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1/6)


    ‘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의 세 박사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던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삼왕내조’(三王來朝)라 하였다. 공현이란 ‘공적으로 드러낸다.’는 뜻이다. 곧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셨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1월 2일과 8일 사이의 주일에 지내고 있다.
    오늘 전례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세주로 오셨음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날입니다. 그 자리에는 동방 박사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별의 인도만을 믿고 예수님을 찾아 나섰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용기를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그들처럼 믿음의 길을 용감히 걸어야겠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동방 박사 세 사람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들은 별의 인도로 찾아왔다. 그들의 용기와 결단은 신앙인들에게 모범이 된다. 헤로데 임금은 예수님의 출현을 정치적으로 받아들인다. 임금은 동방 박사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거처를 확인하고 싶어 한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는 동방에서 주님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노라. ◎ 알렐루야.
    복음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리지 아니하고, 그 예물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봉헌하고 받아 모시오니, 저희가 바치는 예물을 자비로이 굽어보시고 받아들이소서. 성자께서는…….
    영성체송
    우리는 동방에서 주님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예물을 가지고 왔노라.
    영성체 후 묵상
    동방 박사들은 고향을 떠나 베들레헴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들을 인도한 것은 별이었습니다. 별을 따라 그들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아기 예수님을 만나고 돌아갔습니다. 우리 역시 그들처럼 별의 인도를 받으며 올 한 해를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별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체성사로 오신 예수님께 별을 보여 주십사고 기도해야겠습니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언제나 어디서나 저희를 천상 빛으로 이끄시니, 저희가 받아 모신 이 신비로운 성체의 의미를 올바로 깨닫고, 성자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 되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오늘의 묵상
    한 자루의 양초로 수많은 초에 불을 붙입니다. 그래도 처음 양초의 빛은 약해지지 않습니다. 무심히 받아들이지만 기적입니다. 자신의 힘을 전적으로 주건만 조금도 없어지지 않는 이 사실이 어찌 기적이 아닐는지요. 초는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를 상징해 왔습니다. 지금도 미사 봉헌 때는 촛불을 켭니다. 초는 우리 신앙인에게는 특별한 물건입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나왔습니다. 오직 별의 인도만을 믿고 기약 없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 인생이 하느님을 만나려는 여행이라면, 동방 박사들의 이야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별의 인도가 꼭 있을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우리의 별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요. 동방 박사들은 예수님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경배하러 왔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나름대로 예물을 바쳤습니다. 올 한 해, 우리 역시 예물을 바치며 살아야 합니다. 살면서 만나는 그 많은 아픔과 희생을 예물로 봉헌해야 합니다. 무엇이든 주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여기며 받아들일 때 예물이 되는 것이지요.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한다고 기도의 힘이 나와 무관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참을 때 그 인내의 은공이 남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자루의 초가 수많은 초에 불을 붙여도 그 힘을 잃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Videntes stellam Magi-[동박박사 별을 보고...(응답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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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

    1. 말씀읽기: 마태 2,1-12

    2. 말씀연구

    주님 공현 대축일은 또 하나의 성탄 대축일입니다. 곧 성탄을 대외적으로 공적으로 알리는 것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월 2일과 8일 사이의 주일에 이 축일을 지냅니다. 주님께서는 탄생하신 뒤 사람들에게 점차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목동들, 동방의 세 박사들로 시작하여 성전에 머무는 의인 시메온과 한나에게,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인류의 구원자시라는 사실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민족 전체에게 차츰차츰 전해지게 됩니다. 마침내 모든 사람이 그분을 경배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상반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동방에서 별을 보고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분을 경배하기 위해서 찾아온 동방박사들과,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는 헤로데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왜 예수님을 찾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왜 예수님을 찾고 있는지…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헤로데는 순수 유대인이 아닌 이두메아인이었습니다. 그는 왕이 될 자격이 없었으나 매우 복잡하게 얽힌 상황으로 인해 왕이 되었습니다. 헤로데 왕은 상당한 업적을 이루기는 했지만 공포와 독재 정치를 자행하던 이방인(이두메아인)이며 로마의 호의에 의존해 있는 무절제하고 음탕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는 성전을 웅장하게 재건하였으며 백성들에게 많은 은전을 베풀었습니다. 그렇지만 경건한 유대인들은 그를 이방인 지배자로 간주하였습니다. 비록 그의 권력은 미약했지만 그는 로마인들이 허락해 준 왕이란 칭호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칭호는 동방 박사들이 찾고 있는 왕과 대조를 이루며 여기서 여러 차례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단지 두 부분에서만 “유대인의 왕”이라고 불리십니다. 한 번은 독재자 헤로데와 대조되어 여기서 사용되고 있으며, 또 한 번은 후에 재판을 받으실 때 이교도인 빌라도와(27,11) 자기를 조롱하는 병사들로부터(27,29) 이러한 칭호를 들으신다. 또한 십자가 위에도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27,37)


     그의 아버지는 그 당시 유대인들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인들에 대해 매우 협조적이었고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는 그런 상황에서 유다의 행정장관으로 헤로데의 아버지(안티파터)를 임명하였습니다. 또한 카이사르는 안티파터의 두 아들을 하나는(파사엘) 예루살렘의 총독으로, 다른 하나(헤로데)는 갈릴래아의 총독으로 세웠습니다. 헤로데는 반대자들과 강도들을 제거하고 갈릴래아에서 모든 반란을 진압하였습니다. 빈틈없는 외교관이며, 용감한 군인이고 훌륭한 행정가였던 헤로데는 세속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반대자들을 처형했습니다. 그는 권력 앞에서 자신의 가족들과도 끊임없이 투쟁하였습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심지어 자신의 가족들도 죽였고, 자살하기 며칠 전에 그의 후계자마저 죽여 버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했으며, 심지어 자신의 가족들까지도 죽여 버린 사람입니다. 로마의 통치하에서 강한 절대 권력을 갈망하던 유대인들 중에는 이런 헤로데를 메시아로 생각하고 추종한 어리석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건한 유대인들은 헤로데를 이방인 지배자로 간주하였습니다. 로마 황제에 비해 헤로데의 권력은 미약했지만 그는 로마인들이 허락해 준 “왕”이란 칭호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헤로데를 부르는 왕이라는 칭호는 동방 박사들이 찾고 있는 왕과 대조를 이루며 여기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약한 어린아이로 오시는 동안에 왕좌에 앉아 떨고 있는 표면상의 유대인의 왕 즉 헤로데. 참된 왕은 누구입니까? 나는 누구를 따르고 경배하고 있습니까?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동방 박사들은 발타사르, 멜키오르, 가스파르라고 합니다. 그들은 학식 있는 사람들이며 아마도 별의 운행과 출현에 관해 잘 알고 있는 바빌론 사제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별의 기이한 현상 때문에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그 별을 새로 태어난 아기 왕의  별을 “그분의 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고대 동양의 믿음에 따르면, 별들의 움직임과 인간의 운명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빈틈없는 조사와 연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동방박사들이 보았던 그 별이 어떤 성좌 혹은 어떤 혜성이었는지, 아니면 그것은 전혀 기적적인 현상이었는지 등등 그 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천 년 전의 별의 위치를 추적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어떤 천문학자들은 이 천 년 전에 태양계의 행성들이 일직선으로 섰다는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민족들과 우주의 하느님께서 보내신 징표라고 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현상의 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그러한 현상의 본질적인 목적과 대상입니다.


    그분의 별

              이스라엘 백성이 요르단 강 유역을 점령할 무렵, 모압 왕 발락은 몹시 당황한 나머지 유프라테스 지장의 용한 점쟁이 발람을 초빙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주를 퍼부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민수기22-24장 참조). 그러나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여러 가지 축복을 베풀었는데, 그 가운데 한 가지가 “야곱에게 별이 떠오르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나리라”(민수24,17)는 축복입니다.

                 또한 이방인들이 황금과 유향을 갖고서 예루살렘에 조공을 바치러 오리라는 예언이 있습니다(이사60,6). 그러므로 성경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축복과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이 볼 때 유대인들의 땅은 아주 작고 정치적으로도 보잘 것 없었습니다. 수세기 동안 유대인들은 근동 지방에서 독자적인 역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충분히 특사를 보내서 조사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무엇 때문에 먼 길을 달려왔을까? 이에 대해 복음서는 아무런 답변도 해주지 않으며 일어난 사건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동방 박사들의 순례 여행이 예루살렘에서 끝나지 않고 이 도시를 지나 베들레헴에서 끝난 것은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놀라운 계획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에게 정의와 구원을 가져다 줄 빛의 도시가 아닙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은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도시요(23,37-39), 불순종과 반역의 도시며, 하느님의 뜻을 경멸한 도시입니다. 메시아가 예루살렘에 오는 것은 그 곳에서 죽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그때 가서는 참으로 이 도시로부터 빛이 퍼져 나가게 될 것이지만, 그것은 지금까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 될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마치 헤로데를 조롱이나 하듯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시냐는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에 헤로데는 새로운 적수에 대한 두려움으로 당황하며(어떻게 얻은 자리인데…,) 그 도시는 새로운 형태의 공포 정치에 떨어야 하기에 술렁이고 있습니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 았다.

     당황한 헤로데. 당장 달려가서 없애 버리고 싶지만 이교방인이었던 헤로데는 성경에 대해서 알지 못했기에 그들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발톱을 감추고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는 것처럼 가면을 씁니다.

      유다인의 최고의회는 종교적인 동시에 행정적인 의회이며, 7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나지>라고 불리 우는 회장은 현재 재임하고 있는 대사제이며 70인의 의원은 대체로 세 계층으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대사제, 곧 전임 대사제, 및 사제 24반의 으뜸들, 학자, 곧 유다 지식 계급에 속하고, 토라를 연구하고 주해하고 베껴 쓰고 있던 학자들, 원로, 곧 대귀족 가운데서 뽑힌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3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 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미카 5,1.3).



    에프랏은 이스라엘의 작은 부족에 불과하였지만 이 부족에서 다윗이 나왔습니다(1사무엘  17,12).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약한 것을 선택하셨으며, 때가 찰 때에도 똑같이 약한 것들을 선택하실 것입니다.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뭔가를 알고 싶어 해서 이고, 자기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을 다른 이들은 모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헤로데는 동방의 박사들에게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냅니다.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위선의 극치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헤로데는 서슴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은 아닐까요? 헤로데는 알고 싶은 것을 알아내었습니다. 이제 찾기만 하면 됩니다. 동방박사들을 이용하여 먼저 메시아를 찾아내고 경배 대신 칼을 들이 밀려고 합니다.

    나 또한 마음에 없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의도는 숨기고, 아닌 것처럼 말합니다. 좀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동방의 박사들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헤로데가 자신들의 마음과 같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습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별은 아기 예수님께로 인도한 지표였습니다. 중요한 곳을 가리키는 별. 나 또한 별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이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하느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별이 되어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합시다. 그리고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립시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동방의 박사들은 마구간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합니다. 그들은 복됩니다. 볼 수 있는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구간의 주인은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나 또한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그 이면에 있는 깊이 있는 가치를 알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황금: 옛날에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태양이 최고의 신이었습니다. 태양과 황금은 서로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찬연히 빛날 뿐만 아니라 희귀하고 녹슬지도 않고 썩지도 않아 어느 나라에서든지 금은 곧 신의 색으로 여겨졌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황금은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습니다. 또한 전례 안에서도 중요한 제구는 모두 금으로 도금이 되어 있습니다. 탈출기 25장에는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받은 장막 건립에 관한 하느님의 지시가 세세히 적혀 있는데, 결약의 궤와 그 위의 속죄판, 그리고 양편의 케루빔 등이 모두 순금으로 빛났다고 합니다. 요한 묵시록에는 “성벽은 벽옥으로 쌓았고 도성은 온통 맑은 수정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다”(21,18)고 하였습니다.  이 황금은 순수하고 그 자체로 빛을 발하기에 귀한 선물로 사용되고, 귀한 화폐로 사용이 되고, 귀한 보석이 되어 빛을 발합니다. 자고로 임금은 태양신의 후손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렇다 보니 황금은 ‘임금의 상징’이 되어 동방박사들은 갓 태어나신 왕 예수 그리스도께 황금의 선물을 바쳤던 것입니다. 이 황금은 임금의 상징으로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을 선물로 드림으로써 예수님께서 세상의 임금이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유향: 어느 문화권에서나 종교행사에는 향을 쓰는 관행이 있습니다. 향은 여러 가지 나무의 수지로 만들어져 이를 태우면 좋은 향기가 나고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향을 피운다는 것은 곧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유향처럼 감미로운 향기를 뿜고 백합처럼 꽃피어 향내를 풍기어라. 찬미의 노래로 주님을 찬송하고 그분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여라”(집회 39,14). 향의 연기가 위로 피어오르듯 우리들의 기도도 하느님 앞으로 올라갑니다. 동방박사들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께  기도와 찬미를 바치는 마음으로 유향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몰약: 몰약은 향기와 쓴맛이 있어 옛날부터 향료 또는 의약으로도 쓰이고 아울러 시체의 방부제로도 쓰여 왔습니다.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은 몰약을 주로 의약으로 썼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사제나 왕에게 부어주는 기름에 몰약을 넣었습니다.” 너는 제일 좋은 향료를 이렇게 구해 들여라. 나무에서 나와 엉긴 몰약을 오백세겔,— 이런 것들을 향 제조공이 하듯이 잘 섞어서 성별하는 기름을 만들어라. 이것이 성별하는 기름이.”(30,23-25)하고 탈출기에 규정하였습니다.

           몰약은 ‘메시아와 왕의 특별한 향기’로 통했습니다. 몰약은 또한 시체에도 쓰였습니다. “언젠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침향을 섞은 몰약을 백 근 쯤 가지고 왔다. 이 두 사람은 예수님의 시체를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로 감았다”(요한19,39-40)고 하였습니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하느님께서는 헤로데의 교만한 생각을 꺾어 버리십니다. 가끔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는데 상대방은 그런 나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예루살렘으로 갈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다른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순수한 사람들, 단순한 사람들을 복잡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3.나눔 및 묵상

    1. 동방박사의 경배를 바라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무엇이고, 나는 예수님께 무엇을 드리고 있습니까?



    2. 자신이 왕임에도 불구하고 왕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을 보고 헤로데는 무척 당황을 했습니다. 내가 헤로데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경배를 드렸을까요? 아니면 헤로데처럼 예수님을 해치우려고 했을까요? 또한 주변에서 나보다 나은 사람을 발견하면 나는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도 생각해 봅시다.


  2. user#0 님의 말:

     

    아버지, 동방 박사들의 방문을 묵상하면서는

    매번 헤로데의 모습에서 저의 모습이 아니기를 청했고,

    동방박사들의 모습이 제 모습이기를 청했는데

    오늘은 다른 곳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별” ㅎㅎ 제가 참 좋아하는 별!

    달도 바람도 비도 눈도 …. 다 좋아하지요. 줏대없나요?

    그래도 좋아요. ㅎㅎㅎ

    좀전에 전화가 왔었답니다. 엄마한테…

    이시간에 안주무시고 전화를 한 걸 보면 아마도 무슨 심경에 변화가 생겼었나 봅니다.

    제게 그러더군요.

    “둘레야 오늘 유난히 별이 밝다.

    더도덜도 말고 예전에 우리 둘레 어렸을 적으로 돌아간다면

    지금보다 더 잘해줄 수 있을텐데..” 라고 하시더니 울먹하시더라구요.

    “엄마 왜 그래? 혹시 부부싸움?” 하고 물었더니 웃으시며

    “아니 그냥. 잠이 안와서 밖에 나왔는데 별이 너무 이뻐서 니생각이 났다.” 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난또” 했더니

    “너 어렸을적 기억나냐?” “뭐가?” 했더니 옛얘기를 하셨습니다.

    제가 유난히 별을 좋아했답니다.

    시골에서 여름에 일하고 늦게 들어오면

    처마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턱을 괴고 있다가 한달음에 달려와 수다를 떨었다네요.

    그런 딸인데 제가 울음이 그렇게 많았었대요.

    그러면 운다고 저희 할아버지가 저를 돼지집에 넣고

    뚝해야 꺼내준다고 하면서 저를 더 울렸다고 합니다.

    그때가 가장 싫었대요.

    그리고 여름이면 마당에 누워서 엄마다리를 베고

    밤하늘에 별을 보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대요.

    그러면서 그랬대요.

    “엄마,저거 내별이야. 젠 내가 크면 같이 큰다.”

    하고 수다떠는 딸을 보고 엄만 목이 메었다고 합니다.

    왜냐면 배를 곯지 않으려고 왔던 시집살이가 너무 힘들어 혼자 울면서

    유일하게 위로를 삼았던게 밤하늘에 별이었대요.

    혼자 목메어 울며 하소연하던 별을 철없는 딸이 유난히 좋아하니

    저 딸이 엄마처럼 혹여 힘든 생활을 하려고 저러나 싶어서~~~~

    별걱정을 다했지요?

    아버지!

    저희 친정부모님 이쁘죠? 고생도 많이 하셨고~~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감싸주세요. 친정부모님도 감싸 안아주실 울아버지잖아요.

    약속하셨어요.꼭!

    이 늦은 시간에 잠이 오지 않아 나왔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울먹이며 전화를 했던 거랍니다.

    그래서인지 별에서 제 마음이 떠날줄을 모르나 봅니다.

    저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사로잡습니다.

    동방박사들까지도 인도한 별!

    저도 그런 별이되어 아버지께로 많은 이들을 인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지금보다 열배로 기도하고 말씀속에서 저를 가다듬고

    즉각 움직이면서 사랑을 나누면 될까요?

    오늘은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내 가슴이 아려요.

    제가 철이 들었나봐요. 그치요? ㅎㅎ

    신앙생활을 하면서 뭣도 하고, 얼마나 되었는데 하면서

    교만을 부리진 않았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성경을 훤히 안다 자부하던 수석사제나 율법학자들 역시

    구약의 약속이 실현됨에 위협을 느끼듯이

    저역시 부족한 신앙생활로 목에 힘을 주고 뒷짐지며 가다가,

    진실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이를 보고서

    괜스레 그를 견제하며 어떻게든 밀어내려 하는 저는 아니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그를 견제하면서 제 주위에서 밀어내려 하는 저는 아니었는지요.

    유다인들의 임금을 찾아 경배하러 왔다는 동방박사들의 말에 놀라면서

    결국은 아기 예수님을 없애려 음모를 꾸미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모습이

    결국은 저의 모습일 수 있음을 가슴에 새겨 봅니다.

    가면속의 헤로데!

    참 불쌍하지요.

    그런 반면에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가지고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

    그 모습또한 저를 보게 합니다.

    제가 아버지께 뭘 드렸나를 생각해 보지만 사실 드린게 없네요.

    전 참 많은 것을 받았는데~~ 아니 늘 받고 있지만 울아버지껜 드린게 없네~~ ㅎㅎ 죄송해요.

    앞으로 많은 것을 드릴께요. 사랑이요.

    아버지!

    헤로데에도 제 모습이, 동방박사들에게도 제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별의 모습이 제 모습이 되었음 합니다.

    그런다면 아버지의 그늘속에서 펼쳐지는 제 삶속에서

    인정과 겸손과 배려와 칭찬으로 상대에게 기쁨과 웃음을 주면서

    아버지의 딸임을 드러낼 수 있는 별이 될 것 같답니다.

    아버지!

    작은 별에서 아롱지는 빛이 얼마나 이쁜지 아시죠?

    그런 별이 되길 청해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중에서도 동방박사들을 인도해 준 별이 가슴에 내려 앉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찾아 가서 황금과 몰약과 유황을 드리며 경배를 하지요.

    누군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

    제가 바로 본받아야 할 모습임을 다시금 깊이 새깁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을 인도해 준 별이 제 모습이길 기도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 별처럼 누군가를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제가 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는 빛을 발하면서

    제자리에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비추이게 하소서.

    어둠을 걷는 이가 있으면 그들의 친구가 되어 빛으로 나아가게 하는

    그러한 별이 되어 저를 태우게 하소서.

    오로지 아버지의 작은 별이 되어 머물게 하소서.

    아멘.

  3. user#0 님의 말: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갑자기 나는 나를 완전하게 드러낼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스스로 물어봤습니다.
    또한 상대방 역시 드러낸 내 모습을 그대로 바라볼수 있는가.
    슬프게도 없지않나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신뢰와 믿음이 그만큼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보면 서로 알만큼 안다는 사람도 정말 싫은 점들이 참 많습니다.
    물론 상대방도 그럴 것입니다.
    때론 머~ 사람마다 다 다르니깐…이렇게 위로하면서 살지만
    나중에는 말하기 조차도 힘들때도 있습니다.
    또한 말할때도 깊이 생각해서 말을 하게 됩니다.
    갈수록 나를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겉과 속을 무장하고 살지요.
    사실 자신이 상처받기 싫어서입니다.
    이렇게 형제자매를 사랑할줄 모르는데
    어찌 그분의 빛을 볼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주님은
    인간에게 무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간을 초대하시고
    빛으로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이렇게 드러냄은
    아픔,고통, 상처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모습입니다.

    나도 이래야 하는데…
    남의 탓과 성격 탓을 합니다.
    달라지려고 노력을 해야지…휴~~
    해봤자 그자리에 또 서있는 저를 봅니다.
    오뚜기인가 봅니다.

    오늘 미사중에 초라하기 그지없는 그분께
    삼왕이 경배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구유에 계신 그분은 명품으로 두른 모습도 아니였으며
    통장 몇개씩 손에 쥔 모습도 아니었고
    근사한 집도 아닌 말구유에서 벌거벗은 몸이었습니다.
    그런데 왕들이 선물을 들고 멀고 험한 길을 돌고 돌아서 왔습니다.
    왜 일까?
    그분이 바로 영원한 희망을 주실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돌아봤습니다.
    겉치레에 나를 두르고
    인정받기 위해 일을 했으며
    내가 한일에 대한 공치사를
    자랑함으로써 그분보다 나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나 반성을 해봤습니다.
    사람들에게 잘한 것만 골라서 보이고 싶어했습니다.
    영원한 희망보다 일순간의 달콤한 칭찬이 좋아서 말입니다.

    주님!
    오늘 당신께서 인간과 관계를 맺고자 당신을 공적으로 드러내셨듯이
    저 역시 인간관계에서 당신을 닮은 나를 드러내겠습니다.
    동박박사들처럼 영원한 것을 희망하며
    서로 각기 다른 모습이었지만 함께 힘을 합쳐 험한 길을 향해 갔듯이
    저역시 미운 형제자매를 이해하고 사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물론 힘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업고
    꾸준히 당신의 빛을 향해 걸어 가렵니다.
    아버지!
    절 도와 주셔요. 아멘…

  4. user#0 님의 말: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도 동방박사들처럼 당신께 머물고 싶습니다
    세속의 일들을 모두 멈추고....
    당신 앞에 멈추고 싶습니다
    당신만이 저의 구원자시라는 생각으로 하던 일 모두 멈추고....
    세속에서의 이기적인 마음....
    교만한 생각...
    남보다 제가  더 잘나기를 바라는 신앙인답지 못한 행동...
    가슴 속에는 세속의 욕심으로 가득차 있으면서 겉으로는
    착한 척 신앙인인 척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려는 사악한 마음...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참 많은 것을 움켜지고 살고 있는 저를 봅니다
    그런데도 언제나 공허하고 아무 것도 없는 것같이 허전한 마음이
    드는 원인이 당신께 멈춰있지  않아서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아니!
    마음 속으로는 벌써 깨달았지요 
    그런데도 인정하기 싫어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손해를 보는 것 같아
    망설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당신께 멈추어 있다고....
    복음묵상도 그럴 듯하게 매일 매일 사실은 하는 것이 별로 없으니
    신앙생활도 봉사도 희생은 더더욱 저하고는 거리가 먼 것같습니다
    아마 궁여지책으로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표시로...
    복음묵상을 하고 있지 않아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께 보여주기 위한 쇼 맨쉽이라고 할까요?
    힘들고 어려울 가운데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려 노력한다는 표시를 하고 싶어서일까요?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으로 혼란스럽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에도 사실은 세속의 생각으로 
    갈피를 못잡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언제쯤이면 혼란스러운 저의 마음이 정리가 될까요?
    마음은 당신께 멈추고 싶은데....
    세속의 여러 가지 일들이 저의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당신께 멈추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

    말씀을 깊이 새기며
    앉으나 서나 당신생각만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세속의 모든 근심걱정 잊고...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

    묵상하며

  5. user#0 님의 말: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난 가난한 부모님이 싫었습니다
    입학식날 교복도 못 사주셔서 난 학교에 가지 않고 교복을 사 주실때까지 결석했습니다.
    등록금도 제 때 못 주셔서초등학교 때는 집에 까지 쫓겨 왔고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선생님께 불려 다녔습니다.
    교복외에는 집에서 입을 옷도 변변치 않아 수학여행비 겨우 내고는 입고 갈 옷이 없어 고민했고 다 저녁에 엄마손을 잡고 시장에 가서 옷 한벌을 사서 입고 갔었습니다.
    겨울이면 아버지가 일자리가 없어 아랫목에 누워 계셨습니다.
    날이 풀려 일나가시면 술마시고 오는 날이 많고 그런 날이면 엄마를 때리는 날도 있어 죽으라고 싸움을 말렸습니다.
    난 어른이 싫었습니다. 엄마도 밉고 아버지도 미웠습니다. 선생님도 미웠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난 존경할 만한 어른이 필요했습니다.
    고등학교 다니던 때 집 뒤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래, 저 곳에는 전능하신 하느님이 계신단다. 우리 엄마 아버지 선생님 같지 않은 하느님이 계신단다. 저 곳에 가서 미워하지 않을 만한 어른을 만나는 거야. 아마 멘토가 필요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난 하느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 분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습니다.

    난 무엇하러 임금님께 갔을까
    그 분을 경배함이 우선이 아니라 난 임금님이 필요했습니다.

    그래도 그 분은 마다 않으시고 절 받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듬어 주셨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이유를 묻지 않으시는 그 분께 감사할 뿐입니다.

    (2박 3일 가톨릭상담심리학회 동계수련회가 있어서 성나라로 마을을 다녔왔음)

  6. user#0 님의 말: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도 동방박사들처럼 당신께 머물고 싶습니다
    세속의 일들을 모두 멈추고....
    당신 앞에 멈추고 싶습니다
    당신만이 저의 구원자시라는 생각으로 하던 일 모두 멈추고....
    세속에서의 이기적인 마음....
    교만한 생각...
    남보다 제가  더 잘나기를 바라는 신앙인답지 못한 행동...
    가슴 속에는 세속의 욕심으로 가득차 있으면서 겉으로는
    착한 척 신앙인인 척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려는 사악한 마음...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참 많은 것을 움켜지고 살고 있는 저를 봅니다
    그런데도 언제나 공허하고 아무 것도 없는 것같이 허전한 마음이
    드는 원인이 당신께 멈춰있지  않아서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아니!
    마음 속으로는 벌써 깨달았지요 
    그런데도 인정하기 싫어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손해를 보는 것 같아
    망설이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당신께 멈추어 있다고....
    복음묵상도 그럴 듯하게 매일 매일 사실은 하는 것이 별로 없으니
    신앙생활도 봉사도 희생은 더더욱 저하고는 거리가 먼 것같습니다
    아마 궁여지책으로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는 표시로...
    복음묵상을 하고 있지 않아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께 보여주기 위한 쇼 맨쉽이라고 할까요?
    힘들고 어려울 가운데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려 노력한다는 표시를 하고 싶어서일까요?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으로 혼란스럽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는 이 순간에도 사실은 세속의 생각으로 
    갈피를 못잡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언제쯤이면 혼란스러운 저의 마음이 정리가 될까요?
    마음은 당신께 멈추고 싶은데....
    세속의 여러 가지 일들이 저의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당신께 멈추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

    말씀을 깊이 새기며
    앉으나 서나 당신생각만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세속의 모든 근심걱정 잊고...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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