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연중 제1주간 금요일(일치 주간)(1/18)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64년 11월에 발표한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일치를 위하여 기도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러한 정신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1월 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인 1월 25일까지를 ‘일치 주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하여 공동 기도를 바치고 있다.
    말씀의 초대
    사람들이 중풍 병자를 데려왔으나 군중이 너무 많아 예수님 앞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지붕을 벗겨 구멍을 내고는 그곳으로 병자를 달아 내려 보냈다. 처음부터 요란하게 등장한 환자였다. 결국 그는 예수님의 권능을 드러내고는 당당하게 걸어 나간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도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 보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신비로운 제사를 정성껏 거행하며 간절히 청하오니,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헌하는 이 예물이 저희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의 기적들을 낱낱이 이야기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주님 이름에 찬미 노래 바치나이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거룩한 미사에서 저희가 성체로 구원의 보증을 받았으니, 실제로 그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중풍은 무서운 병입니다. 멀쩡하던 사람이 수족을 못 쓰는 병입니다. 본인은 물론 가족들마저 고통으로 몰아넣습니다. 어쩌다 이러한 병이 나타나는지요? 뇌 세포가 죽어 감으로써 그렇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학 상식이 없던 옛날에는 참으로 기이한 병으로 여겼습니다. 펄펄하던 사람이 갑자기 말을 더듬고 움직이지 못하니 얼마나 놀라고 기가 찼겠습니까? 그 러기에 하늘이 응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누군가 율법을 어겼기에 벌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그러한 생각을 알고 있었기에 오늘 복음에서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죄를 용서하니까 죄의 결과인 벌도 없어지고 병도 낫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곁에 있던 바리사이들이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꾸짖듯 말씀하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물론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쉽습니다.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를 용서한다고 말했지만 용서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들것을 들고 가라는 명령은 즉시 결과가 나타납니다. 스승의 말씀에 중풍 병자는 들것을 가지고 일어섰습니다. 그분께 하느님의 능력이 있음이 입증된 것입니다. 그분께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도 있습니다. 중풍 병자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인 셈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일어나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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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죄를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

    1.말씀읽기: 마르코 2,1-12

    2. 말씀연구

     친구인지, 가족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 병자를 데리고 예수님 앞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예수님 앞으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계신 곳의 지붕을 벗겨 내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침상에 뉘어서 내려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어떻게 하실까요?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나병 환자의 치유가 있었던 며칠 후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려하셨던 일이 발생합니다. 어떤 틀을 가지고 예수님께 다가오는 사람들.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는 정치적인 메시아였으며, 자신들의 상황을 바꿔 줄 그런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을 때에도 군중들은 억지로라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왕권은 그런 다스림의 권좌가 아닙니다. 자신을 내어 주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 놓은 그런 다스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해서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욕심들이나, 편협한 생각들은 하느님 나라를 가로막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도 그렇게 빨리 세상에 퍼졌습니다. 많은 이들은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그분의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 그분이 무슨 말을 하는지 꼬집으려고 벼르려고 온 사람들…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 왔기에 더 이상 사람들이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문 앞까지 빈자기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성당에 몰려올 수 있도록, 그래서 성당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사람들이 몰려 올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중풍 걸린 사람의 가족인지 아니면 친구들인지 모르겠지만 남자 몇이 중풍에 걸린 어떤 사람을 평상에 누인 채 예수님께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만져주시거나, 한 말씀만 하시면 병이 낫는 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습니다. 나병 환자도 나았는데 중병평자는 더 쉬울 것입니다. 그들은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내려 보냈다.

     지붕을 벗긴다는 것은 우리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으나 당시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를 감안하면 납득이 갑니다. 흔히 방 한 칸에 흙벽을 쳤는데 방바닥은 널찍하지만 흙벽은 올라갈수록 좁아져서 지붕 면적이래야 두 평방미터 남짓 했습니다. 밑은 넓고 위는 보은 나지막한 굴뚝같은 집입니다. 지붕에는 흔히 나무막대기를 걸쳐놓고 나뭇가지나 갈대 같은 것을 깔았습니다. 그러니 쉽게 벗길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옥외에는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붙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루카복음의 독자는 그리스 사람들이었기에 루가복음사가는 “지붕을 벗기고”(마르2,4)를 “기와를 벗겨내고”로 고쳤습니다. 로마식, 그리스식 가옥에는 기와를 입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중풍병자를 내려 보내는 사람들의 믿음도 대단합니다. 내 믿음 또한 그런 믿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서 믿음을 보이고, 다른 형제자매들의 구원을 위해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삶. 그 삶이 내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스럽게 그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아버지가 아들을 용서하듯이, 아버지가 어린 아이를 어루만져 주듯이 그렇게 치유는 이루어집니다.


      병자의 치유와 죄의 용서는 서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유대의 사고방식에는 인과적 연관성이 있는데, 그들은 위중한 병을 “죄의 결과”로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의 말씀을 하실 때, 맨 먼저 악의 보다 깊은 뿌리가 제거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질환으로부터의 해방은 치유의 완성을 의미하며, 동시에 인간의 죄가 용서받는다는 증거를 의미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예수님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는 유대의 사고방식, 즉 “큰 것으로부터 작은 것에로”라는 법칙에서 나온 결론에 따라 시도됩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중풍병자를 고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다면 죄의 용서는 말할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만세!” 하고 외쳐야 하는데 한편에서는 불신의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들의 틀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인간이 할 수 있단 말인가?”저 사람은 거짓말 장이임에 틀림이 없다. 하느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데, 인간이 죄를 용서한다는 그 말 자체로 그의 거짓이 들어나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하지만 뒤집에서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면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면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 입으로 이야기 했으니 이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 한 분 외에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분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입으로 예수님께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중풍병자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주시겠는가?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둘 다 쉽지 않습니다. 죄의 용서는 하느님의 자비에서 오는 것이니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고, 기적적 치유는 하느님의 전능에서 오는 것이니 그것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결과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면에서 보면, 중풍 병자에게 걸으라고 하기보다는 “네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 왜냐하면 돌아가서 그 말씀대로 죄의 용서를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무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명령을 했다면, 그 명령자는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말씀하시면서 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죄를 용서받았다.”는 말과 “일어나  걸어 가거라.”하는 이 두 가지 말을 같은 사람, 즉 예수님께서 하셨기에 체험할 수 있는 중풍의 치유가 이루어졌다면 체험할 수 없는 죄의 용서도 증명되는 것입니다.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그러자 병자는 일어나 곧 침상을 들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모든 이들이 넋을 잃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어떤 사람의 청도 예수님께서는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어느 병자의 청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너무도 자비로우셔서, 너무도 사랑이 많으셔서 불쌍한 이들, 고통당하는 이들의 청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신기한 것을 보았다고 감탄만 하지 말고 나도 그렇게 예수님께 청해서 구원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행동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남을 치유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남의 아픔을 외면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2. 말씀 한마디로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는 일어나 요를 걷어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중요합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예수님 앞에 까지 데려다 준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예수님께로 데려다 주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사람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습니까?


  2. user#0 님의 말:

     

    요몇일 날씨가 참 많이 쌀쌀하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둠을 환희 밝히면서

    제 모습에 충실하는 달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밤이랍니다.

    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라는 다짐을 하면서

    때론 그 다짐이 흐려지진 않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아버지께서는 중풍병자를 고쳐주시지요.

    그를 아버지 앞으로 데려오는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 많은 생각이 저를 감싸 안았습니다.

    제 믿음이 지금 누군가를 위해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요.

    예전에 제가 어렸을때 친정 엄마가 많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일을 너무 무리하게 하셔서인지 두 손목이 퉁퉁 부었지요.

    그래도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보니

    손목에 부목을 대고 옷을 잘라서 묶었습니다.

    그 힘으로 일을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셨습니다.

    저녁이면 쓰러져 앓는 엄마를 보는게 전 정말 싫었습니다.

    한 겨울에도 새벽이면 일어나 물을 데워서 두 어르신 방으로 가져다 드렸죠.

    헹굼물까지도 방에서 받으셨거든요.

    저희가 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치셨기 때문에 하지 못했습니다.

    며느리가 할 일이라고~~

    그러면서 손목이 더 심해져 갔고 고통은 더해갔지만 병원도 갈 수가 없었지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부목을 댄 손으로 아침이면 세수를 씻겨 주셨답니다.

    그래서 싫다고 하면 “내가 하고 싶은데~~” 하면서 꼭 세수를 씻겨 주셨지요.

    살아가는 기쁨이 그 상황에서도 엄마에겐 있었나 봅니다.

    아버지께서 온 산을 다 뒤지면서 좋다하는 약초는 다 캐어서

    절구에 넣고 빻아 즙을 내고 건지를 올려 맛사지 하고,붙이면서

    지극정성으로 나름대로 하셨습니다.

    “그게 될까?” 하면 “내가 할 수 있는게 이것뿐인데~~ 최선을 다해야지.”

    라고만 하셨던 아버지의 말이 떠오릅니다.

    제가 알기로도 병원은 못가시고 2년을 그렇게 집에서만 했답니다.

    주위에선 걱정을 했지요, 더 큰 병 만든다고…..

    심지어는 잘라야 하는거 아닌가 하고….

    그러면서도 상황을 아시는 동네분들은 뭐가 좋단다고 얘기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근데 기가 막히게 2년이 지나면서 손목이 낳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지는 모른답니다.

    무지하게 많은 것을 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2년간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고 무지 기뻐하셨던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가끔 그러십니다.

    “내가 니네 엄마 고쳤다.한겨울에 산속을 헤메다 보면 무섭기도 하고 얼마나 어려웠는데…” 하시면서 큰 소리를 치시기도 하지요.

    사랑하는 아내이기에 온 마음을 다 싫어 몸으로 움직인 것에 대한

    결실이라 합니다.

    오늘 지붕을 뚫고 환자를 내려보내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고쳐주시듯이,

    아마도 친정 아버지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나 봅니다.

    근데 맞지요? ㅎㅎ

    사랑의 움직임이니까요.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신 아버지께서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내려보내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라고~~

    가슴 메어지는 눈물이 앞을 가릴 것 같습니다.

    허긴 그 모습을 보면서 의아해 하는 율법학자도 있지요.

    그들은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기에 하느님을 모독한다 합니다.

    바로 눈앞에 계심에도 알아보지를 못하고

    다른 구실을 붙이면서 그들의 시기와 질투가 인정하지 못함을 더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율법학자들의 모습이 제 모습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나무를 50년 키우는게 어려운가요? 잘라서 만드는게 더 어려운가요?”

    강론중에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랍니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젠 안답니다.

    더 어려운 일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하시는 아버지!

    보여줌이 아닌 사랑의 치료~~

    아버지시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그런데도 부족한 저는 못할 것이 없으신 아버지임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

    그 사랑을 머금고 살아가는 저가 아파하는 이들을 아버지께로 인도하게 하소서.

    제 믿음을 보시고 그들에게 기쁨이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기도해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많은 사람이 몰려있자 지붕을 뚫고 들것에 그를 싫어 내려 보냅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얘야,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신 아버지!

    저의 하찮은 마음이지만 오로지 아버지께로 향할 때

    그 사랑이 다른이의 기쁨이 될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부족한 저이지만 아파하는 사람을 아버지께로 데려갈 수 있는

    열정을 제게 주소서.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속에

    많은 사람들을 데려올 수 있게 하시어

    그들이 아버지 사랑의 권능을 알게 하소서.

    다른이를 위한 간절함이 제 기도가 되게 하시어

    믿음으로 움직이게 하소서.

    아멘.

  3. user#0 님의 말:

    오늘 복음말씀에서 중풍병자가 용서 받은 것은
    주위 사람들에 끈질긴 믿음의 극성이 아니었나 묵상해 봤다.
    그럼 나는 이웃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살아가는가…

    이웃과 더불어 살다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힘든게 있다.
    냉담자의 회두나 종교에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전교하는 것이다.

    그들을 대할땐 정말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가끔은 알아들을 것 같은 사람에게 심한 상처도 받고…
    암튼 어느땐 속도 상하고 가슴도 아프고 답답할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데…
    하루빨리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커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고 글을 읽고 쓰고 스스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거의 22년정도가 든다고 하는데
    나는 그들에게 하느님에 대해 속독법으로 받아들이기를 요구하고 있다.

    상대방한테 조금의 희망이라도 보이면
    “아! 이제는 빛이 보이는구나” 기뻐하면서 어떻게 성당에 한번 나올 의향이 없느냐고…
    그러나 “아직은…”이렇게 말을 하면 맥빠지고 실망을 한다.
    그래서 화가 나 포기한 적도 있다.
    “그래 네 영혼 내 알바 아니다.” 이러면서 말이다.

    이렇게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면 금새 포기하고 만다.
    더불어 사는 법에 익숙치 못해서고 믿음 또한 약해서라는 생각을 해봤다.

    공수부대에서는 “안되면 되게 하라”는 표어가 있다고 한다.
    될때까지 최선을 다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더불어사는 세상에서 이렇게 꾸준한 모습으로 살아갈때
    비로써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일진데…
    오늘 중풍병자의 이웃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그들처럼 주위의 눈치와 질시, 방애,거부에 굴하지 않고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걱정해 주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다가가야 겠음을 다짐해 보면서…

    주님!
    당신깨서 함께 해주시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멘.

  4. user#0 님의 말:

     

    아주 추운 어느 겨울 날,

    한 꼬마가 손을 호호불며 얼음 위에서 재밌어라 발을 동동구르고 있었습니다.

    두껍게 얼은 강위에서 조그마한 구멍을 뚫고 낚시를 했지요.

    아무것도 달지 않았지만 고기들이 꼬마의 낚싯줄에 달려 나왔습니다.

    신이 난 꼬마는 온 몸이 얼었어도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추위에 몸이 얼어 꼬마에게 달려 나온 고기는

    옆의 작은 물감옥에 꼼짝없이 갇히게 되지요.

    작은 고사리 손이 얼을까 아버지는 자식의 손을 가슴에 넣어 녹여 줍니다.

    그리고 고기가 물면 얼른 줄을 꼬마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넘치게 주면서도 부족함만을 느끼기에 

    사랑하는 자식에게 그 기쁨을 느끼게 해 주려고~~

    하지만 꼬마는 아버지의 사랑보다 고기를 잡는 기쁨이 더 컸지요.

    자식의 손을 녹여주려 자신의 품은 찬기온으로 변해감에도 불구하고

    마냥 행복해 합니다.

    기쁨에 넘치는 자식의 웃음이 먼저였으니까요~~

    꼬마가 지쳐 집에 가자고 할 때까지 아버지는 기다립니다.

    춥고 손과 발이 얼어서 느낌이 없어도 자식을 위해 참지요.

    아비의 사랑보다 고기를 잡는 기쁨에 젖어 있는 자식이 그다지도 이쁜가 봅니다.

    오늘 아버지께서는 중풍병자를 고쳐주십니다.

    사랑으로 한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는 아버지를

    되려 의아해 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율법학자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보았음에도 인정하지를 않는 그들의 모습!

    죄를 용서하시는 권한을 보여주심에도 불구하고

    인정하지를 못하는 그 모습이 꼭 제 모습 같습니다.

    열정적인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지만,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로 나아갈 수가 없자

    지붕을 뚫고 들것에 중풍병자를 달아 내려 보냅니다.

    아버지를 믿는 이들의 멋진 모습!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라고 하시면서 그의 병을 고쳐 주십니다.

    아버지시기에 가능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율법학자들은 의하해 합니다.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인정하지를 않습니다.

    심지어는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말하지요.

    한 중풍병자의 병이 치유됨에 고개를 숙이고 받아들여야 함에도

    그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 권한을 보여주심에도

    인정하지를 않는 그들의 모습이 저의 모습은 아닌지요.

    철없는 한 꼬마가 아비의 사랑을 모르듯이

    율법학자들 역시 그 철없는 꼬마같아 보입니다.

    오롯한 사랑이기에 그 추위에도 불구하고 자식곁에서 얼고 있음인데

    자식은 그것을 알지를~ 아니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재미난 놀이에 그저 기쁠 뿐~~~

    그 철없는 꼬마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허긴 형식의 틀에 박혀있는 그들이

    주위의 시선 때문에 인정을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지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른 봉사자를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이요. ㅎㅎ

    차라리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삶이 달라졌겠지요?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내려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초라한 저를 보았고,

    보고도 믿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율법학자들의 모습에서

    제 모습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아버지!

    정말 사랑하는 울아버지를 가슴깊이 담아보는 시간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얘야,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평생을 그리 살았을 중풍병자!

    어리둥절했겠지만 얼마나 기뻤을까요.

    한생을 아픔에 시달리면서 살아왔을 그 사람의 삶에 빛이 드리웁니다.

    늘 사랑을 넘치게 받으면서도 부족하다 투정만하는 제게 주시는 교훈처럼 와 닿았습니다.

    따스한 메아리로 잔잔하지만 강한 힘을 불어 넣어 주시듯

    그렇게 가슴에 자리잡았습니다.

    그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버지 앞에 서지도 못했겠지요.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과연 아픔에 시달리는 이들을

    아버지께로 인도한 적이 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제 아픔이 아니기에 외면하지는 않았는지요.

    그러면서 다른 이가 인도하여 기쁨을 찾으면 되려 그를 밀어내려 하지는 않았는지~~

    율법학자들이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저역시 그런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서 있는것은 아닌지요.

    아버지시기에 죄를 용서하심인데~~~

    그런 아버지께 사랑을 드리고, 행동으로 고백하며,

    믿음의 열정으로 가슴깊이 받아들였는지요.

    아버지!

    부족한 저이지만 아버지를 사랑하는 열정을 몸으로 말하게 하소서.

    제 아픔보단 다른이의 아픔에 먼저 움직이는 저가 되게 하시어

    아버지를 고백하게 하소서.

    많은 말보단 행동으로 아버지를 증언하게 하시어

    기쁨을 전하는 작은 천사의 날개짖으로 행복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아멘.

  5. user#0 님의 말: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주님!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는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며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며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중풍병자의 믿음이 부러웠습니다
    당신께서 자신의 병을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
    당신만이 자신의 병을 고쳐주실 것이라는 확신
    그리고 저를 돌아봤습니다
    눈만 뜨면 입만 열면 당신을 믿겠다고 당신을 사랑한다고
    늘 떠들어대는 저의 믿음을 ...
    하지만...
    중풍병자만큼 당신을 사랑하는지...
    중풍병자만큼 당신을 믿고 있는지...

    아니었습니다
    입으로야 중풍병자 못지않게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믿는다고 떠들어대지만
    저의 행동은 하루에도 수 십번씩 변하는 변덕장이입니다
    제가 아쉬울 때는 당신을 찾았고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당신을 원망하였고
    제가  즐거울때는 당신을 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잘못을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보면서도
    진정한 회개를 하기보다는 적당히 정말 그랬습니다
    어느 때는 고해성사도 대충보고 보속도 대충하였습니다
    마치 밀린 숙제 하듯이...
    영성체 하기위해 ...
    저의 신앙생활은 남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행동을 보고 그럽니다
    바쁜데도 힘들텐데 어쩌면 그렇게 ...
    제가 한 복음묵상을 읽은 자매님이 그랬습니다
    저를 다시 봤다구요 자신이 부끄럽다고 ...
    하지만 저는 압니다 제가 얼마나 세속적인 사람인지
    남들이 칭찬하면 우쭐해서 자신이 정말 열심한 신앙인인 것처럼
    주님! 제가 이렇습니다
    당신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애시당초 저라는 사람은 회개하고는 저기가 먼것같기도 하지요
    고해성사보고 회개했다고 하면서 며칠도 못가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 짓는 이유는 저에게 신앙이 없기때문이지요?
    저에게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때문이지요?
    저에게 당신을 믿는 마음이 부족해서지요?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참 많은 잘못을 하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특히 당신께 ...
    언제나 입버릇처럼 사랑한다고 떠들어댔는데
    왜 그렇게 잘못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저도 당신께서
    “헬레나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
    말씀을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께 중풍병자만큼의 믿음과 사랑을 드리지 못함을
    뉘우치며 그럼에도 변함없이 사랑해주시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사랑을 깨달아 저도 중풍병자의 믿음을 본받아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셨도다

    아멘

    ♬ 17.Canto Gregoriano-Improperium

  6. user#0 님의 말: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습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당신을 믿는다고 했지만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믿었는지 ...
    남들의 이목과 자신을 내세우기 위한 가식적인 행동을
    한 적도 가끔은 있지 않았나?하는 반성을 하였습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남들보다 더  폼 나야 하고
    남들보다 자신이 더 드러나야 하고 신앙적이라기 보다
    세속적인 모습이 더 많았던 저의 신앙생활이 아니었을까?
    고해성사또한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기 보다
    대충 대충 정말 중요한 부분은 빼먹고 껕데기만 ...
    정작 고해야 할 죄는 그 밖으로 돌리고 그렇게 고행성사조차도
    불성실하게 보고 보속또한  대충 대충 하였던 제가 아니었나?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는 중풍병자와 중풍병자를 당신께
    데려온 사람들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말씀하시는데 저는 언제쯤 당신께 
    “헬레나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말씀을 들을 수 있을지...
    아니!
    정말 정말 듣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남들을 쉽게 판단하며 신앙심까지 
    저의 생각대로 평가했던 교만한 자신을 반성하며
    당신께서 원하시는 행동으로 실천하여 모범을 보이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겸손하고 모범을 보이는 신앙인 헬레나로
    아멘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묵상하며

  7. user#0 님의 말: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말씀에 희망이 생깁니다
    저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는 희망이^*^
    아니!
    저에게도 사랑이신 당신께서 꼭 꼭 꼭!!!!
    죄를 용서해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
    하지만 마음 뿐….
    솔직히 말씀 드린다면 저에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질수 있는지
    저에게도 희망이 생길 수 있는지…
    꿈이 너무 야무진 것같은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 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 저의 죄를 용서해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제가 지은 모든 죄를 사해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꿈을 꾸고 싶습니다 아니!
    꿈이라도 꾸고 싶은 마음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주님!
    꿈이라도 꾸면서 이렇게 복음묵상이라도 한다면 ….
    저에게도 축복을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싶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말씀에 희망을 갖으며 제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 저에게도 …
    아멘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묵상하며

  8. user#0 님의 말: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참 따스함이 전해옵니다.

    나를 “애야”하고 불러주신다면

    그 말만 들어도 병이 다 나은듯 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중풍병자를 데려 왔고

    가까이 갈 수 없자 지붕을 뜯고 내려보냅니다

    참 인덕이 있는 중풍병자였네요.

    그 갸륵함을 보고 예수님께선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참 따스한 광경입니다.

    제 손아래 동서도 몇 년전에 쓰러져서

    현재 장애를 가지고 집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자애가 동서에게도 전해지기를 빕니다.

    지붕을 뚫어 내려보낸 사람이 떠오릅니다. ㅠㅠㅠ

    (놀이치료사 시험준비로 마음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설도 다가오니 더 마음이 바쁘다. 사돈댁에 선물도 보내야 하고…. 난 오늘 받았거든 ㅎㅎㅎ)

  9. user#0 님의 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율법학자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입으로는 언제나 당신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라고 떠들어댔지만….

    당신께서 중풍병자를 고쳐주신다고 믿지를 못햇음을 고백합니다
    당신께서는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햇습니다
    언제나…..
    그러기에….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당신께 매달리지 못하고 …..
    당신께서 저를 도와주시리라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떠들었습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말씀에 얼마나 부끄러운지…..
    당신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말씀 드리면 당신을 진심으로 찬양하지는 못햇습니다
    아니!
    하지 않았습니다
    찬양은 커녕 원망과 불신을 더 많이 했음을 고백합니다
    사실 ….
    어떤 때에는 제가 생각햇던 것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정말 당신이 계실까?
    내일의 꿀단지가 아무리소중해도 오늘의 엿 한가락이 더 필요한데
    당신께서는 제가 아쉽고 필요할 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당신이 무능하다는 생각까지 들때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마귀만도 못하다고…..
    기다리는 것도 지쳤다고 원망도 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당신께 바라기만 하는 얌체같은 헬레나가 아닌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으며 당신의 말씀을 실찬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움직이지도 못하면서도 당신께서 자신의 병을 고쳐주시리라는 믿음을 가진 중풍병자처럼
    자신의 죄를 사해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가진 중풍병자의 믿음이 부러운 오늘입니다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사랑으로 제가 지은 모든 죄까지 사해주시기를 기도해봅니다
    염치없는 생각이지만……….
    그대로 믿고 싶습니다
    당신만이 저의 전부이심을 깨달으며…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고 하며 당신을 찬양한 사람들처럼….
    저도 당신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주님!
    저의 예수님!
    하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도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도다

    아멘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묵상하며


    ♬ 우리와 함께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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