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연중 제1주간 월요일(1/14)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전도를 시작하신다. 첫 활동은 제자들을 모으시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호수에서 일하고 있던 어부 네 사람을 부르신다. 그들은 곧바로 예수님을 따른다.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님을 따라간다. 부르심(소명)과 따름(추종) 사이는 이처럼 단순해야 복음적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알렐루야.
    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20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자비로우신 아버지, 저희 예물을 받아들이시고 성령의 힘으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예물이 저희를 위한 구원의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에 넘치고 너희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성자의 살과 피로 저희를 기르시니, 저희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은총으로 언제나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오늘 복음에서 들은 이 말씀의 실현을 위하여 스승은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첫 번째 그룹으로 베드로 형제와 야고보 형제가 선택됩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따라갑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님 곁에 섭니다. 더구나 야고보와 요한은 함께 일하던 아버지를 그대로 남겨 둔 채 떠나갑니다. 삯꾼들이 빤히 보고 있는데도 홀연히 떠나갑니다. 아버지와 원수진 것도 아닐 터인데 정말 그렇게 서둘러 떠나갔을까요? 삯꾼들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아니, 저럴 수 있나? 아버지를 놓아두고 저렇게 가다니.’ 했을 겁니다. 오늘의 우리도 이 모습은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식으로 제자를 뽑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무튼 스승의 부르심에 제자들은 곧바로 따릅니다. 그 과정은 짧습니다. 단순합니다. 변명이 필요 없습니다. ‘부르면 따라야 한다.’ 이것이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제자들이라고 왜 고뇌가 없고 망설임이 없었겠습니까? 그들도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수도 없이 망설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두 생략되어 있습니다. 모든 과정이 생략된 채 스승을 따르는 결과만 나옵니다.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회개 역시 그렇습니다. 변명이나 망설임 없이 곧바로 실천할 때 하느님 나라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주께 가까이 날 이끄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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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1. 말씀읽기: 마르코 1,14-20

    갈릴래아 전도를 시작하시다 (마태 4,12-17 ; 루카 4,14-15)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다 (마태 4,18-22 ; 루카 5,1-11)

    2. 말씀연구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믿지 않은 이들에게,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 얼마나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일까요?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깊이 들어가기를 싫어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안에는 그 말씀에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 기쁨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옛날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갈릴래아는 유다인들에게 있어서는 의롭지 못한 이들이 모여 있는 곳, 죄인들, 율법도 모르고, 이방인들과 어울려 살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갈릴래아는 “이방인들의 갈릴래아”라는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선포하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이니 하느님의 사랑을 느낀다면 결국 나는 하느님 나라를 알아본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로 돌아와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를 통하여,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당신 백성과의 계약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백성들을 다스리셨습니다. 때가 찼다는 것은 특별한 것을 의미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분께서 다스리셨지만 이제 약속하셨던 것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메시아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활동을 통해서 병자들이 치유되고, 악령을 몰라내고, 죄의 용서와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전해지게 되는 때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구원의 때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 그 구원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표징을 감지한 이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숙제는 바로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악명 높은 법과 질서의 파괴자나 세리들, 창녀들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무거운 짐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선포되는 이 “하느님의 복음”은 미움과 시기와 사악함과 폭력이 가득 찬 세상에 비춰지는 희망과 사랑의 손길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방법은 바로 회개하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안드레아를 보셨습니다.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십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 자신의 모습에 충실한 모습. 그리고 그들 안에 있는 믿음과 열정을 보셨을 것입니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십니다.“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예수님을 따라가면 제자들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낚아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나 또한 사람을 낚는 어부 입니다. 나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하느님께로 향해야 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에 참여해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 하느님의 큰 축복을 받게 해야 합니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이제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들은 어부였는데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자신들의 삶의 자리를 뒤로 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을 보았을 수도 있고, 가르침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께서 자신을 부르십니다. 완전히 “봉 ” 잡은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은 “저기 예수님! 연봉은 얼마나 주시는지요!”“숙식은 제공되는지요?”“그래서 저희가 앞으로 받게 될 것은 무엇이며…..”이러한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부르심과 응답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파견한 사람의 부름은 바로 하느님 자신의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이 부르심에는 절대적이고 강력하며 철저함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 거기에는 망설임이 없습니다. 부름 내용은 “따르라”는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명하신 것을 받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따름입니다.

     스승을 따르는 제자는 이제부터 스승을 자신의 삶과 야망을 정해 주는 존재로서, 자기에게 가르침을 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며 자기를 위하여 세상에서 걸어야 할 길을 찾아 주는 동시에 자신을 그의 과제에 참여케 하는 그러한 스승과 함께 하는 일상생활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입니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자신들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셨을 것이고, 그들 마음 안에 담겨 있는 것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고 계십니다. 외적인 나의 행동뿐만 아니라 내적인 나의 마음 자세까지도. 그분께 뽑힐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스승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것을 찾고, 내세우며,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는 스승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스승을 따른다고 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외면하는 사람은 스승의 제자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나도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함께 한다는, 모든 것을 함께 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방해하는 것들도 많이 있고, 방해받고 싶은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버리고 따른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과감하게 버리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자존심도 버리고,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이기심도 버리고,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죄도 버리고…, 무엇을 버리시겠습니까?


    3. 나눔 및 묵상

    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들의 무엇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을까요?


    2.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리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2. user#0 님의 말:


     

    참 날씨가 쌀쌀한 밤입니다.

    가끔 눈발이 날리는게 하얀 안개꽃을 뿌리는 듯,

    내려 앉으며서 사그라지는 그 모습이

    문득 저의 모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머리를 흔들어 보았습니다.

    아버지께 재재거리는 시간이 줄어들면 들수록

    말씀 욕조에 절 담그지 않을수록

    저역시 그렇게 사그라지는 눈꽃되어 없어지겠지요.

    그 생각이 들면서 언젠가 신부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이 생각납니다.

    삶의 자세를 바꾸면 아버지의 힘은 곧바로 저와 함께 한다고~~

    정말 딱 맞는 말씀이지요?

    기쁜 소식을 전하시면서 아버지 나라를 선포하시지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빛의 신비3단을 바치면서 아버지의 이 말씀에 젖어 보기도 했답니다.

    아버지의 자녀임에 가장먼저 회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지 못하고 있는 저는 아니었는지를 반성도 해 보면서

    아버지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하시자

    그물을 버리고 아버지를 따르는 어부들을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만약 저였더라면 “네” 하고 함께 갈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지만

    못할 것 같기도 하고, 할 수 있을것 같기도 하고 왔다 갔다~~ㅎㅎ

    말로만 아버지를 사랑한다 했나봐요. 그치요?

    아버지께서는 어떤 기준으로 그들을 뽑았을까요?

    허긴~~ 예전에 제가 어렸을 때 제 옷은 엄마가 다 손뜨개로 짠 옷이었습니다.

    작으면 그 실을 다시 튿어서 새로운 옷으로 변신하지요.

    실이 더 들어가니까 당연 다른 색 실로 섞어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튿어낸 실을 풀어야 하는데 그게 일이더라구요.

    난로에 주전자를 올리고 물이 끓으면 실을 통과시켜 꼬불꼬불했던 몸을 완전 풀어 새로나게 하셨답니다.

    어린 마음에 “왜 그렇게 복잡하게 해? 그냥 뜨면 될껄.” 하고 말하자

    “이렇게 풀지 않으면 옷이 웃긴다. 그래도 괜찮아?”

    “아니 안돼” 라고 했더니 그러시더군요.

    “새실로 처음 짠 옷이 가장 이쁘지만 헌실이 아깝잖아.”

    “그래도”

    “이건 입는 것이라 괜찮은데 넌 커가면서 엄마처럼 살면 안된다.

    커가면서 바르고 좋은 습관을 몸에 배게 해야 나중에 힘들지 않다.

    아주 깨끗한 하얀 삼베에 풀을 먹이면 그것 만큼 이쁜게 없다.

    이해가 되니?” 라고~~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요.

    아마도 아버지께서 그들을 뽑으신 것도 그런 것 같아요.

    맘이 순박하고 깨끗한 이들!

    성실하고 순명하며 믿음이 있는 이들!

    그들이 아버지를 받아들임에 흡수가 빠르겠지요.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잖아요. 그쵸?

    냉담자보다 차라리 새로운 사람을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것이 훨 좋은 것 처럼이요.

    그런 순박한 어부들에게 말씀하시지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라고~~

    그러자 그들은 그물을 버리고 아버지를 따릅니다.

    순명하는 그 모습!

    아버지께서 구원의 손길을 뻗치시자 그들은 그 손을 놓치지 않지요.

    그만큼 깨끗하고 순박함에 아버지의 뒤를 따르겠지요.

    사람낚는 어부!

    정말 멋있어요.

    강론중에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있답니다. 뭔지 아세요?

    사람낚는 어부는 신앙이라는 배를 타고 믿음이라는 그물을 내려

    ‘신앙인의 멋진 삶’이란 미끼로 끌어 올려야 한다 하셨지요.

    그러면서 ‘내 안에 있는 얽힌 그물은 무엇인가’ 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정말 뭉클하면서도 가슴이 뜨금했었답니다.

    그물을 버리고 따르는 그들의 모습이 제 모습이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지요.

    제 맘속 깊이에서 엉켜있는 그물!

    아집,시기,질투,교만,이기심..등등..

    여러 가지 물풀로 뒤얽힌 그물에 저가 감켜

    움직이지 못하고 있진 않은지 반성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갈릴래아 호수가를 지나가시다가 어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라고~~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를 돌이켜 봅니다.

    저역시 아버지를 따르고 있지만 전 과연 무엇을 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들이 한번에 그물을 버리고 아버지의 뒤를 따르듯이

    저도 그렇게 순명하면서 저의 그물을 던져 버렸는지요.

    아버지와 함도 당연한 것이고,

    말씀에 저를 비추어 성찰함도 당연한 것이고,

    가르침에 몸과 마음이 함께 함도 당연한 것이고,

    사랑을 전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

    봉사를 하는 것도 당연한 것인데

    무슨 큰 일을 하는 것처럼 으스대며 저 스스로 그물을 만들진 않았는지요.

    아버지!

    당연함에 고개드는 제가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에 충실하여

    얽힌 그물을 푸는 지혜를 주시어

    가슴으로 회개하며 말씀으로 더욱 굳건한 믿음 생활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물을 버리고 아버지께서 뻗치신 구원의 손을 잡는 어부처럼

    저역시 아버지께 순명하며 새하얀 도자기를 구워낼 수 있는

    성실함을 주소서.

    아멘.

  3. user#0 님의 말:

    “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복음을 묵상할 때마다 당신의 말씀을 믿고 따르겠다고
    다짐을 한 것이 아마 수 십번? 아니 수백 번도 더 했지요
    하지만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참 입에 발른 약속을 참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어 죄스러웠습니다
    어쩜 그렇게도 헛 약속을 잘 하는지 더구나 다짐 또한 매일...
    그런데도 지킨 것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드니 복음묵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주님!
    왜 자꾸 다짐만 하고 헛 약속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도 입에 달고 사는데...
    왜 그럴까요?
    음...
    아!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당신께 헛 약속을 하는 것도...
    다짐만으로 끝나고 실천을 하지 못하는 것도...
    이유는 단 한가지 이지요
    그것은 저에게 사랑이 없다는 증거지요
    저에게 믿음이 없다는 증거지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확고하지 못하다는 이유지요
    당신을 믿고 사랑하면서 당신의 말씀을 따른다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진리를 믿지 못해서이지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믿음이 없다는 증거지요
    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지요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빈 수레가 요란했습니다
    보여 지는 부분에 연연하며 당신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면서 입으로만 당신을 사랑한다고 ...
    참 많이 떠들어댔습니다

    주님!

    저 참 헛살았죠?
    그런데도 아직도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당신을 따르지 못한 이유 중...
    세속에 대한 욕심과 재물에 대한 끊임없는 욕심
    그렇다고 모두 차지하고 사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미련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언제쯤이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수 있는지...
    아니!
    아직은 자신이 없습니다
    아직은 제가 할 일이 많거든요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기에 제가 해야 할 일이
    아직은 많이 있습니다
    참 어리석은 사람이지요?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지금부터라도 당신을 따르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묵상하며


    ♬ 비제 – 하느님의 어린양 /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


  4. user#0 님의 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주님!

    오늘이 경인년새해가 시작되고 열흘이 지났지요?
    열흘동안 참 많이도 다짐도 하고 맹세도 하고
    새해부터는 신앙생활도 가정생활도 모두 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고 다짐을 했는데 작심삼일인가요?
    아니!
    하루가 지나서부터 다짐도 맹세도 모두 다...
    당신께 약속을 한 사람의 모습이 아닌 세속에 찌들은
    중년의 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계 모임 날이면 웃고 떠들고 외인들과의 모임이라서 그렇다고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면서...
    그리고 집에 오면서 후회하고 또 하면서 
    그런데요 주님!
    습관이란 것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 제가 대단한 사람갔지요?주님!
    사실은 언제나 그랬는데 세속적이고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그랬지요?주님!
    그리고 자신이 대단한 신앙인인 척하면서 잘난체를 했지요?
    그랬습니다 주님!
    당신의 말썽꾸러기 헬레나가 이렇게 살았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시몬과 안드레아와 제배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처럼
    당신을 따르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고 싶습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그리하여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짐했던 모든 일들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묵상하며

  5. user#0 님의 말: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믿지 않은 이들에게,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 얼마나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일까요?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깊이 들어가기를 싫어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 안에는 그 말씀에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 기쁨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옛날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갈릴래아는 유다인들에게 있어서는 의롭지 못한 이들이 모여 있는 곳, 죄인들, 율법도 모르고, 이방인들과 어울려 살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갈릴래아는 “이방인들의 갈릴래아”라는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십니다.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선포하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이니 하느님의 사랑을 느낀다면 결국 나는 하느님 나라를 알아본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로 돌아와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를 통하여, 역사를 통해서, 그리고 당신 백성과의 계약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백성들을 다스리셨습니다. 때가 찼다는 것은 특별한 것을 의미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분께서 다스리셨지만 이제 약속하셨던 것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메시아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활동을 통해서 병자들이 치유되고, 악령을 몰라내고, 죄의 용서와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전해지게 되는 때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구원의 때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 그 구원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표징을 감지한 이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숙제는 바로 “회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악명 높은 법과 질서의 파괴자나 세리들, 창녀들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무거운 짐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선포되는 이 “하느님의 복음”은 미움과 시기와 사악함과 폭력이 가득 찬 세상에 비춰지는 희망과 사랑의 손길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방법은 바로 회개하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16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안드레아를 보셨습니다.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눈여겨보십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 자신의 모습에 충실한 모습. 그리고 그들 안에 있는 믿음과 열정을 보셨을 것입니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십니다.“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예수님을 따라가면 제자들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을 낚아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게 할 것입니다.


     나 또한 사람을 낚는 어부 입니다. 나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하느님께로 향해야 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에 참여해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 하느님의 큰 축복을 받게 해야 합니다.


    18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이제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들은 어부였는데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자신들의 삶의 자리를 뒤로 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을 보았을 수도 있고, 가르침을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께서 자신을 부르십니다. 완전히 “봉 ” 잡은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은 “저기 예수님! 연봉은 얼마나 주시는지요!”“숙식은 제공되는지요?”“그래서 저희가 앞으로 받게 될 것은 무엇이며…..”이러한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부르심과 응답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파견한 사람의 부름은 바로 하느님 자신의 부르심입니다. 그래서 이 부르심에는 절대적이고 강력하며 철저함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 거기에는 망설임이 없습니다. 부름 내용은 “따르라”는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명하신 것을 받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따름입니다.


     스승을 따르는 제자는 이제부터 스승을 자신의 삶과 야망을 정해 주는 존재로서, 자기에게 가르침을 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며 자기를 위하여 세상에서 걸어야 할 길을 찾아 주는 동시에 자신을 그의 과제에 참여케 하는 그러한 스승과 함께 하는 일상생활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입니다.


    19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자신들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셨을 것이고, 그들 마음 안에 담겨 있는 것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고 계십니다. 외적인 나의 행동뿐만 아니라 내적인 나의 마음 자세까지도. 그분께 뽑힐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20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스승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것을 찾고, 내세우며,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는 스승을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스승을 따른다고 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외면하는 사람은 스승의 제자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나도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함께 한다는, 모든 것을 함께 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방해하는 것들도 많이 있고, 방해받고 싶은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버리고 따른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과감하게 버리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자존심도 버리고, 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이기심도 버리고,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죄도 버리고…, 무엇을 버리시겠습니까?


    3. 나눔 및 묵상

    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들의 무엇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을까요?


    ②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리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6. user#0 님의 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을 따르라하신 말씀에 아버지 제배대오와 삯군들을
    버리고 당신을 따라나선 시몬과 그의 생 안드레아의 용기가….
    아니!
    그들의 믿음이 부러웠습니다
    저 였으면?
    당신을 따라 갔을까?
    저의 믿음은 어느정도일까?
    상상을 해봅니다
    하지만 아무리 상상을 하고 또 해봐도
    저는 저의 용기는 저의 믿음은 형편없음을 고백합니다
    남들의 신앙은 평가도 잘하고 제 멋대로…
    과소평가를 하지요
    자신만이 대단한 신앙인인 척하며…..
    하지만 저는 잘 압니다
    저의 믿음이 저의 신앙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어느 때는 조금만 잘한다고 생각하면 과대평가하면서
    자신이 얼청난 신앙인인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당신사랑운운하면서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같아 부끄럽지만 그럴듯하게 포장을 잘하고 삽니다
    얼굴의 잡티와 주름과 이런저런 흉터를 감쪽같이 감춘 것처럼
    저의 변장술은 마술사를 능가하지요
    빈 수레만 요란한 헬레나의 모습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너무도 부끄럽고 죄스러워
    고개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

    하지만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새해에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행동으로 마음으로 지키려는 생각입니다
    하나 하나 차근차근 잘못 된 점을 고치고 부족한 점을 다듬고^*^
    생각만으로도 기쁘고 희망이 보이는 것같아 행복합니다
    저에게도 기회가 주어진 것같아 ^*^
    당신의 사랑을 생각하며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말씀을 성찰하며
    좌절하지 않으며 기쁜마음으로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아멘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묵상하며

  7. user#0 님의 말: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은 긴장감을 준다.
    물론 기쁨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지금 다가오는 생각은 긴장감이다.

    아들의 수술실 앞에서 회복중을 기다린다
    시험날이 다가온다
    미사시간에 독서를 한다
    신자들의 기도를 한다
    아들 결혼식 날짜가 다가온다
    비행기가 뜰 시간이 다가온다
    명절이 다가온다
    나와 함께 했던 많은 다가옴과 기다림들

    때가 찬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시간이 다가옴이 아닌가 한다
    내가 움직일 수 없이 맞아들여야 하는 시간이 다가옴을 말하는게 아닐까
    그리하여 순명하고 느끼고 감당해야하는 시간들이다.
    그때마다 주님과 함께 했던 일들을 느껴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주님과 함께 할 시간과 일들을 기다립니다

    안개꽃처럼 잔잔하게
    프리지아처럼 향기로운
    주님의 자녀이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그리고 나를 따라라. 고기잡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오늘은 아들내외가 와 음식을 장만하고
    낼 명절이면 차례를 모시러 가족들이 모인다
    어부가 할 일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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