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


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12/29)


    말씀의 초대
    성모님께서는 율법에 따라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신다. 그곳에는 시메온이라는 예언자가 있었다. 그는 예수님의 앞날을 정확하게 예언한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그리스도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시며, 주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시로다. ◎ 알렐루야.
    복음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35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 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놀라운 교환을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모시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떠오르는 태양이 높은 곳에서 우리를 찾아오셨도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거룩하고 신비로운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생명을 언제나 보호해 주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마리아께서는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합니다. 그러고는 율법에서 명하는 모든 예식을 이행합니다. 당시 어린이들은 쉽게 죽었습니다. 열악한 시설이라 저항력이 약한 아기들은 쉽사리 목숨을 잃곤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태어나 정신 차릴 정도만 되면 성전에 봉헌하도록 하였습니다. 설령 죽더라도 주님께 바친 것으로 여기라는 의미였습니다. 사내아이는 7일에, 여자 아이는 14일에 봉헌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시메온이라는 한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기 예수님을 팔에 안고 예언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부모는 그 말을 듣고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아름다운 것만 바치는 것이 봉헌은 아닙니다. 때로는 아프고 쓰린 것도 바쳐야 합니다. 아니, 그러한 것이 봉헌 정신에 더 어울릴 겁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주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길 때 참다운 봉헌이 이루어집니다. 시메온 역시 그 말을 성모님께 하고 있습니다. 이 아기에게는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십니다. 고통과 함께하는 아들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고통 속에서 예수님을 찾아야 합니다. 고통 속에서 만나는 예수님은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Lucis creator[창조주의 빛(주일저녁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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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과연 제 눈으로 당신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산모는 출산한 지 40일 만에 성전에 나아가 몸을 정결하게 하는 정결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 축일은 성탄 후 40일째 되는 날에 성모 마리아께서 정결례를 치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성전에 봉헌하신 것(루카 2,22-39 참조)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날 교회는 전통적으로 1년 동안 전례에 사용할 초를 축복하였기에 미사 전례 전에 초 축복과 봉헌 행렬이 이루어집니다. 한편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제정하고 전 세계 교회가 이를 기념하도록 하였습니다. 교황은 모든 신자, 특히 젊은이들이 하느님의 크나큰 은총인 봉헌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 성소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하기를 당부하였습니다.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레위기(12,1-8)에 따르면 여자가 사내아기를 낳으면 7일간을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고서도 그 후 33일간 축성된 것을 만질 수 없었고,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40일째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정결예식을 받아야 했는데 여자 아이인 경우는 부정 기간이 80일이었습니다.


     출산으로 말미암아 남편이 부정하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정결례를 치를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도 함께 예루살렘에 가서 그 예를 행했습니다. 맏아들을 속량할 때 부모나 아기가 성전에 가야 한다는 법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기의 부모는 열심한 신앙인이었기에 그러한 규정들을 의무로서가 아니라 사랑으로써 받아들였고, 지켰던 것 같습니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첫 아들은 주님에 의해 축성되고, 속세를 떠나서 사제로서 오로지 하느님을 섬겨야 했는데(탈출13,2;민수18,15-16), 시간이 지나면서 하느님께서는 사제직을 레위인들에게 한정시켰습니다. 하느님께서 첫아들에 대하여 가지고 계신 권리를 기억하도록 하려고 첫 아들은 성전에 봉헌하게 하셨고, 5세겔의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속량하도록 명하셨습니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레위기에 의하면(레위기12,6-8) 여인은 정결례의 제물로 일년 된 양 한 마리와 집비둘기나 산비둘기 한 마리를 바칠 의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여자는 두 마리의 산비둘기나 또는 집비둘기를 바치면 되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무척 가난한 가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성모님은 정결례를 치룰 필요도 없었고,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니 새삼 하느님께 봉헌될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가정은 율법대로 모든 것을 실천했습니다. 커다란 겸손과 순명을 나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하느님을 공경하고 또한 율법을 성실하게 지키는 사람을 말합니다. 시메온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말합니다. 이 말은 히브리인들에게는 메시아에 의한 행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이사40,1,61,2). 또한 라삐들도 메시아를 위로해 주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많은 히브리인들은 그 당시 “위로”(구원)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시메온은 이에 대하여 성령의 특별한 계시를 받고서, 죽기 전에 메시아를 만나 뵈올 수 있는 위로를 받으리라고 약속을 받고 있었습니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성령의 인도를 받은 시메온.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메시아를 뵈올 수 있는 축복과 메시아를 만지고 품에 안을 수 있는 축복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약속을 눈으로 손으로 확인했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얼마나 감격했을까요? 금을 캐는 사람이 금맥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쁠까요? 다이아몬드를 찾아서 헤맨 사람이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다면 얼마나 기쁠까요? 자신이 그렇게 원하던 것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이제 시메온의 찬양을 들어봅시다. 성무일도 끝기도에 나오는 노래입니다. 수도자들이 하루를 마치면서 바치는 이 기도. 나의 매일 밤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시메온이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뵙게 되리라는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이제 시메온은 바랄 것이 없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시메온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루어 주셨으니 이제 평안히 죽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것을 기쁨이요 축복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갈까요? 혹시 그 엄청난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축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어버이의 마음처럼, 탕자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간절하게 기다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메온은 다른 것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셨던 것을 이제 두 눈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이제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시메온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오신 메시아는 시메온 만을 위한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시메온은 명백히 메시아의 구원이 민족, 계급의 구별 없이, 모든 백성을 위한 은혜라고 선언합니다. 시메온은 메시아의 구원이 히브리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던 유다인들의 편협하고 그릇된 구세주관을 바로 잡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메온의 찬양을 통해서 나만 생각하는 신앙,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신앙, 내가 아는 사람을 생각하고,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만을 위해주는 편협한 마음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메시아는 온 인류에게 주신 구원이시며 지금껏 이방인을 둘러싸고 있던 어둠을 비추어 주는 빛입니다. 또 메시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특별한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 까닭은 구원이 유다인에게서 시작되어야 하였기 때문입니다(요한4,22). 약속된 대로 유다인에게 먼저 구원의 은총이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이스라엘 태생이십니다. 이스라엘과 함께 이 세상 생활을 보내시고, 이스라엘에서 기적을 행하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놀랄 만도 합니다. 시메온을 이상하게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사실 마리아와 요셉은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과 가까웠고,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에 대해서 다 알 수는 없었습니다. 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려준 것만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예수님 안에서 행하신 모든 것, 곧 헤아릴 수 없이 풍요한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알아듣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계시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이 신비의 풍요로움을 아무리 많이 깨닫는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더 많은 것이 언제나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이 예수님을 통해서 실현될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두 집안에게 성소가 되시지만 걸리는 돌과 부딪치는 바위도 되시고,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덫과 올가미도 되신다. 많은 사람이 걸려 넘어져 터지고 올가미에 걸려 잡히리라”(이사8,14). 그러나 이사야의 또 다른 말도 예수님께 적용됩니다. “내가 시온에 주춧돌을 놓는다. 값진 돌을 모퉁이에 놓아 기초를 튼튼히 잡으리니 이 돌을 의지하는 자는 마음 든든하리라”(이사28,16). 온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지지하거나 아니면 예수님을 반대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일치하는 사람은 들어 높여질 것이고 구원받을 것입니다. 심판 때에 구원받게 될 사람은 그가 이스라엘에 속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정하신 표징을 기꺼이 선택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하느님의 참다운 백성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에게 선택권을 제공하시므로 하나의 표징이십니다. 스테파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교도의 마음과 귀를 가진 이 완고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당신네 조상들처럼 언제나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사도7,51).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 받았다는 것을 말해준다”(요한3,19)

    선택은 내 마음을 드러내게 만듭니다.

    죽은 사람의 시신을 보던 검시관이 물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웃고 있는 것이지요? ”

    “저기 한 사람은 로또 복권을 맞히다가 마지막 숫자까지 맞아서 너무 좋아서 죽어서 웃고 있는 것이구유, 저 사람은 벼락 떨어지는 것이 사진 찍는 줄 알았다나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성모님의 마음 또한 많이 아프게 될 것입니다. 성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1. 시메온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함께 이야기 해 보고, 시메온의 노래를 외워 보고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바쳐 봅시다.


    시메온의 노래

    낮 동안 우리를 활기 있게 하신 주여!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리니, 자는 동안도 지켜 주시어 편히 쉬게 하소서.

    주여! 말씀하신대로 이제는 주의 종을 평안히 떠나가게 하소서.

    만민 앞에 마련하신 주의 구원을 이미 내 눈으로 보았나이다.

    이교 백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시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되시는 구원을 보았나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낮 동안 우리를 활기 있게 하신 주여!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리니, 자는 동안도 지켜 주시어 편히 쉬게 하소서.


    2.  성모님과 요셉 성인의 마음이 되어 오늘 이 말씀들을 생각해 봅시다. 어떻게 다가오고 있습니까?


  2. user#0 님의 말:

     

    어제 말씀과 같은데 5절이 짧네요. ㅎㅎ

    묵상을 하면서 멍한 기분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아직은 스스로 요리를 만들기엔 실력이 부족한 요리사이지요.

    어제 강론중에 신부님께서 시메온의 의로움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지요.

    강론을 들으면서 귀는 열고, 손은 무지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가장 와 닿았던 것이 시메온의 찬미가에서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라고 한 말입니다.

    한생의 삶에 대한 축복이라고 하셨지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이보다 더 멋진 고백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의롭고 성령으로 충만한 시메온!

    저도 그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요?

    신부님께서 그러셨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품에 안고 살아가면서

    두팔로 하느님을 안을때의 그 기쁨!

    그럴때 성령으로 충만하고 의롭고 독실한 신앙인이 될 수 있다.” 라고~~

    아마도 오늘 독서에서 말하는 것을 실천해야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분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라고 한 것처럼이요.

    진정 이렇게 살아갈 때 의롭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무거움을 느꼈습니다.

    저의 부족이 크게 보이기에 가슴이 더 무거운가 봅니다.

    그것을 실천할 때 비로소 의로운 신앙인으로 봉헌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으로 새로 날텐데~~ 그치요?

    묵상을 하면서 빛으로 나아가고

    빛속에 머무르는 신앙인인가에 대해서도 반성해 봅니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봉사를 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형식적인 움직임은 아니었는지~

    진정한 순명의 자세로 저를 아버지께 드리는

    사랑의 몸부림이었는지를 깊이 되새겨 보았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중 시메온의 찬미가 중에서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라고 하는 말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았습니다.

    볼눈이 있고 의롭고 성령으로 가득찬 독실한 시메온의 모습에서

    저의 부족한 면을 보았지요.

    저는 어떤 색의 옷을 입고 아버지께로 나아가고 있는지요.

    늘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자고 깨고 한것은 아닌지요.

    누가 뭐래도 한곳을 주시하며 제 삶의 중심엔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께 우선하면서 생활하였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버지를 사랑한다 고백하면서 저를 아버지께로 맞추었는지~

    한 형제라 하면서 가슴으로 사랑하였는지~

    아버지!

    많이 부족한 저이지만 시메온의 의롭고 독실한 모습을 닮게 하시어

    아버지의 사랑속에 예쁜 꽃되어 머물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중에 아버지께로 갈 때

    어여쁘게 키운 그 꽃을 아버지 품에 안겨 드리는

    기쁨을 맛보게 하소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라는 맘으로 두손 모을 수 있도록

    더 깊이 기도하는 저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언제 어디서든 아버지께서 말없는 빛의 형태로 손짖을 할지라도

    그 빛을 보고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는 볼 눈도 갖게 하시어

    늘 아버지 발밑에서 놀게 하소서.

    의롭고 성령으로 가득한 열매를 맺어

    봉헌의 참기쁨도 깨닫게 하소서.

    아멘.

  3. user#0 님의 말: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

    주님!

    어제에 이어 오늘도 같은 복음말씀을 묵상하는데
    어제와 오늘의 묵상이 다름을 느낍니다
    어제의 마음이 오늘의 마음과 같지가 않음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이 오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보면 간사(?)하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같은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루 사이에 묵상 내용이 
    다르다는 것이 저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

    말씀에 시메온의 믿음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구요
    시메온이 참 행복하신 분이라는 사실이 ...
    이유는  당신을 진심으로 그것도 변함없이 믿고 사랑했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변덕 많은 저의 성격을 고쳐야 한다고 다짐도 해보며
    복음묵상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이 오고가는 적도
    없으니 복잡한 저의 생각과 마음이 하루빨리 정리가 되기를
    기도해봅니다
    초지일관 오로지 당신만을 믿고 기다려온 시메온처럼...
    당신께서 저에게도 시메온께 주셨던 축복을 주셨으면 하는마음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올 한해 동안 힘들고 어려워 포기하고 싶었던 모든 일들을
    당신의 사랑으로 극복 할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이방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요,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옵니다

     
     

  4. user#0 님의 말: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뭘 희망하며 사는가를 생각해 봤다.

    오늘도 눈을 뜨고 또다시 그분을 마주해 본다.
    이렇게 아침에 살아있어서 행복하다는 것은
    세상에 미련이 있어서가 아니고
    사라지지 않는 무한한 그분께 갈수있는 시작을 또다시 희망할 수 있어서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기회라는 말이 있다.
    그말은 희망이신 그분을 만나수 있도록 시간을 또다시 마련해 주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래서 기회는 회개로 나아가는 돌다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언젠가 분명히 떠나야할 존재다.
    그래서 세상이란 곳은
    그분을 만날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도 해봤다.

    사라져버릴 것들에 내 영혼과 육신을 팔아버리지 말아야 겠다.
    그런 것들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 그분을 잃어버려선 안되리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그분과 살고 싶으니 말이다.
    세상은 유혹의 십자가 길이기도 하지 않은가…
    허지만 이 모든걸 이겨나갈때 시메온처럼 그분을 뵐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렇다
    하루기회의 시작과 마침속에 나의 모든 갈망을 그분께 두고
    시메온처럼“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노래하는 내가 되도록 노력하리라…

    주님!
    죄많은 제 영혼 기억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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