녀의 기도
● 저는 당신의 자비심 안에서 완전히 변화되어 생생하게 당신을 드러내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 오! 주님. 당신의 거룩하심과 지극한 자비심이 저의 마음과 영혼을 통하여 제 이웃에게 전해지게 하소서.
● 오! 주님, 저의 눈을 자비롭게 하소서. 겉으로 나타나는 것만으로 남을 의심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제 이웃의 영혼 안에서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며 그들의 구원을 갈망하도록 도와주소서.
○ 오! 주님, 저의 귀를 자비롭게 하소서. 제 이웃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고통과 신음소리에 냉담하지 않게 도와주소서.
● 오! 주님, 저의 혀를 자비롭게 하소서. 제 이웃에게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게 하시고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용서의 말을 해 줄 수 있게 도와주소서.
○ 오! 주님, 저의 손을 자비롭게 하소서. 선행으로 채워주시어 이웃에게 좋은 일만을 행하며 제 자신은 어렵고 힘든 일을 떠맡을 수 있게 도와주소서.
● 오! 주님, 저의 발을 자비롭게 하소서. 서둘러 제 이웃을 도울 수 있게 하시고 제 자신의 피로와 권태를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소서.
○ 오! 주님, 저의 마음을 자비롭게 하소서. 제 이웃의 모든 고통을 제 자신이 같이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저는 어떤 사람에게도 제 마음을 거절치 않겠나이다. 저의 친절을 욕되게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까지도 저는 성심성의를 다 하겠나이다.
● 그리하여 예수님의 지극히 자비로운 성심 안에 제 자신을 가두어 놓겠나이다. 저의 고통도 침묵 중에 참겠나이다. 오! 주님, 당신의 자비가 저에게 머무르게 하소서. 아멘.
하느님의 자비주일
2000년 대희년 4월 3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온 교회는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부를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날은 ‘자비의 사도’로 널리 알려진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가 시성된 날이었습니다. 같은 해 5월 5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2001년부터 부활 제2주일을 자비주일로 지내도록 하는 교령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교회는 부활 제2주일에 하느님의 자비를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하며, 각 기도문도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는 고유기도로 바꿔 바치게 되었습니다.
성녀의 일기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자비 상본을 만들고, 자비 축일을 지내며 자비 시간을 가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비 상본은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하나이다.’라는 글이 새겨진 부활하신 그리스도 모습입니다. 손과 발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흔적과 심장에서는 두 줄기 빛이 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1931년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나타나 당신 모습을 그려 전하라고 하신 데서 유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 자비의 축일로 지내도록 요청하면서, 축일을 지내기 위해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하고 하느님 자비를 간청하는 성체조배 시간을 갖도록 당부하셨습니다. 또 성 금요일부터 9일기도를 바치며 축일을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오후 3시에는 하느님 자비를 찬미하고 영광 드리며 죄인들을 위해 하느님 자비를 청하는 기도를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비의 시간에 드리는 기도
● 오, 저희를 위한 자비의 샘이신 예수 성심에서 세차게 흘러나온 피와 물이시여, 저는 주님께 의탁합니다. 예수님, 주님께서는 순전히 저희에 대한 사랑으로 친히 그 극심한 수난을 겪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정의는 주님의 탄식 한마디로 사그라들었으며, 완전히 자신을 낮추심은 오로지 주님의 자비와 그 상상할 수 없는 사랑의 업적입니다.
○ 십자가상 죽음의 순간에 주님의 지극히 거룩한 곳이 열렸으며, 주님은 거기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귀한 수난과 성심에서 나온 피와 물을 저희에게 주셨으며, 저희를 위해 자비의 지칠 줄 모르는 원천을 여셨습니다. 그것은 주님 자비의 전능함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모든 은총이 저희에게 흘러 내립니다.
● 오, 예수님, 영원한 진리이시며 저희의 생명이시여, 불쌍한 죄인들을 위하여 주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오, 지극히 사랑하올 주님의 성심이여, 연민으로 가득하시며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자비시여, 저는 당신께 불쌍한 죄인들을 위해 간청합니다. 모든 인류에게 상상할 수도 없는 은총의 빛이 쏟아져 나오는 자비의 샘이신 오, 거룩하신 성심이여, 불쌍한 죄인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 오, 예수님, 주님의 쓰라린 수난을 잊지 마시고 주님의 지극히 고귀한 성혈의 그 값진 대가로 되찾은 영혼들을 잃어버리는 것을 허락치 마소서. 십자가 위에 팔을 펼치셨던 오, 예수님, 간청하오니 모든 일에 있어서 언제 어디서나 거룩하신 아버지의 지극히 거룩한 뜻을 충실히 실천할 수 있도록 제게 은총을 허락해 주소서. 하느님의 뜻이 수행하기에 매우 고된 것이고 어려운 것 같이 보일 때일수록 더욱 간절히 청하오니, 예수님 주님의 상처로부터 저에게 힘과 능력을 내려주시어 “오! 주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는 기도를 제 입술에서 거듭 바치게 하여 주소서.
● 오 세상의 구원자시여, 인간의 구원을 사랑하시는 분이시여, 주님께서는 그 끔찍한 고문과 고통 속에서도 자신은 잊고 오직 영혼의 구원만을 생각하신 분이시니, 오 지극히 동정심 많으신 예수님, 성부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따라 구원사업에 있어 주님을 도우며 온전히 영혼들을 위해서만 살아갈 수 있도록 제 자신을 잊어버릴 은총을 제게 베풀어 주소서.
◎ 예수님, 당신은 숨을 거두셨으나 영혼들을 위하여 생명의 원천은 세차게 흘러나왔으며 자비의 바다는 온 세상을 위해 열렸습니다. 오, 생명의 샘이시여,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자비시여,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감싸시면서 저희에게 자신을 온전히 비우셨나이다.
“하느님 자비심을 구하는 5단 기도”
1. 성호경
2. 주님의 기도
3. 성모송
4. 사도신경
5. (매단을 시작할 때마다 1번)
영원하신 아버지, 저희가 지은 죄와 온 세상의 죄를 보속하는 마음으로 지극히 사랑하시는 당신 아드님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을 바치나이다.
6. (매단마다 아래 기도문을 10번 바친다)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7. (위의 기도가 끝난 뒤에 아래 기도문을 바친다.)
거룩하신 하느님, 전능하시고 영원하신이여,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3번)
[묵상] 자비 5단기도 각 단 시작 전에 아래 내용을 잠시 묵상합니다.
† 1단. 예수님의 오른손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거기서 흘린 피를 묵상하며,
† 2단. 예수님의 왼손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거기서 흘린 피를 묵상하며,
† 3단. 예수님의 오른발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거기서 흘린 피를 묵상하며,
† 4단. 예수님의 왼발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거기서 흘린 피를 묵상하며,
† 5단. 예수님의 오른쪽 늑방이 창에 찔렸을 때 거기서 흘린 피와 물을 묵상하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20,19)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습니다(요한20,19). 제자들은 지금 유다인들을 피해 숨어 있는 상태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불안과 초조, 절망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잠겨 있는 문을 통과 하시어 불안과 초조와 절망으로 가득한 제자들 가운데에 서시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20,1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하신 말씀은 바로 “평화”였습니다. 이 평화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신 평화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고통과 죽음을 통해서 성취한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부터 온 평화입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닫힌 문을 통과하여 자신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헛것을 보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십니다(요한20,20). 예수님의 구멍 난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는 십자가 위에서 처절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지금 예수님께서 자신들 앞에 서 계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결코 유령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자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습니다(요한20,20). 자신들의 눈앞에서 처절하게 고통당하시고, 그렇게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니 제자들의 기쁨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두려움과 절망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남을 통해서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제자들은 삶의 모든 가치를 잃었습니다. 제자들의 꿈과 희망이 사라지고, 그들 마음은 온통 절망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제자들도 부활을 맞게 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도 절망하고 포기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도 어렵고, 기도하기도 힘들 때가 생깁니다. 무엇을 해도 즐거움이 없고, 피하고 싶은 마음만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는 것입니다. 땀 흘리며 번민하고,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한 신앙인들은 역경을 이겨내고 주님 안에서 기쁨과 평화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쁨과 평화를 전할 때, 같은 어려움 속에 있는 이들도 힘을 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을 접고 싶은 유혹이 종종 생겨납니다. 또 내 옆에는 그렇게 힘겨운 역경에 부딪쳐서 답을 얻지 못하고 갈등과 고민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고 계시는 형제자매님들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어지는 것들 안에서 포기하지 않고 그 안에서 기도하며 일어설 수 있는 내가 될 때, 끝까지 주님의 손을 붙잡으려는 형제자매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 중에 한명은 신앙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며 “오늘까지만” 하면서 힘겹게 서 있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사렙타의 과부가 마지막으로 땔감을 주워서 아이와 함께 빵을 하나 먹고서 죽으려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지막 식사를 위해서 땔감을 주울 때의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엘리야가 하느님의 선물을 전해주었을 때의 기쁨은 어떠했습니까? 넘쳐나는 밀가루와 기름단지를 보며 사렙타의 과부는 얼마나 행복해 했습니까?
주님을 만날 때, 주님 안에서 절망은 희망과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나를 통해서 내 옆에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십니다. 그리고 그의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렇게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