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요한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인류 구원을 위하여 오신 구세주이심을 선포한 것이다.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 가운데 안드레아는 자기 형을 예수님께 데려갔다.
베드로는 그렇게 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 여러 가지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2
그때에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이 예물을 인자로이 받으시고,
이 천상 성사로 저희가 믿고 바라는 영원한 구원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도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도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가까이 오셨으니,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마음을 움직이시어,
저희가 주님의 선물인 성찬에 더욱 합당히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 | | | | | | | | | | | | |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헬레나…
오늘은 아버지 생각이 너무 많이나서 눈시울을 적시었네 그 마음 나와같겠지?
무자년새해에도 건강하고 좋은 일이 많이 있기를 ….
변함없는 우정에 감사하고 고마워 그마음 영원하기를 기도할께 사랑해 젤뚜루다^*^
주님!
얼마 전에 당신 곁으로 가신 친정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친구 젤뚜루다가 보낸 편지입니다
당신의 자녀 젤뚜루다는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제가 가장 본 받고 싶은 친구 입니다
질투나 시기심도 없구요 신앙심은 얼마나 깊은지 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신앙인입니다
효심또한 깊어 생활이 어려운데도 친정아버지가 얼마 살지 못하신다는 말에
임종 하실때까지 3개월동안 친정아버지를 간호하고 대세를 드리고 아버지의 영생을
위해 끊임없는 기도를 드려 아버지께서 기쁘게 죽음을 준비하실수 있게 해드렸습니다
그런 친구 젤뚜루다가 친정아버지가 보고싶어 눈물이 난다며 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요즈음도 젤뚜루다는 친정아버지를 위해 매일 연미사를 드리고 기도를 합니다
저에게 그런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그런데도 젤뚜루다는 언제나 저에게 효성이 깊은 딸이라고 그럽니다
부모님께 잘한다고 그런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럽지만 친구가 저를 사랑해서 예쁘게
봐 주는 것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얻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젤뚜루다와 친정아버지 우오중(요셉)을 기억해주십시요
아버지를 사랑하는 젤뚜루다의효성을 예쁘게 봐 주십시요
부족하고 모난 헬레나를 사랑해주는 젤뚜루다에게 축복을 주십시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말씀을 깊이 새기며
당신께서는 언제나 저의 곁에 계신다는 믿음으로 살아야한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친구 젤뚜루다를 통해서 저에게 당신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주신 올 한해도 더도 덜도 말도 지금까지 해왔던 만큼이라도
신앙생활을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신앙생활도 복음묵상도…..
욕심부리지 않으며 제가 처한 상황을 슬기롭게 …..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같아 자신이 작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하지 않으며….
아래를 바라보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기도해봅니다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 여러 가지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도다
아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묵상하며
♬ Nada te turbe / 떼제의 노래 2집 중에서
와서 보아라
1. 말씀읽기:요한 1,35-42
2. 말씀연구
“와서 보아라!” 참으로 멋진 말씀이십니다. 나 또한 신앙에 대해서 말할 때 “와서 보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당이 어떤 곳이여? “와서 보세요!” 와서 보니 실망하지 않고, 기뻐서 어쩔 줄 몰랐으면 좋겠습니다.
35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습니다. 요한과 함께 있던 제자는 참으로 행복하신 분들입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훌륭하신 스승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통해서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예수님을 향하기 하기 보다는 나를 향하게 만들고, 방해합니다.
36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스승이신 세례자 요한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스승과 함께 있었기에 스승으로부터 “하느님의 어린양”을 볼 수 있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요한과 함께 있던 두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요한은 훌륭한 스승입니다.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는 스승입니다. 그 두 제자중의 하나는 안드레아 사도였습니다. 볼 눈이 있는 스승을 둔 제자들은 행복합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이것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히 이야기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증언자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두 제자는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여정에 첫 발을 디딥니다.
38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에게 관심을 보이십니다. 그래서 “무엇을 찾느냐?”고 물어 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들이 왜 따라오는지 아셨습니다. “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것을 요한으로부터 들었다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그들의 마음을 아십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그들의 마음을.
제자들은 예수님을 스승으로 고백하면서 예수님께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라삐”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궁금한 것이 많을 것입니다. 스승 요한이 말한 대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어린양”이신지, 메시아이신지 궁금했고, 예수님께서 메시아,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라면 예수님께 모든 것을 걸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머물며 배우고 싶은 것입니다. 스승 요한의 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직접 예수님께 배우고 싶고, 보고 싶고, 믿고 싶은 것입니다.
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초대하십니다. “와서 보아라.” 이 말씀은 이렇습니다. “자네들이 궁금해 하는데 와서 보게나. 그래서 내가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되거든 나를 따르게나.”
때는 오후 네 시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제10시”로 되어 있습니다. 해뜰 대(오전 여섯 시)부터 해질 때(오후 여섯 시)까지를 열두 시간으로 나누는 관습이 있었으니 “제10시는 오후 네 시쯤입니다. 그리고 10이라는 숫자가 완전이나 성취를 뜻하므로 성취의 때를 상징한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머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바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스승 요한의 말대로 “그분의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더욱 작아져야 합니다.”라는 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41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안드레아는 시몬의 동생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자기 형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형에게 먼저 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나도 이 기쁜 소식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42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안드레아는 형 시몬을 예수님께 데리고 갔습니다. 안드레아는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감으로써 자신이 고백한 바를 실천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케파라고 부르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케파는 바위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보신 것입니다.
나 또한 내가 믿는 바를 행동으로 옮겼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내 가족을, 가까운 이웃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눈 여겨 보고 계실 것입니다. 지금 내가 그것을 하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내가 만일 요한이었다면 나는 제자들을 어떻게 했을까요? 예수님께로 보냈을까요? 아니면 붙들고 있었을까요?
2. 예수님께서는 와서 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머물기 위해서 내가 할일은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라고~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말없이 따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물으십니다.
“무엇을 찾느냐?” 그러시자 그들이 여쭙죠.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라고 하자,
“와서 보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와서 보아라.” 라고 하시는 말씀에서 저를 묶었습니다.
참 따뜻하고, 다정스러이 말씀하셨을 것 같아서요.
말없이 예수님 뒤를 따르는 제자들과
몸소 보고 느끼게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다정한 부자의 정을 느꼈습니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습니다.
“궁금하니?” “하하하 와서 보렴” 이라고 하는 듯 합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그 스승에 그 제자!
첫 제자가 되는 그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심에
아무나 길을 닦게 하시지는 않으셨겠지요.
보잘 것 없는 이들이지만
그들의 마음이 가난함을 보시고 미리 선택하신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견지명!
저도 선택된 사람이라면?
그래서 아버지를 사랑함에 오는 사랑의 십자가라면?
충분히 함께 할 수 있을텐데, 제 마음이 가난하지 않기에 힘들고 문제가 되나 봅니다.
아직 영글지 않아서 떫은 맛만 나는 풋열매에 불과한가 봅니다.
그들은 마음이 가난했기에
아버지의 이끄심에 말없이 젖어들었을 것이고,
예수님 가시는 길에 동참했을 것 입니다.
그들은 마음이 가난했기에
이끄심에 뒤를 따라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아로 고백했을 것입니다.
참으로 가난한 마음이 있었기에~~
참으로 의로음이 있었기에~~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전 무엇을 고백하고
무엇으로 제 맘을 다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와서 보아라” 하심에 그들은 함께 묵고 나서 말합니다.
“메시아를 보았소.” 라고~
그들의 고백이 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매번 은총을 주십사고 청하면서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아니 아버지의 말씀을 듣기도 전에 제가 귀를 막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면서 저는 과연 아버지에 대해서
얼만큼이나 전하고,
아버지께로 향한 제 마음을 고백했는지~
비신자들에게 아버지를 믿음에 오는
기쁨에 대해서 얼마나 전했는지~
말많은 개신교 사람들과 대화할 때 얼마나 당당히 아버지에 대해서 확고히 말을 했는지~
제 체면 때문에 아니면 다른 신자의 잘못 때문에 되려 신자임을 숨기진 않았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언젠가 운동을 하는데 목사님이 제게 와서 물었답니다.
종교가 있냐고~
그래서 있다고 했더니 교회에 나오면~~&&&&&
참 말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비판적인 말만을 했답니다.
그때 느낀게 ‘말을 아끼고 몸으로 멋진 매너를 보여주었다면 초라해 보이진 않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혼자 다짐한게 있습니다.
입으로만 아버지를 고백하는게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는 삶의 고백이 되어야 하고,
그 뒤에 아버지 말씀으로 성숙된 항아리에서 나오는
진액이 향을 뿜어야 한다고 나름대로 손을 걸었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는 요한이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라고 말하고,
제자들은 “와서 보아라” 하심에 함께 한뒤에 나아가
“메시아를 보았소.” 라고 고백합니다.
보려하는 눈이 있었기에,
아버지를 받아 들이려는 마음이 있었기에
볼 수 있었고, 보았기에 전할수 있었듯이
부족한 저에게도 아버지 계심에 기쁨과 행복을 전할 수 있게 하소서.
입으로만 하지 않고
제 삶으로 아버지를 드러내 보일 수 있게 하시어
아버지를 모르고 생활하는 이들에게 틈실한 열매를 안겨 줄 수 있게 하소서.
아멘.
어둠을 밝히는 별과 달님에게도
사랑을 고백하는 아름다움을 주시어
작은 항아리에서 기쁨의 향유가 넘치게 하소서.
사랑하는 아버지의 말씀을 담아
어느 곳으로든 흘려 보내렵니다.
삶의 소리도 싫어서~~
“나는 천주교신자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그럼 나는 어떤 신자인가?
예수님이란 탈을 쓴 늑대 신자일까…
“와서 보시오” 하기도 전에
보여 줄게 없는 나는 아닐까…
대전에 둔산동이라하는 동네가 있다.
대전 사람들 말로는 서울에 강남이라고도 하는데…
그곳에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임대아파트가 있다.
보라! 아파트라고…
아파트 이름이 명품중에 명품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가서보면 불쌍한 사람들 뿐이라 마음이 먹먹해져서 온다.
부자 동네 속에 극빈자들…
그들은 알게 모르게 그곳에 산다는 이유로 아이들까지 차별대우 받는다.
학교에서나 부자가정에서도 그들과 함께 어울리는 걸 꺼려하는 모습.
그럼 내가 속해있는 곳은 어떤가…
성당과 사찰,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있는자의 교회와 사찰은 있는자들 끼리의 패거리를 만들고
패거리는 자신만의 사람이기 바라면서 산다.
신부님,수녀님, 형제,자매가 다른 이에게 향해 있으면
미움과 시기,질투로 상대방을 험담하기에 바쁘다.
모든이가 나를 향해 있어야 좋은 사람인 것이다.
물론 나같이 이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쪽방촌에 가서 말없이 자신을 쪼개어 주는 사람도 많지 않나싶다.
그들을 보고 쪽방사람들이 말한다.
“그 사람은 누구지?”
“아! 그 사람 참 본 받고 싶은 사람이야”
“잘 살지는 않지만 몇 십년동안 변함없이 이곳에 왔잖아.”
“말과 행동이 너무 존경스러워”
“어디에 살어?”
“잘 모르겠지만. 성당에 다닌다고 하던데… ”
그사람 만나러 성당에 가볼까?
나는 이런 사람인가…
주님!
참 부끄럽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요한은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을 기꺼이 당신께 보내는 모습을 봅니다.
저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면 저 역시도 친구들을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 모든 것…제 것이 아닌 당신 것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저를 보고 당신을 찾을 수 있도록 의로운 사람이 되야 겠지요.
그런데 저는 그동안 살면서 뭘 했는지…
오히려 찾아온 그들에서 뭘 보여 줬는지..
오만과 교만으로 상처와 아픔, 분열을 준 적은 없는지…
그들의 입에서 “신자가 형편없다”는소리를 듣게하지는 않았는지…
나로 하여금 순수한 신자를 냉담자로 만들지는 않았는지 …
오늘 말씀을 통해 깊이 반성해 봅니다.
당신의 모습은 이유없이 당신을 쪼개어 송두리채 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그래야 겠다고 다짐해 보면서…
“와서 보아라!”
“보라 아파트에 내가 있다”
보여 줄수 있어야 하겠지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신 당신을…
“와서 보아라.”
주님!
오늘복음묵상을 하면서
신이 나고 즐겁고 참 기쁩니다
왜냐구요? 주님!
친구 안젤라가 복음묵상을 함께 해주니 행복합니다
사실 요즈음 이곳 사이버성당에서 복음묵상을 하던
형제자매님들이 이민을 가셨는지(?) 흔적을 남기지 않으셔서
보고 배워서 복음묵상을 해야 하는데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그립고 보고싶었던 안젤라가 당신의 자녀라는 사실이 기뻤고
복음묵상도 해주니 얼마나 반가운지 기쁩니다
이제 더 열심히 복음묵상도 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올 한해는 시작부터 기쁜 일이 있으니 저에게도 행복이
시작되는 것같아 행복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아는 것 또한 없고 부족한 것만 많으니
복음묵상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날이 그날이고 그랬습니다 주님!
이제 …
용기를 갖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신사고”정신으로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와서 보아라.”
말씀이 오늘처럼 가슴에 와 닿은 적도 없는 것같습니다
맞아요 주님!
아들 프람치스코 지정곡도 “와서보아라”입니다
제가 프람치스코가 직장에서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면
엄마!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와서 보아라”그럽니다
엄마한테 까분다고 꿀밤을 때리지만…..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고 자꾸 물어보는 저의 성격을 너무 잘아는
녀석이 언제나 하는 말 “와서 보아라”
복음을 묵상하면서 웃음이 납니다 프란치스코의 말이 생각이 나서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와서 보아라.”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기를 기도해봅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그리하여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가
헬레나가 아닌 참 신앙인 헬레나로 거듭나게 하소서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 Glory and praise to our God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눈여겨 본다는 것은 참 설레는 일이다.
40년 전 쯤인가보다.
친구와 나 그리고 두 남자가 쌍쌍 데이트를 한 적 있다.
서오능이었나?
집에 올 때 쯤 그 중 한 남자가 나를 눈여겨 본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 남자와 지금도 서로 마주보고 살고 있다.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 본 것처럼
저도 눈여겨 보신 줄 압니다
그래서 안젤라라 불러주시고, 살펴주시고
가족과 이웃을 돌보는 일을 맡겨주셨습니다.
(비밀번호도 찾고 이제사 어찌 올리는지 감 잡았습니다. 그간 실수를 용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