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해 연중 제 10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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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연중 제 10주일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예수님도 웃으셨을까요?

     

    예수님도 웃으셨을까요?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많이 웃으셨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마르3,22)고도 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가 너무도 많으니까 예수님을 백성들에게서 떼어 놓기 위해 이제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서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비방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에 걸리셨다고 모함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많이 웃으셨을 것입니다. 웃으실 수밖에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웃음은 그들의 잘못된 마음을 바로잡아 주시기 위한 웃음이지 그들을 비웃는 웃음은 아닙니다. 당신의 교만을 드러내시기 위한 웃음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마르3,23)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본심을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치유의 힘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서 왔다고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받아들이기 싫고, 인정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하느님을 믿고 싶은 것이지,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싫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도 자신들이 싫어하는 것들은 떼를 쓰며 우기고, 안 되면 울고 버팁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의 모습 안에서 그런 모습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웃음을 가득 보이시면서 편안하게 그들에게 설명해 주시고, 그들의 닫힌 마음을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마르3,24-26)

     

    사탄은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망쳐 버립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사탄이 들렸다면 결국 사탄을 방해하는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다. 그래서 한 나라나 집안이 갈라서면 그 나라나 가정은 버티어 내지 못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자기가 사탄의 힘으로 사탄을 쫓아낸다면 사탄은 제 자신에게 칼을 휘두르고 있는 셈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마르3,27)

     

    이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구마행위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힘센 자는 바로 예수님을 가리키십니다. 그리고 덜 힘센 이는 사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힘센 분이(예수님) 힘센 자를(사탄) 묶어놓지 않는다면 결코 마귀를 쫓아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다인들도 구마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 구마활동이 하느님의 능력으로 한 것이라면, 왜 예수님의 경우에만 마귀의 능력을 빌어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만일 그들이 성실하다면, 예수님의 능력도 하느님에게서 왔다고 해야 할 것이고, 그것을 부정한다면 그들의 구마활동도 마귀의 힘을 빌어 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웃으시면서 율법학자들을 가르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부모가 아이를 훈육하듯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마르3,28-29)

     

    하느님의 일을 마귀의 일로 본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비하하거나 왜곡한다면 그 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용서해 주시는 분을 받아들이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 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풀고, 고집을 접고 하느님의 일을 하느님의 일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따뜻하게 율법학자들을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따뜻한 사랑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끝까지 고집을 부리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존경하고 믿고 따르면 자신들의 위치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의 열매를 보시고 마음을 돌려야 합니다. 그들의 시기와 질투와 교만은 결국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사울이 다윗을 시기 질투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시기와 질투는 나를 멸망으로 몰아갑니다. 옆에 있는 형제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면 나 또한 그렇게 멸망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 삶 안에서 내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내 안에서도 매일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마음을 열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여 줍시다. 그래야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고,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크신 능력을 보며 살아갑시다.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오늘도 기도하는 내가 됩시다.

  2. 관리자 님의 말:

    평생 동정녀이신 성모 마리아.

    성모님께서는 평생 동정녀이십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형제가 한번도 마리아의 자식이라고 불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기록을 보더라도 전혀 그런 언급이 없습니다. 예수님께 다른 형제가 있었다면 12살 때 과월절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을 때, 그들에 대한 언급이 나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또한 동행할 수 없을 만큼 아이가 어렸다면 어떻게 마리아가 순례의 길을 나설 수 있었겠습니까?

    구약성경에서도 사촌을 가리키기 위해 형제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말과 아람 말에서는 사촌을 지칭하는 적당한 표현이 없었기 때문에, <형제>라는 말이 한층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평생 동정성은 의혹을 받을 만한 점이 하나도 없는 것이며, 확실히 성전에 근거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복음서의 상세한 기록에 의해서도 잘 증명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로서,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 네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고 있습니다(마태13,55). 이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규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야고보와 요셉은 알패오와 그의 아내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하고, 시몬과 유다는 구로파스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마리아는 성모 마리아의 자매(요한 19,25)이고, 구로파스는 성 요셉의 형제(에제집뽀)이기 때문에, 이 네 사람의 사촌은 외가로 보나 친가로 보나 예수님의 사촌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알패오(마태10,3)를 아버지로 하고 요셉의 어머니이기도 한 마리아(마태7,56)를 어머니로 하는 아들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복음사가 요한에 의하면, 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자매지간으로, 구로파스 혹은 글레오파(요한19,25)의 아내입니다.

    예루살렘의 제2대 주교였던 시몬에 관하여 에제집뽀는, 그가 그리스도의 숙부 구로파스의 아들, 예수님의 사촌이었다고 합니다(에우제비오 교회사). 또 에우제비오는 에제집뽀로부터 구로파스가 성 요셉의 친형제라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제는 알패오가 구로파스 또는 글레오파와 동일인물이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고보와 요셉, 시몬과 유다는 모두 한 아버지를 둔 형제가 됩니다.

    그리고 복음사가 요한은 알패오의 아내 마리아는 성모님의 언니였다고 하는데 이것은 문제가 좀 있습니다. 상당히 오랜 전통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의 양친인 요아킴과 안나와의 사이에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다가 마리아(성모님)만을 낳았다고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복음사가 요한이 말하는 <자매>라는 말도 사촌자매라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형제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 사촌 형제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알패오, 구로파스의 아내는 그렇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의 사촌자매였다고 생각됩니다.

    야고보는 알패오와 마리아, 이 두 사람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지기 때문에, 마리아는 알패오의 아내입니다. 이 마리아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 구로파스의 아내라고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알패오와 구로파스는 동일인물이며, 이름 한 가지는 아람말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리스말, 같은 이름이지만 읽는 법이 달랐다고 말합니다. 마리아는 알패오(구로파스)의 아내입니다.

     

  3. 관리자 님의 말:

    예수님의 가족

    우리 모두는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형제자매들입니다. 이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이 길을 충실히 걷기 위해, 이 길 안에서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례성사를 통해서 이 길에 들어섰기에 형제자매들과 함께 이 길을 힘차게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길을 가야만이 힘을 낼 수 있고, 방황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 길에서 주님과 기뻐할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체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형제요 자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봉사합니다.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기에 예수님의 말씀에 언제나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께서 하셨던 그 사랑과 자비와 용서의 삶을 내 삶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요, 용서하는 사람이요, 기도하는 사람이요,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하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모님과 같이 기도하며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가족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성령을 거스르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성령을 거스른다는 것은 형제자매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손길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이 의롭고 선한 일을 했다면 그 의로움과 선함을 칭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손길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기도하고, 그 기도의 열매를 맺을 때는 그 열매 안에서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나를 위해 그 사람 안에서 열매를 맺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일 수 있음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족은 다른 사람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마귀들린 사람으로 몰아세움으로써 군중들이 자신들의 권위와 가르침 안에서 예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죄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결코 형제자매들을 분열시키지 않고,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일을 보는 사람들은 결코 형제자매들을 시기질투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유혹은 끊임없이 생기지만 자신을 절제하며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 보시기에 좋도록 바꾸어 놓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가족으로서 살아갑시다. 예수님의 가족답게 살아갑시다. 가족은 섬김과 봉사와 사랑의 대상입니다. 내 옆에 있는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예수님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4. 관리자 님의 말: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마르3,33)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마르3,31-32).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걱정하게 만들고, 그 사랑은 예수님을 향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어머니 마리아는 끊임없이 예수님을 많이 걱정하셨을 것입니다. 반대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위협은 늘 성모님의 귀에 들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칭찬하는 사람, 예수님을 모욕하는 사람, 예수님을 예언자로 받아들이는 사람,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단정하는 사람…, 성모님께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걱정이 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의 몸으로 혼자 아들을 찾아 나서기가 어려우니 사촌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어머니와 사촌들이 예수님을 찾아오자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마르3,33) 하고 반문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혈연을 부인하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회를 통하여 당신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을 칭찬하시고, 제자들이 누구인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이고, 또 어머니 성모님을 칭찬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예수님을 따를 자격이 없다고 하셨고, 예수님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참된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르3,35). 그리고 이 말씀은 하느님 나라의 가족 관계를 설명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은 형제요 자매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사촌 형제들이 오셨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이것을 기회로 당신 백성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서 어머니를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만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신 어머니를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예수님의 가족일까요?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행동하는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나는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5. 관리자 님의 말:

    오 주님! 제가 이렇게 미사를 봉헌하게 하소서.

     

    1. 주님! 제가 미사 중에 주님께서 나와 함께계심을 느낄 수 있는 미사를 봉헌하게 하소서.

    2. 주님! 제가 함께 미사에 참례한 형제자매들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확신에 찬 믿음을 느끼는 미사를 봉헌하게 하소서.

    3. 주님! 제가 자비송을 바치며 제가 누구인지를 기억하게 하시고, 주님의 자비에 온전히 의탁하며 미사를 봉헌하게 하소서.

    4. 주님! 제가 독서와 복음 말씀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고자 하는 열정이 솟아나는 미사를 봉헌하게 하소서.

    5. 주님! 제가 신경을 고백할 때는 저의 온전한 믿음이 담겨 있음을 확신하며 미사를 봉헌하게 하소서.

    6. 주님! 제가 봉헌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봉헌의 은총을 느끼는 미사를 봉헌하게 하소서.

    7. 주님! 제가 분심과 잡념보다는 주의와 신심을 가지고 미사를 봉헌하며, 주님의 거룩한 제단에서 주님께서 친히 사제를 통하여 미사를 봉헌하고 계심을 체험하는 미사를 봉헌하게 하소서.

    8. 주님! 제가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시며 주님과 오롯이 하나 되고, 주님 향한 열정이 불타올라 몸과 마음이 주님의 뜻대로 움직여지는 미사를 봉헌하게 하소서.

    9. 주님! 제가 바치는 이 미사가 저에게는 마지막 미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미사를 봉헌하게 하소서.

    10. 주님! 저와 함께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언제나 이런 미사를 봉헌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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