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연중 제2주일(1/20)


    오늘의 전례
    오늘 복음에는 어린양에 대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어린양은 속죄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속죄양이 되시어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분을 따른다고 하면서 어린양이 되는 것을 피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하며 기도를 바칠 때마다 평화와 해방의 은총을 함께 청해야겠습니다.
    말씀의 초대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 부른다. 속죄의 날, 사람들의 죄 때문에 희생되는 어린양에 비유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예언한 셈이다. 요한은 하느님께서 보낸 사람이었다. 예수님을 알리고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도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9-34 그때에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여 이 제사를 드릴 때마다 저희의 구원이 이루어지오니, 저희가 이 신비로운 제사를 정성껏 거행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께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하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는 미사 때마다 늘 이 기도를 바칩니다. 어린양의 의미도 제대로 모른 채 기도문만 외웠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우리 자신은 어린양이 되려고 하지 않으면서, 축복만을 청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살아 계신 어린양이십니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에게 주님의 사랑을 부어 주시어, 같은 천상 양식을 가득히 받아 먹은 저희가, 한마음 한 몸으로 주님을 섬기며 서로 화목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어린양”이라 부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영성체 전에 바치는 이 기도문에도 똑같은 어린양이 등장합니다. 유다인들은 이집트를 탈출할 때 어린양의 예식을 치렀습니다. 마지막 재앙에서 살아남고자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를 대문간에 뿌리며 숨을 죽였습니다. 그날 밤 천사는 어린양의 피가 뿌려진 집은 그냥 지나갑니다. 그렇지만 양의 피가 없는 집에서는 맏아들이 죽는 참변이 일어납니다. 어린양의 피가 구원의 표시였던 셈입니다. 이것이 파스카의 유래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입니다. 어떤 세상이겠습니까? 우리가 속한 세상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졌고, 우리가 책임져야 할 세상입니다. 불안과 걱정이 산처럼 쌓여 가는 우리 몫의 세상입니다. 그 세상의 죄를 없애 주신다고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어린양의 의식을 치르는 일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올 한 해를 어린양의 정신으로 사는 일입니다. ‘왜 내가 희생해야 하는가? 왜 내가 억울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러한 생각에 너무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세월이 흐르면 깨닫게 됩니다. 그 희생과 억울함이 있었기에 얼마나 많은 보호와 축복이 우리 곁에 머물고 있었는지를 말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잔잔한 빛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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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sponse to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1. user#0 님의 말: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1. 말씀읽기:요한1,29-34 하느님의 어린양

    2. 말씀연구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지 않도록 말했습니다. 그는 빛이 아니라고. 그는 자신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의 삶의 전체(예수님)가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분을 위해서 세상에 나왔기에 그분을 알리고 있습니다.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요한은 예수님을 알아 뵙고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당신께로 다가오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알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① 예언자들이 예고한 하느님의 종,

    ② 인간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하는 어린양이십니다.

    ③인류를 죄의 노예살이에서 끄집어내어 자유로운 삶으로 인도하러 오신 어린양이십니다.

    ④ 또한 어린양은 온유, 체념, 하느님의 종으로서 지닌 복종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⑤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인간이 되어 세상에 내려오신 어린양이신 것입니다. ⑥세상의 죄를 없애시려고 오신 깨끗함 그 자체이신 어린양이십니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유다인들의 눈에는 아직 숨겨져 있지만 예수님의 인격은 요한보다 더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요한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한 처음부터 계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이 메시아요?”라고 물어 보았을 때 그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7-28)  요한이 그렇게 말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나기 전부터 계신 분이셨습니다. 한 처음부터 계신 분이시라는 것을 요한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증언해야 하지만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세례를 준 것입니다. 그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하지 않고, 예수님의 길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도록 회개의 세례를 외쳤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과 유다인들은 다른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스라엘은 계시와 약속을 받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을 가리키는 명예스러운 호칭입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특히 백성의 지도자들을 가리킬 때는 아집과 독선으로 가득 찬, 그래서 하느님께로부터 멀리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적들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메시아는 유다인들의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님 위에 내려 오셨습니다. 요한은 그것을 보았고 그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요한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았기에 계시내용에 대해서 알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요한에게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은 그 계시 받은 내용의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표시는 바로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에게서 일어났고, 그것을 통하여 요한은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메시아이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은 바로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오순절에서 성령을 받은 다음 그들은 당당하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구세주이심을 고백하였습니다. 어떠한 위협도 그들의 마음을 굽힐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그냥 물로 씻는 세례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만한 권한을 받는 세례입니다. 성령의 보살핌과 역사하심을 통해서 당당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나의 모습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당당하게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나를 이끄실 수 있도록 나를 맡겨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인 경우는 성령의 세례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나를 내 맡겨 드리지 못하기에 신앙인답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나를 움직이실 수 있도록 나를 맡겨 드려야 합니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요한이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임을 알았고, 그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선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은 장면이 빠져 있습니다. 마태3,13-17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본다면 이 말씀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15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16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7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3,13-17)


    3. 나눔 및 묵상

    1.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신앙으로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증언하고 있습니까?


    2. 성령께서 나를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시게 하려면 나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그리고 내 안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존심입니까? 이기심입니까? 아니면 오만과 편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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