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자신은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아무나 이렇게 말할 수 없다.
하느님의 영이 요한에게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신을 낮추는 이에게는 주님의 영이 함께하신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도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도다.
◎ 알렐루야.
복음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22-30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 하느님, 참된 열심과 평화를 주시니,
저희가 예물을 바쳐 지극히 높으신 주님을 합당히 공경하고,
이 신비로운 제사에 참여함으로써 주님과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도다.
영성체 후 기도
주 하느님, 주님의 백성을 도와주시며 다스리시니,
오늘도 내일도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덧없는 현세의 사물로도 위안을 받고,
주님을 더욱 신뢰하며 영원한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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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살 맛나는 곳이다.
서로에게 먹여주고 높여주고 산다면…”
성당안에서든 사회에서든 봉사하는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처음 서로를 알아 갈때는 배려하고 나누면서 잘 살지요.
그런데 시간이 가고 상대방을 조금씩 알게되면 본의 아니게 아픔을 주기도 하고
자신 또한 할퀴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뭐~ 학벌이나 인간성이 좋다던지,신심이 두텁다던지, 부자던지,
맡긴 일을 잘한다던지, 기타등등…자신보다 나으면 비교하면서 말입지요.
특히 열심한 사람은 질투이 대상이 되서 표적의 화살을 맞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열심한 모습이 가식이고 발톱을 숨긴 사람이라고…
허긴 열심한 척하면서 무서운 사람도 있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알기란 너무 긴 시간이 흘러야 희미하게 알수가 있지요.
아내도 남편 자식도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그 모습을 잘 모릅니다.
상처 받은 자와 하느님 밖에…
암튼 그런 사람이든 안 그런 사람이든
하느님은 다 아실 테고…
내가 다른 이에게 보태서 험담할 필요가 뭐 있을까 싶습니다. 하느님만 아시면 되지.
결론은 내 영혼에 흡집을 내서 뭐가 남을까…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또한 열심한 사람 역시 상대방이 내게 냉정하게 대하든
상대방이 내게 상처를 줬든 기분나쁜 반응이 있다해도
내가 하는 일이 하느님을 향한 일이라면
뭐가 두려울까 싶습니다만…사람마다 달라서 그리 쉽진 않은 듯 합니다.
그럼 두렵다는게 뭘까…
나 때문에 상대방이 성당에 안 나올까봐?
나 때문에 활동을 안 할까봐?
나 때문에… 기타등등 안 할까봐?
그래서 배려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있어 뒷전에서 바라보기만 하면 어떨까…
왜? 배려라는 말로 포장을 하고 나를 위선적인 인간으로 전락시키는가?
혹여 지나친 친절과 배려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이런 행위가 주님을 가장 슬프게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께서 기적을 행한 사람들을 보면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보는 즉시 매달립니다.
누가 어떻게 생각할까봐? 나 때문에 다른 이가 못 받으면… 라는 그런 배려는 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양보없는 녜!입니다.
요한 세자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흩어질까봐?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 문제는 하느님께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께 향해가도록 그분을 높이십니다.
그럼 나는 어떤 모습인가…
“무엇 때문에”… 배려라는 핑계로 그분에게 다가가지는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겟습니다.
그분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요한 세자처럼 거짓도 물러섬도 없는 당당한 모습이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그분을 드러내는데 있어서
그 어느누구에게도 절대로 양보나 배려 또한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부르짖는 광신자가 되라는 건 아닙니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저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만 머뭇거리는 까닭은 뭘까…
이율배반적입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기름처럼
이 역시 나눌수 없는데 웃습게도 나누려고 하는 맘이 있어서 일까…
그런 마음은 배려도 겸손도 아니고 오만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내기름도 부족해서 망설이는 주제에…반성해 보면서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고 요한세자는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겸손은 바로 당당한 이런 모습이겠지요.
예수님과 자신, 둘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사람들에게
그분이 어떤 분이심을 확실하게 증언하십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내가 요한세자 입장이었다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아마 나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떠나 다른 사람에게 간다면 질투에 눈이 뒤집혀
상대방을 비방하고 깍아 내리지 않았을까…
상대방이 저보다 커지고 열심한 모습이 싫어서
감언이설에 주동자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 모습이 바로 지금에 내 모습은 아닌지…
주님!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그렇습니다.
당신께서 주시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받을수 없습니다.
당신은 세상을 만들고 지배하는 조물주이시니 말입니다.
주님!
당신께 받은 것…
요한 세자처럼 당신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지요.
교만하지 않고 순명하면서
저 보다 나은 형제,자매에게 영광을 돌릴 줄 아는 제가 되야겠지요?
적어도
성령을 받았다고
사적계시를 받았다고
성모님의 피눈물과 말씀을 들었다며
장사하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말아야 겠지요.
다시한번 제 가슴을 뭉클케하는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는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
1. 말씀읽기: 요한3,22-30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
2. 말씀연구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고,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모릅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스승이신 요한보다 더 유명해 지는 것을 원치 않을 뿐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나 또한 그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2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베풀지 않고 아마도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도록 세례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베풀었다는 보도는 전혀 없고, 다만 예수님께서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고(마르11,30-33;루카7,29-30;마태21,32) 부활 이후에 세례를 베풀라는 예수님의 명령만이 있습니다(마태28,19;마르16,16). 요한복음 4,2 에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준 것이다.”라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었다면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어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도록 세례를 베풀었을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다만 그것을 허락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성령의 세례는 예수님부활 이후에 비로소 베풀어졌습니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요한은 자신의 일을 하였습니다. 그의 사명은 사람들이 회개의 세례를 통하여 마음이 열리는 것이고, 예수님께로 사람들이 향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활동은 메시아를 위하여 중단되지 않을 것입니다.
나 또한 내가 중심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의로운 삶인 것입니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요한은 아직 감옥에 갇히기 전입니다. 요한은 헤로데의 부도덕한 생활을 꾸짖다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행하는 세례와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두고서 어느 세례가 더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 아마도 유다인들이 요한의 제자들에게 논쟁을 걸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논쟁의 주제는 세례가 아니라 정결례에 있었습니다. 정결례는 유다인들의 몸 씻는 예식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베풀고 있는 세례와 요한이 베풀고 있는 세례가 어느 정도 내적으로 정화시켜 죄를 씻는 힘이 있는지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논쟁을 펼쳤던 것입니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에게 가서 자신들의 불만을 이야기 합니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모두 그분께 가고” 있다는 불평에서 제자들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나요? 꼭 내가 해야만 하나요? 내가 중심이 돼야만 하고, 나만 존경을 받아야 하나요?
지금 요한의 제자들의 마음에는 시기와 질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스승이신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이시라면 요한보다 못하신 분인데, 어떻게 스승보다 더 큰 인기를 얻고 있냐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닫힌 마음은 요한이 감옥에서 그들을 예수님께로 보내서 그분을 뵐 때, 비로소 조금씩 조금씩 열릴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제자들은 스승 요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자존심과 교만은 시기와 질투를 만들어서 귀와 눈을 막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요한은 말합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이끄는 힘을 주시지 않았다면 예수님께서는 그런 성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이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닫힌 마음을 가지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요한의 제자들처럼 그렇게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며”은 “아무리 하느님께서 주신다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으로 바꾸어서 생각해 본다면 결국 닫힌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요한은 다시 한번 자신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사실이고, 너희가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자신의 신분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말해 주었으니 제자들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스승의 삶의 목적이 결국 예수님께로 향하는 것이라면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도 예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말로만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도 증거 해야 하는 것입니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신랑은 그리스도를, 신부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신랑의 친구는 세례자 요한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로 몰려가는 군중들(신부)은 당연히 예수님께서(신랑) 맞이해야 하고, 그것을 준비하고 있던 신랑 친구(요한)은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해야 합니다. 요한은 자신이 기쁨을 말합니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라는 표현을 통해서 자신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말합니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이 그렇게 기뻐하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이 말씀 안에서 요한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커지다.”와 “작아지다.”는 활동의 힘과 영향력에 관한표현입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의해 세례자 요한의 임무나 활동은 이제 끝나가고,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 펼쳐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이 이래야 합니다. 내가 중심이 되지 않는다하더라도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지만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사촌이 알거지가 되어 보증을 서달라고,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사촌이 잘 되는데 배 아픈 이유는 나만 잘되고 남은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기뻐하는 것처럼 그렇게 기뻐할 때, 나는 더욱 의로운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예수님께로 몰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요한의 제자들이 가졌던 마음은 무엇입니까?
2. 세례자 요한의 기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며, 나 또한 세례자 요한처럼 기뻐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버지!
오늘은 제가 되게 바쁜 척 했지요?
새벽에 인사드리고 처음이네~ 그쵸?
오늘은 제가 결혼식을 치룰때가 생각이 납니다.
참 오래 됐는데~~~~ ㅎㅎ
부모님의 입장에선 좋은 자리로 보내고 싶었을텐데
사실은 아니다 보니 참 많은 마음고생을 하셨지요.
잘해준거 없이 보내니 맘이 아프다고 하신 부모님의 말씀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답니다.
보내기 싫지만 보내야 하는 그 마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가슴앓이죠.
결혼 전날 저녁에 엄마가 전화를 걸어서 제게 그랬습니다.
“아버지한테 수다좀 떨어라.병날것 같다.오늘 웬종일 밥한끼도 안먹었다.” 라고 하셨습니다.
눈물이 울컥했는데 엄마마저 울까봐 애써 참았지요.
제가 해 드린게 하나도 없었는데 뭐가 저리 서운할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시골에서 정말 푸짐한 잔치를 하면서 한끼도 아니 음식자체를 안드셨다니
무척 걱정이 되었답니다.
아버지를 바꿔달라고 했는데 결국은 통화하지 못했지요.
다음날 대기실에 있었는데 아버지께선 얼굴을 보여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랑은 사진한장이 없답니다. 단체사진 말고는~~~
들어갈 때 겨우 얼굴을 봤는데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 한번에 몰려왔습니다.
머리도 손질하지 않고, 아니 자르지도 않은 채로 헬쓱한 얼굴로 나타나셨는데~~~
내내 울었지요. 아버지도 울고 저도 울고 엄마도 울고~~~~
그때 비로소 깊은 사랑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그게 첫 번째 철든 때지요.
식이 끝나고 인사를 드리러 가려는데
아버지께서 이틀만에 처음으로 “둘레야” 하고 불렀습니다.
참 오랜만에 듣는 정겹고 따뜻한 소리였지요.
그리고 제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미안하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명심해라. 이제 난 니 곁에 없다.
혼자서 판단하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니 매사에 깊이깊이 많이 생각한 뒤에 말하고 행동해라.
내가 이제 할 일을 다했네. 우리 둘레 잘해주지도 못했는데~
둘레 옆엔 내가 아니라 우리 둘레 신랑이 내자리를 차지했네.
둘레 참 이쁘다!” 둘다 울었지요.
챙피한것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둘레야 나한테 하는 것보다 더 신랑한테 잘해라.
우리 일은 여기서 끝이다. 니가 우리를 생각한다면 아주 잘 살아야 한다.
알았지? 내 손을 떠날 보물인건 알았지만 그래서 더 잘해줄려고 했지만 해준게 없어서 미안하다.”
그날 전 눈이 퉁퉁부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들은 얘기인데
폐백음식을 새벽에 찾아가지고 오는 내내
안고서 오셨다고 합니다.
마지막 해주는 것인데 형태가 망가지면 어떡하냐고 하면서~~~
ㅎㅎㅎ^*^
차로 인사를 하러 들어갔는데 동네 분들이 다 놀리시더군요.
혼자만 딸보내나 남자가 눈물을 저리 뺀다고~~~
ㅎㅎㅎ 아버지 그런 제가 이렇게 컸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문득 그 생각이 들어 괜히 눈물을 흘렸어요.
아버지 오실 길을 준비하러 온 세례자 요한!
요한의 증언대로 빛으로 오신 아버지!
신랑과 신부!
정말 멋진 관계로 지금 제 뇌리에 자리잡습니다.
친정 아버지께서 제게 마지막으로 해 준 말이 꼭 세례자 요한이
아버지 오실 길을 준비한 뒤에
조용히 사라지는 그 모습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넘치는 사랑을 주심에도 부족했다고 눈시울을 붉히시는
저희 친정아버지의 모습이 세례자 요한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밤입니다.
아버지와 세례자 요한!
자신을 낮추는 이에게는 아버지의 영이 함께 한다고 했지요.
겸손된 자세로 아버지께로 나아가야 함은 알면서도
제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정말 그런 모습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딸이었을까를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살지 못하면서
엉뚱한 권위를 향해 나아가려 하진 않았는지요.
요한과 아버지의 세례를 두고 말다툼을 하는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의 모습이 사실 제 모습은 아니었는지요.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고,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른채,
세상의 저를 위해 한단계 올라가려고 불필요한 권위쟁탈을 위해
아버지의 가르침을 무시하고 사랑의 겸손을 무시한채 고개를 들어 올리진 않았는지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요한이 말합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라고~~
요한의 세례와 아버지의 세례를 두고
요한이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분쟁이 일자
그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묻지요.
그러자 끝까지 아버지를 증언하면서 마지막에 그리 말합니다.
볼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요한의 겸손은 언제나처럼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오늘도 역시 그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할 일을 다하고 물러나면서도 아버지를 증언하는 모습이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봉사를 하면서 제가 장에 있을때 겸손되이 고개를 숙인채로
할 일을 다하고 뒤로 물러나 앉을때
과연 그런 겸손이 더 깊은 저로 새로 날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을 다른 누군가를 위해
제가 할 때처럼 열정을 보태 줄 수 있는 사람인지~~~~
그렇게 해야만 신앙인의 진정한 매력을 발산함인데~~~ 그치요?
아버지!
요한의 모습이 제 모습이 되길 청하면서 두손 모읍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허락하신 삶을 다할 그때까지
겸손된 모습으로 더 큰 사랑을 꽃피우게 하시어
아버지의 자녀로 살아감에 늘 겸손의 그늘로 서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 겸손의 고개를 들고 아버지 앞에 설 때만큼은
사랑의 교만을 떨며 아버지 무릎에 고개를 묻게 하소서.
안녕히 주무세요. 사랑합니다. 아버지!
아멘.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엄마! 보연이예요 아빠는 어떠세요?
응 아빠는 하느님만이 고칠 수 있는 병 이란다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몸 관리 잘 하면 괜찮으실꺼야
맞아요! 아빠는 몸 관리 잘하시니까 괜찮을실 것예요
성당에 열심히 다니시라고 해요 등산도 열심히 하시고...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는 건강해지실 꺼예요
관리를 잘하시니까...
주님!
조금 전에 복음묵상을 하려는데 딸아이가 안부전화를 하였습니다
딸아이한테는 남편이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했지만
집안사정을 말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랄 줄 알았던 딸아이가 오히려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엄마 건강도 중요하다며 아빠는 잘 이겨내실 것이라고....
오빠도 결혼을 빨리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며
복잡한 저의 생각을 정리해주었습니다
어린애 같았는데 부모와 떨어져 외국에서 홀로 지내다보니
철이 많이 들은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딸보다 제가 더 어린애 같이 노심초사하며 근심걱정을
했는데 딸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위로가 되었습니다
다짐도 되고 희망이 보이는 것같았습니다
당신께 모든 근심과 걱정을 맡겨드리며 제가 할 일만 묵묵히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딸아이의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 남편의 병도 나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안심이 되고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다오겠다는
남편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말씀에 겸손과는 거리가 멀었던 저에게 겸손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만한 저의 행동을 반성하며 당신의 자녀답게
겸손한 신앙인 믿음깊은 신앙인 봉사하는 신앙인
행동으로 당신을 증거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당신을 커지셔야 하고 저는 작아 져야 하니까요
작아지는 연습을 해야겠지요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이 되려면...
겸손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봉사하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닌 남을 배려하며 사랑을 베풀줄 아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주님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도다.”
아멘
♬ Eres Tu / Mocedades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말씀을 화두삼아 오늘부터 겸손하고 신앙 깊은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언제나 다짐으로만 끝나고 행동으로 실천을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흠이지만 노력하겟습니다
세례자요한성인만은 못하지만 따르도록 마음만이라도 개과천선하는 헬레나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정말 정말 진짜 진짜로 ^*^
주님!
교만하고 아집으로 똘똘뭉친 저의 몸과 마음이 변화 되기를 간절한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세례자요한성인처럼 매사에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도 못한 자신이 작은사람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기며 반수레가 요란한 깡통신자는 되지 말아야한다고
굳게 굳게 다짐합니다
세례자요한성인처럼은 감히 비교할수 없지만…
성심 성의 껏^*^
최선을 다하는 헬레나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아멘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묵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